이성규의 행복한 쉼표,
  • 방송시간 : [일] 20:20~21:00
  • 진행: 이성규 / PD: 박준범 / 작가: 김민영

인터뷰 전문

[잠시만요] 미스트롯2 윤태화, 쎈언니 세대교체 예고!
작성자 : ytnradio
날짜 : 2021-07-26 16:21  | 조회 : 1458 

방송 : YTN 라디오 FM 94.5 (20:20~21:00)

날짜 : 2021725(일요일)

진행 : 이성규 교수

대담 : 윤태화 트로트 가수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잠시만요] 미스트롯2 윤태화, 쎈언니 세대교체 예고!

 

이성규 교수(이하 이성규)> 마냥 밝게 빛나기만 하면, 빛의 소중함을 알 수 없었겠죠? 어둠이 있기에 그 빛이 얼마나 고마운지 느낄 수 있습니다. 오늘의 주인공 오랜 무명 생활을 지나 빛나는 뮤지션으로 새롭게 도약을 하신 분입니다. 트로트 가수 윤태화씨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윤태화 트로트 가수(이하 윤태화)> 안녕하세요. 여러분. 반갑습니다. 클 태, 그림 화. 트로트의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가수 윤태화입니다. 반갑습니다.

 

이성규> , 반갑습니다. 벌써 청취자 여러분께 소개를 다 하셨네요.

 

윤태화> .

 

이성규> 그런데 제가 아까 오랜 무명생활, 이렇게 말씀을 드렸고, 지금 13년 차 가수라고 알고 있는데. 2009년에 데뷔를 하셨네요.

 

윤태화> , 제가 19살 때, 데뷔를 하게 되었는데.

 

이성규> 19.

 

윤태화> 811일이 제 12주년이라고 팬 분들이 축하한다고 해주세요. 그래서 감회가 남다릅니다.

 

이성규> 12주년. 팬 분들이. 그 때도 많이 모아서 기부를 하실 것이 아니에요?

 

윤태화> 그런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성규> 저기 비슷한 시기에 데뷔를 한 분들이 있으세요?

 

윤태화> 지금 잘 모르겠고. 김다나 언니라던지, 양양 언니 계시고, 그리고 다 그만뒀어요. 중간에.

 

이성규> 최근 몇 년 사이 트로트가 진짜 대세였는데. 데뷔를 하실 때만 해도 이런 날이 올 것이라고 별로 예상을 안 하신 것이죠?

 

윤태화> 그럼요. 정말로 중간의 힙합 같은 경우도, ‘쇼미더 머니로 너무 붐을 일었잖아요. 힙합이 그런 날이 올 줄 몰랐을 정도로 트로트도 정말 이런 날이 올 줄은 몰랐어요.

 

이성규> 근데 그 당시에 그렇게 기대를 안 하셨으면서도 트로트를 시작하신 이유가 있어요?

 

윤태화> 그러게요. 정말 그 때 당시에는 장윤정 선배님이 계셨습니다. 그래서 저도 트로트를 참 좋아하고, 잘 한다고 하니까. 장윤정 선배님처럼 되어 보자는 생각이 컸던 거 같아요, 좀 어렵겠지만 그렇게 해보자는 생각을 했고. 충분히 열심히 하면,기회가 있을 것이고. 노력을 하면 나도 잘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패기가 있었던 거 같아요.

 

이성규> 그 때 강한 집념이 있으셨는데, 집념뿐만 아니라 흐르는 피가 또 있었던 거 같아요. DNA. 어머니께서도 젊은 시절에 가수를 잠깐 하셨다고. 또 외할머니께서도 생전에 음악을 대단히 좋아하셨다면서요?

 

윤태화> 제가 어렸을 때, 할머니 슬하에서 자랐는데.

 

이성규> 외할머니?

 

윤태화> , 엄마는 이제 돈을 보내주시고, 타지에서 일하면서 보내주시고. 저는 할머니하고 살았는데. 할머니도 굉장히 노래를 좋아해서 계속 부르셨고. 엄마도 이제 가끔 만날 때마다 노래를 했던 기억이 있어요. 저한테 가르쳐주기도 하고. 그래서 저는 어렸을 때부터 트로트에 더 익숙했던 거 같아요.

 

이성규> 여기 저기 동네에서 다니시면서 어른들 앞에서 공연 아닌 공연을.

 

윤태화> 저는 정말 기억이 안 나는데, 숙모가 최근에 하는 말이 징그럽게 노래를 하고 다녔다.

 

이성규> 작은 어머니가?

 

윤태화> 외숙모가. 그래서 어린 나이에 그렇게 트로트를 잘 하는 것이 징그러웠데요. 숙모의 입장에서. 커서 뭐가 될려나 했더니, 정말 트로트 가수가 되었다고 신기해하십니다.

 

이성규> 그러다가 이제 2009년에 아까 말씀을 드렸지만 데뷔를 하셨는데. 그 이름을 거의 10 몇 년 동안 못 알리고. 무명으로 활동을 하셨는데. 어떤 부분이 조금 가장 힘드셨어요?

 

윤태화> 모든 무명 가수들이 마찬가지겠지만. 아무리 열심히 해도 알아주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무명들은. 정말 사실 열심히 노력을 하면서 운동도 하고, 피부를 가꾸고 해도, 보여질 곳이 없으니까. 오히려 저는 스무 살 초반이 참 예쁘고, 열심히 운동을 하고, 피부 관리도.

 

이성규> 지금보다 더 예쁘셨어요?

 

윤태화> , 그럼요. 그리고 아침 일찍 일어나서 열심히 살고. 연습을 아무리 해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으니까, 정말 힘들었던 거 같습니다.

 

이성규> 알아주는 사람 좀 챙겨보라고. 이름도 바꾸고.

 

윤태화> 이름을 몇 번 바꿨어요.

 

이성규> 예를 들면, 어떤, 어떤 이름이었죠?

 

윤태화> 윤정윤, 정다비, 태화. 윤태화. 굉장히 많았어요. 중간에도 되게 많았는데. 그래서 누가 보면, 이름을 너무 많이 바꾸니까. 못 알아보시는 경우도 있고. 제가 걘데, 그렇더라고요.

 

이성규> 윤태화.

 

윤태화> 평생 갈 겁니다.

 

이성규> 평생 하셔야죠. 그래도 그 시절에 나름 인기를 끌었던 노래도 있었을 거 같아요,

 

윤태화> 그 때, 나름 인기가 끌었던 것이 19살 때, 불렀던 노래. ‘깜빡깜빡이라고.

 

이성규> ‘깜빡깜빡’?

 

윤태화> 그 노래가 bgm으로도 나오고, 강남역에 지나가면 나오기도 하고. 꽤 괜찮아서 잘 되겠다 했었어요. 근데 그리고 나서 끝이었죠.

 

이성규> 사람들이 깜빡 잊었네요.

 

윤태화> 사람들이 아주 깜빡. “아 사랑은 얄미운 사랑은 내 가슴에 눈물만 주고.” 이런 노래였는데.

 

이성규> 그것을 깜빡깜빡 잊어버려서. ‘깜빡깜빡저도 한 번 기억을 해보겠습니다. 무명 생활이 이제 길어지시면 생계가 곤란하지 않아요? 그래서 막 쓰리 잡도 뛰고 그러셨다고 들었는데.

 

윤태화> 쓰리 잡은 아니고, 정말 투 잡을 뛰었는데. 저는 애초에 가장이었어요. 그래서 돈을 좀 안 벌면, 곤란한 상황. 엄마도 좀 아프셨고, 애초에. 그래서 가수를 하면 돈을 되게 잘 벌 줄 알고 한 것인데. 가수 때문에 돈을 더 못 버니까. 정말 힘들었어요. 그래서 넋 놓고 있을 수는 없겠다. 내가 가수 꿈을 꾼다고 가족들을 저렇게 방치를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어린 나이인데도, 책임감이 강했던 거 같아요. 그래서 투 잡이라도 해서 돈을 계속 보내드리고. 저만 힘들면 되지, 가족들도 마음이 아프잖아요. 딸이 좀 안 되는 모습을 보면. 그것도 힘든데, 돈까지 없으면 너무 안 될 거 같아서, 제가 못 견딜 거 같아서. 제가 그렇게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너무 기특한 거 같아요. 아기였는데.

 

이성규> 그때 어떤 일을 하셨는지, 물어봐도 되요?

 

윤태화저는 냄새나는 일은 안 했어요.

 

이성규생선가게?

 

윤태화그런 것은 안 했어요. 주유소라든지.

 

이성규기름 냄새.

 

윤태화담배 냄새라든지, 이런 것은 정말 싫어했어요. 그래서 당구장도 금연하는 당구장, 공 닦고, 서빙하고, 게임비 받고 하고. 스크린 골프장에서 저녁 시간에 스크린 골프하러 오시는 손님 신발 챙겨 드리고. 그 정도 하고. 중간 중간 계속 바뀌었는데. 입주 청소도 한 적이 있고.

 

이성규입주 청소.

 

윤태화돈이 꽤 안 되는 아르바이트는 안 했던 거 같아요.

 

이성규그 몸으로 입주 청소를 어떻게 하셨어요?

 

윤태화괜찮아요. 할 만하고, 무명 가수들 중에 사람들이랑 부딪히기 싫어서 청소 일을 하는 분들이 꽤 많아요. 혼자 하는 것이잖아요, 입주 청소는. 그래서 저 뿐만 아니라 모든 무명 가수들이 힘들었을 거에요.

 

이성규그러면서 중간에 그만둔 분들도 계시고 그런데. 버텨 오신 그런 원동력? 그런 것이 조금 있을 거 같아요.

 

윤태화저는 무조건 첫 번째가 가족이었고. 여기까지 했는데, 포기를 해버리면 거기서 버티게 해 준 것은 또 잘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마음 한 구석의 확신이 있었어요. 나는 조금만 더 하면 될 거 같은데. 대중들이 알아줄 거 같은데. 어떻게 이렇지?, 라는 생각으로 조금 더, 조금 더 했던 거 같아요.

 

이성규, 그 옆에서 그래도 뭔가 그런 생각을 같이 해주고, 지지를 해주고 그런 분이 생각나세요?

 

윤태화그럼요. 정말 많았고. ‘너는 될 거다.’ 이렇게 힘 빠져 있을 때, ‘나 포기할까?’ 했을 때, ‘너가 안 되면 어떡해이렇게 동종 업계 사람들도 정말 기억에 납니다. .

 

이성규지금 종합을 해보면, 가족에 대한 책임감 그리고 주변의 친구 또는 동종 업계, 동료들의 격려.

 

윤태화믿음.

 

이성규그랬군요. YTN라디오 <이성규의 행복한 쉼표, 잠시만요.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가수 윤태화씨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윤태화씨.

 

윤태화.

 

이성규우리가 이쯤에서 노래 한 곡을 듣거든요. 오늘은 나오셨으니까, 새 음악으로 하시던지, 아니면 한 곡을 좀 선택을 해주시죠.

 

윤태화, 제가 추천을 해드리고 싶은 노래는 찍고 찍고 찍고라는 노래입니다.

 

이성규이번에 다시 나왔죠?

 

윤태화신곡입니다.

 

이성규그게 뭘 찍는다는 것이에요?

 

윤태화전국 8도를 찍으면서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 헤매다가 결국 찾았다.

 

이성규찾았다?

 

윤태화, 찾았다, 라는 긍정적인 노래인데요. 들어보시면 되게 익숙한 멜로디가 나옵니다.

 

이성규그럼 윤태화씨가 추천한 또 직접 부른 노래, ‘찍고 찍고 찍고를 듣고 오겠습니다. 꼭 붙어 살 거에요. 윤태화씨의 신곡 찍고 찍고 찍고를 듣고 오셨습니다. <이성규의 행복한 쉼표, 잠시만요.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트로트 가수 윤태화씨입니다. 그런데요. 미스트롯2’ 이게 오랜 무명생활에 종지부를 찍는 계기였던 것은 분명한 것이죠?

 

윤태화그럼요. 제가 은인으로 생각을 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이성규> 그 계기를? 그런데 그 때, 망설이시기도 하셨을 거 같아요. 나갈까, 말까.

 

윤태화. 정말 미스트롯1’한다고 했을 때, 망설였어요. 그래서 참여를 못했고. 2는 정말 망설이지 않았어요. 마지막이라고 생각을 하고 나갔거든요. 정말 이제는 그 때 당시에 10년도 지났고. 주변에서 친구들은 자리를 잡았고, 그 친구들이 자리를 잡은 회사에 취직을 해도, 이렇게는 안 살겠다는 생각을 해서 정말 취직을 하려고 했어요. 그리고 나중에 한 10년 뒤에 다시 나오더라도 지금은 조금 멈추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정말 고민을 하지 않았어요.

 

이성규. 그리고 그런 각오로 이번에는 반드시 나가야겠다.

 

윤태화이번에는 꼭 나가서 그냥 마지막으로 대중들한테 라는 가수가 있다. 그리고 나를 별로 좋아해주지 않는다면, 그냥 있었다고만 해도, 괜찮다는 생각으로 출현을 결심을 했죠. 결심을 한다고 해도 붙을지, 안 붙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확고했어요.

 

이성규근데 또 막 방송 출현을 하려고 하는데, 어머니께서 뇌출혈로 갑자기 쓰러지셨다면서요?

 

윤태화, 정말.

 

이성규어머니께서 되게 좋아하셨을 거 같은데.

 

윤태화> ‘미스트롯2’에 합격을 했다고 했을 때, 정말 좋아하셨어요. ‘어머 거짓말 아니지?’하면서 너무 좋아하셨는데. 이제는 느낌이 있었어요. ‘미스트롯2’에 내가 방송을 나간다고 하면 그래도 소수의 팬들이 나의 노래를 좋아해줄 수 있고, 나라는 가수를 좋아해줄 수도 있겠다는 확신이 있어서 방송만 타자. 방송만 타자, 라는 생각이 있었어요. 편집만 되지 말자. 이런 생각으로 하루 하루를 살고 있는데, 갑자기 엄마가 응급실에 실려 가시고. 그런 일이 있고 나서 눈은 붓고, 맨날 울어서. 목도 막 안 좋고 한 상황에서 촬영 날이 다가오는 거에요. 그래서 얼굴이 퉁퉁 부은 채로 또 촬영에 임했습니다.

 

이성규그러면 어머님의 지금 상태는 어떠세요?

 

윤태화지금은 7, 8개 월 되었어요. 근데 7, 8개 월에 이정도면 굉장히 기적이라는 소리를 들을만큼 회복이 빠르세요.

 

이성규뇌출혈로 해서 어디가 약간 조금 마비 같은 것이 생겼나요?

 

윤태화엄마도 처음에 오른 쪽 편마비였는데, 절대 못 돌아올 것이라고 했는데, 저희가 잘 주무르고, 가족 간병을 하면서 엄마가 많이 좋아졌어요.

 

이성규형제가 또 있으세요?

 

윤태화여동생 있어요. 여동생이 있는데, 그 친구도 참 힘들 텐데, 그래도 엄마를 잘 보살펴주고 있어서. 저는 금전적으로 해주고, 동생은 이렇게 간병을 해주고. 고생이 많아요. 정말.

 

이성규미스트롯 무대에서 어머니를 생각을 하면서 회복을 또 기원을 하면서 부른 노래가 굉장히 좋은 반응을 얻었었죠. 그 때, 강력한 우승 후보로 손꼽히기도 했는데요. 그 때, 좀 남다른 생각이 있었을 거 같아요. 어떤 노래를 하셨죠?

 

윤태화그 때 노래를 할 때? ‘님이여라는 노래를 했는데, 그 때는 엄마가 의식조차 없었던 때라서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해서 불렀어요. 그 에너지가 있잖아요. 기도를 하는 파장과 뭔가 다 믿고 싶었어요. 그래서 그런 큰 무대에서 노래를 하면 엄마도 들리지 않을까, 하면서 크게 불렀어요. 그리고 나서 방송을 보신 분들이 같이 기도를 해주고, 정말 종교를 떠나서 다 기도를 해주셔서. 그 후로 정말 많이 좋아졌어요. 엄마가.

 

이성규그 기도에 응답이 있었군요.

 

윤태화저 정말 착하게 살려구요. 그 다음부터 더 착하게 살아야겠다고 생각을 한 것이 이게 정말 에너지가 있는지. 팬 분들이 함께 기도를 해주니까. 엄마도 참 힘이 나시는 것이 보이고 신기했습니다.

 

이성규하여튼 강력한 우승후보였는데, 정말로 아쉽게 최종에서 13위였잖아요. 13위라는 의미가 많은 분들을 아쉽게 해서, 더 이름이 회자가 된 거 같아요.

 

윤태화그런가요? 그럴 수도 있어요. 저희 팬 분들 중에서는 제가 떨어진 소식을 듣고, 팬 가입을 해주신 분들이 있어요. 그래서 그럴 수도 있을 거 같아요.

 

이성규, 가족들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윤태화그 때는 엄마가 순위를 생각할 정도로 인식이 있지 않으셨고. 동생은 괜찮아, tv만 나가려고 했었는데, 이 정도까지 올라간 것은 행운이지.’ 이런 식으로 위로를 해줬어요. 저도 순위에는 신경을 별로 안 썼단 말이에요. 1등이 아니면, 순위는 상관 없다는 생각이었는데. 요즘에 tv에 탑7친구들은 잘 나오잖아요. 그런 것을 보면 탑 7tv에 자주 나와서 좋은 것이구나. 부럽다, 라는 생각을 요즘 합니다.

 

이성규아니, 이성규의 행복한 쉼표, 나온 분은 처음이에요.

 

윤태화당연히 너무 좋죠.

 

이성규7이 아니라, 퍼스트에요.

 

윤태화그러니까요. 너무 감사합니다.

 

이성규어쨌든 미스트롯을 계기로 해서 윤태화라는 이름 석 자가 확실히 대중들에게 각인이 되었는데요. 그 이후와 그 전의 윤태화의 인생, 좀 변화가 있었나요?

 

윤태화그럼요. 확실히 변화가 있고. 우선은 노래를 하는 데 힘이 많이 나고요. 예전에는 노래를 하면서도 이게 누구한테 전해질까? 혼자 노래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잡념의 생각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노래를 하면 온전히 팬들에게 전해진다는 생각으로 힘을 내서 노래를 하는 거 같고. 마음가짐도 조금 긍정적으로 바뀐 거 같아요.

 

이성규경제적으로는요?

 

윤태화경제적으로 엄마가 안 아프셨다면 제가 모은 돈도 꽤 있었을 텐데. 감당을 할 수 있는 것만으로 저는 경제적으로 발전을 했다고 생각을 해요. 엄마의 병원비라든지, 그런 생활을 제가 보필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행복해요.

 

이성규투잡 아니어도.

 

윤태화맞아요. 노래로.

 

이성규큰 변화네요. 정말로. 근데 최근에 아까 찍고, 찍고, 찍고가 타이틀 제목인 정규 앨범이 4번 째, 나왔죠. 지금 감회가 어떠세요? 4번 째 앨범을 내시고.

 

윤태화정말 4번 째에 비로서 제가 앨범을 낼 때, 자세히도 봤습니다. 저번에는 이걸 낸다고 또 누가 봐줄까?’라는 마음도 있었어요. 거의 라면을 끓으면 냄비 받침으로 써야 하나. 이런 생각도 하고 했었는데. 이번 앨범은 이거를 팬들이 얼마나 좋아할까? 그리고 냄비 받침으로 사용이 되지 않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면서 정말 처음으로 그 안에 들어있는 글씨를 하나, 하나 다 정독을 하고. 사랑스러운 앨범을 맞이했습니다.

 

이성규지금 사인을 해서 주셨는데. 정말 감사합니다. 그 앨범도 다시 내시고 하셨는데, 제가 또 어디서 들으니까요. 도종환 시인의 시, ‘옥수수 밭에 당신을 묻고에 곡을 붙여서 부른 노래가 있다고 하던데요?

 

윤태화> ‘옥수수 밭 옆에 당신을 묻고라는 시를 작곡가님이 곡을 붙여서 냈었어요. 그거 제가 듣고, 너무 좋은 거에요. 그 시도 너무 마음에 와 닿고, 멜로디도 좋아서 제가 그것을 불렀는데. 팬 분들이 너무 좋아해주셨어요, 그래서 작곡가님이 저에게 곡을 주셨거든요. 근데 이제 부르려고 하는데, 도종환 의원님께서 이제 허락을 안 해주셔요. 저작권 승인이 안 나서 이게 너무 안타깝고.

 

이성규사용승인이 아직 안 났군요.

 

윤태화그래서 우리 팬 분들도 도종환 의원님을 만나러 가겠다고, 부탁을 드린다고 막 하시는데. 저도 정말 허락을 해주셔서 많은 대중들한테 노래를 들려드릴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이성규좋은 소식이 있으면 좋겠네요. 그리고 또 얼마 전에는 단독 콘서트를 여셨죠. 그 때, 콘서트를 하게 되었어요, 윤태화. 어땠어요?

 

윤태화정말 스타들만 한다는 콘서트를 제가 하게 되다니 너무 영광스럽고, 코로나인데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이 와주셨어요. 방역 수칙을 잘 지키면서 무사히 마쳐서 너무 홀가분하고, 행복했었습니다.

 

이성규근데 그 때, 성공적으로 마친 뒤에 그 기념으로 쌀을 한국 장애인 재단에 기부를 하셨더라고요?

 

윤태화, 제가 콘서트를 할 때, ‘러브라이브 콘서트라고 애초에 기부를 하는 그런 취지의 콘서트였어요. 그래서 저도 쌀 120kg을 팬 분들과 함께 기부를 했습니다.

 

이성규시작을 그렇게 하는 것이죠. 그리고 또 광명시청에 어린이를 위해서도 후원을 하고 계시고 있더라고요.

 

윤태화다 팬분들 덕분이고. 저는 앞으로도 계속 작게나마 베풀면서 사는 가수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이성규어릴 적 추억하고도 연결이 되나요? 이 나눔 활동이?

 

윤태화, 제가 할머니 슬하에 자랄 때, 주민 센터에서 쌀도 주시고, 우유도 주시고, 무료급식도 받았었던 저였어요. 그래서 항상 잘 되면 다른 사람한테 베풀면서 살고 싶다는 마음으로 살고 있어요. 제가 엄청 착한 편은 아니지만, 그 마음은 언제가 되어도 변하지 않을 거 같아요.

 

이성규앞으로 또 하고 싶은 계획이 있으시면 한 번 말씀을 해주시죠.

 

윤태화계획이라, 저는 앞으로 꾸준히 활동을 하는 가수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꾸준히 활동을 하는 가수라면 여건이 된다는 것이고, 불러주는 곳이 있다는 것이니까. 저는 그런 가수가 되는 것이 목표고. 나아가서는 라이브 방송을 하고 싶어요. 그래야 좀 말도 좀 늘 거 같고.

 

이성규말은 지금도 너무 잘하시는데요. 여기서 더 늘면 우리 같은 사람이 위협을 받죠.

 

윤태화그래서 또 요즘에는 개인 방송들이 많잖아요. 그래서 재미있게 소통을 하면서 지내고 싶어요.

 

이성규> 마지막으로 청취자 여러분들, 또 팬 여러분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을 하시죠.

 

윤태화, 여러분. 요즘 코로나 항상 조심하시고. 늘 건강하게 잘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앞으로 노래 열심히 불러드릴 테니까. 제 노래가 여러분들에게 불러졌으면 좋겠어요. 여러분들 감사하고, 행복하세요.

 

이성규, <이런 사람도 없습니다> 트로트 가수 윤태화씨 모시고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좋은 말씀 대단히 감사합니다.

 

윤태화> 고맙습니다.

 

이성규> <이런 사람도 없습니다> YTN 라디오 홈페이지와 유튜브를 통해서 다시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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