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 : YTN 라디오 FM 94.5 (20:20~21:00)
■ 날짜 : 2021년 7월 18일 (일요일)
■ 진행 : 이성규 교수
■ 대담 : 박찬숙 전 농구선수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잠시만요]농구인 박찬숙"농구가 여학생에게 얼마나 좋은데.. 예능 프로그램 만들자"
◇ 이성규 교수(이하 이성규)> 피, 땀, 그리고 눈물이 어우러진 한 편의 성장드라마 같은 스포츠. 그 치열한 세계를 열정을 다해 살아온 분이 계십니다. 오늘의 주인공, 영원한 농구 여제, 박찬숙씨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 박찬숙 전 농구선수(이하 박찬숙)>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영원한 농구인 박찬숙입니다.
◇ 이성규> 청취자 여러분께 조금 더 길게 소개를 부탁드릴게요.
◆ 박찬숙> 정말 한 때, 7, 80년대에는 우리 여자 농구가 한참 인기였을 때, 주역이었었죠. 제가. 그렇게 활동을 많이 했고요. 그 다음에 은퇴를 하고도 계속 농구를 떠나지 않고, 계속 활동을 하고 있고.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잠깐 인사를 드렸지만, 영원한 농구인 박찬숙, 그렇게 자부심을 가지고 인사를 드립니다. 너무나 반갑습니다. 청취자 여러분들.
◇ 이성규> 네, 아까 들어오실 때, 보니까 하늘이 컴컴해요. 다 가리셔서 제 정수리를 쳐다보고 계시고. 키가 되게 크신데, 생각보다 지난 번에 여기 한기범 선수가 한 번 왔었어요. 그 분이 2m가 넘는데, 우리 박 선생님은?
◆ 박찬숙> 저는 정확하게 188cm입니다.
◇ 이성규> 88cm.
◆ 박찬숙> 네, 그래도 국대에서 키는 제가 가장 큰 장신으로서 무조건 키워야겠다, 하면서 국가대표로 일찍 발탁이 되었죠. 그래서 최연소 국가대표 선수로 만 16세,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만 10년 차이가 나는 언니들하고 처음 국가대표 선수를 시작을 했습니다.
◇ 이성규> 가수들, 연예인으로 말하면 진짜 요즘 한참 아이돌로 스카웃된 그런 비슷한, 상태죠.
◆ 박찬숙> 그래서 화려한 것 같아도, 그 사이에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 이성규> 근데 또 따님이 배우 겸 mc로 활동을 하고, 아드님은 모델이더라고요. 이게 어머님을 닮아서 그런지, 전부 키도 쭉쭉 크고 그런가 봐요.
◆ 박찬숙> 그렇죠. 아들은 190cm정도 되고요. 모델입니다. 그리고 딸은 다행히 그 정도로 크지는 않고 배우로서 딱 맞는, 그런 예쁜 딸이고 그렇습니다.
◇ 이성규> 요즘 근황이 어떠세요?
◆ 박찬숙> 저요?
◇ 이성규> 네, 요즘 박 선생님도 그렇고, 자제분들도 그렇고.
◆ 박찬숙> 우리 딸의 경우에는 계속 핫한 애로부부라는 드라마가 있는데, 거기서 계속 활동을 하고 있고요. 아들은 지금 코로나 때문에 사실 우리 아들뿐이 아니라 많은 분들이 피해를.
◇ 이성규> 무대가 정지가 되어 있으니까.
◆ 박찬숙> 그렇죠. 그래서 아직 크게 활동은 못하고 있고요. 그냥 항상 준비만 하고 있습니다.
◇ 이성규> 요새는 또 박찬숙 그러면 WKBL의 한국 여자 농구 연맹에서 일하시는 것으로 알려져 있더라고요.
◆ 박찬숙> 네, 거기서 한 3년 동안 경기 운영 본부장, 다음에는 유소년 육성본부장으로 활동을 했었습니다.
◇ 이성규> 늘 바쁘신 거 같은데, 하루 일과는 어떻게 되세요?
◆ 박찬숙> 저요? 굉장히 바빠요. 그리고 시간, 시간을 쪼개서. 저는 시간을 그냥 보내는 것이 가장 아깝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래서 뭔가를 찾아서, 제가 부족한 부분을 시간이 되면, 일 년 째, 영어 공부를 하고 있고. 또 악기를, 타악기를 배우고 싶은데, 특히 드럼을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드럼을 하려고, 지금 준비를 하고 있고요. 그 다음에는 세월이 흐르다 보니, 몸 상태를 위해서 운동을 많이 해야 하잖아요. 근데 이제는 뛰지를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친구들하고 남산길을 걷는다던가, 아니면 산에 간다던가. 그렇게 해서 건강관리를 유지를 하고 있습니다.
◇ 이성규> 운동을 농구 코트에서 뛰는 것을 다시 보기가 쉽지는 않지만, 꾸준하게, 건강 관리를 하고 계시고.
◆ 박찬숙> 꾸준하게 건강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 이성규> 유소년을 가르치고.
◆ 박찬숙> 네, 지금도 농구장을 보면, 제가 왜 뛰고 싶을까요? 그런 심정입니다.
◇ 이성규> 네, 이제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보면요. 보통 키가 큰 분들은 어릴 때부터 성장 속도가, 또래보다 큰 것을 조숙하다고 하나요? 그런 소리를 많이 하던데.
◆ 박찬숙> 저는 키가 커서 조숙한 거 보다는 그냥 저희 부모님 중에 친정 엄마가 조금 크세요. 옛날 분들 중에서 거의 180cm가까이 되시니까. 아버지는 작으시고. 그러니까 엄마를 닮아서 외탁을 해서 저희 형제들이 컸어요. 그래서 우리 동료들하고 같이 서면 항상 머리 하나가 제가 더 큰 거에요. 그러다 보니 체육 선생님이 저 친구 아주 특별한 친구다 해서 스카웃 제의를 한 것이에요. 농구를 하라고. 근데 그 때는 저는 스포츠라는 것하고는 너무나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저는 안 한다고 했고. 부모님하고 선생님하고, 선생님이 아마 많이 꼬셨겠죠. 저희 부모님을요.
◇ 이성규> 위대한 선생님이셨네요. 스타를 알아보시고.
◆ 박찬숙> 그래서 부모님의 설득으로 인해서 농구를 시작하게 되었죠.
◇ 이성규> 그런데, 또 부모님이 육상 선수를 하셨어요?
◆ 박찬숙> 네. 아니 계속 제가 농구를 처음 시작을 했을 때, 시합을 끝내고 오면, 조금 더 빨리 뛰었으면 좋겠네, 좀 느리네. 이런 이야기를 하시는 거에요. 근데 제가 굉장히 기분이 나쁘더라고요. 지적을 받은 것이잖아요. 나는 죽기 살기로 뛰었다고 생각을 하는데, 저희 부모님은 느리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아빠, 엄마한테 아빠, 엄마는 얼마나 잘 뛴다고 그런 소리를 하냐고 그랬어요. 그랬더니 왕년에 다 육상을 해서, 육상을 해도 뒤지지 않았다고 하면서 은근히 당신들의 자랑을 하시는 거에요. 그것에서 더 이상 말을 못하고, 엄마, 아버지에게 자극을 받아서 조금 더 열심히 뛰어야 되겠구나. 이러면서 조금 더 열심히 하게 되더라고요.
◇ 이성규> 분위기와, 피. 어우러졌군요.
◆ 박찬숙> 그렇죠.
◇ 이성규> 근데 우리 박찬숙 씨가 한참 활약을 하던 1980년도 전후를 들여다보면, 우리나라 농구가 상당한 부흥기랄까? 인기도 많았고.
◆ 박찬숙> 최고였죠.
◇ 이성규> 그렇죠. 그때를 상기를 조금 해주세요.
◆ 박찬숙> 그 때, 농구뿐이겠어요? 모든, 종목이 엄청 많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국가대표 선수가 되면, 태릉 선수촌, 지금은 진천이지만 그 때는 태릉 선수촌에 다 입촌을 해서 훈련읆 하는데 정말 거짓말 아닙니다. 그 많은 종목 중에 여자 농구가 꽃이었습니다. 촌장님이 항상 꽃이라고 했습니다. 그만큼 대회를 나가면, 성적도 좋았고. 그 다음에 선수촌의 생활도 항상 모범이었고. 그리고 선수들 각자 하나, 하나가 너무 예쁘고 아름다웠고. 그래서 그때의 여자 농구의 인기는 이루 말할 수가 없었죠. 그리고 제가 이제는 국내 대회를 치르고 나오면, 못 나왔어요. 팬들이 막, 둘러싸고 있어서 쉽게 나오지 못하고 조금 잠잠해지면, 그때 선생님 뒤로 숨어서 따라가고. 그런 기억이 나네요.
◇ 이성규> 그러다가 또 저희한테 기억이 나는 것은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우리나라 구기 종목 최초의 은메달.
◆ 박찬숙> 그렇죠. 알고 계시네요. 교수님. 벌써 세월이 많이 흘렀잖아요. 84년도 LA올림픽하면 제가 마음이 쿵쿵 합니다. 떨립니다. 그 정도로 엊그제 같은 일이었고. 그 때 사실 구기 종목이 메달을 따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거든요. 그리고 제가 올림픽 출전을 했을 때도, 꼴지만 면해야 할텐데. 이러고 사실 갔어요. 그만큼 자신감이 떨어졌었거든요. 워낙 상대가 잘 하니까. 그러고 갔는데, 제가 컨디션이 너무 좋은 거에요. 너무 좋아서, 한 게임, 한 게임 이기면서 메달을 확정을 할 때 누구였냐면 중공이었습니다. 중국하고, 우리랑 너무 웬수같은 거에요. 아시아에서도 중국하고 경기를 해서 이기냐, 지냐, 우승이냐, 준우승이냐. 또 만난 거에요. 그 때, 저도 크다고 가운데에서 버티고 있는데, 상대는 진월방. 정 하이샤, 2m 10cm. 이런 큰 선수를 맡아야 하는데, 큰 숙제가 아닙니까? 저것을 어떻게 막아야 하나, 그런데 그런 극복을 잘 하고. 이기지 않았습니까? 그러면서 은메달 확보. 정말 꿈만 같은 확정이 되고서 다같이 울었죠. 그 때는 감독 선생님도 우셨어요. 너무나 기쁜 일이고, 영광이고, 그리고 그 때의 순간을 잊지 못하는 국민들이 있잖아요. 새벽에 중계를 했는데, 전 국민들이 정말 힘을 다 모아주셔서 아마 저희가 메달을 따지 않았나, 할 정도로 온 국민들이 응원을 다 해주시고.
◇ 이성규> 옛날 생각도 나네요. 하늘에서 별을 딴 박찬숙 씨가 그 이듬해에 결혼을 했잖아요?
◆ 박찬숙> 그거하고 은퇴를 하고, 결혼을 했죠.
◇ 이성규> 그래서 많은 분들이 되게 아쉬워하고 했잖아요. 그 때는 결혼을 안 한다, 결혼을 못하냐면서 노처녀라고 하죠. 그랬어요. 그리고 저도 결혼할 사람이 있었고. 그래서 정말 내가 하고픈 것을 다 했기 때문에 딱 은퇴를 하고 결혼을 했죠. 지금하고 비교를 하면, 이로 말할 수가 없죠. 지금 프로가 생기면서 결혼해서도 뛰고, 결혼을 뒤로 미루고도 하고. 그런데 그 때는 결혼을 하는 것이 최우선이었기 때문에 저도 결혼을 했죠.
◆ 박찬숙> 그러다가 그래도 3년 만에 대만 선수겸, 코치로 활동을 하시게 되었잖아요. 결혼을 하고 나서 딸을 낳고 있는데, 스카웃 제의가 왔어요. 대만에서 그래서 3년 딱 지나니까, 이런 것이 신혼인가. 박찬숙 씨는 왜 집에 있어요? 뒤에서 그러는 거에요. 그럼 나는 뭔가를 해야 하나 보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제안이 온 거에요. 그래서 남편을 꼬셔서 갔죠.
◇ 이성규> 그 때, 어떻게 같이 가시지는 못했나요?
◆ 박찬숙> 같이 갔어요. 혼자는 허락이 안되고, 또 아이도 있었고. 그리고 남편하고 같이 가는 것으로 해서 대만으로 갔죠.
◇ 이성규> 네, YTN라디오 <이성규의 행복한 쉼표, 잠시만요.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전 농구선수 박찬숙씨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근데 전 농구선수 그러니까 제가 마음에 안 드네요. 이 멘트가. 영원한 농구인 박찬숙 씨와 함께 하고 있는데요. 노래 하나 소개를 해주시죠?
◆ 박찬숙> 노래요? 저는 굉장히 노래를 듣는 것을 좋아하거든요. 근데 요즘의 유행이 트로트잖아요. 근데, 굉장히 좋아해요. 저도. 그래서 요즘에 ‘미스트롯’, ‘미스터트롯’ 인기가 많은데. ‘미스터트롯’의 이찬원 가수. 그 친구를 찐팬이라고 해야 하나? 그래서 그 친구의 노래 중의 ‘시절 인연’인가? 그 노래를 신청하고 싶습니다.
◇ 이성규> 두 분의 인연도 조금 있나 봐요?
◆ 박찬숙> 제가 너무 좋아하다 보니, 인연이 되어서 양아들을 삼았습니다.
◇ 이성규> 네, 그럼 박찬숙씨가 추천을 하신, 이찬원의 ‘시절 인연’을 듣고 오겠습니다. 네, 이찬원의 ‘시절 인연’을 듣고 오셨습니다. YTN라디오 <이성규의 행복한 쉼표, 잠시만요.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영원한 농구인 박찬숙 님입니다. 지난 2007년 이었던가요? 우리 박찬숙씨께서 여자 프로농구 구단들의 여성 감독 후보에 대해서 차별이 있었다 해서 국가 인권 위원회에 진정을 하신 일이 있었죠? 그 때의 이야기를 한 번 해주세요.
◆ 박찬숙> 그 때 이야기를 하면 화납니다. 그 때가 저한테는 가장 전성기였고, 모든 지도자의 감독으로서의 준비를 완벽하게 해놓고 그리고 어쨌든 프로 팀에 감독으로서 0순위로 생각을 했고. 저도 생각을 했고, 주위에서도 그랬고. 완벽하게 준비를 해놓고 각 팀마다 이야기가 있었어요. 있었다가 한 두 팀 정도로 좁혀졌는데. 한 팀에서 유력하게 심사를 하지 않습니까? 심사를 하는데, 이야기를 듣기로는 저하고 대부분 교수님 뭐라고 그러죠? 한 사람이 아니고, 두 사람이 평가에 올라가잖아요.
◇ 이성규> 복수 추천.
◆ 박찬숙> 네, 복수 추천이 되어서 올라가서 알았어요. 그러면 이제는 되었구나. 내가 되겠구나. 근데 약간 불미스러운 일로 남자 감독이 선수 성추행, 이런 사건이 있었거든요. 그럴 때는 남자 감독일 때는 자꾸 그런 문제가 생긴다. 그런 것을 제가 주장을 했거든요. 그래서 되었다고 생각을 하고, 준비를 하고 있는데. 그 다음날 사람이 바뀌었어요. 그래서 제가 너무 큰 실망을 했고, 확인을 한 결과, 남자들의 학연, 지연이었어요. 그래서 그것을 어디다가 교수님 이야기를 해야겠습니까? 혼자 땅을 치고, 하늘을 보고 소리를 지르고. 너무 분해 이기지를 못해서 결국 너무 차별적이다. 그래서 국가 인권위에 진정을 낸 거 같습니다. 한참 지난 이야기인데.
◇ 이성규> 14년 전의 이야기인데. 개선이 되었나요?
◆ 박찬숙> 그래서 그 때는 어려웠지만, 그런 상황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은 여자 스탭들이 모두 코치, 감독을 다 할 수 있고. 남자 감독이면 코치는 여자 코치. 이렇게 꼭 제도라기보다는 잘 하고 있습니다.
◇ 이성규> 2년 전에 BNK 썸 프로 농구단 이쪽에는 감독을 포함해서 코치진 전원이 여성으로 되었잖아요.
◆ 박찬숙> 거기에 있던 ceo가 굉장히 그것을 선호를 했고. 여자 농구는 여자 스탭이 지도를 하는 것이지, 왜 여기에 남자가 있어야 해? 이런 인식이 굉장히 중요한 거 같습니다. 그래서 지금 프로농구가 시작한지 20년이 넘게 되었는데, 처음으로 BNK 썸 농구단에 감독, 코치, 코치가 한 3명이나 되었어요. 또 그 다음에 통역 다 여자로, 스탭들도 다 여자로. 처음으로 그렇게 시작을 하게 되었습니다.
◇ 이성규> 그래서 거기 그 팀에서는 요즘 스포츠계의 폭력, 성폭력 이런 문제들이 이야기가 별로 안 나오겠네요?
◆ 박찬숙> 있을 수가 없죠. 그런 것은. 그래서 앞으로도 저는 제일 염려스러운 것은 여자 스탭들만 하다 보니, 잘 해서 성공을 해야지, 여자 지도자들도 할 수 있다. 더 잘한다. 이런 평가를 받아야 하는데, 혹시나 그것이 무너질까봐. 보이지 않게 저는 응원을 많이 하고 있거든요. 우리 후배들이 지금도 잘 하고 있는데, 절대로 꺾이지 말고, 자신감을 갖고 잘 활동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선배로서 응원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 이성규> 또 최근에 WKBL에 여자 프로 농구 연맹일을 계속 본부장을 맡으시면서 하시더라고요? 그 쪽 일도 바쁜가요?
◆ 박찬숙> 특히 이제 대회 때만, 농구는 겨울 스포츠잖아요? 보통 10월에서 그 다음 해 3월까지. 시즌이에요. 그 때만 조금 바쁘고요. 나머지에는 가장 중요한 것은 저도 그것을 걱정을 하면서 지도를 하고 있는데. WKBL에 여자 농구 선수들이 잘 크기 위해서는 밑의 뿌리가 중요하잖아요. 유소년들이요. 지금 유소년은 여자 농구가 위기거든요. 너무 뿌리 흔들, 흔들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유소년들이 농구를 많이 좋아하고, 유소년 육성을 많이 해서 앞으로 내가 저런 선수가 되겠다. 훌륭한 선수가 되겠다는 꿈을 주기 위해서 제가 지도를 많이 하고 있고요.
◇ 이성규> 그게 연맹하고 관련된 사업 프로그램이에요?
◆ 박찬숙> 그렇죠. 그래서 제가 유소년 육성 본부장으로서 유소년들의 대회도 많이 치루어주고, 선물도 많이 주고. 그러면서 활성화되게 굉장히 애를 많이 쓰고 있습니다.
◇ 이성규> 농구를 원하는 유소녀, 유소년들이 조금 요새는 줄어드나요?
◆ 박찬숙> 아니요. 클럽 활동으로는 여자 선수들이 굉장히 많이 좋아합니다. 그런데 제가 이렇게 보면, 저 친구는 농구선수를 하면, 너무 좋겠다. 엘리트를 하면 너무 좋겠다는 것이 보여요. 그래서 가서 너무 잘한다. 농구를 해야지 하면. 자기는 하고 싶은데, 부모님이 안 시키거나. 본인도 저는 여기까지 취미로 하고 싶어요. 이런 경우가 너무 많아요. 특히 부모님이 안 시키세요. 그건 왜 그렇겠어요? 제가 선수시절 때는 은행 실업팀까지 해서 13개의 팀이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 프로 딱 해서 6팀만 있잖아요. 그러다 보니, 내가 지금부터 농구를 시작을해서, 프로까지 가는 것에 시간이 많이 걸리고. 그것을 어떻게 보장을 하느냐는 것이죠. 너무 문이 좁은 것이죠. 그런 걱정을 먼저 하다 보니, 취미로 클럽 활동으로 많이 하지. 엘리트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할 때는 한 번 더 고민을 하더라고요.
◇ 이성규> 무슨 아까 ‘미스터 트롯’ 이찬원 씨 말씀을 하셨는데. ‘미스 바스켓 볼’ 경연 대회 이런 것을 만들어서 다시 부흥을.
◆ 박찬숙> 그러니까요. 핫한 것을 만들고 하든가, 정말 그래야겠어요.
◇ 이성규> 제가 기록을 보니, 장애인 체육회에서도 농구 부분, 기여를 하고 계시고 하던데. 유소년 농구 쪽에 앞으로 많은 일을 하셔야 할 거 같은 그런 사명감이 있으신가요?
◆ 박찬숙> 맞습니다. 그런 사명감이 있고. 제가 정말 힘닿는데 까지는 농구를 좋아하는 유소년을 위해서 계속 지도를 하고, 활동을 할 것이고. 거기서 정말 저보다 더 이상의 아주 훌륭한 선수가, 그런 스타가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 이성규> 네, 사실 여자 아이들이 농구를 하고 하면 건강에도 좋지 않나요?
◆ 박찬숙> 당연하죠. 농구를 하면, 그러잖아요. 교수님. 점프를 많이하면 성장판에 자극을 줘서, 키가 큰다. 그리고 일단 농구는 뛰는 것이 많아서 살 찔 상황이 안 되잖아요. 날씬해지고. 그리고 개인 종목하고 농구하고 단체 생활의 차이점이 뭐냐면. 아이들이할 수 있다는 자신감. 그리고 서로에 대한 배려심. 그 다음에 정말 중요한 거 하다보면 자신감이 생기거든요. 그런 것들이 다 농구를 하면서 성장을 하면서 그런 것이 몸에 배는 것이 농구이기 때문에 저는 굉장히 다른 스포츠도 참 좋지만, 단체 운동을 하는 농구를 많이 유소년들이 많이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 이성규> 네, 요즘 축구 쪽은 연예인들도 한참 프로그램이 있어서 하고 그럴 텐데.
◆ 박찬숙> 저도 하고 싶습니다.
◇ 이성규> 농구 쪽도 그런 것을 하나 만드시죠.
◆ 박찬숙> 하면 너무 좋죠. 그런데 여자가 농구를 하는 것은 계속 뛰어야 하잖아요. 그래서 조금은 무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는데, 그것을 조금 예능 쪽으로 바꿔서 만들어서 하면, 정말 그것도 재미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거든요. 그것은 PD님이나 작가님이나 신경을 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박찬숙이 잘 하겠습니다.
◇ 이성규> 앞으로 새로운 계획이 있으시면 말씀을 해주시죠.
◆ 박찬숙> 제가 또 한 번 말씀을 드렸지만, 영원한 농구인이기 때문에 농구를 떠날 수 없고요. 좀 더 크게는 우리 체육계 쪽의 체육인들이 많은 활동을 하고 있지만 그 중에 또 한 사람으로서 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되면, 꼭 하겠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 이성규> 네,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전 농구선수 박찬숙 님 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요. 마지막으로 청취자 여러분들에게도 한 말씀 하시겠어요?
◆ 박찬숙> 직접 뵙지는 않았지만, 목소리만 들어도 웬만한 팬들은 다 알고 계시거든요. 그래서 요즘에 정말 코로나 때문에 너무 고생이 많으시죠? 힘드시죠? 그런데 곧 도쿄 올림픽이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 체육인들이 그런 올림픽에 나가서 성적을 거두고, 최선을 다 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국민들은 힘들어도 응원을 하면서 그것에서 큰 용기를 얻었으면, 큰 희망을 얻었으면 하는 것이 제 바람입니다. 청취자 여러분들 파이팅.
◇ 이성규> 오늘 나와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 박찬숙> 감사합니다.
◇ 이성규> 예, <이런 사람도 없습니다.>는 YTN 라디오 홈페이지와 유튜브를 통해서 다시 들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