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 : YTN 라디오 FM 94.5 (20:20~21:00)
■ 날짜 : 2024년 12월 29일 (일요일)
■ 진행 : 이성규 교수
■ 대담 : 십시일방 이호영 대표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성규 교수(이하 이성규) : ‘자립준비청년’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아동양육시설과 공동생활가정, 가정위탁 같은 곳에서 보호를 받다가 만 18세 이후에 보호가 종료되죠. 그러면 홀로서기에 나서는 청년을 뜻합니다. 우리나라 자립준비청년들의 주관적인 '삶의 만족도'는 좀 좋지 않죠. 10점 만점에 5.6점으로 전체 청년에 비해 낮은 수준이라고 합니다. 심리적으로 불안감을 겪기도 하고,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는데요. 이성규의 행복한 쉼표, 잠시만요.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오늘은 자립준비청년에게 안전한 주거지를 제공하는 비영리 단체를 설립한 30대 청년 대표 한 분을 모셨습니다. 십시일방의 이호영 대표 모시고 이야기 나누겠습니다. 안녕하세요?
◇ 십시일방 이호영 대표(이하 이호영) : 네 안녕하세요.
◆ 이성규 : ‘십시일방’ 이게 좀 한자성어 생각도 나고 그러는데 십시일반이 아니라 십시일방입니다. 열 숟가락이 모여서 밥 한 그릇이 된다는 십시일반. 근데 십시일방은 뭐죠?
◇ 이호영 : 네. 그 말씀하신 사자성어 십시일반을 저희가 좀 재미있게 차용한 건데. 그 뒤에 있는 반이라는 단어를 방으로 바꿔가지고 사실 그 반자가 ‘밥 반’자거든요. 열 사람이 좀 힘을 모아서 한 사람에게 밥을 좀 제공해 주자는 이런 의미처럼 저희가 좀 사회적인 힘을 모아서 집이 필요한 분들에게 방을 제공해 주자는 의미에서 십시일방이라고 좀 재미있게 네이밍을 해봤습니다.
◆ 이성규 : 네. 어떤 일을 지금 하는지 잠시 이렇게 상상이 되게 말씀을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시는지 좀 말씀해 주시죠.
◇ 이호영 : 저희는 보육원 등 아동 보호시설에서 퇴소한 자립준비청년들에게 주거지를 제공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아동보호시설에서 거의 20년 가까이 거주하다가 이제 보호가 종료가 돼서 스스로 혼자 사회에서 집을 구해야 되는 청년들 같은 경우는 목돈도 부족하고 또 매월 나가는 월세도 부담이 되잖아요. 그래서 그런 부분들이 좀 도움이 필요하겠다 싶어 가지고 저희가 비영리 단체를 만들어서 그 아이들에게 청년들에게 안전한 거처를 마련해 주는 활동을 하기 위해서 이 비영리 단체 십시일방이 설립되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 이성규 : 근데 비영리 단체를 어디 국가기관이나 어디에 등록을 하잖아요. 어디에 등록을 하신 거예요?
◇ 이호영 : 그 비영리 단체의 인가를 받기 위해서 저희가 처음에는 고용노동부의 승인을 받았고요. 그다음에는 저희가 기부자분들께 기부금 영수증 처리를 하기 위해서는 또 국세청이랑 기재부를 통해서 공익법인 설립 인가를 받아야 돼요. 그래서 그거를 저희가 받았고 그걸 기반으로 저희에게 기부해 주시는 분들에게는 기부금의 일정 %를 다시 세액 공제할 수 있는 기부금 영수증 발급 단체가 되어서 운영하고 있는 것입니다.
◆ 이성규 : 자립준비청년들. 이런 분들하고 거처를 제공해 주는 이런 서비스 말고도 또 뭐 다른 역할을 하시는 게 있나요?
◇ 이호영 : 저희가 주거 지원을 처음에 생각했었는데 사실은 그냥 안전한 주거를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긴 하지만 그 주거지에 거주하면서 청년들이 이후에도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닦고 준비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주거뿐만 아니라 거주하면서 청년들이 교육을 받을 수 있게. 저희가 제공하는 교육이 금융 교육이나 요리 교육, 마음 관리 교육 등 자립준비청년들에게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교육들을 저희가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청년들은 살면서 안전하게 깨끗한 곳에 살면서 저희가 제공하는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이후에 정말로 자립을 준비할 수 있게 도와드리고 있는 거죠.
◆ 이성규 : 자립과 교육과 이게 결국은 보니까 직업 생활하고도 연관이 되네요. 그러니까 고용노동부하고 관련이 되는 것 같습니다.
◇ 이호영 : 그런가 봅니다.
◆ 이성규 : 이 민간단체들이 요즘 많이 자립준비청년들을 지원하던데 십시일방은 다른 민간단체들하고 조금 다르다는 느낌이 있나요?
◇ 이호영 : 저희는 굉장히 한 사람 한 사람에 집중하는 형태로 운영이 되고 있어요. 비영리 단체가 운영하는 방식이 굉장히 많은 인원에게 서비스나 제품을 제공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저희처럼 굉장히 소수의 인원에게 깊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형태도 있거든요. 저희는 좀 후자에 가깝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 이성규 : 예를 들어서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 이호영 : 예를 들면은 저희가 100명을 뽑아가지고 100명에게 월세 지원금 10만 원, 20만 원씩 보태드릴 수도 있지만 저희는 1년에 10명을 뽑거든요. 그래서 10명의 자립준비청년들을 만나게 되고 그분들에게 좀 큰 지원을 해드리는 거죠. 예를 들면은 주거에 필요한 임차 보증금 월세 지원금 전액을 저희가 보태드리고 그리고 교육에 필요한 교재비부터 시작해서 강의비 이런 것들 저희가 운영하는 프로그램들에 소요되는 모든 예산들을 저희가 부담하기 때문에 한 명 한 명당 굉장히 큰 지원이 제공이 되는 거죠. 그런데 그를 통해서 저는 이 단체를 설립할 때 애초에 여러 명에게 얕은 변화를 주는 것보다는 한 사람에게 깊은 변화를 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설립을 했었어요. 그래서 저희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큰 도움을 드리고 또 제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시간을 많이 쏟을 수가 있잖아요. 왜냐하면 10명밖에 안 되니까. 그럼 제가 한 분 한 분 만나가지고 어떤 고민이 있으신지 지금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또 아픈 곳은 없으신지 이런 것들을 제가 대표로서 굉장히 쉽게 트레킹 할 수 있습니다. 그럼 그에 맞는 적절한 대응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좀 뎁스 있는 변화를 추구한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 이성규 : 그런데 원래 경영학을 전공하셨던데.
◇ 이호영 : 네 맞습니다.
◆ 이성규 : 어떻게 이런 길로 접어드셨어요?
◇ 이호영 : 저도 사실은 제가 경영학과를 다닐 때 여의도에 있는 금융회사에서 인턴을 했었어요. 그만큼 저는 사실 이런 비영리 단체와는 거리가 멀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제가 어느 날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됐는데 제가 봉사 동아리를 하나 만들었어요. 대학생들도 사실 되게 바쁘거든요. 그래서 제가 멀리 나가거나 아니면 시간을 하루 종일 빼서 봉사를 할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봉사활동을 하고 싶어서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제가 대학생 때 제가 다니고 있던 학교에 학생 식당에 찾아갔어요. 그래서 영양사님한테 혹시 제가 여기서 식당에서 한 하루 1시간, 2시간 정도 제 수업과 수업 사이에 빈 시간이 있으니 그 시간에 제가 여기서 봉사를 하면 어떻겠냐. 그다음에 저한테 임금을 안 주셔도 된다. 저한테 식권을 주시면 제가 그 식권을 저희 학교에 다니고 있는 식권이 필요한 취약계층 대학생들에게 주는 일을 해보고 싶다고 말씀을 드렸어요. 그래서 영양사님께서 OK를 하시고 제가 그때 봉사 동아리 39명을 친구들을 모아서 시간표를 쫙 취합한 다음에 그 학생들, 제 친구들이죠. 그 친구들 강의의 빈 시간들을 찾아가지고 이 시간에 식당에서 식판도 닦고 홀 정리도 하고 식권 파는 일 그다음에 뭐 반찬 배분 이런 일들을 보조했거든요. 그리고 그 대가로 저희가 식권을 받아 가지고 취약계층 대학생들에게 익명으로 전달해 드렸습니다. 그게 처음 제가 시작했던 동아리의 이름인 ‘십시일밥’입니다. 그래서 밥을 주는 일을 하는 단체. 그게 성장을 해가지고 제가 시작한 학교에서 전국에 있는 거의 29개 대학교로 퍼져 나갔고 참여한 대학생 수가 거의 5천 명이 넘었어요. 저희가 굉장히 많은 수의 식권을 기부를 했었고 그걸 또 제가 성장한 단체에 맞게 운영을 하기 위해서 비영리 단체를 설립했었습니다. 그게 십시일밥이라는 제가 첫 번째로 설립한 비영리 단체였던 거예요. 그렇게 한 3, 4년 운영하다가 제가 완전히 경영학과의 길에서 이제 비영리 단체를 운영하고 하는 커리어로 전환을 했던 것이죠. 그리고 대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제가 떠났어요. 지금도 그 십시일밥은 다른 분들이 운영하고 계신데. 제가 좀 더 해보고 싶었던 거는 사실은 그 십시일밥이라는 게, 제가 아까 설명 드린 여러 명에게 좀 얕은 변화를 주는 일이었다고 생각을 했어요. 여러 명에게 식권을 주는 일. 근데 제가 해보고 싶었던 일은 이번에는 조금 더 소수의 인원에게 큰 변화를 주고 싶은 일을 해보고 싶어가지고 그게 뭐가 있을까 하다가. 주거를 기반으로 해봐야겠다고 해서 설립하고 운영하게 된 게 지금의 십시일방. 제가 설립한 두 번째 비영리 단체라고 보시면 됩니다.
◆ 이성규 : 근데 자립준비청년 당사자는 아니시죠?
◇ 이호영 : 네 아닙니다.
◆ 이성규 : 그런데 이제 그분들의 심리와 특성. 이런 데에 대해서 초기에는 이해가 없어서 조금 혼선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 이호영 : 네. 그 부분은 지금도 있는 부분이고. 제가 당사자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정확히 자립준비청년들의 상황이나 마음을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초창기에는 더 심했죠. 초창기에는 어떤 부분도 있었냐면 그분들 앞에서 어떤 말을 조심해야 되는지 어떻게 단어를 어떤 걸 쓰면 안 되는지 이런 것들도 제가 잘 모르고 불안해서 스터디를 하고 가서 만나고 그랬어요. 그랬더니 더 어색한 거예요. 왜냐하면 좀 인간대 인간의 대화가 아니라 제가 뭔가를 굉장히 조심하는 사람으로서 상대방을 대하다 보니까 오히려 인간적인 관계 형성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당연히 조심할 거는 조심하지만 그거는 그분들이 자립준비청년이어서가 아니라 그냥 한 사람이기 때문에 예의상 조심하는 거는 모두에게 똑같은 거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때부터는 제가 그냥 사람대 사람으로 교류를 하게 되고 그분들이 만약에 기분 나쁜 게 있다면 제가 그걸 사과하고 다시는 그 행동을 안 하고. 또 좋아하시는 게 있다면 그 행동을 또 강화하고. 그냥 사람 간의 관계에서 누가 싫어하거나 기분 나빠하면 그 행동을 안 하고, 좋아하면 그 행동을 더 하고 하는 것처럼 그렇게 관계를 쌓아가는 것처럼 그런 식으로 한 명 한 명 교류해 나가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자립준비청년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기도 했습니다.
◆ 이성규 : 그리고 그 자금, 예산 이 부분은 어떻게 확보하셨어요?
◇ 이호영 : 사실은 그 부분이 돈이 많이 드는 일이기 때문에 제가 처음에는 단체 설립하고 나서 1년 정도 돈을 구하지 못해서 여러 군데에 제안서를 쓰고 요청도 하고 했지만 제 마음대로 빠르게 회신이 오지 않고 또 회신이 오더라도 긍정적인 건 아니어서. 제 나름대로 좀 허송세월이라고 표현하는, 1년 정도는 아무것도 안 하는 그 시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에 되게 힘들었고. 근데 어느 날 딱 한 기업에서 연락을 주셔 가지고 ‘우리가 후원하겠다’는 말씀을 주셨어요. 그게 BC카드라는 카드 회사였고 그래서 2021년에 BC카드와 처음 ‘BC 십시일방’이라는 형태로 자립준비청년 10명을 맞이하게 됐고 그분들에게 지금의 아까 말씀드린 포맷의 운영 형태 주거 지원과 교육 프로그램 운영을 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올해 벌써 3차 년도에 접어들었고 30명의 자립준비청년을 뽑아가지고 운영을 하고 있습니다.
◆ 이성규 : 또 기부 단체나 기업 중에는 금전도 있지만 재능기부라든가 집을 고쳐준다거나 하는 다양한 기부 형태들이 있을 것 같네요.
◇ 이호영 : 네 있습니다. 일단은 BC 카드 안에서도 금융 회사잖아요. 그래서 카드 관련된 어떤 지식들, 사실 청년들이 무분별하게 신용카드를 사용한다든가 아니면 카드론이나 대출을 받는다든가 하는 것들이 잘 교육이 되어야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근데 그런 부분들을 주변에서 잡아줄 수 있는 부모님이나 어른이 없다면 좀 방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BC카드 직원 분들께서도 금융 지식을 활용해서 청년들에게 카드 관련된 지식, 금융 관련된 지식들을 알려주시기도 하고요. 그 외에 한국 해비타트라는 곳에서는 저희 십시일방에서 거주하다가 이제 또 독립하게 된 청년들이 있습니다. 스스로의 집에 살게 되거나 아니면 할아버지 할머니와 살게 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런 분들의 주거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서 직접 집을 리모델링 해주고 단순하게 벽지 도배하는 게 아니라 자립준비청년들의 지금 현재 상황과 살고 싶은 라이프 스타일에 대한 상담을 쭉 한 다음에 아예 방을 새로 만들어 주기도 하고요. 도배, 장판, 난방 이런 것까지 다 고쳐주는 형태의 대규모 리모델링 작업을 통해서 이후에도 십시일방을 떠난 청년들이 그 이후에도 본인들이 원하는 주거 형태에서 안전하고 깨끗하고 따뜻하게 살 수 있도록 하는 그런 도움들을 저희가 많이 받았습니다.
◆ 이성규 : YTN 라디오 이성규의 행복한 쉼표, 잠시만요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오늘은 자립준비청년들에게 안전한 주거와 교육을 제공하는 비영리 단체 ‘십시일방’의 이호영 대표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이쯤에서 우리 노래 하나 듣거든요. 어떤 노래를 추천해 주시겠어요?
◇ 이호영 : 저는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의 OST인 이클립스의 소나기를 신청하고 싶습니다.
◆ 이성규 : 사연이 좀 있으세요?
◇ 이호영 : 제가 2주 전에 저희 십시일방 1기 자립준비청년의 결혼식에 갔다 왔어요. 결혼식에 가서 뒤에서 박수 치면서 축가를 들었는데. 자립준비청년의 친척이었던 것 같아요. 누구 매형이라고 했는데 제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그런데 그분께서 이 노래를 불렀는데 너무 잘 부르신 거예요. 그래서 그 후에 제가 결혼식에 갔다가 집에 들어오는 지하철에서 계속 이 노래를 플레이리스트에 두고 들었는데 너무 좋았었고 또 저한테는 되게 뿌듯한 일이었어요. 왜냐하면 3년 전, 4년 전에 저희와 함께 했던 자립준비청년이, 그 친구가 대학교 졸업하고 취업도 했었고요. 거기까지는 제가 봤었는데 이제 결혼 소식을 알려오고 결혼까지 하게 되니까 정말로 안정적인 삶에 접어들었다는 생각이 들어가지고 너무 저에게는 뜻깊었던 선물 같은 노래였기 때문에 이 노래를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 이성규 : 십시일방의 이호영 대표가 추천하신 이클립스의 소나기 듣고 오셨습니다. 이성규의 행복한 쉼표, 잠시만요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오늘은 자립준비청년들을 위해 열심히 뛰고 있는 십시일방의 이호영 대표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근데 그 ‘방친’이라는 말을 쓰시더라고요. 방친이 뭐예요?
◇ 이호영 : ‘방치’는 저희가 ‘자립준비청년’이라고 지칭하기에 뭔가 애정이 안 느껴지는 거예요. 이 단어 자체에서. 그래서 조금 더 친근한 단어가 없을까 생각하다가 ‘십시일방의 친구들’을 줄여서 ‘방친’ 이렇게 부르자고 어떤 분께서 아이디어를 주셔 가지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 이성규 : 네. 선정은 10명씩 한다고 그러셨는데 방식은 어떻게 되나요?
◇ 이호영 : 저희가 일단은 홍보를 하는데요. 서류 심사를 합니다. 저희 홈페이지에서 서류를 다운받아 가지고 작성하시고 제출하시면 저희가 서류를 검토하게 되고요. 가장 주거가 불안정하신 분들 위주로 저희가 서류를 1차적으로 검토를 하게 되고 그다음에 면접을 통해서 뽑게 되는데. 사실 취업 면접처럼 더 우수한 분들을 뽑겠다는 이런 개념이 아니라 정말로 더 시급한 분들을 잘 저희가 판별하기 위해서 면접을 진행하고 있고요. 그래서 면접을 통해서 최종적인 선발을 하고 있습니다.
◆ 이성규 : 어느 정도 지원을 하시나요? 아까 깊게 지원한다고 그랬는데 어느 정도를 지원해 주세요? 기간은?
◇ 이호영 : 기간은 기본 1년이고 그다음에 2년 연장까지 가능합니다.
◆ 이성규 : 2년까지 연장이죠?
◇ 이호영 : 네. 그러니까 1년 더 해서 2년까지입니다.
◆ 이성규 : 나가신 분들 중에서도 지금도 연락이 되는 네트워크이 형성이 돼 있나요?
◇ 이호영 : 네. 저희가 기본적으로 단톡방이 있고요. 그다음에 저랑 개인적으로 연락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아까 말씀드린 결혼식 같은 경우도 가게 되고요. 또 얼마 전에도 저희가 연말 기념으로 한번 모였어요. 그래서 같이 뷔페 가서 밥도 먹고 저희에게 또 소고기를 후원해 준 단체가 있거든요. 그래서 소고기도 같이 하나씩 전달해 드리고 이렇게 했습니다.
◆ 이성규 : 근데 또 그러다 보면 안타까운 사연도 좀 접하게 될 것 같아요.
◇ 이호영 : 네. 사실은 종종 있는 일이기도 하고요. 근데 지원서를 읽으면 되게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그래서 저희가 지원서를 읽게 되고 그분의 상황을 헤아려서 도와드리면 굉장히 좋은데. 그러지 못했던 분이 한 분이 계시거든요. 그게 사실 제가 마음에 가장 남아 있는 분입니다. 제가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 지원서를 봤는데 그분께서 보육원에서 보호가 종료가 된 상황이었고. 그런데 보호가 종료가 되면 국가에서 ‘자립 정착금’이라고 해서 시도마다 다른데 천만 원에서 2천만 원 사이의 목돈을 제공해 주거든요. 그럼 그 돈을 가지고 나와서 자취방을 구하거나 필요한 곳에 쓰는 건 건데요. 그분께서는 친모가 있긴 있었습니다. 친모가 있었지만 아동보호시설에서 생활하고 계셨는데. 보호가 종료가 되고 친모와 연락이 닿아 가지고 친모가 ‘다시 한 번 같이 잘해보자. 내가 미안했고 우리 이제 다시 살아보면 어떻겠냐.’라는 말씀을 주셨던 거예요. 그래서 당연히 부모님 중 한 분과 살고 싶어 하잖아요. 그렇게 살기로 했고 그 목돈을 가지고 방을 구했던 건데. 방을 구하고 살다가 그다음 주에 바로 그 친모가 그 집주인에게 말해서 보증금을 빼서 그냥 잠수를 타신 거죠. 그래서 저희에게 지원하신 분은 사실은 그게 전 재산이었고 또 물적으로는 그렇지만 또 마음으로는 친모와 다시 한 번 어떻게 할 수 있는 살아볼 수 있는 그런 안식처 같은 공간이었을 텐데. 그 공간이 없어지고 친모도 사라지고. 다시 정말로 길거리를 전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신 상태에서 지원을 했어요. 당연히 우리가 그런 단체니까 그런 목적을 가지고 설립된 단체여서 돕겠다는 말씀을 드렸는데. 저희 카카오톡이 있거든요. 카카오톡으로 상담을 하는 과정에 갑자기 이제 연락이 안 될 거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왜 안 되세요?’라고 했더니 이제 통신비를 못 내서 데이터가 끊긴다고 하셔가지고. 저희가 항상 메시지를 응대하고 있으니까 와이파이를 잡든가 아니면 저희가 통신비를 보내드리겠다고 했는데. 근데 그 메시지를 받지 않으시고 이제 연락이 끊겼어요. 그래서 결국에는 못 도와드렸지만 저희에게 지원서를 내신 게 있어 가지고 제가 그분이 살고 계신 보육원에 전화를 해가지고 보육원 담당자 선생님께도 제가 ‘이분과 혹시 연락이 되시냐.’라고 물어봤는데 그분도 같은 이유에서 연락이 안 된다고 하셔 가지고 결국에는 찾지 못했습니다. 근데 물론 지금 잘 살고 계시겠지만 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가장 제 마음속에 남아 있는 무겁게 자리하고 있는 분이고요. 제가 비록 그분을 뵙고 돕진 못했지만 그분으로 대표되는 자립준비청년들을 위해서 정말로 꾸준히 일을 잘 해 나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이성규 : 어떤 때는 또 산후조리원 비용도 마련해 드린 적도 있고 그렇다면서요.
◇ 이호영 : 저희 청년 중에 출산을 하게 된 청년이 있는데요. 지금 결혼해서 잘 살고 있고요. 사실은 자립준비청년들에게 출산은 굉장히 큰 의미입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아이를 낳게 되고 그 아이를 정말로 끝까지 책임져서 잘 키워내겠다는 마음이 있거든요. 근데 출산을 하게 되면 축하도 받고 그런 분위기고 선물도 주고 이러는데. 아무래도 조금 허전하고 혼자밖에 없는 경우가 있고 이러다 보니까 그분께서 출산, 임신을 하시고 저에게 소식을 알렸을 때 뭔가 우울해 하셨어요. 뭔가 기가 죽어 있으셨고 그래가지고 제가 축하한다고 계속 거듭 말씀을 드렸는데도 불구하고 흥이 안 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진짜로 축하드린다는 거를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드리겠다고 생각해서 저희가 또 기금을 조성해 가지고. 산후조리원비가 요즘 굉장히 좀 비싸잖아요. 사실은 부담하기 어려우신 금액이라고 생각을 해서 저희가 산후조리원비를 마련해 드리고 직접 그 산후조리원에 결제해 드리고 거기서 좀 편안하게 출산 이후에 쉬실 수 있게 해 드렸습니다. 사실은 부모님이 보통 육아를 하는 법을 알려주기도 하는데 요즘은 또 산후조리원에서 알려줄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그런 부분들도 자립준비청년에게 큰 힘이 되지 않을까 싶어가지고 제가 그렇게 했었고 지금도 아이가 잘 자라고 있습니다.
◆ 이성규 : 그때 장모님이 지원해 주셨다면서요?
◇ 이호영 : 네. 산후조리원비를 사실은 제가 기금을 조성한 게 저희 장모님께 요청을 드렸었고. 저도 결혼을 했지만 아직 아이가 없는데 사실은 여러 가지 생각을 저는 했습니다. 사실 제가 아이를 언젠가 낳게 될 건데 저희 아이만 잘 키우는 게 과연 의미가 있는 것인가. 제가 저희 주변에 있는 제가 보고 있는 자립준비청년이 아이를 낳았을 때 그 아이도 동일하게 축복을 받고 동일한 환경에서 시작할 수 있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장모님도 같은 생각이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장모님께서 흔쾌히 그 돈을 지원해 주셨고 그 외에도 굉장히 많은 지원을 해 주시고 계십니다.
◆ 이성규 : 근데 지금 30대잖아요. 결혼하신 30대. 또 장모님 신세도 좀 지고 계시고요.
◇ 이호영 : 네 맞습니다.
◆ 이성규 : 나름 30대 이호영의 고민이 좀 있을 것 같은데요.
◇ 이호영 : 네. 사실은 십시일방을 통해서 돈을 벌지 못하기 때문에 제가 결혼하기 전부터 고민이 많았어요. 이미 이 일을 하고 있었고 그 후에 결혼을 하게 된 건데 과연 내가 결혼한 다음에 가족 구성원으로서 물론 와이프도 돈을 벌지만 저도 돈을 벌어야 될 것이고 언제까지 부모님이나 어른들의 손을 벌릴 수는 없는 거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제가 십시일방을 처음 시작할 때, 아까 말씀드렸을 때 제가 1년 정도 허송세월했다고 했잖아요. 아무런 돈을 구하지 못하고. 결국엔 제가 보니까 제가 십시일방이라는 단체를 만들어서 대표라는 타이틀은 있는데 제가 백수인 거예요. 그래서 ‘나는 백수인가.’ 생각해서 제가 1년을 그냥 보내고 BC 카드를 만나기 전에 제가 다른 일을 시작했습니다. 또 다른 비영리 단체들이나 기업 사회공헌 사업들의 사회적 가치를 측정하고 평가하는 일을 하는 회사를 또 같이 만들었어요. 모교의 교수님과 함께 시작을 했고 처음에는 되게 작게 프로젝트성으로 시작을 했는데 지금은 제가 거기서 이제 상근직으로 일을 하면서 어찌 보면 십시일방과 동일한 시점에 시작을 했고 동일하게 운영이 되고 있는데. 지금 거기서 제가 주요 소득을 벌고 있고요. 십시일방에서는 제가 원래 꿈꿔왔던 이 일들을 하고 있는 거죠. 그래서 어찌 보면 저는 투잡을 하고 있는 상황이고 한쪽에서는 돈을 벌고 한쪽에서는 저의 일을 하고. 이렇게 저의 삶이 인간 이호영의 삶이 조율되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 이성규 :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자립준비청년들에게 안전한 주거를 제공하고 미래를 준비할 수 있도록 활동하고 있는 단체 십시일방의 이호영 대표와 함께 했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 이호영 : 네 감사합니다.
◆ 이성규 :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는 YTN 라디오 홈페이지와 유튜브를 통해서 다시 들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