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전성기, 오늘
  • 진행자: 김명숙 / PD: 신아람 / 작가: 조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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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토크쇼 청춘을 깨워라 “50대에 시가 안겨준 나의 전성기” - 정재찬 한양대 국어교육학과 교수
작성자 : ytnradio
날짜 : 2018-01-11 12:47  | 조회 : 4626 
YTN라디오(FM 94.5) [당신의 전성기 오늘] 
□ 방송일시 : 2018년 1월 11일 (목요일) 
□ 출연자 : 정재찬 한양대 국어교육학과 교수

감성토크쇼 청춘을 깨워라 “50대에 시가 안겨준 나의 전성기” - 정재찬 한양대 국어교육학과 교수


◇ 손영주 아나운서(이하 손영주): 새해맞이 결심들 어떤 것 하셨습니까? 저는 올 한해 시를 읽어볼까 생각 중인데요. 사실 시를 읽어보자는 마음은 예전부터 참 많이 가졌는데 못 지키고 매년 한해 한해 지나고 있습니다. 올해는 정말로 시를 읽어보고 싶은, 마음으로 한번 느껴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데요. 저를 위해서 모신 분 같네요. 시 전도사, <시를 잊은 그대에게> 정재찬 교수님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 정재찬 한양대 국어교육학과 교수(이하 정재찬): 반갑습니다.

◇ 손영주: 제가 갑자기 들어오게 됐는데 정말 저를 위해서 모신 것 같기도 하고요. 김명숙 MC님께서도 평소에 굉장히 좋아하시는데요. 제가 이렇게 직접 뵈니까요. ‘시 전도사’라는 말과 이미지가 정말 잘 어울리세요. 예술가 느낌도 나고요.

◆ 정재찬: 라디오가 참 좋네요.

◇ 손영주: 보셔야 하는데, 보이는 라디오였어야 했는데. 아쉽네요, 저는.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 정재찬: 사실 제가 늘 얘기하는 ‘시를 함께하는 삶을 살라’고 사람들한테 얘기하면서 정작 저는 너무 바빠서 많이 아쉬웠던 한해입니다. 많은 일을 했기 때문에 나를 위한 시간을 못 만들었다. 그래서 요즘 반성하는 중이에요.

◇ 손영주: 나를 위한 시간. 나를 위한 시간이 있어야 시에 대해서도 좀 더 깊게 생각해볼 수 있는 걸까요?

◆ 정재찬: 예. 그래서 제가 올해 목표를 ‘나는 존재하다. 고로 존재한다’ 이러고 살고 있습니다. 이제 뭐 해달라면 안 해줄 거예요.

◇ 손영주: 나는 거절한다. 그런 거절인가요? 저녁 자리를 거절한다, 이런 게 아니라.

◆ 정재찬: 저녁 자리도 좀 거절하고 싶고요. 나의 존재를 위해서 그런 시간을 올해는 많이 갖고 싶습니다.

◇ 손영주: 저희 YTN 라디오에 오시는 건 거절하시면 안 됩니다.

◆ 정재찬: 못 거절했습니다. 여기 셉니다. 거절 못 합니다.

◇ 손영주: 그럼요. 저희 청취자분들이 정말 많이 기다리고 계세요. 문자로 기다리고 계시면서 궁금한 것들도 보내주시는데요. 조금 있다가 또 말씀 나눠보고요. 제가 작년 이맘때쯤 ‘나도 시를 읽어보자’ 예전에는 시를 교과서에서나 만났고 가끔 책에서 보고. 시는 정말 특별한 사람이 하는 것, 읽는 것, 쓰는 것, 이런 생각도 많이 했지만, 시가 주는 그런 감성들, 느낌들이 참 많다는 걸, 나이가 든다는 말 쓰기가 참 죄송한데요. 한해 한해 지나면서 느끼게 됩니다. 그게 바로 또 이런 교수님이 쓰신 책 같은 것을 보면서 더 많이 느끼는데요. 시 전도사의 힘이 아닐까, 이런 생각도 드는데. 저 같은 사람들이 많이 있죠?

◆ 정재찬: 이런 분 만나면 전도할 마음이 절로 나죠. 시를 꼭 우리가 그동안 공부해야 할 의무, 그런 대상으로만 받아들였잖아요. 그런데 그것의 문턱을 조금만 낮춰 가보게 되면 시 자체가 가지고 있는 소통과 위로의 힘이 있다고 저는 생각했어요.

◇ 손영주: 소통과 위로. 맞네요.

◆ 정재찬: 네. 우리가 흔히 ‘시는 못 알아듣겠어. 소통이 안 돼’ 이렇게 생각하고 있지만, 거꾸로 생각해보면 그만큼 경청해야 하는 말하기 방식이거든요. 가장 경청해야만 그 뜻을 이해하는 거라면 그게 진짜 소통인 거고. 우리가 말만 많이 한다고 진정한 소통이 이루어지는 건 아니잖아요. 그리고 시는 절대 이래라저래라 말하지 않아요. 그런데 그게 오히려 ‘어머, 이건 내 얘긴 것 같아’ 그런 것들이 위로가 되기 때문에. 저는 사실 굉장히 가까이할 수 있었던 것인데 멀어졌던 걸 원위치로 갖다놓고자 하는 것이지, 없는 것을 지금 만들어내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 손영주: 그런데 교수님도 계기가 있으셨을 것 같아요.

◆ 정재찬: 저는 사실 의외로 사실은 문청이라든가 이런 낭만적인 시절이 없었습니다. 저희 대학 때는, 지금 1987보다도 좀 더 앞이기 때문에 굉장히 각박하고 힘들었던 사회 현실 속에서 살았어요.

◇ 손영주: 시라는 건 어떻게 보면 가진 자의 여유, 이렇게 느끼셨겠네요.

◆ 정재찬: 오히려 그때는요. 너무 격한 시, 사회 현실을 비판하고 그런 쪽으로만 공부를 쭉 해 와서. 그렇게 지적인 대상으로써 시를 간직하고 있다가 슬슬 나이 서른, 마흔 넘어가면서부터 내 전공으로 하고 있는 시의 참 힘이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이건 연구의 대상만이 아니라 이렇게 같이 향유하고 공유해야 하는 것이다, 하는 생각, 그 안타까움이 그런 책을 쓰게 됐던 거죠.

◇ 손영주: 교수님은 어떤 시에서, 물론 많은 시들이 있겠지만. 특별히 지금 생각나는 시가 있으세요? 나에게 힘을 줬던.

◆ 정재찬: 저는 개인적으로는 사실 김수영 시인에게 빚을 진 바가 많았고요. 그런데 그렇게 어느 한 사람에 빠지거나 그렇지는 않았어요.

◇ 손영주: 두루두루. 워낙에 그쪽 전문 분야시기도 하니까요. 항상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계신 부분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많은 분들은 이렇게 결심만 하지만 시를 읽는다는 건 참 어렵습니다. 사실 읽는다 해도 짧잖아요. 말씀하신 대로 간결하잖아요. 함축돼 있고요. 그걸 읽고 내가 뭘 느꼈다, 이렇게 말하기도 참 어려울 때가 많이 있고요. 시를 어떻게 하면 쉽게, 편안하게 시작할 수 있을지 알려주세요.

◆ 정재찬: 제일 좋은 방법은 제가 쓴 책을 읽으시는 거고요.

◇ 손영주: <시를 잊은 그대에게>죠. 바로 그 책이요.

◆ 정재찬: 농담이고요. 우리가 많은 경우에 시를 자꾸 읽는다, 이렇게 접해요. 그게 틀린 말은 아니에요. 그런데 자꾸 시를 ‘읽는다’고 하게 되면 분석한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학습을 많이 해왔고요. 그런데 제가 요즘 시도하고 있는 건 뭐냐면 강연 같은 데 가서 그냥 눈을 감으시라고 해요. 그리고 그냥 시를 한 번 들어보시라고. 그래서 제가 준비한 음악과 함께 눈 감고 시를 한 번 들어보시면, 시가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말해주는 걸 느낄 때가 있어요. 그럼 그런 것에 한 번, 소위 요즘 말로 '꽂히면' 그 시인의 다른 시도 한 번 찾아본다든가, 그런 류의 다른 작가를 찾아본다든가, 이렇게 자꾸 지경을 넓혀가는 거죠. 처음은 아주 작은 것에서 시작하시되, 우리 이런 말이 있잖아요.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한 번 꽂히시는 게 중요해요. 나 저거 알고 싶어, 사랑하게 됐어. 그러면 많이 아셔야 하고, 아는 만큼 새로 보이게 되고, 그러면 ‘시가 그렇게 힘든 게 아니구나’ 하는 것들을 찾아가실 거라고 생각해요.

◇ 손영주: 눈을 감고, 잔잔한 어울리는 음악과 함께. 집중은 절로 될 것 같고요.

◆ 정재찬: 제가 사실 첫 번째 책을 <시를 잊은 그대에게>라고 하는 게 마치 제가 누구에게 해설하는 형식이었다면, 2권을 쓰면서 제가 <그대를 듣는다>라고 제목을 단 이유가 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1권 맨 마지막도 이렇게 썼습니다. ‘이제 이 책을 덮고 시집을 부디 펼치시라’ 해설서만 보지 마시고, 정말 중요한 건 시인들의 시집을 막 보시고. 그렇게 가수처럼 생각하시면 됩니다.

◇ 손영주: 시를 읽어보고 마음에 들면 점점 그 시와 시인으로 넓혀보자. 오늘 교수님을 모신 이유가 그런데 꼭 이 시만은 아닙니다. 정말 다양한 도전과 시도를 하시는 모습을 우리 청취자들과 함께 배우고 싶어서인데요. <시를 잊은 그대에게>가 대한민국에 시 열풍을 가져왔을 정도로 엄청난 책인데, 이번에 드라마로도 나오죠? 많은 분들이 감명을 받았다고.

◆ 정재찬: 그렇게 엄청난 책은 아닌데요. 이 책을 드라마화하는 건 아니고요. 모 방송국 케이블TV에서 3월 말에 이러한 제목으로, <시를 잊은 그대에게>라는 제목으로 드라마를 만들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작가님하고 연출가님이 저희 연구실에 한 번 오셨어요. 그래서 얘기를 나누는데, 이 작가님이 굉장히 절망에 빠지고 그랬을 때 제 책도 읽고 떠 다른 시집을 읽으면서 위로를 받았다. 이것을 한 번 드라마타이즈하고 싶다, 그 위로의 힘을. 그래서 드라마는 드라마대로 가면서 주인공이 매회 시를 읽는 그런 형식의 드라마를 해보겠다. 저는 너무나 고마워가지고요. 어떻게 대중매체에서 이런 기특한 생각을 해줄 수 있는지, 저는 너무너무 격려해줬어요. 그랬더니 ‘그렇다면 선생님 책 제목을 우리 드라마 제목으로 써도 되겠느냐’ 그래서 제가 ‘왜 안 돼. 나도 <밤을 잊은 그대에게>에서 갖고 온 건데. 나눠 써’ 그래서 그냥 <시를 잊은 그대에게>라고 하는 제목을 카피 레프트, 그냥 가져가세요, 해서 제목만 그렇게 간다고 보시면 됩니다.

◇ 손영주: <시를 잊은 그대에게> 이게 책에서도 참 많은 감명을 줬지만, 드라마에서는 또 어떤 식으로 펼쳐질지도 궁금한데. 시 전도사인 교수님 입장에서 볼 때는 정말로 기분 좋은 시도겠어요.

◆ 정재찬: 그런 노력을 해준다는 게 너무 고맙죠.

◇ 손영주: 6817 청취자님께서요. ‘시,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시를 보면서 옮겨 적어서 표현할 수 있었으면 참 행복하셨겠습니다. 교수님, 목소리도 정말 멋지네요. 행복한 순간입니다’ 하시면서, 지금 이 방송 들으시면서 바로 보내주고 계세요. 목소리가 정말 잘 어울리세요.

◆ 정재찬: 라디오가 굉장히 매력적인 게요. 이거 제 꿈 중의 하나입니다. 저 진행하고 싶어요. 무슨 말씀이냐면, 시를 정말 제가 아까 눈 감고 들어보자는 강연한다고 했잖아요. 라디오는 눈 감을 필요도 없잖아요. 정말 그 음성 그걸 그대로 들어주는 것, 그런 경청이 가장 시에선 중요하거든요. 그래서 라디오는 참 매력적인 매체입니다, 그런 점에서.

◇ 손영주: 목소리만 듣고 아무런 편견 없이, 아무런 생각 없이. 저도 그래서 사실은 라디오를 참 좋아했고, 그래서 일로도 하고 있는 건데요. 교수님께서 앞에서 쭉 설명해주셨듯이 시에 대한 그런 설명을 담고, 또 그게 드라마로도 나오고. 이런 과정들이 다 요즘 유행하는 융합의 과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는데. 교수님께서 융합교육이라는 걸 시도하셨잖아요.

◆ 정재찬: 시를 가르친다는 게 사실 쉽지 않았어요.

◇ 손영주: 아마 그 수업을 들어간 학생들도 힘들기도 할 겁니다.

◆ 정재찬: 그래서 시를 다른 매체와 더불어, 영화, 광고, 가요, 모든 매체랑 같이 융합해서 제가 가르쳤거든요. 그리고 그 결과가 책으로 표현된 거고요. 그런 걸 쭉 나누다 보면 학생들이 어느덧 오감으로 시를 만족하는 그런 강의가 만들어져서, ‘융합이 이런 힘이 있구나’ 하는 것을 많이 깨달았죠.

◇ 손영주: 제가 사실 미리 예정돼 있어서 열심히 정독하고 들어왔으면 교수님의 이런 설명을 한 번에 알아들을 텐데. 아마 저희 청취자분들이 저와 같은 분들 많으실 거예요. 과연 영화나 광고를 어떻게 시와 접목시킨다는 걸까. 한 가지 예를 들어주시겠어요?

◆ 정재찬: 모든 게 다 그렇게 썼는데, 사실.

◇ 손영주: 영화를 어떻게 시와 연관 지을 수 있을까요?

◆ 정재찬: 예를 들어 우리가 아는 영화 가운데 심은하하고 한석규가 나오는 <8월의 크리스마스> 같은 경우를 저는 황동규의 시와 연결해서 설명해줬어요. 그러면서 중간에, 젊은 친구들은 못 보는 친구들도 있으니까 영화도 삽입해서 보여주면서 그 느낌에 맞는 시를 낭송도 하고. 그렇게 진행하는 겁니다.

◇ 손영주: 그 수업이 들어보고 싶은데요. 너무 재밌을 것 같은데요. 이외에 다른 내용들이 더 궁금하시다면 <시를 잊은 그대에게>에서 만나보시면 될 것 같고요. 지난 10월에는요. 마술사 이은결 씨와 함께 콜라보 공연 ‘CHEMI-PROJECT 이은결X정재찬’ 이런 걸 하셨어요. 마술과 시의 만남이라니, 상상이 안 됩니다.

◆ 정재찬: 이은결 씨하고는 어떻게 알게 됐는데, 저와 연배 차도 나고요. 만날수록 매력적이고 진지한 청년이었어요. 그런데 이 양반이 자기는 남들이 생각하는 그런 고정관념의 마술을 하기 싫다. 그건 공연으로써 하고 있지만, 자기는 정말 트릭 그런 거 없이 자기의 마술적 테크닉을 가지고 뭔가 표현하고 싶다. 그런 무대를 하고 싶은 꿈이 있다. 그래서 이건 정규무대가 아니라 자기만을 위한 무대를 한번 꾸미고 싶었던 건데. 그래서 저와 함께하자고 해서 제가 처음에는 망설였죠. 당신은 프로고 나는 그냥 일반인인데 내가 누를 끼칠 것 같다, 하면서 만났는데 합이 너무 잘 맞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제가 평소 하는 강연 중에 이런 게 있거든요. 노르웨이의 공익광고 동영상이 있습니다. 한 아이가 도시락을 가지고 왔는데 얘 도시락만 비어 있어요. 그래서 혼자 나가서 물로 배를 채우고 돌아와요. 그랬더니 가득 차 있는 거예요, 도시락이. 친구들이 다 조금씩 넣어놓은 이야기들. 그런데 그 동영상을 보면서 저는 거기에 맞는 시가 있거든요. 그래서 복효근 선생의 시를 읽곤 했어요. 그게 복효근의 ‘세상에서 가장 따뜻했던 저녁’이라고 하는 시인데, 내용은 그런 거예요. 어떤 친구가 내가 학교에서 끝나고 오는데 내가 맨 가방을 지퍼가 열렸다며 닫아주었다. 집에 와서 보니까 여기에 온기가 식지 않은 붕어빵 5마리가 들어있는 거예요. 그래서 ‘내 열여섯 세상에 / 가장 따뜻했던 저녁‘ 이러고 끝나는 시입니다. 그러니까 저는 이게 동영상 광고랑 이 시가 너무 잘 맞는다. 이게 오병이어의 기적이 아니겠느냐. 마술사나 신만이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우리가 해내 왔고,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이게 진짜 마술 아니냐. 그러면 이은결 씨는 이 공연에서 정말 우리 눈앞에서 빈 도시락을 가득 찬 도시락으로 채워요.

◇ 손영주: 마술적인 능력으로 그걸 채우시는군요.

◆ 정재찬: 그래서 그게 같이 어우러지니까 마술이 주는 감동과 시가 주는 감동, 이런 것이 말 그대로 케미가 잘 맞아서. 하고 나서 둘이 서로 참 뿌듯했습니다.

◇ 손영주: 감동적인 공연이었을 것 같아요.

◆ 정재찬: 딱 세 번 하고 끝났습니다.

◇ 손영주: 세 번으로. 그 아쉬움은 또 다음 기회에요.

◆ 정재찬: 그냥 실험적인 성격이었으니까요.

◇ 손영주: 직접 가서 한번 보고 싶네요. 그런데 이 공연에 소방관들을 무료로 초대하셨다고 들었어요.

◆ 정재찬: 이건 저희가 한 건 아니고. 참 묘해요, 세상이. 말 그대로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 그런 말처럼, 또 제가 아는 어떤 분이 기부하는 그룹들이 있었는데, 이 이야기를 듣고 자기들이 꼭 이 행사를 하고 싶다. 그래서 저희도 그걸 원했는데, 소방관분들을 모셨어요, 가족들과 함께. 그래서 제가 그분들 오셔서 그분들을 위한 시를 읽어 드리곤 했었는데.

◇ 손영주: 제가 여기서 한 번 부탁을 드려봐도 될까요? 그 시를 이 자리에서 저희 청취자분들께.

◆ 정재찬: 박성우의 ‘두꺼비’라고 하는 시입니다.

“아버지는 두 마리의 두꺼비를 키우셨다 // 해가 말끔하게 떨어진 후에야 퇴근하셨던 아버지는 두꺼비부터 씻겨 주고 늦은 식사를 했다 동물 애호가도 아닌 아버지가 녀석에게만 관심을 갖는 것 같아 나는 녀석을 시샘했었다 한번은 아버지가 녀석을 껴안고 주무시는 모습을 보았는데 기회는 이때다 싶어서 살짝 만져 보았다 그런데 녀석이 독을 뿜어내는 통에 내 양 눈이 한동안 충혈되어야 했다 아버지, 저는 두꺼비가 싫어요 // 아버지는 이윽고 식구들에게 두꺼비를 보여주는 것조차 꺼리셨다 칠순을 바라보던 아버지는 날이 새기 전에 막일판으로 나가셨는데 그때마다 잠들어 있던 녀석을 깨워 자전거 손잡이에 올려놓고 페달을 밟았다 // 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게 새집 다오 // 아버지는 지난 겨울, 두꺼비집을 지으셨다 두꺼비와 아버지는 그 집에서 긴 겨울잠에 들어갔다 봄이 지났으나 잔디만 깨어났다 // 내 아버지 양 손엔 우툴두툴한 두꺼비가 살았었다”

우리가 ‘두꺼비’ 그러면 처음에 ‘이게 무슨 말이지? 아버지가 두꺼비를 키웠다는 게 뭐지?’ 하다가 마지막에 가서 비밀이 풀리는 거죠. 아버지의 손이 두꺼비 같은 것. 그래서 저는 소방관분들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 오신 분들께 사실 우리를 살린 건 손길 아닌가. 가장 인간에게 소중한 것, 지금 AI 로봇이 아무리 나와도 손길이 얼마나 중요한가.

◇ 손영주: 그렇죠. 온기라는 건 없잖아요, 사실 AI에는.

◆ 정재찬: 또 남궁인 선생이라고 응급의학 하는 분이 글을 잘 쓰시는데, 그분이 쓴 책 중에 <지독한 하루>라는 책이 있어요. 거기 보면 응급실에 서로 막 아우성이잖아요. 그러면 가서 습관적으로 환자들 이마에 손을 탁 얹어준대요. 그러면 누구나 그때는 다 잠잠해진대요. 그런 손. 우리 아팠을 때, 열났을 때 이마 덮어줄 때 말하는 사람 봤어요? 이마만 덮어주면 조용해지고 온순해지는 것. 그런 손길이 우리를 살리는 거 아닌가. 소방관분들이 우리를 살려주는 그런 손길이다.

◇ 손영주: 정말 손길 같은 시네요. 시가 주는 게 그런 하나의 손길. 그런데 사실 시를 낭독하시는 걸 듣고 정말 이 저음의 목소리로 이렇게 낭독을 해주시고 음악과 함께하니 집중을 하고 느끼지 않을 수가 없겠다, 그런 공연이나 이런 자리에서도,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요. 저희 청취자분들도 시를 들으시면서 굉장히 오늘 따뜻한 오전 시간을 보내고 계시다고 합니다. 이 시를 앞에서 들은 소방관들의 반응도 참 궁금하네요.

◆ 정재찬: 참 좋아하셨던 거라고 저는 생각해요. 그래서 앞으로도 이렇게 시를 나누고 시를 듣고, 이런 시간을 많이 가지려 합니다.

◇ 손영주: 사실 저희가 이 자리에 이렇게 한양대학교 국어교육학과 정재찬 교수님을 모신 이유가요. <시를 잊은 그대에게>, <그대를 듣는다> 이런 책, 시와 관련한 이야기도 물론 듣고 싶었지만, 또 정말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계시잖아요. 50대에 맞이한 인생의 황금기인데요. 조금 더 젊었을 때 유명해졌다면 더 좋았겠다, 이런 생각은 혹시 안 하셨나요?

◆ 정재찬: 반대로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철모를 때 잘 나가면 얼마나 이상한 길로 갔겠어요. 제가 지난해 읽은 책 중에 <라틴어 수업>이라고 하는 책도 재밌었는데, 내가 늘 우리 제자들한테 하는 얘기가 거기 적혀있었어요. ‘이 또한 지나가리라’가 라틴어에서 나온 말인데요. 우리 흔히 쓰잖아요. ‘이 또한 지나가리라’ 우리 주로 어떨 때 쓰죠? 힘들 때. 

◇ 손영주: 힘들 때. ‘시간이 약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 정재찬: 그런데요. 그 뜻은 전성기 때도 마찬가지예요. ‘이 또한 지나가리라’ 그 생각을 해야 하는 거죠.

◇ 손영주: 참 겸손해지게 만드는 말이네요.

◆ 정재찬: 못 나갈 때만이 아니라 잘나갈 때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 그런 생각 가져야죠. 우리 조상들이 그래서 “화무는 십일홍이요, 달도 차면 기우나니라” 물론 결론은 그래서 열심히 놀자는 게 그 노래의 취지긴 하지만.

◇ 손영주: 교수님 한 말씀 한 말씀이 정말 주옥같네요.

◆ 정재찬: 전성기야, 가 중요한 게 아니고요. 그래서 뭐할 건데, 그게 더 중요한 것 같아요.

◇ 손영주: 조금 더 앞을 내다보게 하는, 지금의 전성기에 안주하지 않겠다, 너무 지금을 기뻐하지 않겠다, 이런 말씀으로도 들리는데요. 젊었을 때는 몰랐을 테니까 지금 맞이한 전성기가 그래서 다행이다, 이런 말씀으로 들립니다. ‘50대에 얻은 전성기기 때문에 욕망과 소명을 구별하려고 애쓴다’ 이렇게 말씀하시는데. 욕망이나 소명이 구별되는지, 교수님만의 어떤 기준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지 궁금해요.

◆ 정재찬: 대개 50대 되고 나면 ‘이게 하늘의 명이야. 지천명이야’ 이렇게 착각들을 많이 해요. 사실 하늘은 그런 명령한 적 없을 거예요. 자기가 그렇게 욕망하면서 얘기를 맞추는 것 같은데. 그래서 제가 조심하고자 할 때 쓰는 말이에요. 이게 욕망인가, 소명인가. 가령 방송이라는 것이 묘하잖아요. 한 번 나가고 나면 여기저기서 막 섭외 옵니다. 그러면 ‘나갈까?’ 그럴 때 기준이 ‘이게 내 욕망이야, 아니면 소명이야?’ 말하자면 굳이 나 아니라도 되는 거잖아, 그러면 그건 욕망인 것 같다. 그런데 내가 가야 하는 건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에게 주어진 저 시를 이야기하기 위해서 가야겠다, 라고 생각하면 그게 맞는 자리인 것 같아요. 물론 이러다가 60대 지나고 그러면 ‘아무 데나 불러주시면 갈게요’로 다 살겠죠. 그런데 그건 그때의 욕망과 소명이겠고. 적어도 지금은 50대의 자존심이 그렇게 살지는 말자, 그렇게 하는 중입니다.

◇ 손영주: 그게 교수님만의 기준이신데. 교수님, 올해 50대 중간 반환점을 돌고 있잖아요. 50대는 인생에서 어떤 나이라고 생각하세요?

◆ 정재찬: 저는 나이만 들지, 철은 계속 안 드는 것 같아요.

◇ 손영주: 철은 일부러 안 드시는 거 혹시 아닌가요?

◆ 정재찬: 저는 나이 들면 살기 쉬운 줄 알았어요. 그런데 나이 들어도 살기 어려운 건 마찬가지고. 40대는 40대가 그렇게 힘든 것 같은데 50대도 마찬가지고. 저는 그냥 10대, 20대 이런 말에 매이지 말고요. 그냥 늘 20대처럼 살되, 50대다운 맛을 더하면 되지 않을까. 70대를 예비하고 싶지는 않아요.

◇ 손영주: 마음은 늘 20대다.

◆ 정재찬: 네. 다만 처신은 50대.

◇ 손영주: 그렇군요. 올 한해 혹시 계획이 있으시다면?

◆ 정재찬: 아까 말씀드린 대로 저는 ‘거절한다. 고로 존재한다’로 살 거고요. 하지만 지금 제가 맡고 있는 직책이 입학처장이라고 하는 게 있어서, 한편으로는 우리나라 입시 문제를 지금 굉장히 개혁해야 할 시기거든요, 올해가. 거기에 기여해야 할 것 같아요.

◇ 손영주: 다시 현실로 돌아오네요.

◆ 정재찬: 이건 또 주어진 직책이니까 하고. 그러면서 저만의 새로운 연재, 새로운 강연, 새로운 공연, 그런 것들은 또 개인적인 거니까 해나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 손영주: 오늘 <시를 잊은 그대에게>, <그대를 듣는다> 이 책 함께하면서 새해를 시작해봐야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또 교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자니까 따뜻하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저 자신이 작아지면서, 앞으로 좀 더 열심히, 어떻게 보면 좀 더 따뜻하게 세상을 살아가야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교수님, 이렇게 ‘거절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가 아닌, YTN 라디오 <당신의 전성기, 오늘>에 또 함께해주시면서 말씀 나눠주셨으면 좋겠네요. 오늘 한양대학교 국어교육학과 정재찬 교수님과 함께 이 시간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교수님, 고맙습니다.

◆ 정재찬: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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