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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의 <개>
작성자 : ytnradio 날짜 : 2018-01-05 07:21  | 조회 : 1269 
ytn 지식카페 라디오 북클럽 이미령입니다.

오늘은 소설가 김훈의 작품 <개>를 소개합니다.

내 이름은 보리. 진돗개 수놈입니다. 나는 형제 넷과 함께 태어났는데 엄마의 젖을 차지하려는 싸움이 굉장했지요. 우리 주인은 수몰지역의 늙은 부부입니다. 동네 사람들은 보상금을 받고 하나둘 이삿짐을 쌌고, 말랑말랑한 분홍색이었던 내 발바닥이 차츰 검게 변할 즈음 우리 가족도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엄마와 막내는 개장수에게, 형제 둘은 공사장 인부에게 팔아버리고, 나 혼자 할머니의 둘째 아들집으로 보내졌습니다.
새 주인은 두 아이 아빠였습니다. 2톤짜리 작은 배를 타고 나아가 잔챙이 몇 마리 낚아 와서 그걸 팔아 생계를 잇는 가난한 가장이었지요. 그 마을 어부들 사정도 모두 같았습니다.
새벽에 포구로 돌아오는 주인님 배 밧줄을 물어 쇠말뚝에 걸고, 주인님 딸 영희를 학교까지 데려가주는 일이 일과가 됐습니다. 이웃마을 흰순이에게 몇 번 달려가기도 했지만 연애에는 실패했습니다. 동네에서 가장 사나운 악돌이 녀석과는 죽기 살기로 싸워 물리치기도 했습니다. 나는 힘차게 힘차게 달렸습니다. 강아지였던 내 발바닥은 검고도 단단해졌습니다. 
어느 날 바다로 나간 주인님이 돌아오지 못하게 되자 영희네 가족은 도시로 떠납니다. 보상금으로 작은 아파트 한 채 마련했는데, 그곳에 진돗개를 들일 수는 없지요. 나는 버려질 것입니다. 팔릴지도 모릅니다. 인간이 주인인 세상에서 개의 운명은 그렇습니다. 그러나 당신들의 삶은 나, 진돗개 보리의 눈에 고스란히 비칩니다. 살려고 몸부림치고, 작은 행복에 배시시 웃고, 삶의 거센 파도에 저항하다 휩쓸리고, 극한 슬픔에 울부짖다가 내일 아침에는 다시 거리로 나서는 그 모습. 말랑말랑한 분홍색 발바닥이 딱딱하고 검게 변해가듯, 인생은 그런 겁니다. 

오늘의 책,
김훈의 소설 <개-내 가난한 발바닥의 기록>(푸른숲)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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