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형의 뉴스 정면승부
  • 방송시간 : [월~금] 18:15~20:00
  • 진행: 이동형 / PD: 이은지 / 작가: 홍기희, 김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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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간첩이 아닙니다” 남산 5국으로 끌려가던 날의 기억 
작성자 : ytnradio
날짜 : 2018-10-11 20:42  | 조회 : 379 
“나는 간첩이 아닙니다” 남산 5국으로 끌려가던 날의 기억 








[YTN 라디오 ‘이동형의 뉴스 정면승부’]
■ 방송 : FM 94.5 (18:10~20:00)
■ 방송일 : 2018년 10월 11일 (목요일)
■ 대담 : 배경옥 위장 귀순간첩 이수근 사건 피해자

◇ 이동형 앵커(이하 이동형)> 과거 중앙정보부가 조작한 간첩 피해자, 한두 분이 아니시죠. 오늘 그 가운데 한 분에게 무죄 선고가 내려졌습니다. ‘故 이수근 씨’인데요. 1969년 이중간첩 사건으로 사형된 분이죠. 49년 만의 무죄 선고입니다. 지금 스튜디오에 故 이수근 씨와 함께 간첩 협의를 받고,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배경옥 씨, 나와 계신데요. 참고로, 배경옥 씨 역시, 지난 2007년 간첩 협의를 벗은 바 있습니다. 오늘 방송 출연을 위해서 용인에서 먼 걸음 해주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 배경옥 위장 귀순간첩 이수근 사건 피해자(이하 배경옥)> 네, 안녕하세요. 

◇ 이동형> 이수근 씨하고는 어떤 사이이신 거죠?

◆ 배경옥> 저희 이모부님 되시는 분인데, 제 어머님의 막내 여동생의 남편이 되시는 분이죠. 그러니까 저한테는 이모부님이 되시고요. 그런데 그분이 이모부님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 이모부님이 귀순한 후에 국가에서 저희 집을 찾아줘서 만나 뵙게 된 거지, 그전에는 전혀 알지를 못했죠. 

◇ 이동형> 귀순한 후에 알았군요?

◆ 배경옥> 그렇죠. 네. 

◇ 이동형> 이수근 씨가 귀순했다가 중앙정보부에 간첩 조작사건으로 인해서 결국은 사형 판결을 받았잖아요?

◆ 배경옥> 조작된 사건이죠. 간첩으로 조작된 사건인데, 그때 당시 이모부님은 진짜 자유를 찾아서 귀순을 했는데, 당시 중앙정보부에 감찰실장 방준모라고 있어요. 방준모라는 사람이 괴롭힌 거예요. 너, 위장 귀순이지? 막 권총을 옆에다가 쏘고, 구둣발로 정강이를 차고, 이렇게 괴롭히니까 이모부님이 회의를 느끼신 거죠. 귀순하시고 여기서 ‘장막을 헤치고’라는 책을 썼습니다. ‘장막을 헤치고’라는 책을 썼는데, 그 책이 5만 부나 팔렸는데, 이 사건 나면서 다 회수를 했답니다. 이모부님은 원래 글을 쓰시는 분이니까, 기자시니까 스위스나 중립국 가서 책을 쓰려고 하신 분이거든요. 그리고 우리나라 통일을 위해서 책을 쓰려고 했던 것인데, 전부 다 간첩으로 조작해서 인간의 생명을 박탈한 거죠. 국가가 사실은 이적행위를 한 겁니다. 북한에서 해야 할 일을 국가가 대신한 겁니다. 그러니까 아주 잘못한 거죠. 이적행위 한 거죠. 

◇ 이동형> 이수근 씨 같은 경우에는 사형판결을 받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는데, 우리 배 선생님은 당시에 왜 같이 간첩 혐의를 받으셨죠?

◆ 배경옥> 왜냐하면, 저는 간첩 행위한 것은 없는데, 이모부님의 여권을 만들어준 것하고, 다른 기타 심부름한 것밖에 없는데요. 중앙정보부에서 조사받을 때 진술서를 자신이 써야 하잖아요? 그런데 중앙정보부 조사관이 불러준 대로 받아쓴 대로 쓴 거예요. 그러니까 중앙정보부에서 각본대로 진술서를 쓰게 한 거니까 조작한 거죠. 

◇ 이동형> 그러니까 이수근 씨가 남한으로 귀순했는데, 이렇게 사람들이 괴롭히고 하니까 나는 북한도 싫고, 남한도 싫다, 제3국으로 가야겠다고 결심을 했고요. 그때 배 선생님한테 여권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했고, 만들어주고, 심부름했는데, 너도 간첩이다. 이렇게 조작한 거잖아요?

◆ 배경옥> 그런데 사실은 여권을 제가 홍콩에 사시는 분, 아는 분이 대한항공 사장님이신데요. 김포공항에 마중 나갔다가 택시에 여권 든 가방을 놓고 내린 거예요. 그래서 그 여권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다시 여권을 재발급하는데 이모부님이 아시게 돼서 여권을 만드는 것에 대해서 저한테 부탁을 했고요. 또 그동안 고통스러운 것을 이야기하면서 중립국에 가야겠다고 하시니까, 중립국에 가시면 대한민국에서도 연락이 오고, 북한에서도 연락이 올 것이다. 그러면 북한에는 우리 가족을 보내 달라고 하면 가족을 보내주면, 아무래도 북한보다는 대한민국이 나으니까 그때는 가족을 데리고 다시 대한민국에 들어오면 처우를 더 잘해줄 것이다, 이렇게 얘기가 됐던 것이죠.  

◇ 이동형> 그러면 이수근 씨하고 같이 잡혀서 중정에 조사받으면서 역시 고문이나 이런 것 받으셨습니까?

◆ 배경옥> 고문이라는 것을 말할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69년도 2월 1일 김포공항에 새벽 다섯 시에 내렸는데, 중앙정보부 요원이 바로 남산 5국으로 데려갔습니다. 그래 가지고 미군들 콘센트로 만든 집이 있잖아요? 반달같이 생긴 거. 거기 가서 실오라기 하나 안 걸치고, 팬티도 안 입고, 하나도 안 걸치고, 그 사람들 한 10명이 둘러서서 구둣발로 사람을 고문하고, 의자에 묶어서 뒤로 젖혀서 물고문하고요. 하여간 지금 다시 그때 생각은 지금도 하기 싫은데요. 그때는 사는 것보다 죽는 게 행복하다고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빨리 죽었으면 하는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빨리 죽지도 않는 거예요. 고문당한 것은 이루 말로 다 할 수가 없습니다. 

◇ 이동형> 배 선생님 지금 올해 연세가 여든 한 살이십니까?

◆ 배경옥> 여든하나입니다. 38년 8월 11일생입니다. 

◇ 이동형> 81세이신데, 과거 고문받던 이야기하면서 다시 눈시울이 붉어지셨어요. 방금 힘드셨던 것 같습니다. 

◆ 배경옥> 지금 제 몸을 보면, 기형입니다. 그게 서류상으로 다 나타나요. 그때 당시에 교도소 의무과장이 얘기한 것, 사회 병원에서 얘기한 것, 다 있습니다. 이게 충격에 의해서 이렇게 됐고, 했다는 게요. 그래 가지고 저는 왼쪽 어깨가 1인치나 작습니다. 아주 기형이에요. 그리고 온몸이, 저는 한동안은 약으로 살았는데, 이제는 약을 더 못 먹겠어요. 지금은 뜸을 뜨는데, 제 몸을 보면, 아주 형편없습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몸은 형편없어요.

◇ 이동형> 중정에서는 고문받고, 허위로 조사를 받고 했을 텐데, 재판장에 가서는 나 고문받았습니다, 할 수 있었잖아요?

◆ 배경옥> 검찰 조사에도 사실대로 얘기할 수 있었고, 재판장에서도 얘기할 수 있었는데요. 우리는 검찰청에 나가서 조사 받은 게 검찰이 서울구치소 소장실로 와서 소장실 옆에 방에서 조사를 받았는데요. 중앙정보부에서 조사한 서류 가지고 물어보는 것을 아니라고 하니까 검사가 일어서서 나가는 거예요. 그러면 중정 애들이 바깥에 서 있다가 들어와요. 그래 가지고 왜 다른 소리를 하느냐, 그냥 중정에서 한 얘기대로 해라, 그리고 또 나쁜 짓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거기서 받아쓰기 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리고 재판장에서도 중정 요원들이 둘러서 있었고, 전혀 다른 말을 할 수 없게끔 만들어서 조작을 해서 그대로 한 것뿐이지 다른 것은 하나도 없어요. 

◇ 이동형> 그래서 배경옥 선생님 복역할 당시에 연세는 어땠어요?

◆ 배경옥> 그때 당시 스물일곱 살 때 결혼식은 안 하고, 아들 하나 낳고, 그다음에 제가 69년도 사고 나던 해에 저는 구치소에 있는데, 딸아이를 낳아서 면회를 왔죠. 집사람이요. 지금 여러 가지로 안 좋은 게 많아서, 그전에 고생도 많이 했고, 하기 때문에 지금은 합치지를 않았습니다. 아들 하나는 제가 나오는 그다음 해에 자살했습니다. 공부도 잘해서 장학생으로 공부를 했는데, 학교 후배가 제 아들 녀석을 좋아했던 것 같아요. 제가 나오게 되니까 아버지 없는 것으로 살았는데, 아버지가 간첩으로 20년 동안 살고 나오니까 사위될 얘기로 할 수 없으니까 그때 나이가 스물다섯인가, 여섯인가 한참 때 나이라 예민하니까요. 무주 구천동 강에 가서 자살했어요. 

◇ 이동형> 복역할 당시에 아들이 네 살 쯤 됐었잖아요? 20년 복역했으니까 배 선생님은 30대, 40대를 다 날렸다고 볼 수 있겠고, 그러면 20년 동안 아들을 한 번도 못 보셨습니까? 

◆ 배경옥> 못 봤죠. 업고 면회 왔을 때 어린 것만 봤지, 커서는 전혀 못 봤죠. 

◇ 이동형> 그런데 남은 가족들도 간첩 자식, 빨갱이 아내, 이러면서 힘든 삶을 사셨을 것 같아요. 

◆ 배경옥> 온 가족은 다 힘들었죠. 어머님부터 저희 동생들도 다 그렇게 살았죠. 그때는 연좌제가 있었잖아요. 연좌제가 없다고 하지만, 말로만 없는 거지 그대로 다 고통받고, 경찰이 늘 찾아오고, 그런 것이죠. 제가 출소하고서도 경찰이 찾아왔어요. 그래서 경찰하고 싸움했죠. 감시하려면 나 모르게 해라, 내 앞에 나타나지 말고. 정보과 형사하고도요. 10년 동안이나 그렇게 했어요. 

◇ 이동형> 굉장히 억울한 옥살이를 하셨고, 가족의 삶도 다 망가져 버렸는데요. 20년 동안 억울한 옥살이 하면서 국가도 원망스럽고, 많이 원망스러우셨겠어요?

◆ 배경옥> 그렇죠. 국가가 그럴 수가 없는 거죠. 국가가 개인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데, 이것은 국가의 권력이 인권을 짓밟고, 생명을 짓밟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거죠.

◇ 이동형> 네, 참 안타까운 사연입니다. 그러면 출소는 89년에 하셨습니까?

◆ 배경옥> 네, 89년 12월 23일에 했습니다. 만 20년 11개월이죠. 

◇ 이동형> 거의 21년 사셨네요. 

◆ 배경옥> 네.

◇ 이동형> 출소하고 그러면 억울함을 풀려고 그때부터 재심을 받기 위해서 뛴 겁니까?

◆ 배경옥> 그렇죠. 그때부터 이것저것 많이 조언도 받고, 뭐하고 하다가 2005년도 7월 13일에 제가 재심을 청구했습니다. 과거사위원회 생기기 전에요. 접수해서 그해 12월 1일에 과거사위원회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제가 과거사위원회에다가도 신청을 했죠. 과거사위원회도 그때 당시 수사관서부터 판사, 변호사, 안 조사한 것 없이 싹 조사했고, 저는 2008년도 12월 19일에 무죄 판결을 받은 것이죠. 

◇ 이동형> 늦게나마 진실이 밝혀진 것이 다행스러운데, 그러면 재심 끝나고 나서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는 또 따로 하셨습니까?

◆ 배경옥> 그렇죠. 형사 소송했고, 민사소송하고요. 두 가지 다 했죠. 

◇ 이동형> 결과는 어떻게 됐나요?

◆ 배경옥> 21년 동안 형사 보상은 10억. 그리고 민사도 또 10억, 그래서 한 20억 받은 거죠. 

◇ 이동형> 다행스러운데, 따님은 그러면 요새 안 만나세요?

◆ 배경옥> 네, 요새 만나지 않습니다. 저로 인해서 고생도 많이 했고, 또 여러 가지로 불이익을 많이 받게 되니까 오히려 제가 접촉을 안 하는 것이 도와주는 것이 돼서 안 하고 있습니다. 

◇ 이동형> 중정은 왜 이모부를 간첩으로 몰려고 했을까요?

◆ 배경옥> 그거는 그때 당시 중앙정보부 김형욱이 자기가 이것을 조작하지 않으면 오히려 자기가 잘못될까 봐 조작한 것이죠. 만약 중립국으로 갔다면, 김형욱이 책임이 있을 것 아닙니까? 자기가 감시했는데요. 그때 당시에 이모부님이 중앙정보부의 국제정세판정관으로 출퇴근을 했거든요. 그런 상황인데, 이모부님이 중립국으로 갔다고 하면, 김형욱은 자기가 책임을 면할 수가 없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된 것이 아까 말씀드린 방준모 감찰실장 때문에 그렇게 된 거예요. 

◇ 이동형> 이대용 공사라고 아시죠?

◆ 배경옥> 네, 그분들이 저희가 사이공 공항에 있을 때 비행기에 올라와서 이대용 공사님이 저하고 이모부님을 연행해서 월남 대사관까지 가서 밤새도록 얘기하고, 그다음 날 새벽에 군용 전용기로다가 저희 이모부하고, 저하고, 헌병 소위하고, 네 사람이 전용기를 타고 왔습니다. 2월 1일자.

◇ 이동형> 이대용 공사가 쭉 얘기를 들어보니까 이수근은 간첩이 아니다, 확신이 들었고.

◆ 배경옥> 그것은 왜 말씀을 하셨냐면, 조갑제 기자님이 계시잖아요? 그분이 CIA에 대한 조사를 하려고, 미국도 가고, 그때 당시에 이대용 공사님이 월남에서 패망하고 다 철수할 때, 우리 민간인은 다 태워서 보냈는데, 배를 못 타신 거예요. 그래서 월남에서 체포되어서 월남 교도소에 수감 생활을 하고 있는데, 박정희 대통령께서 이스라엘 상인을 시켜서 돈을 줘서 4년 만에 빼 온 겁니다. 그래서 여의도에 그때 당시 우리나라 보험공단 이사장님을 시킨 거예요. 거기서 근무하시는데, 조갑제 선생이 CIA에 대한 취재를 하러 거기에 갔었는데, 다 끝나고 나오는데 이대용 공사님이 조갑제 씨한테 조 기사, 이수근이 간첩이지 않은가? 그러니까 조 기사가 네, 하니까 아니야, 하면서 그 양반이 서랍에서 노트를 꺼내면서 이게 내 일기장인데, 내가 언젠가는 바뀔 거다, 그래서 조갑제 선생님이 그때 힌트를 얻어서 그때부터 조사를 하기 시작했어요. 그래 가지고 89년도 3월 달에 역시 이수근은 간첩이 아니었다는 것을 쓰신 거예요. 

◇ 이동형> 이대용 공사가 김형욱 부장에게 직접 들은 것도 있다면서요?

◆ 배경옥> 네, 바로 김형욱 정보부장이 이대용 공사님한테 우리 몇 사람만 아는 거니까 절대로 이수근이 간첩이 아니라는 게 밝혀지면 안 됩니다, 이렇게 얘기를 한 거예요. 그거를 이대용 공사님이 얘기를 하셨어요. 조갑제 씨한테도 얘기를 하고요. 

◇ 이동형> 그때부터 사실은 조작된 것이라는 것을 배 선생님도 알고 계셨을 텐데요. 이수근 씨도 당연히 자신이 간첩 활동을 한 적이 없는데, 김일성에게 비밀 전문을 보냈느니, 이러면서 잡힌 것 아니에요?

◆ 배경옥> 그거 다 조작한 거예요. 

◇ 이동형> 네, 다 조작해서요. 그런데 1심에서 사형이 내려졌는데, 왜 항소를 하지 않았습니까?

◆ 배경옥> 항소했습니다. 

◇ 이동형> 했습니까?

◆ 배경옥> 그때 당시에 경향신문을 한 번 보십시오. 항소했다고 나옵니다. 그런데 무시했죠. 안 한 것으로요. 무시하고, 그것은 중앙정보부에서 한 거죠. 그래 가지고 5월 10일 사형선고를 받았는데, 사형 집행을 7월 2일에 했습니다.  

◇ 이동형> 두 달 만에?

◆ 배경옥> 두 달도 안 되죠. 두 달도 안 되는데, 50일 만에 사형집행을 해버린 거예요. 우리나라 사법 사상에서도 드문 일이죠. 

◇ 이동형> 그렇습니다.

◆ 배경옥> 그때 당시에 저는 사형수로 있었습니다. 그래 가지고 항소해서 사형수로 있다가 그해 10월에 무기로 된 거죠. 

◇ 이동형> 애초에 배 선생님도 판결은 사형으로 받았습니까?

◆ 배경옥> 네. 이모부님 사형, 저도 사형.

◇ 이동형> 그랬다가 그게 무기징역으로 감형이 되고, 20년 가석방으로 나온 거예요?

◆ 배경옥> 네. 

◇ 이동형> 그러면 중정에서 이 사건이 재판이 오래가면, 오래 갈수록 자기들한테 불리하니까 빨리 재판을 끝내고 사형도 빨리 시키고요. 

◆ 배경옥> 그렇죠. 

◇ 이동형> 이렇게 압력을 가했다고 보면 되겠네요. 

◆ 배경옥> 그럼요. 

◇ 이동형> 감옥에서의 생활은 어땠습니까? 독방에 계셨습니까?

◆ 배경옥> 5년간은 독방 생활을 했죠. 

◇ 이동형> 굉장히 힘들었을 것 같은데요.

◆ 배경옥> 그건 말할 수도 없었죠. 그래서 제가 감옥에서 만약에 내가 죽지 않고 나가면 가족이 그 안에서 뭐 했냐고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하나, 그래서 거기서 제가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제일 먼저 교도소에서 문예반이라는 것을 창설했어요. 문예반이 뭐냐면, 창작반, 서예반, 회화반, 세 가지를 합해서 문예반입니다. 그게 처음 생긴 거죠. 그래 가지고 제가 교도소를 대전 교도소를 경우해서 광주 교도소로 갔거든요. 광주 교도소에서 그림을 배우기 시작해서, 광주가 옛날에는 직할시가 아니었어요. 광주가 직할시가 되면서 제1회 미술대전을 했습니다. 거기에 제가 그림을 출품해서 입선했죠. 붓을 잡으면 시간이 잘 갑니다. 하루가 어떻게 가는 줄 모르게 금방 가요. 

◇ 이동형> 출소할 때 나이는 어떻게 되셨어요?

◆ 배경옥> 출소할 때 쉰한 살입니다.

◇ 이동형> 출소 후의 생활은 어땠습니까?

◆ 배경옥> 출소 후의 생활은 여태까지 혼자 생활하는 것이죠. 여태까지요. 

◇ 이동형> 경제생활은 어떻게 하셨어요?

◆ 배경옥> 제가 취직을 한 것도 아니고, 동생들한테 도움받고 사는 거죠. 제가 무슨 취직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돈 버는 것도 아니고요. 어디서 누가 써주는 사람도 없고요. 그때 당시만 해도 간첩으로 징역 살고 나왔는데 누가 써줍니까?

◇ 이동형> 배 선생님이나 이수근 씨뿐만 아니고 과거 정부 시절에 억울하게 간첩으로 몰린 사람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 배경옥> 많습니다. 그 안에서 많이 느꼈습니다.

◇ 이동형> 많이 만났습니까?

◆ 배경옥> 젊은 사람들이 들어왔어요. 그 사람은 구두 닦고 하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그 사람은 젊은 사람인데, 징역을 들어와서 물어보니까 미싱도 하고 그랬는데, 미싱에는 북이 들어가잖아요. 어느 날 고치러 가서 젊은 사람이 사장한테 자기가 가지고 있는 북이 더 좋다고, 그런데 이 사장이 신고를 한 거예요. ‘이북이 더 좋다고.’ 그래서 신고를 했어요. 그래 가지고 1년 6개월을 받았어요. 그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있었어요.  

◇ 이동형> 웃지 못할 일이네요. 

◆ 배경옥> 그런 일까지 있어서 그때는 조작한 게 많아요. 강원도 배 타는 사람들도 어부들, 조작하고, 그때 당시에 조작 간첩이 엄청 많았습니다.

◇ 이동형> 선생님, 감옥 가시기 전에 어떤 일 하셨어요?

◆ 배경옥> 저는 모든 기계를 고칠 줄 아는 엔지니어였습니다. 자동차뿐만이 아니라 기계는 거의 손을 다 댔거든요. 미 1사단에서 근무를 했거든요. 그전에는 MIK라는 민간인 회사가 있었어요. 거기서 옮겨서 미군 부대에 들어간 거죠. 그러다가 여동생 결혼식에 나갔다가 처음 이모부를 만나게 됐고, 이모부님이 저희 주소를 알게 돼서 만나서 제가 여권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이렇게 일이 생긴 거죠. 

◇ 이동형> 네, 억울한 옥살이를 오래 하시고 했는데요. 어쨌든 본인도 재심에서 무죄가 났고, 이모부도 무죄가 났잖아요. 진실이 다 밝혀졌는데,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 배경옥> 이제 돌아가신 이모부님 영혼이라도 저세상에서 이 소식을 아시게 된다면, 얼마나 기뻐하실까 하는데요. 사실 제가 이모부님 시신을 찾으려고 서울 구치소장, 법무부 장관한테 탄원을 내고 다 했는데, 세상에 우리나라는 법이 잘못된 거죠. 사형 집행을 했으면, 처형이 그때 당시에 살고 있었는데, 인도해달라고 해야 하는데, 하지 않았죠. 그리고 수용자 공동 묘소에 모셔놓은 거예요. 그런데 그게 275구를 한데 해놓은 거예요. 그러면 그걸 각각 해서 한 것이냐고 했더니 섞어서 했다는 거예요. 

◇ 이동형> 그래서 유해를 못 찾고 있네요?

◆ 배경옥> 유해를 찾지를 못 하고 있는 거예요. 

◇ 이동형> 네, 알겠습니다. 오늘 저희한테 허락된 시간이 얼마 없어가지고요. 인터뷰는 여기서 마치고 다음에 시간을 더 길게 내도록 하겠습니다. 

◆ 배경옥> 네, 감사합니다. 

◇ 이동형> 무죄선고가 내려진 위장 귀순간첩 이수근 사건의 피해자, 백경옥 선생과 인터뷰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 배경옥>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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