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라디오 YTN
  • 방송시간 : [토] 20:20~21:00 / [일] 23:20~24:00 (재방)
  • 진행 : 최휘/ PD: 신동진 / 작가: 성지혜

인터뷰전문보기

[똑바로보기]"미투(Me Too) 운동, 언론은 폭로에만 몰두"-안호림 교수 3/10(토)
작성자 : ytnradio
날짜 : 2018-03-17 00:19  | 조회 : 3830 
[YTN 라디오 ‘열린라디오YTN’]
■ 방송 : FM 94.5 MHz (20:20~20:56)
■ 방송일 : 2018년 3월 10일 (토요일)
■ 출연 : 안호림 인천대 교수

아나운서: 오늘도 안호림 교수님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오늘은 무엇에 대해 얘기를 나눠볼까요?

안호림: 안녕하세요. 약 한 달 전 이 코너를 통해 서지현 검사의 성추행 폭로 건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사실 ‘이번에는 정말 무언가 바뀔까? 언제나처럼 다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묻혀버리는 건 아닐까?’하는 기대 반, 우려 반의 심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한 달 동안 수많은 폭로가 이어지면서 한국에서도 미투운동은 빠르게, 사회 각층을 확산되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제 본격적으로 퍼져나간 지 한 달 남짓 되어가는 미투운동에 대해서 그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미디어는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등에 대해서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아나운서: 서지현 검사의 인터뷰가 처음 방송되었을 때만 해도 이런 뜨거운 반응이 있을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무척 많은 분들이 미투운동의 폭로대상이 되었었죠? 특히 문화계가 가장 많이 눈에 뜨이는 것 같습니다.

안호림: 문화계가 가지고 있는 특성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게다가 폭로 대상이었던 인물들이 하나 같이 거물들이었는지라, 파장이 크고 세간의 주목을 많이 받기도 했습니다. 서지현 검사 인터뷰 이전인 2017년 12월에 최영미 시인이 ‘황해문화’라는 계간지에 문단 내 성폭력을 폭로하는 ‘괴물’이라는 시를 통해 고은 시인을 고발했습니다. 발간 직후에는 큰 반향이 없다가 2월 6일을 전후해 SNS에서 화제가 되면서 파장이 커졌습니다. 무엇보다 화제가 된 건 한국 연극계의 거물인 이윤택 극작가 겸 연출자의 과거 행적에 대해 김수희 극단 미인 대표가 폭로한 것입니다. 가장 많은 피해자가 밝혀진 사안이기도 합니다. 무형문화재인 하용부, 연극인이자 서울예술대학교 교수인 오태석, 한명구에 대한 폭로가 뒤를 이었습니다. 영화계에서도 영화배우 오달수를 시작으로 해서, 조민기, 조재현에 대한 폭로가 뒤를 이었고, 며칠 전에는 김기덕 감독 또한 대상이 되었습니다. 음악계에서는 남궁연, 만화작가 박재동, 사진작가 배병우 등도 성추행 의혹이 제기되었습니다. 정치권, 학계, 공직사회에서도 고발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아나운서: 말 그대로 대한민국 사회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가장 파장이 컸던 것은 바로 며칠 전에 있었던 안희정 지사의 성폭력 건이겠죠.

안호림: 안희정 지사는 평소 바르고 깨끗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고, 성평등에 대해 지지하는 입장을 밝혀왔기 때문에 사람들이 느끼는 배신감이 남다른 것 같습니다. 게다가 안희정 지사 사안은 며칠 전 김어준씨의 공작 정치 발언으로 논란이 일었던 직후에 터졌습니다. 시점과 대상이 공교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

아나운서: 김어준씨의 공작 정치 발언은 본인이 나중에 해명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계속 비판의 대상이 되었는데요.

안호림: 김어준씨가 한 말은 미투가 진보를 분열시키고 있다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공작 정치하는 사람들의 관점으로 보자면 매우 좋은 소재라는 식이었죠. 김어준씨는 과거에도  ‘나는 꼼수다’ 시절에 이른바 ‘예언’을 몇 개 했었습니다. 대표적인 것은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투표방해를 위해 선관위 서버를 디도스 공격할지도 모른다고 예언한 것입니다. 실제 당시 한나라당 의원비서 공 모씨가 선관위와 박원순 당시 서울시장 후보의 홈페이지에 대한 사이버 공격을 사주한 것이 밝혀졌습니다.

아나운서: 하지만, 이번 사안에 대해서는 매우 부적절한 발언이었다는 비판이 거셌습니다.

안호림: 그러한 발언이 미투 운동을 진보와 보수 진영논리, 정치이념의 논리에서 보도록 유도할 수도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범죄에 이념이 어디 있나요. 미투 운동은 정치적 이념과 무관하게 옳고 그름에 대한 것이고,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것입니다.

아나운서: 안타깝게도 안희정 지사의 사건으로 실제 그런 양상이 나타나고 있기도 합니다.

안호림: 자유한국당의 홍준표 대표가 미투가 본인을 공격하는 것인 줄 알았는데, 좌파가 공격당하고 있다는 식의 발언을 했습니다. 여당 소속 현직 도지사이고, 차기 유력 대권주자이다 보니 여당이 도의적 책임을 피할 수 없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 문제를 정당과 이념의 관점에서 보는 것은 미투 운동의 본질을 훼손하는 일입니다. 과연 이 문제로부터 자유로운 정치인이 몇이나 될까요? 알면서 침묵한 것도 문제입니다. 피해자의 아픔을 공감하고, 정파적 이익이 아닌 한국 사회를 더 인간적인 사회로 만들기 위한 함께 노력하는 책임있는 모습이 필요합니다.

아나운서: 최근에는 정치권, 공직 사회, 학계까지 번져 나가고 있어 각계의 인사들이 총망라되고 있는 모습입니다. 미투 운동이 폭발적으로 번지는 것은 국민들의 지지가 큰 힘이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안호림: 서지현 검사의 인터뷰가 나간 후, 국민들이 서검사에게 보낸 성원과 격려가 많은 여성들에게 용기를 내도록 도와준 것 같습니다. ‘미투’에 대한 지지의 표시로 ‘위드유’운동에 많은 사람들이 동참하고 있습니다. 한국인 대부분이 한국사회의 성범죄 문제가 심각하다고 느끼고 있었던 것에 대한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언론도 미투 운동에 대해서는 입장 차이 없이 지지여론형성에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정치권도 하나같이 이번 일에 대해선 지지하고 동참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있었던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미투운동을 상징하는 '하얀 장미'를 들어 보이며 서 검사를 응원하는 퍼포먼스를 펼치기도 했었습니다. 바른미래당 유승민 대표와 정의당 이정미 대표는 3월 2일 만남에서 미투운동에 적극 동참할 것을 공개적으로 선언하기도 했습니다. 한 달이나 늦었지만, 자유한국당도 지난 3월 2일에는 소속 여성의원들이, 6일에는 홍준표 대표가 미투 운동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습니다.

아나운서: 지금까지 폭로는 주로 연예인, 사회유명인사, 정치인 등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직장 내 성폭력, 성추행 문제는 아직도 활발한 고발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무엇이 여성들을 주저하게 만드는 것일까요?

안호림: 무엇보다 한국 사회에서는 고발하는 여성들이 도리어 피해를 볼 가능성이 높다는 인식이 팽배한 탓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폭로한 여성분들도 오랜 세월을 참고 있다가 큰 용기를 내어 말문을 연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한 조사에 따르면 직장 내 성희롱을 폭로한 피해자 중의 단 28%만 계속 같은 직장에서 근무하고 있다고 합니다. 폭로 후 쏟아지는 따가운 시선과 비난, 때로는 노골적인 불이익이나 퇴사권유, 해고 등으로 직장으로 옮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국여성노동자회가 성희롱 사건 고발과 상담 채널인 ‘평등의 전화’ 상담 사례에 대해 분석한 것을 보면, 피해자 중 고발 때문에 직장 내에서 불리한 조치를 당한 경우가 2017년의 경우 63.2%나 되었다고 합니다.

아나운서: 국내 형법 체계도 피해자에게 결코 유리하게 되어있지 않다는 지적도 많습니다.

안호림: 한국의 성범죄 신고율은 낮다는 게 공통된 인식입니다. 성폭력 신고율은 낮게는 2% 안팍, 높게 잡아도 10% 안팎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입니다. 많은 사건들이 은폐되어 버리는데, 이 큰 이유 중 하나로 형법 체계의 한계를 지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원래 피해자가 직접 고발해야 하는 친고죄였었습니다. 2013년 법 개정을 통해 친고죄는 폐지되었습니다. 하지만 국내법은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강간한 자’로 강간죄를 규정하고 있어, 폭행이나 협박 사실을 피해자가 입증해야 합니다. 한국의 강간죄 규정이 너무 협소하다는 것은 지난 22일 개최된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에서도 호된 비판을 받았습니다. 이에 더해 한국은 성폭력 범죄에 대해 처벌이 약하다는 이른바 ‘솜방망이’처벌이라는 지적도 자주 제기되고 있습니다.

아나운서: 여론조사결과에서 국민 대부분이 미투운동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죠?

안호림: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 연구센터가 미투운동에 대한 대국민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이에 따르면, 20~50대 성인남녀 천명을 대상으로 한 이번 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사대상의 88.6%가 미투, 위드유 운동을 지지한다고 응답했습니다. 서지현 검사의 폭로에 대해 95.1%가 알고 있다고 대답해서 미투운동을 알리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주의해야 할 것은 ‘강력히 지지한다’는 32.8%에 불과하고 ‘지지하는 편이다’라는 응답이 55.8%로나 된다는 것입니다. 아직 대다수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 것은 아니라고 보입니다. 미투운동의 의의와 필요성에 대해서 국민들을 계속 설득하고 이해시키는 것이 필요합니다.

아나운서: 미디어도 이번 사안에 한해서는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하셨는데, 보도 방식에 문제점은 없었을까요?

안호림: 가장 큰 문제는 폭로기사가 보도의 다수를 이루고 있고, 선정주의적 보도태도가 고쳐지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기자협회 정관에서는 ‘성폭력사건보도 가이드라인’과 ‘실천요강’이 있습니다. 가이드라인은 잘못된 통념 벗어나기, 피해자 보호하기, 선정적, 자극적 지양하기, 신중하게 보도하기, 예방 및 구조적 해결에도 관심가지기 등의 원칙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미투 운동 관련 보도에서도 이런 원칙은 여전히 잘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PD수첩의 김기덕 감독에 대한 내용은 표현 수위에 대해서 신중할 필요가 있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피해자의 이름, 나이, 성별, 거주지역, 직업과 같은 신상정보를 노출하는 것도 비록 공개된 것이라 하더라도 최대한 줄이는 노력을 통해 피해자가 2차 피해를 입는 것을 최소화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점도 잘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 언론진흥재단의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75.3%가 언론이 ‘피해자 인격권을 충분히 보호하지 않는다’는 데 동의했습니다. 응답자 중 48.9%는 피해사실을 지나치게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선정적 내용이 많다고 평가했습니다. 국민들도 이렇게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아나운서: 선정적 보도 양태는 언론인들도 잘 알고 있고 반성하고 있지만 쉽게 바뀌지 않는 것 같습니다. 또 다른 문제점은 없을까요?

안호림: 더 지적하고 싶은 것은 폭로 자체에만 너무 몰두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원인과 대책을 알아보는 분석 기사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미투 운동과 한국 사회의 성문제에 대한 토론은 지난 2월 11일 MBC '시사토크 이슈를 말한다'에서 이루어진 적은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눈에 잘 뜨이지 않습니다. 미투 운동이 벌어지게 된 근본 원인인 한국 사회의 성차별 문제에 대한 심도 있는 분석은 부족합니다. 학자나 평론가들의 고담준론이 아니라, 일상의 언어로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노력도 필요합니다. 그러한 노력이 있어야 국민들이 미투운동에 대해 진정으로 공감하고 성차별 극복을 자기 자신의 문제로 여길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나운서: 워낙 광범위하고 뿌리 깊은 문제라 짧은 시간에 다 얘기하는 것을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부족하지만, 말씀을 마무리하는 차원에서 앞으로 어떤 태도를 가지고 미투운동을 대해야 할지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안호림: 용기 있는 폭로가 계속되고 있고, 한국 사회 곳곳으로 퍼지고 있습니다. 국민들과 정부, 정당, 언론 할 것 없이 모두 지지를 보내고 있어서 이번에는 무언가 바뀌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갖게 합니다. 하지만 미투 운동이 그동안 죄를 저지른 몇몇의 ‘죄인’을 색출해내는 데서 그치면 안 됩니다. 한국 사회 성범죄 문제는 개인의 도덕성 문제이기도 하지만, 한국사회 문화와 구조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한국 사회에 살고 있는 남성, 여성 모두가 피해자이기도 하지만, 그동안 문제점이 있는데도 침묵한 죄 또한 같이 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던 문제를 깊이 반성하고, 문제의 근본부터 바꿔나가는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언론도 폭로에 머물지 말고 한국 사회 성문화, 권위주의 문화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과, 피해자에 대한 배려, 희망의 비전을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아나운서: 오늘도 말씀 감사드립니다. 인천대 안호림 교수였습니다.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저작권자(c) YTN radio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
목록
  • 이시간 편성정보
  • 편성표보기
말벗서비스

YTN

앱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