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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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사 시행, 연명치료 중단하고 “오히려 편안히...”
작성자 : ytnradio
날짜 : 2017-10-24 11:46  | 조회 : 7160 
YTN라디오(FM 94.5) [수도권 투데이]

□ 방송일시 : 2017년 10월 24일 화요일
□ 출연자 : 최영숙 대한웰다잉협회장, 존엄사 사례자


◇ 장원석 아나운서(이하 장원석): 흔히 말해서 잘 먹고 잘 사는 것, 우리 인생에서 정말 중요합니다. 웰빙·힐링·욜로같은 것들이 삶의 질과 관련한 유행어였죠. 그런데 삶과 극단에 있는 죽음을 두고서도 우리 사회에는 고민이 많습니다. 지난 2008년 ‘김 할머니 사건’ 기억하시지요.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김 할머니 가족이 연명치료 중단을 요구해서 결국 대법원이 존엄사를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인정했습니다. 논란이 됐던 존엄사가 우리나라에서도 임종을 앞둔 환자들에게 허용됐습니다. 어제부터였는데요. 오늘은 이를 주제로 얘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먼저 대한웰다잉협회 최영숙 회장 연결하겠습니다. 회장님, 안녕하세요. 

◆ 최영숙 대한웰다잉협회장(이하 최영숙):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 장원석: 어제부터 존엄사가 가능해졌고요. 그래서 많은 분들이 헷갈려하시는 게 존엄사하고 안락사하고 헷갈려하는 분들도 있고요. 먼저 존엄사에 대해서 설명 부탁드리겠습니다.

◆ 최영숙: 종종 우리 어르신들이 이런 말씀 하시죠? ‘자는 잠에 가고 싶다’ 이런 말씀 하시죠? 그것이 바로 존엄사예요. 자신에게 주어진 천수를 누리다가 고통 없이 두려움 없이 외로움 없이 편하게 가시는 건데요. 지금 우리 많은 현실 쪽에서는 이런 죽음이 참 어렵잖아요. 중환자실에서 굉장히 고통스럽게 또 아무도 없는 곳에서 외롭게 가시는 모습들이 있는데, 이렇게 가시도록 도와주자는 것이 존엄사법이 시행되는 거고요. 안락사 이야기하셨는데 안락사는 편안하게 간다는 말은 같은 내용인데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결정을, 죽음의 방법적인 부분인데 의사의 조력으로 인한 자살이라고 얘기할 수 있어요. 왜냐면 스스로 내가 내 목숨을 끊기는 참 어렵잖아요, 회생이 불가능하다고 할 때. 그래서 의사들의 도움을 받아서 약물이나 어떤 방법을 통해서 자신의 죽음을 선택하는 거거든요. 의사 조력 자살, 이걸 우리가 쉽게 이야기하는 안락사라고 얘기할 수 있고요. 존엄사는 편안하게, 자연스럽게 자기 수명을 다하면서 외롭지 않게 고통스럽지도 않게 사는 것이 존엄사라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 장원석: 상대적으로 봤을 때 안락사는 존엄사에 비해서 수명 단축을 앞당기는 그런 의미도 담겨있을 것 같기도 하고요. 존엄사에 대해서 의미를 쉽게 설명해 주셨는데, 조금 어렵게 설명하자면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들에게 연명 치료를 중단하는, 이렇게 의미가 있더라고요. 임종과정이라는 게 뭘까요?

◆ 최영숙: 임종과정이라고 하면, 보통 우리는 치료할 수 있고 또 치료해야 할 환자들은 당연히 치료해야겠죠. 그런데 임종과정이라고 하면 몸이 차가워지거나 호흡이 정지하기 직전이 되거나 또 더 이상 응급처치를 할 필요가 없는 그런 단계에 도달했다는 걸 아는 것이 임종과정이에요. 물론 이건 의사가 전문적으로 진단해야 하지만, 이제는 의술로나 기계로나 약물로 회복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들의 어떤 부탁이라든지 또 의사들의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의지 때문에 많은 기계나 어떤 약물을 통해서 무의미하게 회복이 될 수 없는데 연명을 계속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거죠. 그러다 보면 한 인간의 존엄도 가치도 상관없이 의술에 의해서, 가족들의 요구에 의해서 계속 시간이 연장되는 것을 얘기하죠.

◇ 장원석: 연장하는 데 있어서 생명유지 수단이 되는 것이 심폐소생술, 혈액투석, 항암제 사용, 인공호흡기, 이런 것들이 있는데 존엄사가 가능해짐으로써 이런 연명치료, 방금 제가 말씀드린 이런 수단들을 제거하게 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본인 의도, 혹은 가족의 의사에 따라서 죽음을 기다릴 수 있는 게 되겠습니다.

◆ 최영숙: 자연스럽게 마무리하자는 이야기죠.

◇ 장원석: 그렇군요. 우리나라에서는 앞서 제가 오프닝에서도 말씀드렸지만 2008년에 김 할머니 사례가 우리 사회의 존엄사에 대한 생각을 하게 만든 가장 큰 계기였죠. 또 많은 활동을 하면서 웰다잉에 대한 말씀을 해주셨는데, 존엄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신 거잖아요. 가장 큰 이유는 뭐로 꼽을 수 있을까요?

◆ 최영숙: 우리가 옛날에 ‘잘 살아보세’라는 노래를 많이 했잖아요. 그때는 우리가 경제적인 부를 축적하고 조금 더 안락하게 살아보자, 라고 노력을 했었는데 그를 위해서 우리 부모님들이나 우리 세대들이 정말 억척스럽게 사셨잖아요. 그런데 마지막에 노년이 되어지고 또 질병이 생기고 하시면서 정말 안식하고 여유 있게 지내야 하는데 마지막까지도, 사는 것도 억척스럽게 사셨는데 마지막까지도 정말 편안하게 가시지 못하시고 또 중환자실에서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고통 속에 간다는 것은 정말 한 인간적으로도 그렇고 국가적으로도 굉장히 이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래서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그들을 좀 더 편안하게, 외롭지 않게 가실 수 있도록 하고 싶은데, 많은 사람들의 가족들이나 환자 본인도 이런 인식을 못 하잖아요. 어떻게 가는 것이 잘 가는 것인지, 아름답게 가는 것인지를 잘 모르기 때문에 ‘그냥 다 가는 거니까 이렇게 가는 코스인가 보다’ 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을 교육하고 또 상담하고 또 홍보해서 ‘내 마지막은 내가 이렇게 가고 싶다’ 이런 정리를 할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것이 존엄사에 대한 필요가 아닌가, 라고 생각합니다.

◇ 장원석: 그렇군요. 회장님, 저희 이쯤에서 실제 관련 사례를 경험하신 분 말씀을 들어보고서 계속 이야기를 나눠가겠습니다. 가족 중에서 실제로 임종과정에 있던 분이 있었고, 그래서 연명치료 중단을 고민했었던 사례를 경험했던 분을 어렵게 저희가 한 분 섭외했습니다. 연결해보겠습니다. 나와 계십니까?

◆ 존엄사 사례자: 여보세요.

◇ 장원석: 선생님, 안녕하세요?

◆ 존엄사 사례자: 안녕하세요.

◇ 장원석: 저희가 사전에 여쭤본 바로는 동생분과 관련한 이런 경험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연명치료 중단결정을 하기까지 굉장한 고민을 많이 하셨을 걸로 저희도 사려가 되고요. 그런데 최종적으로 결정을 내리게 된 이유, 계기가 있었습니까?

◆ 존엄사 사례자: 계기는요. 제가 우연치 않게 웰다잉 교육을 받았어요. 동생이 앓기 전에 웰다잉 교육을 받았는데 동생이 암 선고를 받고 바로 전이가 돼가지고 굉장히 힘들었어요. 그래도 본인은 죽음에 대해서 전혀 생각을 하지 않아요. 그런 중간에 제가 한 번 이런 얘기를 했거든요. ‘네가 반드시 이겨내겠지만, 나중에 이런 순간이 올 수도 있다. 마지막에 더 이상 치료가 안 되는 순간이 올 수도 있을 때 너는 마지막까지 치료를 하다, 끝까지 치료를 하다 가겠냐. 아까 말씀하신 네 가지 심폐소생이라든가, 이런 모든 치료를 다 하다 가겠냐. 아니면 더 이상 치료가 무의미할 때 중단하고 네가 편안하고 존엄하게 갈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이때 두 가지 중에서 너는 어느 걸 택할래’ 했더니 ‘누나, 나는 편안히 더 이상 치료를 하지 않고 존엄하게 깨끗이 나를 지키면서 가고 싶어’ 해서 의사표시를 했어요. 그래서 저희 올케하고도 얘기하고 했더니 가족도 동의하더라고요. 그게 좋겠죠. 그런데 마지막 정말 그 시점에 왔을 때 자녀는 끝까지 한다고 그랬어요, 끝까지 해본다고. 그건 가족의 마음이잖아요. 그런데 우리 올케가 ‘아빠가 평소에 이런 의사를 표시했다. 그러니까 아빠의 의견을 존중하자’ 해서 선택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중단한 후에 오히려 편안하고, 약물이 다 빠지니까요. 혈색도 돌아오고 한 보름 정도 너무나 편안하고 평소에 건강할 때 모습이 다시 돌아오고요. 다시 이거 살아나는 거 아닌가, 하는 제가 그런 생각도 했고 의사 선생님도 다시 한 번 시도해 보려고도 했어요. 그래가지고 했는데 그게 평소에 이런, 한 번쯤 고민했기 때문에 결정을 할 수 있었지만 중단한 후에 혈압이 떨어져서 아스피린 같은 게 투여가 필요한 경우가 있었거든요. 그럴 때 정말 갈등이 왔어요. 이걸 다시 취소를 해야 하나, 어째야 하나 그렇게 했는데 최종적으로는 정말 편안하게 떠날 수 있어서 떠나는 우리 동생도 그렇고 가족도 고통이 조금 덜했지 않나, 싶습니다.

◇ 장원석: 지금 의연하게 말씀해 주셨지만 그동안에 얼마나 마음고생 심하셨을 거고요. 쉽지 않은 결정을 하셨습니다. 존엄사와 관련해서 우리 사회가 얘기와 고민을 솔직하게 해야 할 때가 오지 않았나, 생각을 해서 저희 제작진도 이런 주제를 삼았고요. 또 마침 어제 존엄사가 법적으로 가능해지면서 선생님 인터뷰를 하게 됐는데, 이와 관련해서 고민을 하고 계신 다른 우리 청취자들께 조언의 말씀을 한마디 하신다면요?

◆ 존엄사 사례자: 조언의 말씀을, 제 동생이 조금 생각이 있는 애라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투병 중에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누나, 내가 가더라도 만일에 나를 통해서 다른 사람에게 메시지를 줄 수 있으면 메시지를 주도록 해. 그리고 다시 만일에 내가 살아난다면 이걸 자서전식으로 써서 다음에 이런 투병 중인 환자에게 내가 길잡이가 돼줄 거야’ 그랬는데 너무나 빨리 9개월 동안 엄청난, 현대의학이 할 수 있는 온갖 의학적 치료는 다 했거든요. 다 했는데 제가 두 가지 메시지를 받은 게 있어요. 제 동생은 50대인데 그동안 치열하게 살았어요. 사회적으로 성공도 하고 지위도 얻고 인정도 받았지만 죽음 앞에선 그 모두가 무의미했어요. 그리고 두 번째는 요즘 현대의학이 암을 극복했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저희 가족은 극복되리라고 봤어요. 워낙에 건강하고 의지의 한국인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어서 반드시 극복하리라는, 극복한다, 이렇게 생각했는데, 그 현대의학의 암의 극복이라는 단어 자체가 개인에게는 더 큰 고통의 연장이라는 걸 저는 알았어요. 더 센 약물로 더 크게 고통을 주고 극복할 수 있는 사람은 살아나는 거죠. 그래서 이런 걸 보면서 인간이 한계가 있구나. 그래서 우리가 건강할 때 누구나 죽을 수 있는 것에 대해서 한 번쯤 생각을 해보고 생각으로 끝날 게 아니라 준비하는 게 필요하다는, 이게 중요하다는 생각했어요. 동생이 굉장히 말도 잘 알아듣고 사회적 지위도 있지만 그 앞에서 감히 ‘너 이제 죽거든. 그러니까 이렇게 준비를 해야 되거든’ 이런 말을 못하겠더라고요. 그런데 건강한 사람에게는 할 수 있잖아요. 우리가 한 번 죽을 수 있으니까 죽음에 대해서 준비는 한 번쯤 하십시다, 이렇게 할 수 있어서 마지막으로 우리 동생이 존엄한 죽음을 선택한 결과, 본인이 우선 떠날 때 편안해 보였어요. 얼굴이 마지막에 발그레하게 돌아오기도 하고. 그래서 오죽하면 제가 의사 선생님께 ‘내 동생이 살아나나 봐요’ 그랬더니 의사 선생님이 ‘그래서 해보려고요’ 이런 말씀도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오히려 편안하지 않았나, 마지막 시간이 그래도 행복하지 않았나. 그 고통이 없는, 차라리 고통이 빠지더라고요. 더 이상 치료를 중단했을 때. 그리고 두 번째, 본인이 그렇게 편안히 가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지켜볼 수 있는 가족, 보내는 가족은 ‘이렇게 편안히 떠나는구나. 잘 가. 아프지 않은 세상에서 다음에 잘 살아. 떠나서 아버지어머니 만나고 행복하게 살아. 이제 더 이상의 아픔은 없어’ 이렇게 해서 보낼 수 있어서 저도 지금 이 말씀을 드릴 수 있는 거 아닌가, 그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이런 경험을 했습니다.

◇ 장원석: 지금 듣고 계신 분들 중에서 모든 분들이 비슷한 사례는 아닐 수 있겠지만 어쨌든 저희도 나름 깊은 곳에서 고민해볼 수 있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오늘 저희가 이야기 잘 들어봤고요. 어려우셨을 텐데 말씀 참 잘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 존엄사 사례자: 고맙습니다. 수고하십시오.

◇ 장원석: 사례를 겪으신지 얼마 안 된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저희 제작진도 조심스럽게 인터뷰 요청을 드렸고요. 본인 요청에 따라서 신원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이 점 청취자 여러분의 양해를 부탁드리겠습니다. 계속해서 웰다잉협회장과 계속 얘기해보죠. 회장님, 나와계시죠?

◆ 최영숙: 네.

◇ 장원석: 말씀 들어봤는데 저희가 현실적인 것도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아요. 본인 의사가 가장 중요하고요, 연명치료 중단. 그리고 나머지 다른 것도 생각해 봐야 하잖아요. 환자 본인이 의사를 표시할 수 없는 경우에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 최영숙: 제일 중요한 것은 본인의 자발적인 의지, 이게 굉장히 중요하고요. 그런데 만약 없을 경우에 여러 사례가 있는데, 평소에 자신이 작성해놨다면 의식이 없어도 의사 두 사람이 그 의향서를 확인하고 판단해서 이걸 할 것인가 말 것인가 결정할 수 있고요. 만약에 의향서를 작성해 놓지 않았다면 가족 두 명이 우리 부모님의, 그분의 의사를 충분히 대변하는 진술과 의사 두 사람이 판단해서 결정할 수 있어요. 그런데 만약 의식도 없고 의향서도 작성하지 않았다면 가족 전원이 합의해야 해요. 여기서 가족이라는 것은 가족관계증명서를 통해서 확인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죠.

◇ 장원석: 그런데 가족이 없고 본인이 의사를 표시할 수도 없고, 이러면 어떡합니까?

◆ 최영숙: 가족이 전혀 없는 경우는 법적으로 의사와 이런 사례를 통해서 고민하고 상의해서 결정을 하도록 돼 있어요.

◇ 장원석: 그렇군요. 그리고 어제부터 존엄사 시행 첫날이었기 때문에 실제로 임종과정에서 연명치료를 거부한다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신청하신 분들도 있다고 하는데, 지금 대한웰다잉협회에서도 시범사업기관으로 선정이 됐더라고요. 어떤 도움을 주고 계십니까?

◆ 최영숙: 저희들이 그전까지도 오랫동안, 10여 년 동안 사전연명의료의향서의 중요성·필요성에 대해서 교육도 하고 상담도 많이 했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것이 법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냐를 많이 물었어요. 그런데 법적으로 이게 된 것은 2년 전이잖아요. 이제 실행하는 것이 지금이고요. 그래서 이것은 그전까지는 당신이 써서 가지고 계시다가 가족들에게 줘서 의사에게 전달되면 의사가 참고하고 의사가 판단할 겁니다, 라고 했었는데 이제 어제부터 이게 법적으로 시행이 되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호응도가 되게 높아요. 어제도 다 쓰시겠다고, 남편 것도 쓰면 안 되겠냐, 우리 부모님 거 쓰면 안 되겠냐고 하는데, 아닙니다. 절대 본인의 의사를 가지고 본인이 써야 합니다, 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우리는 다 그렇게 생각하고 합의하고 있어요’ 해도 본인이 써야 하잖아요, 자의적으로. 그다음에 본인이 쓰지만 강요에 의해 썼다든지 아니면 다른 여러 가지 방법들은 통하지 않으니까 본인이 충분히 해석하고 이해하고 써야 하고요. 그래서 우리가 어떤 준비를 해야 하냐고 하면, 건강할 때 이걸 쓰면 참 좋은데 좀 전에 사례자의 이야기처럼 건강하지 못할 때는 본인도 그렇고 가족들도 굉장히 힘들어지는 그런 모습을 보게 되죠. 그래서 미리미리 내 죽음을 만약에 가망이 없다면, 회생 가능성이 없다면 어디에서 정리할 것인가, 장소. 정말 내가 집에서 갈 것인가, 병원에서 갈 것인가, 호스피스에서 갈 것인가, 이런 것들도 생각해서 결정해야 하고. 그다음에 좀 전에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심폐소생술, 이 부분도 체크해야 하고요. 그다음 중요한 것은 통증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너무 아프니까. 통증은 나는 이렇게 하고 싶다. 그다음에 마지막에 내가 얼마 남지 않았다면 내가 마지막에 꼭 하고 싶은, 버킷리스트라고 할까요? 유산이라든지 정리할 물건이라든지 만나야 할 사람들이라든지, 이런 것들을 정리하시는 걸 도와드리고, 또 하나 더 하면 장례를 어떻게 할 것인가. 이것도 예전에는 동네에서 친척들이 했었는데 요새는 자녀들의 숫자가 적고 또 많은 장례문화가 바뀌다 보니까 내 장례에 대해서도 내 의지를 충분히 표시해놓는 것이 좋더라고요. 이런 도움을 드리고 있습니다.

◇ 장원석: 알겠습니다. 오늘 저희가 심각하게, 그리고 가볍지 않게 고민해야 할 부분에 대해서 오늘 이야기해봤습니다. 존엄사.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 최영숙: 네.

◇ 장원석: 지금까지 최영숙 대한웰다잉협회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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