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규의 행복한 쉼표,
  • 방송시간 : [일] 20:20~21:00
  • 진행: 이성규 / PD: 박준범 / 작가: 이혜민

인터뷰 전문

[잠시만요] "20년 동안 자장면 봉사한 관중회, 시작은 그릇 도난 때문?"
작성자 : ytnradio
날짜 : 2022-10-04 11:58  | 조회 : 1038 

방송 : YTN 라디오 FM 94.5 (20:20~21:00)

날짜 : 2022102(일요일)

진행 : 이성규 교수

대담 : 김동준 관중회 대표, 김영현 총무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잠시만요] "20년 동안 자장면 봉사한 관중회, 시작은 그릇 도난 때문?"

 

이성규 교수(이하 이성규)> 우리나라의 유명한 요리사 한 분은 이 음식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검은 늪아. 평생 빠져나오지 못할 기름지고 걸쭉한!’ 어떤 음식인지 짐작이 가시죠? , 바로 짜장면입니다. 지금처럼 배달 음식이 흔하기 전에 짜장면은 사실 유일한 배달 음식이자 어쩌면 패스트푸드였죠. 입학식이나 졸업식에도 이삿날에도 울고 웃는 매 순간마다 짜장면이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온 국민과 함께 하는 음식이라 물가를 얘기할 때 기준이 되는 음식도 바로 짜장면인데요. ‘어머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죠라고 노래할 만큼 가난한 시절을 떠올리는 음식이기도 합니다. 달고 또 고소하고 매혹적인 향을 지닌 짜장면, 오늘은 이 짜장면을 남들에게 대접해 온 분들을 모시고 이야기 드려보려 합니다. 안녕하세요. ‘이성규의 행복한 쉼표, 잠시만요진행을 맡고 있는 서울시립대학교 이성규 교수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밥을 대접하는 것이 가장 큰 덕을 쌓는 일이라는 말이 있죠. 그만큼 음식을 하는 것이 수고와 정성이 필요한 일이라는 의미일 텐데요. 다른 사람에게 밥을 대접하는 것이 가장 큰 덕을 쌓는 일이라는 말이 있죠. 그만큼 음식을 하는 것이 수고와 정성이 필요한 일이라는 의미일 텐데요.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서울시 관악구 중화요리 봉사회입니다. 김동준 대표 김영현 총무가 자리하고 계시는데요. 작심삼일이라는 표현이 있죠. 마음먹은 일을 사흘도 하지 못 하고 흐지부지 했을 때 하는 말인데요. 그래서 요즘은 삼일은 해야 겨우 작심, 즉 마음을 먹은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작심삼일도 이렇게 힘든데, 나에게 크게 이익이 되는 것도 아닌데 봉사활동을 20년 동안 해 온 분들이 있습니다. 서울시 관악구 중화요리 봉사회가 바로 그런 곳인데요. 봉사회의 김동준 대표, 김영현 총무와 얘기 나눠 보겠습니다. 두 분 반갑습니다.

 

김동준 대표(이하 김동준)> 반갑습니다.

 

김영현 총무(이하 김영현)> 반갑습니다.

 

이성규> 김동준 대표님, 제가 앞에서 관악구에 있는 중화요리 봉사회다이렇게 소개를 드렸는데, 그래서 이 모임이 관악구 중화요리 모임, ‘관중회이런가요?

 

김동준> 그게 아니고요 관악구 중화요리 봉사회 약칭이 관중회입니다. 관악구에 있는 중화요리 중, (봉사)회의 회, 그래서 관중회.

 

이성규> 김영현 총무님은 관악구 중화요리 봉사회에 함께 계신데, 댁도 관악구세요?

 

김영현> 원래는 관악구에 살다가 10년 전에 양천구로 이사를 가서 봉사는 지금 관악구로 계속 다니고 있죠.

 

이성규> 그러면 지금 관악구 중화요리 봉사회가 회원 규모는 어떻게 돼요?

 

김영현> 모임 할 때는 83군데 정도 했었는데요. 지금은 많이 중국집이 줄어들어 가지고 지금은 50군데가 중국집이 있고요. 우리 모임 회원들은 30군데 정도 됩니다.

 

이성규> 김동준 대표님이 생각하기에 왜 이렇게 회원수가 줄어든 것 같아요?

 

김동준> 물론 연세 드신 분들도 있고 또 특히 이번에 코로나 때문에 너무 힘들어서 폐업을 하신 분들이 지금은 많아요.

 

이성규> 안타깝네요. 김동준 대표님, 언제부터 이렇게 중화요리를 하게 되셨나요?

 

김동준> 제가 고등학교 1학년, 1979년도 516일에 서울에 올라와서 기술을 배워야 하는데. 배울 데도 없다 보니까 아는 지인 분을 통해서 중식에 그때 처음 발을 들였죠.

 

이성규> 그때 사업을 하신 거예요, 바로?

 

김동준> 아니죠. 그때는 보조부터 시작해서, 제가 30대 중반이 돼서 결혼하고 그러고 나서 사업을 시작한 거죠.

 

이성규> 김영현 총무님께서도 어쨌든 중화요리를 하셨을 거 아닙니까?

 

김영현> 그렇죠. 저도 회장님하고 비슷하죠. 서울 올라와서 돈 벌어가지고. 거의 비슷해요, 지금 중국집 영업하시는 분들이. 어려서는 밑에서 잔일 하고 몇 년 동안 기술을 배워서 돈을 모아서 거의 다 그렇게 영업을 하는 사람들이죠.

 

이성규> 그러니까 총무님께서도 처음에 일부터 시작하셨어요?

 

김영현> 그렇죠. 배달도 하고 설거지도 하고. 그런 거 안 하면 기술을 배울 수가 없죠.

 

이성규> 그렇게 하면서 기술이 잘 배워지던가요?

 

김영현> 좀 힘들죠.

 

이성규> 김동준 대표님은 중국집 하기도 바쁘실 텐데 관중회라는 걸 어떤 생각으로 만드셨어요?

 

김동준> 그때 당시에 회원 분들이 서로 경쟁이 너무 치열하고, 또 우리가 직원을 채용해 놔도 옆에서 또 빼가고, 또 배달 가면 그릇도 몰래 수거해 가고. 서로 다른 업소 사장님들끼리 보면 인사를 해도 인사도 안 받고. 그래서 나중에는 몇 집이 어울려서 우리 좋은 뜻을 한번 모아서 회를 하나 만들어서 이렇게 경쟁하는 걸 없애자. 그래서 맨 처음에 초기 단계가 그렇게 돼 가지고. 모이다 보면 또 사장님들끼리 술 한잔 먹고 (이러는 건)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에, 우리가 그러지 말고 이렇게 모인 김에 차라리 봉사하는 쪽으로 한번 장소를 섭외해서 가자, 해서 뜻있는 몇 분이 이렇게. 그때 당시 선의관악종합사회복지관(현 강감찬관악종합사회복지관)에 찾아가서 관장님한테 이런 봉사회가 있는데 시간을 내주면 우리가 여기서 어르신한테 맛있는 짜장면을 만들어서 봉사로 대접을 하겠다’. 그래서 맨 처음에 그런 취지로 시작된 겁니다, 20년 전에.

 

이성규> 근데 솔직히 말씀해 주세요. 김영현 총무님 집에서도 그릇 훔쳐갔어요?

 

김영현> 우리는 사장이니까 배달하는 애들이 훔쳐왔는지는 모르죠. 그러다가 그릇에 각자 가게 이름을 찍었죠. 그래도 계속 줄어들어요.

 

이성규> 근데 처음부터 봉사단체가 아니었는데, 봉사활동을 이렇게 오랫동안 하셨어요. 총무님 생각은 어떠세요?

 

김영현> 그때 회장님 말씀대로, 모임을 먼저 해서 하다가 선의복지관에 짜장면을 한두 번 해주다 보니까. 이게 반응이 좋으니까 동네 어른들까지 모시고 이거를 주기적으로 한번 해보자. 그러다 보니까 이게 솔직히 말해서 일이 커져버린 거죠. 커지니까 여기저기서 우리도 와서 해주라’, 노인정에서. 그러다 보니까 구청에서 무슨 상을 받고, 상을 받고 나니까, 부인들도 거기 처음에는 왜 가냐, 했는데 상을 받으니 호응을 하고. 그래서 상도 받았으니까 이걸 주기적으로 하자, 그렇게 된 거죠. 그러다 보니까 정리가 딱 돼서 쉬는 날 서로 돌아가면서 하게 된 게 지금 20년 동안 하게 된 거죠.

 

이성규> 20, 강산이 두 변 변했어요. 김동준 대표님, 요즘 식자재비가 난리잖아요. 아닐 때도 있었겠지만 부담은 부담이잖아요. 어떻게 조달하셨어요?

 

김동준> 모든 회원분들이 회비를 십시일반 조금씩 보태서 거기서 회비를 하고. 또 저희 회를 위해서 후원해 주는 회사가 있어요. 근데 그 사장님이 지금까지 쭉 20년 동안 변하지 않고 조금씩 도움을 줘서 그게 제일 큰 힘이 됐습니다.

 

이성규> 회비보다 훨씬 비중이 높았나요?

 

김동준> 그렇죠. 한 달에 후원해주는 금액으로 따지면 20만 원 정도 되는데, 물론 그분이야 조금이지만 우리한테는 그만큼 큰 거죠.

 

이성규> 근데 20년 전이니까, 새로운 멤버들이 지속적으로 들어와야 되지 않겠어요? 회장님 생각에는 어떠세요?

 

김동준> 그건 맞는 말씀인데요. 지금은 회원 분들 중 30대는 별로 없어요. 그리고 너무 힘들다 보니까 새로 개업하신 분들이 없어요. 그리고 이제 은퇴하시고 자녀분들한테 맡겨서 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그분들은 30대인데 가끔 한 번씩 나와요. 아빠가 못 나오면 자기가 대신해서 나오고. 지금 그런 실정입니다.

 

이성규> 근데 회장님도 중요하지만, 총무님이 회원들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증원을 할까, 신경을 써야 되는데요.

 

김영현> 그게 제일 어렵죠. 제가 항시 임원님들하고 이야기하는 게, 우리가 이렇게 나이 먹고 힘들어지니까 젊은 층을 좀 끌어들이자. 그런데 그게 제일 힘들어요. 안 가려고 해요. 봉사라는 게 자기한테 이익이 안 되니까 안 하더라고요.

 

이성규> 봉사하면 마음이 흐뭇해지고 도파민이 나오는데 왜 안 하려고 할까요?

 

김영현> 우리는 봉사 끝나고 나면 재밌고, 정말 성취감이라는 게 생기고, 또 봉사하러 갈 때는 책임감도 생기고 이런 게 있는데. 젊은 사람들은 그런 게 없으니까 안 하려고 하더라고요.

 

이성규> 안 해봐서 모르고, 모르니까 안 하고. 이게 악순환이네요.

 

김동준> 기존에 하고 있는데 자기가 와서 하려면 쑥스러운 면이 있으니까. 그래서 나오기 꺼려하는데, 물론 저희 회장 입장이나 우리 총무님 입장을 가서 잘 설득을 해야죠.

 

이성규> 어떻게 하세요?

 

김동준> ‘그냥 나와서 우리 같이 봉사하자’. 그리고 회에 들어와서 서로 회원 분들 얼굴 익히고. 그러면 많이 참석 못 해도 1년에 세 번, 네 번씩은 참석을 해요.

 

이성규> 그러면 서너 번 참석하는 사람을 더 많이 참석하게 하기 위한 방법을 회장님이 구상하고 계신 거 있어요?

 

김동준> 물론 저희들도 돌아가면서 전화를 하거나, 또 우리 회원 분들이 찾아가서 어려운 일 없는지, 또 가게 운영을 하면서 부탁하고 싶은 거 있으면, 우리가 이제 얘기를 하면 우리 임원님들끼리 모이고 그래서 서로 해결해 줄 수 있는 방법은 좀 많이 해결을 해 주죠.

 

김영현> 많이 찾아가죠. 많이 찾아가서 이야기를 해야 해요. 설득을 하죠. 그러면 조금 누그러져서 설득이 돼요.

 

이성규> 그런데 한때, 서울시 디딤돌 사업이라고 해서 동네 어려운 사람들한테 짜장면이나 짬뽕을 한 그릇씩 드리는 무료 봉사, 한 적도 있죠?

 

김동준> 있습니다. 지금도 저희 집에 팻말이 있어요. 그게 아마 오세훈 서울시장 때 시작을 해서 저희 집에 지금도 팻말이 있는데. 가끔 오시는 분들은 있어요. 아직도 있어요. 연세 드신 분들은 와서 먹고, ‘나 그냥 갈게그러면 두말 안 해요. 그냥 드립니다.

 

이성규> 총무님 매장에도 가끔 그런 분들 오세요?

 

김영현> 저는 관악구에서 할 때는 왔었는데, 제가 10년 전에 이사를 가고 가게를 강서구에서 했어요. 그런데 저는 코로나 때문에 아주 직격탄을 맞은 사람이에요. 매출이 절반 떨어져가지고 2년 버티다가 가게를 접고.

 

이성규> 지금은 봉사만 나가세요?

 

김영현> .

 

이성규> YTN 라디오 <이성규의 행복한 쉼표, 잠시만요>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오늘은 관악구 중화요리 봉사회, 관중회의 김동준 대표, 김영현 총무와 함께 자장면이 있는 봉사활동에 대해 얘기 나누고 있습니다. 노래 하나 추천해 주시겠어요?

 

김동준> 제가 김연숙의 <초연>을 신청하고 싶어요.

 

이성규> 사연이 있으세요?

 

김동준> 저희 아버님이 실향민이시거든요. 이국에서 내려오셔서 저희들 키우실 때 얼마나 힘들었을까. 근데 20년 전에 돌아가셨는데 가끔 내가 힘들 때 아버님이 생각이 나요. 그래서 그 노래를 가끔 들으면서 따라도 부르고 해서. 오늘은 <초연>이 듣고 싶어요.

 

이성규> 눈시울이 뜨거워지시는 김동준 대표님, 아버님 보내드리는 그때부터 봉사를 시작하셨군요. 김동준, 김영현 총무 두 분이 소개해 주신 김연숙의 <초연> 듣고 오겠습니다. <이성규의 행복한 쉼표, 잠시만요>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오늘은 따뜻하고 정성이 담긴 중화요리로 어려운 이웃을 돕는 관악구 중화요리 봉사회의 활동 이야기 나누고 있습니다. 노래가 나올 때 우리 회장님이 정말 초연한 표정과 목소리로 따라 하시던데 가끔 부르시긴 하세요?

 

김동준> 가끔 부릅니다.

 

이성규> 총무님도 들으셨어요? 잘 하시던가요?

 

김영현> 나보다는 못하는 것 같아요.

 

이성규> 축하드릴 일인데, 이번에 서울시 복지대상 받으셨더라고요. 언론에 보니까 오세훈 시장하고 사진 찍은 것도 나오고 그러던데, 대상은 제일 높은 거잖아요?

 

김동준> 그렇죠. 글쎄요, 모르겠습니다. 저희한테 왜 이렇게 큰 상을 주셨는지. 또 어떻게 보면 20년 동안 했던 보상이 아닌가. 그리고 앞으로 더 열심히 더 많은 곳에서 봉사하고 주시지 않았나,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성규> 이 봉사활동을 정기적으로 하세요?

 

김동준> 전에는 선의복지관인데 지금은 강감찬사회복지관으로 바뀌었어요. 그래서 거기는 1년에 10번 정기로 하고. 봄철 되면 장봉도라는 섬이 있어요. 거기를 갑니다. 거기 가서 짜장면 탕수육 다 만들어주고. 또 두 번은 관악구관 내에 어려우신 분들이 사시는 데가 있어요. ‘마마 식당이라고, 거기서 두 번씩 봉사해서 1년에 총 13번 정도는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이성규> 그러면 한 번 나가실 때 몇 분 드실 짜장면을 만드세요?

 

김동준> 거의 300분 이상이 돼야 돼요. 장봉도는 특별한 데라서, 배 타고 회원들끼리 가실 분들은 야유회 겸 바람 쐴 겸 가서 봉사도 해드리고.

 

이성규> 김영현 총무님, 숫자가 꼭 중요한 건 아니지만 20년 동안 해드린 짜장면 숫자가 어떻게 될까요?

 

김영현> 글쎄요. 제일 적게 할 때가 250그릇, 300그릇 이러니까. 제일 저희들이 많이 할 때가 2시간 만에 1200그릇 할 때가 있었어요. 어느 교회에서 어르들 무료로 짜장면을 한번 해주고 싶다. 부탁을 해서 저희들이 한번 가서 했는데 그때가 제일 많이 한 것 같아요.

 

이성규> 그것도 관악구 교회입니까? 관악구 구청장님도 상을 그래서 주신 거예요?

 

김영현> 그래서 아마 준 걸로 알고 있어요.

 

이성규> 그 소문이 이제 서울시 본청까지 나가서 대상 받으신 거구나. 그러면 2003년에 만들어졌으니까 6~7만 그릇은 나오겠네요. 배고픈 사람에게 밥 한 끼 대접하는 것이 정말 소중한 일인데, 밥이라는 게 하다 보면 장소도 필요하고 면 요리는 시간도 좀 걸리잖아요. (시간) 지나면 맛도 없고. 어떻게 하세요? 총무님 말씀 한번 해주세요.

 

김영현> 그러니까 연락이 오면, 관악구에서도 연락이 오고 회장님한테 직접 연락하시는 분들도 있고. 특히 노인정 같은 데서 연락이 오면 저희 임원진들이 전화 받고 장소 모색을 하고. 가서 할 수 있는 장소가 있는지 없는지 그걸 보고 인원수 확인하고. 그래서 가서 하는 거죠. 해달라고 해서 무조건 하는 건 아니고.

 

김동준> 그런 것보다도요, 저희가 2007년도인가 그때 당시에 조그마한 장비를 구입을 했어요. 버너도 구입하고 면 빼는 기계도 구입을 하고. 그렇게 조금씩 하다가 이제 갖고 다니면서, 이동 봉사죠, 쉽게 말해서. 트럭은 구청에서 지원을 받고. 예를 들어서 ‘YTN 라디오 방송국에서 해달라그러면 우리가 답사를 해서 할 수 있는 장소면 오케이하고 차를 갖고 와서 장비 싹 싣고 와서 즉석에서 해드리죠. 그렇게 조금만 하다가 나중에는 저희가 MBC 사회봉사 대상을 받았어요. 거기에서 성금이 생겨서 장비를 최신식으로 싹 바꿨죠. 네 그래서 지금은 그 장비로, 차를 지원받아서 이동 봉사로 해서. 면도 즉석에서 오시면 즉석에서 조리 다 하고 즉석에서 만들어 드리니까. 그러니까 어르신들이 굉장히 좋아해요.

 

이성규> 그럼 한 번 봉사하실 때 몇 분이 동원이 돼서 나가세요?

 

김동준> 우리 회원 분들은 보통 한 15명에서 20. 우리가 오늘 봉사합니다문자를 딱 보내면 자발적으로 회원들이 다 와요. 딱 시간 되면 와서 질서정연하게 나는 뭐 할게’, 이렇게 딱딱 분야가 맡아져서 서빙까지 다 우리 회원 분들이 해요.

 

이성규> 나중에 ‘YTN 이성규의 행복한 쉼표 잠시만요와 함께 봉사 활동을 같이 할 때도 그렇게 해주실 수 있나요?

 

김동준> 해 드려야죠.

 

이성규> 그런데 김동준 대표님이 보시기에, 아까 말씀하셨어요, 코로나 때문에 많은 분들이 문을 닫으셨다고. 그런데 이분들 중에도 아직도 봉사 나오시는 분 계신가요?

 

김동준> 다 나오고 있습니다. 전에 매장을 폐업하셨던 분들도 다 같이 봉사한다고 그러면 지금도 다 참여해요.

 

이성규> 20년 동안이니까 각종 일화들이 있을 거예요. 봉사활동 하시면서 오늘은 진짜 내 기억에 남겠다’, 기억에 남고 의미 있게 생각되는 그런 봉사활동 남는 거 있으면 말씀해 주시겠어요?

 

김동준> 저 같은 경우는 여러 지역을 다녔는데요. 제가 제일 기억에 남는 건 소록도 갔을 때. 어르신 분들이 손목 잡으면서 너무너무 고맙다고. 그때 제일 제 마음에 봉사가 이런 거구나’, 너무 뿌듯했고. 또 하동 쌍계초등학교 갔을 때는 학생들이 다 손편지 써서 너무 고맙다고 써준 거. 그게 제일 또 기억에 남고. 특히 장애아 시설에 갔을 때는 말 그대로 우리를 얼마나 기다렸는가. 그때 차에서 내리자마자 와서 끌어안고 고맙다고 인사할 때. 와서 끌어안고 고맙다 그러고. 또 먹고 나서는 고맙다 그러고. 잘 먹었다 그러고. 갈 때는 차에다 손 흔들어줬던 그때가 내가 멈추지 않고 봉사를 할 수 있는 힘이 이런 데서 생기는구나그런 걸 많이 느꼈습니다.

 

김영현> 저 같은 경우는 장봉도 혜림원 장애인들, 말도 어눌한데 그런 사람들이 고맙다 하고 그럴 때가 제일 막 가슴 뭉클하죠. 그리고 하나 또 기억나는 건, (봉사) 가면 외부 음식을 반입을 못 하게 해요. 먹고 바깥으로 나가게 하는데, 노인네들은 가지고 가서 오래 놔두면 상하니까. 한 할머니가 오셔가지고 할아버지 갖다 드리려고 하는데, 거동을 못 하니까. 그런데 우리 회원들이 못 갖고 가게 하니까 우리한테 욕하고 그럴 때.

 

이성규> 결국 어떻게 하셨어요?

 

김영현> 못 주죠. 잘못되면 안 되니까. 그때가 너무 어리둥절해서 기억이 나요.

 

이성규> 어쨌든 20년 동안 이렇게 달려오셨는데, 앞으로 계획은 어떠세요?

 

김동준> 앞으로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또 열심히. 또 우리를 항상 어디선가 기다리시는 분 어르신들도 있고 청소년들도 있기 때문에 제가 힘 닿는 데까지는 아직까지 봉사하려고 그렇게 마음먹고 있습니다.

 

이성규> 아버님 고향 가서도 한번 해 보고 싶으세요?

 

김동준> 통일이 되면 바로 가고 싶죠. 가면 저희 작은아버님도 계시고. 아버님이 연세가 드셔서, 돌아가신 지가 20년 됐고 100세가 넘으셔서. 친척 분들이 있긴 있는데 통일이 되면 가야죠.

 

이성규> 김영현 총무님은 계획이 어떠세요?

 

김영현> 저도 그렇죠. 아무리 나이가 먹어도 아직 기술이 있기 때문에 앞으로 계속 할 생각입니다. 몸이 허락하면 계속 하려고요.

 

이성규> 두 분은 봉사활동하시면서 무슨 생각이 드세요?

 

김동준> 저도 나이가 지금 60세 들었는데, 나도 10년 후면 저렇게 될 건데. 다시 내 후배들한테 나도 저렇게 받아먹을 건데. 내가 살아서 힘이 있을 때 열심히 해야 되겠다. 열심히 해놓으면 내가 나이가 어느 정도 들고 노인이 되면 내가 힘이 없을 때 봉사하는 데 가서 나도 한 그릇 얻어먹을 수 있지, 내가 먼저 베푼다고 생각하고 먼저 지금 다 베풀어 놓습니다.

 

김영현> 저도 그렇죠. 최선을 다해야 되고, 봉사를 하다 보니까 이건 희생이라는 걸 배웠어요. 희생이라는 걸 배웠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책임감, 희생 그런 생각으로 할 겁니다.

 

이성규> ,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오늘은 관악구 중화요리 봉사회의 김동준 대표, 김영현 총무와 함께 20년 동안 맛있는 짜장면과 탕수육으로 어려운 이웃에게 따뜻한 사랑을 전한 얘기 나눠 봤습니다. 두 분 오늘 나와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YTN 박준범 (pyh@ytnradi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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