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라디오생활
  • 방송시간 : [월~금] 10:30~11:30
  • 진행: 박귀빈 / PD: 이은지 / 작가: 김은진

인터뷰 전문

석호필이 화성에서 목격한 충격적 진실 “31km”
작성자 : ytnradio
날짜 : 2021-04-16 12:32  | 조회 : 1917 
YTN라디오(FM 94.5) [YTN 뉴스FM 슬기로운 라디오생활]

□ 방송일시 : 2021년 4월 16일 (금요일)
□ 진행 : 최형진 아나운서
□ 출연 : 서철모 화성시장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최형진 아나운서(이하 최형진): 오늘은 화성시 소식인데요. 1919년 3월 1일, 조국 독립을 위한 독립만세운동은 서울뿐만 아니라 전국으로 삽시간에 퍼졌습니다. 경기도 화성에도 당시 격렬했던 만세운동의 역사 현장과 이를 탄압한 일본군의 학살 현장이 남아 있다고 하는데요. 바로 제암, 고주리 학살사건 현장입니다. 어제 102주년을 맞아 제암, 고주리 학살사건 추모제가 열리기도 했는데요. 서철모 화성시장 연결해 자세한 내용 들어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 서철모 화성시장(이하 서철모): 네 안녕하세요. 

◇ 최형진: 3.1운동 당시 일제의 화성 4.15 제암리, 고주리 학살사건에 대해 모르고 있는 분들도 많을 것 같은데, 자세한 설명 좀 해주시죠. 

◆ 서철모: 화성은 3.1운동 당시 전국에서 가장 치열하고, 조직적이면서도 공세적으로 일제에 맞서 싸운 지역이었습니다. 화성에서 3.1운동 이후에 3월 26일부터 대규모 만세시위가 있었는데요. 그로 인해서 일제는 화성시민을 탄압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일반인들이 모르는 것 중 하나가 화성에서는 공세적으로 만세운동이 이뤄져서 일본 순사 두 명이 처단되게 됩니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이걸 단순한 시민운동으로 보지 않고, 훨씬 크게 확산될 수 있다는 염려 때문에 화성시 제암리에 군대를 투입하게 됩니다. 군대를 투입해서 마을 주민 23명을 제암교회에 가둔 채 총살하고, 고주리로 넘어가 독립운동가 김흥렬 씨와 일가족 6명을 처참히 학살하는 집단학살 만행 사건이 발생한 겁니다.

◇ 최형진: 3.1운동이 그 날 하루에 끝난 게 아닌 거네요, 제암·고주리 학살 사건은
어떻게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겁니까?

◆ 서철모: 4월 15일에 그 만행이 이뤄졌는데, 공교롭게 그 다음날 미국에서 화성에서 공세적으로 만세운동이 이뤄지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미국 부영사 커티스께서 선교사인 언더우드와 기자 테일러를 화성에서 이 사건을 조사해보라고 우연히 보내게 됩니다. 그 전날 제암리 학살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에 화성을 돌다가 우연히 연기가 나고 불 나는 곳을 보게 됩니다. 이걸 발견하고 나서 다른 것을 조사할 것이 아니라 이러한 만행이 이뤄졌다는 걸, 사건 발생 직후 미국 국무부와 선교회 본부에 보고하게 됩니다. 그리고 사건 발생 3일 후, 캐나다 선교사인 프랭크 스코필드 박사께서 수원에서 자전거로 제암리에 도착해, 그 참혹한 광경을 사진으로 찍고 기록하여 '일본군 잔학행위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해 세상에 공개하게 됨으로 알려지게 됐습니다. 

◇ 최형진: 이후에는 정부가 스코필드 박사의 공헌을 기려서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하기도 했고요. 스코필드 박사는 서른네 번째 민족 대표로도 불리고 있는 분입니다.

◆ 서철모: 1919년 당시에 박사님께서 이 보고서를 내고, 1920년에 독립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추방당합니다. 6.25가 끝나고 1959년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서 한국인 신분으로 영구 귀국해 사회봉사활동을 하셨고요. 국가에서는 이 분을 기리기 위해서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하게 됩니다. 이 분은 한국인으로 귀화해 석호필이란 한국이름을 가지고 계시고, 70년도에 82세로 삶을 마치고 34번째 민족대표로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되어 계십니다.

◇ 최형진: 화성시에 스코필드 박사 동상도 건립되어 있죠?

◆ 서철모: 2015년에 제암리 순국기념관 공원에 스코필드 박사의 자전거 등을 형상화해서 동상을 건립했습니다. 

◇ 최형진: 화성에서도 치열한 독립운동이 펼쳐졌습니다. 화성에서의 독립운동, 어떤 특징이 있습니까?

◆ 서철모: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화성은 전국에서 가장 조직적이고 공세적인 독립운동이 이뤄졌습니다. 화성 독립운동의 특징은 다른 지역의 독립운동은 장날 같을 때 만세운동 주도자들이 장터에 계신 분들에게 만세를 주동하면, 이 분들이 따라서 만세를 하는 형식으로 이뤄졌습니다. 그런데 화성은 그런 형식이 아니라 조직적으로 장날 전에 만세를 기획합니다. 거기에 조직적으로 만세운동을 해서 많으면 2천 명까지 참여해 몇 km씩을 걷는 형식으로 만세운동이 전개됐습니다. 그래서 다른 곳과는 다르게 횃불 등을 이용해서 면사무소, 주재소, 일본인 소학교 등에 방화도 하고, 일제에 공세적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한 독특한 역사가 있습니다. 

◇ 최형진: 시장님께서 지역 내 독립운동 역사에 대한 관심이 굉장히 많은 것 같습니다. 역사 선생님 같습니다. 제암고주리 학살 사건의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해마다 4월 15일이면 추모제를 진행하고 있다고요. 올해는 코로나19로 추모제 진행이 어려운 상황이었을 텐데, 어떻게 진행하셨습니까? 

◆ 서철모: 저희가 2019년에는 대규모로 추모행사를 치르고, 작년, 금년은 코로나로 인해 축소됐습니다. 금년에는 그 분들을 다시 상기하자는 것으로 추모제는 축소했지만, 온라인 추모제를 열고요. 제암리 기념관에 이 분들을 되새길 수 있는 전시관을 만들었습니다. 1년 간 특별전을 내년 3월까지 진행하고 있고요. 또한 이 분들을 기리기 위해 3.1운동 순국기념관을 새로 짓는 사업도 같이 하고 있습니다. 

◇ 최형진: 만세길도 조성하셨다고요?

◆ 서철모: 만세길이 의미가 있는 것이 2019년 3.1운동 100주년 기념해서, 국내 최초로 만세길 31km를 복원했습니다. 일반 분들이 어떻게 딱 31km를 했냐고 물어보세요. 3.1운동이라고 ‘31’과 연관하는데, 저희가 인위적으로 31km를 한 것이 아니고요. 저희가 그것을 전부 고증했습니다. 다른 데는 장터 같은 곳에서 몇 명 기획한 분들에 의해 우발적으로 만세운동이 이뤄졌다면, 화성은 조직적으로 기획한 만세운동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분들이 이동한 터를 역사적 고증을 통해 복원했습니다. 만세길의 독립운동가의 집터, 생가, 관공서 터, 횃불시위 터 등을 모두 고증해 만세길을 만들었고요. 만세길 시작에 방문자센터를 만들어서 안에 독립운동한 분의 이름을 한분한분 새겨 넣었는데요. 세계적으로도 인정을 받아서 2019년에는 아이코닉어워드 건축분야 대상도 수상했고요. 작년에는 IF 디자인어워드 실내건축부문 금상을 수상했고, 올해도 대한민국 공공디자인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 최형진: 굉장히 역사적인 의미도 있지만 다양한 건축상도 수상했는데, 현재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진행하고 있는 겁니까?

◆ 서철모: 현재 진행하고 있는데, 축제 형태로 진행하고 있지 못합니다. 재작년에 이걸 시작해 재작년에는 상당히 많았는데, 작년 코로나로 인해 그렇게까지 진행하고 있진 못하지만요. 방문자 센터 등을 만들어서 볼 수도 있고요. 만세길에 가면 역사탐방해설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사전 예약을 하면, 같이 다니면서 만세길에 대한 설명을 해드릴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단지 예전처럼 와서 설명을 들으실 수는 없고요. 예약 시스템을 통해서 제한된 인원 내에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 최형진: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 서철모: 고맙습니다.
 

[저작권자(c) YTN radio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
목록
  • 이시간 편성정보
  • 편성표보기
말벗서비스

YTN

앱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