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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 의류공장 사장 "北, 하나 가르치면 셋을 알 정도로 솜씨 좋았다"
작성자 : ytnradio
날짜 : 2020-06-15 11:12  | 조회 : 1043 
YTN라디오(FM 94.5) [노영희의 출발 새아침]

□ 방송일시 : 2020년 6월 15일 (월요일)
□ 출연자 : 박진성 사장 (前 개성공단 의류공장)

- 통일 초석 기회 주어져 흥분됐던 처음
- 정치적 이슈 없을 때 남북 환상적으로 일 해
- 박근혜 정부, 어떤 정세에도 영향 받지 않는다더니...
- 설비와 의류 완제품 피해 안타까워
- 보상 받을 현행법 없이 21대 국회까지 넘어왔다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노영희 변호사(이하 노영희): 6.15 남북 공동선언문 중에 경제협력을 통해 서로의 신뢰를 다져나가자는 내용이 있는데요. 그 경제협력의 대표 격이 바로 개성공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실제 개성공단은 어떤 성과가 있었는지, 그리고 중단 이후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들어보는 시간 마련했습니다. 2008년부터 2016년 중단까지 개성공단에서 의류공장을 운영했던 박진성 사장 연결되어있습니다. 사장님 안녕하세요?

◆ 박진성 사장(이하 박진성): 네, 안녕하세요. 

◇ 노영희: 2008년도였죠? 개성공단에 입주하셔서 의류공장을 운영하셨다고 저희가 말했는데, 어떻게 그 당시 처음 입주했을 때 상황이 어떠셨습니까?

◆ 박진성: 원래는 2006년도에 입주 확정이 돼서 1차 핵실험을 한 뒤에 저희는 착공을 미뤘다가 2006년 연말에 6자 회담 타결되는 바람에 2007년도 8월 20일 날 건설 착공을 해서 2008년도에 북측 근로자를 받았어요. 그때 2007년 12월 7일 날 최초로 102명을 받아서 공장을 설립 중이라서 1월부터 휴가를 보냈다가 그다음에 2008년 2월에 다시 나오게 해서 전원 교육에 들어갔었죠. 3개월 교육을 시켜서 그때부터 생산에, 건물도 완공은 다 안 됐고, 칸막이를 두고 생산에 들어갔죠.

◇ 노영희: 2006년도에 원래 배정되셨고, 2007년에 착공해서 공장을 지었고, 2008년부터 일을 하셨다. 

◆ 박진성: 네.

◇ 노영희: 그랬는데 그 당시에 어떠셨습니까? 북쪽의 이미지라든가, 당시 개성에서 북한에서 보내준 사람들을 봤거나 했을 때요.

◆ 박진성: 처음에는 그야말로 저한테도 통일 첫 페이지, 초석을 올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구나 해서 굉장히 흥분이 됐었고, 또 받아서 교육을 시켜보니 솜씨가 너무 좋더라고요. 원래 봉제 경험도 있는 사람들도 없는데, 이력서를 보니까 의사, 방송인, 공장, 조리, 농업, 이렇게 각양각색으로 받아서 봉제 교육을 시켰더니 너무 말귀도 잘 알아듣고, 아주 하나 가르쳐두면 둘, 셋을 더할 정도로 솜씨가 좋아서. 엄청나게 꿈에 부풀어 있었죠.

◇ 노영희: 그러니까 근로자로 온 사람들이 의사, 방송인, 그런 봉제와 상관이 없는 직업군도 많이 왔군요?

◆ 박진성: 그렇죠. 처음에 시범단지 쪽은 각 분야 맞는 쪽으로 많이 지원을 해줬지만 시범단지가 다 1년 가동 후에 1차 본 단지가 들어갔기 때문에 그때는 각 분야별로 그렇게 근로자가 준비되어 있는 게 아니고 경험 없는 근로자만 받아서 그야말로 손수 교육을 다 시켰죠. 끼고 하다시피 했습니다.

◇ 노영희: 옆에서 끼고서 교육하다시피 해서 결국 선수를 만드셨군요. 2008년부터 2016년까지 8년간 의류공장 운영을 하셨는데 사업이 잘되셨다면서요?

◆ 박진성: 처음에는 굉장히 어려웠죠. 이명박 전 대통령의 약속은 자기는 못 지키겠다, 그런 발언 때문에 정치적인 이슈들이 발생되고 해가지고 엄청난 시련을 겪었지만, 남측의 기술과 북측의 근로자들이 합쳐서 중간에 정치적인 이슈가 없을 때에는 그야말로 환상적으로 일을 했었죠. 정치적인 이슈만 없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왜 이렇게 정치에서 그렇게 민간사업 하시는 분들을 못하게 하는 건지 진짜 너무 아쉽더라고요.

◇ 노영희: 그러다가 2016년 2월에 북한 핵실험하고 미사일 발사로 개성공단 철수가 결정됐는데요. 깜짝 놀라셨겠어요?

◆ 박진성: 놀랄 정도가 아니죠. 2013년도에도 5개월 16일 동안 밖에 있을 때에도 너무 그때 놀랐지만 그래도 2년 동안 다시 박근혜 대통령께서 국회 단상에 나와서 어떠한 정세에도 영향을 받지 않게 정부가 보장해준다고 그래서 믿고 올라갔는데, 대통령이 약속을 한 거니까 절대 그럴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진짜 2년 동안 손해 본 것을 복귀하고 정상화시켜놨는데, 16년 2월 10일 날 구정 휴가 나와서 못 올라가게 갑자기 발표를 하는 바람에 제가 모 방송 인터뷰에 나가서 세상에 핵실험으로 들어가는 돈이 그렇게 들어간다고 하면 차라리 식량이나 이런 것으로 대체해서 하는 것으로 제한을 했더라면 그거 가지고도 그동안에 우리가 설비라든가, 의류 완제품도 가지고 나오고 피해를 반으로 줄일 수 있었는데, 너무 안타깝다고 하는 내용의 인터뷰도 하고 그랬어요.

◇ 노영희: 그 당시에 기업이 124곳이 있었고, 피해 규모가 1조 5000억 정도였다. 그리고 현재는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가능성이 이런 것에 대해서 어느 정도 체념한 상태다, 이런 이야기까지 들리던데 게다가 이번에 대북 전단살포 문제 때문에 김여정 부부장이 개성공단도 아예 폐쇄시킬 수 있다, 이런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지 않습니까? 이거 어떻게 보세요?

◆ 박진성: 그것은 너무 안타깝죠. 하여튼 정치적인 이슈는 저희들이 기업가기 때문에 전혀 논할 바도 아니고, 전공이 아니기 때문에 잘 모르겠고. 일단은 8년 동안 북측 근로자들하고 호흡을 같이 해보니까 진짜 우리나라도 60, 70, 80년대가 구로 1,2,3공단, 이런 공단들이 우리나라 발전하는 데 일조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저도 그러한 꿈만 가지고 기업에 매진하려고 했는데, 왜 이렇게 남북 간에 시끄럽고 그런지 안타까울 뿐이죠.

◇ 노영희: 그러면 앞으로 다시 돌아가서 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린다고 하면 다시 돌아가시겠습니까?

◆ 박진성: 당연히 들어가야죠. 거기에 있는 전 재산이 다 깔려 있고, 개인재산입니다. 국가에서 지원도 하나도 없이. 시범단지는 지원을 많이 받았지만, 본 단지 이후로는 전부 자력으로 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토지공사에 저희가 등기 등록이 되어 있는 개인재산입니다. 

◇ 노영희: 그런데 그렇게 개성공단에 남겨두고 온 공장 설비 등이나 사용권, 몇 십 년 동안 사용하기로 했다가 아무것도 못하게 된 이 상황. 보상을 받으셔야 하는데 그런 것은 받으셨어요?

◆ 박진성: 보상은 박근혜 대통령이 어떠한 정세에도 영향 받지 않는다고 하는 약속을 가지고 통일부 어디에 찾아가서 이야기를 하면 현행법이 없어서 안 된다고 해서 일단 20대 국회에서 엄청 법을 만들자고, 만들어달라고 하소연도 하고 그랬는데, 그냥 무마되고 21대까지 넘어온 상태입니다.

◇ 노영희: 그러면 앞으로 남북관계 어떻게 발전됐으면 좋겠습니까?

◆ 박진성: 일단 어떻게 하든 간에 화해를 해가지고 남북 교류만 하면 그 경제 전문가인 골드만삭스에서도 세계 경제의 상위권으로 돌입한다고 전문 분석도 있는데, 어떻게 하든 간에 남북 협력이 돼서 우리나라가 작은 나라지만 100년 뒤에는 그야말로 든든한 국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노영희: 앞으로 조금 더 개성공단이 활성화가 되고 재개가 됐으면 좋겠다. 이렇게 보시네요.

◆ 박진성: 그렇죠.

◇ 노영희: 알겠습니다. 오늘 말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박진성: 네.

◇ 노영희: 지금까지 개성공단에서 의류 제조공장을 운영하셨던 박진성 사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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