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 차이나
  • 방송시간 : [월~금] 06:38, 14:53, 20:36
  • 진행자: 임대근 교수 / PD: 신아람

방송내용

6/4(목) ‘5월 35일 사건’
작성자 : ytnradio 날짜 : 2020-06-04 12:02  | 조회 : 273 

 

大家好! 안녕하세요. 한국외대 교수 임대근입니다. 홍콩 문제로 중국이 계속 시끄러운데요, 이런 상황에서 오늘 6.4 천안문사건이 일어난 지 31년이 되는 날을 맞았습니다. 1989년 일어난 천안문사건은 중국 현대사의 가장 큰 비극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발단은 이랬습니다. 그해 415일에 중국 공산당 서기장을 역임하고 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을 맡고 있던 후야오방이 사망합니다. 후야오방은 2년 전에 일어났던 학생들의 시위를 적극적으로 진압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총서기직에서 물러났지만, 정치국 위원 자리만은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정치국 회의에 참가하던 중에 심장마비를 일으켜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그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이틀 뒤부터 수백 명의 대학생이 천안문 광장에 모여들어 시위를 시작합니다. 후야오방 장례식을 계기로 시위는 전국으로 확산하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학생들을 달래려고 했던 중국 당국은 시위가 점점 커지자 이를 반혁명 폭란이라고 규정합니다. 학생과 청년, 시민들이 가세하기 시작했고, 단식 농성을 하는 사람들도 생겨납니다. 시위는 한 달을 넘기면서 계속됩니다. 그런데 5월 중순 당시 불편했던 중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소련의 지도자 고르바초프가 중국을 방문합니다. 외국에서 손님이 오시니 광장을 좀 비워주자는 온건론이 묵살되면서 중국 공산당은 망신을 당했다고 생각하기에 이릅니다. 이 때문에 바로 계엄령이 발동됩니다. 후야오방의 뒤를 이어 총서기를 맡고 있던 자오쯔양은 광장으로 학생들을 찾아와 내가 너무 늦게 왔다. 어서 광장을 떠나라고 당부합니다. 결국 그해 63일 밤 장갑차와 탱크를 이끌고 중국인민해방군이 천안문광장으로 진주합니다. 끝까지 광장을 지키던 학생들이 무력으로 진압당하고 맙니다. 도대체 무고한 시민이 얼마나 희생당했는지 아직도 정확히 알 수가 없습니다. 여러 정보에 따르면 최소한 만 명 이상이 사망하거나 부상한 걸로 추정됩니다. 사건이 벌어진지 30년이 지났지만 중국 정부는 여전히 천안문광장에 관한 모든 정보를 숨긴 채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천안문사건이라는 이름조차 쓸 수 없게 하고 있습니다. 공식적인 명칭을 ‘1980년대 말 봄과 여름 즈음에 일어난 정치풍파라는 이상한 표현으로 쓰고 있을 정돕니다. 인터넷에서는 천안문사건, 6.4사건 같은 말을 아예 검색할 수도 없습니다. 이에 맞서 535일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했습니다. 감사합니다. 謝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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