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율의 뉴스 정면승부
  • 방송시간 : [월~금] 17:00~19:00
  • 진행 : 신율 / PD: 신동진 / 작가: 강정연, 정은진

인터뷰전문보기

김재규 유족”반역자의 가족으로 죽고싶지 않다...정당한 재판을”
작성자 : ytnradio
날짜 : 2020-05-27 19:27  | 조회 : 2074 

[YTN 라디오 이동형의 뉴스 정면승부]
■ 방송 : FM 94.5 (17:10~19:00)
■ 방송일 : 2020년 5월 27일 (수요일)
■ 대담 : 故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유족대표 김성신, 김양환 님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이동형의뉴스정면승부] 김재규 유족”반역자의 가족으로 죽고싶지 않다...정당한 재판을”

◇ 이동형 앵커(이하 이동형)> “각하.. 제가 어떻게 하길 원하십니까? // 각하, 계엄령은 안 됩니다.// 캄보디아에서는 삼백만 명도 희생시켰는데 백만, 이백만 밀어버린다고 큰일 나겠어요? // 각하... 정치를 좀 대국적으로 하십시오.” 영화 ‘남산의 부장들’ 예고편 중에서 

최근 개봉해서 화제가 된 영화 ‘남산의 부장들’ 예고편 일부 들려드렸습니다. 1979년 10월 26일, 정말 영화의 한 장면처럼 박정희 시대가 막을 내렸습니다. 인권유린과 장기집권 독재의 1막이 내렸고, 바로 뒤이어 신군부의 독재 통치와 광주의 비극이 있었죠. 그래서 더더욱 10.26을 제대로 이해하고 평가할 수 없었습니다. 40년 동안 빛을 볼 수 없었던 이 궁금증 최근 10.26 관련 군사법정의 녹취 테이프가 공개되며 다시 수면위로 올라왔습니다. 어제 저녁과 오늘 아침 주요매체에서 보도했는데요. 고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유족이시죠, 유족대표 김성신, 김양환 두 분 스튜디오에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 김성신 故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유족대표(이하 김성신)> 네. 안녕하세요. 

◆ 김양환 故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유족대표(이하 김양환)> 네. 안녕하세요. 
 
◇ 이동형> 예. 일단 유족대표 김성신 씨는 우리 YTN라디오에서도 여러 번 방송을 하셨고, 김양환 선생께서는? 

◆ 김성신> 저희 아버지이십니다. 
  
◇ 이동형> 김재규 장군의?

◆ 김성신> 처남과 매제 사이입니다.
  
◇ 이동형> 김양환 선생께서는 당시에, 10.26이 일어나고,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기 직전에 보안사에서 수사를 했지 않습니까? 가족들도 고초를 겪었을 것 같은데. 당시 기억나십니까? 

◆ 김양환> 그걸 고초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완전히 고립됐고, 외부와의 접촉이 안 되고, 외출도 안 되고, 생활이라고 할 것도 없었죠. 
  
◇ 이동형> 네. 이따가 자세히 또 설명해 드리겠습니다마는, 김재규 전 부장이 중간에 ‘변호인의 조력을 받지 않겠다.’ 이런 이야기를 했지 않습니까? ‘만약에 변호인의 조력을 계속 받으면 유족들을 어떻게 하겠다.’ 뭐 이런 얘기가 있었다고 하던데요?

◆ 김양환> 네. 그 얘기는 제 귀로 직접 들었습니다. 
  
◇ 이동형> 아하. 그 얘기는 직접 들으셨고. 어떤 이야기를 하던가요?

◆ 김양환> 그때 김부장님에게 동생 되는 분이 그때 같이 조사를 받고 있었죠. 그때 내보내면서 ‘현재 하고 있는 변호사들 다 해임을 해라. 그렇지 않으면 지금 식구들, 형제들 그냥 두지 않겠다.’ 분명히 해서 저에게는 둘째 처남이지만은 그분이 나와서 형님과 면회를 해서 전달하고, 그래서 여러 가지 고려한 끝에 결단을 내려서 다음 재판 때 전부 물리는 그런 과정이 있었습니다.
  
◇ 이동형> 당시 그렇게 협박을 했던 수사관은 누군지 기억이 안 나시구요?

◆ 김양환> 그것은 제가 동생에게 들은 것이라 모르겠습니다.

◆ 김성신> 그분은 현재 고인이 되셔서요. 누군지 알 수가 없죠.

◇ 이동형> 네. 그런데 유족대표 김성신 씨께서는 당시에 굉장히 어른 나이였을 텐데, 기억이 나십니까?

◆ 김성신> 그럼요. 기억이 다 나고, 명절 때마다 김재규 부장님 뵙고 인사도 드리고, 안겨 있기도 하고 해서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 이동형> 최근에 여러 자료들이 공개되면서 ‘김재규 부장이 민주주의에 심취했다.’ 이런 자료나 증언들이 많이 나오고 있거든요. 혹시 그런 걸 듣거나 보시거나 서도 같은 것도 그런 것을 많이 썼다던데?

◆ 김성신> 네. 이미 그전에 남기신 글씨라든지 이런 부분들에 ‘자유’, ‘민주’ 이런 글자들을 많이 쓰신 걸로 알구요. 아버지께서 말씀을 해주시겠지만, 젊은 시절에 공무원 생활을 같이하니까 가끔 저희 아버지한테 세상 돌아가는 물정이라든지 이런 것들을 물어보기도 하고 그러셨던 모양이더라구요. 어느 날 두 분이 독대를 하실 때, ‘유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렇게 물어보시더랍니다. 그때 당시 저희 아버지께서 굉장히 젊으시고 또 기개도 있으시니까 ‘그 유신 한 사람들 다 역사적으로 책임져야 할 것이다.’ 그렇게 말씀하셨더니, ‘너도 그렇게 생각하느냐?’라고 표현하셨다고 아버님께서 기억을 하고 계시거든요. 

◇ 이동형> 그러면 직접 제가 한 번 여쭤보겠습니다. 김재규 부장이 선생님을 통해서 국민 여론을 한 번 들어봤다. 그렇게 봐도 될까요?

◆ 김양환> 예. 여론도 여론이고, 그 당시 내 생각도 말씀드렸습니다. ‘본의든 본의가 아니든 유신에 참여를 했지 않습니까? 언젠가는 책임을 지셔야죠.’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너도 그렇게 생각하느냐?’ 그 뒤에 상당히 저하고 대화가 여러 가지 있었습니다.
  
◇ 이동형> 선생님은 10.26 이후로 고초라고 할 것도 없었다고 하셨습니다만, 공무원 생활도 그만두셨다면서요.

◆ 김양환> 네. 그렇습니다.
  
◇ 이동형> 위쪽에서 그만두라고 압력이 온 겁니까?

◆ 김양환> 그때는 공기업에 있었습니다. 공기업에 있을 때 그냥 ‘사표 내라.’ 해서 사표를 냈습니다.
  
◇ 이동형> 김재규 부장이 10.26 때만 사실은 이걸 하려고 했던 게 아니고, 그 전에 몇 차례나 사전에 준비를 하고, 실행에 옮기려고 했었다. 건설부 장관 임명장 받으러 갈 때는 권총을 품에 넣고 갔다. 이런 이야기도 있던데,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들은 이야기가 있으십니까? 

◆ 김양환> 그 당시에는 그런 이야기가 없었습니다.
  
◇ 이동형> 그러면 본인만 알고 있었던 건가요?

◆ 김양환> 네. 그렇죠. 극비죠.

◆ 김성신> 뭐 사실 그렇죠. 왜냐하면, 오히려 유족들에게 알렸더라면, 그게 더 이상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 일을 계획하시면서. 실제로 10.26 때도 가족들은 아무도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그런 일들이 벌어졌던 거죠.

◇ 이동형> 네. 79년 10.26일 날 사건이 일어났고, 이듬해 5월에 사형집행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면 40년이 지났는데요. 40년이 지나서 재심 청구를 하게 된 계기, 취지를 좀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 김성신> 저희는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40년 동안 역사적 수준에서 논의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10.26이라는 것이. 지금도 새로운 증거가 나왔기 때문에 재심이 법정으로 가능해진 것이구요. JTBC에서 봉지욱 기자가 새로운 녹취록, 그 당시 실제 재판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에 대한 녹취록을 구하게 되고, 그렇게 구한 것을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변호사님들하고 먼저 상의를 해서 이것이 재심이 가능하겠느냐 검토를 거친 이후에 유족들에게 ‘유족들이 있어야만 재심 신청이 가능하니 일이 진행되도록 도와 달라.’ 요청을 받고, 이 일이 진행이 되게 된 거거든요. 그래서 저희가 주체라기보다는 변호사님들과 봉지욱 기자가 주체가 됐고, 우리가 열심히 조력을 하고 있다. 그 취지가 맞기 때문에 그렇게 보는데요. 그런 요청을 받고 나서 들었던 생각은, 사실 10.26이라는 것은 대한민국 현대 사회의 물줄기를 정말 크게 바꾼 그런 역사적인 사건인데, 하지만 이 엄청난 역사적 사건을 두고 40년째, 이게 민주주의를 위한 혁명이었는지, 아니면 권력을 위한 반역이었는지 설왕설래하고. 그런 논의에서 ‘한 발자국도 못 나갔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역사가 되기 위해서는 역사적 논의가 필요하고, 역사적 논의의 수준이 필요한 것인데 이 재심의 과정들을 통해서 ‘우리 국민들이 다시 10.26의 의미 더 나아가서는 우리가 누리고 사는 민주주의의 가치, 이런 것들을 한 번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지 않겠나?’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 이동형> 그럼 방금 이야기하신 녹취파일, 잠시 듣고 옵시다. 네. 당시 합수부 보안사령관 전두환 장군의 발표를 보면, ‘대통령이 되려는 망상에 사로잡혀 거사를 일으켰다. 차지철 경호실장과의 충성경쟁에서 졌기 때문에 그랬다.’ 이렇게 얘기를 했었는데, 김재규 당시 부장의 재판장에서 이야기는 좀 다른 이야기구요. 지금까지 이 재판장에서 일부 발췌돼서 나온 적은 있는데, 이렇게 완전히 나온 적은 없기 때문에 새로운 녹음파일이라고 보구요. 중요한 것은 이런 것 같습니다. ‘재판 자체에 문제가 있지 않았느냐?’ 그 문제가 됐다고 하는 파일도 들어보고 가시죠. 보안사에서 아마 비밀리에 녹음한 것 같은데. ‘영웅이네, 영웅.’ 이런 말이 등장하고, 아마 김재규 부장을 뜻하겠죠? ‘나중에 휴정할 때나 하지 지금은 건드릴 수 없다.’ 이런 얘기도 나옵니다. 이거는 재판 중이니까 어떻게 할 수 없고, 나중에 휴정할 때 어떻게 하겠다는 얘긴데, 쪽지 얘기도 계속 나오거든요? 재판장에 자꾸 쪽지가 들어갔다. 이거는 독립적 재판, 삼권분립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재판이 있다고 하면 재판은 무효인 것이죠. 그래서 ‘그러면 재심을 해야 되는 것 아니냐?’ 이런 입장이시고.

◆ 김성신> 네. 그렇죠. 민변의 변호사님들 이상희 변호사, 이영기 변호사, 조영선 변호사 이분들이 세밀하게 법리적인 검토들을 했거든요. 말씀하신 대로 이때 재판 자체가 가령 쪽지가 날아왔다 하더라도, 이것이 말하자면 증거로서 인정이 되면, 그 당시 재판 자체가 정당성을 얻을 수 없는 것이죠. 그게 재심 신청의 이유가 되는 것이죠.

◇ 이동형> 그렇죠. 가장 중요한 이유가 되는 것이고. 아버님께서는 당시 재판 과정에 방청을 하셨습니까?

◆ 김양환> 저는 방청은 안 했습니다.
  
◇ 이동형> 네. 방청은 안 하셨구요. 그런데 이 녹취록을 보면 김재규 부장이 자신이 왜 이런 일을 벌였는지 정당성에 대해 얘기를 합니다. 민주주의 이야기를 하면, 재판관이 자꾸 말려요. ‘그것도 어디서 듣고 그렇게 한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드는데. 어떻습니까?

◆ 김성신> 그렇죠. 당연히 어떤 외압이라든지, 이런 부분들이 있지 않을까요? 이번 녹취록을 다시 쭉 들어보면, 가령 뭐 유신에 대한 부분이라든지, 부마항쟁이라든지, 이런 부분에서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어떤 식의 발언을 했는지 이런 부분들을 통해서 적극적으로 변론을 해야 되는 그런 내용들인데, 가장 중요한 내용들이 나올 때마다, 말하자면 10.26의 정당성이라는 부분들을 표현하려고 할 때마다 그 모든 것들이 가로막혔다는 것을 이번 녹취록을 통해서 알 수 있었습니다.

◇ 이동형> 당시 재판에서 김재규 부장만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게 아니고, 박홍주 대령, 박선화 과장, 이기주, 유성옥 비서, 운전수 이런 분들도 다 사형을 당했다는 말이죠. 혹시 이 유족분들과는 교류가 있습니까?

◆ 김성신> 사실 그 당시에 모든 유족들이 굉장히 많은 트라우마를 다 가지고 계셨던 거죠. 저희가 직접적으로 연락을 할 수 있을 만큼 활발하게 교류가 되고 있지는 못했구요. 김재규 부장님의 부인께서 그 유족들의 자녀분들에게 장학금이라든지 이런 것들을 몰래몰래 전달을 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뭐 그런 정도의 교류이구요. 활발하게 저희가 만나서 ‘뭐 어떻게 해보자.’라는 것들 것 없고. 오히려 ‘이번 재심 신청을 계기로 해서 유족분들이 만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이 됩니다.

◇ 이동형> 그분들 명예회복도 필요한 일일 수 있으니까요. 김재규 부장 묘에 가면 묘비가 정으로 다 쪼아져 있고 그렇지 않습니까? 아버님 보셨죠. 그런 거? 그걸 보면 어떤 생각이 드세요?

◆ 김양환> 네. 그 비석이 당초에 만들어서 현장에다가 배치한 분들이 광주 전남 송죽회. 거기서 만들어서 설치를 했는데, 설치하고 얼마 안 돼서 정으로 쪼아내고 하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송죽회에 연락을 해서 이를 알렸더니, ‘그 자체가 역사입니다. 역사의 흔적입니다. 그대로 두는 것이 후세를 위해서 놔두는 것이 좋다.’라고 말씀을 하셔서 지금까지 그냥 두게 되었습니다.
  
◇ 이동형> 네. 일리가 있는 말씀입니다. 지금 김재규 장군에 대한 재평가, 이런 말이 몇 년 전부터 나오고 있습니다. 최근이죠? 김재규 부장이 몸담았던 사단에 원래는 사진이 다 내려가 있었는데 이번엔 다 올라왔다고요. 다시? 이런 바뀐 사회적 분위기는 유족대표로서는 고무적인 일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 김성신> 물론 좋은 일이긴 한데요. 저희는 재평가라든지, 명예회복이라든지 그런 말은 쓰고 싶지 않습니다. 그것보다는 ‘민주주의에 대한 가치를 생각할 수 있는 하나의 계기로서 지속적으로 논의가 되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나?’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이동형> 네. 아버님 생각은 어떠십니까? 

◆ 김양환> 그런 보람도 있지마는, 제 개인적으로는 그렇습니다. 나이가 이제 살 만큼 살았는데, ‘반역자, 내란수괴자의 가족으로 죽고 싶지 않다. 뭔가 정당한 재판을 받아서, 정당한 판결을 받아서 그렇게 좀 잠시라도 살다가 갔으면 좋겠다.’ 하는 그런 욕심이 있습니다.
 
◇ 이동형> 네. 어쨌든 김재규 부장이 사람을 두 명 살해한 것은 사실이니까요. 그런 것을 떠나서 내란수괴, 반란자라는 오명을 쓰고, 잘못된 판결이 아닌 제대로 된 판결을 했을 때 어떤 평가가 내려지는지 받아보고 싶다는 말씀이신 거죠? 마지막으로 한마디씩만 듣고 마무리하겠습니다.

◆ 김양환> 이런 사건의 지금까지 관례로 보면 이런 사건의 재심이 받아져서 다시 판결을 받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려왔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여러 가지 분위기도 바뀌고 해서 ‘그렇게 안 됐으면 좋겠다. 빠른 시간 내에 결론을 냈으면 좋겠다.’ 하는 욕심이 있습니다. ‘이제 정확한 보충 자료들이 나와 있고, 아직도 그때 중요한 일을 했던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살아있고, 좀 더 명확한 재심이 이루어질 수 있는 시기가 아닌가? 이시기를 놓치고 시간이 더 가면은 많은 사람이 사라질 텐데.’ 마음이 조금 바쁩니다. 빨리 결론이 났으면 좋겠습니다.

◆ 김성신> 내일도 한 방송에서 10.26에 대한 특집을 방송하게 되는데, 10.26 하면 ‘전두환’ 뭐 이런 제목이라고 들었습니다. 저희가 같이 취재에 응하기도 했는데요. 10.26 이후의 전개든, 그리고 지금까지도 계속 전개되고 있는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지나간 과정이라던지 이러한 부분들에 대해서 우리가 한 번쯤 곱씹어보고 성찰해 볼 수 있는 그런 의미에서 10.26 재심이 받아들여지면 더없이 좋겠습니다.

◇ 이동형> 알겠습니다. 또 새로운 결과가 나오면 두 분 다시 모시도록 약속드리구요. 오늘 수고 많으셨습니다.

◆ 김성신> 네. 감사합니다.

◆ 김양환> 네. 감사합니다.

[저작권자(c) YTN radio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
  목록
  • 이시간 편성정보
  • 편성표보기
말벗서비스

YTN

앱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