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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위안부단체 대표 “이용수 할머니, 그동안 쌓인 문제의식 폭발”
작성자 : ytnradio
날짜 : 2020-05-26 08:34  | 조회 : 2081 
YTN라디오(FM 94.5) [노영희의 출발 새아침]

□ 방송일시 : 2020년 5월 26일 (화요일)
□ 출연자 : 김현정 배상과 교육을 위한 위안부 행동(CARE) 대표

김현정 배상과 교육을 위한 위안부 행동(CARE) 대표
- 윤미향, 30년 동안 쏟은 마음과 에너지는 인정해야 
- 이용수 할머니 정대협 활동에서 쌓여왔던 문제의식 폭발 
- 여러 가지 불만 말씀을 많이 하시다가...
- 할머니가 돈 욕심? 치매노인? 이건 아니다 싶어서 
- 2015 국장급 회의 5~6번 있었던 때, 할머니 모르시더라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노영희 변호사(이하 노영희): 어제는 이용수 할머니가 윤미향 당선인에 대한 폭로를 이은 2차 기자회견이 있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운동을 하는 많은 활동가들도 이 기자회견에 주목할 수밖에 없었는데요. 오늘은 미국에 있는 '배상과 교육을 위한 위안부 행동(CARE)' 단체의 김현정 대표와 연결해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 김현정 배상과 교육을 위한 위안부 행동(CARE) 대표(이하 김현정): 네, 안녕하세요. 저희는 서부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 인근에 있는 단체고요. 미국 내에서 위안부 이슈를 알리고 교육하고, 그리고 일본을 압박해서 문제해결을 촉구하는 그런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 노영희: 그렇군요. 한국이 주 활동지가 아니고 캘리포니아 주에 있고, 실질적으로 외국에 일본의 그동안 만행을 알리는 단체다. 이런 이야기인데요. 우선 이용수 할머니하고의 인연이 있었던 거죠?

◆ 김현정: 네, 이용수 할머니를 제가 처음 뵌 것은 2007년도 마이클 혼다 의원이 위안부 문제를 가지고 일본 정부에게 공식적인 사죄와 명백한 의사표명, 사죄. 그리고 이런 부분에 대해서 교육을 하라고 하는 것을 촉구하는 연방하원의 결의안 발의가 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전국적으로 동포 사회에서 캠페인이 일어났는데, 그 캠페인을 할 당시에 저희가 이용수 할머니를 한 달간 미국에 모시고 증언을 들으면서 정치인을 만나고 언론플레이를 하는 그런 캠페인을 펼친 적이 있었고, 그때 이용수 할머니 통역을 제가 맡아서 한 달 동안 쭉 다니면서 할머니 말씀을 가까이서 아주 많이 들었고요. 그 이후로도 계속 위안부 활동을 제가 하게 됐어요. 그래서 꾸준히 활동을 하면서 김복동 할머니라든지, 이옥선 할머니라든지, 다른 할머니들이 미국에 오셨을 때 만나 뵙고, 같이 활동하고. 그렇게 할머니들과 많은 시간을 보낸 경험이 있습니다.

◇ 노영희: 사실 이런 활동이 어느 정도 결실을 맺어서 미국에 소녀상 설치라든가, 캘리포니아 주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사람들에게 알리는 활동, 이런 것들도 이어지게 된 거죠?

◆ 김현정: 그렇죠. 그래서 저희가 대표적으로 활동을 해서 성공적이었다고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글렌데일 시와 협력을 해서 시립공원에 해외 최초로 소녀상을 세운 것. 이것은 시의 소유고요. 또 그런 소녀상을 철거하려고 일본 정부가 무지 애를 씁니다. 지금까지 그 시도가 계속되고 있거든요. 그래서 그러한 소녀상을 철거하려고 시도하는 일본 정부와 싸우는 역할. 소송도 걸었고요. 글렌데일 시를 위해서 소송을 방어하는 지원을 했고,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저희가 추모제도 열고, 정치인들도 초청하고. 또 샌프란시스코에도 독특한, 새로운 모양의 위안부 기림비, 소녀상이 서 있어요. 그러한 기림비 건립 활동에도 참여하고. 또 캘리포니아 주 국립 고등학교 교과서 교과과정에 위안부 문제를 포함시키는 캠페인을 동포 사회와 함께 벌인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게 통과가 됐고. 미국에서 최초로 캘리포니아 주에서 10학년 세계사 교과과목에 위안부 문제가 포함되어 있고, 그래서 교사들을 위한 교육자료를 만들어서 무료로 배포하는 이런 여러 가지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 노영희: 그렇군요. 우리 대표께서는 가족 이민으로 21살 때 미국으로 건너가셨고, 졸업한 다음에는 법정 통역사 일을 하셨는데,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가 홀로코스트와 마찬가지로 보편적인 인권문제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 때문이었다. 이런 이야기를 하신 것을 제가 인터뷰를 봤는데요.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해외에서 한국을 바라보면서 정말 안타깝고, 우리가 조금이라도 도왔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시작된 이런 운동이지 않습니까?

◆ 김현정: 맞습니다. 사실 중요한 포인트 하나는 처음에 제가 이 운동에 발을 들이게 된 이유가 사실은 마이클 혼다 의원이 일본계세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를 향해서 이 전쟁범죄를 일본 정부가 철저하게 받아들이고 사죄를 해야만 일본도 더 좋은 국가로 거듭날 수 있다고 하는 일본에 대한 애정에서 이런 결의안을 발의하신 건데요. 일본에서는 완전히 공공의 적이 되셨죠. 그래서 이게 어떤 한일 간의 이런 문제가 아니라 저는 세계 보편적인 인권문제라는 차원에서, 그리고 여성이라면 누구나 가까이 가슴 깊이 맺힐 수밖에 없는 여성에 대한 성폭력 문제,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문제, 이런 연결고리가 너무나 주요한 이슈구나, 내가 모르고 살았구나, 이런 생각에. 또 할머니들을 만나서 그분들의 그러한 강력한 증언을 바로 옆에서 들으면서 이 운동을 도저히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생각과는 다르게 10년 이상 지금 몸을 담고 있는 상황이 됐네요. 

◇ 노영희: 그렇군요. 2007년 7월 30일, 미국 워싱턴 연방의회에서 일본군 위안부 사죄 결의안이라고 하는 것이 통과가 됐는데, 이게 121 결의안이라고 불립니다. 이것이 미국 하원에서 만장일치로 채택이 됐고, 이 결의안을 상정한 의원이 사실은 일본계 의원이었고 우리 부끄러운 일본의 역사를 사죄하는 의미에서 이 결의안을 채택한다, 이 말을 듣고 본인도 감동받아서 이 일에 뛰어들게 된 거다. 그런데 외국에서 현재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윤미향 당선인 관련 여러 가지 이야기를 접하셨을 텐데요. 어떤 심정이셨습니까, 솔직히?

◆ 김현정: 일단은 그분들이 지금까지 해온 30년 동안 정말 온 마음과 온 에너지를 다 쏟아서 열심히 노력해온 부분은 분명히 인정을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부분은 진정이었다고 생각하고요. 하지만 또 만약에 이 운동을 하는 데 있어서 할머니가 여러 가지 문제를 제기하시지 않았습니까? 이것이 할머니가 그동안 정대협하고 30년 동안 활동을 해오시면서 이렇게 관찰하고, 느끼시고, 쌓여왔던 그런 문제의식이 이번에 폭발했다고 생각이 되는데요. 그런 부분은 분명히 위안부 운동의 정당성과는 분리를 해서 고칠 점은 고치고, 책임질 부분이 있으면 책임을 지고 깨끗이 털고 이 기회에 위안부 운동이 한 단계 더 발전한, 성숙한 시민운동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고요. 특히 정의연뿐 아니라 지금 나눔의 집에서도 회계부정과 관련된 그런 스캔들이 터져 나오고 있고, 사실 물이 오래 고이면 썩기 마련 아닙니까? 그래서 이런 아픈 과정이지만 이런 과정을 우리가 잘 수술을 하고, 잘 회복을 해서. 근본 문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고, 또 이것을 너무 정치공학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굉장히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정말 할머니들의 목소리를 듣고, 근본적으로 해결되어야 하는 문제. 근본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일본 정부를 향해서 가장 효과적으로 운동을 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 우리가 함께 고민하고, 의견을 모아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 노영희: 지금 대표님께서는 자신의 SNS에 이런 글을 올렸습니다. 참다 참다 한 말씀만 올리겠다. 그러면서 이용수 할머니가 정대협과 윤미향 당선인에 대한 문제의식을 털어놓은지 벌써 10년이 다 돼 간다, 이런 이야기를 하기도 하셨고요. 또 하나는 정의연을 비롯한 국내 위안부 운동 단체가 모금된 기금사용 내역을 투명하게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특히 이용수 할머니의 미국 방문 당시에 비용을 정의연이 댄 게 아니라 현지 동포단체들이 모두 부담했다. 그런데 정의연에서는 그렇지 않은 것처럼 이야기가 나와서 이것은 매우 유감이다. 또 특정 정치세력이 추구하는 방향에 부합하는 활동만을 선호해온 폐쇄성, 이런 것들이 더 이 활동을 왜곡시키고, 변질시킨 게 아닐까, 이런 내용을 쓰신 것 같아요. 

◆ 김현정: 네, 맞습니다. 그런 비판의식을 가지고 있었고요. 그런 비판의식을 저희가 가지기 시작한 것도 꽤 되는데, 이용수 할머니가 저희들하고 편하게 말씀을 하실 때는 그런 여러 가지 불만을 말씀을 많이 하시다가 그래도 또 한국에 가시면 마음을 다잡고 다시 수요시위에도 나가시고 다시 정의연하고 또 활동을 하시는 것을 보면서 할머니가 저렇게 참고, 대의를 위해서, 운동 전체를 위해서 저렇게 하시는데 우리가 어떻게 이것을 먼저 건드릴 수 있겠느냐, 해서 저희도 참고 있었던 거고요. 그런데 할머니가 목소리를 내시는데 저희는 그냥 보려고 했어요. 그랬는데 한국에서 보니까 너무나 할머니가 마침 돈 욕심이 난 노인네처럼, 어떨 때는 치매 노인 환자처럼 너무 참을 수 없을 만큼 할머니에 대한 모욕과 비방이 나오는 것을 보고 이것은 아니다, 싶어서 우리가 이용수 할머니의 목소리. 그리고 할머니가 진정으로 지적하고자 하는 점에 대해서 정말 사람들이 너무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싶어서 한 마디 보탠 겁니다.

◇ 노영희: 그런데 사실 저는 어제 인터뷰를 보면 이런 말씀을 하시지 않습니까?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몇 놈이 가지고 간다. 또 나는 30년 동안 이용만 당했다. 끌려 다녔다, 팔려 다녔다, 이런 이야기를 했는데 저는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을 이용당했다고 생각하시고, 어떤 부분을 끌려 다녔다고 생각하시는지, 이런 부분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 김현정: 제가 듣기로 조심스럽게 할머니의 생각을 짐작을 해본다면 할머니께서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으세요. 30년 전에 할머니가 등록을 하시고 내가 위안부였다고 밝히고 나오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러고 나서 저희가 할머니, 그러면 증언은 언제 시작하셨어요? 여쭤봤더니 나는 증언이 뭔지도 몰랐어요, 그러시면서 어느 날인가 일본에 가자고 하더라, 그래서 일본에 갔더니 이야기를 하라고 하더라, 그랬는데 그렇게 해서 이게 증언이라는 것을 시작하셨는데요. 문제는 그때 당시에, 물론 모든 활동하시는 분들이 체계가 잡혀 있지 않고, 또 다 경험들이 없으시니까 서툴렀겠죠. 그런데 할머니한테 증언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이고, 지금 정치 상황이 어떠하고, 이 말씀을 들으러 온 사람은 누구고. 이게 굉장히 민감할 수 있는 요소가 많은 이슈잖아요. 그리고 할머니가 어떤 부분에 말씀을 하실 때는 할머니의 진의가 왜곡될 수 있으니까 그런 것을 설명을 해주고. 그러면 할머니가 굉장히 빨리 이해를 하시고 굉장히 말씀을 잘하시거든요. 저희가 정말 깜짝깜짝 놀랄 정도로 그동안 활동을 하면서 이용수 할머니에 대해서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에요. 굉장히 스마트하신 분이고. 그런데 그런 게 전혀 없이 그냥 할머니가 끌려 다녔다고 하는 그런 억울한 생각이 드신 거고. 단적인 예로 2015년 합의안이 나오지 않았습니까? 2014년, 2015년 이럴 때 한참 국장급 회의가 왔다 갔다 하면서 있었잖아요. 그래서 저희는 한 번도 일본이라는 나라가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어떤 상대자하고도 테이블에 앉아서 협상이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는 나라예요. 그런데 그때 국장급 회의가 실제로 열리는 것을 보면서 어쩌면 이게 기회일 수 있다. 제대로 해결을 할 수 있는 기회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저희는 비록 외국에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치는 아니지만 굉장히 열심히 들여다봤거든요. 마침 할머니가 미국에 오셨어요. 그래서 할머니한테 여쭤봤어요. 할머니, 국장급 회의가 진행되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때 국장급 회의가 벌써 5~6번 있었던 때인데 할머니가 모르시더라고요. 그러면서 저희가 설명을 해드렸더니 또 분노하시는 거죠. 

◇ 노영희: 할머니들을 소외시켰군요.

◆ 김현정: 함께 활동하시는 분들이 힘들더라도 이런 상황이고, 이렇게 진행되고 있는데 할머니의 의견은 어떠세요? 그리고 우리 의견은 이런데 우리가 볼 때, 상황을 분석을 해볼 때 할머니 의견하고 다를 수 있지만 토론도 할 수 있는 거고,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런 게 전혀 없었다는 것에 굉장히 많이 분노를 하셨고. 그런 것들이 많이 쌓였던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할머니가 표현을 하시면서 두서 없을 수 있죠. 하지만 할머니의 진의는 그런 게 아니었을까, 라고 저는 짐작을 합니다.

◇ 노영희: 제가 아주 짧게 하나만 여쭙겠습니다. 지난 15일 해외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정의연과 윤미향 당선인에 대해서지지 서명을 냈습니다. 정의연의 활동을 높게 평가하고, 인권침해와 추측성 보도는 좌시하지 않겠다, 이랬는데 해외 활동가들의 입장은 정확히 어떤 겁니까?

◆ 김현정: 저희가 미국에서 활동을 하면서 사실 윤미향 씨 정의연이 글렌데일 소녀상을 저희가 개막식을 할 때 초청했는데 그때 오셔서 나비라는 단체를 만들고 가셨어요.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미국에서 위안부 활동하는 단체들이 한 마음으로 연대를 해서 활동하고 있었는데, 그때 분열이 된 거죠. 그리고 그 이후로도 또 그런 분들. 나비라든지, 이런 분들하고만 계속 활동을 하시고. 그런 문제를 지켜보면서 저희가 지적을 해야 하는 문제라고 오랫동안 생각해온 것이 있었고요. 그래서 할머니의 문제제기에 동의하기 때문에 저희가 거기에 동의할 수 없었죠.

◇ 노영희: 네, 알겠습니다. 오늘 말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김현정: 네, 감사합니다.

◇ 노영희: 지금까지 미국에서 배상과 교육을 위한 위안부 행동(CARE)를 운영하는 김현정 대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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