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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D: 서지훈, 이시은 / 작가: 현이, 김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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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걸 "아버지 김대중 '내란음모' 사형선고에도 복수 원치 않았다"
작성자 : ytnradio
날짜 : 2020-05-18 08:52  | 조회 : 1674 
YTN라디오(FM 94.5) [노영희의 출발 새아침]

□ 방송일시 : 2020년 5월 18일 (월요일)
□ 출연자 : 김홍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대표상임의장

-광주 영령들에게 마음의 빚있어
-與, 5.18 진상규명과 왜곡·폄하 세력 조치해야 
-80년의 기억, 김대중 생사 알 수 없어서 답답했다
-'내란음모' 자백하라는 고문으로 파킨슨 병까지 얻은 형
-광주 희생자 생각해서라도 타협할 수 없다던 故 김대중 대통령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노영희 변호사(이하 노영희): 1부에 이어 2부에서도 5.18 40주년 관련해서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연세대 김대중도서관에서 최근 5.18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을 기념하여 한 자료를 공개했는데요. 바로 1980년 9월에 있었던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재판에서의 최후 진술 내용을 복기한 사료입니다. 당시 민주 투사인 김대중, 이해찬, 설훈, 문익환 등의 최후진술문을 보면 아픔과 충격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80년대 역사를 볼 수 있는데요. 40년이 지난 올해 5.18이 남긴 의미에 대해 이분과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3남이자 이번 21대 국회 입성을 앞두고 계신 김홍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대표상임의장 연결되어있습니다. 의장님 안녕하세요?

◆ 김홍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대표상임의장(이하 김홍걸): 네, 안녕하세요. 

◇ 노영희: 의장님 지금 광주에 계시는 거죠?

◆ 김홍걸: 네, 지금 오전에 열리는 기념식 참석하기 위해서 광주에 와 있습니다.

◇ 노영희: 이번이 제40회 5.18 민주화 운동 기념식이 되는 건데요. 당선인 신분으로는 처음 참석하시는 거 아니겠습니까? 소감이 어떻습니까?

◆ 김홍걸: 사실 저희 세대가 어릴 때부터 광주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또 광주 영령들에게 마음의 빚을 가지고 있는 세대인데요. 이번에 저도 국회에 진출하게 되었고, 우리 민주당이 압도적인 다수의 의석을 국민들로부터 받았기 때문에 40주년을 맞아서 진상규명이라든가, 광주를 왜곡하고 폄하하는 그런 세력에 대해서 이번에는 확실한 조치를 취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 노영희: 의장님께서 이전에 5.18 민주화 운동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조작해서 부친이 군사재판을 받았던 그 시기에 혹시 몇 살이셨어요?

◆ 김홍걸: 그때 고등학교 2학년이었죠. 

◇ 노영희: 그러면 그때 상황이 돌아가는 것을 정확하게는 알지 못했을 것 같은데, 어땠습니까?

◆ 김홍걸: 5월 17일에 밤중에 군인들이 무장하고 쳐들어와서 저희 아버님과 아버님을 모시던 분들, 이렇게 여러 명 연행을 해갔었죠. 그러고 나서 그다음 날부터 저희 어머니는 연금이 되셨고, 계속 광주에서 수많은 분들이 희생되셨다고 하는 소식이 들려오는데 저희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서, 아버님의 생사도 알 수 없고, 집에서 정말 답답했던 기억이 지금도 납니다.

◇ 노영희: 그 당시에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정말 무시무시한 그런 죄를 뒤집어씌워서 수많은 사람들을 군사재판으로 넘긴 상황이었는데 이런 것들을 보면서 너무 무력감을 느꼈다거나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거나, 이런 감정 때문에 더 힘들어했다. 이런 이야기가 들리더라고요?

◆ 김홍걸: 네, 그렇습니다. 저희 아버님이 연행되신지 두 달 반 가까이 돼서야 어디 계신지 그것을 알 수가 있었고, 면회가 가능해졌거든요. 그때까지는 생사도 알 수가 없었고, 아버님도 한동안은 광주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 자체를 모르셨다고 하더라고요. 

◇ 노영희: 아버님도 몰랐던 상황인데 아버지가 내란음모의 수괴가 돼서 그 일을 한 것처럼 되어 있었군요?

◆ 김홍걸: 처음에는 연행됐다고 해놓고 한동안 무엇 때문에 연행되고, 어떻게 재판을 받는다, 이것 자체가 발표가 없었죠. 

◇ 노영희: 그러면 본인들도 무엇 때문에 내가 잡혀 갔는지도 모르고, 뭐라고 말해야 할지도 모르고, 이런 상황이었다는 거예요?

◆ 김홍걸: 본인들은 잡혀 가서 시위를 뒤에서 조정했고, 내란음모를 했다, 이런 식으로 자백을 하라고 계속. 저희 아버님은 고문까지는 안 당하셨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아주 혹독한 고문을 당했고, 저희 형님 같은 경우도 아버지가 빨갱이다, 내란음모를 했다, 이것을 자백하라고 고문을 하는 바람에 참다 못해서 자살을 기도하다가 그 후유증으로 나중에 파킨슨병까지 걸렸죠. 

◇ 노영희: 그러면 나중에, 일이 정리가 되고 난 뒤에 부친,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는 그때의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시던가요?

◆ 김홍걸: 처음에 그 사람들이 광주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됐다고 하는 내용이 든 신문을 보여줬는데, 그 사람들은 아버님의 사기를 꺾기 위해서, 충격을 받으면 자기들 말을 들을 것으로 생각하고 그것을 보여준 것인데, 아버님께서는 큰 충격을 받으셔서 이렇게 희생당한 분들을 생각해서라도 내가 저들과 타협할 수가 없다, 차라리 목숨을 잃는 게 낫지, 여기서 굴복할 수 없다고 하는 그런 결심을 하시게 된 거죠.

◇ 노영희: 그랬군요. 지금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하겠습니다만, 최근에 최후진술문이 공개가 됐단 말이에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최후진술. 여기에 보면 당시 사형수의 신분으로 쓴 옥중 수필이 나오고, 여기에 다시는 정치보복이 있으면 안 된다, 본인이 가장 가혹한 박해를 받았지만 일체 용서를 선언한다, 이런 화해와 관용의 정신이 보인단 말이에요. 나중에 가족들이 보았을 때 어떤 심정이시던가요?

◆ 김홍걸: 사실 아버님께서 원래 독학으로 역사와 철학을 공부하시면서 과거 역사에 비추어볼 때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부르기 때문에 그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화해와 관용의 정신이 중요하다고 하는 것을 항상 강조하셨거든요. 그래서 6.25 전쟁 때도 총살당할 위험에 처했다가 간신히 살아나셨음에도 불구하고 남북 화해의 정신을 계속 주장하셨던 것이고요. 그래서 그때도 저희 가족들이 사형선고 직후에 면회를 갔을 때도 절대 복수는 생각하지 말아라, 이런 말씀을 하셨고, 저희 가족들도 아버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잘 알고 계셨기 때문에 어머니를 비롯해서 모든 가족들이 신군부와 타협해서 적당히 목숨을 살렸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 노영희: 목숨을 살리고, 안 살리고, 이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추구하는, 옳다고 믿는 바를 따라서 행동하는 것, 그것 하나로 버텼다.

◆ 김홍걸: 네, 그렇죠.

◇ 노영희: 정말 저 같은 범인으로서는 뭐라고 말하기가 그런데요. 당시에 이런 아버님이 그런 고초를 겪는 것을 보고 나머지 식구들은 어떻게 생각을 합니까?

◆ 김홍걸: 말씀드린 대로 항상 아버님께서 옳은 길을 가신다고 하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전혀 불평한 사람이 없었고요. 특히 어머니는 아버지께서 원칙을 지키고, 끝까지 투쟁하기를 바라셨기 때문에 나중에 아버님께서도 어머님이 그런 확고한 태도를 보이지 않았으면 자신의 마음이 흔들렸을 지도 모른다, 그런 말씀을 하셨죠.

◇ 노영희: 이희호 여사가 보여준 남편에 대한 믿음, 확신, 이런 것들이 역시 지탱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거군요. 그래서 그런 힘든 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오늘이 5.18 광주 민주화 운동 4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40년 전과 오늘을 비교해봤을 때 지금 5.18 정신이 제대로 계승되고 있다고 보십니까?

◆ 김홍걸: 그래도 5.18 정신이 있었기 때문에 6.10 항쟁으로 민주화를 할 수 있었고, 또 촛불혁명으로 다시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었다고 생각하고요. 5.18 정신과 김대중 정신을 지금 이 시대에 맞게 발전시키고, 계승해나가려고 하면 국민들이 직접 나서서 민주주의를 완성시켜 가는 직접 민주주의의 정신을 더 보여주시면 좋을 것 같고, 또 한반도 평화를 이루어서 우리 사회에서 그 분단으로 인해서 생기는 그런 갈등을 해소해 나가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노영희: 국회 입성을 2주밖에 안 남겨놓으셨는데요. 21대 국회에 내가 들어가게 되면 나는 가서 어떤 식의 일을 조금 더 열심히 하겠다, 이런 각오. 또 조금 전에 말씀하신 게 직접 민주주의 정신을 조금 더 구현시키고 싶다고 하셨는데요. 직접 민주주의의 정신을 어떻게 구현하실 수 있는지, 5.18 정신은 어떻게 변화, 성장, 발전해야 하는지 한 말씀을 해주시면 뭘까요?

◆ 김홍걸: 아무래도 요즘 많이 거론되고 있는 국민소환제라든가, 국민들이 법안과 헌법을 발의할 수 있는 그런 직접 민주주의적인 요소를 더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고요. 또 저 개인적으로는 조금 전에 말씀드린 대로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군사독재라든가, 여러 가지 갈등, 또 문제점들이 분단에서 비롯되었다. 한반도에서 평화가 우리 사회 내에 많은 문제, 정치적으로 생기는 문제, 이것들을 야기시키는 것이 분단의 갈등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한반도 평화를 위한 노력에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 노영희: 네, 국민소환제라든가, 국민헌법발안제라든가, 이런 직접 민주주의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것들을 먼저 해보겠다. 이렇게 생각하시는군요.

◆ 김홍걸: 네, 그렇습니다.

◇ 노영희: 네, 알겠습니다. 오늘 말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김홍걸: 네, 감사합니다.

◇ 노영희: 지금까지 김홍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대표상임의장와 함께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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