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플러스
  • 방송시간 : [월~금] 15:00~16:00
  • 진행 : 김우성 / PD: 김우성 / 작가: 이혜민

인터뷰 전문

[생생경제] 100세 인생시대, 코트의 호랑이에서 불꽃 튀는 제2의 인생 맞은 최희암 감독의 폴리텍 이야기
작성자 : ytnradio
날짜 : 2019-12-18 16:59  | 조회 : 1721 
■ 방송 : YTN 라디오 FM 94.5 (15:10~16:00)
■ 진행 : 김혜민 PD
■ 대담 : 최희암 고려용접봉 부회장(전 연세대 농구부 감독)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생생경제] 100세 인생시대, 코트의 호랑이에서 불꽃 튀는 제2의 인생 맞은 최희암 감독의 폴리텍 이야기


◇ 김혜민 PD(이하 김혜민)> 평균 수명이 길어지면서 인생을 두 번 산다고 하죠. 그리고 두 개 이상의 직업을 꼭 가져야 한다고 하고요. 그런데 이게 쉽습니까? 이 어려운 일을 잘 해낸 분들을 보면 참 부러운데요. 오늘 정말 부러운 분, 한 분을 모셨습니다. 여러분들 이분 성함을 들으면 이분이 왜 경제 프로그램에 나와? 하실 것 같은데요. 지금은 생생경제, 특히 수요일 코너 <배움이 일자리다>에 딱 맞는 손님이십니다. 전설의 농구감독, 최희암 고려용접봉 부회장 나오셨어요. 안녕하세요?

◆ 최희암 고려용접봉 부회장(이하 최희암)> 네, 안녕하세요. 

◇ 김혜민> 방송 인터뷰 오랜만이시죠?

◆ 최희암> 네, 그렇습니다. 

◇ 김혜민> 먼저 우리 청취자 분들께 인사 한말씀 부탁드릴게요.

◆ 최희암> 안녕하세요. 옛날에 농구감독이었던 최희암이고요. 지금은 고려용접봉에 있습니다. 연말연시인데 몸관리 잘해주시기 바랍니다.

◇ 김혜민> 우리 부회장님 오신다고 하니까 우리 작가가 본인이 살면서 두 번 실신을 했는데, 그 한 번이 장충체육관이었대요. 우지원 씨를 실제로 봤을 때 실신을 정말 한 번 했었고, 그리고 본인이 여고를 다녔는데 여고에서 선생님들이 최희암 감독님 학생 주임으로 데리고 온다, 이게 협박이었대요. 감독님이 그렇게 무서우신 호랑이 감독이셨어요?

◆ 최희암> 그런 면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 김혜민> 본인도 인정하십니까?

◆ 최희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어요.

◇ 김혜민> 정말 우리 부회장님이 농구감독으로의 전성기는 두 번 말하면 입 아프지만 그래도 이렇게 본인 입으로 자랑을 조금 해주세요. 그때 한창 90년대 중반?

◆ 최희암> 결국은 그 당시는 사실상 잘 몰랐습니다. 매일 할 일을 했을 뿐인데, 지나고 보니까 그게 다른 분들이 주위에서 대단했다고 말씀을 해주시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항상 불만이 있었죠. 조금 더 잘할 수 없을까, 이런 고민을 많이 하고 그랬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지금 보면 저도 참 제 스스로 놀랄 정도로. 어떻게 그렇게 했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 김혜민> 그때 CF를 온가족이 찍을 정도로 인기가 대단하셨잖아요?

◆ 최희암> 인기는 잘 모르겠고요. 찍은 기억은 있어요.

◇ 김혜민> CF를 찍었다는 건 정말 인기가 높았다는 건데, 그렇게 농구감독으로 실력 면에서나 대중적인 인기 면에서나 최고를 달리시다가 어떻게 용접회사의 부회장을 하게 되셨어요?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 최희암> 제가 마지막으로 프로 농구감독을 한 게 전자랜드 농구감독을 했습니다. 거기서 3년 계약을 마쳤는데, 전자랜드가 고려 계열사이기 때문에 고려용접봉의 회장님께서 전자랜드 경기를 많이 오셨어요. 그게 인연이 돼서 마치고 나니까 중국 공장이 있으니 가서 해보지 않겠느냐고 말씀을 하셔서요. 그래서 이리로 오게 됐습니다.

◇ 김혜민> 처음에는 고려용접봉의 중국 지사로 가게 되신 거예요.

◆ 최희암> 중국 법인으로 갔죠.

◇ 김혜민> 그런데 회장님이 아무리 농구 경기를 자주 오고, 감독님의 팬이었다고 해도 본인의 회사에 그렇게 직책을 준다고 하는 건 그냥 ‘팬심’으로 줄 수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어떤 것 때문에 회장님 그렇게 스카우트 한다고 하셨나요?

◆ 최희암> 여쭤보지는 않았어요. 여쭤보지는 않았는데 회장님도 어떻게 보면 큰 모험을 하셨죠. 큰 공장이고, 법인인데 하다 말면 안 되지 않습니까. 아무래도 농구감독이라는 것 자체가 나름대로 세밀해야 하지 않습니까? 선수들 관리고 해야 하고요. 또 3년 동안 전자랜드 감독을 하는 것을 보시고 그런 여러 가지 측면을 검토하신 것 같아요. 오히려 저보다는 회장님께서 굉장한 결단을 하신 거죠.

◇ 김혜민> 중국 현지 가셨을 때가 몇 년도입니까?

◆ 최희암> 2009년 겨울입니다. 

◇ 김혜민> 2009년 겨울에. 안 두려우셨어요?

◆ 최희암> 그런 부분도 있고, 맨파워도 좋고 그러니까 가보라는 말씀도 있으셨고. 저희가 또 농구감독을 할 때 중국 원정도 많이 가봤잖습니까?

◇ 김혜민> 아휴, 그것과 같나요.

◆ 최희암> 그런 면에서 한 번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고요. 그러고 제가 대학 연대 감독을 할 때 가능하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많이 하려고 노력을 했었죠. 그게 또 제가 의무라고 생각을 했고요.

◇ 김혜민> 그러니까 제가 지금 감독님하고 인터뷰해보니까 원래 새로운 일을 도전하거나 그런 것에 있어서 주저함이 없으신가 봐요?

◆ 최희암> 무식한 거죠, 그러니까. 무지한 거죠.

◇ 김혜민> 그런데 사실은 운동선수는 거의 운동만 하잖아요. 특히 우리나라의 상황 가운데서는요. 그래서 스포츠 선수들이 중간에 운동을 안 하게 되면 굉장히 방황하고, 그래서 폴리텍대학에서도 그런 선수들의 재활을 위해 애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요. 운동을 하다가 갑자기 기업의 대표로 간다고 하는 것은 전혀 새로운 일일 것 같은데요. 비슷한 점들이 어떤 게 있던가요?

◆ 최희암> 저는 제가 이렇게 생각해봐도 특별하게 남보다 잘한다, 이런 것은 아니었고요. 그냥 열심히 해야겠다. 다른 것보다 남보다는 열심히 한 것 같고요. 준비를 해야 하지 않느냐. 내 일이 아닌 다른 일이면 몰라도 제가 하는 일에 대해서는 준비를 해서, 경기라고 하면 이런 이야기하면 그렇겠지만, 내일 경기가 있다고 하면 세 번 정도 경기를 하죠, 머릿속으로. 우리 애가 다쳐서 안 좋을 때, 어떨 때는 좋을 때, 이런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면서 그런 것을 하듯이 그런 부분이 있기 때문에 기업도 역시 사람이 하는 일이지 않습니까. 

◇ 김혜민> 그럼요. 그리고 팀으로 일하는 거고요.

◆ 최희암> 인재들을 많이 모아야 하는 그런 부분들이 있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는 새롭지 않았고요. 

◇ 김혜민> 그런 면에서 경영과 경기는 비슷했다?

◆ 최희암> 경영까지는 몰라도 사람하고 소통하는 것은 어려운 부분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 김혜민> 사람이라는 본질에 초점을 맞추고 감독으로서, 또 기업인으로서 활동을 하신 건데요. 오늘 정말 전설의 농구감독, 지금은 고려용접봉의 부회장으로 계신 최희암 부회장님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부회장님, 그래서 중국에 가셨다가 승진하신 거죠? 지금은 부회장으로 계신 거잖아요?

◆ 최희암>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습니다. 

◇ 김혜민> 어떻게 하면 승진을 해서 그 자리에 오를 수 있습니까?

◆ 최희암> 아무래도 직장인은 월급쟁이잖아요. 월급쟁이들이 갖춰야 할 기본이 있을 것 같아요. 선수는 선수로서 갖춰야 할 기본이 있고, 오너도 있고요. 경영 방침에 대해서 소속된 조직원들한테 어떻게 해야 잘 전달이 되고, 또 그들이 이야기한 것을 어떻게 조합을 해서 보고를 드려야 하고요. 그런 부분들. 아마 회장님이 세게 하셨다고 해도 부드럽게 표현하는 경우가 있고,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더라도 강하게 해줘야 하고, 이런 부분을 잘해야 할 것 같고요. 또 직원들한테도 제가 그쪽 입장에서 너는 이런 부분이 조금 부족하다, 아무래도 코치를 했으니까요.

◇ 김혜민> 감독과 코치를 했기 때문에 선수들의 마음도 알고, 오너의 마음도 아는 거죠. 

◆ 최희암> 마음까지는 몰라도 하여간 그걸 지키려고 충실히 했어요. 그런 부분을 조언을 많이 하고요.

◇ 김혜민> 그렇군요. 그래서 지금은 고려용접봉의 부회장의 역할을 감당하고 계신데요. 그러면 폴리텍대학과는 어떤 인연이 있으신 거예요?

◆ 최희암> 저희 고려용접봉이 용접 재료를 만드는 회사기 때문에 옛날에 기술훈련원, 폴리텍의 전신이 될 겁니다. 그런 곳에 대해서 저희가 근 30년 가까이 장학금을 매년 지급했죠. 그 당시는 상당히 어려울 때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저희가 준 장학금을 가지고 생활해서 사회에 기여하는 사람들을 가끔 보면 인사도 받고 그러는데요. 폴리텍대학에 저희가 매 학기마다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 김혜민> 매해 폴리텍대학에 학기마다 장학금을 주고 있는데요. 저희 폴리텍대학 이석행 이사장도 우리 방송에 출연한 적이 있으시거든요. 두 분 서로 아시죠?

◆ 최희암> 네, 제가 여기 와서 뵀습니다. 30년간 장학금을 지급했다고 하는 건 상당히 고마운 일이잖아요. 그간 그런 게 없었는데, 이석행 이사장이 새로 오셔서 그 고맙다는 표현을 하자고 해서 직접 저희 창원 공장에 오셔서 저희한테 감사패를 주셨어요. 한 3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인데요. 그래서 저희가 굉장히 감동을 했죠. 요즘 세상에 고맙다는 것을 표현한다는 것도 각박한 세상인데, 이런 정도까지 할 정도면 상당히 세밀하시다. 그런 거 안 하셔도 되잖아요.

◇ 김혜민> 30년간 꾸준히 장학금을 준 것도 사실 폴리텍 입장에서 감사한데, 폴리텍 입장에서 감사를 표한 것을 또 감사하는 그 고려용접봉의 회사가 어떤 기업문화를 가지고 있는지 알 것 같아요.

◆ 최희암> 제가 어쨌든 고마운 입장이고요. 상당히 우리 이 이사장님의 팬이 됐어요.

◇ 김혜민> 저희도 이 코너를 시작하면서 이석행 이사장님이 우리 부회장님 이야기를 초반에 하셨고, 꼭 한 번 모시자고. 그래서 저도 너무 기대했었거든요. 오늘 이렇게 모시게 됐습니다. 저희가 아까 이야기하면서도 나온 주제지만 사실 운동선수로 활동하다가 부상을 입거나 아니면 감독님처럼 정말 획을 그은 운동선수나 운동감독이라고 하더라도 그 운동판에서 떠나가면 너무 힘들어하는 게 지금의 현실이잖아요. 이런 사람들에게 조언의 말씀을 해주신다면 무슨 말씀을 해주시겠어요?

◆ 최희암> 뭐 두 가지 케이스가 있겠죠. 아주 잘했다가 은퇴했다든지요. 아니면 거의 무명에 가까웠다가 도중에 탈락돼서 하는 분들이 있는데요. 결국은 기술을 배워야 하거든요. 제가 우리 대학 선수들한테도 딱 두 가지만 얘기를 했어요. 농구도 기술이니까 이것은 네가 먹고살아야 하는 거니까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아까 호랑이라고 말씀을 하셨는데, 놀면서 최고가 될 수는 없잖아요. 그러니까 남들이 하는 것보다 더 많이 해서 그런 기술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고요. 그런 이야기에서 보면 운동선수들은 아마 상당히 잘할 거예요. 어떤 기술을 배워서 자기가 조금만 매커니즘을 알면 상당히 기술 습득이 빠르고요. 또 거기에 나름대로 융화가 잘 돼는 그런 캐릭터들이거든요. 

◇ 김혜민> 어릴 때부터 팀플레이를 많이 하니까요.

◆ 최희암> 그런 문제에 대해서 제가 볼 때는 이 친구들이 자신감을 가지면 충분히 할 수 있다.

◇ 김혜민> 운동만 했다는 게 본인한테 위축이 되는 게 아니라 운동만 했기 때문에 다른 것을 배워도 더 잘할 수 있다고 하는 자신감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말씀이신 것 같아요. 또 그런 길을 우리 감독님께서 잘 보여주고 계시니까요. 후배들이 잘 따라올 수 있을 거라고 보고요. 마지막으로 정말 유명한 감독으로 획을 그었는데, 이제 기업인으로 목표한 바가 있다면 어떤 게 있으세요?

◆ 최희암> 저희 회사가 월드 클래스 300 기업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중소·중견 기업 300개를 육성하면 대한민국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다고 해서 정부에서 그런 정책을 해서 300개 기업을 육성을 했죠. 저희가 3년 전에 신청을 해서 이제 합격을 해서 그렇게 됐는데요. 이제는 월드 클래스, 월드 베스트 5로 가야 한다. 10위권, 11위권 정도 되는데요. 거기까지 가는 게 목표입니다.

◇ 김혜민> 항상 최고로 만드셨으니까요. 이번에도 부회장님이 계신 곳이 꼭 최고가 되기를 저도 기대해보겠습니다. 지금까지 최희암 고려용접봉 부회장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 최희암>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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