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 차이나
  • 방송시간 : [월~금] 06:38, 14:53, 20:36
  • 진행자: 임대근 교수 / PD: 신아람

방송내용

12/13(금) 남경에서 벌어진 끔찍한 사건
작성자 : ytnradio 날짜 : 2019-12-13 12:37  | 조회 : 489 

大家好! 안녕하세요. 한국외대 교수 임대근입니다.
1937년 12월 13일은 중국인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너무나도 참혹한 사건이 벌어진 날입니다. 바로 남경대학살이 시작된 날입니다. 중국과 일본은 1937년 바로 그해 7월 7일부터 전쟁에 돌입합니다. 중일전쟁은 일본의 중국 침략 결과로 벌어진 전쟁이었습니다. 중국 국민당 정부는 일본군의 남하를 제대로 방어하지 못하고 후퇴하기 시작했습니다. 전쟁이 일어난 지 다섯달 만에 당시 수도였던 남경이 함락됩니다. 남경이라는 수도의 함락은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국민당 군대는 남경을 포기하고 충칭을 임시수도로 공표합니다. 하지만 국민당의 장군 탕성즈(唐生智) 사령관은 남경을 포기할 수 없다며 결사항전을 선언합니다. 15만 명의 국민당 군대는 항복을 거부합니다. 당시 남경 시민은 약 110만 명이었다고 하는데요, 탕성즈의 이런 전략에 따라 많은 시민들이 남경을 탈출하지 않고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12월 12일 일본군의 남경 함락이 눈앞에 이르자 탕성즈는 도주해 버리고 맙니다. 남경에 남아 있던 60만 명의 시민들과 군인들은 꼼짝없이 일본의 포로가 됩니다. 군인들과 청년들은 일본군에게 붙잡혀 양쯔강 가로 끌려가 기관총 사격에 목숨을 잃습니다. 한꺼번에 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총살을 당했다고도 합니다. 총알을 아낀다는 명목으로 칼로 목숨을 빼앗거나 생매장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습니다. 여성들과 어린아이들의 수난은 이루 다 말로 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이런 대학살이 해를 넘겨 1938년 2월까지 자그만치 6주 동안이나 이어졌습니다. 차디찬 겨울 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무고한 중국인들이 일본의 총칼에 죽어갔습니다. 희생자는 모두 30만 명이 넘었습니다. 일본의 극우 집단은 여전히 이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중국 측이 사실을 날조했다는 겁니다. 하지만 수많은 증언과 증거는 일본의 잔인한 행위를 낱낱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중국 정부는 2014년 12월 13일부터 남경대학살 희생자를 위한 국가의 공식 추모일을 제정, 시행하고 있습니다. 2015년에는 이 사건의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습니다.
감사합니다. 再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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