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만나는 시간, NOW
  • 방송시간 : [월~금] 09:10~10:00
  • 진행,PD: 전진영 / 작가: 강정연

인터뷰 전문

“라디오로 만나는 연해주 독립운동지 기행”
작성자 : ytnradio
날짜 : 2019-12-12 20:45  | 조회 : 785 
YTN라디오(FM 94.5) [세계를 만나는 시간, NOW]

□ 방송일시 : 2019년 12월 12일 목요일
□ 출연자 : 박환 수원대 사학과 교수, 이은지 YTN 라디오 PD

“라디오로 만나는 연해주 독립운동지 기행”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전진영 아나운서(이하 전진영): 대한의 국민이 된 사람은 대한의 광복을 죽기로 맹세하고 성취한다. 1910년 8월 23일 연해주의 해삼위, 지금의 블라디보스토크 한민 학교에서 한인들이 외쳤던 말입니다. 이 외침이 성명의 시작이 됐고요. 연해주에는 그만큼 우리 독립운동의 유적지가 많습니다만, 우리에게는 다소 낯설죠. 최근 들어 블라디보스토크에는 한국 여행객이 급증했습니다. 그리고 내년이면 한러 수교 3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저희가 특별한 시간을 준비해봤는데요. 우리 독립운동가들의 역사적 무대가 됐던 연해주로 라디오 기행을 떠나보는 시간을 준비했습니다. 지금도 제가 마침 차이코프스키의 음악까지 준비를 해서 분위기를 만들어봤는데요. 도움 말씀 주실 두 분 소개하겠습니다. 수원대학교 사학과 박환 교수, 그리고 최근에 러시아 현장에 직접 취재 답사를 다녀온 YTN 라디오 이은지 PD와 함께합니다. 어서 오십시오.

◆ 이은지 YTN 라디오 PD(이하 이은지): 안녕하세요.

◆ 박환 수원대 사학과 교수(이하 박환):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 전진영: 교수님, 생방송인 거 모르셨어요?

◆ 박환: 떨립니다. 

◇ 전진영: 우리 이은지 PD는 참고로 말씀드리면 저녁 시사 프로그램 ‘이동형의 뉴스 정면승부’ 제작 PD를 맡고 있습니다. 오늘 이렇게 아침 일찍 저희 방송 출연해주기 위해서 너무 예쁘게.

◆ 이은지: 풀메이크업을. 1년에 두 번 있는 일입니다.

◇ 전진영: 정장까지 입고, 이은지 PD가 저희 라디오 스튜디오에 찾아와 주셨고요. 먼저 이은지 PD가 연해주로 언제부터 언제까지 다녀왔죠?

◆ 이은지: 지난달 중순부터 해서 말까지 한 14박 15일 정도 다녀왔습니다. 이게 제가 혼자 간 게 아니고요. 한국언론재단에서 각 지역이나 여러 군데의 언론사 기자, 또 PD들을 뽑아서 러시아 지역의 전문가 과정 연수를 했고요. 제가 신청을 했는데, 얼떨결에 당첨돼서 따라 갔다 왔습니다.

◇ 전진영: 라디오 PD로는 최초였죠?

◆ 이은지: 최초는 아닌데, 그 기자단 중에 라디오 PD는 저 혼자였던 것 같아요. 

◇ 전진영: 그래서 이은지 PD의 생생한 취재 현장은 잠시 뒤에 들어보도록 하고요. 교수님께 여쭤보고 싶은 것들이 오늘 많습니다. 일단 저희가 연해주라고 부르는 이 지역이 구체적으로 정확히 어디를 지칭하는 건가요?

◆ 박환: 두만강 건너 지역이라고 말씀을 드릴 수 있는데요. 연해주라는 뜻은 연할 연 자, 바다 해 자, 고을 주 자라고 해서 바다와 연한 지역. 바다라고 하면 동해가 되겠죠. 두만강 건너에서 동해 쪽으로 북쪽 지역. 하바로프스크 이남 지역을 연해주라고 표현을 하고 있죠. 

◇ 전진영: 저희가 일반적으로 해외 독립운동 지역이라고 하면 만주, 중국 상해 정도는 다들 알고 있거든요. 그런데 연해주에도 이렇게 망명한 독립운동가들이 많다는 사실은 몰랐습니다.

◆ 박환: 네, 연해주가 사실은 국내외를 통틀어서 1910년대 3·1운동이 일어나기 전까지 한국 독립운동에 있어서 가장 독립운동이 활발했던 지역이 바로 연해주라고 볼 수 있죠. 

◇ 전진영: 그러면 연해주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또 어떤 분들이 활동을 하셨는지, 지금 구체적으로 말씀을 드릴 겁니다만, 핵심 키워드를 몇 개 꼽아주신다면요?

◆ 박환: 독립운동 기지로 일단 말씀드리면, 대표적으로 신한촌이라는 블라디보스코트 쪽을 이야기할 수 있고요. 인물로는 너무나 잘 아시는 안중근 의사가 바로 러시아 연해주에서 활동을 하셨고, 또 최근에 굉장히 노블리스 오블리제 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재무총장으로 알려진 최재형. 또 헤이그 밀사였던 이상설, 이위종, 수많은 그러한 인물들이 있고요. 독립운동 단체로는 구한말의 동의회라고 하는 의병 조직, 또 1910년대는 권업회라고 하는 단체 등 너무나 많은 그러한 인물과 단체, 이런 것들이 있었던 지역이었다, 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 전진영: 그러면 이렇게 많이 설명을 해주신 부분들 중에 우리 이은지 PD님은 어디를 다녀오신 거죠?

◆ 이은지: 저는 우선 연해주 지역만 다녀온 것은 아니었고요. 상트페테르부르크라는 곳을 먼저 갔고, 그곳에서 보니까 초대 공사였던 이범진 공사 집무실이 있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이범진이라는 인물의 이름을 사실 정말 죄송한데, 처음 들었어요. 그리고 이후에 모스크바에 가서, 지금 모스크바에 광복회도 따로 조직이 되어 있거든요. 독립운동가들의 후손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가졌고요. 이후에 돌아와서 블라디보스토크, 우수리스크를 들러서 여러 독립운동 지역을 답사하고 왔습니다.

◇ 전진영: 그러면 지금 이은지 PD가 언급한 이렇게 다녀온 곳들, 제대로 잘 취재하고 연수 다녀온 게 맞나요?

◆ 박환: 러시아 지역 항일 독립운동을 했던 지역은 사실은 러시아 전역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는데요. 대체적으로 중요한 지점은 거의 다 다녀오신 것 같고요. 그중에서 연해주 쪽에는 블라디보스토크, 우수리스크 쪽을 다녀오셨는데, 거기도 대표적인 지역이고, 안중근 의사가 손가락을 자른, 단지동맹을 한 장소가 두만강 근처, 북한하고 인접 지역에 있습니다. 지명은 크라스키노라고 하는데요. 그쪽은 지금 겨울철이고, 비포장도로고, 북한 지역하고 가까워서 그쪽 지역은 이번에 여러 가지 사정에 의해서 못 다녀오신 것 같습니다. 

◆ 이은지: 네, 제가 잘못 다녀온 것이면 큰일 납니다. 왜냐하면 교수님 책을 보고 다녀왔거든요. 말씀해주신 크라스키노 지역은 제가 갔을 때는 눈이 너무 많이 와서, 러시아잖아요. 차가 전복될 수 있다, 그래서 아쉽게 포기했던 지역입니다. 너무 아쉬워요.

◆ 박환: 제가 지난주에 그쪽을 다녀왔는데요. 거기는 국경지역이다 보니까 탱크가 많이 다녀요. 그래서 비포장도로들이 많습니다. 눈이 많이 왔을 때 결빙도 있고, 여러 가지 도로상황이라든가 여러 가지가 불편해서 잘 안 다녀오셨다. 겨울에는 조금 위험한 곳입니다.

◇ 전진영: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저희가 그러면 본격적으로 라디오 기행을 떠나보도록 하겠습니다. 저희가 한국에서 러시아로 직항을 타고 가는 게 가능합니다.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러시아 땅이라고 하면 익숙하죠. 블라디보스토크인데, 어디를 저희가 먼저 이야기를 해볼까요?

◆ 이은지: 제가 먼저 말씀을 드리면, 교수님 신한촌 어떨까요?

◆ 박환: 신한촌이 러시아 지역 항일 독립운동뿐만 아니라 국내외를 통틀어서 1910년대 국외 독립운동 기지라고 할까요? 가장 유명한 것이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이다, 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 전진영: 신한촌을 직접 가보신 거죠?

◆ 이은지: 네, 저는 직접 가봤는데요. 굉장히 놀라웠던 것 한 가지는 신한촌이라고 해서 무슨 마을이 형성되어 있을 줄 알았어요, 사실은.

◇ 전진영: 이름을 듣기에도 그래 보이는데요.

◆ 이은지: 그런데 구글 지도로 지도상으로 찾아서 주소를 입력하고 갔더니 그냥 러시아의 굉장히 낡은 아파트 촌이에요. 그리고 신한촌의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나라의 독립운동가들이 활동을 했다고? 전혀 찾아볼 수가 없어요. 굉장히 안타깝지만, 교수님 제가 본 게 맞죠?

◆ 박환: 네, 맞습니다. 그만큼 세월이 흘렀기 때문에, 한 100년의 세월이 흘렀잖아요. 그래서 그만큼 변한 것이고요. 신한촌 같은 경우는 원래 우리 한인들이 처음으로 이주했던 곳은 신한촌이 아니고. 신한촌이잖아요. 새로운 한촌. 원래 이 지역은 1910년에 우리가 일제에 의해서 조선이 강점된 이후에 러시아에 의해서 강제적으로 옮겨진. 그래서 소위 말해서 ‘달동네’가 있지 않습니까? 달동네 지역이고요. 그쪽 지역에 수많은 한인들이 살았기 때문에 그 당시에는 우리 한인들의 마을로 형성되어 있었던 곳이죠. 그런데 해방이 되고, 또 스탈린 정부가 들어서고, 오늘 날 변하면서 산등성이에 있는 초라한 아파트들이 나열되어 있는 그런 곳으로 변화됐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 전진영: 방송 전에 이은지 PD가 저에게 참고자료를 줘서 저도 봤는데, 사진을 보니 그중에 서울거리라고 찍혀 있는 게 있기는 있더라고요. 

◆ 박환: 네, 있습니다. 서울거리라는 지명 같은 경우는 저희한테 굉장히 신한촌을 이야기할 때 감동으로 다가오는 그러한 부분입니다. 왜냐하면 신한촌에 가도 지금 우리 이은지 PD가 이야기를 한 것처럼 그냥 낡은 아파트 정도, 황량한 그런, 우리 한인들의 자취와 흔적을 직접적으로 체험하고 느낄 수 있는, 감동을 받을 수 있는 그런 곳이 없는데요. 바로 신한촌 아래쪽에 아무르만이라고 하는 바다가 있는데요. 거기에 보면 조그마한 집이 하나 있습니다. 거기에 서울거리, 러시아 말로 서울 울리짜라고 하는데요. 그 주소명이 붙어 있는 게 있습니다. 그래서 그 주소명은 사실은 1910년대부터, 신한촌이 생겼을 때부터 우리 한인들이 사용했던 주소 명칭이거든요. 바로 서울거리라는 그 명칭 하나 속에서 러시아 지역에 살고 있던, 신한촌에 살고 있던, 또 그 당시에 독립운동을 거기서 했던 수많은 사람들을 우리가 기억해낼 수 있는. 그래서 감동의 거리 명칭이 아닌가. 그래서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이은지: 이게 감동이 더한 건 서울거리하고 숫자 2하고 알파벳 A가 쓰여 있거든요? 한글로 쓰여 있어요. 

◇ 전진영: 서울거리가 한글로?

◆ 이은지: 한글로 쓰여 있어요. 그 러시아 한복판에 한글로 쓰여 있고. 그런데 이따가 교수님께서 말씀을 해주실 거라고 생각하지만 보통 신한촌이라고 하면 신한촌 기념비들을 많이 가시거든요. 거기에서 조금 더 걸어서 고생스럽지만 낡은 아파트촌을 헤치고 산등성이를 올라가다 보면 정말 동떨어진 곳에 집 한 채가 있거든요. 아주 낡았어요. 거기에 서울거리라는 간판이 있는 거예요. 그때 감동을 제가 잊지 못하겠어요. 서울거리가 있고 앞에는 말씀해주신 대로 기찻길이 있고, 바다가 펼쳐져 있고요. 되게 낭만적일 것 같죠? 거기까지 가는 길이 폐허에요, 거의. 그리고 아시겠지만 러시아는 겨울에 해가 안 뜹니다. 그래서 낮에도 어두컴컴하거든요. 이 어두컴컴한 거리에 아주 쓰러져가는 낡은 아파트촌을 지나서 그 집을 봤을 때의 감동을 꼭 블라디보스토크 여행을 준비하시는 분들이라면 여기를 꼭 찾아가셔라. 내가 진짜 한국 사람이구나, 이런 감동을 거기서 느낄 수 있습니다.

◇ 전진영: 방금 이은지 PD가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만약에 신한촌을 알고 한국인 관광객들이 가면 보통 신한촌 기념비만 온다는 얘기시잖아요. 신한촌 기념비가 하바로프스크에 세워져 있기는 합니다. 미리 준비해주신 사진을 보니까 모양이 특이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일단은. 길고 큰 비석이 세 개가 중앙에 있고, 둘러싼 비석들이 작게 8개 정도가 있더라고요. 이거는 교수님, 무슨 의미로 세워진 건가요?

◆ 박환: 솔직히 말씀드리면 정설은 없습니다. 정설은 없는데, 보통 작가가 기념비에다가 이런 것을 형상화했다든가, 정확한 표시는 없는데 대체적으로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거든요. 위에 크게 세 개 있는 것은 한국을 정점으로 해서 남한과 북한을 상징하는데 특히 가운데는 고려인. 고려인이고 남과 북을 해서 세 개가 있다. 남과 북, 그다음에 고려인이 함께 더불어 항일투쟁을 하는, 그리고 미래를 지향하는 그런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보고 있고요. 여덟 개는 전국 8도를 상징적으로. 그렇게 이야기들을 하고 있습니다.

◆ 이은지: 저도 몰랐던 사실이에요. 거기 안 쓰여 있더라고요.

◆ 박환: 그래서 거기 기념비에 대한 기념비의 역사적 의미라든가, 이런 것들은 한국어와 러시아어로 되어 있는데, 조형물의 의미라든가, 설명, 해설 같은 것이 안 들어있어서 사실은 조금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그런 장점도 있는 것 같습니다. 

◆ 이은지: 저는 거기서 한 30분 정도 취재를 시도했는데요. 한국인 관광객들이 굉장히 많이 오더라고요. 그래서 여쭤봤더니 일부러 들렸다, 여기를 반드시 오고 싶었다. 최근에 모 역사 예능 프로그램에서 거기를 촬영을 한 모양이더라고요. 그래서 한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옹고 있었고, 더 놀라웠던 건 러시아인 추모객들도 오더라고요. 와서 고개를 숙이고, 묵념을 하고 가고. 러시아어로 인터뷰를 시도했는데, 여기 어떻게 알고 왔냐고 했더니 본인들의 어머니, 아버지는 한인들과 함께 이곳에서 자랐다. 그리고 본인들이 고려인들의 강제 이송했던 것에 대해서 반성한다, 부끄럽다, 이런 이야기들을 해주셨고, 그 목소리들을 담아 오기도 했습니다.

◇ 전진영: 그렇군요. 지금 신한촌 이야기를 저희가 계속 하고 있어서 저는 의문점이 또 하나 있었는데요. 그냥 한인촌이 아니라 신한촌이잖아요. 그러면 구한촌도 있었다는 이야기인가요?

◆ 박환: 네, 그렇습니다. 구한촌도 있었는데요. 표현은 저희가 구한촌이라고 하지 않고 개척리라고, 처음에 우리 조선 사람들이 러시아 연해주 지역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한인 마을을 개척해서 만들었다고 해서 개척리라고 하고요. 신한촌이 생긴 다음에는 신한촌, 새로운 한촌과 구별하기 위해서 이쪽을 구한촌이라든가, 이런 식으로도 표현하는데요. 이쪽 지역은 한국 사람들이 처음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이주한 것은 1860년 정도 되거든요. 그런데 블라디보스토크의 한국 사람들이 마을을 형성하고 산 것은 1870년대 초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1870년대 초에 블라디보스토크에 군항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러시아의 군항들, 해군기지가 대체적으로 여러 군데 있거든요. 그중에서 극동 지역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블라디보스토크. 군항이 있어서 그 군항 건설을 그 당시에 우리 한인들이 했습니다. 그래서 블라디보스토크 군항이 있는 곳이 블라디보스토크 현재 역이 있는 곳인데요. 거기가 다운타운이 되기 때문에 거기서 조금 떨어진 곳에, 바닷가에, 한적한 곳에 우리 한인들이 1870년대 초부터 마을을 형성했고, 그 마을을 개척리, 또는 구한촌이라고 표현해서 1910년에 저희가 일제에 의해서 조선이 강점된 이후에 러시아 쪽에서 일본의 항일을 받아들여서 우리 한인들을 먼 지역, 달동네로 옮기게 되는데, 그것이 새로운 한인촌이라고 해서 신한촌. 이렇게 표현하고 있죠. 

◇ 전진영: 신한촌과 구한촌. 이은지 PD도 그러면 구한촌이라 불리는 곳 가보셨어요?

◆ 이은지: 여기를 안 갈 수가 없어요. 관광객들이 가면 여기가 블라디보스토크의 핫플레이스라고 해서 명동? 그래서 안 갈 수는 없고요. 저는 개척리, 구한촌, 이런 것을 모르고, 킹크랩 먹으러 여기를 가서 킹크랩과 간단하게 맥주 한 잔 정도 할 수 있는 카페나, 이런 거리에요. 거기서 먹고 이랬는데 나중에 돌아와서 교수님 책을 다시 한 번 보다가 이곳이 이곳이었구나, 하는 것을 느끼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전혀 몰랐어요. 그만큼 흔적은 남아있지 않아요.

◇ 전진영: 흔적이 남아있지 않다는 부분이나 관리가 안 되고 있다는 부분도 지금 두 분 말씀을 들어보니 안타까운 부분이기도 하고. 그리고 대부분 관광객들은 이렇게 핫플레이스라고 알고 가는 거지, 역사적인 의미가 있다고 가는 분들은 많지 않을 것 같거든요. 오늘 방송을 듣고 핫플레이스니까 가지만 예전에 이런 역사가 담겨 있다는 것도 알고 가시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 박환: 네, 그 부분과 관련해서는 제가 한 마디 드리고 싶은데요. 바로 그곳은 지금 현재 포크라니치나야 거리라고 되어 있고요. 개척리라고 하는 곳이요. 바로 그 거리에서 독립운동을 고민하고, 계획하고 추진했던 수많은 항일 독립운동가들이 있는데, 그중에서 애청자 분들께서 가장 쉽게 다가오는 분은 아마 안중근 의사입니다. 안중근 의사가 그 거리를 거닐었고, 바로 그 거리에 있는 대동공보사라는 한국어 신문사에서 이토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암살을 계획하고, 추진했던 그 장소가 바로 그곳, 개척리라고 말씀드릴 수 있고요. 또 헤이그 밀사였던 이휘종이라든가,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바로 그 개척리 지역에서 구한말에 조국의 광복,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 끊임없이 투쟁하고 노력했던 그 현장이 바로 개척리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 이은지: 교수님, 그렇게 말씀해주시니까 킹크랩만 먹고, 즐겁게 거닐었던 제가 굉장히 부끄러워집니다.

◆ 박환: 사실은 거기 먹거리 중에 킹크랩도 있지만요. 곰새우. 그것도 아주 삶은 게 맛있고요. 최근에는 거기 킹크랩 라면집이 있는데, 라면도 아주 꿀 라면입니다. 

◆ 이은지: 한글로 적혀 있어요. ‘라면집’하고 적혀 있고요. 킹크랩뿐만 아니라 예전에 대통령이 드셔서 유명해졌던 독도새우가 거기서 많이 잡혀서 정말 맛있습니다. 머리를 먹어야 해요.

◆ 박환: 모스크바에 아르바트 거리가 있잖아요? 그것처럼 바로 개척리하고 붙어있는 곳에 블라디보스토크 아르바트 거리가 있습니다. 그쪽에 예쁜 카페도 많고, 또 러시아라든가, 한국의 젊은이들이 기타도 치고, 아주 젊음의 공간이라고 할까요?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흥미진진한 그런 것들이 그곳에 있습니다.

◇ 전진영: 저는 킹크랩이 사실 비싼 음식이라서 먹기가 쉽지 않은데, 그것으로 라면을 끓인다고 생각하니까요. 

◆ 이은지: 라면도 비쌉니다, 생각보다.

◆ 박환: 그리고 거기에서, 방송에서 이런 이야기를 해도 되는지 모르겠는데요. 라면 국물에 보드카 한 잔을 탁 마시면 아주 좋습니다. 

◇ 전진영: 러시아 하면 또 보드카를 빼놓을 수 없으니까요. 맛이 궁금해집니다. 교수님이 이야기해주신 부분 중에 안중근 이야기가 나온 김에 저희가 그러면 안중근 의사의 단지동맹 기념비가 있다고 하는 크라스키노 이야기도 한 번 해보고 싶습니다. 크라스키노가 어떤 지역인가요?

◆ 박환: 크라스키노 같은 경우는 예전에는 우리 발해. 발해 쪽에서 일본으로 나가는 유일한 항구입니다. 그래서 지금 두만강 쪽하고 러시아의 바로 국경지대, 접경지대에 있는 지점이 크라스키노라고 하고요. 우리 한국에서는 옛날부터 그 지역을 연추라고 표현했고, 또 노보키예프스크, 러시아어로는 이렇게 표현했는데요. 1930년대에 러시아 장군 크라스키노 중위가 일본군하고 싸우다가 전투에 희생당해서 지금 지명은 크라스키노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곳은 1907,8년에 국내로 처 들어가는, 진공하는 그런 동의회라고 하는 의병 조직이 만들어졌던 곳이고요. 그 동의회라는 의병조직에서 안중근 의사가 국내로 진공작전을 활발하게 전개했고, 이토를 처단하기 위한 그런 결심, 또는 상징이라고 볼 수 있는 단지를 한 곳이 크라스키노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 이은지: 제가 갔을 때 블라디보스토크 관광청장을 만났었는데요. 그분이 그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한국 관광객들이 오면 여기 길도 안 좋고, 왔다 갔다 하루를 잡아야 하는데 여기를 그렇게 가고 싶어 한다는 거예요. 안중근 의사가 한국인들의 역사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 것 같다, 이 이야기를 해주시더라고요. 그만큼 제가 못 간 게 아쉽긴 한데, 겨울이 아닌 다른 계절에 가는 분들은 반드시 여기 한 번 다녀와도 너무 좋을 것 같아요.

◆ 박환: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크라스키노까지 300km 정도 떨어져있고요. 그리고 국경지대다 보니까 교통시설이나 이런 것들이 제대로 발전되어 있지 않은데, 제가 이 지점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크라스키노까지 가는 도로가 있지 않습니까? 그 도로를 우리 한국인들이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우수리스크 설명할 때 최재형이라는 분이 등장하는데, 최재형을 중심으로 하는 그러한 조선인들이 닦은 도로라는 측면에서. 그리고 그 길이 바로 또 의병들의 진격로이기도 했고요. 바로 그 도로들은 러시아 연해주의 모든 지역들이 한인들의 숨결이 묻어난 그런 곳들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그런 지역 중 하나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 전진영: 말씀해주신 김에 교수님 책에서 최재형의 땅이라고 표현을 해주셨던 우수리스크 이야기를 지금 바로 해보도록 할 텐데요. 먼저 최재형이라는 분은 어떤 분인가요?

◆ 박환: 일단 우수리스크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북쪽으로 100km 정도 떨어져있는 곳이고요. 최재형이라는 분은 러시아 지역 항일 독립운동의 대부라고 말씀드릴 수 있고, 단적으로는 안중근 의사의 의거를 실질적으로 주도하고, 계획하고, 후원했던 그런 인물이고요. 러시아 지역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 단체인 권업회 회장이라든가, 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초대 재무부 장관, 재무총장으로 활동하다가 1920년 4월에 일본군에 의해서 피살된, 그런 러시아 지역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독립운동가죠. 그런데 그분이 특별히는 교육자로서 많은 기여를 하고, 자기의 전 재산을 독립운동뿐만 아니라 수많은 러시아에 살고 있는 학생들이 있죠? 학생들의 교육자금으로 학교를 설립한다든가, 유학을 보내준다든가,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상징적 인물로서 최재형이 주목되는 인물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 전진영: 이은지 PD가 직접 최재형 고택에 가봤죠?

◆ 이은지: 다녀왔고요. 제가 느낀 그 어떤 러시아의 유적지보다 관리가 잘 되어 있다. 최재형 고택이라고 동상도 서 있고요. 그리고 가시면 교육자료를 보여줍니다, 동영상으로. 그래서 최재형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배우고, 보고 느낄 수 있게 해주고요. 고택 자체를 최재형 선생님 사시던 그 당시 그대로 유지를 해놨어요. 그래서 깨진 유리창, 이런 것들이 그대로 있고, 최재형 선생님 별명이 ‘페치카’잖아요. 난로라는 뜻인데, 그만큼 따뜻했던 분인데, 그 페치카가 그대로 남아 있어요. 그런 모습들을 보실 수가 있을 거고요. 또 한 가지는 고택 말고 제가 최재형 선생님의 후손인 최 발렌틴 선생님을 만나고 왔는데, 고국에 있는 분들에게 전하고 싶다는 말이 있어서 그것을 제가 가지고 왔거든요. 지금 소개를 할까요?

◇ 전진영: 네, 소개를 해주세요.

◆ 이은지: “우리 조국은 최재형 선생님을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 그 점에 대해서 정말 조국에 감사한다”고 했고요. “어찌 보면 지금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은 기억하는 것과 우리의 역사를 기록해놓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기록을 해놓는다면 어쩌면 우리들의 그 후손들이 뒷일을 감당해주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그래서 러시아에서 활동했던 독립운동가들의 이름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기록해놓고 싶다.” 이 이야기를 해주셨고요. 꼭 조국에 계신 우리 동포 여러분들께서도 러시아에서도 활동하셨던 우리 선조들의 이름과 이야기들을 기억해 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 전진영: 그렇군요. 사실 이은지 PD가 정말 오랜 시간 동안 직접 가서 현장 답사, 취재를 한 장소들이 많은데, 이럴 줄 알기는 했습니다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요. 다녀와 보신 많은 곳들 중에 저희가 오늘 언급한 이곳들 말고 혹시 추천해줄 만한 곳, 기억에 남는 곳이 있으면 한 군데만 소개를 해주신다면요?

◆ 이은지: 제가 할까요, 교수님께서 하시는 게 나을까요?

◆ 박환: 말씀하시죠.

◆ 이은지: 저는 블라디보스토크 역을 꼭 가보셔라. 이 역이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종착역이기도 하고요. 이 역에서 이름을 알지 못하는 수많은 의병들과 독립운동가들이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서 기차를 타고, 안중근 의사가 또 하얼빈으로 가기 위해서 기차를 탔던 곳입니다. 저는 굉장히 남달랐어요.

◇ 전진영: 이런 의미를 알고 가면 더 남다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요. 교수님께서도 그러면 끝으로 한말씀 해주신다면 어떤 이야기를 남겨주고 싶으세요?

◆ 박환: 저도 우리 PD님과 마찬가지로 블라디보스토크 역을 가장 상징적인 그런 곳으로 꼽고 싶고요. 또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종착역이자 시발역이기도 하고, 안중근 의사뿐만 아니라 헤이그 밀사였던 이준 열사가 출발한 곳이기도 하고요. 이러한 독립운동뿐만 아니라 수많은 우리 한인들의 애환이 서려 있다고 할까요? 그래서 37년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당할 때도 블라디보스토크 역에서 출발했다고 해서 아픔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특별히 시베리아 횡단열차 같은 경우는 모스크바까지 9288km인데, 그 블라디에서 출발했던 수많은 역들, 그곳에 우리 한인들의 발자취가 있었고, 또 항일투쟁의 열기가 있었던 그러한 곳들이기 때문에 블라디보스토크 같은 경우는 특별히 더 상징적 의미가 있다고 저도 공감합니다.

◆ 이은지: 제가 잘 꼽았네요.

◇ 전진영: 제가 이 시간에 두 분을 통해서 이야기를 들었지만, 일단은 반성을 많이 하게 되고요. 그렇게 역사적인 의미가 많이 담겨 있는 장소라고 하는 것을 저도 몰랐기 때문에 오늘을 계기로 저도 많이 배웠고, 앞으로 더 많이 배워야겠다는 생각도 많이 들었고요. 아마 들어주신 애청자 여러분도 같은 생각을 해주시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두 분 덕분에 자리에 앉아서 러시아 기행을 다녀온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지금까지 박환 수원대학교 사학과 교수, 그리고 YTN 라디오 이은지 PD, 두 분과 함께했습니다. 고맙습니다.

◆ 이은지: 고맙습니다.

◆ 박환: 감사합니다.

※ 본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19 KPF 디플로마 '러시아전문가' 과정 참여 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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