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플러스
  • 방송시간 : [월~금] 15:00~16:00
  • 진행 : 김우성 / PD: 김우성 / 작가: 이혜민

인터뷰 전문

[생생경제] 김용균 母 “변했냐고요? 회사가 착복한 노무비 520만 원도 못 받았어요"
작성자 : ytnradio
날짜 : 2019-11-28 17:12  | 조회 : 1961 
■ 방송 : YTN 라디오 FM 94.5 (15:10~16:00)
■ 진행 : 김혜민 PD
■ 대담 : 김미숙 김용균 재단 대표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생생경제] 김용균 母 “변했냐고요? 회사가 착복한 노무비 520만 원도 못 받았어요"

◇ 김혜민 PD(이하 김혜민)> 지난주 한 신문 1면에는 2018년 1월 1일부터 2019년 9월 말까지 산업현장에서 사고로 사망한 노동자 1200명의 명단이 있었습니다. 이들의 죽음에 사실 아무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작년 한 사람의 죽음으로 이들의 외침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습니다. 故김용균 씨인데요. 오늘 생생인터뷰, 김용균 재단 대표, 故 김용균 어머니 김미숙 씨 나오셨습니다. 어머님, 어서 오세요.

◆ 김미숙 김용균 재단 대표(이하 김미숙)> 네, 안녕하세요.

◇ 김혜민> 저도 아이 둘의 엄마에요. 그래서 사실 이 자리에서 어머니하고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하나. 그냥 붙잡고 울고 싶은 마음뿐인데요. 일단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용균 엄마, 라고 그냥 평범한 삶을 살았는데, 용균 씨의 안타까운 죽음으로 김용균 재단의 대표가 되셨어요. 어느 언론에서는 ‘시대의 증언자’라고 어머님을 부르던데 완전히 삶이 바뀌었잖아요? 어떻게 살아내고 계세요?

◆ 김미숙> 아이 사고 이후 정말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왜 살아야 하는지 정말 암담한 현실에 너무 큰 아픔 때문에 힘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애가 그렇게 나라에 의해서, 안전하지 않은 현장에서 처참히 그렇게 목숨을 잃었기 때문에 이 안전하지 않은 곳이 용균이 뿐만 아니고 우리나라에 2400명이라고 하는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이렇게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다는 게 너무 저한테는 큰 충격으로 왔습니다. 왜 우리가 노동하면서 이렇게 안전을 방치한 상태에서 죽을 수밖에 없는 현장들이 많은지. 그것을 한탄하고 살고 있습니다.

◇ 김혜민> 아이를 먼저 보낸 부모의 마음은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절대 모를 거고요. 안다고 말할 수도 없고요. 보통 우리가 아이를 가슴에 묻는다고 하잖아요. 아파서 주저앉아 있을 수도 있는데, 이렇게 일어나서 이 아픈 이야기를 수도 없이 하는 이유가 뭘까요?

◆ 김미숙> 저는 정말 애가 하나밖에 없었고, 그 애만 제 옆에 있으면서 건강하게 살아주기를 바랐는데 이렇게 돼서 이제는 희망도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부모가 된 입장에서 저처럼 당하지 않고 사람들이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 제일 컸고요. 그래서 안전한 현장에서 누구나 일할 수 있는, 그래서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 김혜민>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고통을 본인이 겪었고, 이 고통을 다른 엄마들은, 아빠들은 겪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아픈 이야기를 하고, 또 하고, 가서 외치고, 이렇게 하시는 겁니다. 

◆ 김미숙> 처음에는 용균이 사진을 보면서 그랬습니다. 너는 왜 그렇게 죽어서 엄마를 왜 너의 처참한 사고를 기억하면, 이야기하면서 살 수밖에 없는 엄마를 만들어놨냐고 그렇게 이야기를 하다가 애가 그것을 원하고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당연히 알기 때문에 바로 미안하다는 것을 얘기했습니다.

◇ 김혜민> 지난 12일에야 용균 씨 사망 신고를 하셨어요. 그 마음을 너무 잘 알 것 같지만 사망신고를 이렇게 늦게 하기까지 이유가 어떤 게 있었을까요?

◆ 김미숙> 저는 용균이가 정말 합의이행도 잘 되고, 그리고 권고안도 받아들여서 나라가 안전하게 되면 정말 용균이의 사망 신고를 그때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비군 훈련, 그쪽에서 독촉을 해서 어쩔 수 없이 하게 되었는데, 그날이 정말 저는 사망신고를 해야 한다는 그것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택시를 타고 갔는데 택시에서 휴대폰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렇게 정신이 없는 상태였는데, 휴대폰도 찾아오고 그러면서 용균이는 아마도 사망신고를 하지 말라고 그렇게 제 휴대폰을 잃어버리게 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때 무슨 정신으로 그렇게 사망신고를 했는지 저조차도 해놓고도 후회가 많습니다.

◇ 김혜민> 출생신고 했을 때 그 부모로서의 설렘, 희망, 우리가 잘 알죠. 아이의 사망신고를 해야 하는 부모의 심정. 정말 마음이 아픈데요. 제가 이 질문까지는 용균 씨 어머니께 여쭙고요. 다음 질문부터는 김용균 재단의 대표님으로 제가 호칭하고 여쭙겠습니다. 물론 어머니는 용균 엄마가 제일 좋죠?

◆ 김미숙> 네.

◇ 김혜민> 그 호칭이 제일 좋지만, 왜냐하면 어머님이 김용균 재단을 만드셨고, 이 김용균 재단은 단지 사람을 기리는 재단이 아니다, 연대하고 행동하겠다고 말씀을 하셨기 때문에 제가 대표님이라고 호칭을 하겠습니다. 김용균 재단은 어떤 일을 하는 곳입니까?

◆ 김미숙> 저의 목적은 비정규직 철폐하고, 그리고 위험의 외주화 금지, 또 청년 노동자들 권리 보장하는 것하고, 유가족이 생길 때 그분들이 어디다가 손 내밀지 모르고 힘들어할 때 저희가 찾아가서 손잡아주고, 힘내도록 옆에서 보조해주는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 김혜민> 비정규직 철폐, 또 위험의 외주화 방지, 이런 일들을 계속해서 요구하실 거라고 했고, 사실 이런 것들은 정치권이 움직여주어야 하는 일이니까요. 제가 보기에는 대표님이 가장 하실 수 있는 게 유가족들의 손을 잡아주는 것. 이런 일이 또 일어나면 안 되겠지만 이런 일이 일어났을 때 사실 대표님만큼 그분의 마음을 이해하고, 위로해줄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아마 연대하고, 위로하는 일을 하시기 위해서 김용균 재단을 설립하신 것 같은데요. 용균 씨가 떠나고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28년 만에 개정됐습니다. 무려 28년 만에. 일명 ‘김용균법’이 통과된 건데요. 이 내용이 위험의 외주화 방지를 위한 도급인 산재 예방 조치 의무 확대, 안전조치 위반 사업주 처벌 강화, 법의 보호대상 확대가 주요 골자입니다. 그리고 석탄 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회가 꾸려지고 활동을 했는데요. 대표님이 보시기에 변한 게 있습니까?

◆ 김미숙> 이제 겨우 진상규명만 돼서 용균이가 억울하게 누명을 쓴 것을 밝힌 거고.

◇ 김혜민> 누명이라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말씀이세요?

◆ 김미숙> 처음 용균이 사고를 접하고 갔을 때 하는 말이 용균이는 착하고, 착실하고, 일도 잘하고 했지만 가지 말라는 곳을 가서, 하지 말라는 일을 해서, 고집이 세서 그렇게 했다고 얘기를 했을 때 제가 옆에 있는 동료들한테 몰래 물어봤어요. 정말 그러냐고 했더니 무조건 가서 일하게끔 지시를 받는다고 얘기를 들었을 때 누명을 씌우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 김혜민> 진상규명을 통해 그런 부분은 개인의 부주의가 아니라 회사의 부주의로 희생됐다는 것을 밝혀냈고요. 그것뿐만 아니라 법안과 권고안에 여러 가지 위험을 막을 수 있는 항목들이 들어있는데요. 그러면 현장을 대표님이 보실 때는 변한 게 없습니까?

◆ 김미숙> 합의이행이 지금 하나도 안 되고 있는 것이요. 용균이 노무비 반값 착복을 회사에서 했어요. 

◇ 김혜민> 노무비 착복을 했어요?

◆ 김미숙> 네. 원래 520만 원을 받아야 하는데, 용균이는 220만 원을 받았어요. 엄청나게 하청에서 착복을 하고 있었습니다.

◇ 김혜민> 그래서 하청을 주지 말라는 거잖아요. 이게 하청을 주고 그 하청이 또 하청을 주면 그만큼 노동자에게 들어갈 수 있는 돈이 줄어드는 거고, 심지어 안전과 관련된 일은 소속되어 있는 그 집단에서 책임져야 하는 문제인데 그것을 회피하겠다는 거니까. 그런데 실제로 용균 씨의 페이를 그렇게 착복했군요?

◆ 김미숙> 여기에 있는 하청 노동자들은 거의 다 이렇습니다.

◇ 김혜민> 그러면 그 부분도 돌려 달라고 말씀을 하셨습니까?

◆ 김미숙> 합의했을 때 노무비 착복을 100% 돌려주게끔 합의가 됐습니다.

◇ 김혜민> 그 이야기는 인정을 했다는 거 아니에요? 그런데 안 돌려줬어요?

◆ 김미숙> 네, 여태까지.

◇ 김혜민> 그게 얼마라고요?

◆ 김미숙> 지금 520만 원을.

◇ 김혜민> 그 520만 원을 아직도 안 돌려주고 있습니까?

◆ 김미숙> 네.

◇ 김혜민> 대표님 너무 답답하시겠어요. 왜 안전하게 노동하게 해 달라, 내 남편이, 내 아들이, 내 딸이, 우리 엄마가, 그리고 내가. 안전하게 노동해 달라고 하는 이 간단한 말이 대한민국에서 왜 이렇게 어려운 걸까요? 왜 그렇다고 생각하세요?

◆ 김미숙> 하청을 만들어 놓으면 발전회사에서는 고위 관료직들이 하청의 사장으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다른 필요조건이 있는 게 아니고 원청에서 고위 관료로 있었다는 이유로 하청의 사장으로 앉게 되면 그냥 앉아서 1억씩 월급을 가져가게 구조가 되어 있습니다. 이게 정년퇴직을 하게 되면 이 사람들은 따로 돈벌이가 없기 때문에 이런 구조를 만들어놓고 또 하청을 만들어서 이 사람들이 이익을 보는 것은 원청에서 책임져야 할 그 사망사고라든지, 이런 것을 회피할 수 있고, 또 세금 감면 혜택을 볼 수 있고, 또 자기네들 나중에 원청에서 나라에서 인지도도 높게 받을 수 있고, 이렇기 때문에 많은 것을 자기들의 이익이 있기 때문에 하청을 꾸려 나가고 있습니다.

◇ 김혜민> 대표님 예전에는 이 문제에 대해 이렇게 전문가가 아니셨잖아요. 저도 관심이 없었고요. 아들의 죽음으로 평범한 엄마가 투사가 됐어요. 이 현실이 얼마나 받아들이기 힘들고 어려울까요?

◆ 김미숙> 저는 애 죽음 이전에는 나라가 이만큼 발전했으니까 노동자들도 형편이 좋아지고, 노동자들이 권리나 이런 것들이 자동으로 주어지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용균이 죽음 이후 알고 보니 엄청나게 사람들이 핍박을 당하고 있고, 노동하면서 위험한 직장은 거의 하청을 내고, 위험의 외주화를 그래서 만들게 되었고. 그래서 원청은 책임지지 않고, 용균이 특조위가 발표 났을 때 그 앞에서 있었는데, 원청은 하청을 주었으니 책임이 없다고 했고, 하청에서는 자기 사업장이 아니니 책임이 없다고 했습니다.

◇ 김혜민> 그게 핵심이죠. 서로가 책임을 미루기 위해.

◆ 김미숙> 그래서 노동하는 현장의 근로자들은 더 위험에 내몰리게 되고, 안전을 방치해서 사람들이 엄청나게 죽어 나가고 있습니다. 이게 우리나라 용균이 있는 곳뿐만 아니고 위험한 현장에서는 다 이런 식으로 구조가 되어 있습니다.

◇ 김혜민> 청취자 여러분, 대한민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가운데 산업 재해 사망률이 1위입니다. 23년간 두 차례를 제외하고 1위를 내준 적이 없고요. 2001년부터 2017년 정부 통계로만 154만 3797명이 산재 사고를 당했어요. 이 가운데 4만 217명이 목숨을 잃었고, 연 평균 2366명이 산재 사고로 죽었습니다. 저도 몰랐습니다. 아들을 잃고 나서야 그때서야 이렇게 죽어간 사람들이 있었구나, 현실의 눈을 뜬 겁니다. 우리가 언제까지 이 현실을 모른 척 할 수 있겠어요. 모른 척 하면 언젠가 그게 내 일이 될 수가 있는 거거든요. 그런 사람이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 어머님이 이렇게 뛰고 계세요, 그렇죠?

◆ 김미숙> 저도 세월호 사건이 있을 때 정말 TV에서 보는데 저 가족들이 얼마나 힘들까, 어떻게 살아갈까, 저 자체도 그 한 해는 아무리 화창한 날이라고 해도 마음이 우울했고, 힘들게 보냈습니다. 그렇지만 저게 내 일이 될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 못 했고, 정말 나는 그렇게 되면 살아내기가 힘들겠다, 이런 생각을 하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용균이가 일하게 되고 3개월도 채 안 되고 사고가 났고, 그게 제 일이 되었습니다. 이게 어느 내 가정만 지키면 이 사회가 안전하게 되는 게 아니고, 내 주위를 지켜야만 내 가정이 안전하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깨우치고, 깨우쳐서 그냥 가만히 있는 게 아니고 내가 정치를, 저도 아예 관심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정치에 관심이 없으면 그만큼 당하는 게 내 자신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 김혜민> 내 삶이 생생하게 살아나려면 이웃과 상생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사회 여러 문제가 그냥 뉴스거리로 그치면 안 되고요. 필요할 때는 투표로 심판하고, 또 어느 때는 언론에 기고도 하고. 저 같은 언론인들은 제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인터뷰들을 해야 하는 게 우리 아이들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그런 나라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대표님하고 인터뷰한다고 하니까 우리 PD 한 분이 부활의 ‘새벽’이라고 하는 노래를 꼭 대표님께 들려 달라고 했어요. 가사가 이렇습니다. “언젠가 꿈속에 서로 만나듯이 저 바람을 타며 새가 날아가듯 저 바다를 넘어 기찻길을 따라 새가 날아오르는 하늘을 보라 커다란 날개를 펴고 가까이 가려해 우리가 살아온 날보다 내일이 더 길 테니.” 대표님, 우리 용균 씨 나중에 만나면 용균 씨에게 어떤 말을 제일 듣고 싶으세요? 

◆ 김미숙> 사랑한다. 저도 그게 제일 하고 싶고, 그리고 또 미안하다는 말이 제일. 못 지켜줘서 미안하다는 말이 제일 하고 싶었습니다.

◇ 김혜민> 어머님이 김용균 아들은 못 지켰다고 하시지만 어머니의 이런 시대의 증언자 역할들이 또 다른 어느 가정의 아들과 딸을 지킬 수 있는 그런 계기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어려운 인터뷰 나와 주신 어머니, 다시 한 번 감사드리고요. 이 인터뷰를 듣고 많은 분들이 이것이 내 일임을 깨달았으면 하는 바람을 다시 한 번 밝혀 봅니다. 어머니,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면 하시겠어요?

◆ 김미숙> 1주기가 곧 다가옵니다. 12월 10일이 1주기인데, 그 전에 12월 7일 날 광화문에서 크게 안전하지 않은 사회를 안전하게 만들기 위해서 촛불을 밝히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해주셔서 우리 사회가 안전하게 노동하며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만들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모두 모여서 촛불을 밝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김혜민> 김용균 씨 1주기가 12월 10일입니다. 3일 전 12월 7일 촛불을 밝힙니다. 안전한 대한민국을 위해서요. 이 자리에도 이 방송을 들은 청취자 분들, 내 일이라고 생각하시고 함께 참여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김용균 어머니, 김용균 재단의 대표 김미숙 씨와 함께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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