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 : YTN 라디오 FM 94.5 (13:00~14:00)
■ 진행 : 김혜민 PD
■ 방송일 : 2022년 1월 10일 (월요일)
■ 대담 : 이슬아 작가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김혜민의 이슈&피플] 제일 핫한 이슬아작가가 만난 새마음으로 오랫동안 일한 일곱명의 이웃 <새마음으로>
◇ 김혜민 PD(이하 김혜민)> "사건과 사고와 참말과 거짓말과 사랑과 이별과 바이러스가 난무하는 세상에서도 어쨌든 그저 묵묵히 치우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아무도 보지 않는 자리에서도 말이다. 우리는 우리가 직접 하지 않은 일로도 혜택을 누리며 살아간다."
며칠 전 순직 소방관을 추모하면서 제가 읽어드린 글은, 이슬아 작가의 인터뷰 집 <새 마음으로>에서 발췌한 겁니다. 어른이 된다는 건 나 혼자 힘으로 된 건 하나도 없다는 것, 빚지며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걸 깨닫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그걸 깨닫고 나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귀하고 또 그들의 노동이 얼마나 고마운지 알게 됩니다. 우리 시대의 진정한 영웅을 만나 그들의 삶과 노동을 담은 책. 새 마음으로의 저자, 이슬아 작가 오늘 만나봅니다. 작가님, 안녕하세요.
◆ (이하 이슬아)> 안녕하세요. PD님.
◇ 김혜민> 제가 SNS에 작가님이 저보다 한 10살 정도 어리신데, 물론 이 나이를 말하면 좀 꼰대지만, 그래도 제가 뭐라고 얘기했냐면 작가님은 저의 롤 모델이자 저의 연예인이라고.
◆ 이슬아> 감사합니다.
◇ 김혜민> 정말. 제가 막 지금 어떤 남자 연예인 만나도 이렇게 안 떨릴 거예요.
◆ 이슬아> 더 멋있게 입을 걸 그랬어요.
◇ 김혜민> 아니에요. 여러분들. 제가 왜 이렇게까지 얘기하는지. 이슬아 작가님, 정말 이 시대에 가장 핫한 작가님이라고 표현을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제가 너무 팬심을 드러냈죠.
◆ 이슬아> 아니요. 너무 좋아요. 그리고 사실 제가 여러 책을 냈는데, 새 마음으로를 콕 집어서 이렇게 초대를 해 주신 게 정말 감사하고 좋았습니다.
◇ 김혜민> 제가 왜 콕 집어서 이 책으로 작가님을 모셨는지 여러분, 인터뷰 들으시면 여러분도 아실 수 있고요 작가님이 또 혼자 오지 않으시고 우리 시청자 분들 몇 분 선정해서 책 선물 보내주신다고 책을 좀 가지고 오셨어요. 인터뷰 들으시면서 #0945로 문자 보내주시면 저희가 몇 분 선정해서 책을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그렇게 헌마음도 빈 마음도 아닌 새 마음으로 오랫동안 일했나. 이 책 뒤에 쓰인 문구예요. 늘 새 마음으로 일하는 어른 일곱 분을 만나서 인터뷰를 하신 건데 이 책을 쓰게 된 시작이 궁금해요.
◆ 이슬아> 이 책은 저의 독립적인 연재 프로젝트인 일간 이슬아에서 처음 연재된 글들이에요. 그러니까 인터뷰 코너에서 제가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듣는데, 누구나 알 법한. 그리고 인기가 많은 인터뷰이 분들도 만나지만 저에게는 어쨌든 마이크와 채널이 있잖아요. 근데 가끔씩 저에게 마이크가 있는데 그것만큼 중요한 이야기가 저에게 없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어요. 밑천이 없다는 이야기죠 그래서 나보다 더 중요한 이야기를 가진 사람들을 찾아가는 것이 작가들의 숙명이라고 느낄 때가 있는데, 그렇게 해서 찾아간 분들이 중장년 노동자 분들이에요. 아까 PD님께서 오프닝 때도 말씀하셨지만 사실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아주 적잖아요.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직접 하지 않은 노동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요. 그런 점에서 노동하는 중장년층 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책을 쓰게 되었습니다.
◇ 김혜민> 노동하는 중장년층. 접니다. 그리고 지금 이 방송을 듣는 많은 분들 중에 지금 이 책에 나올 법한 분들이 굉장히 많으세요. 그래서 이걸 읽으면서 참 많은 분들을 이 일곱 분의 인생에서 투영시킬 수 있어서 참 좋았는데, 어떤 분들을 만나셨어요.
◆ 이슬아> 제가 만난 분들을 우선 직종으로 먼저 말씀드리자면 응급실 청소 노동자, 농업인, 아파트 청소 노동자, 그리고 공장의 경리 선생님, 인쇄소 기장님, 수선집 사장님. 이렇게 일곱 분이었습니다.
◇ 김혜민> 일곱 분을 선정한 작가님만의 기준도 있었을 것 같아요.
◆ 이슬아> 우선 사실 제 생활반경 안에 있는 분들이셨고요. 인터뷰 때문에 미리 섭외해서 찾아간 분도 있었지만 주로 제가 생활하다가 만난 분들. 이를테면 인쇄소 기장님은 제가 출판사 일을 하니까 책을 만들면서 오다가다 본 선생님들이기도 하고. 사실 아파트 계단 청소 노동자나 응급실 청소 노동자는 누구든 살면서 한두 번쯤 만나게 되잖아요. 수선집 사장님이야말로 정말 그렇고요. 제 생활 반경 안에 있는 어른들을, 이웃 어른들을 만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 김혜민> 저는 생활반경 안에 있는 분들이라는 게 좋았어요. 왜냐하면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응급실 청소 노동자, 아파트 노동자 분들. 우리가 늘 만나지만 내 생활 반경 안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 안 하거든요. 그런데 사실 돌아보면 그냥 고개만 돌아봐도 만날 수 있는 사람인데 그 사람들의 인생에 관심을 가졌다는 게 저한테 굉장히 시사하는 바가 많았거든요.
◆ 이슬아> 이 방송에 남궁인 선생님도 왔다 가셨잖아요. 응급실에 계신 의사 선생님이나 간호사분들, 그리고 옆에 있는 환자들도 다 기억이 나지만 그곳을 누가 치우고 있었는지는 잘 기억을 못하더라고요. 저도 그랬고요. 남궁인 선생님의 책을 읽다가 청소 노동하시는 분들에 대해서 짧은 한 꼭지를 읽고 아, 이것은 짧은 꼭지로 지나갈 이야기가 아닌 것 같다, 해서 선생님께 부탁을 했죠. 조금 연결시켜달라고. 그렇게 해서 만난 분이 첫 번째 인터뷰이인 이순덕 선생님입니다.
◇ 김혜민> 이렇게 여러분들 생활 반경 안에도 있는 분들이에요. 그 분들의 인생을 이 시대에 제일 핫한, 사람들은 세상 힙하다고 우리 작가님을 표현하던데. 저는 가장 힙한 얘기가 일상의 얘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그분들을 만난 이 책을 보면서 저는 단편 영화 7편을 본 느낌이었어요. 작가님은 어떠셨어요.
◆ 이슬아> 맞아요. 저한테도 이제 한 편 한 편이 나름대로 드라마가 있는 것인데, 사실 이 모든 이야기가 시사 잡지에 르포 기사 같은 것으로 딱딱하게 다뤄지기도 하는. 노동 문제, 그리고 노동자 인권 문제로 다뤄질 수도 있지만. 그런 기사들이 하는 역할도 분명히 있지만, 그런 기사들에서는 사실 이분들의 개인적인 기질이나 사랑하고 우정하는 능력 같은 것은 누락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이분의 그런 사랑력, 우정력 같은 것을 전혀 누락시키지 않고. 그건 수필이랑 인터뷰가 할 수 있는 어떤 이야기잖아요. 좀 긴 분량을 들여서 다루고 싶어서, 그 드라마를 제외하지 않고 쓰는 경향이 있습니다.
◇ 김혜민> 저는 그게 너무 좋았던 게 말씀하신 대로 우리가 그냥 인터뷰에서 만나는 청소 노동자, 인쇄소 노동자, 아니면 한국전쟁 전후 세대의 분들의 이야기가 너무 그냥 현대사에 있는 One of them 같은 느낌인데, 그게 아니라 한 분 한 분 인생의 서사가 있고. 저는 그 수선집 사장님의 연애, 러브 스토리 너무 좋았거든요. 육십 이후에 만난.
◆ 이슬아> 그러니까요. 그런 것이 너무 사적인 이야기여서 어떤 공적인 글쓰기에서는 탈락되잖아요. 근데 문학이 할 수 있는 것은 그런 개인사를 되게 디테일하게 조명하는 것이고. 근데 너무 역설적이게도 그 이야기를 다 읽고 나면 너무 보편적인 사람이라고도 느껴지잖아요. 그런 걸 하고 싶었습니다.
◇ 김혜민> 이 일곱 분의 인터뷰와 나눈 이야기 중에 그러면. 우리 작가님이 가장 드라마 같다, 라고 생각했던 인생의 한 장면이 있으셨어요.
◆ 이슬아> 모두 그런 장면이 있었는데 방금 PD님께서 말씀하신 수선집 사장님의 그 말년의 사랑 이야기도 참 좋았고요. 왜냐하면 보통 사랑 이야기가 소비되는 방식은 주로 젊은 층의 특권처럼 느껴지잖아요. 근데 60대, 그리고 70대에서도 얼마나 많은 로맨스가 가능한지 알게 되는 이야기였고. 그리고 사실 우리가 가족 이야기를 새삼 좀 존중하면서 듣기가 어렵잖아요. 이 인터뷰 집의 세 번째 인터뷰이는 저희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였어요. 물론 이름을 호명하면서 인터뷰에 대한 예의를 갖추면서 진행했지만, 이분들이 아파트 계단 청소 노동자이자 경비원이자 저희 외조부모인 거죠. 이분들을 세삼 인터뷰를 하면서 어떤 사랑과 역사를 가지고 있는지를 처음 듣게 된 거예요. 이분들의 연애담, 그리고 고생담이 정말 너무 인상적이었어요. 들으면서 가장 많이 웃고 가장 많이 울면서 진행한 인터뷰가 이존자 편이었습니다.
◇ 김혜민> 이존자, 그리고 장병찬. 그분들이 우리 이슬아 작가의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되시고. 또 그분들의 딸이 우리 이슬아 작가의 엄마이기 때문에 그분들의 연애 스토리. 그분들의 삶의 어려움, 기쁨의 순간순간 나의 엄마가 늘 있었으니까, 그게 굉장히 더 밀접하게 다가왔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도.
◆ 이슬아> 맞아요. 그리고 대를 이어서 내려오는 사랑이라는 게 무엇인지. 그리고 이 사실 인간이 무엇을 반복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하게 됐던 것 같아요.
◇ 김혜민> 인간이 무엇을 반복하는가.
◆ 이슬아> 한심한 짓도 참 많이 반복하지만, 사랑도 진짜 많이 반복하는 거예요. 그 내리사랑이요 제가 받은 것을 주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는 인터뷰였습니다.
◇ 김혜민> 내가 받은 것을 주고 싶다. 지금 0876님이 이슬아 작가님의 행보를 늘 재밌게 보는 사람인데 오늘 이렇게 인터뷰로 만날 수 있어서 너무 즐겁습니다. 저도 책 보내주세요. 이렇게 문자 보내주셨네요. 인터뷰 들으면서 여러분. 이 책 읽고 싶으신 분들, 선물 받고 싶으신 분들. #094 5로 문자 보내주시면 됩니다. 이 <새 마음으로> 이 책은 전혀 다른 분야에서 전혀 다른 인생을 산 일곱 분의 이야기인데 저는 공통점을 몇 가지 발견했어요. 일단 그 사진들 중에 손 사진이 굉장히 의도하신 거예요. 손 사진을 좀 많이 노출시키신 게.
◆ 이슬아> 되게 잘 봐주셨는데요. 우리가 인터뷰이 얼굴을 정면에서 찍고, 그런 사진도 되게 중요하지만 사진도 시적으로. 그리고 은유적으로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새 마음으로는 사진에 굉장히 공을 많이 들인 책인데요. 표지부터 너무 아름답고.
◇ 김혜민> 맞아요. 너무 그냥 중장년층 얘기 안 같고, 소녀 하이틴 문예집 같은 느낌.
◆ 이슬아> 그렇죠. 표지 사진은 이훤이라는 사진가의 작품인데, 너무 아름다운 사진이고. 안에 있는 그 인터뷰 사진들도 다양한 동시대에 훌륭한 작업자들이 작업했어요. 손을 말씀해 주셨는데 누군가가 살아온 세월이 얼굴에서도 드러나지만 손에서도 참 많은 게 드러나는 것 같아요. 이를테면 농사 25년 동안 지으신 인숙 님 손 옆에 제 손을 갖다 대면 너무 애기손 같은 거예요. 그분의 뼈마디가 너무 굵어서. 그리고 청소하시는 이순덕 선생님 손은 되게 피부가 많이 거칠어요. 아마 독한 약 많이 쓰셨을 거예요. 그런 것으로 말하고 싶었고 또 뒷모습도 많이 찍은 편인데요. 등에도 표정이 있다고 저는 생각해요. 그렇게 사진으로 은유적으로 말하는 연출을 많이 의도했던 것 같습니다.
◇ 김혜민> 그러면 이분들의 그 손, 등 모습에서 드러났던 제가 찾은 공통점들을 몇 가지 말씀드리면 첫 번째는 이분들 모두 프로의식이 아주 철저하시더라고요. 노동자로서의 그 프로의식. 그러니까 응급실 청소 노동자 이순덕 님이 내가 치운 데를 한번 이렇게 둘러보는 거예요. 말끔하게 싹싹 치운 걸 보면 기분이 좋죠. 저는 일하면서 실수 잘 안 해요. 청소를 완벽하게 해요. 그저 내가 맡은 일만은 완벽하게 하는 거예요. 이 말이 막 경이롭더라고요 저는.
◆ 이슬아> 여기서 너무 긍지가 느껴지지 않아요.
◇ 김혜민> 맞아요. 그리고 수선집 사장 이영희 님도 나는 일을 허투루 안 하잖아 충분히 시간을 들여서 일해. 서둘러 대충 하지 않아. 손님이 찾으러 왔을 때 자신이 있어. 이 말에는 막 카리스마가 느껴지더라고요.
◆ 이슬아> 자신 있으니까, 너무 듣기 좋잖아요. 근데 뭔가를 결국 계속해서 반복하고 숙련해 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용기가 있는데, 저는 이분들만큼 세월을 살아보지 않았지만 어쨌든 매일 쓰는 것을 몇 년 동안 하면서. 누가 뭐라고 해도 깨지지 않는 어떤 반복에 의한 자신감이 저한테도 작게 생겼던 것 같아요. 이제 세월을 거기에 곱하면 이분들 같은 이야기를 저도 언젠가 할 수 있겠죠.
◇ 김혜민> 반복에 의한 자신감. 근데 사실 우리는 보통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우리한테 이미지가 굉장히 지루하고, 부정적이고, 생계를 위해서 하는 거라고도 생각하잖아요. 특히 그 일이 남이 하기 싫은 험한 일일 경우. 그런데 이분들은 물론 그 일 가운데 노동에 대한 어려움은 있으셨겠지만, 말씀하신 대로 반복되는 가운데 자존감과 숙명감이 느껴졌어요.
◆ 이슬아> 저도 똑같이 느꼈던 것 같아요. PD님도 이렇게 일을 하시지만 어느 날은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잖아요. 솔직히. 근데 그런 중간중간 와중에도 마음을 좀 새 마음으로 고쳐먹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저도 참 그러는데, 이분들에게도 그런 시간이 왜 없었겠어요.
◇ 김혜민> 새 마음, 새 마음으로 고쳐먹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이렇게 쓰셨어요. 오래되어도 생기를 잃지 않는 장소들이 있다. 그곳은 날마다 자기 자신과 일과 도구를 가꾸는 사람들의 공간이다. 존자 씨의 천장 속 그릇이나, 영애 씨의 실 뭉치나, 혜옥 씨의 서류함이나, 경연 씨의 인색이나, 순덕 씨의 유니폼에서도 비슷한 생기를 느낀다. 저 이 문장 너무 좋았어요.
◆ 이슬아> 저도 쓰고도 좋아하는데 좋아해 주시니 기뻐요. 방금 읽어주시면서 처음 느낀 게 생각해 보니까 이분들의 공통점이 모두 청소를 열심히 하시는 분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아까 손 사진도 찍었지만 늘 가서 사진을 찍는 부분이 이분들의 도구와 그 주변 정리된 어떤 풍경 같은 것인데. 주변이 지저분했던 분들이 아무도 없다는 걸 지금 알게 되었네요.
◇ 김혜민> 그게 아마 단순한 청소가 아니라 일을 대하는 태도 아니겠어요.
◆ 이슬아> 그런 것 같아요.
◇ 김혜민> 제 자리는 굉장히 더러운데. 제 일을 대하는 태도를 다시 한 번 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인터뷰 끝나면 책상 정리를 하겠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이들의 이 프로다운 의식이 자존감으로 연결되는 것 같았어요. 어떠셨어요.
◆ 이슬아> 맞아요. 이분들이 그 삶을 시작할 때의 조건 같은 것은 모두 다른데. 사실 대부분 가난한 집의 자식들이었고, 그리고 집안 개인적인 가정이 가난했을 뿐 아니라 말씀하셨듯이 전후 세대이고. 되게 격동의 근현대사 속에서 불행과 함께 태어난 분들이 많은데, 그것은 이제 주어진 조건이고. 자기가 자기 삶을 가꾸면서 스스로 만드는 자긍심이라는 게 있는 것 같아요.
◇ 김혜민> 그 장병찬 님이 소도 언덕이 있어야 발을 디디고 올라가잖아. 당시 나한테는 생활의 기반이라는 게 너무 없었어. 우리 어렸을 때 6.25 겪은 사람이다. 이 말을 들으면서 정말 전후 세대의 맨땅의 헤딩하는, 아무것도 없는. 어디 병찬 님 한 분이겠어요. 그분들의 각박함, 그분들의 그런 마음이 느껴져서 저는 되게 찡했어요.
◆ 이슬아> 방금 말씀하신 그 대사는 장병찬 님의 부인. 이존자 님. 그러니까 저희 외할머니께서 할아버지가, 그러니까 남편이 너무 생활력이 없었다고 푸념을 하시길래. 제가 질문을 하다가 할아버지는 왜 그렇게 생활력이 없으셨을까요. 진짜 궁금해서 물어봤어요. 그때 대답을 하신 게 이제 이 말이에요 소도 언덕이 있어야 발을 디디고 올라가지요, 라고 하는 건데 진짜 너무 기반이 없었을 것 같은 거예요. 물론 지금2022년의 청년들도 크고 작은 불행들을 겪지만, 1940년대생이 겪는 불행이랑 또 다른 느낌인 것 같아요. 그 우리는 서로 다른 불행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데 이 병찬 님의 불행이라는 건 실체가, 진짜 각박하긴 했을 것 같더라고요.
◇ 김혜민> 그럼에도 결국은 자신의 삶 자체를 받아들이는 태도를 모든 분들이 취하시더라고요 모자람이 없다고 수선집 이영애 님은 고백을 하셨고, 우리 장병찬 님도 그럼에도 다 이유가 있는 것 같고 지금 좋다. 이 이유가 뭘까요. 이렇게 고백하실 수 있는 이분들의 근원.
◆ 이슬아> 저도 사실 그게 궁금해요. 이 세월을 살면 그렇게 원래 말할 수 있는 건가. 근데 안 억울할까. 이게 진짜 궁금했어요. 한이 맺힐 법도 하잖아요.
◇ 김혜민> 내가 그 당시에 안 태어났다면 안 억울하실까요.
◆ 이슬아> 그런 것도 억울할 것 같고. 수선집 사장님 같은 경우는 구체적으로 미워할 만한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잖아요. 근데 두 번째 인터뷰이신 인숙 님의 말을 빌려서 조금 힌트를 얻어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러니까 스트레스를 안고 있다 보면 나 자신이 상해버리잖아. 이렇게 말씀을 하셨어요. 그러니까 미워하는 것도 사실은 너무 힘이 들잖아요.
◇ 김혜민> 내가 제일 힘든 일이죠.
◆ 이슬아> 나 자신이 상하지 않는 방식으로 계속 몸과 마음을 굴리셨던 결과가 아닐까, 하고 지금 짐작할 뿐인 것 같습니다.
◇ 김혜민> 우리도 그 시절을 살아내면 알 수 있을까요.
◆ 이슬아> 살아봅시다.
◇ 김혜민> 알겠어요. 작가님이 살아보자니 저도 살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그 순덕 님이 사는 게 너무 고달팠어요, 라고 말한 뒤에 그래서 더 힘든 사람을 생각했어요, 라고 덧붙였는데 이 두 문장이 나란히 이어지는 게 기적처럼 느껴졌다. 작가님이 그렇게 표현하셨거든요.
◆ 이슬아> 맞아요. 우리가 보통 자기가 힘들 때는 자기 힘드느라 정신이 없잖아요. 아픈 것도 내가 아픈 게 제일 아프고. 근데 동시에 그 와중에 키워지는 연민하는 능력, 그리고 나 아닌 사람을 애처롭게, 그리고 짠하게 여기는 능력도 커지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중요한 게 나만이 아닌 세계가 계속 이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순덕 님은 이분이 근무하셨던 응급실 노동 환경 자체가 살면서 어쩌면 제일 불행한 시절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계속 보시니까, 누구든 언제든 나보다 힘든 사람들이 있다는 걸 계속해서 상기 받으셨을 것 같아요.
◇ 김혜민> 그래서 봉사활동도 계속 하신다고. 지금 8325 님이 작가님의 이야기 들으면서 우리 아이들도 이슬아 작가님처럼 훌륭히 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책 꼭 읽어보고 싶어요. 같은 일을 23년째 하고 있는데 반복에 의한 자신감, 절대 공감합니다. 맞아요.
◆ 이슬아> 어떤 일 하고 계신지 궁금해요. 너무 감사합니다.
◇ 김혜민> 감사합니다. 0169님, 접해보지 못한 이야기, 읽고 싶고요. 4099님, 작가님 이야기만 들어도 직업에 대한 자긍심을 느낀 분들의 마음이 느껴져서 감동이 뭉게뭉게 커집니다. 저도 책상 정리부터 할게요. 5210 님 이슬아 작가 팬입니다. 아는 동생을 통해 알게 됐는데 잔잔한 글 너무 좋고 공감하며 읽으며 힐링 됩니다. 이렇게 보내주셨어요.
◆ 이슬아> 너무 감사하네요.
◇ 김혜민> 이렇게 문자 보내주신 분들도 있지만 이 방송 들으시는 분들 중에 아니, 내가 돈을 꾼 것도 아니고, 모르는 사람들한테 모르는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내가 알아야 돼. 이렇게 말을 하는 분들이 있다면 뭐라고 얘기해 주시겠어요.
◆ 이슬아> 저는 왜 이렇게 좀 빚진 마음이 들었을까요. 저도 다시 전체를 좀 살펴봐야 될 것 같은데, 사실 역사적으로 빚을 진 게 우선 있다고 생각해요. 이분들이 근현대사를 통과하면서 제가 1990년대에 태어났는데, 이분들이 겪은 고달픔이 있었기 때문에 내가 덜 고달플 수 있는 부분이 분명히 있는 것 같고. 그리고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그냥 오늘만 생각해 봐도 택배 기사님이나 택시 기사님이나. 우리가 직접 하지 않는 노동으로 우리의 하루가 계속 굴러가잖아요. 근데 그게 단순히 돈으로 환원될 수 없는 가치이기도 하니까. 그러니까 내가 못하는 일을 누가 대신 해주고 있는가에 대한 감각을 저는 약간 빚진 마음이라고 느꼈던 것 같고. 그리고 이를테면 인성 님께서 지은 농산물 같은 걸 제가 먹을 때, 이걸 키우고 여기까지 오게 하는 수고보다 내가 돈을 내고 이걸 먹는 수고가 훨씬 적은 것 같은 거예요. 그리고 이 일의 중요성에 비해서 너무 모르는 것 같은 거예요. 그런 점에서 빚진 마음으로 열심히 자세히 쓰고 보려고 했던 경향이 있습니다.
◇ 김혜민> 알겠습니다. 자, 빚진 마음이라는 그 글자로 이 책의 기획 의도, 이 책의 내용. 모든 게 표현이 될 것 같습니다. 이렇게 욕심을 부리면 참 안 되는데 제가 욕심을 부려가지고 인터뷰 시간이 벌써 끝났습니다.
◆ 이슬아> 이렇게 쏜살같이.
◇ 김혜민> 이렇게 쏜살같이 끝났어요. 정말 더 얘기하고 싶은데, 너무 안타깝게 우리 작가님 보내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작가님의 다음 작품을 기대하면서 다음 작품을 다시 모시는 걸로, 우리 아쉬움을 달래도록 하겠습니다. 새 마음으로의 저자 이슬아 작가와 함께 했습니다. 작가님, 오늘 고맙습니다.
◆ 이슬아> 너무 즐거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