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피플
  • 방송시간 : [월~금] 13:00~14:00
  • PD: 김세령 / 작가: 강정연

인터뷰전문

[김혜민의 이슈&피플] 고 이한빛PD 엄마가 청년들에게 전하는 희망처방전
작성자 : ytnradio
날짜 : 2021-05-27 18:03  | 조회 : 1959 

방송 : YTN 라디오 FM 94.5 (13:00~14:00)

진행 : 김혜민 PD

방송일 : 2021527(목요일)

대담 : 김현수 서울시자살예방센터 센터장, 김혜영 <네가 여기에 빛을 몰고 왔다> 저자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김혜민의 이슈&피플] 고 이한빛PD 엄마가 청년들에게 전하는 희망처방전

 

김혜민 PD(이하 김혜민)> 수고했어, 오늘도. 청년들을 위한 편파방송. 대놓고 청년들 편들어주기 코너. 서울시자살예방센터와 ytn 라디오가 함께하는 <희망처방전> 시간입니다. 우리 주치의, 김현수 서울시자살예방센터장 나오셨어요. 어서 오세요, 선생님.

 

김현수 서울시자살예방센터 센터장(이하 김현수)> , 안녕하세요.

 

김혜민> 오늘 우리가 특별한 분을 모셨죠. 선생님께서 직접 소개해주세요.

 

김현수> , 우리나라 방송계의 부조리한 현실을 알리려고 노력했는데요. 안타깝게 죽음으로 알리게 된 고 이한빛 군의 어머님이시고요. 또 그 아픔을 이겨내시면서 우리나라 청년들의 어머니가 되어 주시고자 <네가 여기에 빛을 몰고 왔다>라는 책을 써주셨고요. 또 오랜 세월 동안 우리 이 땅에 참교육의 교사이시기도 하셨던 김혜영선생님을 오늘 저희가 모셨습니다.

 

김혜민> 어머니, 어서 오세요.

 

김혜영 <네가 여기에 빛을 몰고 왔다> 저자(이하 김혜영)> , 안녕하세요.

 

김혜민> 반갑습니다, 어머니. 상암동에 오시라고 말씀은 드렸지만, 사실 좀 걱정됐어요. 우리 한빛 씨 일하던 회사가 옆에 있고, 이 상암동 어머니한테는 또 아픈 장소일 수도 있는데, 오시는 길은 편안하셨어요?

 

김혜영> 사실 부담이 아직도 되네요. 이런 부담을 제가 이제 떨쳐서 나가리라, 이렇게 한빛하고 약속했는데도 한빛의 흔적이 있고, 한빛을 자꾸 기억나게 하니까, 상암동이 조금 오기가 좀 슬퍼요.

 

김혜민> 그럼요. 맞아요. 어머니.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오늘 이 자리에 오신 이유가 있습니다. 한빛 씨의 이야기를 우리 어머니를 통해, 그리고 어머니 개인으로서 겪은 일을 통해 여러분들께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이 자리에 오셨어요. 여러분, 함께 이 방송을 좀 귀 기울여 주셨으면 하는 부탁을 드립니다. 언론을 통해 사실 우리 한빛 PD가 많이 알려졌지만, 우리 어머니께서 엄마로 우리 아들 이한빛을 직접 소개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김혜영> 한빛이는 사회적 약자나 소외된 사람에 대한 관심, 측은지심 같은 게 기본적으로 좀 많이 있는 애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들을 위해서 항상 무엇을 할 수 있나, 그런 고민을 하면서 대학 내내 또 살았더라고요. 저는 이제 한빛이 떠난 후에 페이스북과 일기, 친구들의 이야기에서 알게 됐는데, 내일 28일 구의역 참사일이잖아요. 그런데 한빛이가 2016년도에도 528일 날 구의역 참사 현장에 가서 김 군에게 어떤 포스트잇을 남기고 왔더라고요. 그래서 같은 청년의 죽음에 마음이 많이 아파했고, 최소한 사람들은 사람에게는 가혹해서는 안 된다, 그런 생각 기본적으로 갖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한빛이랑 한번 이제 한빛이가 다니던 대학을 이렇게 탐방한 적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학교가 너무 넓고, 시설이 너무 좋고, 산도 있고, 너무 넓고, 다리가 아픈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 당시 교사였기 때문에 한빛이한테 그랬어요. “한빛아, 너네는 국립대학이라서 사립대학의 등록금의 반밖에 안 되는데, 너무 혜택이 많은 것 같다. 차라리 이걸 갖다가 다른 대학도 똑같이 균등하게 나눠서 다 같이 자라야 되지 않을까그랬더니 한빛이가 그러더라고요. “엄마, 저희는 이렇게 혜택을 많이 받는 만큼 그렇지만 저희도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그런 부담을 갖고 공부를 하고 있다고 그러는 거예요. 저는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뭉클했어요. 그리고 이렇게 건전하고 아름다운 생각을 갖고 있는 청년이 있다면 우리 사회는 너무 밝지 않을까. 희망이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저는 한빛이 그렇게 아름다운 청년인 게 너무 기특했고, 그래서 한빛이 자식이지만 저는 한빛을 정말 존중했었어요.

 

김혜민> 측은지심과 약자의 아픔을 안고 있는, 그리고 사회적 책임을 늘 생각했던 아름다운 청년입니다. 그 한빛 씨의 아픔이 결국 대한민국 사회의 아픔이었고요. 그래서 한 사람이 죽음의 의미가 개인의 비극만이 아니라, 우리 대한민국의 비극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선생님께서, 어머니께서 책에 이렇게 쓰셨어요. “ 한빛에게 내 아들로 태어나줘서 고맙다고 했다. 짧은 생이지만, 잘 살았고 자랑스럽다고 했다. 엄마, 아빠에게는 행복감을 주는 자식. 한솔에게는 든든한 형이었다고 사랑한다고 했다. 주어진 시공간에 누구보다 찬란하게 반짝이게 치열하게 살았다고 친구들이 기억하듯이 한빛은 열심히 살아온 멋진 사람이라고 고백했다. ”

 

김혜영> , 한빛이는 정말 그랬어요.

 

김혜민> 이 고백을 어머니께서 책에 쓰셨어요. 아까 김현수 센터장님이 소개해주셨는데, 먼저 떠난 아들에게 보내는 약속의 말들. “네가 여기에 빛을 몰고 왔다아들의 이런 어미의 심정을 어떻게 상상을 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상상도 할 수 없는데. 그 아픈 심정을 책으로 엮으셨어요. 왜 책으로 써야겠다고 생각하셨어요?

 

김혜영> 처음에는 책을 쓰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근데 이제 한빛이 떠나고 난 다음에 그 시간이 한빛에 대한 기억이 27살에 딱 멈추더라고요. 그게 참 두려웠어요. 그리고 한빛에 대한 기억이 점점 더 흐려지고. 그리고 한빛을 얘기할 때 지금 여기에 한빛을 얘기하고 싶은데, 항상 한빛이 그랬었는데, 그랬었는데하고 과거로만 얘기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한빛이에 대한 기억을 붙잡고 싶었어요. 그래서 한빛이 그리울 때마다 한빛의 홈페이지에다가 한빛에 대한 그리움을 갖다 글로 쓰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거기에 쓴 글 중에서 몇 편을 추리고, 이제 책을 내게 된 건데요. 제가 그렇게 글을 쭉 3년 동안 쓰다 보니까, 한빛이 죽으면서 고민했던 문제가 한빛의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고, 이 사회의 청년들의 문제이고, 그다음 모든 노동자들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를 공유해야겠다. 그런 의무감이 들었어요. 그래서 책을 내는 작업이 단순한 제 개인적인 한빛에 대한 그리움의 일기가 아니고, 한빛을 기억하고, 청년들이 좀 더 나은 세상에 살 수 있게 하는 그 길을 위한 어떤 의식이라는 제가 그런 진지함을 가지고 책을 내게 된 거죠.

 

김혜민> 아이에 대한 기억, 그리고 아이의 기억이 내 개인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사회를 조금이라도 희망을 줄 수 있는 하나의 의식을 위해서 이 책을 쓰셨다고 하셨어요. 책에도 이런 구절이 있더라고요. “마치 멈춰버린 시계처럼 떠난 아들만 정지된 그림으로 다가오는 이 시간에 나는 어떻게 지내야만 할까”, 아마 그 시간에 고스란히 산물이 이 책에 담겨 있습니다. 우리 어머니께서 그냥 오지 않으시고 이 책을 가져오셨어요. 우리 청취자 분들 중에 몇 분 선정해서 <네가 여기에 빛을 몰고 왔다> 책을 저희가 선물로 드릴 건데요. 저도 2주간 이 책 읽는데, 물론 술술 읽히는 책은 아닙니다. 절대. 저도 책 읽다가 울다가 읽고 싶지 않다 하다 읽는데, 책을 읽다 보니까 우리 이한빛이라는 개인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고, 이한빛이라는 건강한 청년은 키운 엄마 김혜영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거든요 이 땅에 많은 엄마 아빠들에게 제가 추천하는 책입니다. 독자들 반응이 꽤 많더라고요, 어머니. 어떤 독자평이 가장 기억에 남으세요?

 

김혜영> 정말 생각보다 너무나 많은 독자들이 정말 sns를 통해서 또 페이스북 같은 데에다가 책 속의 서평 같은 걸 저보다 더 잘 써주셨더라고요. 아까 김혜민 PD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교사이면서 독자인 분이 부모들과 교사들에게 이 책을 육아서적, 교육서적으로 권하고 싶다그런 말을 했어요. 그래서 부모이며 교사인 제가 마음 졸이면서 아이와 함께 해온 소중한 기억들인데, 지금 한빛은 떠났잖아요. 그래서 굉장히 슬플 것 같아서 이 책을 슬플 것이라고 생각해서 읽었는데, 읽다 보니까 뜻밖의 환하고 깊은 울림을 주었다. 그래서 저희 독자는 부모들과 교사들이 이 책을 꼭 읽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말한 사람도 있고. 그다음에 어떤 분은 사회의 이웃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세상이 더 나아지는데 힘을 보탤 수 있는 일을 찾고 싶다, 그런 사람도 있고. 곁에 있는 사람들과 연대하고 동참하겠다는 의지를 말씀해 주신 독자도 있었고, 하여튼 이런 모든 과정들이 제게는 정말 뜻밖이었어요. 상상도 못했었고, 이런 건 잘 모르겠는데, 그리고 저도 사실 글을 쓰면서 책을 내면서 많은 위로를 받았는데요. 그래서 제 책이 힘든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고 이 사회의 한 줄기 빛처럼 작은 희망이라도 갖게 된다면 하는 그런 간절한 바람을 갖게 됐죠.

 

김혜민> , 이 책에 많은 구절들이 또 선생님께서 국어 국문학과 전공하셨죠. 글 솜씨가 너무 좋으시고, 그 솜씨가 담아낼 수 없는 또 그 많은 감성과 감정과 희로애락을 어머니께서 여기서 담아내셨거든요. 많은 글의 내용들이 있는데, 제가 이 책에서 핵심 되는 내용 구절은 이거였던 것 같아요. 한빛 씨가 떠난 달이죠. “10월이 되자 눈물이 가득 찼다. 쏟아내도 다시 차오르고, 주르륵 흘려보내도 다시 고이고, 이런 내가 당연하다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는 한빛을 적당히 사랑하지 않았으니까저는 이 한 구절 있잖아요. “한빛을 적당히 사랑하지 않았으니까”, 어떤 어미가 자식을 적당히 살아가야겠어요. 그죠? 이 말의 한 구절이 이 책의 모든 걸 담고 있더라고요.

 

김혜영> 저는 아까 PD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자식에 대한 부모의 마음은 누구나 다 똑같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동생 한솔이가 제가 힘들 때 그런 말을 하더라고요. “엄마는 항상 자식을 믿고 존중했다. 그런데 형은 자기보다 더 많은 믿음과 존중을 엄마한테 받았으니까 더 많이 고마워할 거다이렇게 말을 하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정말 한솔이도 그랬지만, 한 빚을 믿고 존중해줬거든요. 그런데 이제 결국 한빛이 떠나고 나서 매일매일 너무 힘든 거예요. 그런데 힘든 게 왜 이렇게 힘들까, 그리고 왜 나는 이렇게 일어나지 못할까. 이렇게 생각을 했는데요. 그리고 내가 이렇게 힘든 걸 한빛이가 좋아하지 않을 텐데, 하늘에서. 이런 생각이 들었는데, 어느 날 이렇게 매일 힘든 것이 결코 한빛을 적당히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걸 제가 알게 됐어요. 그걸 깨닫고 나니까 한빛과 함께했던 행복한 시간들이 막 떠오르고, 저한테 달려오고, 한빛이 제 가슴속에서 부활해서 항상 저와 함께 있는 것 같은 그런 걸 느꼈어요. 저에게 다가와서 토닥여주기도 하고, 평소처럼 위로하기도 하고, 힘을 내라고 격려도 하고. 그래서 그러고 나니까 제가 매일 밑바닥까지 떨어졌던 이 마음도 당연히 옳은 거다, 하고 다시 일어날 수 있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누군가를, 특히 자식을 적당히 사랑하지 않겠지만, 하여든 적당히 사랑하지 않는다, 라는 게 얼마나 큰 힘이 된다는 것을 직접 체험한 거예요. 그런데 사실 지금 여기 집중적으로 사랑할 수 있다면 더 큰 힘이 되었을 텐데, 저는 한빛을 보내고 깨달은 거예요. 내가 한빛을 적당히 사랑하지 않았다는 것을. 너무 어리석은 것 같아 속상하고, 다른 엄마들은 그런 후회를 저처럼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지금 여기에 내 아이를 집중적으로 사랑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혜민> 사실 아이를 먼저 보낸다는 건 정말 비극적인데, 우리 주변에 많이 계시죠. 그 부모들이 지옥 같은 삶을 살지만 결국 버틸 수 있는 건 지금 어머니의 말씀. 적당히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와 행복했던 기억이 떠올랐고, 그 행복했던 기억이 또 지금 지옥 같은 이 삶을 살 수 있게끔 하는 것 같아요. 저도 마음이 많이 아픈데, 한빛 씨 얘기를 조금 더 해볼게요. 한빛 씨가 PD가 왜 되고 싶어 했어요?

 

김혜영> 그러니까 중학생 때부터는 매일 신문기자가 된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랬더니 대학교 들어가서 한 3, 4학년 고학년 되면서 영화나 문화 콘텐츠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는 게 보이더라고요. 그리고 군 복무 기간에도 영상 콘텐츠나 영화 같은 걸 엄청 저장해서 부대에 가지고 들어가서 보고, 그다음에 휴가 나오면 시간을 통해서 조조 영화를 보기도 하고 그랬더니 복학하더니 드라마 PD가 되겠다고 해서 제가 신문기자가 된다고 그러더니 왜 또 바뀌었어?” 그랬더니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자신이 고민해왔던 많은 문제들을 함께 공유하고, 사회의 메시지를 던지는 가장 가까운 매체가 드라마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드라마를 통해서 시청자들에게 쉽게 접근해서 멋진 작품을 만들어서 자기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던지고 싶다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사실 저는 한빛이가 중, 고등학교 때 개콘이나 드라마를 같이 보면서도 저는 엄청 질문을 많이 했거든요. “저 장면에서 왜 웃기는 거야?”, “그리고 저렇게 작가들은 왜 이끌어가는 거야?” 이렇게 질문하면, 한빛이 그때마다 명쾌하게 설명을 총체적으로 해주는 거예요. 그래서 한빛이 드라마 PD가 되면 거꾸로 내가 제일 열심히 드라마를 봐줄 거고, 시청자가 되고, 제일 먼저 소감을 말해줘야지, 그랬는데 결국 펴보지도 못하고 떠난 거죠.

 

김혜민> 그러면 한빛 씨가 펴보지도 못하고 떠날 수밖에 없었던 한빛 PD가 제일 괴로워했던 건 어떤 문제였습니까?

 

김혜영> 저는 그 당시는 몰랐어요. 그런데 이제 한빛의 기록들이나 한빛이 남기는 이렇게 흔적들을 보면서 느꼈는데, 한빛은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 굉장히 대학교 때부터 깊게 관여를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사실 본인은 정규직이었잖아요. 그런데 정규직 관리자로서 노동자를 쥐어짜야만 하는 현실이 굉장히 고통스러워했고, 한 번 식사할 때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밥 먹을 때, “엄마, , 두 편 드라마 찍는데 비정규직이 엄청 많다. 그런데 비정규직은 하루아침에 해고될 수도 있고, 너무 일회용품처럼 도구처럼 취급받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그런 말을 하더라고요. “그리고 카메라 뒤에 사람이 있다를 갖다 사람들이, 시청자들이 알아야 되는데 너무 화면에 나타난 화려한 연예인들, 여기에만 집중한다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그때 말을 중간에 끊었어요. 뭐라 그랬냐면 원래 사회생활이라는 게 다 그래. 그러니까 너무 마음 아파하지마. 그냥 어쩔 수 없는 거야이렇게 제가 말을 끊었는데, 나중에 한빛이 남긴 유서에 보니까 원래 그런 것은 없다라는 구절이 있었어요. 그게 한빛의 소신이었는데, 저는 안 그랬거든요. “, 세상이 원래 다 그래. 그냥 그렇게 하고 넘어가는 거야이렇게 말했는데, 그게 너무 미안했고요. 그래도 물론 회사 나와서 다시 공부해. 다른 데 들어가면 되잖아이렇게 말을 할 수도 제가 있었는데, 그렇게 했던 방법도 있었는데. 한빛이가 그렇게 죽을 수밖에 없었다는 게 너무 지금 속상한 거예요. 그런데 이제 돌이켜보면 한빛 스스로 경멸하는 삶을 계속 살기도 힘들었을 것 같고, 또 혼자만 잘 살겠다고 이렇게 빠져나오는 건 한빛의 성격 상 힘들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김혜민> 정규직 PD인 저로서는 한빛 씨가 이 세상에 던진 그 문제 앞에 부끄러움밖에 없습니다. 지금 제가 굉장히 인터뷰를 진행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갑자기 부끄럽고, 죄스럽고, “그 문제에 대해 나는 얼마나 고민했나라는 생각이 드는데, 한빛 씨가 이런 글을 썼어요. “문제는 적응하지 못하는 개인에게 있는 게 아니라 누구도 적응할 수 없는 현실의 구조 자체에 있다정말 구조가 바뀌어야 되는데, 제가 만약에 한빛 PD한테 한빛 PD가 제 후배니까, “한빛씨, 우리 뭐를 바꿀 수 있을까요?”, “지금 바꿔야 되는 거 단 한 개 있다면 뭐가 있을까요?”, 우리 한빛 PD한테 물어본다면 한빛 PD가 저한테 뭐라고 대답할까요?

 

김혜영> 아까 말한 비정규직 문제도 이제 한빛이가 계속 천착해왔던 문제이기 때문에 그거를 걔는 굉장히 강조할 것 같고, 그리고 지금 그렇게 하기 위해서 또 전문적인 것 같아요. 한빛센터가 지금 계속 한 가지에 집중하는 것은 그거거든요 방송계는 비정규직과 프리랜서, 일용직 등 모든 방송 노동자가 근로계약서를 체결해서 노동자성을 인정받는 거였었어요. 그게 이제 한빛센터 목표인데요. 한빛도 그런 고민을 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우리 사실은 다 저도 그렇지만, 우리 노동자잖아요. 노동자고, 그러면서 사회 구성원인데,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나 노동자로 당당히 살아가는 사회를 만드는 일은 한빛 씨가 원했던 거고, 그래서 그게 저는 중요하다고 봐요. 그래서 이렇게 우리가 생명이 이윤보다 앞서야 된다는 그런 당연한 사고방식, 그런 가치관을 갖고 있다면 노동자치관을 갖고 있다면 방송 환경도 더 안전하고 행복한 일터가 되고 그럼 거기서 더 이상 절망하거나 죽는 일은 없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김혜민> 한빛 PD의 가족들이 위로금,보상금과 또 기금을 가지고, 한빛 미디어 노동 인권센터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한빛 PD의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한빛 PD 동생 이한솔 씨까지 미디어 노동 인권을 위해 지금 애쓰고, 노력 하고 있고요. 제가 아까 오프닝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어제 대통령에게 친필편지를 주셨어요. 책에도 이렇게 썼어요. 청년 유니온. 청년단체가 어머님께 굉장히 위로가 많이 됐는데요. “한빛이 머문 생의 시간을 명예롭게 해준 건 잊지 않겠습니다. 엄마로서 한빛의 죽음이 남긴 숙제들을 하나하나 수행하며 갚아나가겠습니다. 앞으로 청년 유니온이 마음을 두는 청년 문제들을 제 일처럼 여기며 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한빛 엄마로서 젊은이들의 꿈이 좌절되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면서 당당히 살아가겠습니다지금도 괴롭고 힘든 안전에 위협을 받는 청년들이 있어요. 그들에게 어머님께서 한 말씀을 하신다면, 무슨 말씀하시겠어요?

 

김혜영> 물론 제가 중학교에 오랫동안 근무했기 때문에 중학생들을 보면서 예쁘고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5, 6년 후면 전부 다 청년이 되고 사회에 나가잖아요. 근데 이제 그 아이들이 자기가 추구하던 가치가 사회에서 통하지 않는다는 거 알면 얼마나 자유롭게 힘들겠어요. 그런 생각이 들어가지고, 저는 청년들에게 힘든 청년도 있고, 괴롭고 아픈 청년들도 많은데, 힘들지만 그때마다 그랬으면 좋겠어요. 우리는 혼자 살 수 없다. 그리고 혼자서는 안 되고요. 그런데 지금 계속 사회적 참사로 청년들이 자꾸 죽어가고 있거든요. 그런데 이게 남의 일이라고 생각해서 이렇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도 사실 제 아들이 죽을 줄도 몰랐고, 나와 가족만 열심히 살면 행복하게 살면 된다고 여겼었거든요. 그런데 언제든 누구한테나 닥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한빛이가 말했던 것처럼 사회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나와 내 가족의 일이 될 수가 있어요. 그래서 저는 청년들에게 모든 이런 일어난 일들을 내 일처럼 생각해서 귀를 기울이고, 서로 옆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고민을 하나, 좀 이렇게 바라봐주고, 손내밀어주고, 손 잡아주고, 서로 업고, 업히고, 기대고, 등 내주고 하는 그런 마음이 필요한데요. 다시 말해서 연대라고 그럴까요. 그런 연대가 만약에 없다면 우리의 매일 7, 8명이 퇴근하지 못하는 현실은 절대로 바뀔 수 없다는 생각. 그리고 착하고 평범하고 선하게 살려는 사람이 살 수 없는 사회는 비정상적인 거거든요. 그래서 그런 비정상적인 사회를 정상적인 사회로 만들기 위해서 청년들이 같이 연대해서 옆 사람과 같이 손을 잡는 것, 그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김혜민> 그래서 서울시자살예방센터와 저희가 청년들 편애 방송, 이 코너를 하고 있는 겁니다. 지금 6089님이 왜 항상 노동환경에 억울한 사고의 피해자는 책임감 강하고 정의로운 사람들의 몫이 돼야 되는지 분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한빛 님의 죽음이 헛되지 않으려면 한빛 어머니 항상 건강하셔야 됩니다” 9197자식을 먼저 보낸, 먼저 간 자식을 용서 못하고 가슴에 묻는다고 하죠. 하지만 한빛 어머님은 저 파란 하늘에 자식을 올려 보내신 듯 합니다이렇게 하셨고. 1960님은 큰 아픔을 희망으로 담아내신 한빛 어머니 책인 것 같아 어머님의 그 마음의 책을 통해 보고 싶어요” 3835저도 아이 셋 키우고 있는데 저희 큰아들하고 한빛이하고 동갑이네요. 95년생이렇게 하면서 많은 분들이 한빛군의 생전에 노동환경 알고 싶다며 또 문자 보내주셨습니다. 김현수 선생님께 쭉 들으셨는데, 시간이 별로 없어서 좀 짧게 설명해 주시면 이렇게 아픔 상처를 가지고 누군가의 희망을 위해 산다는 것. 이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김현수> 슬픔과 아픔을 절망으로 썩게 두지 않고, 이것을 희망으로 변형시키는 것은 이제 아들과 함께하는 삶이죠. 또 청년들과 함께하는 삶인 것 같아요. 우리 어머님께서 한 아들로서의 한빛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청년들을 아들로 껴안으면서 아들의 희망을 만드는 그런 사람으로 지금 변해가고 계신 것 같고요. 이게 어머니가 하실 수 있는 아마 진정한 애도의 과정이 아닐까, 그렇게 들으면서 생각을 해봤습니다.

 

김혜민> 저도 처음에 한빛 어머님하고 통화할 때 저도 우리 아이들 위해서 이런 책 써주셔서 감사해요이렇게 얘기했거든요.

 

김혜영> 저도 고맙습니다.

 

김혜민> 저도 한빛PD의 선배로서, 방송에 종사하고 있는 노동자로서, 두 아이의 엄마로서 계속해서 한빛 씨가 생전에 만들고 싶었던 사회에 대해 집중하고, 고민하고, 연대하고 함께하겠습니다. 오늘 함께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김혜영> 저도 고맙습니다.

 

김혜민> 센터장님, 고맙습니다.

 

김현수> ,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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