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라디오생활
  • 방송시간 : [월~금] 10:30~11:30
  • 진행: 박귀빈 / PD: 이은지 / 작가: 김은진

인터뷰 전문

'주린이', '요린이' 라는 말에 방정환 선생이 슬퍼합니다
작성자 : ytnradio
날짜 : 2021-05-03 13:58  | 조회 : 1877 
YTN라디오(FM 94.5) [YTN 뉴스FM 슬기로운 라디오생활]

□ 방송일시 : 2021년 5월 3일 (월요일)
□ 진행 : 최형진 아나운서
□ 출연 : 신지영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최형진 아나운서(이하 최형진): 슬기로운 라디오생활 2부는 ‘슬기로운 언어생활’로 이어갑니다. ‘어린이에게 경어를 쓰시되 늘 보드럽게 하여 주시오’, 1923년 첫 어린이날을 기념하며 어른들에게 전하는 내용이었는데요. 어린이에 대한 존중이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100년에 가까운 시간이 지난 지금, 이 의미는 얼마나 지켜지고 있을까요? 어린이를 대하는 어른들의 언어생활, 존중이 담겨 있을까요? 오늘 슬기로운 언어생활에서 함께 고민해보려고 합니다. 오늘도 신지영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와 함께합니다. 교수님, 안녕하세요?

◆ 신지영 국어국문학과 교수(이하 신지영): 네, 안녕하세요. 

◇ 최형진: ‘어린이에게 경어를 쓰시되 늘 보드럽게 하여 주시오’, 그만큼 어린이를 존중하자는 내용으로 들리는데 100년 전에는 이 내용이 잘 지켜졌습니까?

◆ 신지영: 100년 전에 어떤 분이 쓴 글이 있습니다. 이 글을 한번 읽어볼게요. 김기전이라는 분이고요. 어린이 운동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셨던 방정환 선생님과 함께 중요한 역할을 하셨던 분입니다. 장유유서의 말패라는 ‘개벽’이라는 잡지에 실린 글인데요. 1920년 5월에 실린 글입니다. 잘 들어보시고 혹시 반성할 점은 없는지 한번 생각해보세요. ‘또 우리가 어떠한 고심을 물론하고 장유가 동일 장소에 회합하게 되면 이런 꼴을 볼 수 있다. 곧 유년이 장자와 더불어 무슨 문제를 말하다가 털끝만치나 당돌한 모습이 보이면 그 장자는 ‘요놈, 어린놈이’, 혹 ‘요놈, 조그마한 놈이’, 또 ‘요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놈이’라는 말을 화두로 하여 ‘감히 장자에게’하는 어조로 끝을 맺는다. 그 사이에는 시비곡직이 없고 아무 조건이 없다. 그저 ‘어린놈, 장자에게 감히’ 하는 몇 마디만 그만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하는 글이 있습니다. 100년 전에도 이랬는데, 지금은 어떨까. 감히 이렇게는 얘기하지는 않지만 어디서 많이 들어본 표현이 있죠. ‘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세상에 깜작 놀랐습니다. 100년 전에도 이런 말을 썼고, 지금까지 이 말이 없어지지 않고 쓰고 있구나 싶었습니다. 그리고 토론을 하는 자리에서도 우리가 ‘아니, 몇 살인데 저 사람이’ 등의 이야기를 한다는 등이 100년에 있었던 것은 어느 정도 이해를 하는데요. 이해를 할 수 없는 상황이긴 하지만, 100년에 문제제기를 했던 김기전 선생님이나 방정환 선생님들이 그렇게 이야기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고, 그래서 우리가 세대 간에 토론한다는 자체가 굉장히 어렵구나 라는 생각을 아직도 한다는 게 슬퍼지는 글이었습니다. 사실 어린이날이 얼마 안 남았잖아요. 그래서 어린이날을 생각하면서 어린이와 관련된 여러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어요.

◇ 최형진: 어린이라는 말이 언제부터 사용됐을지도 궁금하거든요.

◆ 신지영: 많은 사람들이 방정환 선생님이 어린이라는 단어를 만들었다고 생각하시는데요. 그건 아니고요. 17세기 문헌을 보면, 17세기 언해자료라고 해서 한글로 번역한 자료를 보면 어린이라는 단어가 나오긴 나옵니다. 나오긴 하는데 17세기에도 나오고 18세기에도 조금 나와요. 그런데 19세기에는 전혀 나오지 않다가 20세기 초반, 1914년 정도에 두 곳에서 제일 먼저 출현하는데요. 하나는 조선총독부에서 만든 아이들용 교과서에 나오고요. 같은 시기에 최남선 선생님이 ‘청년’이라는 잡지를 만드시잖아요. 그 잡지에 1914년에 처음 출현합니다. ‘어린이의 꿈’이라는 제목의 권두시를 내세요. 그래서 사실 최남선 선생님이 가장 먼저 1910년대에 사용하셨죠. 그러다가 방정환 선생님이 처음 어린이라는 단어를 쓴 것은 1920년입니다. 6년 정도 늦죠. 동시를 하면서 1920년 ‘개벽’이라는 잡지에 ‘불켜는 이’라는 번한 동시를 게재하시면서 어린이를 위한 시라고 하면서 어린이라는 단어를 처음 쓰셨습니다. 누가 만들었고 누가 처음 썼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고요. 사실 요즘 우리가 가지고 있는 존중의 의미의 어린이, 이런 의미로는 방정환 선생님이 먼저 쓰셨고, 존중의 대상으로 삼자, 아헤놈이나 어린 녀석이라고 부르지 말고 젊은이나 늙은이처럼 어린이라는 말을 대대적으로 써서 존중의 대상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재정의 하시면서 어린이라는 단어를 널리 확산한 주인공이라고 얘기할 수 있겠습니다. 제가 퀴즈 하나 내보겠습니다. 우리 지금 어린이날이 며칠이죠?

◇ 최형진: 5월 5일이요.

◆ 신지영: 5월 5일 어린이날이라고 보통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데요. 어린이날이 처음 만들어진 때는 1922년이 있고, 1923년이 있어요. 처음 1922년에는 천도교를 중심으로 만들어졌던 어린이날을 선포했는데요. 1923년에는 우리나라 전체에 조선소년협회 등을 만들어서 확대해서 대대적인 첫 번째 행사를 했습니다. 그때, 그리고 1922년에도 마찬가지로 어린이날은 5월 5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럼 어린이날은 몇 월 며칠이었을까요?

◇ 최형진: 너무 어려운데요. 힌트 같은 건 없습니까?

◆ 신지영: 이게 만약 어린이날이었으면 휴일이 겹칠 뻔 했어요. 이게 힌트입니다. 그렇게 멀지 않은 날이고요. 어린이날이 이 날로 계속 유지됐다면 어른들 중에서 쉬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겼을 것 같습니다.

◇ 최형진: 겹치는군요. 

◆ 신지영: 네, 그렇습니다. 많이 힌트가 됐죠? 

◇ 최형진: 실제 어린이날은 5월 5일은 아니었다. 첫 제정된 날은 ‘이 날’이었고, 5월이었습니다. 청취자님들 답변 받아볼게요. 어린이라는 단어조차 없었다면 옛날엔 어린이를 뭐라고 불렀을까요?

◆ 신지영: 가장 많이 불렀던 게 ‘아헤놈’, ‘이 녀석’, ‘어린 녀석’, 이런 식으로 그 앞에서 많이 불렀다고 하고요. 그 다음에 한자로는 동몽(童蒙)이라는 말 아마 들어보셨을 거예요. 동몽선습(童蒙先習) 들어보셨죠? 아이 동(童)에 몽(蒙)은 무지몽매(無知蒙昧)하다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어린이라는 존재를 어떻게 봤는지가 동몽이라는 말을 통해서 드러나죠. 동몽이라는 단어를 씀으로서 유교를 중심으로 한 전통사회에서는 어린이가 그냥 교화의 대상이고 무지몽매한 존재라서 교육해야 하는 존재다, 아직 미성숙한 존재고 미완성된 존재라는 식의 생각을 담고 있었죠. 그래서 어린이라는 말을 통해서 동몽의 기존 관습에서 벗어난 게 엄청난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 최형진: 어린이라는 단어가 동몽에는 몽매하다는 뜻이 있었지만, 어린이는 그냥 어린 아이로 생각할 수 있는 거죠?

◆ 신지영: 나이만 어린 거죠. 나이가 어린 거지 지위나 능력이 낮은 건 아니라는 게 방정환 선생님께서 강조하신 것이죠. 그러니까 젊은이나 늙은이처럼 나이에 의해서 구분 짓는 것처럼 이 아이들은 그냥 나이가 어린 존재일 뿐이지 지위나 능력이 부족한 것은 아니라고 해서, 이 나이 대를 묶는 어린이라는 단어를 통해서 집단화시키고, 그 집단을 존중해주자는 이야기를 하신 거죠.

◇ 최형진: 아까 질문의 답변은 ‘5월 8일’이라고 보내주신 애청자 분들이 많은데요.

◆ 신지영: 우리 5월 8일에는 안 놀잖아요. 앞쪽입니다.

◇ 최형진: 그리고 5월 8일에는 중요한 게 있으니 그거랑 겹치지는 않습니다. 방정환 선생님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었는데요. 일제강점기에도 어린이들을 위한 다양한 활동들을 하셨잖아요.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요?

◆ 신지영: 방정환 선생님에 대해서 제가 논문을 쓰면서 굉장히 놀랐던 게, 우연한 기회에 방정환 선생님, 김기전 선생님, 지난번에 소개해드린 박승빈 선생님에 대해서 논문을 쓰게 됐는데요. 방정환 선생님의 삶을 보니, 우리가 그냥 알고 있는 방정환 선생님은 어린이날밖에 없잖아요. 엄청나신 분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이 분이 처음 태어나신 것이 1899년이에요. 방정환 선생님께서 몇 살에 돌아가셨을까요?

◇ 최형진: 잘 모르겠네요.

◆ 신지영: 굉장히 일찍 돌아가셨어요. 1931년에 돌아가셔서 우리나라 그냥 세는 나이로 33세에 돌아가셨어요. 어린이에 관련된 활동 뿐 아니라 저서가 어마어마하고요. 굉장히 많은 저술들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강연도 대단하셨는데요. 이 분의 삶을 보면 굉장히 재미있는 지점들이 있어요. 이 분이 원래 태어날 때는 부유한 집안이었는데 상업을 하다가 망해서 8-9세 때 굉장히 어려워졌어요. 그러다 10세 때 어떤 분이 방정환 선생님에게 환등기 하나를 줍니다. 불로 이렇게 해서 활동사진이 보이는 것을 줬다고 해요. 어떤 미술가였는데, 방정환 선생님이 너무 맘에 들어서 똑똑한데 어려운 집안에 있으니 양자로 들이려고 하셨대요. 그러다 집안에 반대를 해서 그렇게는 못했고, 대신 당시에 구하기 어려웠던 환등기를 주셨다는 거예요. 방정환 선생님이 언변이 뛰어나신 분이었거든요. 어느 정도였냐면 나중에 강연을 하면 사람들이 강연에 몰입해서 빠져나갈 수 없는, 그리고 천 명만 오라고 했는데 2천 명씩 오는 일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10세 때도 그러셨던 것 같아요. 아이들을 모아놓고 이야기를 하는데, 변사처럼 이야기를 해서 굉장한 인기 스타였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아이들을 조직하는데요. 그때 ‘소년입지회’라는 걸 10살 때 만듭니다. 매 일요일마다 모여서 토론회 등을 했는데요. 처음에는 8~9명 친구로 시작했던 게 몇 년 후에는 회원이 160명이 되는 대외적인 모임이 되기도 하고요. 이렇게 조직력과 네트워크가 어마어마한 존재였고요. 그러다가 17살 때 결혼을 하시면서 손병희 선생님의 셋째 사위로 가면서 더 날개를 달 수 있는 게 됐던 거죠. 그러면서 3.1운동에도 굉장히 중추적인 역할을 하시고 그러다가 그것 때문에 서울에 있을 수 없어서 일본으로 가게 됩니다. 일본에서 유학생활을 하시면서도 돌아오셔서 계속해서 강연 활동을 했는데요. 일본과 한국을 왔다갔다 하면서 어린이운동을 20년대부터 시작하신 거죠. 그래서 김기전 선생님, 방정환 선생님에 의해 천도교소년회가 21년에 만들어졌고요. 22년에 첫 어린이날을 천도교소년회를 중심으로 해서 대대적인 행사를 합니다. 그것을 천도교에만 머물지 않고 전체적인 행사로 만들기 위해서 23년 오늘 정답인 ‘이날’을 어린이날이라고 하면서 대대적인 선전을 하고 그날 엄청난 행사를 합니다. 지금으로 하면 차량 몇 대를 해서 전단지를 뿌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가두 행진을 하면서 어린이의 인권 등에 대해서 존중해야 함을 어른들에게 보내는 호소문, 아까 하나 읽어드린 것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전단지를 뿌립니다. 

◇ 최형진: 교수님께서 논문을 쓰셔서 그런지 방대한 양의 지식을 전해주셔서 길어졌는데요. 빨리 결론으로 뛰어넘어야 할 것 같습니다.

◆ 신지영: 그럼 두 가지 이야기만 할게요. 우리가 어린이들에게 어떤 말을 쓰고 있는가, 저희가 지난번에도 이런 말을 했는데요. 어린이들에게 경어를 써라, 이게 방정환 선생님의 아주 중심적인 이야기였습니다. 어린이에게 경어를 쓰시되, 늘 보드랍게 하여 주십시오 라는 호소를 하셨잖아요. 선생님 본인도, 그리고 김기전 선생님, 또 지난번에 얘기했던 박승빈 선생님도 어린이들의 인권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아이들에게 경어를 쓰라, 아이들 상호간에도 경어를 쓰되 어른들도 경어를 쓰게 하자는 이야기를 합니다. 어른들에게 전하는 부탁을 아까 한 가지 말씀해주셨잖아요. 이건 세 번째 부탁이었고요. 8가지의 부탁을 합니다. 방정환 선생님께서 어린이날 하셨던 어른들에게 전하는 부탁 읽어드리고 마무리해볼게요. 어린 사람을 헛말로 속이지 말아 주십시오. 첫 번째는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어린이를 내려다보지 마시고 반드시 쳐다보아주십시오’, 아이들이 키가 작으니까 내려다보는 존재가 아니라 쳐다보는 존재로 삼아 달라는 굉장히 놀라운 이야기죠. 그리고 ‘어린이를 늘 가까이 하시고 자주 이야기하여 주십시오’가 두 번째 부탁이었고요. ‘어린 사람에게 경어를 쓰시되 늘 부드럽게 하여 주십시오’, ‘이발이나 목욕 같은 것을 때 맞춰하도록 하여 주십시오’, ‘산보나 원족 같은 소풍을 가끔씩 하시어 자연을 친애하는 버릇을 갖게 하여 주십시오’, 자연친화적인 어린이를 만들어달라는 거죠. 그리고 여섯 번째는 ‘어린이를 나무라실 때는 쉽게 성만 내지 마시고 평화롭게 하여 주십시오’, ‘어린이를 위하여 즐겁게 놀 수 있는 기관을 만들어 주십시오’, 마지막으로 ‘이 대우주의 뇌신경 말초는 늙은이에게 있지도 아니하고 젊은이에게 있지도 아니하고 오직 어린이 그대들에게 있는 것을 늘 생각해주십시오’, 이렇게 부탁을 합니다.

◇ 최형진: 저도 들으면서 새겨야겠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사실 요즘 ‘주린이’, 어린이를 따서 이런 이야기들 많이 하잖아요. 

◆ 신지영: 네, ‘예린이’, ‘요린이’ 등의 말을 하잖아요.

◇ 최형진: 이런 단어가 사실 조금 그렇죠.

◆ 신지영: 우스개소리로 하지만, 사실 말씀드렸듯 어린이는 능력이나 지위가 낮은 존재라는 뜻이 아니거든요. 그런데 만약 이런 ‘주린이, 요린이’ 등의 말을 통해서 방정환 선생님이 어린이를 다시 발굴해서 전파하려고 했던 의도, 존중의 대상이어야 한다는 것을 훼손하는 표현들을 우리가 다시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요린이’ 같은 경우, 요리를 알지 못하는 사람,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으로 생각하게 되면 ‘어린이는 능력이 떨어지고 지위가 낮은 존재구나’라고 생각하기 쉽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를 할 때 주의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정답은 5월 1일이었습니다. 지금처럼 5월 5일이 된 건 1946년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일제가 너무 탄압해서 ‘메이데이’ 행사 등과 겹치고 평일인 경우도 있어서 30년대에 5월 첫 번째 일요일로 바꿉니다. 그러다가 1946년의 5월 5일이 첫 번째 일요일이었거든요. 부활하게 돼요. 그러면서 5월 5일이 되었습니다.

◇ 최형진: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 신지영: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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