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라디오생활
  • 방송시간 : [월~금] 10:30~11:30
  • 진행: 박귀빈 / PD: 이은지 / 작가: 김은진

인터뷰 전문

신호등 ‘초록불’, 우리는 왜 ‘파란불’이라고 할까
작성자 : ytnradio
날짜 : 2021-04-05 12:32  | 조회 : 6135 
YTN라디오(FM 94.5) [YTN 뉴스FM 슬기로운 라디오생활]

□ 방송일시 : 2021년 4월 5일 (월요일)
□ 진행 : 최형진 아나운서
□ 출연 : 신지영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최형진 아나운서(이하 최형진): 여러분은 횡단보도를 건널 때, 초록불에서 길을 건너십니까? 파란불에서 길을 건너십니까?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신호등의 보행신호, 같은 색깔인데 왜 다른 이름으로 불리게 된 걸까요? 전혀 다른 말을 하는데도 우리는 어떻게 찰떡같이 알아듣게 되는 걸까요? 어른이들의 슬기로운 언어생활, 다른 말을 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언어의 비밀에 대해 이야기 나눠보려고 합니다. 오늘도 신지영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와 함께합니다. 교수님, 안녕하세요?

◆ 신지영 교수(이하 신지영): 네, 안녕하세요.

◇ 최형진: 초록불과 파란불, 저는 파란불이라고 불러왔는데 생각해보니 신호등 색깔이 초록색인 것도 같아요. 왜 이렇게 부르게 된 걸까요? 

◆ 신지영: 이것 때문에 제가 전화를 한 번 받았어요. 아마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했던 것 같아요. 아나운서님도 어렸을 때 “파란 불에 건너세요” 라고 해서 봤는데 ‘파란 불이 어디 있지’ 하고 생각해본 적 있지 않나요. 굉장히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고 있는 것 같은데요. 오늘 무슨 날입니까?

◇ 최형진: 오늘 식목일입니다. 

◆ 신지영: 우리가 식목일에 많이 떠올리는 것 있잖아요. 우리 강산 어떻게 해야 해요?

◇ 최형진: 푸르게, 푸르게.

◆ 신지영: 강이 푸르다, 산이 푸르다, 라고 했을 때 같은 색이 떠오르나요?

◇ 최형진: 아니요. 색은 다르죠.

◆ 신지영: 그런데 왜 우리는 둘 다 푸르다고 하죠?

◇ 최형진: 그러게요.

◆ 신지영: 그러게요. 그게 오늘 아나운서님이 저에게 질문한 건데, 제가 또 질문을 하고 있는데요. 우리 어른이들이 문자를 보내주시면, 어른이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먼저 들어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제가 얘기해봤습니다.

◇ 최형진: 진짜 푸른 숲, 숲이 푸르다고 말하네요.

◆ 신지영: 네, 푸른 들판이라고 얘기하잖아요. 그럴 때 푸른 것하고, 푸른 하늘 은하수, 가을 하늘은 푸르다고 할 때의 푸른 것이 같은 색인가요?

◇ 최형진: 아니요. 다른 색 같은데요.

◆ 신지영: 다른 색인데 왜 우린 푸르다고 하죠.

◇ 최형진: 그러니까요.

◆ 신지영: 그렇죠. 오늘 그게 주제잖아요. 점점 미궁으로 빠져보도록 하겠습니다.

◇ 최형진: 하늘도 푸른색이고 숲도 푸른색이지만, 보면 하늘은 파란색이고 숲은 초록색이잖아요. 그러게요?

◆ 신지영: 그렇죠? 이상하네요. 오늘 식목일에 너무 잘 어울리는 것 같다는 주제라는 생각이 드네요. 오늘이 식목일이기도 하지만 오는 수요일에 선거가 있잖아요. 그럼 선거에 당선된 사람이 나오겠죠? 우리가 어떻게 불러야 한다고 말씀 드렸었죠?

◇ 최형진: 당선자요.

◆ 신지영: 그렇죠. 이번 라디오뿐만 아니라 TV에서도 당선자라고 부르는지, 혹시 당선인이라고 부르는 건 아닐지, 유권자로서 후보자였던 사람들이 당선자가 될 것이냐, 당선인이 될 것이냐도 관전 포인트로 잡아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 최형진: 당선자냐, 당선인이냐는 저번 시간에 다뤄봤으니, 이번 보궐선거 이후에 어떻게 부르는지 저희가 불을 켜고 한번 보겠습니다.

◆ 신지영: 만약 당선인이라고 부르는 기자가 있다면, 우리 어른이들이 댓글 달아서 당선자라고 해달라고 해주세요. 그 분들은 후보자였고 우리는 유권자니, 당선자가 되어야 하지 않냐고 얘기해주셨으면 좋겠네요.

◇ 최형진: 다시 돌아와서, 우리가 신호등을 보면 청색 신호라고 하지 않습니까. ‘청’이라는 한자 때문에 이렇게 부르게 된 것 아닙니까?

◆ 신지영: 그렇다고 할 수도 있고, 아니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우선 세상에 존재하는 색깔의 개수가 몇 개일까요? 세상에 몇 개의 색깔이 존재할까요?

◇ 최형진: 모르겠습니다.

◆ 신지영: 정답입니다. 모른다가 정답입니다. 왜냐하면 너무나 많기 때문이죠. 그리고 그걸 모두 잘게 쪼갤 수 없습니다. 빛의 스펙트럼을 보면 알잖아요. 이건가 하고 옆에를 보면 또 아닐 것 같고요. 무지개 색이 모두 몇 개일까 라고 질문하는 것과 똑같은데요. 무지개 색의 개수를 알 수 없습니다. 연속체기 때문에요. 그런데 우리는 무지개 색이라고 하면 몇 개라고 생각하죠?

◇ 최형진: 일곱 개요.

◆ 신지영: 네, 일곱 빛깔 무지개라고 얘기하잖아요. 사실 이것도 잘 들여다보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빨간색인지 알 수 없어요. 일곱 개라는 건 사실 신화예요. 그렇다면 일곱 빛깔 무지개라고 이야기를 시작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누군가가 무지개는 일곱 빛깔이라고 얘기하는데요. 사실 그 전에 우리나라 전통적으로는 무지개가 일곱 개가 아니었어요.

◇ 최형진: 다섯 개죠?

◆ 신지영: 그렇죠. 오색 무지개였어요. 오색 무지개가 어떻게 일곱 빛깔 무지개가 되었을까요? 이거 굉장히 궁금해지지 않나요? 사실 뉴튼이 빛의 스펙트럼을 분광기를 통해서 보다가, 이걸 일곱 개로 임의 구분했대요. 도레미파솔라시, 일곱 개의 음계가 있는 것처럼 일곱 개로 단절을 해본 거죠. 그런데 전 세계에서 보면 언어권마다 무지개가 몇 가지 색인지가 모두 달라요. 우리나라와 중국 사람들은 다섯 개 색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중국과 우리나라 모두 기본적인 색깔을 다섯 개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기본 색채가 어떻게 다섯 개인지 알기 위해 그 언어를 잘 보면, 기본적인 색채화가 있어요. 이건 다른 데서 온 것도 아니고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건데요. 한국어를 잘 보면, 다섯 가지 색채어가 있습니다. 그건 우리 자생적인 고유어인데요. 어떤 색이 있을까요? 단어를 보면, 우선 ‘희다’가 있습니다. ‘희다’는 하얀색이 되죠.

◇ 최형진: 검다.

◆ 신지영: 그렇죠. 또 뭐가 있죠?

◇ 최형진: 파랗다.

◆ 신지영: 네, ‘푸르다’가 ‘파랗다’가 된 거고요.

◇ 최형진: 붉다.

◆ 신지영: 좋습니다. 마지막은 뭘까요?

◇ 최형진: 누렇다?

◆ 신지영: 네, 맞습니다. ‘누르다’입니다. 원래 기본적인 색채어는 ‘희다’, ‘검다’, ‘붉다’, ‘푸르다’, ‘누르다’, 다섯 가지로부터 온 거예요. ‘희다’가 하얀색이 됐죠. 명사로 하면 ‘하양’이 돼요. ‘검다’는 검정색이 됐고, 명사로 하면 ‘검정’, 검은색이 되죠. ‘붉다’는 ‘빨강’, 빨간색이 되고, ‘푸르다’는 ‘파랑’과 파란색이 되고요. ‘누르다’는 ‘노랑’과 노란색이 됩니다. 이렇게 하양, 검정, 빨강, 파랑, 노랑, 이게 우리말이 가지고 있는 다섯 개의 고유어 명사의 색깔이죠. 그 이외의 것들은 다른 데서 온 거예요. 예를 들어, 오늘 이야기는 하는 녹색은 우리말이 아니죠. 초록, 녹색은 한자어에서 온 거죠. 원래는 중국 쪽에서 온 거라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다섯 개의 기본적인 색깔이 있어서 무지개색이든 무엇이든 우리는 그런 식으로 생각을 해온 거예요. 오늘 주제인 ‘푸르다’에서 나온 파란색이라는 것, 파란색과 녹색을 나누는 언어가 있고, 우리나라나 중국어처럼 뭉치는 언어가 있기도 합니다. 빛의 스펙트럼을 보면, 가장 가까이 있는 색 중 하나거든요. 파란색과 녹색을 어떤 언어에서는 구분을 하고, 어떤 언어에서는 구획을 하지 않는 거죠. 그러니까 세상에 존재하는 색은 무한한데, 그걸 우리는 언어로 유한하게 범주화해요. 잘라서 범주를 만드는 거죠. 이게 언어권마다 다른 거죠. 영어는 여섯 개의 범주로 만들어서요. 그린(Green)과 블루(Blue)가 나눠져 있죠. 그런데 한국어는 그린과 블루를 모두 파랗다고 표시하는 거죠. 그래서 우리는 두 개를 나누지 않고, 중국도 그렇고요. 영어, 영국 사람들은 두 개를 나눠서 생각하는 거라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언어를 배울 때 무엇을 먼저 배우죠? 어린 아이들이 대체로 ‘파란 신호등이 없는데, 초록색인데’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면요. 언어는 상황에서 용법으로 배우는 것인데, 우리가 아이들한테 용법을 다 알려줄 수는 없어요. 아이들이 경험해야 용법을 아니까요. 그런데 먼저 가르치는 것이 색깔이에요. 색칠하기를 하며 어린아이들한테 색깔을 가르치거든요. 색을 가르칠 때는 분명 파란색과 초록색은 다른 것이라고 가르치죠. 그렇데 다른 거라고 얘기해놓고, 파란 신호등이라고 하면 파란색과 녹색이 한국어에서는 같이 취급된다는 것을 아직까지 아이들한테 충분히 가르치지 못한 거예요. 그렇다보니 아이들이 헷갈린다고 얘기할 수 있죠. 그럼 제가 여기서 우리 어른이들한테 퀴즈를 내볼까요? 우리나라에서 지금 쓰고 있는 단어 중에서 다른 나라에서 온 외래어가 많잖아요. 보라색은 수입된 말입니다. 그렇다면 보라색은 어디 나라에서 수입된 말일까요?

◇ 최형진: 한 청취자님이 ‘보라카이’라고 하셨는데요. 기발하십니다.

◆ 신지영: 이거 정말 기발하네요. 

◇ 최형진: 정답은 다시 공개하는 걸로 하고요. 그렇다면 녹색도 수입된 말인가요?

◆ 신지영: 그렇죠. 초록이라고 해서 풀 초자에 녹색할 때 녹자잖아요. 그러니까 풀의 색은 초록색이 되는 거죠. 청색이라고 하면, 남색과 녹색을 아우르는 말이에요. 남색은 짙은 파란색을 얘기하고, 초록색은 풀색을 말하는 거죠. 그걸 합쳐서 청색이라고 하죠. 우리말로도 푸른 신호등이라고 얘기하지만, 우리만 그런 것이 아니라  ‘청신호’ 라고 얘기하는 중국도 청이라고 하면 파란색과 녹색을 다 아우르는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본도 마찬가지예요. 이렇게 언어권마다 비슷한 유형을 가지고 있고요. 영어는 다르죠. 영국 사람들에게 파란 신호등이라고 하면, ‘파란 신호등 없는데’ 라고 생각하는 거죠. 보통 이렇게 생각해보시면 좋아요. 우리가 처음에 ‘시원하다’고 하면 원래 개념을 배우잖아요. 온도가 낮은 거죠. 그런데 뜨거운 국 먹고 뭐라고 하죠?

◇ 최형진: 시원하다고 하죠.

◆ 신지영: 뜨거운 탕에 들어가면 뭐라고 하죠?

◇ 최형진: ‘어우, 시원해’라고 하죠.

◆ 신지영: 그럼 아이들이 이상한 거죠. ‘저건 시원한 게 아니라 뜨거운 건데’ 하는 것과 똑같이 파랗다고 했을 때, 두 가지 색을 아우르는구나, 그런 용법이 언어에 있구나, 라는 것을 어린아이들이 습득하지 못한 거죠.

◇ 최형진: 한마디로 사회성이 생기면서 이런 것들을 배워가는 거군요.

◆ 신지영: 그렇죠. 언어 능력이 높아지면서요. 언어를 많이 사용하면서 어쩔 때는 뭉쳐서 사용하고, 어쩔 때는 분리해서 사용한다는 것을 알게 되는 거죠. 아까 질문에 대한 답이 왔나요?

◇ 최형진: 네, 오늘 전 세계가 다 나왔습니다. 이집트, 프랑스, 스위스, 영국, 인도, 노르웨이, 남아프리카공화국, 일본, 폴란드 나왔습니다. 

◆ 신지영: 모두 땡입니다. 힌트를 드려야겠네요. 원나라를 세운 나라죠. 원나라와 관련이 있습니다. 그때 이 색깔도 같이 들어왔고, 그때 그 문화가 많이 들어왔습니다.

◇ 최형진: 중국도 나왔고요. 정답 발표를 해주시겠습니까?

◆ 신지영: 정답은 몽골이었습니다. 원나라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한 나라의 영향을 받으면 그 나라의 문화와 언어가 들어오게 되어 있거든요. 그래서 민요를 보면, ‘수지니 날지니 해동청 보라매’라고 되어 있죠. 그때 ‘보라매’가 보라색 매예요. 보라매는 원래 태어난 지 1년이 안 된 어린 매거든요. 그런데 왜 보라매가 보라색과 관련 있냐면, 그 매들이 1년이 되기 전에는 털갈이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슴에 보라색이 있었던 거예요. 보라매가 가지고 있는 색이 보라색이 된 거죠. 원나라 이전, 보라매 얘기가 있기 전에는 보라색이 없었다는 거죠.

◇ 최형진: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 신지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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