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 차이나
  • 방송시간 : [월~금] 06:38, 14:53, 20:36
  • 진행자: 임대근 교수 / PD: 신아람

방송내용

3/24(화) 천주교의 포교를 인정한 강희황제
작성자 : ytnradio 날짜 : 2020-03-24 09:18  | 조회 : 333 
大家好! 안녕하세요.
한국외대 교수 임대근입니다. 코로나19는 뜻밖에도 종교 문제를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천주교는 236년 역사상 처음으로 모든 미사를 중단했는데요, 이탈리아에서도 가톨릭 예식이 전면 중단되고 바티칸에서 교황이 집전하는 부활절 미사도 인터넷으로 중계할 예정이라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가톨릭 교계의 소식을 접하던 중 마침 이맘때가 바로 중국에서는 천주교의 포교가 자유롭게 이뤄진 시기여서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때는 바야흐로 청나라 강희황제 시절입니다. 강희 황제 때 중국 천주교는 크게 발전했습니다. 무엇보다 천주교의 자유로운 포교 활동을 보장해 주었습니다. 강희황제는 일곱 살의 어린 나이에 황위에 올라서 열한 살이 되면서 친정을 시작했는데요, 어린 나이의 황제가 천주교를 인정한 건 무슨 이유 때문이었을까요? 무엇보다 천주교가 당시 새로운 과학과 문명을 많이 들여왔기 때문입니다. 삼번의 난이라는 반란이 일어났을 때는 선교사들이 대포를 수백 문이나 만들어서 진압하는데 큰 공을 세웠고요, 또 중국 전 지역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황여전람도’라는 지도를 만들어 주기도 했습니다. 강희황제는 이들을 통해서 서학을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선교사들을 시강으로 임명해서 기하학이나 측량학, 해부학, 의학 같은 걸 배웠고요, 궁궐에 실험실을 만들어서 화학, 약학 실험을 하기도 했습니다. 남회인이라는 선교사가 병이 들자 여러 차례 사람을 보내 문안을 하기도 하고요, 어의를 보내 진료하게도 합니다. 그가 세상을 떠난 다음에는 시호를 내리고 비문을 직접 쓰기도 합니다. 당시 교황에게 편지를 보내서 교황의 조카와 혼례를 치러서 중국과 유럽 관계를 강화하자는 제안까지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결국 1692년 3월 22일 천주교의 중국내 자유로운 선교를 허락하는 칙령을 공포하기에 이릅니다. 하지만 나중에는 중국의 전통 문화인 제사를 지내는 일이 천주교의 교리에 어긋나는지를 두고 갈등이 생겨나면서 선교를 금지하기에 이릅니다. 이런 역사를 보면 종교라는 영역도 역시 우리 삶의 각 영역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가 하는 실용적인 면을 기준으로 따져봐야 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再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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