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형의 뉴스 정면승부
  • 방송시간 : [월~금] 17:10~19:00
  • 진행: 이동형 / PD: 김우성 / 작가: 홍기희, 김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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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독립운동가 후손의 병원비가 없습니다 
작성자 : ytnradio
날짜 : 2020-02-14 19:40  | 조회 : 503 
[YTN 라디오 이동형의 뉴스 정면승부]
■ 방송 : FM 94.5 (17:10~19:00)
■ 방송일 : 2019년 2월 14일 (금요일)
■ 대담 : 채양묵 최재형 기념사업회 공동대표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위대한 독립운동가 후손의 병원비가 없습니다 


◇ 앵커 이동형(이하 이동형)> 오늘은 2월 14일인데요. 상당수는 오늘을 ‘발렌타인데이’로 기념하겠습니다만, 역사적으로 오늘은 안중근 의사가 사형 선고를 받은 날이기도 합니다.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 거사는 위대한 독립 운동가들의 물밑 지원이 있어서 가능했죠. 그 가운데 한분이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라고 불리는 최재형 선생입니다. 지금부터 해볼 이야기는 최재형 선생에 관한 얘긴데요. 정확히는 그 후손이 처한 안타까운 현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먼저, 준비한 내용부터 들어보시죠.

◆ 포트르 최(최 발렌틴 선생의 아들)> “독일에서 모스크바로 옮겨와 입원 중입니다. 의료진은 심각한 상태로 보고 있습니다. 더 악화되거나 나아지지 않은 상황입니다.”

◇ 이동형> 방금 전해드린 목소리는 최 발렌틴 씨의 아들, 포트르 최가 뉴스정면승부에 보내온 음성입니다. 최재형 선생의 후손 최 발렌틴 독립유공자후손협회장이 독일에서 사고를 당해 지금 의식불명 상태라고 합니다. 가족들은 감당할 수 없는 치료비에 눈앞이 캄캄하다고 했는데요. 자세한 상황을 최재형 기념사업회 채양묵 공동대표로부터 들어보겠습니다. 대표님, 어서 오십시오. 

◆ 채양묵 최재형 기념사업회 공동대표(이하 채양묵)> 네, 안녕하십니까.

◇ 이동형> 최재형 선생과는 어떤 관계이십니까?

◆ 채양묵>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10여 년 전에 러시아 연해주 지역에 시베리아 열차 관광을 갔다가 우연하게도 최재형 선생에 대한 말씀을 듣게 되고, 사업을 하면서, 나이를 먹어 가면서 역사의식 없이 그냥 살던 사람들이 최재형 선생의 말씀을 듣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최재형 선생 같은 분을 우리가 왜 이렇게 모르고 있었나 하는 자책감, 이렇게 몰라도 되는 건가 하는 회한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뜻을 같이 하는 몇몇 분들이 다녀와서 최재형 장학회를 출범했습니다. 최재형 장학회는 선생님의 유지를 받들어서 젊은 고려인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어서 고려인들의 불행이 다시 반복되지 않게끔 하는 뜻을 가지고 시작하게 되었고요. 통상 독립운동가 기념사업회는 대부분이 그분의 친인척, 후손들에 의해서 이루어지고요. 또는 그 지역 고향 분들이 자기 고장에서 태어난 위대한 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사업을 하는 것이 흔한 경우인데요. 아시다시피 최재형 선생님은 고향이 함경북도 경원이라고 하는, 우리들이 가볼 수 없는 지역에 있고요. 또한 그분들의 친인척 중에 남한에서 활동하고 있는 분들이 있다거나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전혀 친인척 관계, 지연, 혈연, 이런 것들이 없는 완전히 남들이 모여서 뜻을 같이 하게 되었습니다.

◇ 이동형> 그 여행을 갔다 오신 지가 얼마나 되셨습니까?

◆ 채양묵> 한 8~9년 정도 됐습니다.

◇ 이동형> 그때부터. 어떤 점이 대표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요?

◆ 채양묵> 저는 개인적으로는 중소기업을 하고 있는데, 사실 기업을 하는 입장에서 보면 내 조국에 빚을 지고, 또 조국에 사는 모든 국민들이 나의 상품을 팔아주고, 알게 모르게 많은 신세를 지고 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만 살려고 하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왔던 것 같은데, 최재형 선생님의 말씀을 들어보니까 너무도, 소위 노블리스 오블리주 정신이 철저하시고,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너무 크고, 부끄러움을 느껴서 말하자면 인생을 역사의식과 함께 더 좋은 선순환의 노블리스 오블리주가 우리들부터 시작되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 이동형> 대단한 일을 하고 계시네요. 알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겠지만 최재형 선생은 교육사업도 하셨고, 의병활동도 열심히 하셨고, 마지막은 결국은 체포되어서 총살당하신 것이죠?

◆ 채양묵> 네, 그렇습니다.

◇ 이동형> 대한민국 정부가 1962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었는데요. 당시 최재형 선생의 집은 연해주 독립운동가들의 은신처이자 모임장소이기도 했다고 하고요. 안중근 의사도 최재형 선생의 집에 묵으면서 사격 연습을 했고, 당시 상황을 최재형 선생의 딸 최 올가 씨가 책으로도 남겼는데요. 그 내용을 듣고 이야기 계속하겠습니다. 

◆ 최 올가(최재형 선생의 딸)> “노보키에프스크에 살 때였다. 안응칠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내가 듣기로 누군가를 사살할 준비를 한다고 했다.     우리집 마당 벽에 사람 셋을 그려놓고서 권총 사격 훈련을 하고 있었다. 소냐 언니와 함께 마당에서 자주 보았다. 안응칠이 하얼빈으로 가서 어떤 일본 군인을 죽였다. 그래서 자기도 죽었다고 얘기 들었다. 아이들과 부인이 있었는데, 우리 엄마가 음식도 주고 옷도 주고 떠날 때 보따리도 많이 주었다.”

◇ 이동형> 최올가의 육필 회고록 <나의 아버지 최재형>에서 일부 발췌해서 전해드렸는데요.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안응칠이 안중근 의사고, 누군가를 사살할 준비를 한다고 했다, 에서 누군가는 이토 히로부미일 테고. 최재형 선생의 집에서 안 의사가 거사를 준비했던 거네요?

◆ 채양묵> 네, 그렇습니다.

◇ 이동형> 그것을 따님이 왔다 갔다 하면서 누군지는 잘 모르지만 뭔가를 하고 있구나, 느꼈던 것이고요. 

◆ 채양묵> 그 근처에 못 오게 선생님께서 말리셨답니다.

◇ 이동형> 최재형 선생의 마지막을 말씀해주시죠. 4월 참변 이야기가 있는데.

◆ 채양묵> 최재형 선생이 1919년 3.1 독립운동 선언 이후에 꺼져가는 연해주 지역의 독립운동을 활성화하기 위해서 애를 쓰시다가 일본군들이 러일전쟁에서 승리하고 러시아에 주둔하면서 독립운동가들을 색출하고 하는 그런 게 심해졌습니다. 그래서 4월에 4월 참변이라고 불리는 커다란 대사건이 있었는데요. 수없이 많은 우리 독립운동가들도 있지만, 러시아 현지인들도 엄청난 사람을 살육했다고 하는 시기입니다. 그때 여러 독립지사 분들과 함께 선생님께서 체포돼서 일본군에 의해서 무참하게 살육을 당하신 거죠.

◇ 이동형> 알겠습니다. 그러면 최재형 선생 후손 이야기를 해보죠. 최재형 선생이 살해되고 나서 남은 가족들의 삶은 어땠을까요?

◆ 채양묵> 선생께서는 상당히 많은 자제분을 두셨습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 독립운동을 하셨다고 하는 것 때문에 독재자 스탈린으로부터 자제분 여럿이 처형당했다고 들었습니다. 나머지 자손들도 상당히 어렵게 살다가 아시는 것처럼 1937년 스탈린에 의한 고려인 강제 중앙아시아 이주 때 모두가 짐짝 실리듯이 가고, 역사가 단절됐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후손들끼리도 뿔뿔이 흩어지게 되고, 매우 정말 살아남기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살다 보니까 서로를 못 챙기고 그렇게 살았다고 들었습니다.

◇ 이동형> 그 세월이 오죽했겠습니까. 알겠습니다. 작년 말에 우리 뉴스 정면승부 담당 PD가 최재형 선생의 손자이자 모스크바 독립유공자후손협회장을 맡고 있는 최 발렌틴 선생을 만나고 왔는데, 자세한 이야기를 육성으로 들어보시죠.

◆ 최 발렌틴> “할아버지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위험했습니다. 할아버지의 후손들과 우리 모두는 탄압의 대상이 되었죠. 이 모든 것은 결국 최재형 선생을 기억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조치였다고 생각합니다. 아버지는 2년 간 옥살이를 했고, 강제이주를 당하게 되고, 저 같은 경우는 아버지가 안 계신 상황에서 태어나 온갖 질병에 다 걸렸습니다. 심장, 폐, 간, 말할 것도 없이 망가졌습니다. 이런 탄압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냐고 묻는다면 그냥 운이 좋았습니다.” 

◇ 이동형> 네,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 이런 이야기가 있는데, 최재형 선생의 아들이죠. 아들도 옥살이를 하고, 강제이주 당하고요. 그 손자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 없이 자라나서 온갖 질병에 시달렸고. 어떻게 살아남았냐고 묻는다면 그냥 운이 좋았다고 대답했어요. 슬픈 역사인데, 최 발렌틴 선생이 지금 얼마나 위독한 상황입니까?

◆ 채양묵> 표트르 최, 그 아들의 전언에 의하면 지금 호흡과 영양공급이 모두 인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고, 의사들의 소견으로는 소생하기가 매우 어려운 상태고, 혼수상태에서 지금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해서 굉장히 위독한 상태로 알고 있습니다.

◇ 이동형> 병원비도 지금 걱정이라고 하는데, 독일에서 5만 유로 정도가 필요한데 지금 기념사업회에서 회원들이 자비로 성금을 거둬서 1만 유로를 보내줬다면서요?

◆ 채양묵> 네, 오늘 지금 저희 이사장께서 마침 최 발렌틴 선생을 볼 겸 해서 모스크바로 출발했습니다. 저희 사업회도 국가예산이나 다른 재원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저희들의 후원과 불특정다수의 후원자들에 의해서 유지되고 있는데요. 하다 보니까 매우 궁핍합니다. 특히 올해는 저희가 순국100주년이 되어서 최재형 선생의 순국 사업을 꿈꾸고 있었고, 최 발렌틴 선생도 우리 사업회의 이사십니다. 그래서 함께 그 사업을 준비하던 중이었는데요. 이렇게 아주 뜻하지 않은 사고로 인해서 이렇게 되어서 정말 막대한 치료비가 필요한데 저희들의 능력은 한계가 있고, 참 매우 저희들도 암담한 실정입니다.

◇ 이동형> 조국독립에 모든 재산을 바치고 결국에는 목숨을 버렸고. 후손들은 그런데 가난하고, 병들어 쫓겨 다니고 지금은 병원비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굉장히 위독한 상황이고, 병원비도 모자라고, 지금 후손들은 만약 최 발렌틴 선생이 돌아가실 경우에 아버지 유해를 고국에 모셔오고 싶다고 이야기합니다만, 그 비용도 없기 때문에 그것도 걱정인데요. 만일 이 방송을 듣고 있는 분들께서 우리라도 십시일반 도와주고 싶다고 하면 어디로 연락해야 합니까?

◆ 채양묵> 사단법인 최재형 기념사업회가 있는데요. 전화번호가 02-541-****번입니다. 전화를 주시면 저희가 친절히 안내를 해드리겠습니다.

◇ 이동형> 02-541-****. 혹시 도움을 주고 싶은 분이 계시면 전화 부탁드리고요. 아까 제가 잠깐 이야기했습니다만, 최 발렌틴 선생이 지난해 3.1운동 100주년을 맞아서 대한민국 국적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최 발렌틴 선생의 아들은 지금이라도 아버지를 고국 땅에 모셔오고 싶어 하는데, 문제는 어려운 문제입니까?

◆ 채양묵> 저희도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법적인 내용은 저희도 모르겠고, 최 발렌틴 선생께서는 할아버지의 유업을 받들어서 그 지역의 독립유공자 자손협의회장을 지금 하고 계시면서 최재형 선생을 알리는 데 앞장서고 크게 기여를 하고 계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이런 사고가 나다 보니까 저희도 경황이 아직 없는데요. 지금부터 알아보기는 알아봐야겠습니다. 지금부터 저희는 여러모로 다각도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이동형> 마지막으로 청취자 여러분들께 남기고 싶은 말씀이 있으면 하십시오.

◆ 채양묵> 네, 아까 사회자께서도 말씀하셨던 것처럼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하고, 친일을 하면 3대가 잘산다고 하는 게 지금 웃자고 하는 이야기도 아니고, 얼마나 슬픈 이야기입니까. 저도 사업을 하면서 개인적으로 중소기업인으로서 넉넉지 않지만 최재형 선생의 이야기를 듣고, 또 많은 독립지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참 많은 죄책감을 느꼈습니다. 지금부터 모두가 다 역사의식을 더 가져야 할 거라고 생각을 하고, 특히 최재형 선생님은 품격이 비현실적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선생님을 기리고, 선양하는 사업을 함에 있어서도 정부나 어떤 말씀을 드려도 상당히 어려움이 있습니다. 사실 이거는 저희도 어떤 일보다도 먼저 해결하고 싶은 일이기는 하지만 쉽게 될 일은 아니고, 여러분들이 조금 더 최재형 선생님에 대한 관심을 가져주시고, 또 후손들. 참 그동안 지지리도 고생 많이 하고 살았던 최 발렌틴과 같은 그런 후손들에게도 사랑과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이동형> 네, 오늘 출연해주셔서 고맙고요. 청취자 김원재님께서 “대표님, 전화번호 말고 계좌번호 알려주세요,” 했는데, 계좌번호 혹시 알고 계십니까?

◆ 채양묵>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기업은행이에요. 551-031652-04-012. 예금주는 사단법인 독립운동가 최재형 기념사업회,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 이동형> 여러분들 최재형 선생의 후손분들을 도와주시고 싶으신 분들은 도움 주시기 바랍니다. 최재형 기념사업회 채양묵 공동대표와 인터뷰 마무리하면서 최 발렌틴 선생이 건강했을 때 남긴 육성을 전해드리겠습니다. 오늘 고맙습니다.

◆ 채양묵> 네, 감사합니다. 

◆ 최 발렌틴(육성)>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조국은 단 한 번도 최재형 선생을 잊은 적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과 소련이 교류가 없던 시적이 있었습니다만, 1962년에 서훈을 주었습니다. 결국 조국은 최재형 선생을 잊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조국이 독립운동가들이 잊혀지지 않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 같은 사람의 역할은 그들의 기억과 역사를 기록해놓는 것입니다. 우선 기록을 해두면, 어쩌면 우리의 조국이, 우리의 후손들이 그 뒷일을 감당해주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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