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율의 뉴스 정면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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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행 : 신율 / PD: 신동진 / 작가: 강정연, 정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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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의부장들' 원작자 "김형욱 암살 미스테리에 최태민 있다" 
작성자 : ytnradio
날짜 : 2020-01-22 21:49  | 조회 : 11751 
[YTN 라디오 이동형의 뉴스 정면승부]
■ 방송 : FM 94.5 (17:10~19:00)
■ 방송일 : 2019년 1월 22일 (수요일)
■ 대담 : 김충식 가천대 부총장, ‘남산의 부장들’ 원작자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남산의부장들' 원작자 "김형욱 암살 미스테리에 최태민 있다" 


◇ 앵커 이동형(이하 이동형)> 설 앞두고 개봉한 영화 <남산의 부장들>, 오늘 4부에서는 이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우리나라 현대사의 가장 큰 변곡점 같은 사건, 10.26. 영화는 김충식 전 동아일보 기자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했는데요. 한국 정치사 이면에서 실질적인 주인공 역할을 한 ‘남산의 부장들,’ 그들의 이야기를 원작자로부터 들어보겠습니다. 동아일보 기자를 지냈고, 현재는 가천대 부총장인 김충식 교수 나왔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 김충식 가천대 부총장(이하 김충식)> 네, 안녕하십니까.

◇ 이동형> 영화 보셨죠?

◆ 김충식> 네.

◇ 이동형> 어떻게 마음에 들던가요?

◆ 김충식> 시종 긴박감을 가지고 봤습니다.

◇ 이동형> 그런데 김 교수님이 쓴 책은 굉장히 오랜 역사를 다루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이번에 <남산의 부장들>이라는 영화는 그중에서 한 부분만 땄잖아요?

◆ 김충식> 맞습니다. 10명의 역사 중에서 네 번째 정보부장인 김형욱, 그리고 여덟 번째인 김재규, 두 분을 뽑아서 시나리오를 썼습니다.

◇ 이동형> 그런데도 불구하고 굉장히 긴장감 있게 영화가 만들어진 모양이네요. 우민호 감독이 ‘남산의 부장들’을 영화로 만들고 싶다고 찾아왔을 때 어떤 생각이 드셨어요?

◆ 김충식> 저는 영화가 잘 안 될 거다, 그게 다큐이고, 10명의 정보부장의 역사를 나열한 건데 그거 가지고 어떻게 두 시간짜리 관중을 흡입해갈 수 있겠는가 걱정했더니 복안이 있다. 그게 뭐냐고 했더니 납치, 암살, 도청, 미행, 밀수, 이런 것들이 중첩되는 정치권력 느와르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했습니다.

◇ 이동형> 그런데 10.26을 다뤘던 드라마, 영화, 다큐는 그동안 많았습니다. 다른 작품들하고 <남산의 부장들> 영화가 다른 점이 있을까요?

◆ 김충식> 네, 많이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종전의 작품들은 조금 정치적인 의미에 초점을 두었는데 이번 영화는 개인들의 내면, 박통의 내면, 김재규의 심리적인 변곡점, 이런 것들에 초점을 두어서 상당히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 이동형> 그러면 연출가의 영화적 상상력이라고 할까요? 이런 것도 많이 동원됐겠습니다?

◆ 김충식> 네, 그 점이 굉장히 달랐다고 저도 영화 홍보를 많이 했습니다. 그분이 예컨대 김형욱 사망하고 박정희 시해의 간격이 딱 20일인데, 기자인 저로서도 그것을 상당히 간과했는데요. 그 사이의 인과관계가 있을 것이라고 본 것은 저로서도 감탄한 대목이었습니다.

◇ 이동형> 역사적 사실을 모르고 봐도 재밌을까요? 우리 젊은 세대가요.

◆ 김충식> 네,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 이동형> 지금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이름은 실제와 다릅니다만, 누가 봐도 박정희, 차지철, 김재규, 김형욱이지 않습니까? 배우들 중에서도 누구 연기가 가장 인상에 남던가요?

◆ 김충식> 네 사람 다 이병헌, 이성민, 곽도원, 이희준, 다 대단한 사람들인데, 역시 이병헌 씨는 이름값을 하는 거고, 이성민을 잘 모르는 전직 편집국장님도 그 사람이 누군지는 몰라도 박통 역은 대단하게 했더라, 깜짝 놀랐다는 거고요. 곽도원 씨가 원래 변호인 같은 데서 엄청난 악역을 잘하는 사람이었고요. 

◇ 이동형> ‘남산의 부장들’이라는 책은 동아일보 기자 시절 취재기를 엮은 건데요. 1990년 8월부터 2년 2개월 간 매주 신문에 연재됐고, 93년에 책이 출간됐는데 한일 양국에서 52만 부가 팔렸다. 최근에 재판도 찍으신 것 같더라고요?

◆ 김충식> 네, 그렇습니다.

◇ 이동형> 저도 옛날 처음에 가지고 있던 책도 가지고 있고, 재판도 가지고 있는데요. 우리나라 분들이 많이 읽었다는 것은 이해가 당연히 갑니다만, 일본에서 왜 이렇게 많이 팔렸을까요?

◆ 김충식> 김대중 납치 같은 것은 일본 사람들한테 굉장히 유명한 사건이고, KCIA의 역할은 악명 높은 존재로 그 사람들한테도 각인되어 있었고요. 출판사가 강담사라고 하는 큰 출판사여서 관심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 이동형> 이게 정치 이야기이기 때문에 베스트셀러가 되기 쉽지 않은데요.

◆ 김충식> 네, 신문에 기획 기사가 되는 경우는 굉장히 드물었는데요. 저도 연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 이동형> 1대 중앙정보부장부터 쭉 취재해서 쓰셨는데, 취재할 때 어려운 점은 없었습니까? 그래도 이게 권력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고, 또 비밀리에 숨겨진 조직이지 않습니까? 

◆ 김충식> 만나주지 않은 것이 가장 큰 문제였죠.

◇ 이동형> 그런데 그런 이면을 어떻게 취재를 하셨을까요?

◆ 김충식> 집념으로 직업이니까 야밤에 침입하기도 하고, 새벽에 기다리기도 하고, 그렇게 했습니다.

◇ 이동형> 초대 정보부장은 김종필 전 대표였고, 가장 오래했던 정보부장은 김형욱 부장이었고, 마지막은 김재규 부장이었고, 이런데요.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 있는 인물이라고 할까요? 관심이 가는 인물이라고 할까요? 누가 있을까요?

◆ 김충식> 저는 이후락 씨에 대해서 관심이 있습니다.

◇ 이동형> 제갈조조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는 분인데, 박정희 대통령이 이후락 전 정보부장을 총애한 이유?

◆ 김충식> 역시 머리가 좋았고요. 말은 더듬었지만, 굉장히 대책, 순발력이 있는 사람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김일성을 만나러 올라간 것을 보더라도 상당히 담대한 책사 같은 그런 면모가 있었습니다.

◇ 이동형> 그러면 당시 야당 지도자들은 중정부장, 특히 이후락이나 김형욱, 이런 사람들하고의 머리싸움이나 이런 것에 수가 많이 밀렸다, 이렇게 볼 수도 있을까요?

◆ 김충식> 힘에 더 밀렸겠죠. 

◇ 이동형> 권력이 있으니까 그렇겠죠. 알겠습니다. 영화는 10.26 사건이 발생하기 40일 전에 주목했는데요. 결국은 그러면 이게 부마항쟁 이야기가 나오는 건가요?

◆ 김충식> 네, 그것을 전후로 해서 진행됩니다.

◇ 이동형> 그리고 우리 청취자 분들도 많은 분들이 알 것 같은데, 박정희 전 대통령과 차지철, 그리고 김재규 중정부장, 이 세 명 사이에서 완력이라고 할까, 혹은 충성경쟁이라고 할까, 이런 게 있지 않았습니까?

◆ 김충식> 그렇습니다. 박 대통령은 본래 분할통치, 그러니까 2인자 간의 경쟁구도를 만들어놓고 지배하는 그런 것에 능한 사람인데요. 충성경쟁이 너무 과도해서 생긴 것이 일종의 10.26 사건일 수 있습니다.

◇ 이동형> 가장 궁금한 것, 김재규는 계획적으로 일을 벌였을까 우발적으로 벌였을까. 아직도 미스터리란 말이죠?

◆ 김충식> 정확하게는 반반입니다. 판결문에도 거의 대부분 그렇게 되어 있는데요. 그러니까 수사합수부가 발표한 내용처럼 대통령을 꿈꾸는 과대망상이라고 하는 것은 조금 안 맞는 것 같고요. 정확하게는 자존심 손상이 폭발한 것, 그리고 김재규 씨의 대의를 실현한다고 하는, 그게 민주혁명을 꿈꿨다고 나중에 본인은 최후진술에서 이야기했지만, 거기까지는 다다르지 않더라도 유혈사태를 막겠다고 하는 대의를 지킨다고 하는 측면은 조금 있었습니다.

◇ 이동형> 본인은 대의를 위해서 그랬다고 합니다만, 그 부하들은 사실 상관의 명령에 따른 죄밖에 없지 않습니까?

◆ 김충식> 군인 조직의 특성이죠.

◇ 이동형>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단 말이죠. 굉장히 부하들한테는 미안하다고, 개인적으로. 또 부하들은 억울할 수도 있겠어요, 유족들이나.

◆ 김충식> 당연히 그럴 수 있겠어요. 하지만 군대 조직의 특성이니까요.

◇ 이동형> 또 하나 궁금한 점이요. 안가에서 김재규가 일을 벌이고, 처음에 남산으로 가자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다가 삼일 고가도로를 지나서 차를 돌려서 육본으로 간단 말이죠. 그런 선택은 왜 했을까요? 그리고 만일 남산으로 갔으면 역사가 바뀌었을까? 이런 질문들을 많이 합니다.

◆ 김충식> 첫째, 남산과 육본을 방황했던 것은 본인 자신이 남산에 가서 정승화 총장을 앞세워서 간접 통제를 할 것인가, 아니면 육본에 가서 정승화를 끼고서 직접 통제를 할 것인가의 판단이 왔다 갔다 했던 것 같고요. 어쨌든 경황 중에 쐈으니까 그날도 부하 경호원들이 너무 많이 왔기 때문에 퇴길을 달리 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라고 건의를 하자, 안 돼, 보안이 세. 그래서 오늘 하겠어, 이렇게 결의한 마당이니까 우발적인 퇴길에 근거한 측면이 있고요. 두 번째 남산으로 갔더라도 결국은 체포당하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차 속에서 김재규가 정승화 총장한테 자기가 사탕을 먹으면서 하나를 건넸어요. 그거를 정승화 씨가 의자 밑에다가 슬그머니 버렸어요. 독약이 든 줄 알았대요. 정승화 씨가 그렇게 말을 했어요. 그런 것을 보면, 거느리고 있는 육참총장도 김재규의 거사에 대해서 지지할 의사가 없었고, 그 뿌리를 파헤쳐보면 결국은 박통 사람이기 때문에 군대조직 전체의 생리가 시해범을 옹립해서 새로운 정권이 나오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하는 것이 육군 장성들의 이야기입니다.

◇ 이동형> 결국은 그러면 전두환 합수부장이 등장했을 것이다, 어디로 갔든. 그런 것 같은데요. 부마항쟁이 일어나고 차지철의 유명한 발언이죠. 캄보디아에서는 몇 백만 명을 죽였는데, 까짓것 10만이고, 20만이고 우리가 탱크로 깔아뭉개면 됩니다. 이 말을 듣고 김재규가 큰일 나겠다고 생각해서 일을 벌였다는 거잖습니까? 차지철은 대통령 앞에서 쇼맨십으로 야기한 겁니까, 아니면 정말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까요?

◆ 김충식> 조금 안타깝게도 그분은 성경책도 끼고 다니고, 여러 가지 돈이나 이런 데는 청렴했던 것 같은데, 상당히 인생 자체가 병정놀이에서 끝난 어른 같은, 그러니까 결국은 어른스럽지 못하게. 국회의원도 하고, 경호실장도 하고, 차지철 경호실장 밑에 20~30명의 국회의원이 와서 충성을 했지만, 어른이 못 되고 죽은 그런 사람으로 보이는데요. 그런 측면에서 상당히 안타깝죠. 또 그런 사람을 가장 지근거리에 놓고 월권을 하고 이렇게 군인들을 경호실 밑에 많이 두게 하고 하는 것을 방치한 박 대통령도 그 점은 문제가 있는 것이죠.

◇ 이동형> 김형욱 중정부장이 6년 정도 했습니까?

◆ 김충식> 네, 6년 조금 넘게 했습니다.

◇ 이동형> 그리고 청와대에 가서 해임되었다는 얘기를 듣고 자기 귀가 의심스러워서 허벅지를 몇 번 꼬집었다, 이런 이야기도 있던데요. 

◆ 김충식> 그게 채권, 채무관계가 서로 심적으로 다른 거 아니겠어요? 김형욱은 내가 쌓아올린 것이 많다, 해준 게 많다는 생각이 있는 것이고.

◇ 이동형> 그러면 배신감도 들었겠네요?

◆ 김충식> 그렇죠. 박통 입장에서는 할 만큼 했으니 나의 채무는 이것으로 다 갚은 거다, 라고 하는 차이가 있겠죠.

◇ 이동형> 그런데 중정부장 관두고, 국회의원도 하고 했는데요. 한국에 그래도 있으면 박정희 대통령이 자리도 하나 주고 할 텐데 왜 망명을 선택했을까요?

◆ 김충식> 그것은 우선 양에 안 찼을 것이고요. 또 권력이 양날의 칼이라는 것을 모르고 휘둘렀던 김형욱의 입장에서는 수많은 원한, 원혼들이 백안시하고, 도외시하는 것에 대해서 참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겠죠.

◇ 이동형> 권력을 가지고 있었을 때는 몰랐는데, 없어졌을 때 그것을 못 느꼈군요.

◆ 김충식> 그 시린 것을 참지 못해서 결국은 해외로 나간 것 같습니다.

◇ 이동형> 해외로 나가서 회고록을 쓰겠다, 또 박정희 정권에 대한 비판을 공개적으로 하기도 하고요. 당시 중정에서는 이거 말리는 작전이 가장 큰 일 중 하나였겠어요?

◆ 김충식> 네, 부분적으로는 있었는데, 김형욱을 감동시키고 마음을 돌릴 만한 계기는 없었던 것 같고, 그런 사이에 70년대 후반, 76, 77, 78, 이렇게 말기로 가면서 박 정권이 급격하게 기울어지는 거죠. 미국에서 여론이 나빠지고, 코리아게이트가 터지고, 김상근이라고 하는 정부요원이 망명을 해서 정보부의 약점을 미국에 갖다 바치고. 또 야당은 야당대로 기가 살아서 공세를 높이고 하는 그런 상황에서 결국은 사태가 악화된 것이죠.

◇ 이동형> 결국 김형욱 부장은 미국에 있다가 파리로 넘어가서 거기서 실종되는데, 중정, 또 박정희 정권으로서는 과거 김대중 납치사건 때 일본에서 그런 일을 벌여서 굉장히 외교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까? 이번에 파리로 갔을 때 또 그런 일을 벌여서 외교적으로 문제가 되면 어쩌지, 하는 생각은 안 했을까요?

◆ 김충식> 그래서 이번 영화를 보면서 제가 기자로서 영화감독한테 놀랍고, 경탄했던 것은 바로 김재규 심리 안에 72년 납치사건에서 중앙정보부가 호되게 실패하고, 당했던 경험을 알기 때문에 김형욱을 파리에서 소리, 소문 없이 임무를 완수했다는 것 자체가 김재규로서 굉장한 우쭐함이에요. 그렇지 않겠어요? 그게 10월 초고, 그로부터 20일 후에 10.26 총성이 울린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김재규로서는 지금 강둑에서 자기가 정부를 보다 보니까 엄청난 일들을 자기가 보고 있는데, 그중 가장 큰 문제인 김형욱 제거를 통해서 박통의 가장 큰 문제를 해결했다고 하는 자신감이 있었는데, 거기에 대놓고 말하자면 작은 정보부를 가진 차지철, 또 월권하는 차지철, 물정을 잘 모르는 차지철을 앞세워서 자꾸 견제를 하고, 오히려 차지철 편을 들면서 소극적으로 문제를 풀려고 하는 것에 대해서 큰 반감을 가졌던 것 같아요.

◇ 이동형> 김형욱은 KCIA에서 나를 주목하고 있고, 노리고 있다는 생각을 했을 텐데 왜 혼자서 프랑스 파리로 갔을까요?

◆ 김충식> 그만큼 김재규 팀의 유도 작전이 치밀했고, 또 돈이 많이 떨어져 있었어요. 그때 주머니가 많이 비어 있어서 경제적인 문제로 절박해서 아마 파리로 돈 받으러 간 것 같습니다.

◇ 이동형> 돈으로 회유를 했었군요?

◆ 김충식> 회고록을 출판하지 않는 조건으로 파리로 가게 된 거죠.

◇ 이동형> 김형욱이 어떻게 살해됐느냐, 이거는 국정원에서도 재조사를 하고 했습니다만, 자신이 했다고 했다는 공작원이 나타나기도 했는데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 김충식> 큰 틀에서는 김재규 정보부가 파리 현지의 정보부 담당 공사를 중심으로 해서 실행조를 짜고, 거기에서 권총으로 사살하고, 사체 처리는 별도의 인멸하는 형태로 했죠.

◇ 이동형> 관련자들이 다 사망했기 때문에 진실은 알 수 없습니다만, 당시 파리 공사죠. 이상렬 공사였나요?

◆ 김충식> 네, 그렇게 나옵니다.

◇ 이동형> 그분이 사실 얼마 전에 사망하셨는데, 그분은 진실을 알고 있을 것 같은데 왜 끝까지 이야기를 하지 않으셨을까요?

◆ 김충식> 그분은 85년에 버마 대사까지 하고 쭉 공직을 했었어요. 그래서 많은 궁금증을 가지고 있는데, 실제로 했는지, 안 했는지에 대해서 했다고 하더라도 본인은 말하고 싶지 않았겠죠.

◇ 이동형> 진실이 묻힌 감이 있는데요. 김재규 재판 때 보면요. 김재규 중정부장이 최태민 이야기도 합니다. 최순실 아버지죠. 시해에 있어서 최태민이 원인이 됐다고도 보십니까, 혹시?

◆ 김충식> 네, 큰 원인이 됐습니다. 왜냐하면 최태민에 대한 여러 가지 나쁜 여론 때문에 정보부가 정보보고를 했더니 박 대통령이 큰 영애한테 그것을 던져서 큰 영애가 그것을 반발해서 우리는 좋은 일만 하는데 무슨 이야기입니까, 그렇게 해서 박 대통령 앞에서 큰 딸하고 김재규가 같이 심문을 당하는 그런 치욕적인 일이 있어서 그 점도 굉장한 프라이드의 사나이 김재규로 봐서는 욱하는 대목이 있었을 것입니다.

◇ 이동형> 그렇군요. 교수님께서는 어떻습니까? 10명의 중앙정보부장, 그리고 중앙정보부가 우리 역사에 끼친 영향이라고 할까요? 남긴 숙제라고 할까요?

◆ 김충식> 역시 순리와 상식에 어긋나는 조직 행태는 결국 역사에 큰 오점을 남기고, 국민들한테도 부담스러운 존재로 남게 된다는 생각을 했고요. 그러한 권력의 월권, 또 그로 인한 실패에 대해서 거울을 삼아야 한다는 것이 ‘남산의 부장들’이라고 생각합니다.

◇ 이동형> 중앙정보부에서 안기부로 이름이 바뀌었는데, 이름만 바뀌었다고 보면 되겠죠, 당시에는?

◆ 김충식> 그렇습니다.

◇ 이동형>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 이 문구는 어떻게 보십니까?

◆ 김충식> 원래 그거는 김종필 씨 때 내건 구호인데, 하하. 실제로 모사드라든가, 이스라엘의 조직이라든가, 영국의 조직을 보면 그런 형태가 있죠. 미국의 CIA. 기본적으로는 그렇지만 우리의 경우에는 문제는 해외 정보 수집에 국한하지 아니하고, 국내 정보와 수사에까지 관여하는 데 문제가 컸습니다.

◇ 이동형> 국내 정치에 개입했던 것이 중앙정보부, 안기부, 권력기관이 가진 가장 큰 문제였다. 그거는 국정원으로 넘어와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최근까지도 그런 일이 벌어졌기 때문에요. 지금 ‘남산의 부장들’이 총 몇 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까?

◆ 김충식> 원래 두 권으로 출발했다가 지금은 합본되어서 한 권으로 간행되고 있습니다.

◇ 이동형> 지금은 합본되어 있습니까? 그런데 처음에 1,2권은 미완성된 채로 일본으로 가셨다고요?

◆ 김충식> 그래서 3권을 제 후임자가 써서 80년대 신군부가 집권하는 과정을 집중적으로 하나로 묶었습니다. 3권이 있습니다.

◇ 이동형> 후배가 쓴 거, 만족하십니까?

◆ 김충식> 후배는 아니고 실제로 입사동기생인데, 재밌게 읽었습니다.

◇ 이동형> 인세는 어떻게?

◆ 김충식> 당시에 많이 기자로서는 많이 받았는데요. 어디 갔는지 모르겠습니다.

◇ 이동형> 영화 나오면 또 원작을 구해서 읽고자 하는 분들이 많으실 것 같은데요.

◆ 김충식> 네, 그런 분위기가 있습니다.

◇ 이동형> 그 책을 읽고 싶어 하는 분들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씀해주시죠.

◆ 김충식> 영화에도 박통이 ‘황성 옛터’라고 하는 노래를 부르는 것이 나오는데, 황성 옛터의 달빛이 어리고 나면 결국은 쓸쓸하고, 고독한 인간의 모습만 남는데요. 어쨌든 있을 때, 권력에 재임해있을 때 잘하라는 것이 책의 메시지이고, 영화의 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 이동형> 알겠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 김충식>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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