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TN라디오 생생경제
  • 방송시간 : [월~금] 15:10~16:00
  • 진행, PD : 김혜민 / 작가: 정상림 / 조연출: 박예송

인터뷰 전문

[생생경제] 명절에 모이면 동문회… 폴리텍 가족 동문 ‘눈길’
작성자 : ytnradio
날짜 : 2020-01-22 18:54  | 조회 : 438 
■ 방송 : YTN 라디오 FM 94.5 (15:10~16:00)
■ 진행 : 김혜민 PD
■ 대담 : 이운학 한국폴리텍대학 교수, 이고은 한국폴리텍대학 교수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생생경제] 명절에 모이면 동문회… 폴리텍 가족 동문 ‘눈길’


◇ 김혜민 PD(이하 김혜민)> 이제 정말 설 명절,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요즘에는 나 홀로 명절을 보내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지만요. 여전히 명절이라고 하면 가족과 친지들이 오랜만에 한 자리에 모이는 풍경이 떠오릅니다. 명절을 앞둔 만큼 이 시간도 특별한 순서를 마련했어요. 특별한 가족을 모셨는데요. 한국폴리텍대학 이운학 교수님, 그리고 이고은 교수님과 함께 오늘 순서 함께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이운학 교수님, 안녕하세요? 

◆ 이운학 한국폴리텍대학 교수(이하 이운학)> 안녕하세요. 2017년에 한국폴리텍대학 서울정수캠퍼스에서 정년퇴직하고, 현재는 한국폴리텍대학 서울정수캠퍼스에서 외래강사로 출강 중인 이운학 교수입니다. 

◇ 김혜민> 반갑습니다. 정년퇴직을 하고 지금도 행복하게 일을 하고 계시는 이운학 교수님 모셨고요.

◆ 이고은> 안녕하세요. 한국폴리텍대학 서울정수캠퍼스와 남인천캠퍼스에 외래강사로 출강하고 있는 이고은 교수입니다. 

◇ 김혜민> 네, 교수님 반갑습니다. 제가 앞에 설 명절 이야기를 하고, 가족 이야기하고 그래서 청취자 분들 추측이 가능하실 것 같아요. 이 두 분의 관계가요. 이고은 교수님, 무슨 관계세요?

◆ 이고은> 부녀관계라고 보면 되겠죠.

◆ 이운학> 네, 제가 딸 둘이 있는데 고은이가 그 중 첫째 딸입니다. 

◇ 김혜민> 그런데 어떻게 아버지하고 딸하고 직장이 같은 곳이네요?

◆ 이운학> 좋은 것도 있는데요. 조금 불필요한 것도 있죠. 불편한 것은 같이 커뮤니케이션을 할 때 학술적인 거나 이런 것은 관계가 없는데 그 외에 사적인 것, 이런 것들이 불편하죠.

◇ 김혜민> 어떠세요?

◆ 이고은> 아빠랑 똑같이 가르치는 부분에 있어서는 별로 큰 문제는 되지 않는데, 아무래도 아빠가 계신 곳에서 제가 똑같이 가서 일을 하다 보니까 아빠에 대한 이미지라든가, 그런 것들을 신경 써야 하고 그런 부분들이 어렵죠. 

◇ 김혜민> 그럼 두 분 다 폴리텍대학을 졸업하신 거예요? 

◆ 이운학> 네. 저는 폴리텍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과거 박정희 대통령이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중화학 공업 육성을 해서 정부에서 최초로 만들어놓은 직업 교육을 전담한 교사양성하는 곳이 있었어요. 그곳이 인천에 있는 중앙직업훈련원인데요. 그곳이 모태가 되어서 현재까지 기능대학 거쳐서 폴리텍대학으로 이렇게 여기까지 오게 된 연혁이 있습니다.

◆ 이고은> 저는 아버지가 졸업하신 중앙직업훈련원이 인천기능대학을 거쳐 지금의 폴리텍대학이 된 건데요. 저는 인천기능대학 컴퓨터응용기계과를 졸업했습니다. 또 제 밑으로 두 살 터울 여동생이 있는데, 동생도 저와 같은 학교, 같은 과를 졸업했으니 아버지와 두 딸이 동문인 셈입니다. 

◇ 김혜민> 폴리텍대학이 두 분께 모교이자 직장인 셈이네요. 명절이 모이면 진짜 남다른 느낌일 것 같아요. 서로가 가족이자, 동문이자, 직장 동료인 거니까요. 오늘 세대가 다른 두 분을 한 자리에 모시니 폴리텍대학이 정말 오랜 기간 동안 우리나라 직업교육, 산업발전과 함께해온 대학이구나 하는 게 자연스럽게 느껴집니다. 이운학 교수님께서는 몇 년 동안 직업교육 분야에 종사하신 거예요? 

◆ 이운학> 제가 1977년부터 2017년 퇴직할 때까지 근무했으니까 약 41년을 직업교육 분야에 몸담았었습니다. 

◇ 김혜민> 그러면 처음 직업교육을 시작하셨을 때와, 아직도 가르치고 계시니까요. 직업교육에 대한 사회적 인식들이 변화된 것을 느끼세요?

◆ 이운학> 네, 많이 느끼죠. 그때 과거 1977년도 그때부터 20년까지는 90년대까지는 대부분이 직업에 대한 욕망이 강했어요. 기술이 있으면 먹고살 수 있다고 했는데, 지금은 젊은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기술이라는 개념이 없고 어떻게 하면 대충 배워서 돈 많이 벌고 잘살 수 있을까, 라고 하는 막연한 허황된 뜬구름을 많이 잡는 것 같아요.

◇ 김혜민> 그러면 이고은 교수님은 함께 교육을 하고 계시니까요. 어떠세요? 옛날의 기술교육에 대한 개념과 지금 학생들이 생각하는 게 다른 것 같으세요?

◆ 이고은> 많이 다르게 느끼죠. 저 같은 경우는 학생들에게 낀 세대라고 이야기를 하는 게 아버지 세대에도 있었고, 그리고 저희 세대도 있는데요. 저희 대 같은 경우는 취업이든 뭐든 학교에서 뭔가 알선해주고 하게 되면, 무조건 이것은 해봐야 하고, 못해도 1년, 2년, 3년은 있어야 한다는 게 강했는데 지금 친구들은 정말 좋은 자리가 있어서 취업을 해주고 해도 6개월 정도 있으면 많이 버티는 쪽인 거고요. 생각 자체가 많이 달라진 거죠. 저희 때는 몸으로, 손으로 했던 것들이 많다고 하면 지금 친구들은 거의 컴퓨터를 이용해서 하는 것들이 많다 보니까 많이 쉬워진 거잖아요. 그러니까 편한 게 익숙해져 버리니까 이 친구들이 이게 현장이나 회사 취업을 하게 되면 적응을 잘 못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 김혜민> 이고은 교수님도 기술을 배우신 거죠? 아무래도 이운학 교수님의 영향이 크지 않았을까 싶어요?

◆ 이고은> 맞습니다. 아버지를 보면서 자라니 자연스럽게 영향을 받게 되었는데요. 어릴 때부터 집안 곳곳에 아버지가 만들어 놓은 기구가 자매의 장난감이었습니다. 그리고 고장 난 라디오, TV, 전화기를 직접 뜯어보곤 했어요. 기구를 고치면서 이렇게 재미난 일이 또 있을까 했지요. 그래서 아버지 뒤를 이어 2대째 기계기술 분야로 진로를 정하게 되었습니다. 

◇ 김혜민> 이운학 교수님께서 이고은 교수님에게 기술자의 꿈을 불어넣어주신 셈이네요. 흥미나 역량 이런 것들이 대물림된 게 아닐까 싶어요. 부전자전이라고 하잖아요. 

◆ 이고은> 아버지께서 평소에 저희들에게 무슨 일이든 일단 직접 해보도록 가르치셨어요. 또 본인께서 그렇게 모범을 보이셨고요. 실제로 집에서 쓰던 물건이 고장 났을 때 서비스센터에 바로 전화하는 게 아니라 직접 구슬땀 흘리며 고치셨어요. 제가 고장 난 물건을 가져가 고쳐 달라 하면 네가 직접 해봤니 하고 물으셨고요. 기구 자체에 대한 흥미는 물론이고, 무슨 일이든 내 손으로 해야 한다는 원칙까지도 고스란히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것 같습니다.  

◇ 김혜민> 이운학 교수님은 어떠셨어요? 따님이 자신의 영향을 받아 뒤이어 기술자가 되겠다고 했을 때 느낌이 남다르셨을 것 같아요. 

◆ 이운학> 94년에 고은이가 기술자가 되겠다고 전국 최초의 여자공고인 인천여자공고 1회 입학했어요. 그때만 하더라도 크게 반대했습니다. 싸우기도 많이 싸웠죠. 물론 아버지의 삶을 이해해주고, 또 존경해주는 것 같아 고마운 맘도 있었지만 힘든 길을 가겠다고 나선 딸이 안쓰럽더라고요. 우리 사회에서 기술자가 크게 대접받지 못하다 보니까요. 사실 부모 마음이야 다 똑같죠. 자식이 조금이라도 더 나은 길을 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죠. 

◇ 김혜민> 한 취업포털 사이트에서 직장인 800여 명을 대상으로 자녀가 자신과 같은 직업을 가지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조사했는데, 10명 중 7명인 74.4%가 반대했다고 해요. 아마 교수님도 같은 마음이셨을 것 같아요. 본인이 직접 걸어온 길인만큼 어떤 점이 힘든지 잘 알고 있고, 또 그 당시에는 기계분야에 여성 기술자가 많이 없었던 시기라 더 걱정이 앞섰을 것 같아요. 결국엔 이고은 교수님께서 아버님 고집을 꺾으신 거네요? 

◆ 이고은> 네. 결국엔 제가 아버지의 고집을 꺾었죠. 그 당시 아버지랑 싸우면서 많이 울기도 했어요. 그런데 저는 제가 선택한 걸 후회는 한 번도 해 본적 없고요. 앞으로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이쪽 분야로 또 나서고 싶거든요. 아버지가 반대하셨던 만큼 더 잘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 더욱 악착같이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 김혜민> 이운학 교수님도 처음에는 반대했었지만, 따님이 기계기술 분야 전문가로 성장하는 걸 지켜보면서 참 대견하다, 자랑스럽다고 생각이 바뀌셨을 것 같아요. 

◆ 이운학> 고은이가 그 당시 기능장 시험에서 역대 최연소로 합격한 일이 있었는데 그때는 정말 대견하더라고요. 여자라서 어려울 것이라는 편견과 기피 직종이라는 난관을 이겨내고 전문가로 당당히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하는 걸 보면서 참 자랑스럽다 생각하였습니다. 

◇ 김혜민> 아버지의 뒤를 잇겠다고 어린 나이에 진로를 정했는데, 차근차근 노력해서 최연소 기능장 타이틀까지 딴 거니 결국 이고은 교수님의 선택이 옳았다고 입증한 셈이네요. 

◆ 이고은> 노력의 결과가 모여서 그런 기쁨도 누릴 수 있던 것 같아요. 대학에 입학해서 재학 중에 전공 관련 자격증을 모두 취득했고, 졸업하고서는 정밀기계 회사에 입사했어요. 와이어 컷팅이라는 정밀기계로 작업하는 데 필요한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일을 했었는데, 현장에서 일하는 동안 찬찬히 경력을 쌓았습니다. 요즘 기계는 대부분 자동화됐기 때문에 여자라고 못할 이유가 하나도 없는 것 같아요. 그 후 2002년에 인천기능대학 기능장 과정에 입학해서, 재학 중 역대 최연소로, 여성으로는 네 번째 기능장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대학원까지 공부했습니다.

◇ 김혜민> 아까 이운학 교수님께서 따님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말씀해주셨어요. 대게 부모님들이 자녀가 좋은 직장을 가져야 성공한 인생이라고 생각을 하시거든요. 그런데 19일 한국교육개발원에서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 사회에서 자녀 교육에 성공했다는 것이 어떤 의미냐는 질문에 자녀가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된 경우가 1위로 꼽혔다고 해요. 줄곧 1위였던 좋은 직장에 취직한 경우라는 대답이 밀려나고 처음으로 순위가 바뀐 건데요. 요즘에 부모님들도 서서히 변하고 있는 것 같아요. 

◆ 이운학> 사실 부모 욕심이죠. 자식들도 주관이 있는데, 미리 성공의 답을 정해 놓는 게 과연 올바른 일인가 생각해볼만한 문제입니다. 저도 3년 전까지 학생들을 가르치는 입장에 있었는데, 돌고 돌아 제 갈길 찾아오는 학생들도 많이 있었거든요. 그럴 때마다 고은이를 보면 그래도 잘 키웠다 싶은 생각이 듭니다. 

◇ 김혜민> 충분히 그렇게 느끼실 만합니다. 오늘 설 연휴를 앞두고 특별히 폴리텍대학에 특별한 가족이 있어서 모셨는데요. 아버님하고 따님이 같이 출연해서 저도 기쁜데요. 담아둔 말이 있다면 이 자리에서 한 말씀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 이고은> 41년 동안 학생들을 위해 많은 희생을 하신 만큼 남은 인생은 아버지 자신을 위해 건강하고 멋진 삶을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 이운학> 저는 학생들한테 항상 첫 강의 시간에 들어와서 하는 말이 더불어 사는 삶이라는 것을 강조하거든요.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 사회가 전 세계도 마찬가지겠지만, 배려하는 그런 것이 부족한 것 같아요. 배려심을 많이 정부에서도 정책들을 많이 폈으면 좋겠고요. 또 하나는 젊은 세대들한테 하고 싶은 이야기는 세상이 자꾸 바뀌어 갑니다. 그러면 거기에 준비할 수 있는 준비가 안 되어 있으면 자기가 하고 싶은 것, 꿈꿨던 것, 다 이룰 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항상 어디에, 어떻게 상황이 변하든 자기가 항상 준비를 하고 있을 때 그때는 성공할 수 있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딸한테 이야기하시라니까요.

◆ 이운학> 같은 이야기죠.

◇ 김혜민> 아직까지도 기술에 대한, 여성에 대한 편견이 확실히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 설을 맞이해서 특별한 순서를 마련해봤는데요. 이운학 교수님, 그리고 이고은 교수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 이운학> 감사합니다.

◆ 이고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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