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 차이나
  • 방송시간 : [월~금] 06:38, 14:53, 20:36
  • 진행자: 임대근 교수 / PD: 신아람

방송내용

1/8(수) 중국인민의 총리, 저우언라이
작성자 : ytnradio 날짜 : 2020-01-08 06:58  | 조회 : 518 

大家好! 안녕하세요. 한국외대 교수 임대근입니다.
1월 8일, 오늘은 중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인물 가운데 하나인데요, 저우언라이 총리가 세상을 떠난 날입니다. 저우언라이, 주은래 총리는 1898년에 나서 1976년, 79세를 일기로 생을 마쳤습니다. 저우언라이는 중국인들에게 “인민들의 훌륭한 총리”라는 칭호를 받을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아 왔습니다. 젊은 시절에 파리를 비롯해서 여러 서양 도시를 돌아다니면서 새로운 문물과 사상을 접했는데요, 결국 공산주의를 선택해서 중국 혁명에 투신하게 됩니다. 중국 혁명이 성공하고 나서는 총리와 외교부장을 겸직하게 됩니다. 특히 중국이 사회주의를 수립한 초기에는 주변 국가들과 국경 문제 때문에 갈등이 많았는데요, 이 국경 문제를 잘 마무리하는 탁월한 외교적 역량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국경 분쟁을 해결하면서 특히 북경오리구이를 많이 활용했다고 하는데요, 1960년에는 미얀마와 네팔 총리 일행을 연이어 접견하면서 북경오리구이를 대접했다고 하고요, 베트남 호치민 주석이 병치레를 하고 나서 북경오리구이를 먹고 싶다고 하자, 먼 거리까지 이걸 운송하는 방법까지 개발해서 보냈다는 일화도 남아 있습니다. 1971년 핑퐁외교 당시 미국 특사 헨리 키신저에게도 북경오리구이를 대접했다고 하네요. 저우언라이는 영원한 2인자로서 살았습니다. 자신이 넘을 수 없는 선이 어딘지를 알았고, 그 선을 잘 지킨 인물이었습니다. 또한 인품도 너그러워서 어려운 사람들을 많이 도왔다고 합니다. 어쩌면 마오쩌둥 같은 철권 통치자 밑에 저우언라이 총리가 있었기 때문에 중국 현대사가 균형을 맞춰 온 것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저우언라이 총리가 세상을 떠나고 나자 중국은 다시 극좌파 천지가 됩니다. 저우언라이에 대한 격하 운동도 일어납니다. 1976년 4월 청명절이 되자, 중국 인민은 저우언라이를 추모하기 위해서 흰 꽃과 현수막을 앞세우고 천안문 광장에 모여듭니다. 이로 인해서 이른바 제1차 천안문사건이 시작됐고요, 덩샤오핑은 이 사건으로 실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문화대혁명 몰락의 서막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再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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