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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가 말하는 故김우중 회장과 재벌의 역사
작성자 : ytnradio
날짜 : 2019-12-12 09:56  | 조회 : 2332 
YTN라디오(FM 94.5) [노영희의 출발 새아침]

□ 방송일시 : 2019년 12월 12일 (목요일)
□ 출연자 : 전우용 한국학중앙연구원 객원교수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노영희 변호사(이하 노영희): 뉴스를 각별한 시선으로 다시 들여다보는 시간입니다. 뉴스 탐구생활. 오늘은 바른 역사 시간이죠. 역사라는 프리즘을 통해 뉴스를 제대로 들여다보도록 하죠. 전우용 한국학중앙연구원 객원교수,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 전우용 한국학중앙연구원 객원교수(이하 전우용): 안녕하세요. 

◇ 노영희: 오늘은 어떤 역사이야기를 들려주십니까?

◆ 전우용: 며칠 전에 우리 이른바 현대 경제사에 큰 족적을 남겼던 전 김우중 대우 회장이 돌아가셨고요. 오늘이 발인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발인 날 망자의 일생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하는 것이 도리는 아닌 것 같아요. 하지만 또 그분의 삶과 관련해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부분들은 있을 것 같아서 개인의 이야기는 빼고. 우리 재벌경제 체제, 또는 재벌체제 이거 어떻게 만들어져 왔나. 전에도 한 번 이 프로그램에서 앞 시기, 이승만 대통령 시기의 재벌체제 형성 과정에 대해서는 말씀드린 적이 있어요. 그런데 시간이 없어서 본격적인 경제개발 시기의 재벌 성장사는 말씀을 못 드렸기 때문에 그와 관련해서 말씀드릴까 합니다.

◇ 노영희: 그렇습니다. 사실 대우가 엄청나게 큰 회사였고, 제가 학교 다닐 때 인문학적 소양을 지원하는 그런, 정말 재벌로서는 드문 행보를 보여서 우리가 신기하다, 이런 생각도 하긴 했는데요.

◆ 전우용: 서울역 옆에 대우재단 빌딩 만들어놓고 연구자들한테 연구 공간 지원하기도 하고, 학술활동 지원하기도 하고. 좀 드문 활동을 했었죠. 

◇ 노영희: 민음사라는 출판사도 지원하고 그랬죠. 그런데 그 회사가 갑자기 타격을 IMF 때 받으면서 급격하게 몰락하게 된 거란 말이죠.

◆ 전우용: 그것은 여러 이야기가 있는데 일단 대우그룹 하나만의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이 되어서, 그래서 재벌체제 자체를 말씀드릴까 싶었던 거예요. 일단 한 번 더 기억을 환기하는 의미에서 이야기를 하자면 우리가 벌(閥)이라는 글자를 쓰는데. 군벌, 재벌, 학벌 이런 식의 이야기를 쓰잖아요, 족벌. 일단 이 벌(閥) 자라고 하는 게 뭐냐면요. 글자가 문 문(門) 안에다가 정벌할 벌(伐) 자를 써놓은 글자에요. 이게 옛날에는, 우리가 상식 차원에서 말씀드리자면 우리가 흔히 부자라는 말 많이 쓰잖아요. 그런데 돈 아주 많은 사람 보고는 백만부자라고 안 하고 백만장자라고 해요. 부자와 장자의 차이는 뭘까요. 옛날에는 그렇게 생각들을 했어요. 부(富) 자에는 밭 전(田) 자가 들어가요. 땅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부자고요. 장자는 우리가 백만장자 하는 건 백만은 땅이 아니잖아요. 옛날에는 현물경제 시대였으니까 재물을 많이 창고에 쟁여놓은 사람이 장자였어요. 그러니까 땅 많이 가진 사람은 지주들인데 다른 방식으로 돈을 버는 방법, 부를 획득하는 방법 중의 하나가 전쟁이었거든요. 전쟁으로 전리품 노획해서 그것들을 잔뜩 자기 집안에 쌓아놓거나, 또는 전리품 자체는 아니더라도 전쟁에 승리했다고 해서 왕으로부터 포상금을 받아서 그걸 자기 집 창고에 잔뜩 쌓아놓은 사람들을 장자라고 했는데, 그런 집이 벌이에요. 원래 개념 자체로는 전쟁을 통해서 전리품을 많이 획득한 가문. 이걸 벌이라고 썼거든요.

◇ 노영희: 사실 부정적 이미지가 좀 있네요.

◆ 전우용: 원래 그렇게 좋은 의미로 쓰인 건 아니죠. 그래서 벌열, 문벌 이런 말들은 오랫동안 써왔어요. 그랬다가 재벌이란 말이 생긴 건 언제부터냐면 1920년대, 10년대 말부터 중국에서 신해혁명이 일어나고 남쪽에서는 공화정으로 나라를 통일해가는 과정에서, 북쪽에서는 원세개,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갑신정변 진압했던 원세개. 바로 위안스카이라고 불리는. 그 사람을 중심으로 해서 그 부하들이 각각 무력을 기반으로 각 지역에 할거하는, 각 지역을 지배하는 이런 사태가 벌어졌어요. 이걸 군벌이라고 불렀는데, 이 군벌의 정확한 당시 의미는 뭐냐면 군사력을 배경으로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집단이란 뜻이었어요. 핵심은 비정상성이에요. 군인이 군인의 할 일을 넘어서서 정치권력까지 장악하는 그런 방식이었거든요. 그러니까 일본에서 보니까 당시 일본 메이지 유신이 급격히 국가 주도로 산업화하는 과정에서 큰 부자들, 기업집단들이 생겨났고 이들이 기업경영에만 몰두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 정책을 어떻게 기업 경영에 유리한 방향으로 돌릴까. 해서 국가 경영에 간섭하는, 개입하는 이런 현상이 나타났거든요. 이걸 중국의 군인들이 벌열을 이루어서 국가 정치에 개입하는 것과 비슷하다 해서 이걸 일본에서 재벌, 자이바츠라고 부르기 시작했던 것이죠. 그러니까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듯이 돈 많은 사람을 재벌, 이렇게 이야기하는데 돈 많은 사람은 재벌이라고 부르는 건 아니고 그냥 부자 장자 불러주면 되고요. 재벌은 그 재벌을 배경으로 해서, 본래 의미대로라면 정치 전반에 굉장히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기업집단, 이 정도로 쓰는 게 원래 의미로 정확하죠. 그래서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지금 바로 앞에 부연설명이랄까요. 이야기가 길어졌습니다만,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초기에는 그야말로 정경유착. 재벌이 돈을 벌어서 정치세력한테 주면 정치세력이 그 돈을 받고 대신에 재벌들한테 유리한 정책이라기보다는 불법 또는 부당한 기업행위들에 대해서 눈감아주고 봐주고,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했다면, 박정희 정권 때, 특히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에 재벌정책은 훨씬 더 다음 단계, 재벌과 정치권력의 아주 강력한 유착단계로 나아가거든요. 이 당시에 경제성장 정책이 다들 아시겠지만 미국으로부터 직접 원조가 줄어들고 차관으로, 특히 일본으로부터 받은 청구권 자금, 베트남 파병, 서독에 광부 파견, 또 나중에 좀 더 뒤이어서는 중동 노동자 파견. 이런 것들을 통해서 외화를 벌어들이고 이 외화를 국가가 관리하면서 또 외국에서 차관도 들여오고. 이걸 기업들한테 경제성장 자금으로 또는 경제개발 기업 자금으로 빌려주잖아요. 사실 국내금리하고 국제금리가 워낙 차이가 컸기 때문에 빌려만 줘도 특혜였어요. 예를 들어서 외국에서 연리 5%의 차관을 들여와서 국내금리가 15%씩 되던 때인데 기업들한테 6~7% 정도로 빌려주면 가만히 받고만 있어도 1년에 10% 정도의 차익이 생기는 거잖아요. 게다가 수출하겠다고 해서 수출 신용장만 제출하면 바로 거기에 막대한 자금을 빌려주기도 했었고. 정부가 원하는 산업, 정부가 수출을 유도하려고 하는 산업, 이런 쪽에 투자만 하면 막대한 자금지원을 받아서 곧바로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고. 또 그렇게 해서 돈을 벌어들이면 더 많은 혜택을 받고. 나중에 대마불사라는 식의 바둑용어까지 들어오면서 어느 정도 규모가 되면 기업경영이 아무리 잘못해도 망하기 직전이 되더라도 정부가 망하도록 두지 않는다.

◇ 노영희: 그래서 재벌들한테 집행유예, 3·5법칙이 적용되고 그랬죠.

◆ 전우용: 법적으론 그랬고 사실 정치적으로는 상당히 많은 자금들이 이 사람들한테 집중적으로 지원이 됐고요. 대신에 잘 알다시피 이런 재벌기업들은 그렇게 저리로 융자받은 돈에 대한 반대급부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가만히 있어도 벌 수 있게 해줬으니까 그게 또 정치적 판단, 관료의 판단에 의한 거니까 관계나 정계 쪽에다가 뇌물이든, 지금으로서는 뇌물이라고 불러야겠죠. 당시에는 정치자금이란 명목으로. 자기 기업 노동자들에게는 그야말로 70년대 전태일이 분신할 정도로 아주 최저임금 선만 지급하면서 막대한 돈을 아주 물 쓰듯이 정치자금으로 굴리고. 이러면서 정부 정책과 기업들의 이른바 기업 전략, 기업 운영전략이 일치했고. 그렇게 해서 경제가 성장하는 만큼 재벌기업들이 성장하는 이런 시기를 거쳐 왔잖아요. 그러니까 우리가 60년대 중반 이후부터 80년대까지의 일반적으로 보자면 한국 경제의 고도성장기 또는 압축성장기 이렇게 설명하는데, 그건 동시에 세계적 차원에서는 또는 세계적 기준에서는 별로 그렇게 별 볼 일 없었던 기업들이 세계적 대기업으로 한꺼번에 함께 성장하는 과정이었죠. 그런데 이게 중점기업이라든가 국가의 중점 시책이라든가, 이런 것들이 사실 정책적으로 좀 변하잖아요. 60년대 초반 같은 경우에는 수출대체산업화 그래서 그동안 많이 수입해 왔던 섬유류라든가 식품류라든가, 이런 쪽을 주로 육성했다면 70년대 중반 이후로는 중화학 공업화라고 하는 모토를 내걸고 자동차, 조선, 전기전자, 석유화학, 건설하고요. 이런 쪽을 육성하고요. 그러다 보니까 한국 기업들이 다 이런 정부 정책하고 서로 짝짜꿍이 돼서 하다 보니까 재벌이라는 그룹이 갖는 중요한 특징 중의하나는, 외국인이 볼 때는 굉장히 신기하죠. 한국에 와서 제일 신기해하는 게, 저는 그렇게 느꼈어요. 많은 외국인들이 어떻게 같은 회사 이름인데 자동차도 만들고 아파트도 만들고 옷도 만들고 은행에도 투자하고 이러냐. 도대체 자기네 기준으로서는 코카콜라 아파트 같은 건 상상을 못하는데, 음료수를 만드는 브랜드인데, 음료수에서 보던 브랜드인데 그게 아파트에 써 있고 이런 식이잖아요.

◇ 노영희: 그렇죠. 예를 들어서 롯데칠성사이다가 롯데아파트도 만들고 이런 거죠.

◆ 전우용: 세상에 제철회사가 아파트 짓고 하는 것들이 나타나는 현상이니까. 심하게 이야기하면 현재 한국에서는 한두 개 재벌기업하고만 관계를 맺으면, 만약에 그런 마음을 먹고 한두 개 재벌기업의 브랜드만 쓰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두 개만 써도 사는 데 아무 지장 없을 거에요. 먹는 데서부터 자동차, 집, 의류까지. 그러니까 아주 좋게 말하면 사업다각화지만 그야말로 문어발식 확장들을 해왔던 것이고, 이 문어발식 확장이 국가와 결탁된 또는 국가와 연결된 금융자금과 결합해서 이뤄졌다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은 처음에 말씀하셨듯이 대우가 왜 그렇게 승승장구하면서 글로벌 기업이 되고 했느냐, 라는 질문하고, 왜 그렇게 갑작스럽게 몰락했냐고 하는 질문하고 답은 똑같을 수밖에 없어요. 어떤 분야의 특별한 전문성, 뛰어난 기술적 우위를 갖지 못한 채 국가 지원에 의해서 저리자금에 의존해서 각 방면으로 기업들을 확장하고, 사업영역을 확장하고. 한쪽에서 적자가 나면 흑자가 나는 쪽에서 빼다가 넘겨주고. 그런 것들이 불법이 되니까 그걸 좀 안 들키기 위해서 회계장부를 조작하고. 이런 일들이 반복되는데 이게 유독 대우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었다. 우리가 1997년 외환위기를 겪었을 때, 그때 이미 삼풍부터 해서 여러 기업들의 부실사태가 줄줄이 나오지 않았습니까. 외부로부터의 자금지원이 어떤 연유로 인해서 금융이 끊기거나 어려움을 겪게 되면 그동안 내부에 쌓여 있던 온갖 문제들이 한꺼번에 폭발하는 것이죠. 드러났던 것이고. 이건 재벌체제가 가졌던 근본적인 문제점이기 때문에 97년 외환위기 이후에 우리 정부가, 또는 우리 사회가 집중적인 관심 또는 우려했던 것도 그런 거였거든요. 어떻게 하면 이런 기업의 부당한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자가 하나였던 것이고, 기업들이 무리한 사업다각화, 또는 문어발식 확장으로 인해서 흑자가 나도 적자를 때우게 되는. 더 큰 문제는 이것이 주식회사 자체가 하나의 공적 기업이 돼버린 상태이기 때문에, 이 정도 규모는. 대우나 그 당시 외환위기 사태 당시에 기업체 연쇄도산, 연쇄부도의 문제는 기업 회장들, 우리가 자꾸 기업 회장들의 성공과 실패 이런 걸 이야기하는데 그 기업에 있었던 수 십만명의 직원들이 다 실업자가 되고 거리로 나앉고 그리고 지금의 자영업자로 몰락해서 오늘날에는 자영업 비율이 세계 최대의 수준이 되었고. 그래서 어떤 경제정책을 펴더라도 자영업의 위기라고 하는 문제를 극복할 수 없는 이런 문제를 낳았거든요. 그러니까 역사학자로서 생각을 해요. 세상에 공짜는 없다. 대가 없는 발전은 없다. 우리가 압축성장을 한 대가를 좀 아프게 치렀는데 그나마 그래도 좀 잘 극복해온 편이다 싶고요. 다만 문제는 아직도 이런 재벌체제가 가지고 있는 비정상성, 또는 위기를 스스로 초래하고 극복하지 못할 가능성 이런 것들이 강하게 남아있기 때문에, 크게 남아있기 때문에 재벌개혁이라고 하는 문제는 미룰 수 없는 주제가 아닐까. 이렇게 생각합니다.

◇ 노영희: 대우그룹의 성장과 몰락, 몰락이라고 하면 좀 그렇지만. 그게 결과적으로는 우리나라 경제 토대가 어떤 식으로 만들어져 있느냐와 다 밀접히 연결될 수밖에 없는 거네요.

◆ 전우용: 그렇죠. 그리고 그런 것이 단지 기업주나 기업주 가족의 무슨 운이냐 불운이냐, 이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 미치는 해악이 워낙 컸기 때문에. 일단 지금 오늘 김우중 전 회장 발인입니다만 이날 감회가 새로운 분들이 굉장히 많을 거예요. 당시 대우에 근무했던 분들이나, 하청기업에 있었던 분들이나. 그분들의 마음도 좀 헤아려보는 그런 날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 노영희: 그렇군요. 오늘 발인 날인데 의미 있는 말씀 감사합니다.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전우용: 감사합니다.

◇ 노영희: 지금까지 역사학자 전우용 교수와 함께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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