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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매춘’ 류석춘, 일본 극우파 주장과 똑같아”
작성자 : ytnradio
날짜 : 2019-09-23 11:48  | 조회 : 2570 
YTN라디오(FM 94.5) [노영희의 출발 새아침]

□ 방송일시 : 2019년 9월 23일 (월요일)
□ 출연자 : 강성현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교수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왜 매춘을 했느냐? 살기가 어려워서, 집이 어렵고 본인이 돈을 못 벌고. 지금 그렇다는 것에 동의하죠? 지금은 그런데 과거에는 안 그랬다라고 이야기하려고 하는 건데 그게 아니고 옛날에도 그랬다는 거예요”

◇ 노영희 변호사(이하 노영희): 믿기지가 않습니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에 대한 발언을 지금 한 건데요. 더 믿기지 않는 것은 이 발언이 대학 강단에서 나온 교수의 말이라는 겁니다. 지난 19일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3학년 전공 강의에서 류석춘 교수가 한 말인데요. 파장이 너무 큽니다. 연세대 동문들은 류 교수를 파면할 때까지 맞서겠다며 나섰고, 위안부 피해자 지원 단체는 법적 대응까지 언급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매우 불쾌하고 매우 힘든 발언에 대해서 어떻게 대처하는 게 좋을지 고민 중인데요. 잊을 만하면 또다시 등장해서 우리 국민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이런 주장, 전문가와 함께 팩트체크 좀 해 보겠습니다. 위안부 기록 발굴 연구자입니다. 국내 최고라고 하십니다. 강성현 성공회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 교수, 전화 연결되어 있습니다. 교수님, 안녕하세요.

◆ 강성현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교수(이하 강성현): 안녕하세요.

◇ 노영희: 지금 지난 전 서울대 교수였던 이영훈 씨의 말도 그렇고 이우연 씨의 말도 그렇고, 이번에 류석춘 교수의 말도 그렇고. 이런 내용을 아직까지도 팩트체크 해야 하는 현실이 씁쓸하기만 한데요. 학자의 주장이니 한 번 역사적인 차원에서 사실로 답해보겠습니다. 위안부라고 하는 말, 명칭에 대해서 세계 2차대전 당시 연합군 측의 자료에는 연합군 심문자와 피심문자 사이에 ‘위안부’ 통역관이라는 게 있었다고 하는데 이게 정확히 어떤 말입니까?

◆ 강성현: 미군과 그 포로인 일본군 사이에 심문을 하려면 통번역이 필요하잖아요. 그래서 위안부라는 단어, 일본어로 慰安婦(いあんふ)인데요. 이걸 영어로 써야 하는 거죠. 당시 미군은 이 용어를 prostitute라는 용어를 썼어요. 이 prostitute라는 용어를 두고 일본 극우파들이 이게 지금 매춘부로 미군이 위안부를 이해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니까 위안부는 성노예가 아니라 자발적 매춘부라는 거죠. 이런 주장은 사실 왜 미군이 이 용어를 쓰게 되었는지 역사적 이해가 전혀 무지한 이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노영희: 당시 그러면 통역관들이 왜 그런 식의 번역을 했었습니까?

◆ 강성현: 아까 말씀드렸듯이 prostitute는 포로심을 받았던 일본군이 일본어로 위안부라고 말하면 그걸 번역한 거죠. 그러니까 당시 통번역을 담당했던 병사들이 참조한 사전이 있는데요. 이건 군정보대언어학교에서 만든 사전인데 그 용례에 따라 그런 겁니다. 그러니까 prostitute라는 용어는 매춘부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에 위안부를 뜻하는 것이죠. 그러니까 44년부터 이런 상황에, 미군도 최전선에서 일본군을 포로로 잡았는데 그 옆에 민간인 여성들을 포로로 잡는 상황들이 빈번해졌던 것이고, 특히 여성들을 심문하다 보니까 위안부 제도라는 게 있구나. 그때부터 이제 prostitute라는 용어를 쓰지 않게 되고 comfort girl로 번역하기 시작했습니다.

◇ 노영희: 그런데 지금 외국에서는 사실 prostitute, 이걸 매춘부란 용어로 많이 번역하지 않나요?

◆ 강성현: 그건 일반 용례고요. 당시에 개념사적으로는 그렇다는 거죠. 그래서 이제는 prostitute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데, 심지어 1945년 초에 위안부를 가리켜서 prostitute라는 용어를 섰지만 괄호 해서 ‘(위안부)’라고 명기를 하고요. 그 이후에는 아예 이런 말을 쓰지 않고 지금은 따옴표를 붙여서 ‘comfort women’이라고 쓰고요. 이와 별도로 성노예제를 의미하는 ‘sexual slavery’라는 용어를 또 쓰기도 하죠.

◇ 노영희: 그렇군요. 지금 어쨌든 여러 가지 측면에서 들여다보면 한도 끝도 없을 것 같은데요. 이번에 문제가 된 류 교수 발언들을 보면 아직도 옛날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어요. 싱크를 한 번 들어보시죠. 

 "옛날에 그 생활 했다는 것을 마이크 달고 텔레비전에 나와서 떠들고 있잖아요. 일제 끝나고 나서 직후에는 쥐 죽은 듯이 살던 분들이에요"

◇ 노영희: 지금 이런 것을 위안부가 성노예가 아닌 매춘이었다는 근거로 지금 이 교수님이 이야기하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는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강의를 듣던 학생들이 위안부 피해자를 매춘부와 같이 보는 것이냔 질문에 대한 발언이었는데요. 어떻게 보십니까, 교수님?

◆ 강성현: 그러니까 류석춘 교수의 주장의 핵심이 그거죠. 위안부가 강제적 성노예가 아니라 먹고 살기 어려워서 돈을 벌기 위해서 자발적 매춘부가 되었다는 거잖아요. 그리고 또 본인은 그 녹취록을 보면 연구를 직접 한 적이 없다고 말하면서 이영훈 교수의 <반일종족주의>란 책의 내용을 말해요. 이 내용은 사실 일본 극우파들이 1990년대 중후반부터 했던 주장 그대로고요. 그리고 2012년 2차 아베 정부가 집권하면서부터 일본의 아베 정부가 공식 주장하는 내용입니다. 이런 내용에 대해서 이미 그때부터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연구해 왔던 일본과 한국의 연구자들이 일찍부터 많은 사료를 발굴하면서 실증적으로 충분히 반박했던 내용들이고요. 좀 내용을 보면요. 본인의 의사에 반해서 폭행이나 협박을 수단으로 여성을 지배하에 두는 게 약취라고 하거든요. 그리고 달콤한 거짓말, 감언이죠. 취업사기 등의 방식을 통해서 동원한 게 유괴라고 합니다. 그리고 해외이송을 목적으로 대가를 받고 여성의 몸을 사고 판 인신매매 사례들과 관련 자료들이 이미 굉장히 많아요. 학계 일반에 소개돼 있고요. 지금 말씀하시는 위안부로 동원된 여성들이 지금 그나마 돌아가시지 않고 생존해가지고 귀환했잖아요. 숨죽여 살았는데 이걸 매춘의 근거라고 주장하는 걸 보면 저는 류 교수가 위안부로 고통받았던 여성의 삶에 대해서 참 공감능력이, 인간으로서의 공감능력이 결여돼 있구나. 이렇게 생각하게 되고요. 생각을 해보세요. 일본군에 의해 강제로 동원돼서 위안부로 살았고, 전쟁 말기에 일본군에 의해 버려졌는데 다행히 또 혼자 스스로 살아남아서 돌아왔는데, 사실 한국 정부로부터 또 심지어는 가부장제 사회로부터도 이중 삼중으로 버려져 있는 상태였고. 

◇ 노영희: 그렇죠. 가족으로부터도 버려졌다고 하더라고요.

◆ 강성현: 예, 그리고 지금은 또 아베 정부가 계속 부정하는데 한국의 부정론자들도 이렇게 부정하고 있는 거거든요. 지금 3중 4중으로 계속 벌이고 있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고요. 이런 부분에 대해서 류석춘 교수가 너무 쉽게 말하고 있지 않나라고 생각합니다.

◇ 노영희: 그러니까 학자적 양심, 지식인 이런 식으로 포장을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건 너무, 이건 죄송합니다만 너무 무식한 발언 아닌가 생각이 드는데. 결국 이게 취업사기, 요즘 말로 인신매매하고 사실 같은 구조 아니겠습니까?

◆ 강성현: 네, 이게 바로 유괴라는 뜻이에요. 그런데 유괴라고 생각하지 않고 이걸 자발적으로 매춘 활동을 했다고 생각하는 거거든요.

◇ 노영희: 그러니까요. 참 이해가 안 가는데. 그런데 여기의 배후에는 재단법인 아시아연구기관 이런 것들도 있다는 게 무슨 말입니까?

◆ 강성현: 그것은 조금 검증을 해야 하는데요. 그러니까 한 학자나 연구자의 연구 펀드가 어디로부터 왔느냐인데. 일단 일본 쪽으로부터 온 모든 돈, 특히 기업이나 예를 들면 정부로부터 받은 모든 돈을 일본으로부터 왔다고 해서 그런 내용의 성격을 미리 제안해서 이런 것들만 연구하고 말하게 할 거다라는 가정이 있는 건데요. 이것은 신중하게 봐야 해요, 이 부분은.

◇ 노영희: 그렇군요. 이번에 문제가 된 교수의 발언들을 보면 아직도 옛날 개념에서 못 벗어나는 것 같은데. 일단 강의 듣던 학생들이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질문을 하니까 류 교수가 어떤 발언을 했는지, 한 번 직접 들어보겠습니다.

"그분들이 세월이 가서 정대위 꾸려서 국가적으로 너희가 피해자니까 같은 말 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의 기억을 새로 포맷하는 것이다."

◇ 노영희: 기억을 새롭게 포맷하는 것이다. 이런 식의 말들을 하고 있는 건데요. 걱정되는 게 바로 이게 강단에서 나왔다는 거거든요, 이런 발언이. 이게 학생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칩니까?

◆ 강성현: 좀 답답한데요. 정대협을 종북으로 낙인하는 발언을 한 거거든요. 일본 극우파들이 일찍부터 툭하면 정대협을 과격한 반일 내셔널리즘으로 할머니들을 선동하는 단체로 매도해 왔는데요. 지금 류석춘 교수는 한 술 더 떠서 정대협을 종북단체로 낙인하고 있어요. 그리고 종북 인사들이 마치 할머니들을 조종하는 것처럼 말하고 있고요. 지만원도 사실 얼마 전에 그런 인사 중의 한 명이었고 최종적으로 유죄 판결이 났어요. 지금 정대협에 대해서 말씀드리고 싶은데요. 김학순 할머니가 91년 8월에 공개적으로 스스로 위안부였다는 걸 밝힌 이후에 여러 할머니들이 뒤따라 밝혔는데요. 요즘 말로 하면 미투거든요. 그리고 한국 사회에서 때마침 그때 성폭력에 반대하는 여성운동이 한참 전개되고 있었어요. 그리고 그 여성운동이 위안부 할머니와 같이 하게 되었는데요. 이게 위드유거든요. 정대협은 위드유로 탄생한 단체입니다. 여성운동이 주도했고, 종교시민사회단체들이 연대한 협의체였고요. 수요시위도 사실, 정대협이 주도한 수요시위도 그런 맥락에서 미야자와 총리가 92년 1월인가 쯤에 방한했을 때 할머니들이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하면서 사과를 요구한 집회가 수요시위로 발전했고, 결국 미야자와 총리가 사죄를 했어요. 이런 내용들을 잘 모르시는 것 같아요.

◇ 노영희: 그러네요, 진짜. 어쨌든 문제는 이른바 식민지 근대화론에 기댄 이런 주장이 딱히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오늘 말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교수님. 고맙습니다.

◆ 강성현: 네.

◇ 노영희: 지금까지 강성현 성공회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 교수와 함께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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