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율의 뉴스 정면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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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행 : 신율 / PD: 신동진 / 작가: 강정연, 정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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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오 “나는 ‘유일’한 목격자가 아닙니다, 시인할 분들도 있고...”
작성자 : ytnradio
날짜 : 2019-03-07 21:04  | 조회 : 7839 
[YTN 라디오 ‘이동형의 뉴스 정면승부’]
■ 방송 : FM 94.5 (18:10~20:00)
■ 방송일 : 2019년 3월 7일 (목요일)
■ 대담 : 윤지오 (故 장자연 씨의 동료 배우)


윤지오 “나는 ‘유일’한 목격자가 아닙니다, 시인할 분들도 있고...”



◇ 앵커 이동형(이하 이동형)>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입니다. 2009년 3월 7일, 신인배우 장자연 씨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죠. “저는 나약하고 힘없는 신인배우입니다.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라고 시작되는 생전에 남긴 문건이 공개되면서 장자연 씨의 억울한 사연과 더불어 여러 의혹이 있었고요. 일명 ‘장자연 리스트’의 유일한 목격자로 불리는 고인의 동료 배우인 윤지오 씨가 최근 10년간의 기억을 담아 펴낸 책, 열세 번째 증언을 통해서 힘든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윤지오 씨를 스튜디오에 모시겠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 윤지오 (故 장자연 씨의 동료 배우)(이하 윤지오)> 네, 안녕하세요.

◇ 이동형> 오늘 장자연 씨가 세상을 떠난 지 딱 10년이 되는 날인데요. 당연히 복잡한 심경일 것 같습니다.

◆ 윤지오> 네, 심정을 한 마디로 정의하기가 힘들어요.

◇ 이동형> 장자연 씨하고 꽤 오래 교분을 맺었잖습니까? 특히 장자연 씨가 지오 씨에게 ‘애기야’라고 불렀다고 하던데, 그러면 윤지오 씨가 굉장히 어린 나이에 장자연 씨를 만났던 것 같아요?

◆ 윤지오> 갓 스물이요.

◇ 이동형> 가까이서 지켜본 장자연 씨는 어떤 분이었을까요?

◆ 윤지오> 사람에 맑다는 표현을 할 수 있다면, 맑다는 표현을 하고 싶고. 언니의 성격은 뭐가 힘들다고 내색을 한다든지, 누군가에 대한 불만을 토로한다든지, 누군가에 대한 험담을 하는 것을 한 번도 못 봤거든요. 살면서 그런 성격을 지닌 사람을 처음 봤어요. 제가 어느 정도 불만이 있을 때 그 사람이 자리에 없을 때 험담도 하고, 이런 게 나는 불만이다, 친구 사이에서도 그러는데, 언니는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어요.

◇ 이동형> 그러면 장자연 씨가 스스로 짊어졌던 고통, 이런 것을 윤지오 씨에게 털어놓거나 한 적도 없겠네요?

◆ 윤지오> 고민을 털어놨다고 한다면, 언니가 세상과 이별하기 전에 기획사를 나가고 싶다고 저에게 고민을 토로하면서 그때 언니가 심적으로 많이 힘이 들겠구나, 그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 이동형> 그게 드라마 촬영 현장에서 이야기했던 건가요?

◆ 윤지오> 네.

◇ 이동형> 화장실에서 만났다면서요? 그러면서 뭔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고, 조금 더 이야기를 하자고 했는데, 윤지오 씨가 다른 일정 때문에 그날 헤어졌는데, 그게 마지막 모습이었죠?

◆ 윤지오> 네.

◇ 이동형> 그때 조금 이야기를 들어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늘 가지고 있을 것 같아요.

◆ 윤지오> 네.

◇ 이동형> 윤지오 씨는 사실 빨리 소속사를 나오지 않았습니까? 그 소속사를 나온 이유는 뭐죠?

◆ 윤지오> 배우로서 누리는 합당한 권리라는 게 없었고, 배우로서 가야 할 오디션 자리가 열 차례도 안 됐거든요.

◇ 이동형> 오디션 기회를 많이 안 줬어요, 아예?

◆ 윤지오> 공식적인 오디션 자리는 없고, 항상 사적인 자리에만 가야만 해서 그런 부분이 합당하지 않다고 판단했고요. 

◇ 이동형> 사적인 자리라고 하면, 식사자리나 술자리, 이런 자리를 뜻하는 겁니까?

◆ 윤지오> 네.

◇ 이동형> 스무 살, 스물한 살, 이런 어린 나이였을 텐데, 당시 김 대표가 그런 자리에 부를 때 뭐라고 하면서 불렀어요?

◆ 윤지오> 초반에는 어떤 설명이 있었어요. 네가 드라마를 찍을 때, 내지는 영화를 찍을 때, 활동을 할 때 있어서 인사를 하면 너에게 좋은 사람을 내가 소개해주는 자리다. 초반에는 그랬고, 나중에는 그냥 시간과 날짜, 어디, 이렇게만 명시해서 통보 형식으로 보내줬고요.

◇ 이동형> 만일 안 가면 어떻게 돼요?

◆ 윤지오> 안 간 적이 딱 한 번 있었어요. 그때 명절이어서 아빠가 해외에 계시다 보니까 한국에 자주 안 들어오세요. 2, 3년에 한 번씩 봴 기회가 있는데, 그 당시 제 고향이 대전이다 보니 아빠가 대전에 계셨고, 스케줄을 매니저에게 이때 대전에 가야 한다, 스케줄이 있느냐고 말씀드렸더니 없으니 갔다 오라고 흔쾌히 허락해주셔서 대전에 내려가 있는 상황인데, 갑자기 저녁 무렵에 전화가 와서 여기 어딘데 와라, 하셔서 제가 매니저분한테 대전에 내려간다고 말씀드렸고, 지금 아빠랑 같이 있어서 제가 갈 수 없는 상황이다. 그때 처음으로 제가 못 간다고 얘기를 하게 된 거죠. 그때 다짜고짜 화도 내시고, 꼭 와야 하는데, 말이 안 되는데, 어떻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오라고 말씀하셨고, 제가 그때는 자동차도 없었고, 갈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명절에 티켓을 구하는 것 자체가 어렵거든요. 버스라든지, KTX라든지. 갈 수가 없다, 그랬더니 수차례 전화가 왔고, 문자가 왔는데, 제가 못 간다고 얘기만 하니까 굉장히 화를 내셨고, 그 이후로는 저에게 연락을 안 하셨어요. 그래서 그 화를 풀어드리기 위해서 제가 회사에 가서 반성문을 썼습니다.

◇ 이동형> 반성문을 썼어요? 장자연 씨 같은 경우에는 어머니 기일 날에도 부르면 가야 했다, 이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래서 질문을 드려봤어요.

◆ 윤지오> 네, 그러고도 남으실 분이어서. 놀랍지는 않아요.

◇ 이동형> 이런 식사 자리나 술자리에 혼자 불려 가신 적도 있지만, 장자연 씨와 같이 함께 간 적도 있으시죠?

◆ 윤지오> 혼자 불려간 적은 제 기억으로는 한 차례? 여자 드라마 작가님이셨고, 그때 낮에 잠깐. 제가 연기학원을 다니고 있었는데, 연기학원 수업 도중에 와서 인사해라 해서 잠깐 다녀왔던 기억이 있고, 그때 말고는 항상 언니와 함께였어요.

◇ 이동형> 장자연 씨와 함께?

◆ 윤지오> 네.

◇ 이동형> 장자연 씨가 우리 윤지오 씨에게 애기야, 너는 아직 발톱의 때만큼도 몰라,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했는데, 그때 당시에 이 말뜻이 뭔지 아셨어요?

◆ 윤지오> 몰랐어요.

◇ 이동형> 전혀 몰랐어요?

◆ 윤지오> 전혀 몰랐어요. 

◇ 이동형> 너는 아직 발톱의 때만큼도 몰라, 이 말뜻의 의미를 알게 된 것은 언제 알게 된 거예요?

◆ 윤지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 몇 년이 흐르고 나서, 이게 그런 말을 의미했구나. 또 제가 실질적으로 언니 나이가 돼 갈 무렵에 성상납 제안이라든지, 그런 것들이 이루어지면서 언니가 말했던 게 이런 부분이었구나, 그때 체감을 했습니다.

◇ 이동형> 그 소속사를 나오고 난 후에도 성상납 제의가 있었다는 거죠?

◆ 윤지오> 그때 당시에는, 지금도 굉장히 큰 거대 기획사 대표님이시고, 그분은 식사 자리만 하셨어요. 그리고 제가 사실은 이런 일이 있었다고 다 알려드렸고, 그 부분에 있어서 다 이해를 하시고, 정말 아빠처럼 살뜰히 챙겨주신다는 인상을 받아서 그 회사에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때 식사하는 와중에 갑자기 대뜸 강남으로 이사해라. 제가 사는 곳이 성수대교 건너편이었거든요. 그때는 돈을 조금씩 모아서 자가가 있었고. 강남으로 넘어가는 데 시간이 그렇게 걸리지 않으니, 미팅이 생기면 미리 알려만 주시면 제가 혼자라도 다 갈 수 있다, 스케줄 소화할 수 있다고 말씀드렸더니, 아휴 이 친구 말귀를 못 알아듣네, 이러시더라고요. 그래서 약간 이게 의미하는 바가 내가 생각하는 그 의미인 것 같아서 조금 더 얘기를 들어봤어요. 그랬더니 강남에 오는 집을 자기가 알아봐 주고, 구해주겠다, 너는 와서 지내면 되고, 나를 거기서 보면 된다고 하셔서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씀드렸더니 답답하다,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왜 빨리 갈 수 있는 길이 있는데, 너는 자꾸 돌아가려고만 하느냐, 왜 빨간불일 때 정지하고, 초록불일 때 건너려고 하느냐, 빨간불일 때 가도 된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고요. 너무 노골적으로 계속 표현하시길래 그분에 자녀분이 미국에서 생활하신다고 누누이 자랑하셨거든요. 그래서 자녀분이 어디 가서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아빠로서 심정이 어떠실까요, 라고 말씀드렸어요. 그랬더니 정말 크게 화를 내시면서 내 딸은 내 딸이고, 너는 너다. 네가 어떻게 감히 내 딸과 너를 비교하느냐, 네가 이 자리에 앉아서 이 이야기를 듣는 것은 네가 하고 싶은 게 연기자라면, 연기를 하고 싶어서 이런 이야기를 듣는 것이고, 이런 이야기를 듣는 게 당연하고, 너는 복 됐다, 내가 아무나 만나지 않는다, 나를 만나려고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고, 정말 유명한 사람이 나를 만나려고 하는지 너는 모르냐.

◇ 이동형> 그 일이 장자연 씨가 사망하고 난 이후에 있었던 일인가요?

◆ 윤지오> 네, 이후에 언니 나이에 얼추 비슷하게 접어들 무렵이었어요.

◇ 이동형> 그분이 지금도 활동하고 계세요?

◆ 윤지오> 지금도 버젓이.

◇ 이동형> 그러면 윤지오 씨가 생각할 때 아직 소위 말하는 연예계 바닥에 그런 일이 많이 있을 것이다?

◆ 윤지오> 네,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 이동형> 지금까지 열두 번의 증언을 했습니다. 검찰, 경찰 조사 통털어서. 이번에 열세 번째 재판 증언. 그래서 책 제목도 열세 번째 증언인 것 같은데요. 검경에서 열두 번이나 불러서 비슷한 질문, 비슷한 대답이 오갔을 텐데, 힘들지 않았어요?

◆ 윤지오> 힘들지는 않았어요. 그냥 질문해주시는 것에 대답을 하면 됐으니까 힘들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었어요. 그런데 조금 무섭다는 느낌을 받은 적은 몇 차례 있었고요.

◇ 이동형> 무섭다는 것은 어떤 뜻이죠?

◆ 윤지오> 미행이 따라붙기도 했었고, 제가 혼자서 한국에서 지내다 보니까 몰래 여러 차례 이사했어요. 지역도 바꾸고, 그런 부분이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집에서 보통 거의 있고, 친구들이 저를 보러 오거나 외출을 잘 안 했었죠. 

◇ 이동형> 그러면 그렇게 힘들고 겁나고 하면 어차피 참고인이니까 안 나가도 되는데, 끝까지 그렇게 부를 때마다 나가서 증언한 이유는 뭐죠?

◆ 윤지오> 불러주시니까 제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 때문에 저를 불러주신 것이라고 생각해서 나갔고, 안 나가야 하는 이유를 생각한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 이동형> 장자연 씨가 사망하고 나서 여러 가지 힘든 일을 겪으시고, 아픔도 겪으시고, 트라우마도 겪으시고, 그래서 병원 진료까지 받으시고 너무 힘들어서 외국에 나가셨다가 이번에 검찰이 장자연 사건 재조사하기 때문에 그 증언자로 다시 한국에 오신 건데요. 증언하러 오신 사건이 조 모 씨죠? 전 조선일보 기자. 이 사람 관련한 사건 때문에 오셔서 증언하셨습니다. 과거에 장자연 씨하고 윤지오 씨가 함께 있었던 술자리. 김 대표가 주체한 술자리죠? 

◆ 윤지오> 네.

◇ 이동형> 거기에 조 모 조선일보 기자가 같이 참석했고, 그 술자리에서 조 기자가 장자연 씨한테 성추행을 했고, 윤지오 씨가 그 장면을 목격했단 말이죠. 그것을 과거에 검찰 조사에서도 얘기했잖아요?

◆ 윤지오> 네.

◇ 이동형> 이번에 재판에서 말한 것처럼 그대로 얘기했잖아요?

◆ 윤지오> 네.

◇ 이동형> 그런데 그 사람이 불기소됐거든요?

◆ 윤지오> 네, 나는 진실을 말하고 있는데, 진실이 묵인되고, 그런 것을 보면서 그때 정말 강하게 무섭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 이동형> 목격한 그 날, 윤지오 씨 말고 다른 분들도 계셨잖아요. 그분들은 뭐라고 증언했나요? 우리도 봤다고 했나요?

◆ 윤지오> 단 한 번도 봤다는 말을 하시지 않고, 그런 일이 없었다, 못 봤다.

◇ 이동형> 그렇게 얘기했어요?

◆ 윤지오> 네.

◇ 이동형> 성추행을 저질렀다고 의심받는 조 기자의 와이프 되는 분이 검사다, 이것은 혹시 언제 알았어요?

◆ 윤지오> 추후에 알게 됐어요. 그때는 아, 이분은 처벌받지 않겠구나, 그런 확신을 갖게 됐던 것 같아요.

◇ 이동형> 재조사가 되면서 검찰 과거사 조사 위원회에서 재조사하게 됐죠. 이 조 기자의 재판이 진행됐고, 윤지오 씨가 이 재판에 다시 목격자로 증언대에 섰습니다. 그때 법정에서 조 기자를 만났습니까?

◆ 윤지오> 그때는 제가 비공개 재판을 신청했고, 승낙이 떨어져서. 외부인들은 아무도 들어오지 않은 상태였고, 제가 증언할 때만은 그분이 같은 공간에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고, 그것은 불가능하지만, 블라인드를 놓고 제가 보는 시선에는 그분이 없게 하겠다고 했고요.

◇ 이동형> 그래서 블라인드 상태에서 증언을 했어요?

◆ 윤지오> 네, 뒤쪽으로 제가 들어가기 전에 이동하시고, 판넬처럼 세워진 곳에서 앉아계시다고 얘기를 들었습니다.

◇ 이동형> 대질 심문 하셨다면서요?

◆ 윤지오> 저는 경찰 조사 받을 때는 바로 옆에서 대질 심문을 했었고요. 그때 비웃으셨거든요.

◇ 이동형> 비웃었다는 게 뭘까요? 지금 윤지오가 거짓말한다, 이런 겁니까?

◆ 윤지오> 제가 얘기를 하고 있으면 비웃으셨어요. 그래서 너무 당황해서 웃기시냐고, 뭐가 웃기시냐고, 그랬었어요.

◇ 이동형> 혹시 과거에 리스트를 직접 보셨으니까. 그 리스트에 있는 인물 중에 직접 본 기억이 나는 사람이 있습니까?

◆ 윤지오> 네, 있는 인물도 있고, 기억이 안 나는 인물도 당연히 있고요. 리스트에 거론되는 사람이 이제 A4 용지로 꽉 차고, 뒷장까지 넘어가는 상황이어서 굉장히 인물들이 많이 거론됐거든요.

◇ 이동형> 방금 말씀하신 것은 검경 조사 때 말씀하셨나요?

◆ 윤지오> 네, 다 말했어요.

◇ 이동형> 리스트 본 것하고, 내가 본 사람이 있다?

◆ 윤지오> 기억이 나는 부분은 다 사실 기반해서 말씀드렸었고, 사진을 가지고 오셨을 때도 분류할 때 확실하게 기억이 나는 사람. 어디서 본 적이 있고, 이런 것을 설명해드린 분이 있고, 약간 본 것 같기도 하고, 낯이 익기도 하고, 애매한 분은 따로 두고, 아예 정말 이 분은 만난 적이 없는 분들은 따로 빼놨고요.

◇ 이동형> 언론에서 가장 화제가 되고, 논란이 됐던 게 조선일보 일가인데, 그것은 기억납니까? 조선일보 방 씨 일가를 본 기억은?

◆ 윤지오> 제가 그분들에 대해서는 직접적으로 언급하기가 어려움이 있어요. 정말 솔직히 말해서. 왜인지는 잘 아실 거라고 생각이 들고요.

◇ 이동형> 검경 조사 때는 얘기하셨나요? 본 대로?

◆ 윤지오> 제가 본 것은 본 대로 다 얘기했습니다. 

◇ 이동형> 장자연 씨가 사망하고, 유 대표가 지오 씨한테 먼저 연락이 왔잖아요? 이런 문건이 있다.

◆ 윤지오> 솔직히 말해서 맨 처음 연락을 하셨을 때는 장례가 치러지고 나서 저에게 다짜고짜 전화해서 다짜고짜 욕설을 하시면서 미친 어쩌고 네가 뭔데, 욕을 퍼부어대시더라고요. 그래서 왜 저에게 욕을 하냐고 말씀드리니까 네가 뭔데 유가족에게 어떤 얘기를 했길래, 지금 유가족이 나하고 연락이 안 된다. 그래서 저는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말씀드렸고, 나중에는 오히려 저에게 도움을 요청하셨거든요. 유가족과 제가 대화하는 것을 아시고선 제가 중간에서 전달자 역할을 했었습니다.

◇ 이동형> 가교 역할을 했군요. 유족들이 직접 대표를 만나서 말하기 어려우니까?

◆ 윤지오> 말하기 어렵다기보다는 싫어하셨어요. 너무 싫어하셨어요.

◇ 이동형> 그래서 중간에서 말을 이어주는. 실제로 리스트도 다 봤는데, 결국은 소각하기로 결정이 됐고요.

◆ 윤지오> 네, 당일에 그렇게 유가족분들이 결정하셨어요.

◇ 이동형> 윤지오 씨 책에도 보면, 장자연 문건을 보고 언론에 알려진 대로 장자연의 심경 고백이나 유서라기보다는 내용증명서 같다고 했단 말이죠? 본인이 보고 느낀 것을 적었을 텐데, 왜 내용증명서 같다는 표현을 쓰셨을까요?

◆ 윤지오> 유서 형태로 기재된 문서가 아니고 문건이라고 표현하는 게 더 정확하다고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기재했고, 왜냐하면 그 문건을 작성한 날짜, 그리고 주민등록번호, 그리고 지장이 찍혀있습니다, 마지막에. 유서에는 누가 주민등록번호를 적고, 지장을 찍고, 그것은 상식적으로 저는 아직까지 살면서 그런 유서는 본 적이 없어서요.

◇ 이동형> 그래서 그런 느낌을 받았다?

◆ 윤지오> 네. 

◇ 이동형> 이렇게 볼 수도 있겠네요. 장자연 씨가 누군가와 싸우기 위해서 만들었다. 누구와 싸우기 위해서 만들었다고 보세요?

◆ 윤지오> 저는 김 대표라고 생각해요.

◇ 이동형> 계속 김 대표한테 부당한 대우를 받았으니까.

◆ 윤지오> 네

◇ 이동형> 제가 듣기로는 계약금을 300만 원 받았다고 들었어요. 장자연 씨도 그렇고, 윤지오 씨도 그렇고, 그랬습니까? 그 회사와 계약할 때?

◆ 윤지오> 네.

◇ 이동형> 그런데 위약금이 1억 원이라고요?

◆ 윤지오> 네. 

◇ 이동형> 누가 봐도 이상한 계약서잖아요?

◆ 윤지오> 네. 그 당시에는 기획사를 나오려고 계약서를 쓰는 게 아니라 기획사에 있으면서 내가 누릴 수 있는, 연기자로서 저는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나오려고 검토하는 게 아니다 보니 나올 거라는 생각조차 안 해서 1억 원이든, 10억 원이든, 100억 원이든, 그것은 저에게는 그때 당시에는 상관이 없어서 뭔가 본인에게 도움이 되고, 이 사람을 옥좨서 나가지 못하게 할 수 있는 장치, 수단이라고 생각됩니다.

◇ 이동형> 언론에 나왔던 소속사 건물에 있는 VIP실. 가본 적 있습니까?

◆ 윤지오> VIP실이라고 표현을 많이 하시는데, 제가 갔을 때는 김 대표의 생일이었고, 사무실 바로 위에 위치해있습니다. 그리고 굉장히 넓은 공간에 덩그러니 소파가 거실에 있고, 그 바깥 테라스에서 출장 요리사를 불러서 김 대표가 초대한 사람들과 식사를 하고, 와인을 드시는 분들은 가볍게 와인을 드셨고요.

◇ 이동형> 그러면 한 번 가보셨군요?

◆ 윤지오> 네. 

◇ 이동형> 장자연 씨 사망 이후에 오디션 같은 것 볼 때도 장자연 동료 배우, 장자연 친구라는 이유로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고 하던데, 어떤 일이 있었어요?

◆ 윤지오> 네가 걔구나, 말씀하시고, 오디션장에 제가 갔던 것은 당시에 사극이었고, 오디션을 볼 때 대본을 나눠주실 적에 연기를 해야 하는 것과 전혀 상관없는 술집 작부 역할을 해보라고 하셨어요. 그런 것도 굉장히 불쾌했었고, 캐스팅과 전혀 상관없고, 저도 시나리오나 이런 것을 다 봤는데. 황당하기도 했고, 불쾌했었고, 노골적으로 너는 이쪽 일하기 힘들다고 말씀하신 적도 있었고, 언제까지 이러고 다닐 거냐,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도 있었고, 정말 노파심에 우려의 말씀을...

◇ 이동형> 그러면 다 알고 있었네요?

◆ 윤지오> 그렇죠. 공공연하게. 처음부터 다 알았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이쪽 바닥이 워낙 좁다 보니까. 또 제가 이름을 예명을 사용하면서는 윤지오라는 이름을 계속 사용했거든요. 이름을 바꾼 적도 없고.

◇ 이동형> 열두 번의 증언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윤 대표, 김 대표 두 사람만 아주 약한 처벌을 받았고, 나머지 권력자들은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거든요? 장자연 씨는 사망했는데. 그런 것을 보고 캐나다로 떠나셨는데, 한국에서 다시 이 사건을 조사한다고 했을 때 어떤 생각이 드셨어요?

◆ 윤지오> 실감이 잘 안 났던 것 같아요. 예상을 전혀 못 했고요. 감사했어요. 그런 마음이 컸고, 다행이라는 마음도 들었고, 어쩌면, 어쩌면 처벌받을 수도 있겠다, 그런 희망을 가지게 된 것 같아요.

◇ 이동형> 언론에서 윤지오 씨에게 유일한 목격자, 이런 이야기를 하던데, 윤지오 씨 말고 혹시 다른 사람 없을까요? 이 사건의 증언자, 목격자가?

◆ 윤지오> 저는 제가 유일하지 않다고 생각하고요. 유일한 목격자라고 말씀해주시는 부분에 대해서는 유일하게 제가 진술을 공개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현 상태로서는 그런 수식어가 들어갔다고 생각하고.

◇ 이동형> 또 있다?

◆ 윤지오> 분명히 있고, 제가 아는 분도 있으시고. 그래서 공개적이 아니더라도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제가 했던 진술을 힘 있게. 저보다 많은 부분을 알고, 상당 부분을 알고 계신 분도 있다고 생각이 들거든요.

◇ 이동형> 이분들이 용기를 냈으면 좋겠네요.

◆ 윤지오> 용기라는 표현을 해야 하는 분도 있고, 오히려 시인을 해야 하는 분들도 있고.

◇ 이동형>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십니까?

◆ 윤지오> 제가 감히 뭐라고 인터뷰를 하는 와중에도 진짜 많은 생각이 들거든요. 이렇게 내가 하는 것이 정말 언니를 위한 일이 맞나, 또 괜히 언니가 이미 세상에 없는데, 계속해서 이런 뉴스가 생성되고, 어떻게 보면, 고인이 편히 잠들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 반복되다 보니. 언니가 떠난 지 벌써 10주기가 됐는데, 많은 분들이 아직도 생생히 그 부분에 대해서 기억하시고, 분노를 같이 해주시는 부분을 보면서 앞으로 이런 피해 사례가 어느 곳에서도 없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이동형> 윤지오 씨는 배우의 꿈은 접은 겁니까? 어떻게 되는 겁니까?

◆ 윤지오> 미련이 많이 남죠. 정말 솔직히 말해서 미련이 많이 남지만, 거의 불가능하다고 저는 생각을 계속 몇 년째 하고 있어요.

◇ 이동형> 캐나다에서는 모델 생활하시잖아요?

◆ 윤지오> 네.

◇ 이동형> 한국에서 활동은 못 하겠다?

◆ 윤지오> 하고는 싶지만, 아직 바뀌지도 않았고, 사회 전반적으로. 또 만약에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이나 부분이 있더라도 단발성으로, 화제성으로 그분들에게 악용될 것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지금 이제 캐나다에서 막 자리 잡고 잘 지내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지금 하는 일에도 굉장히 만족하고 있고요. 감사드리면서 하루하루 감사하게, 행복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 이동형> 언제 캐나다로 돌아가세요?

◆ 윤지오> 정해졌지만, 말씀을 안 드리겠습니다.

◇ 이동형> 오늘 어렵게 시간 내주셔서 감사하고요.

◆ 윤지오> 네, 너무 감사합니다.

◇ 이동형> 지금까지 故 장자연 씨 10주기에 만나 본 윤지오 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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