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라디오생활
  • 방송시간 : [월~금] 10:15~11:30
  • 진행: 박귀빈 / PD: 이은지 / 작가: 김은진

인터뷰 전문

"6천년 전에 부친 편지"세계유산 앞둔 '반구대암각화,' 비밀 메시지는?
작성자 : ytnradio
날짜 : 2025-06-09 15:16  | 조회 : 196 
YTN라디오(FM 94.5) [YTN 뉴스FM 슬기로운 라디오생활]

□ 방송일시 : 2025년 6월 9일 (월)
□ 진행 : 박귀빈 아나운서
□ 출연자 : 울산대 전호태 명예교수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를 바랍니다.

◆박귀빈 아나운서(이하 박귀빈): 오래전 한반도를 살다간 선사시대 사람들의 흔적이 담긴 울산 반구천 암각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될 전망입니다. 암각화는 바위나 동굴 벽면 등에 새기거나 그린 그림을 뜻하는데요. 반구천 반구대 암각화는 인류사를 다시 쓰게 한 바위 그림이라고 합니다. 국보가 된 암각화 바위에 담긴 그림으로 보는 우리 역사 문화 선사 미술 전문가이자 울산대 반구대 암각화 유적 보존 연구소 설립해서 연구를 이어오신 전문가 분이십니다. 울산대 전호태 명예교수 스튜디오에 모셨습니다. 교수님 어서 오세요.

◇울산대 전호태 명예교수 (이하 전호태): 네 안녕하세요.

◆박귀빈: 너무나 반가운 소식이라는 거는 정말 알겠고 너무 기분이 좋은데 사실은 이 암각화라는 거에 대해서 저를 비롯해서 많은 분들이 잘 모르실 것 같아서요. 한번 개념 좀 설명해 주시겠어요?

◇전호태: 예 암각화라고 국내에 알려져 있는데 보통 우리말로 바꾸면 바위 그림이죠. 근데 세계적으로는 암체화 암각화 두 종류가 있습니다. 바위에다가 채색을 해서 어떤 형상을 드러내는 것을 암체화라고 하고 특정한 도구로 돌이나 기타 도구로 새겨서 형상을 드러내는 것을 암각화라고 그러는데 한국의 경우는 여러 가지 환경 조건상 암체화는 발견된 적이 없고 암각화만 발견되고 있습니다.

◆박귀빈: 이게 어떤 유적입니까?

◇전호태: 기본적으로는 바위를 캔버스로 삼아서 선사시대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 신앙 세계관 이런 것들을 보일 수 있게 남긴 거죠. 그래서 많이 알려진 암체화로는 후기 구석기 시대 유럽의 라스코나 알타미라 동굴에 있는 들소 그림이나 이런 것들이 있고요. 실제로는 암각화나 암체화는 전 세계적으로 수백만 점 발견됐습니다. 

◆박귀빈: 보통 어떤 그림들이 그려져 있나요?

◇전호태: 후기 구석기 시대에는 주로 사냥 대상이 되는 들소나 맘모스나 아니면 사람들이 두려워하던 사자나 이런 짐승들이 많이 새겨져 있고요. 국내에서는 지금 반구천 암각화처럼 사냥 대상이 된 짐승들 중에 고래 같은 것들도 새겨진 사례가 있는데 이 고래의 그림은 전 세계적으로 사례가 드뭅니다.

◆박귀빈: 그런데 이번에 울산 반구천 암각화에 고래 그림이 있는 거군요. 청취자 여러분 YTN 라디오 유튜브 채널로 들어오시면 지금 보이는 라디오로 이 방송을 듣고 보실 수 있는데 저희가 암각화 유적 사진을 지금 화면에 띄워놓고 있으니까요. 교수님 말씀 들으시면서 그림 한번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지금 고래 때 그림이 나가고 있거든요. 한번 봐주시고요. 굉장히 선명하게 새겨져 있네요.

◇전호태: 네 매우 선명하죠.

◆박귀빈: 당시에 어떤 도구로 이거를 새겼을까요?

◇전호태: 저 자체는 저 바위가 그렇게 단단한 바위가 아니라서 석영 정도의 굳기가 있는 돌로 새기면 저런 그림이 나옵니다.

◆박귀빈: 지금 저 그림이 시대가 선사시대라고 돼 있는데 지금 어느 시대로 추정이 되는 건가요?

◇전호태: 지금 국내외에서 추정하기로는 신석기 시대 후기 정도가 아닐까 그렇게 추정을 하고 있습니다.

◆박귀빈: 신석기 후기라고 하면 저희가 역사책에서 배우는 시대가 구석기부터 배우는 것 같거든요. 그럼 구석기 그다음에 신석기잖아요. 몇 년 전입니까?

◇전호태: 한 6천 년 전 정도 그 정도 될 겁니다.

◆박귀빈: 6천 년 전에 한반도에 살던 당시 신석기 후기에 살던 사람들이 바위에 그림을 새겨 넣은 거예요. 여러분 그게 지금 2025년에 대한민국 울산에서 우리가 지금 볼 수 있는 겁니다. 바위에 당시에 사람들이 그림을 왜 그렸을까요?

◇전호태: 일반적으로는 바위 신앙과 관련이 있다고 보고 있는데요. 우리 인간의 역사에서 바위를 주로 생활과 관련해서 깊게 가지고 있거나 다듬거나 사용하거나 이런 기관이 인간 역사에서 90%가 넘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바위와 깊은 관련을 가지게 되고 바위신앙이라는 것이 몸에 배게 되는데 사실은 지금도 절경 바위로 된 절벽이라든가 봉우리라든가 절경 앞에 가면 저절로 이렇게 마음을 가다듬고 기도하는 자세를 가지는 그런 어른들이 많거든요. 그거는 내재화된 바위 신앙의 표현이다 이렇게 우리가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박귀빈: 내재된 바위 신앙의 표현으로 돌에 그림을 새겨 넣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당시 사람들은 바위에 그림을 새기면서 어떤 마음을 담았을까요?

◇전호태: 그러니까 바위 신앙이라는 것 자체가 바위에 어떤 신성을 부여하고 바위에 뭔가를 새기거나 바위 앞에서 기도를 하면서 신과 만나는 거죠. 그러니까 기도의 현장이 그림으로 남은 거라고 할 수 있어요

◆박귀빈: 그러면 그 기도의 내용은 풍요롭게 해주세요. 아까 이제 고래 그림이 있다고 했는데 고래 많이 잡게 해주세요. 뭐 이런 마음이 담긴 걸까요?

◇전호태: 예 그런데 뭐 많이 잡게 해 주세요는 별로 없고 사실은 우리가 선사시대 사람들을 이해할 때는 흔히 풍요다산 이런 얘기를 하지만 실제로 사냥은 딱 필요한 정도에 한정합니다. 그런데 사냥 자체가 굉장히 어려운 거기 때문에 사냥의 성공을 기원할 수밖에 없고 특히 고래같이 마을 하나 정도 크기 100톤짜리들도 있거든요. 150톤짜리 이런 고래를 잡는다는 거는 신의 도움이 없으면 불가능한 거죠. 그런 면에서는 아주 진지한 기도의 현장이 고래 그림으로 남았다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습니다.

◆박귀빈: 그러니까 고래 많이 잡게 해 주세요는 이게 말이 안 되는군요. 한 마리가 엄청 크기 때문에 그런데 저는 궁금한 것이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희가 어릴 때도 사실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그냥 스케치북 이런 데 그림 그리지 않습니까? 그냥 막 그리잖아요. 어렸을 때부터 그럼 당시 사람들이 그런 기도의 의미도 물론 담겼겠지만 그냥 당시에 사람들이 그냥 자기 일상생활을 그린 것도 혹시 있을까요?

◇전호태: 일상생활을 그냥 지금 종이 같은 데 그리는 거면 몰라도 바위에 새기는 거는 사실 힘든 작업이거든요. 아무나 바위에 새길 수가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 중에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바위의 그림을 잘 새겨서 형상화시킬 수 있느냐 이건 다른 문제죠. 그러니까 이건 기본적으로 매우 진지한 바위와의 관계 혹은 신과의 관계 속에서 남겨진 것이다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박귀빈: 바위 신앙과 연결하여 기도의 의미가 담겨 있었을 것이며 그리고 고래 그림이 있다는 건 아까 세계적으로도 고래 그림은 별로 없다고 하셨잖아요.

◇전호태: 반구대에는 고래 그림이 고래만 507마리가 있는데요. 전 세계적으로는 고래 그림이 새겨진 곳이 몇 군데 없습니다. 유럽의 북해의 노르웨이 북쪽 해안 지역 알타라고 하는 그런 곳이라든가 러시아 쪽에 백해 그러니까 스칸디나비아 반도와 러시아 사이에 작은 바다가 있는데 그걸 백해라고 그러거든요. 그쪽 지역에 하나 그다음에 호주 오스트리아의 남태평양의 오스트리아 해안 지역에 한 군데 이렇게 세 군데 정도 있고 동아시아 전체를 따지면 아시아 전체죠. 딱 울산 반구대에만 있습니다.

◆박귀빈: 고래의 그림이 그렇게 많이 새겨져 있다는 건 어떤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전호태: 고래 그림이 반구대를 포함해서 한 네 군데 정도 있는 것인데 고래와의 특별한 관계를 맺은 즉 해양 동물들을 사냥하는 것으로 삶을 꾸려가던 사람들이 그래도 얼마간 매우 특수한 경우에 해당되지만 있었고 그것이 울산에서도 행해졌다라는 걸 우리가 알 수 있는 거죠.

◆박귀빈: 그러니까 당시에 6천 년 전에 울산 근처에서 고래잡이가 있었다라는 건 일단 의미하는..

◇전호태: 구체적으로 확인이 되는 것이죠.

◆박귀빈: 근데 너무 궁금합니다. 그 당시에 그렇게 덩치 큰 고래를 어떻게 잡았을까도 굉장히 궁금해지는데요.

◇전호태: 울산 반구대 암각화가 특별히 세계 선사미술학계에서 주목받는 이유가 다른 곳에 새겨진 고래의 그림은 사냥 장면이 없어요. 사냥을 하는 과정 즉 고래를 구체적으로 관찰하고 고래의 습성을 이해하고 사냥을 하고 그다음에 운반을 하고 해체를 하고 이런 과정 자체가 다른 고래의 암각화에는 보이지 않는데 울산 반구대에는 보입니다. 그래서 정말 사냥했냐라고 사람들이 질문을 하게 되고 거기에 대해서 처음에는 했을 것이다 했는데 증거가 나왔어요. 그래서 울산의 해안 지역에서 신석기 유적에서 고래뼈에 작살 촉이 박혔다가 부러진 상태로 나온 것도 있고 그 외에 울산과 부산 동래 이런 곳에서 고래의 귓뼈가 많이 나왔습니다. 고래의 귓뼈는 고래의 종류와 나이와 뭐 여러 가지 고래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는 것인데 그런 것이 많이 나왔다. 이것은 고래고기를 먹었다는 뜻이거든요.

◆박귀빈: 그런 것들이 발견된 거를 다 종합해 보면 실제 당시에 고래잡이를 했다라는 게 거의 증명이 되는 셈이네요. 이번에 암각화도 그렇고요. 이게 가장 먼저 최초로 언제 발견이 됐나요?

◇전호태: 발견되기는 1971년에 발견됐고요. 크리스마스의 선물이다 뭐 이런 얘기도 있는데 

◆박귀빈: 크리스마스에 발견됐습니까?

◇전호태: 예 그래서 1970년에 반구천의 천전리 각석이라는 것이 먼저 발견됐고요. 그다음에 한 해 지나서 반구대 암각화가 발견됐는데 첫해에 발견 못 된 이유가 천전리 각석은 반구천 옛날엔 대곡촌이라고 불렀는데 반구천 곁에 그냥 바위에서 발견된 것이고 반구대 암각화는 물의 3분의 2 이상이 잠긴 상태여서 배를 타고 가야 되거든요. 그래서 그때만 해도 거기에 대한 정보가 불확실해서 찾아가지는 않았던 거죠. 그런데 그다음 해에 배를 타고 접근해서 확인을 했던 겁니다.

◆박귀빈: 그러니까 발견된 것도 지금으로 따져도 굉장히 오래전에 발견이 된 건데요. 지금 암각화 상태는 어떤가요?

◇전호태: 상태가 그렇게 안정적이지는 않죠. 왜냐하면 이제 원래는 물에 안 잠겼었는데 하류에 사연댐이라는 댐이 만들어졌어요. 1965년경에 그 공업용수를 보급하기 위한 건데 그러면서 이제 비가 많이 내렸을 때 이제 사연댐의 수위가 올라오면서 반구대 암각화가 통째로 완전히 물에 잠기는 그런 사례도 생기고요. 이제 비가 많이 올 때는 잠겼다가 겨울의 갈수기에는 노출됐다가 이러면서 암질이 이제 많이 약화됐죠.

◆박귀빈: 그럼 점점 그림이 희미해지겠네요?

◇전호태: 실제로도 많이 희미해졌습니다. 얇아졌죠 암질이 얇아졌습니다.

◆박귀빈: 그렇겠네요. 왜냐하면 여러분들 그림 보시면 아시겠지만 그냥 바위 절벽이에요. 바위 절벽 면에 이게 새겨진 거다 보니까 그렇게 됐고 그런데 이번에 세계유산으로 등재가 될 전망이지 않습니까? 굉장히 좀 늦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요. 발견된 당시

◇전호태: 이 보존 문제 때문에 사실은 세계유산은 일반적으로 정해지는 등재된 세계유산이 있고 그다음에 멸실 위험 유산이 있어요. 그래서 그 경계선상의 유적이 있었기 때문에 보존 문제를 둘러싼 논쟁이 지난 한 20년 넘게 계속 진행이 됐습니다. 그래서 근래에 와서는 이 하류 사연댐의 수문을 만들어서 수위를 조절하는 안이 사실상 확정돼서 조만간 수문이 설치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박귀빈: 청취자 여러분 지금 보이는 라디오 YTN 라디오 유튜브 채널로 오시면 머리를 두 손으로 이렇게 감싼 듯한 사람 형상 같은 새겨진 그림이 지금 나가고 있어요. 이것도 당시에 어떤 그 사람의 모습을 표현한 걸 텐데 뭐라고 보세요? 이거 왜 머리를 두 손으로 감싸고 있죠?

◇전호태: 여러 가지 의견이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수평선 넘어 고래가 나타날 때가 됐는데라고 하면서 고래를 기다리는 혹은 신께 기도하면서 고래가 여기로 오게 해주세요 실제 사냥은 울산만 안에서 이루어졌으니까 그래서 고래와 뭔가 혹은 고래를 보내는 신과 뭔가 소통하는 사람의 모습이 저게 아닌가 그런 거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박귀빈: 머리를 감쌌다기보다 교수님 말씀 들으니까 눈을 이렇게 멀리 보려고 이렇게 눈을 감싼 게 아닌가 이런 생각도 살짝 드네요.

◇전호태: 아니면 입주 위로 손을 올려가지고 소리를 지를수도 있고요.

◆박귀빈: 이번에 이 암각화 반구대 암각화가 세계유산으로 등재된다는 건 어떤 의미가 있는 건가요?

◇전호태: 이전부터 반구대 암각화는 세계 선사미술학계에서 굉장히 주목받은 유적입니다. 신석기 시대의 회화 중에서 암각화 중에서 특별한 의미 바로 고래 때문에도 그래서 세계 선사 미술과 관련한 학술지에는 몇 차례 소개가 됐어요. 다만 국내에서 평가가 새롭게 된 것이고 어떤 의미에서는 매우 특별한 유적을 앞으로 한국이 혹은 지역 주민이 정책 당국이 어떻게 관리 보호하고 또 연구를 심화시키느냐 그게 앞으로 남은 과제라고 할 수 있겠죠

◆박귀빈: 네 세계에서도 굉장히 주목하고 있나 봐요. 그런 의미에서인가요? 고래 그림도 많이 없고 지금 세계적으로 발견된 것 중에?

◇전호태: 네 사실은 암각화는 굉장히 많은데 이렇게 특정한 화면에 바위 화면이 매우 특별하거든요. 약 3m, 10m 정도 크기의 화면에 집중적으로 고래 외에도 사실은 고래 이전에 동물을 사냥하던 시대 고래를 사냥하던 시대 이후에 맹수들이 등장하는 시대 이런 식으로 시대를 나눌 수 있는 작품이 350점 넘게 거기 새겨져 있거든요. 제가 한 10년마다 한 번씩 세 차례 정도 실적 보고서를 만들어 냈는데 이번에 이제 세계유산 등재는 아마 그런 자료들이 잘 활용됐을 거라 생각합니다.

◆박귀빈: 반구대 암각화, 반구천 암각화 이렇게도 표현이 되더라고요. 이게 무슨 의미입니까?

◇전호태: 그게 이제 최근까지는 대곡천이라고 불렀어요. 20세기에 들어와서는 대곡천으로 불렸는데 원래 조선시대에 조선시대 지도에는 거기를 반구천이라고 불렀어요. 그래서 세계유산 등재 신청을 하면서 조선시대의 명칭을 되찾자라고 해서 반구천의 암각화라고 하고 그 안에 반구대 암각화와 천전리 각석 명문 암각화까지 같이 포함시킨 거죠.

◆박귀빈: 그렇군요. 선사미술 전문가시고 또 울산대 반구대 암각화 유적 보존 연구소를 직접 설립하신 분입니다. 교수님 앞서도 말씀하셨지만 지금도 많이 희미해졌고 바위도 얇아졌다고 하셨는데 앞으로 이 유산을 지켜 나가기 위해서 국민들께 혹은 또 유산을 관리해야 되는 이 정부 부처도 있을 겁니다. 끝으로 한 말씀 당부의 말씀 부탁드려요.

◇전호태: 사실은 세계 유산으로 등재된 이후에는 보통 지역 주민이 관리와 보호에 앞장서도록 정책 당국에서 협력을 구하고 실제 그와 관련해서 적극적인 활동을 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경우도 만일 반구천의 암각화가 7월달에 제대로 세계유산으로 등재가 되면 문화유산청과 반구대 일원의 주민들 사이에 협력해서 전체적으로 유적을 관리 보호하고 또 때로는 홍보가 필요할 때 홍보도 하고 그런 작업들을 진행해야 될 거로 보이고요. 세계에 있는 많은 암각화와 비교 연구해서 암각화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키는 작업을 역시 적극적으로 정책 당국과 울산 광역시와 이렇게 협력해서 센터도 설립하고 연구도 진행해야 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박귀빈: 알겠습니다. 국민 여러분 많은 관심 가져주시면 좋겠네요. 지금까지 울산대 전호태 명예교수였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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