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 : YTN 라디오 FM 94.5 (20:20~21:00)
■ 날짜 : 2021년 5월 1일 (일요일)
■ 진행 : 이성규 교수
■ 대담 : 이재용 아나운서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잠시만요] "방송생활 30년 째, 제가 멈추지 않고 마이크 앞에 서는 이유"
◇ 이성규 교수(이하 이성규)> 인생을 살아가면서 누군가에게 존재만으로도 신뢰감을 심어줄 수 있다는 건 참으로 행복한 일이 아닐까 싶은데요. 오늘의 주인공이 바로 그런 분입니다. 30년째 방송으로 세상과 소통하고 계신 이재용 아나운서 모시고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 이재용 아나운서(이하 이재용)> 반갑습니다. 초대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 이성규> 이게 원래 첫 번째 질문이 이 코너에 자기소개를 부탁합니다인데 이 소개가 필요 없는 분 모처럼 모셨습니다. 그동안 잘 계셨죠.
◆ 이재용> 저 YTN의 첫 출연이에요.
◇ 이성규> 첫 출연이에요. 이렇게 다 피디가 눈을 번쩍 뜨고 쳐다보는데요.
◆ 이재용> 저는 지금 소개해 주셨는데 30년 차, 지금 프리랜서 아나운서로 활동하고 있는 이재용입니다. 반갑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 이성규> 주로 아침에 우리가 용안이라고 해야 되는지 늘 뵙고 출근하고 그랬는데, 오늘은 이제 목소리로 청취자 여러분들과 소통하시겠습니다. 2018년이죠. 그때 MBC 퇴사하시고 그때부터는 이제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계신데요. 요즘도 많이 바쁘시죠?
◆ 이재용> 요즘에 이제 아침 방송 여전히 뭐 하던 정보 프로그램 하고 있고요. 오후에 5시부터는 경제 방송이 있어요. 그래서 하루에 아침, 오후 이렇게 해서 생방송 진행하고 있습니다.
◇ 이성규> 생방송이 참 그 긴장도 되고 그러면서 재미도 있고 그러실 텐데, 늘 보면 편안하게 그렇게 진행하시더라고요.
◆ 이재용> 저는 그게 이제 생활이니까요. 그냥 방송이라기보다 늘 하는 일이니까. 일반 직장인들이 사무실에서 사무를 보듯이 저는 제 방송을 하는 거거든요.
◇ 이성규> 그냥 아침에 제가 수업이 없는 날 운동하면서 자전거 타면서 아주 완주를 합니다. 그 방송을. 제가 팬입니다.
◆ 이재용> 고맙습니다. 팬으로서 정말 영광입니다.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 이성규> 이재용 아나운서 그러면 이제 지금까지 말씀드렸던 아침 방송이 떠오르면서 MBC에 계실 때도 그때도 아침을 아주 오래 했습니다. 근데 이렇게 아침에 계속 활동하시리라고 예상을 하셨나요.
◆ 이재용> 저도 아침잠 많고 막 이랬던 사람인데요. 전에 제가 MBC에서 화제 집중이라는 오후 프로그램을 했었어요. 화제의 집중 근데 그게 아주 잘 됐었는데, 갑자기 아침 방송으로 그러니까 저희는 프로그램을 한다는 게 어떻게 보면 직장인들이 발령이 나는 거죠. 그러니까 이 프로그램에서 저 프로그램으로 발령이 나는 건데, 아침을 맞게 됐는데요. 그때부터 줄곧 어떻게 아침을 계속하고 있어요. 그러면 아침 방송이 힘들다고 생각하는 분들한테는 그 지방 발령 같이 되는 거군요. 근데 아침 방송이요, 가을에서 겨울로 들어가면 이게 서글퍼요.
◇ 이성규> 아 힘들구나.
◆ 이재용> 아침에 6시 때는 일어나야 되니까요. 그럼 깜깜하고 싸하잖아요. 코끝에 추위가 착 오는데 ‘이야 이거 오늘도 아침에 이렇게 나가야 되는구나’, 이런 설음이 있는데요. 봄부터 이 계절은 너무 좋아요. 아침에 꽃향기를 제가 제일 먼저 맡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고요.
◇ 이성규> 또 여의도 쪽에 또 상암동 쪽에 오다 보면 꽃들이 좀 있으니까.
◆ 이재용> 겨울에 앙상했던 가지가 저게 봄 되면 개나리가 되는 거고 진달래가 되는 거고 그 매력이 있더라고요.
◇ 이성규> 아침 방송의 자연적인 매력 말고도 가을, 겨울 어려움도 있지만, 또 매력이 또 있지 않을까요?
◆ 이재용> 아침 방송의 매력은 이게 매거진 프로그램이에요. 그러니까 잡지 한 권을 읽듯이 그냥 생활 정보도 있고, 교양도 있고, 또 시사도 있고. 그래서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사람은 거의 뭐 오락성도 있는 거고, 그래서 거의 모든 장르의 프로그램을 할 수 있다는 그런 장점이 있어요.
◇ 이성규> 그러셨군요.
◆ 이재용> 재밌습니다.
◇ 이성규> 아침에 문을 여는 방송인, 우리 이재용 아나운서님의 활기찬 모습 늘 우리가 보고 있는데요. 근데 지금은 뭐 전혀 그런 기미도 못 느끼겠는데, 안색이 너무 좋으시고 그렇지만 2011년에 위암 판정을 받으셨어요.
◆ 이재용> 저도 깜짝 놀랐는데요. 직장인들 왜 직장인 건강보험 있잖아요. 건강검진이 있잖아요. 건강검진을 받는데 덜컥 ‘정밀 검사를 한번 해보셔야 되겠습니다.’ 이래요. 근데 그때 제가 특집 프로그램을 하던 중이었는데 전화가 한 통 왔는데 그거는 받아야 되겠더라고요 그래서 그 전화를 받았는데 이거 세포 검사를 해보니까 위암이 맞는 것 같다. 정말 나한테 왜 이러지 이런 생각이 딱 들었어요. 판정받고 근데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되고, 그리고 나서 다른 병원에 가서 한 번 더 검사를 했더니 진짜더라고요. 근데 그냥 멀쩡하게 갔어요. 근데 이제 수술하고 나면 환자가 돼 있는 거 같더라고요. 그래서 2011년에 바로 수술을 했고, 위를 3분의 2 잘라냈고요. 근데 그게 그냥 조그만 거였어요. 7ml짜리였는데, 그래도 그 위치에 따라서 위를 그렇게 3분의 2 절제를 하더라고요. 근데 그 의사 선생님이 ‘다 절제 안 한 것만 해도 다행으로 생각하세요.’
◇ 이성규> 다 절제하면 무슨 어떻게 하라고.
◆ 이재용> 근데 그게 또 사람의 적응력이 뛰어나서 지금 뭐 위가 3분의 1 밖에 없지만 조금 컸어요. 그래서 이것도 벌써 뭐 한 10년 전 일이고, 그래서 적응하고 지금은 건강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 이성규> 근데 그러시면 양껏 드셔도 살 안 찌시겠네요.
◆ 이재용> 양껏 먹는다는 게 전에 먹던 거의 한 반 먹으니까 아주 그렇게 과하게 먹을 수는 없어요.
◇ 이성규> 근데 뭐 안색이나 뭐 저기 청취자 여러분들이 TV에서 보셔서 다 아시겠지만, 지금 너무 좋으신데 요즘 괜찮으시죠?
◆ 이재용> 괜찮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소식할 수 있어서요. 예전에 너무 먹었거든요. 제가 또 주로 음식 프로그램 많이 해서 음식 먹고 이러는 거 좋아했는데, 요즘에 적당하게만 먹을 수 있어서 그것도 또 다행입니다.
◇ 이성규> 그런데 그때에 그러면 이 회복기에 방송 잠깐 쉬셨죠?
◆ 이재용> 그렇죠. 초반에는 조금 쉬었다가 다시 또 금방 회복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바로 또 아침 방송 계속했어요.
◇ 이성규> 방송하시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셨을 텐데, 지금 이제 언뜻 언뜻 생각나는 분도 계실 것 같네요.
◆ 이재용> 제가 그 화제 집중이나 뭐 아주 특별한 아침, 뭐 기분 좋은 날 이런 프로그램을 하면서 인터뷰를 많이 했었는데요. 그중에서 어 재래시장, 우리 전통시장을 돌면서 사람들 만나서 인터뷰하는 게 있었어요. 그런데 그때 속초시장에 갔는데 어물전에서 생선을 팔던 인민군 할머니라는 분이 계셨거든요.
◇ 이성규> 인민군 할머니.
◆ 이재용> 6.25 전쟁, 한국전쟁 전에는 속초 그쪽이 북한이었잖아요.
◇ 이성규> 그렇죠.
◆ 이재용> 근데 그때 인민군이셨어요.
◇ 이성규> 그러니까 못 돌아가신 분들이 남아 계신 거죠?
◆ 이재용> 네. 끝나면서 여기 머무셨고, 그러면서 어물전에서 상인이 되셨는데 아주 입이 거세요. “야 날래 오라우” 이런 식으로 말씀하시는, 아주 그 동네 대장님이시더라고요. 그분하고 인터뷰할 때 아주 재밌었고, 또 한 분은
◇ 이성규> 그때 거기 무슨 순대 좀 주시던가요?
◆ 이재용> 오징어순대도 주시고, 이 방석 옆에 신문지 가지고 병 주둥이를 막아놓은 소주가 있었는데, 인터뷰 내내 그걸 자꾸 권해주셨고, 그래서 더 기억이 남습니다. 또 한 분은 폐암에 걸리신 고추 파는 아저씨였는데요. 그 분은 이제 서울에 있는 가락동 시장에 계셨는데, 그분이 나무 목각 인형을 만들고 계셨어요. 그래서
◇ 이성규> 고추 파시면서요.
◆ 이재용> 폐암이 걸리셨는데 내가 이 목각 인형을 만드는 동안은 살아 있을 수 있다는 신념이 있었어요. 그래서 계속 그 목각 인형을 만드는 일을 멈추지 않으셨는데, 지금 뭐 고인이 되셨습니다만, 그분하고 인터뷰가 아주 그분 인생에 대한 얘기를 하시는데 참 좋았습니다. 그 두 분이 기억이 나요.
◇ 이성규> 그분 돌아가실 때까지 소통을 하셨군요.
◆ 이재용> 예 전화도 주시고 이래서요.
◇ 이성규> 그래서 그것도 대단하시네요.
◆ 이재용> 그것도 깜짝 놀랐어요. 그냥 시장에서 고추 파시니까 그냥 이렇게 고추 몇 개 파는 줄 알았거든요. 그래서 얼마나 파세요. 그랬더니 큰 화물차 있죠. 그걸로 파시더라고요.
◇ 이성규> 그거 하나를 다 팔아요. 하루에?
◆ 이재용> 그래서 어디다가 이걸 납품하세요. 그랬더니 그 라면 만드는 회사들에 납품합니다. 그냥 보통 상인이 아니셨어요.
◇ 이성규> 라면 스프 속에 있는 그거의 재료가 되는군요.
◆ 이재용> 큰 상인이셨더라고요.
◇ 이성규> 근데 그렇게 목각 인형 만드시면서 몇 년을 더 사셨나 모르겠네요.
◆ 이재용> 3년을 사셨어요.
◇ 이성규> 그건 말기인데도.
◆ 이재용> 오래 그래도 관리를 하셨죠.
◇ 이성규> 투병을 하셔서. 같이.
◆ 이재용> 그래서 말씀 나누는 과정이 굉장히 인생에 대한 얘기를 재밌으면서도 뭉클하게 하셨어요. 그래서 기억나요.
◇ 이성규> 근데 이재용 아나운서님은 초기였죠?
◆ 이재용> 저는 0기라고 표현하는데요. 어디 전이되는 데가 없어서 그냥 수술하고 바로 끝났어요.
◇ 이성규> 근데 이제 이거는 제가 질문을 드려야 될지 모르겠지만, 프리 선언하신 아나운서들이 많은데, 그중에 젊은 사람들도 있고 이재용 아나운서님 같이 아나운서 실장도 하시고 그런 분들이 있고 이런데. 어떠세요. 프리를 선언하는 거를 후배들한테 권하세요?
◆ 이재용> 그런데 이제 이게 변화가 있더라고요. 방송의 변화. 그러니까 저는 아나운서가 될 때 그 MBC라는 회사 직장에 아나운서라는 약간 특이한 직업으로 들어간 거거든요. 그러니까 저는 이제 직장인이라는 느낌이 있었어요. 방송을 하는 직장인. 그런데 지금 아나운서로 들어오는 후배 아나운서들을 보면 아나운서가 좀 어떤 연예인 비슷한 느낌으로 들어오더라고요. 그래서 인기를 얻으면, 그러니까 사람들이 좀 알아보면 바로 프리를 하고 나가는데, 글쎄 그게 바람직한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지금 세상의 흐름이 그러니까요. 직장인으로서의 아나운서의 역할보다는 프리랜서로서의 아나운서의 역할이 더 각광을 받는 시대니까 그런 선택을 하는 것 같은데, 저는 아직까지도 글쎄 이러면 또 꼰대라고 그럴지 모르겠지만, 인기 아나운서보다, 나중에 ‘명 아나운서’라는 소리를 좀 들었으면 좋겠어요. 배우들도 있잖아요. 인기 많은 탑스타의 배우들도 있지만 그래도 우리가 아는 선이 굵은 배우들 보면 ‘야 저 사람 명배우야’ 이런 거 있거든요. 저도 사람들이 ‘야 저 사람은 그래도 명 아나운서야’ 이렇게 좀 기억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고, 지금 프리하는 아나운서 후배들도 그 ‘인기 아나운서야’보다는 ‘명 아나운서야’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게 그렇게 하면 좋지 않을까 싶어요.
◇ 이성규> 근데 방송가에도 그런 게 좀 알려진 것 같아요. 이재용 아나운서 그러면 그런 얘기하는 어느 방송국의 관계자도 만난 적 있는 것 같아요.
◆ 이재용> 그러면 너무 고맙죠.
◇ 이성규> 그런 저런 게 응집이 돼서 하나의 이재용이라는 이미지를 형성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은데 본인 생각은 어떠세요.
◆ 이재용> 황송한 말씀이시고요. 저는 하여간 그냥 생활 방송인이니까 되도록이면 그냥 오버하지 않고 편안하게 그냥 있는 그대로 방송하려고 노력하거든요. 그래서 그나마 이렇게 좀 오랫동안 방송 현업에 남아서 아나운서로 방송 진행도 하고 이렇게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 이성규> YTN 라디오 이성규 행복한 쉼표 잠시만요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오늘은 이재용 아나운서와 함께하고 계십니다. 이쯤에서 노래 한 곡 우리 꼭 듣는데요. 어떤 노래 하나 들을까요?
◆ 이재용> 아 저는 요즘에 다시 들으니까 너무 좋은 조덕배 씨의 ‘꿈에’라는 곡을 신청하고 싶은데요. 어디 행사장에서 조덕배 씨가 꿈에라는 노래를 부르는데 건강이 좀 안 좋으셨어요. 그래서 입이 자꾸 말라요. 그러면서도 이 꿈에라는 노래를 어떻게 보면 정말 열심히 했는데, 제가 보기엔 처절하게 감동적으로 부르셨어요. 그래서 그 노래를 오늘 한번 들어보고 싶다.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 이성규> 그럼 이재용 아나운서가 추천한 조덕배의 꿈에 듣고 오시겠습니다. 조덕배의 꿈에 듣고 오셨습니다. 이성규 행복한 쉼표 잠시만요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이재용 아나운서입니다. 이재용 아나운서님, 지난 2009년에 또 복지 쪽하고도 깊은 인연을 맺으셨더라고요. 한국장애인재단의 홍보대사 이렇게 위촉이 되셨는데 지금도 계속 하시죠?
◆ 이재용> 네 너무 좋은 기회에 이렇게 한국장애인재단 홍보대사가 됐고요. 벌써 세월이 이렇게 흘렀어요. 2009년에 한국장애인재단 설립 5주년 비전 선포하는데, 그때 제가 진행을 했었는데요. 그 인연으로 그때부터 홍보대사 맡아서 지금까지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 이성규> 그리고 그 전에 뭐 활동 상황 중에는 보니까 또 YTN 이쪽에서 어떤 행사하실 때도 뭐 사회도 봐주시고 그런 게 있던 것 같아요.
◆ 이재용> 뭐 캠페인 장애인 인식 개선 이런 건데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하던 일이잖아요. 그래서 진행하고 이런 일이니까, 장애인 인식 개선 공모전 시상식 이런 게 있으면 가서 제가 사례도 보고 또 인식 개선 라디오 캠페인 녹음 있으면 가서 좀 하고, 제가 할 수 있는 거 그렇게 해서 하고 있습니다.
◇ 이성규> 보니까 이렇게 좋은 일 또는 의미 있는 일을 이렇게 지금 이재용 아나운서님 같이 장애인 재단과 인연을 맺어서 지금 10년이 넘었잖아요.
◆ 이재용> 그렇습니다.
◇ 이성규> 이렇게 해 주시는 거는 정말 꿀이 있는 그런 봉사죠.
◆ 이재용> 아니 그런데 다른 것보다도 저도 일하면서 보람도 느끼고 제가 스스로 만족할 수 있어야지 일을 하는 거거든요. 근데 재단 분들이 참 좋으세요. 그래서 그분들하고 어울리는 것도 좋고, 또 가서 보면 공모전 시상식을 제가 주로 가서 했잖아요. 공모전에 참여하시는 분들 상을 받으시는 분들 그 가족 분들 보면요. 진심이세요. 이런 활동에 진심이 느껴지니까 제가 가서 봉사를 한다 이런 느낌보다, 그분들한테 에너지를 받고 오는 경우가 더 많거든요. 그래서 제가 더 좋습니다.
◇ 이성규> 그게 이제 동참하시고 그런 일에, 그러면서 받으시는 도파민 같은 그런 게 좀 있나요?
◆ 이재용> 에너지가 있어요. 그러니까 아마 많은 분들이 봉사활동을 하실 텐데, 봉사를 받는 분들도 즐거우시겠지만, 봉사를 하는 분들은 아마 그 두 배 세 배로 기쁠 거예요. 왜냐하면 그렇게 하면서 자기가 내가 이렇게 봉사할 수 있다는 기쁨. 그다음에 거기서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거기서 오는 성취감 같은 것도 있고요. 그런 에너지를 서로 주고받는다는 의미에서 이거는 한쪽만의 봉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 이성규> 10년 넘게 정말로 이렇게 활동을 하셨는데, 근데 이제 좋은 말씀을 아까 해 주셨는데, 장애인의 인식이라든가 사회적인 변화라든가 또 아까 한국장애인재단 분들에 대해서 칭찬을 하셨는데, 그분들의 업무의 질적 수준이라든가. 이런 부분은 좀 10년 동안 이렇게 반출을 해보시면 어떠신 것 같아요?
◆ 이재용> 참 진짜 열심히 진심으로 해 주시는 게 너무 고맙고요. 저도 그 일원이 됐다는 게 아주 뿌듯하고 그렇습니다. 그리고 장애인 인식 개선 활동을 꾸준히 하시는데 무엇보다도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좀 더 포괄적으로 가셨으면 좋겠어요. ‘내가 돕는다’가 아니고 더불어 함께 사는 세상의 구성원으로. 그렇게 인정을 하는 게, 필요한 것 같은데 지난 10년 동안 이 활동을 하면서 보니까 많이 개선이 되긴 했어요. 그런데 우리 바로 옆에 같이 살고 있는데도 잘 못 느끼는 분들도 많고요. 거리감이 생기는 부분도 있고 그래서 아마 실질적으로 마음속에 인식을 못하는 분들도 계신데, 그 생각만 하면 될 것 같아요. ‘그냥 우리하고 같이 그냥 일상생활을 하는 더불어 함께 사는 사람들이다.’ 이런 생각을 하시면 될 것 같아요.
◇ 이성규> 그런데 이번에 당선인 공약 중에 보니까요. 장애인 관련 얘기가 있더라고요 개인 예산 제도라든가 그 시각 장애와 청각장애를 같이 갖고 있는 그런 분들을 과거에는 그냥 중복장애라고 네 명칭해서 불렀거든요. 그런데 그거를 이제 독립된 장애 영역으로 하겠다. 근데 그걸 듣고 이게 이제 정책적으로 이제 깊숙하게 푹 들어갔구나 그 생각을 했어요.
◆ 이재용> 그러니까 이런 봉사활동을 하시는 분들이 더 많이 그런 쪽으로 아시니까 정책적으로 이런 안들을 내주시면 그게 또 정책에 적극 반영되고 이런 것도 필요할 것 같고요. 이런 단체에서 그런 일들을 또 많이 해 주시니까 참 다행스럽고 그렇습니다.
◇ 이성규> 장애인재단에서도 그쪽 주장을 많이 한 재단입니다.
◆ 이재용> 그래서 그런 일이 이루어지는 게 아닌가 싶고요. 그러니까 항상 보면요. 생각만 하고 있으면 안 되더라고요. 그 생각하는 걸 결정할 수 있는 사람들한테 전달을 해줘야 되고, 그래서 그게 정책적으로 뒷받침이 되면 또 실천해야 되고. 이런 게 계속 사이클이 반복되듯이 돼야 되는 것 같아요.
◇ 이성규> 참 청취자 여러분들이 오늘 원래 이미지도 따뜻한 분이, 따뜻한 이야기를 하게 되는 걸 들으셔서, 귀가 너무 행복하실 것 같다고 생각이 드는데, 요즘 이제 제가 말씀드렸던 여러 가지 장애 이슈들도 있어요. 출근 투쟁도 있었고 여러 가지들이 있는데. 좀 어떠세요? 이 세상이 그런 걸 둘러싸고 어떻게 변했으면 좋겠어요?
◆ 이재용> 얼마나 답답하셨으면 그러셨겠어요. 근데 우리가 이제 지하철이 멈춰서고 이랬던 그때 순간을 보면 그 일반인들이 느끼기에 불편했겠죠. 지하철이 안 갔으니까. 근데 그걸 매일 경험하시는 분들 있잖아요. 우리는 그 때 그랬지만 이분들은 매일 그러신다고요. 그러니까 그런 불편함을 같이 공감하고 정말 개선이 돼야 되겠다는 생각. 이런 것만이라도 좀 해 주시면 좋을 것 같고요. 더 나아가서는 아까 제가 말씀드렸던 더불어 함께 사는 세상이고, 더불어 가야 된다는 생각 이것만 있으면 점점 더 개선이 되리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사람 마음은 다 있을 거예요. 누구나 그런데 마음만으로는 세상이 변하지 않으니까, 마음만 가지고 계시다가 어떤 결정적인 순간에는 그걸 실천하고 표현하는 그런 게 됐으면 좋겠다 싶어요.
◇ 이성규> 마치 장애인 당사자 단체 연합의 대변인 같은 말씀을 해주셨는데요. 앞으로도 이제 지속적으로 아침을 여는 아나운서가 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나는 이런 아나운서가 되고 싶다’라는 것, 잠깐 말씀을 하셨는데, 좀 더 구체적으로 ‘이재용은 앞으로 이렇게 변할 거다’. 청취자 여러분들이 좀 알아야 되지 않을까요.
◆ 이재용> 저는 일단은 아나운서가 우리 시 청취자분들하고 함께 하려면 방송을 꾸준히 해야 되거든요. 근데 저도 이제 앞에 오자가 있고 그것도 중반을 넘어서는 아나운서가 되다보니까 내가 글쎄 언제까지 진행자로 일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돼요. 그런데 시 청취자분들하고 같이 할 수 있는 그런 프로그램들이 꾸준히 있어서, 일단은 방송을 꾸준히 해야 여러분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거니까. 그렇게 힘이 닿는 대로 계속 방송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고, 그리고 방송을 하지 않는 상황이 됐을 많은 분들께 좀 전에 말씀드린 대로 ‘이재용 그 사람은 그래 명 아나운서지’ 이렇게 기억되는 그런 아나운서가 되도록 노력하겠다. 이런 말씀 드리고 싶어요.
◇ 이성규> 아마 청취자 여러분들도 그 말씀에 공감을 하실 텐데요. 그래도 마지막 인사 한번 하시죠.
◆ 이재용> 오늘 정말 이렇게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YTN 나들이를 또 처음으로 했고요. 좋은 얘기를 나누게 해주셔서 저도 기뻤습니다. 우리 청취자 여러분들도 아마 그 장애인 인식 개선에 대한 생각은 다 있으실 거예요. 그런데 마음에만 머물면 세상은 변하지 않습니다. 마음에 머문 이 생각을 어떤 기회에 표출을 하셔서, 우리 사회가 점점 좋은 방향으로 변해갈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되도록 해주셨으면 함께 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오늘 아주 저는 즐거운 시간이었는데, 우리 청취자 여러분은 어떠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같이 즐거우셨으면 좋았을 텐데.
◇ 이성규>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이미 명 아나운서인데 겸손까지 겸비하신 이재용 아나운서 모시고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 이재용> 고맙습니다.
◇ 이성규>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는 YTN 라디오 홈페이지와 유튜브를 통해서 다시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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