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 : YTN 라디오 FM 94.5 (20:20~21:00)
■ 날짜 : 2022년 3월 20일 (일요일)
■ 진행 : 이성규 교수
■ 대담 : 박은선 크리에이터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잠시만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우리의 행복한 삶 아닐까요?
◇ 이성규 교수(이하 이성규)> 마더 테레사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하죠. 사랑은 가장 가까운 사람, 가족을 돌보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진정한 사랑의 가치를 아름다운 이야기로 그려내는 사람이 있는데요. 오늘의 주인공. ‘긍씨’라는 필명의 크리에이터 박은선 님입니다. 안녕하세요. 박 선생님.
◆ 박은선 크리에이터(이하 박은선)> 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 이성규> 우리 청취자 여러분께 직접 자기 소개하면서 인사 한번 해 주시겠어요.
◆ 박은선> 청취자 여러분들. 안녕하세요. 저는 sns에서 글과 그림으로 평범해서 특별한 우리들의 일상을 그리고 있는 크리에이터 ‘긍씨’라고 합니다. 이렇게 만나 뵙게 돼서 너무 반갑습니다.
◇ 이성규> 네. 아니, 필명이 긍씨인데 긍씨가 무슨 의미예요.
◆ 박은선> 사실 굉장히 많은 독자 분들이 물어보시는 것 중에 하나인데 혹시 이제 긍정의 ‘긍’을 따와서 긍씨냐고 보통 말씀을 하시는데 사실은 제 본명인 박은선에서 계속 이름을 빨리 발음하다 보니까 박긍선이라는 식으로 발음이 돼서 제가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들 사이에서는 본명보다 박긍이라는 별명으로 많이 불렸어요. 그래서 그림 활동을 시작을 할 때 그러면 뒷글자 긍을 따서 한번 필명을 지어보는 건 어떨까, 해서 긍씨가 됐는데 아무래도 작품의 내용 자체가 좀 밝은 내용을 그리다 보니까 다들 긍정의 긍씨다, 라고 저 대신에 다른 좋은 해석을 해 주셔서 요즘은 이제 대외적으로는 긍정의 긍씨입니다, 라고 뒤늦게 밀고 있습니다.
◇ 이성규> 아니. 근데 좀 마케팅에 성공하신 것 같은데요. 궁금하게 만들어서 성공한 케이스 같아요. 긍씨라는 이름을 세상에 알리게 되고 또 이렇게 나오시게 되고 한 거 보면, 그 계기가 루게릭병으로 아버님이 투병을 하시는데 그걸 이야기를 잘 만들어서 만화로 그리면서 시작이 된 거죠.
◆ 박은선> 네. 맞습니다.
◇ 이성규> 언제부터 연재를 시작하셨죠.
◆ 박은선> 제가 2020년 9월에 처음 만화를 올렸거든요. 그러니까 올해 2년 차에 접어들게 됐어요. 그래서 지금 정식으로 연재를 시작한 지는 2년 채 안 되는 햇병아리 크리에이터입니다.
◇ 이성규> 만화 애니메이션, 이런 부분들을 공부하시기 위해서 유학 생활도 하셨어요.
◆ 박은선> 네, 맞습니다. 제가 고등학교를 예고를 나왔어요. 근데 고등학교 때부터 만화과에서 만화 애니메이션 공부를 쭉 하고 있다 있다가 아무래도 당시에도 만화 애니메이션 하면 역시 일본이지, 라는 대세의 흐름이 있다 보니까 저도 좀 더 심화된 공부를 하고 싶어서 유학을 택했고 대학을 그쪽에서 졸업하고, 일본의 애니메이션 회사에서 몇 년간 근무를 하다가 2017년에 완전히 다시 한국으로 귀국을 하게 됐습니다.
◇ 이성규> 보니까 일본이 애니메이션 환경이 우리보다 훨씬 잘 돼 있어요?
◆ 박은선> 그렇죠. 아무래도 콘텐츠를 활용해서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는 사업 전개의 넓이라고 해야 될까요. 그런 게 이미 굉장히 그 문화가 잘 정착이 되어 있어서, 그런 점에서는 확실히 배울 부분이 굉장히 많지 않았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 이성규> 웹 쪽으로 몰두해서 뭔가를 이루어낼 수 있는 그런 환경적인 터전. 이게 우리가 좀 마련되면 훨씬 더 활발하게 될까요.
◆ 박은선> 그렇죠. 저는 한국 사람들의 가장 특징 중에 하나가 제가 해외에 나가서 느꼈던 게 굉장히 실천력이 대단한 사람들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리고 실제로도 콘텐츠를 이용해서 사업을 전개하는 성장 과정이 한국이 지금 굉장히 전 세계적으로 무서운 기세로 쭉쭉 뻗어나가고 있기 때문에 저는 지금도 충분히 그런 한국의 콘텐츠 문화가 세계적으로 자리를 잡고 있고, 앞으로도 더 크게 자리를 넓혀갈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이성규> 젊은 사람들한테 그런 자리를 좀 깔아주고, 이런 게 필요하겠네요. 근데 그런 정책적인 자리를 깔아주기 전부터 우리 긍 선생님은 지금 성공한 거잖아요.
◆ 박은선>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 이성규> 그런데 원래 웹툰 작가 하시려는 꿈이 있으셨나요.
◆ 박은선> 그게 사실 제가 방금 전에 만화 애니메이션을 전공을 하고 관련 일을 했다고 말씀을 드려서 제 대답이 좀 모순된 대답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저는 사실 그림에 큰 뜻이 없었거든요. 그러니까 저는 제 이야기를 하는 걸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인데 그 이야기를 효율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수단이 글과 그림이어서 만화라는 방식을 택한 케이스여가지고, 처음부터 꿈을 가졌던 거는 아니어서 사실 외부적으로 인터뷰라든가 저를 소개할 때 웹툰 작가라는 직책으로 저를 소개해 주시는 분들이 종종 계신데 사실 제가 공식적으로 플랫폼을 통해서 데뷔를 한 게 아니다 보니까 실제로 웹툰 작가로서의 꿈을 갖고 활동하시는 분들한테 혹시라도 누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대외적으로는 사실 그 호칭을 굉장히 조심스럽게 거절이라고 해야 될까요. 사양하고 있는 그런 상황입니다.
◇ 이성규> 그러다가 아버님께서 근위축성 측색경화증, 이렇게 얘기를 하는데 우리에게 익숙하게는 루게릭병이라고 부르죠. 아버님이 이 병을 언제부터 앓으셨어요.
◆ 박은선> 제가 기억하기로는 제가 졸업을 하던 해 즈음부터 증상이 조금씩 있으셔서 2013년, 2014년, 그 전부터 조금씩 경미한 증세를 보이시다가 2015년에서 6년 사이에 확실하게 악화가 되시고 17년에서 18년 건너가는 즈음에 완전히 병명 확정을 받으셨어요. 그래서 정말 되게 천천히 야금야금 진행이 돼가지고 사실 언제부터 알게 되었느냐? 라고 한다면 증상은 그때부터 보이기 시작했어요, 라고 지금은 얘기할 수가 있는데 정확한 발병 시기가 언제인지는 사실 저희도 아직까지는 가늠을 할 수가 없는 상태입니다.
◇ 이성규> 발병 원인도 모르고요.
◆ 박은선> 루게릭병은 제가 알기로는 딱히 유전성이 강한 병도 아니고 굉장히 산발적으로 일어나는 난치병이다 보니까 정확한 원인을 아직 규명하지 못했다고 그렇게 알고 있어요.
◇ 이성규> 그래도 이 상황들이 좀 힘들 텐데, 만화로 그려지는 상황은 긍정적으로 그리고 계시는 거죠.
◆ 박은선> 그게 사실은 그런 병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과정이 아마 사람들이 대외적으로 얘기하지 않아서 그렇지, 굉장히 많은 우여곡절이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저도 감정의 큰 우여곡절들을 어느 정도 겪고 나서 그냥 이거는 받아들여야 되는 우리의 삶이다, 라고 수용을 한 시점에서 만화를 그려야겠다, 라고 생각을 하게 됐거든요. 그래서 이 이야기를 어떻게 그려나갈까? 라고 생각을 해봤는데 사실 병에 걸렸다고 해도 그 병이 저희 아버지의 긍정적인 마인드라든지, 아니면 저희 아버지가 자녀들에게 심어주셨던 밝은 마음까지 침범할 수는 없다, 라는 걸 저도 그 과정을 보면서 깨달았거든요. 그래서 사실 만화를 그리게 된 계기는 정말로 병이 있는 사람을 지켜보는 사람들도 충분히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고 긍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으니까 행복한 삶에 대한 죄책감을 갖지 않았으면 좋겠다, 라는 취지로 시작을 했던 마음도 사실 있었던 것 같습니다.
◇ 이성규> 그래서 내용들도 그런 생각을 반영을 해서 그리신 거죠.
◆ 박은선> 네, 맞습니다.
◇ 이성규> 근데 그림이 현재 시작 1년 정도 만에 팔로워 수가 5만 명에 이를 정도예요. 어떤 점에 그렇게 약간의 열광성이 있다고 생각하세요.
◆ 박은선> 사실 저도 연재를 시작하고 이렇게 단 시간에 많은 분들이 봐주실 거라고 정말 상상조차 하지 못했거든요. 그래서 독자님들께서 가끔 메시지 같은 걸 보내주시는데 가장 많이 해주셨던 말씀, 그리고 가장 인상에 남았던 이야기들 중에 하나가 누군가를 돌봐야 되는 상황. 혹은 본인 스스로가 아픈 상황에서 일상의 행복을 느끼는 게 죄책감을 가질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는 점이 너무 마음의 위안이 됐다고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그러니까 생각보다 크게든 작게든 병으로 인해서 투병을 하거나, 아니면 가족들이 힘들어하는 사람들은 서로 이야기를 안 해서 그렇지 생각보다 되게 많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아마 본인들의 감정이입이 좀 더 쉬웠던 것도 좀 더 제 만화를 좋아해 주시는 이유 중에 하나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고, 그 상황을 마냥 비관적으로 해석하기보다는 그래도 우리는 계속해서 씩씩하고 밝게 살아갈 필요가 있다, 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측면에서 좀 더 용기를 얻고 좀 더 희망찬 메시지를 발굴해 주셔서 더 많이 사랑해 주시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듭니다.
◇ 이성규> 네. YTN 라디오 이성규의 행복한 쉼표, 잠시만요.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긍씨라는 필명의 크리에이터 박은선 님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긍 선생님, 이쯤에서 우리가 노래를 하나 듣거든요. 어떤 노래를 추천해 주시겠어요.
◆ 박은선> 저는 오늘 레이디 가가의 Born This Way를 청취자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습니다.
◇ 이성규> 뭔가 사연이 있으신가요.
◆ 박은선> 이 노래 가사 중에 ‘우리는 모두 슈퍼스타로 태어났다’라는 뜻을 가진 가사가 있어요. 그 노래의 가사 자체도 당신의 피부색이 어떻든 당신의 성적 지향이 어떻든 당신의 인종이 어떻든 태어난 그 모습 자체로 아름답고 당신은 당신답게 살아가면 됩니다, 라는 내용의 가사가 담긴 곡이거든요. 그래서 저도 개인적으로 나는 어떤 사람일까.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될까, 라는 혼란스러운 시기에 이 노래 가사를 해석하면서 굉장히 많은 용기를 얻어서 우리 청취자분들께서도 저랑 같은 용기를 얻으셨으면 해서 이 노래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 이성규> 네, 그럼 그 곡 들어보겠습니다. 레이디 가가의 Born This Way. 레이디 가가의 Born This Way 듣고 오셨습니다. 이성규의 행복한 쉼표, 잠시만요.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루게릭병으로 후천적 장애를 갖게 된 아버지의 투병기를 만화로 연재하는 크리에이터 긍씨, 박은선 님입니다. 아까 제가 마더 테레사 하신 말씀을 소개해 드렸는데요. 제일 가까이 있는 가족으로서 아버님께 어떤 식의 도움을 주고 계세요.
◆ 박은선> 사실 저는 제일 막내딸이다 보니까 사랑한다는 얘기를 매일매일 해드리는 게 지금 가족들 안에서는 저한테는 가장 큰 역할이기도 하거든요. 물론 지금은 경제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중간 중간 금전적인 도움도 같이 서포트를 해드리고 있는데 무엇보다도 난치병이 있는 가족들은 흔들리게 되면 모두가 혼란스러워지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최대한 항상 마음이 평안할 수 있도록 제가 마인드 컨트롤을 하고, 그런 저의 긍정적인 자세를 가족들한테 보여줌으로써 부모님께서 저한테 느끼실 미안함이라든지, 그런 부분들을 최대한 덜어드리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 이성규> 그런 와중에 평온하게 누려왔던 평범한 일상, 그런 부분에 대한 소중함. 이런 것도 조금 더 와 닿았을 것 같네요.
◆ 박은선> 정말 흔히들 말하는 뼈에 와 닿게 느끼는 부분들이 굉장히 많았어요. 당장 지하철을 탈 때만 해도 저는 저희 집에서 휠체어를 타는 사람이 등장하기 전까지 지하철역의 엘리베이터 시스템에 대해서 관심을 가진 적이 없었거든요. 왜냐하면 필요하면 저는 계단을 쓰면 되고 에스컬레이터를 쓰면 되고 하니까. 근데 저희 아버지가 아프시게 된 이후로 아직까지도, 아무리 좋아졌다고는 해도 장애인들을 위한 편의시설이라든지, 그런 복지 시스템에 아직도 사각지대가 굉장히 많구나, 라는 걸 정말 가족의 일이 되고 나니까 더 여실히 느끼게 됐던 것 같아요.
◇ 이성규> 그러셨군요. 그리고 그런 와중에 외출하시고 이럴 때 보면 조금 특별한 시각으로 보는 분들이 아직도 좀 계신가요. 그럴 때 느낌이 어떠세요.
◆ 박은선> 아무래도 낯선 모습이다 보니까 시선이 가는 부분들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지금은 귀촌을 하셔서 밖에 그렇게 나가실 일이 잘 없지만 같이 도시에서 사실 때는 종종 나가시곤 하면 아무래도 행동이 느리시다 보니까 그 느린 행동에 대해서 따가운 시선을 받을 때 종종 있어요. 그러니까 그것이 배려를 해야 되는 행동이 아니고 나의 바쁜 시간을 잡아먹는 민폐라는 시선을 가끔 던지시는 분들이 계셨거든요. 그래서 그런 시선들을 받았을 때 가슴이 아픈 한편으로 나는 과거에 어땠을까. 나는 과거에 배려했어야 되는 사람들에게 충분한 배려를 했었을까? 라는 자기반성을 하게 되는 계기도 됐었던 것 같아요.
◇ 이성규> 그러니까 아버님의 병이 발발하고 변화, 이런 게 좀 있었네요.
◆ 박은선> 굉장히 많은 변화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전까지는 사실 건강한 것, 그리고 무탈한 게 굉장한 행운이 아니고 저한테 와야 되는 당연한 것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버지가 아프신 이후로 가장 많이 바뀐 것 중에 하나가 이 세상에 당연하게 오는 행복은 없다, 라는 거였거든요. 그리고 불행이 와도 그 불행 안에서 행복을 찾아내고 그 행복을 크게 해석하는 게 정말 성숙한 어른으로서 내가 앞으로 남은 인생에서 해나가야 될 일이겠구나, 라는 걸 조금 그래도 남들보다는 일찍 깨닫게 되지 않았나, 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 이성규> 지금 말씀하셨던 내용들이 웹툰에 표현되고 있나요.
◆ 박은선> 저는 최대한 표현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 이성규> 어느 장면에 어떤 표현이 하나 있나요. 소개 좀 해 주세요.
◆ 박은선> 제가 얼마 전에 연재를 했었던 에피소드였는데, 거기서 제가 저는 이제 더 이상 100%의 행운을 바라지 않습니다, 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거든요. 사실 아버지가 아프셨던 초반만 해도 보통 제 기도 제목이 이 불행이 물러나게 해주세요, 라는 간절한 기도가 대부분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불행이 완전히 내 것이 아니게 해달라는 기도는 욕심인 걸 알았으니까, 불행이 닥쳐오더라도 그 불행을 감당할 수 있는 용기와 그 불행 안에서도 감사함을 잃지 않을 수 있는 자세를 주십시오, 라는 식으로 기도 제목이 좀 바뀌었거든요. 그 이야기를 올렸을 때 독자님들께서도 굉장히 많은 공감을 해주셨고 한편으로는 조금 더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게 되는 계기가 됐어요, 라고 메시지를 보내주신 분들도 있어서 제가 전달하고자 했던 바가 잘 전달된 것 같아서 굉장히 뿌듯함을 느꼈던 기억이 있습니다.
◇ 이성규> 독자들하고 소통하는 방법은 어떻게 하세요.
◆ 박은선> 보통은 sns를 제가 관리하다 보니까 다이렉트 메시지라든지, 아니면 댓글들을 통해 해서 직접적으로 소통을 할 수 있어서 이렇게 벽이 없다 보니까 좀 더 친근하게 정말 옆집 사는 언니 누나 같은 느낌으로 그렇게 소통을 하고 있습니다.
◇ 이성규> 그러다가 오프라인에서 만나는 기회, 이런 건 거의 아직은 없으셨나요.
◆ 박은선> 아직까지는 오프라인에서 만났을 때 혹시 작가님이세요, 하는 분들은 없었는데 실제로 만나고 싶다, 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은 종종 있어가지고. 근데 실제로 만나 뵙게 되면 또 실물을 보시고 실망하면 어쩌나, 하는데 그런 걱정도 종종 있곤 합니다.
◇ 이성규> 그 반대일 수도 있죠. 만약에 가족이나 가까운 분들이 루게릭병으로 투병을 하게 된다면 어떻게 하시면 좋겠습니다, 라는 조언을 좀 해주실 수 있으세요. 청취자 여러분께.
◆ 박은선> 사실 저도 전문 의료인이 아니다 보니까 함부로 제가 이렇게 하는 게 좋습니다, 라고 권하는 건 조심스럽지만 그래도 경험으로서 느낀 바가 있다면 아픈 사람 앞에서 절망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예전에 다른 인터뷰에서도 얘기를 한 적이 있는데 지켜봐야 되는 가족들도 물론 괴롭지만 사실 병을 앓고 있거나 장애를 갖게 됐을 때 가장 괴로운 건 무엇보다 당사자 본인이거든요. 근데 본인의 육체적인 괴로움도 괴로움인데 본인의 육체적인 핸디캡으로 인해서 가족들이 무너지고 좌절하는 모습을 보게 될 때 굉장히 자존감이 떨어진다는 얘기를 저도 들은 적이 있어요. 근데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특히 아직까지 한국 사회가 너무 아픈 사람 앞에서 괴로운 모습을 쉽게 노출을 하는 경향이 있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다 보니까 저는 최대한 비슷한 질환을 앓고 계신 분들. 아니면 힘든 싸움을 하고 계시는 분들한테 최대한 당사자 앞에서 그 당사자의 병으로 인해서 괴로워하는 모습을 최대한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최대한 좋은 이야기를 하면서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좋겠다, 라고 보통은 말씀을 드리고 있어요.
◇ 이성규> 근데 이제 우리 긍씨, 박은선 님이 그려내는 작품들이 세상을 보는 시선을 좀 따스하게 가져가고 있잖아요. 앞으로 이 투병에 관한 이야기를 그리는 것 말고도 다른 작품들을 그려낼 생각이 있으세요.
◆ 박은선> 사실은 지금은 저의 개인적인 경험을 토대로 한, 어떻게 보면 에세이 형식의 콘텐츠를 만들고 있는데요. 저는 어쨌든 창작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정말 오리지널 스토리라고 할까요. 제가 만들어낸 가상의 이야기를 작품의 형태로서 사람들에게 선보이고 싶다, 라는 계획을 갖고 있어서 당장은 아니더라도 내년이나 내후년 정도를 생각하고 제 오리지널 창작물을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 이성규> 네. 궁금합니다. 다시 한 번 아까 잠깐 말씀을 하셨는데 루게릭병으로 투병하고 계신 가족, 또는 당사자들에게 응원의 한 말씀 해주시죠.
◆ 박은선> 사실 정말 힘든 싸움이거든요. 겪는 사람이나 그리고 그걸 지켜보는 사람이나, 사실 몸과 마음부터 시작해서 경제적인 부분까지 많은 근간이 흔들리는 시련인 건 변함이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긍정적인 마음을 갖고 있느냐 없느냐가 이 장기전을 버틸 수 있는 열쇠를 쥐고 있는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요인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을 하거든요. 그래서 정말 그 어떤 상황에서도 밝은 마음만큼은 절대로 잃지 마셨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특히 저는 투병하고 계신 분들의 가족 분들한테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평범한 희노애락에 대해서, 그 감정을 느끼시는 것에 죄책감 갖지 마시라고 꼭 전해드리고 싶어요.
◇ 이성규> 마지막으로 우리 청취자 여러분께 인사 한번 해주시죠.
◆ 박은선> 오늘 이렇게 좋은 자리에 함께할 수 있게 돼서 너무너무 영광이고요. 앞으로도 보다 많은 분들에게 따뜻한 이야기, 그리고 긍정적으로 나아갈 수 있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크리에이터가 되고 싶습니다. 그래서 제가 항상 저희 독자님들에게 메시지로 드리는 말씀이 우리 같이 씩씩하게 나아가요, 라는 말씀을 늘 해드리거든요. 그래서 오늘 함께해 주신 청취자와 여러분들께도 함께 씩씩하게 앞으로 나아가자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 이성규> 루게릭병뿐만 아닌 우리 사회 상황과도 맞는 말씀 같네요.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크리에이터 긍씨, 박은선 님 모시고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 박은선> 네, 감사합니다.
◇ 이성규>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는 YTN 라디오 홈페이지와 유튜브를 통해서 다시 들으실 수 있습니다.
YTN 서지훈(seojh0314@ytnradio.kr)
■ 방송 : YTN 라디오 FM 94.5 (20:20~21:00)
■ 날짜 : 2022년 3월 20일 (일요일)
■ 진행 : 이성규 교수
■ 대담 : 박은선 크리에이터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잠시만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우리의 행복한 삶 아닐까요?
◇ 이성규 교수(이하 이성규)> 마더 테레사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하죠. 사랑은 가장 가까운 사람, 가족을 돌보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진정한 사랑의 가치를 아름다운 이야기로 그려내는 사람이 있는데요. 오늘의 주인공. ‘긍씨’라는 필명의 크리에이터 박은선 님입니다. 안녕하세요. 박 선생님.
◆ 박은선 크리에이터(이하 박은선)> 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 이성규> 우리 청취자 여러분께 직접 자기 소개하면서 인사 한번 해 주시겠어요.
◆ 박은선> 청취자 여러분들. 안녕하세요. 저는 sns에서 글과 그림으로 평범해서 특별한 우리들의 일상을 그리고 있는 크리에이터 ‘긍씨’라고 합니다. 이렇게 만나 뵙게 돼서 너무 반갑습니다.
◇ 이성규> 네. 아니, 필명이 긍씨인데 긍씨가 무슨 의미예요.
◆ 박은선> 사실 굉장히 많은 독자 분들이 물어보시는 것 중에 하나인데 혹시 이제 긍정의 ‘긍’을 따와서 긍씨냐고 보통 말씀을 하시는데 사실은 제 본명인 박은선에서 계속 이름을 빨리 발음하다 보니까 박긍선이라는 식으로 발음이 돼서 제가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들 사이에서는 본명보다 박긍이라는 별명으로 많이 불렸어요. 그래서 그림 활동을 시작을 할 때 그러면 뒷글자 긍을 따서 한번 필명을 지어보는 건 어떨까, 해서 긍씨가 됐는데 아무래도 작품의 내용 자체가 좀 밝은 내용을 그리다 보니까 다들 긍정의 긍씨다, 라고 저 대신에 다른 좋은 해석을 해 주셔서 요즘은 이제 대외적으로는 긍정의 긍씨입니다, 라고 뒤늦게 밀고 있습니다.
◇ 이성규> 아니. 근데 좀 마케팅에 성공하신 것 같은데요. 궁금하게 만들어서 성공한 케이스 같아요. 긍씨라는 이름을 세상에 알리게 되고 또 이렇게 나오시게 되고 한 거 보면, 그 계기가 루게릭병으로 아버님이 투병을 하시는데 그걸 이야기를 잘 만들어서 만화로 그리면서 시작이 된 거죠.
◆ 박은선> 네. 맞습니다.
◇ 이성규> 언제부터 연재를 시작하셨죠.
◆ 박은선> 제가 2020년 9월에 처음 만화를 올렸거든요. 그러니까 올해 2년 차에 접어들게 됐어요. 그래서 지금 정식으로 연재를 시작한 지는 2년 채 안 되는 햇병아리 크리에이터입니다.
◇ 이성규> 만화 애니메이션, 이런 부분들을 공부하시기 위해서 유학 생활도 하셨어요.
◆ 박은선> 네, 맞습니다. 제가 고등학교를 예고를 나왔어요. 근데 고등학교 때부터 만화과에서 만화 애니메이션 공부를 쭉 하고 있다 있다가 아무래도 당시에도 만화 애니메이션 하면 역시 일본이지, 라는 대세의 흐름이 있다 보니까 저도 좀 더 심화된 공부를 하고 싶어서 유학을 택했고 대학을 그쪽에서 졸업하고, 일본의 애니메이션 회사에서 몇 년간 근무를 하다가 2017년에 완전히 다시 한국으로 귀국을 하게 됐습니다.
◇ 이성규> 보니까 일본이 애니메이션 환경이 우리보다 훨씬 잘 돼 있어요?
◆ 박은선> 그렇죠. 아무래도 콘텐츠를 활용해서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는 사업 전개의 넓이라고 해야 될까요. 그런 게 이미 굉장히 그 문화가 잘 정착이 되어 있어서, 그런 점에서는 확실히 배울 부분이 굉장히 많지 않았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 이성규> 웹 쪽으로 몰두해서 뭔가를 이루어낼 수 있는 그런 환경적인 터전. 이게 우리가 좀 마련되면 훨씬 더 활발하게 될까요.
◆ 박은선> 그렇죠. 저는 한국 사람들의 가장 특징 중에 하나가 제가 해외에 나가서 느꼈던 게 굉장히 실천력이 대단한 사람들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리고 실제로도 콘텐츠를 이용해서 사업을 전개하는 성장 과정이 한국이 지금 굉장히 전 세계적으로 무서운 기세로 쭉쭉 뻗어나가고 있기 때문에 저는 지금도 충분히 그런 한국의 콘텐츠 문화가 세계적으로 자리를 잡고 있고, 앞으로도 더 크게 자리를 넓혀갈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이성규> 젊은 사람들한테 그런 자리를 좀 깔아주고, 이런 게 필요하겠네요. 근데 그런 정책적인 자리를 깔아주기 전부터 우리 긍 선생님은 지금 성공한 거잖아요.
◆ 박은선>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 이성규> 그런데 원래 웹툰 작가 하시려는 꿈이 있으셨나요.
◆ 박은선> 그게 사실 제가 방금 전에 만화 애니메이션을 전공을 하고 관련 일을 했다고 말씀을 드려서 제 대답이 좀 모순된 대답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저는 사실 그림에 큰 뜻이 없었거든요. 그러니까 저는 제 이야기를 하는 걸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인데 그 이야기를 효율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수단이 글과 그림이어서 만화라는 방식을 택한 케이스여가지고, 처음부터 꿈을 가졌던 거는 아니어서 사실 외부적으로 인터뷰라든가 저를 소개할 때 웹툰 작가라는 직책으로 저를 소개해 주시는 분들이 종종 계신데 사실 제가 공식적으로 플랫폼을 통해서 데뷔를 한 게 아니다 보니까 실제로 웹툰 작가로서의 꿈을 갖고 활동하시는 분들한테 혹시라도 누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대외적으로는 사실 그 호칭을 굉장히 조심스럽게 거절이라고 해야 될까요. 사양하고 있는 그런 상황입니다.
◇ 이성규> 그러다가 아버님께서 근위축성 측색경화증, 이렇게 얘기를 하는데 우리에게 익숙하게는 루게릭병이라고 부르죠. 아버님이 이 병을 언제부터 앓으셨어요.
◆ 박은선> 제가 기억하기로는 제가 졸업을 하던 해 즈음부터 증상이 조금씩 있으셔서 2013년, 2014년, 그 전부터 조금씩 경미한 증세를 보이시다가 2015년에서 6년 사이에 확실하게 악화가 되시고 17년에서 18년 건너가는 즈음에 완전히 병명 확정을 받으셨어요. 그래서 정말 되게 천천히 야금야금 진행이 돼가지고 사실 언제부터 알게 되었느냐? 라고 한다면 증상은 그때부터 보이기 시작했어요, 라고 지금은 얘기할 수가 있는데 정확한 발병 시기가 언제인지는 사실 저희도 아직까지는 가늠을 할 수가 없는 상태입니다.
◇ 이성규> 발병 원인도 모르고요.
◆ 박은선> 루게릭병은 제가 알기로는 딱히 유전성이 강한 병도 아니고 굉장히 산발적으로 일어나는 난치병이다 보니까 정확한 원인을 아직 규명하지 못했다고 그렇게 알고 있어요.
◇ 이성규> 그래도 이 상황들이 좀 힘들 텐데, 만화로 그려지는 상황은 긍정적으로 그리고 계시는 거죠.
◆ 박은선> 그게 사실은 그런 병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과정이 아마 사람들이 대외적으로 얘기하지 않아서 그렇지, 굉장히 많은 우여곡절이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저도 감정의 큰 우여곡절들을 어느 정도 겪고 나서 그냥 이거는 받아들여야 되는 우리의 삶이다, 라고 수용을 한 시점에서 만화를 그려야겠다, 라고 생각을 하게 됐거든요. 그래서 이 이야기를 어떻게 그려나갈까? 라고 생각을 해봤는데 사실 병에 걸렸다고 해도 그 병이 저희 아버지의 긍정적인 마인드라든지, 아니면 저희 아버지가 자녀들에게 심어주셨던 밝은 마음까지 침범할 수는 없다, 라는 걸 저도 그 과정을 보면서 깨달았거든요. 그래서 사실 만화를 그리게 된 계기는 정말로 병이 있는 사람을 지켜보는 사람들도 충분히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고 긍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으니까 행복한 삶에 대한 죄책감을 갖지 않았으면 좋겠다, 라는 취지로 시작을 했던 마음도 사실 있었던 것 같습니다.
◇ 이성규> 그래서 내용들도 그런 생각을 반영을 해서 그리신 거죠.
◆ 박은선> 네, 맞습니다.
◇ 이성규> 근데 그림이 현재 시작 1년 정도 만에 팔로워 수가 5만 명에 이를 정도예요. 어떤 점에 그렇게 약간의 열광성이 있다고 생각하세요.
◆ 박은선> 사실 저도 연재를 시작하고 이렇게 단 시간에 많은 분들이 봐주실 거라고 정말 상상조차 하지 못했거든요. 그래서 독자님들께서 가끔 메시지 같은 걸 보내주시는데 가장 많이 해주셨던 말씀, 그리고 가장 인상에 남았던 이야기들 중에 하나가 누군가를 돌봐야 되는 상황. 혹은 본인 스스로가 아픈 상황에서 일상의 행복을 느끼는 게 죄책감을 가질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는 점이 너무 마음의 위안이 됐다고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그러니까 생각보다 크게든 작게든 병으로 인해서 투병을 하거나, 아니면 가족들이 힘들어하는 사람들은 서로 이야기를 안 해서 그렇지 생각보다 되게 많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아마 본인들의 감정이입이 좀 더 쉬웠던 것도 좀 더 제 만화를 좋아해 주시는 이유 중에 하나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고, 그 상황을 마냥 비관적으로 해석하기보다는 그래도 우리는 계속해서 씩씩하고 밝게 살아갈 필요가 있다, 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측면에서 좀 더 용기를 얻고 좀 더 희망찬 메시지를 발굴해 주셔서 더 많이 사랑해 주시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듭니다.
◇ 이성규> 네. YTN 라디오 이성규의 행복한 쉼표, 잠시만요.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긍씨라는 필명의 크리에이터 박은선 님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긍 선생님, 이쯤에서 우리가 노래를 하나 듣거든요. 어떤 노래를 추천해 주시겠어요.
◆ 박은선> 저는 오늘 레이디 가가의 Born This Way를 청취자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습니다.
◇ 이성규> 뭔가 사연이 있으신가요.
◆ 박은선> 이 노래 가사 중에 ‘우리는 모두 슈퍼스타로 태어났다’라는 뜻을 가진 가사가 있어요. 그 노래의 가사 자체도 당신의 피부색이 어떻든 당신의 성적 지향이 어떻든 당신의 인종이 어떻든 태어난 그 모습 자체로 아름답고 당신은 당신답게 살아가면 됩니다, 라는 내용의 가사가 담긴 곡이거든요. 그래서 저도 개인적으로 나는 어떤 사람일까.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될까, 라는 혼란스러운 시기에 이 노래 가사를 해석하면서 굉장히 많은 용기를 얻어서 우리 청취자분들께서도 저랑 같은 용기를 얻으셨으면 해서 이 노래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 이성규> 네, 그럼 그 곡 들어보겠습니다. 레이디 가가의 Born This Way. 레이디 가가의 Born This Way 듣고 오셨습니다. 이성규의 행복한 쉼표, 잠시만요.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루게릭병으로 후천적 장애를 갖게 된 아버지의 투병기를 만화로 연재하는 크리에이터 긍씨, 박은선 님입니다. 아까 제가 마더 테레사 하신 말씀을 소개해 드렸는데요. 제일 가까이 있는 가족으로서 아버님께 어떤 식의 도움을 주고 계세요.
◆ 박은선> 사실 저는 제일 막내딸이다 보니까 사랑한다는 얘기를 매일매일 해드리는 게 지금 가족들 안에서는 저한테는 가장 큰 역할이기도 하거든요. 물론 지금은 경제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중간 중간 금전적인 도움도 같이 서포트를 해드리고 있는데 무엇보다도 난치병이 있는 가족들은 흔들리게 되면 모두가 혼란스러워지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최대한 항상 마음이 평안할 수 있도록 제가 마인드 컨트롤을 하고, 그런 저의 긍정적인 자세를 가족들한테 보여줌으로써 부모님께서 저한테 느끼실 미안함이라든지, 그런 부분들을 최대한 덜어드리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 이성규> 그런 와중에 평온하게 누려왔던 평범한 일상, 그런 부분에 대한 소중함. 이런 것도 조금 더 와 닿았을 것 같네요.
◆ 박은선> 정말 흔히들 말하는 뼈에 와 닿게 느끼는 부분들이 굉장히 많았어요. 당장 지하철을 탈 때만 해도 저는 저희 집에서 휠체어를 타는 사람이 등장하기 전까지 지하철역의 엘리베이터 시스템에 대해서 관심을 가진 적이 없었거든요. 왜냐하면 필요하면 저는 계단을 쓰면 되고 에스컬레이터를 쓰면 되고 하니까. 근데 저희 아버지가 아프시게 된 이후로 아직까지도, 아무리 좋아졌다고는 해도 장애인들을 위한 편의시설이라든지, 그런 복지 시스템에 아직도 사각지대가 굉장히 많구나, 라는 걸 정말 가족의 일이 되고 나니까 더 여실히 느끼게 됐던 것 같아요.
◇ 이성규> 그러셨군요. 그리고 그런 와중에 외출하시고 이럴 때 보면 조금 특별한 시각으로 보는 분들이 아직도 좀 계신가요. 그럴 때 느낌이 어떠세요.
◆ 박은선> 아무래도 낯선 모습이다 보니까 시선이 가는 부분들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지금은 귀촌을 하셔서 밖에 그렇게 나가실 일이 잘 없지만 같이 도시에서 사실 때는 종종 나가시곤 하면 아무래도 행동이 느리시다 보니까 그 느린 행동에 대해서 따가운 시선을 받을 때 종종 있어요. 그러니까 그것이 배려를 해야 되는 행동이 아니고 나의 바쁜 시간을 잡아먹는 민폐라는 시선을 가끔 던지시는 분들이 계셨거든요. 그래서 그런 시선들을 받았을 때 가슴이 아픈 한편으로 나는 과거에 어땠을까. 나는 과거에 배려했어야 되는 사람들에게 충분한 배려를 했었을까? 라는 자기반성을 하게 되는 계기도 됐었던 것 같아요.
◇ 이성규> 그러니까 아버님의 병이 발발하고 변화, 이런 게 좀 있었네요.
◆ 박은선> 굉장히 많은 변화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전까지는 사실 건강한 것, 그리고 무탈한 게 굉장한 행운이 아니고 저한테 와야 되는 당연한 것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버지가 아프신 이후로 가장 많이 바뀐 것 중에 하나가 이 세상에 당연하게 오는 행복은 없다, 라는 거였거든요. 그리고 불행이 와도 그 불행 안에서 행복을 찾아내고 그 행복을 크게 해석하는 게 정말 성숙한 어른으로서 내가 앞으로 남은 인생에서 해나가야 될 일이겠구나, 라는 걸 조금 그래도 남들보다는 일찍 깨닫게 되지 않았나, 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 이성규> 지금 말씀하셨던 내용들이 웹툰에 표현되고 있나요.
◆ 박은선> 저는 최대한 표현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 이성규> 어느 장면에 어떤 표현이 하나 있나요. 소개 좀 해 주세요.
◆ 박은선> 제가 얼마 전에 연재를 했었던 에피소드였는데, 거기서 제가 저는 이제 더 이상 100%의 행운을 바라지 않습니다, 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거든요. 사실 아버지가 아프셨던 초반만 해도 보통 제 기도 제목이 이 불행이 물러나게 해주세요, 라는 간절한 기도가 대부분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불행이 완전히 내 것이 아니게 해달라는 기도는 욕심인 걸 알았으니까, 불행이 닥쳐오더라도 그 불행을 감당할 수 있는 용기와 그 불행 안에서도 감사함을 잃지 않을 수 있는 자세를 주십시오, 라는 식으로 기도 제목이 좀 바뀌었거든요. 그 이야기를 올렸을 때 독자님들께서도 굉장히 많은 공감을 해주셨고 한편으로는 조금 더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게 되는 계기가 됐어요, 라고 메시지를 보내주신 분들도 있어서 제가 전달하고자 했던 바가 잘 전달된 것 같아서 굉장히 뿌듯함을 느꼈던 기억이 있습니다.
◇ 이성규> 독자들하고 소통하는 방법은 어떻게 하세요.
◆ 박은선> 보통은 sns를 제가 관리하다 보니까 다이렉트 메시지라든지, 아니면 댓글들을 통해 해서 직접적으로 소통을 할 수 있어서 이렇게 벽이 없다 보니까 좀 더 친근하게 정말 옆집 사는 언니 누나 같은 느낌으로 그렇게 소통을 하고 있습니다.
◇ 이성규> 그러다가 오프라인에서 만나는 기회, 이런 건 거의 아직은 없으셨나요.
◆ 박은선> 아직까지는 오프라인에서 만났을 때 혹시 작가님이세요, 하는 분들은 없었는데 실제로 만나고 싶다, 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은 종종 있어가지고. 근데 실제로 만나 뵙게 되면 또 실물을 보시고 실망하면 어쩌나, 하는데 그런 걱정도 종종 있곤 합니다.
◇ 이성규> 그 반대일 수도 있죠. 만약에 가족이나 가까운 분들이 루게릭병으로 투병을 하게 된다면 어떻게 하시면 좋겠습니다, 라는 조언을 좀 해주실 수 있으세요. 청취자 여러분께.
◆ 박은선> 사실 저도 전문 의료인이 아니다 보니까 함부로 제가 이렇게 하는 게 좋습니다, 라고 권하는 건 조심스럽지만 그래도 경험으로서 느낀 바가 있다면 아픈 사람 앞에서 절망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예전에 다른 인터뷰에서도 얘기를 한 적이 있는데 지켜봐야 되는 가족들도 물론 괴롭지만 사실 병을 앓고 있거나 장애를 갖게 됐을 때 가장 괴로운 건 무엇보다 당사자 본인이거든요. 근데 본인의 육체적인 괴로움도 괴로움인데 본인의 육체적인 핸디캡으로 인해서 가족들이 무너지고 좌절하는 모습을 보게 될 때 굉장히 자존감이 떨어진다는 얘기를 저도 들은 적이 있어요. 근데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특히 아직까지 한국 사회가 너무 아픈 사람 앞에서 괴로운 모습을 쉽게 노출을 하는 경향이 있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다 보니까 저는 최대한 비슷한 질환을 앓고 계신 분들. 아니면 힘든 싸움을 하고 계시는 분들한테 최대한 당사자 앞에서 그 당사자의 병으로 인해서 괴로워하는 모습을 최대한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최대한 좋은 이야기를 하면서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좋겠다, 라고 보통은 말씀을 드리고 있어요.
◇ 이성규> 근데 이제 우리 긍씨, 박은선 님이 그려내는 작품들이 세상을 보는 시선을 좀 따스하게 가져가고 있잖아요. 앞으로 이 투병에 관한 이야기를 그리는 것 말고도 다른 작품들을 그려낼 생각이 있으세요.
◆ 박은선> 사실은 지금은 저의 개인적인 경험을 토대로 한, 어떻게 보면 에세이 형식의 콘텐츠를 만들고 있는데요. 저는 어쨌든 창작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정말 오리지널 스토리라고 할까요. 제가 만들어낸 가상의 이야기를 작품의 형태로서 사람들에게 선보이고 싶다, 라는 계획을 갖고 있어서 당장은 아니더라도 내년이나 내후년 정도를 생각하고 제 오리지널 창작물을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 이성규> 네. 궁금합니다. 다시 한 번 아까 잠깐 말씀을 하셨는데 루게릭병으로 투병하고 계신 가족, 또는 당사자들에게 응원의 한 말씀 해주시죠.
◆ 박은선> 사실 정말 힘든 싸움이거든요. 겪는 사람이나 그리고 그걸 지켜보는 사람이나, 사실 몸과 마음부터 시작해서 경제적인 부분까지 많은 근간이 흔들리는 시련인 건 변함이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긍정적인 마음을 갖고 있느냐 없느냐가 이 장기전을 버틸 수 있는 열쇠를 쥐고 있는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요인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을 하거든요. 그래서 정말 그 어떤 상황에서도 밝은 마음만큼은 절대로 잃지 마셨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특히 저는 투병하고 계신 분들의 가족 분들한테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평범한 희노애락에 대해서, 그 감정을 느끼시는 것에 죄책감 갖지 마시라고 꼭 전해드리고 싶어요.
◇ 이성규> 마지막으로 우리 청취자 여러분께 인사 한번 해주시죠.
◆ 박은선> 오늘 이렇게 좋은 자리에 함께할 수 있게 돼서 너무너무 영광이고요. 앞으로도 보다 많은 분들에게 따뜻한 이야기, 그리고 긍정적으로 나아갈 수 있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크리에이터가 되고 싶습니다. 그래서 제가 항상 저희 독자님들에게 메시지로 드리는 말씀이 우리 같이 씩씩하게 나아가요, 라는 말씀을 늘 해드리거든요. 그래서 오늘 함께해 주신 청취자와 여러분들께도 함께 씩씩하게 앞으로 나아가자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 이성규> 루게릭병뿐만 아닌 우리 사회 상황과도 맞는 말씀 같네요.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크리에이터 긍씨, 박은선 님 모시고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 박은선> 네, 감사합니다.
◇ 이성규>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는 YTN 라디오 홈페이지와 유튜브를 통해서 다시 들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