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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익태, 이승만에 10년간 낯뜨거운 청탁...'국가' 다시 제정해야
작성자 : ytnradio
날짜 : 2019-01-16 09:12  | 조회 : 2971 
YTN라디오(FM 94.5) [김호성의 출발 새아침]

□ 방송일시 : 2019년 1월 16일 (수요일) 
□ 출연자 : 이해영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

-애국가 국민의례는 대통령 훈령, 법으론 아직 없어
-이승만, 안익태 외교관 청탁 달러 없다고 거부
-이미 불렸지만 고향의 봄과 애국가는 달라


◇ 김호성 앵커(이하 김호성): 애국가를 작곡한 사람, 안익태. 안익태 애국가의 작곡자, 친일전력이 이미 알려진 사람이죠. 그런데 이번에 새롭게 ‘친 나치’ 전력이 알려졌습니다. 이게 무슨 일인가, 궁금해하시는 분들 많으실 겁니다. 독일을 오가면서 8년 넘게 이 문제를 계속 추적해오신 분이십니다. 이해영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 연결되어 있습니다. 교수님, 안녕하십니까.

◆ 이해영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이하 이해영): 안녕하세요.

◇ 김호성: 8년 동안 안익태에 대한 조사를 해온 배경이 무엇이죠?

◆ 이해영: 글쎄요. 안익태가 주로 활동했던 게 당시에, 2차 대전 시기에 주로 베를린이었어요, 독일. 그러다 보니까 저 역시 독일에서 공부를 했고. 그러다 보니까 아무래도 이게 자료라는 게 자주 눈에 밟히게 되고 그다음에, 그게 가장 주된 이유겠죠. 그러다가 또 좋은 선행연구들이 앞에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그 연구들을 참고하고 추적하다 보니까 꽤 시간이 지난 거죠.

◇ 김호성: 친일 작곡가다, 이런 이야기. ‘에키타이 안’ 안익태의 일본 이름인데요. 친일 행적이 드러난 게 10여 년 정도 된 것 같습니다. 이 기회에 일단 청취자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요. 간단하게 친일행적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리겠습니다.

◆ 이해영: 예. 1938년 2월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안익태가 ‘코리아 판타지’를 초연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 이후에 44년 6월까지 노르망디 상륙작전 직전에 안익태가 스페인으로 가거든요. 한 30여회 정도 연주회를 지휘하는데 그 대부분이, 거의 대부분이 친일 그다음에 친나치적인 그런 연주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 김호성: 곡이 그렇다는 건가요? 아니면 그 곡을 연주한 것에 대한 무슨 의미가 담겨있었다는 건가요?

◆ 이해영: 예컨대 가장 자주 연주한 게 ‘만주국 환상곡’이란 곡이고요. 그다음에 일본 궁중악이죠. ‘월천악’ 월천악을 편곡한, 본인이 편곡한 ‘에텐라쿠’를 가장 자주 지휘하고, 그리고 지휘하게 된 장소가 추축국이었어요, 100%가. 추축국, 그다음에 나치 점령국. 이런 나라를 중심으로 해서 일본 제국주의와 그다음에 독일 나치의 전쟁수행을 지원하고 돕기 위한 그런 연주회를 지휘한 거죠.

◇ 김호성: 교수님, 아까 더블린에서 30년대에 ‘코리아 판타지’ 이게 한국 환상곡 이렇게 번역하면 되는 건가요?

◆ 이해영: 조선 환상곡이죠.

◇ 김호성: 조선 환상곡이라고 했을 때 그때 그 곡 자체도 그러면 친일의 의미를 담은 곡으로 해석해야 하는 건가요? 그때 조선이 일제 치하에 있었던 당시일 텐데요.

◆ 이해영: 38년 2월, 조선 환상곡을 처음 지휘했을 때는 아니죠. 그 이후에 40년 정도부터 본격적으로 일본 쪽으로, 친일로 돌아섰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 김호성: 그렇군요. 그런 안익태가 나치와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다. 이건 또 굉장히 새로운 소식인 것 같습니다. 어떤 내용인가요?

◆ 이해영: 기본적으로 당시 독일과 일본은 군사동맹 국가였어요. 삼국 추축국이라고 하죠. 그 상황에서 독일은 일본의, 특히 당시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전후로 해서 독일 쪽에선 일본이 소련을 공격해주기를 아주 간절히 바랐고, 그래야지 이쪽에 부담이 덜어지니까. 그러는 과정에서 독일에서도 일본 붐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이제 특히 일본과의 문화적 교류, 정치적 목적을 위한 문화적 교류, 이런 걸 아주 강조하게 되는데. 그 속에서 에키타이 안, 안익태의 활동들이 기본적으로 일본 제국주의, 그다음에 만주국의 이데올로기를 전파하면서 동시에 독일이라는 환경, 이런 전시라는 환경 속에서 독일 나치즘의, 나치를 동시에 홍보하게 되는. 그리고 독일 입장에서도 에키타이 안의 활동을 아주 적극적으로 지지하게 되는 거죠. 예를 들어서 안익태의 베를린 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 에하라 고이치라고 하는 만주국 참사관입니다. 이 사람이 이제 밝혀진 바에 따르면, 미국 자료 CIA, OSS라고 당시 불렀는데. 일본의 유럽 첩보망의 독일 총책이었다고 하거든요.

◇ 김호성: 에하라 고이치가요?

◆ 이해영: 예, 그렇죠. 그런데 이 에하라 고이치 집에 한 2년 반 에키타이 안이 기숙을 하게 됩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로 중요한 게, 독일. 독일하고 일본을 친선을 강조하는 협회, 독일 협회. 일반으로 알려질 때는 민간단체로 알려졌는데 실제로는 그게 아니고 나치 조직이에요. 독일 외무성과 동시에 (*선전해) 돈을 받는 은폐된 위장된 나치 조직이죠. 나치 외곽조직인데 이 독일 협회가 에키타이 안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동시에 조직해주고, 또 어레인지 해주는 이런 역할을 담당하게 되는 거죠.

◇ 김호성: 그렇군요. 교수님, 그런데 이 같은 행적을 가진 사람이 작곡한 국가, 애국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애국가로 불릴 수 있었던 이유는 그럼 무엇이었다고 보시는지요?

◆ 이해영: 가장 중요한 것은 에키타이 안의, 안익태의 베를린 활동, 베를린 시기 활동들이 60년 넘게 알려지지 않은 거죠. 감춰져 있었던 거예요. 그것이 2000년부터 조금씩 알려지고,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건 10년. 이제 10년 전부터 알려지기 시작한 거죠. 그리고 아직까지도 글쎄요, 한 70~80% 이제 밝혀졌다고 볼까요.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여러 가지 사실들이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 김호성: 안익태 작곡가는 과거에 이승만 전 대통령의 생일축하곡도 만들었다고 하고, 외교관 자리를 달라고 청탁을 했다고 하기도 하고.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교수님께서 최근 인터뷰에 보면요.

◆ 이해영: 사료에 보면 대통령기록물 있죠. 이승만 대통령기록물에 보면 안익태가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에 이승만에게 편지를 보내가지고 미국 대사관에, 주미 대사관에 문화참사관 자리를 달라고 요청했다. 그런데 이승만이 그걸 거절하는데, 거절한 이유가 달러가 없어서 해줄 수가 없다. 이런 기록들이 쭉 나옵니다.

◇ 김호성: 그런데 실제로 달러가 없었을까요?

◆ 이해영: 없었다고 볼 수 있죠. 50년대니까요, 전후 상황에서는. 그 외에 수많은 어떻게 보면 좀 낯이 뜨거운 그런 청탁들을 쭉 하고 있습니다. 50년대, 10년 정도에 걸쳐가지고. 그런데 대부분 이승만이 이를 거절하죠. 왜냐면 돈이 없다, 우리가. 그런 이유를 들어가지고 안익태가 각종 청탁을 해도 대부분 거절합니다.

◇ 김호성: 교수님, 애국가 문제 관련해서 하나 질문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지난 2012년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이 ‘애국가는 국가가 아니다’ 이런 발언으로 한때 굉장히 논란이 뜨거웠습니다. 이 애국가, 안익태 작곡가의 것인데 말이죠. 애국가가 국가가 아니다라는 이런 부분에 대해서 우리는 지금 이 시점에서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한다고 보시는지요?

◆ 이해영: 애국가와 국가를 구분하자고 하는 것은 해방 이후부터 지금까지 진보건 보수건 다 아는 사실이죠. 우리나라 현재 법정 국가는 없습니다. 안익태의 애국가가 국가의 대용으로 불리고 있는 건데.

◇ 김호성: 국민의례에서는 애국가가 연주하도록 그렇게 돼 있지 않습니까?

◆ 이해영: 예, 그게 대통령 훈령이죠. 그렇기 때문에 법률은 아닙니다. 해서 일반 시민 모두를 구속할 수 있는 그런 법률은 아니고, 대통령 훈령이기 때문에 행정부 내부만 규율할 수 있는 그런 규정인 거죠. 그래서 현재 우리나라는 안익태 애국가가 국가라고 하는 그런 규정은 없습니다.

◇ 김호성: 노래는 창작자의 것이라기보다는 부르는 사람의 것이다. 따라서 수용자론을 주장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 이해영: 그렇죠. 그렇게 주장할 수도 있다고 봐요. 그렇지만 이것은 애국가 아닙니까, 문제가 되는 것은. 예를 들어서 홍난파도 친일을 했어요. 그런데 홍난파가 작곡한 ‘고향의 봄’이라든지 ‘봉숭아’라든지, 이것 부르는 것하고 국가 대용으로 쓰고 있는 애국가를 부르는 것은 전혀 차원이 다른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서 저 역시 ‘봉숭아’를 아주 즐겨 부를 수도 있는 거죠, 연주도 할 수 있는 거고. 그런데 똑같은 친일을 했다 하더라도 하나는 우리 나라 전체를 대표하고 대변하는 노래 아닙니까. 이거하곤 차원이 다르다 봐야죠.

◇ 김호성: 그렇습니까. 이 문제는 좀 한 번, 교수님을 다시 한 번 연결해서요. 여론의 동향과 연계해서 다시 한 번 연결하도록 하겠습니다. 교수님, 오늘 말씀 여기까지 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 이해영: 감사합니다.

◇ 김호성: 지금까지 이해영 한신대 교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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