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TN 라디오 ‘열린라디오YTN’]
■ 방송 : FM 94.5 MHz (20:20~20:56)
■ 방송일 : 2018년 11월 17일 (토요일)
■ 출연 : 안호림 인천대 교수
아나운서: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안호림의 미디어 똑바로 보기> 시간입니다. 오늘도 스튜디오에 안호림 교수 나오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안호림: 안녕하세요.
아나운서: 오늘은 어떤 주제로 이야기 할까요?
안호림: 이번주 목요일에는 매년 치루는 수능이 있었는데요. 수험생 여러분, 마음 졸이며 기다리신 학부모님들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수능때마다 추위가 찾아와 수험생들이 고생하지 않을까 걱정히 됐는데 많이 춥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최근 수험생들이 관심을 크게 가질만한 사건이 하나 있었는데요. 바로 숙명여고 시험지 유출사태입니다. 경찰이 두 달 간의 조사를 마치고 사건의 주인공들인 숙명여고 전 교무부장과 쌍둥이 자매 모두를 기소해야한다는 의견으로 사건을 검찰에 넘겼습니다. 이번 주는 마침 수능도 있었기 때문에 오늘은 숙명여고 사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아나운서: 원래 사건이 알려진 건 서울시교육청이 특별감사를 시작하면서부터이죠?
안호림: 그렇죠. 강남과 서초 학부모 온라인 커뮤니티에 숙명여고 교무부장 자녀인 쌍둥이 두 딸 성적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자, 서울시교육청에서는 특별감사를 시작했습니다. 특별감사까지 하게 된 것은 워낙 두 학생의 성적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수직상승해서인데요. 마침 이 두 학생이 학내 시험을 총괄하는 교무부장의 자녀여서 혹시 시험문제와 정답을 미리 알려준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샀기 때문입니다.
아나운서: 대체 성적이 얼마나 올랐길래 조작 의혹까지 받은거죠?
안호림: 쌍둥이 둘 다 고2인데, 한 명의 이과, 한 명은 문과입니다. 1학년 1학기에는 한 명은 전교생 460명 중 59등, 다른 한 명은 121등이었습니다. 상위권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점수이었죠. 그런데 1학년 2학기에는 전교 2등과 5등, 2학년 1학기에는 문과, 이과 1등을 둘이 동시에 차지합니다. 그나마 1학기 1학기 성적은 중간과 기말을 합한 성적인데, 중간 성적은 전체 300등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1학기 기말부터 성적이 급작스레 오른 거죠. 문제는 이 학생들이 학원 성적이나 모의고사 성적은 높지 않다는 겁니다.
아나운서: 다른 시험은 그다지 잘 본 게 아닌데 유독 내신만 잘 본 거라는 거죠?
안호림: 네. 공부를 잘 하는 학생들은 대개 성적이 고르잖아요. 교내 시험보다는 모의고사에 강하거나, 반대인 경우도 있지만, 차이가 크게 나지 않는 게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쌍둥이 둘 다 내신이 1등으로 올라가는 동안 모의고사 성적은 국어, 영어 모두 오히려 떨어졌습니다. 특히 국어는 전교석차가 100등 넘게 떨어졌고, 수학은 올랐는데, 오른 폭이 크지 않습니다. 쌍둥이 모두 대치동의 유명 수학학원에 다녔는데, 이 학원은 처음에 레벨 테스트를 치르고 수준에 맞게 학생을 배치합니다. 그런데 쌍둥이는 레벨 3, 레벨 5였다고 합니다. 중하위권인거죠. 아이러니한 것은 사설학원 시험 결과가 고등학교 내신 성적 의혹의 결정적인 근거라고 제시되었다는 건데요. 한국 교육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합니다. 그것 말고도, 수업 시간에 기초적인 문제를 나와서 풀라고 했는데 풀지못하는 일이 있었고,, 여러가지 정황 증거들이 제시되었습니다.
아나운서: 갑작스럽게 성적이 오르는 게 전혀 불가능한건 아니지 않습니까? 간혹 주위에서 의심 살 정도로 성적이 오른 친구들도 본 기억이 있는데요.
안호림: 확률은 낮겠지만 전혀 불가능한 건 아니겠죠. 그런데 쌍둥이들이 의심을 받는 건 다니는 학교가 다름 아닌 강남 명문 사립학교로 손꼽히는 숙명여고이기 때문입니다. 숙명여고는 작년 S대에 17명이 합격했습니다. 일반고등학교 중에서는 전국에서 4번째로 많은 것입니다. 성적이 좋다보니 성적이 좋은 학생들이 몰리고 내부 경쟁도 심합니다. 이렇게 경쟁이 심한 학교에서 아무리 남다른 노력을 기울인다고 해서, 또 자질이 뛰어나다고 해서 그렇게 빠른 시간 내 성적이 오르는 게 가능하냐는 것입니다. 쌍둥이만 4시간씩 자고 공부하는 게 아니잖아요. 학생들 대부분이 정말 숨돌릴 틈도 없이 공부를 하는데, 갑작스레 성적이 오르니 의심스러운 것이죠. 게다가 요즘 수능이라는 게 반짝 공부해서 점수가 나오기 힘든 시스템입니다.
아나운서: 가장 큰 의심을 사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정답이 바뀐 문제에 대해서 바뀌기 전 정답을 적어낸 것 때문이죠?
안호림: 그 문제를 낸 것은 잠시 기간제 교사로 근무했던 화학교사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경찰은 그 선생님이 시험지 유출을 하지 않았을까 하고 의심했다고 합니다. 문제가 된 시험문제는 2학년 1학기 화학시험 서술형 첫 번째 문제입니다. 최초 정답은 ‘10:11’(십 대 십일)이었는데, 이게 오타여서 나중에 맞는 정답인 ‘15:11’(십오 대 십일)로 바뀌었습니다. 풀이과정을 정확히 썼는데 변경 전 정답을 그대로 쓴 학생은 단 한명이었고, 그게 쌍둥이 중 한 명이었다는 겁니다.
아나운서: 경찰 조사가 끝나서 결과가 나왔는데, 어떤 증거들이 나왔나요?
안호림: 경찰은 1학년 1학기 기말고사부터 2학년 1학기 기말까지 총 다섯 차례에 걸쳐서 시험지와 정답을 유출한 것으로 결론냈습니다. 특히 마지막 시험은 2학년 1학기 시험에서는 전과목인 12개 과목 전부가 유출됐다고 합니다. 경찰이 결정적 증거로 제시한 건 세 가지입니다. ‘쌍둥이 자매가 시험지에 정답표를 적은 것’과 압수한 암기장, 휴대폰 등에서 시험문제 정답이 발견된 것’, 그리고 ‘교무부장이 시험지가 보관된 금고의 비밀번호를 알고 있었다는 것’ 세 가지입니다. 하나씩 말씀드려보면, 먼저 경찰은 빼곡히 정답이 적힌 암기장과 포스트잇을 자택 수색 끝에 찾아냈습니다. 암기장에 적혀있는 객관식 정답들은 아무 맥락이 없이 숫자만 적혀있었습니다. 정답을 외운 게 아닌가 의심이 가는 상황입니다.
아나운서: 다른 두 가지 증거들은요?
안호림: 시험지에는 작은 글씨로 정답을 깨알같이 적어놓은 것이 발견됐습니다. 시험관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일부러 작은 글자로 쓴 게 아닌가 의심하고 있습니다. 또 쌍둥이 아버지는 올해 1학기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시험지가 교무실 금고에 보관된 날 근무 대장에 시간 외 근무 기록을 하지 않고 야근을 했는데요. 이 때 문제와 정답 유출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아나운서: 내신만 1등한 것이 아니라 교내 상이란 상은 다 휩쓸다시피 했다고 하던데요.
안호림: 숙명여고 학부모들은 그 점에 대해서도 의혹을 제기하고 수사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김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서 쌍둥이들의 교내 수상 성적에 대한 의혹을 제기했는데요. 쌍둥이 자매는 입학부터 2학년 1학기까지, 총 44개나 되는 교내상을 받았습니다. 받은 상의 종류도 다양합니다. 언니는 ‘어버이날 편지 쓰기 대회 우수상’, ‘미술창작 우수상’ 등 총 23개의 상을 받았고, 동생(이과)도 총 21개 부문에서 상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수상실적은 학교생활기록부에 기록되어 입시에서 큰 이점이 됩니다. 다른 학생들은 1년에 하나 받기도 힘든데 이해하기 힘들다는 반응입니다.
아나운서: 쌍둥이들이 자퇴서를 냈는데, 결국 퇴학시키기로 결정났죠?
안호림: 자퇴를 하면 성적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다른 학교로 전학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숙명여고 학부모들이 크게 반발했던 것입니다. 숙명여고는 처음에 신중히 검토하겠다고 했다가 경찰 조사 결과가 나오자 쌍둥이를 퇴학시키고, 전 교무부장은 파면시키는 것으로 결정했습니다. 쌍둥이 성적은 0점 처리하고 내신도 다시 산정하기로 했습니다.
아나운서: 이 사건 때문에 그렇지 않아도 불신받고 있는 내신이 문제가 되고 있다고 합니다. 정시를 더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도 강해지고요.
안호림: 수시전형은 수능 성적이 아닌 내신이 큰 비중을 차지하니까 당연한 반응이겠죠. 내신 문제는 사실 오래된 일입니다. 대입에 내신이 반영되기 시작하면서부터 문제점은 계속 있었는데요. 특히, 수시 비중이 점점 높아지고 있기때문에 내신 성적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올해 고2 학생들, 그러니까 쌍둥이들 대입을 치루는 2020년에는 수시 비중이 무려 77.3%나 됩니다. 수시가 도입된 초기인 2002년에는 29%에 불과했는데, 20년 사이에 두 배가 넘게 늘어난 수치입니다. 하지만 내신은 국가에서 관리하는 수능과 달리 일선 학교에서 관리를 하기 때문에 과연 믿을 수 있느냐라는 문제가 항상 있습니다.
아나운서: 숙명여고 사건 말고도 내신 비리 사건이 요 근래 몇 건이 더 있었다죠?
안호림: 워낙 내신 성적이 중요하다보니 비리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 7월에는 광주의 한 학교에서 행정실장이 시험지를 복사해서 학부모에게 건넨 것이 적발된 적이 있습니다. 지난 해 경기도 한 고등학교에서는 교사가 학교운영위원 자녀의 학생생활기록부를 수정한 일도 있었습니다. 심지어 전직 기간제 교사가 학생과 성관계를 맺고 성적을 조작해주었다가 구속된 일도 있습니다.
아나운서: 학생부종합전형 때문에 학생부도 중요해졌죠? 학생부야 말로 조작 가능성이 높을 것 같은데요.
안호림: 흔히 ‘학종’이라고 부르죠. 교과성적 뿐 아니라 비 교과 성적까지 반영하는 수시전형입니다. 학종에서는 학생부가 큰 역할을 하는데, 그러다 보니 여기도 문제가 있습니다. 의도적인 조작 뿐 아니라 워낙 적어야할 내용이 많다보니 고3 교사들이 업무에 치어서 공정한 학생부가 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한 주간지가 현직 교사를 인터뷰한 내용에 따르면,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너희들이 학생부에 담고 싶은 내용 써와라’라고 해서 그대로 쓰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게다가 요즘은 고액의 학생부 컨설팅까지 등장해서 어떻게 하면 대입에 유리한 학생부를 만들 수 있는지 설계도 해줍니다.
아나운서: 이러다 보니 정시 확대 얘기가 나오는 게 어떻게 보면 당연할 수도 있는데요. 정시 확대가 답일까요?
안호림: 그 문제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당사자인 학생들에게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정시가 더 공정하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입시정보업체인 진학사가 지난 5월 고3 학생 69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응답자의 68%는 정시가 더 공정하다고 대답했습니다. 정시비중을 지금의 20% 수준에서 40%까지는 늘리는 것에는 절반이 좀 넘는 51.9%가 찬성했습니다. 하지만 교육 전문가들, 정책전문가들 중에는 정시 확대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도 많습니다. 제도가 미비한 것은 사실이지만, 고등학교 교육 정상화를 위해서는 수시 확대가 더 바람직하다는 겁니다. 정시가 공정한 점에서는 더 뛰어날지 모르지만, 학생의 능력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데는 부족한 점이 많다는 것이죠. 경향신문은 12일자 사설에서 숙명여고 사태가 정시로 돌아가는 명분이 될 수 없다고 정시확대에 반대하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다른 신문들도 정시 확대에 대해선 비슷한 입장입니다.
아나운서: 그럼 안교수님은 어떤 방향으로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세요.
안호림: 무엇보다 이번 사건으로 바닥에 떨어진 내신과 학교에 대한 신뢰회복이 시급합니다. 잘못한 이들을 엄벌하는 건 당연하고요. 부모와 자녀가 같은 학교에 다니지 못하도록 하는 상피제를 도입하는 것 같은 조치도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교육 당국이 학교, 학부모, 수험생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교육현장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봅니다. 현재 제도에 문제가 있는 건 다들 인정합니다. 하지만 완벽한 제도는 없습니다. 문제는 어떻게 운영하느냐, 어떻게 제도를 고쳐나가냐, 하는데 있습니다. 내신의 문제점, 학종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계속 많은 지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교육 당국은 아직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제도의 취지가 좋다고 자동으로 좋은 제도가 되지는 않습니다. 대입제도를 개선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대로 운영되게 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중요합니다. 탁상 행정에 그치지 말고, 교육현장의 현실을 똑바로 파악하고, 문제점을 해결해나가는 노력이 절실히 필요해 보입니다.
아나운서: 오늘도 어느덧 마감할 시간이 되었네요. 안교수님 수고하셨습니다.
안호림: 마지막으로 수험생 여러분 수능 치르느라 고생 많았습니다. 노력에 걸맞는 성과 거두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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