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라디오 Y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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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바로보기]"폭력에 노출된 미디어, 그리고 증오범죄"-안호림 교수 11/3(토)
작성자 : ytnradio
날짜 : 2018-11-05 09:04  | 조회 : 4068 
[YTN 라디오 ‘열린라디오YTN’]
■ 방송 : FM 94.5 MHz (20:20~20:56)
■ 방송일 : 2018년 11월 3일 (토요일)
■ 출연 : 안호림 인천대 교수


아나운서: 미디어에 비춰진 세상에 대해 얘기를 나눠보는 <안호림의 미디어 똑바로 보기>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오늘도 스튜디오에 안호림 교수 나왔습니다. 안녕하세요.

안호림: 안녕하세요.

아나운서: 오늘은 무엇을 가지고 얘기를 해볼까요?

안호림: 지난 달 연달아 터진 세 건의 범죄가 미국 사회를 흔들고 있습니다. 10월 27일 피츠버그에서는 한 백인 남성이 유대교 회당에서 총기를 난사해 11명이 숨지는 등 총 17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하루 전인 26일에는 평소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정치인, 기업가, 유명인들에게 폭발물이 배달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범인이 겨냥한 사람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조 바이든 전 부통령,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억만장자인 조지 소로스, 영화배우 로버트 드 니로 등 입니다. 24일에는 켄터키 주 슈퍼마켓에서 그레고리 부시라는 백인 남성이 흑인 2명을 총으로 살해하는 ‘묻지마’ 총격 살인이 있었습니다. 오늘은 최근 미국에서 벌어진 범죄사건을 중심으로 미디어 속 폭력에 대한 이야기 해볼까 합니다.

아나운서: 미국은 총기로 인한 살인사건이 자주 발생하는 나라잖습니까? 그런데 이번 세 건의 사건이 유독 논란이 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안호림: 세 가지 사건 모두 이른바 증오범죄이기 때문입니다. CNN 방송은 ‘지난 72시간 동안 일어난 세 가지 사건의 공통된 점은 증오’라고 표현했습니다. 용의자 세 명 모두 40대~50대의 백인 남성인데요. 유대교 회당 총격 사건의 범인인 로버트 바우어는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유대인에 대한 경멸감과 적개심을 드러냈던 인물입니다. SNS에 올린 글에서 유대인을 ‘사탄의 자식들’이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회당에서 총격을 시작하기 전 ‘모든 유대인은 죽어야 한다’라고 외쳤다고 합니다.

아나운서: 다른 두 사건도 증오범죄라고요.

안호림: 그렇습니다. 켄터키 주 슈퍼마켓 총격 사건의 범인은 평소에도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일삼았고, 전 부인에게 자주 흑인을 비하하는 표현 ‘N단어(한국말로 하면 'X둥이' 정도의 경멸적인 표현입니다)’를 써서 욕했던 인종차별주의자입니다. 원래 흑인 침례교회에 들어가려다 문이 잠겨있어서 옆에 있는 슈퍼마켓으로 가서 무차별로 총격을 가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폭발물 테러 용의자인 시저 세이약은 트럼프 지지자이고 극우성향을 가진 사람입니다. NBC의 보도에 따르면 그의 페이스북 계정에서 “조지 소로스를 죽여라”, “사회주의자를 모조리 죽여라” 같은 혐오 글들이 발견됐다고 합니다.

아나운서: 비난의 화살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몰리고 있던데요.


안호림: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기간과 집권 후에도 사회 분열과 증오를 부추키는 말과 행동을 일삼았습니다. 미국은 이번 달 중간 선거를 치루는데요. 현재 공화당이 불리한 입장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열세를 극복하려고 이민자 이슈를 다시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이번에 타켓이 된 것은 온두라스와 과테말라 출신자로 미국에 입국하겠다며 대규모로 이동 중인 ‘카라반’ 행렬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카라반 행렬에 ‘범죄자들과 알 수 없는 중동 사람들이 섞여 있다’며 공포감을 부추키고 있습니다. 물론, 그가 증거를 가지고 한 발언은 아닙니다. 공격적이고 사회적 편견을 조장하는 발언을 자주 해온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사회분열을 더 심하게 만들고 정치적 폭력을 조장해온 결과라는 비판이 나옵니다.

아나운서: 그런가 하면, 최근 한국에서도 끔찍한 범죄가 연달아 일어났었죠?

안호림: 하루가 멀다 하고 흉악한 범죄뉴스가 계속 나오고 있어서 뉴스를 보기가 겁날 정도입니다. 지난 10월 14일, 강서구의 한 PC방에서 손님이 아르바이트생을 흉기로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살인 이유는 ‘불친절’해서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살인 방법이 잔인해서 사람들의 분노를 일으켰는데요. 피해자의 얼굴과 목 부위를 수십 차례나 찔렀다고 합니다.

아나운서: 부산에서는 일가족이 살해되는 일도 있었습니다.

안호림: 범죄 드라마에서나 나올 것 같은 사건이 발생했죠. 지난 10월 25일 부산 사하구의 한 아파트에서 조모씨와 조씨의 아버지, 어머니, 할머니가 살해된 채 발견됐습니다. 범인은 사건 현장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채 발견된 신모씨인데요. 신씨는 피해자인 조모씨와 작년부터 약 1년 정도 사귀다 헤어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경찰은 조모씨와 헤어진 것 때문에 원한을 품은 것이 살인 동기라고 결론지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이 소름끼치는 것은 수법이 치밀하고 잔인해서입니다. 신씨는 집에 있던 조씨의 아버지를 먼저 살해한 후, 귀가하는 가족들을 기다려서 차례로 살해했습니다. 범행을 준비한 것도 한달 전부터인 것으로 보입니다. 신씨 가방에는 살인에 사용하기 위한 도구가 56가지나 들어있었습니다.

아나운서: 뉴스를 보고 있다 보면 세상이 참 험하다는 생각을 저절로 하게 됩니다. 이런 사건들을 접할 때마다 우울해지고, 세상이 무섭다고 느껴지게 되는데요.

안호림: 언론학의 한 이론에 따르면 실제로 그런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이른바 ‘배양효과이론’ 또는 ‘문화계발효과이론’이라고 불리는 이론인데요. 영어로는 ‘컬티베이션(cultivation)효과’입니다. 우리가 실제 생활에서 살인 사건을 접하게 될 확률은 아주 낮습니다. 하지만, TV에서는 거의 매 시간 볼 수 있죠. 오늘 사건들처럼 실제 살인 사건을 뉴스에서 보기도 하고, 드라마나 영화에서 살인을 접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TV를 평균보다 월등히 많이 보는 사람들(중시청자: heavy viewer)같은 경우, 실제 세상도 험악하고 위험한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TV는 평생 동안 매일 보잖아요? 매일 TV를 통해서 수많은 폭력에 노출되다 보면 결국에는 세상과 사람들에 대해 불신하고 경계하는 태도를 갖게 되는 것이죠.

아나운서: 실제로 그런 효과가 있다고 증명됐나요?

안호림: 연구에 따라서 결론이 조금씩 다릅니다. 어떤 연구에서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고, 효과를 찾지 못한 연구도 있습니다. 이 이론을 적용한 논문 수백여 편을 검토한 연구가 하나 있습니다. 연구 결론에 따르면 효과가 작기는 하지만, 꾸준히 나타난다고 합니다. 결국 대부분의 사람들은 TV에 평생 동안 매일 수 시간씩 노출되기 때문에 효과 크기가 작다고 해도 무시할 수는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거죠.

아나운서: 얼마나 많은 양의 폭력을 미디어를 통해서 접하게 되나요?

안호림: 안타깝게도 한국 TV에 대한 통계는 없습니다. 미국 TV에 대한 연구는 몇몇 존재하지만 조금 오래된 것입니다. 1970년대 중반에 행해진 한 연구에 따르면, 미국 청소년들은 살인, 성폭행, 심한 물리적 폭력을 평균적으로 1년에 천 건 정도 접했다고 합니다. 20여년 후에 이루어진 연구에서는 그 숫자가 무려 10배로 늘어나서 1만 건입니다. 고등학교 졸업할 무렵이면 살인과 같은 강력범죄를 무려 20만 건이나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들 연구는 TV만 따진 것입니다. 대중음악, 만화책, 영화, 그리고 비디오 게임까지 다 합하면 그 숫자는 훨씬 늘어나겠죠.

아나운서: 20만 건이라는 숫자는 믿게 힘드네요. 미국 사회가 총격 사건도 자주 있고, 강력범죄도 자주 일어나는 분위기라서 TV도 그런 건 아닐까요?

안호림: 미국이 총기범죄에서 세계 1위이고, 각종 강력범죄도 자주 일어나는 나라인 것은 맞습니다. 미국에서는 매년 총과 관련된 사고, 사건 때문에 죽는 아이들 숫자가 폐렴, 천식, 독감, 에이즈, 암으로 죽는 아이들 수를 합한 것보다 더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TV에도 총격씬이 자주 등장합니다. 한국드라마나 뉴스에서는 총이 등장하는 건 보기 어렵잖아요. 하지만, 미국 범죄 드라마를 미국 사람들만 보는 것은 아니잖습니까? 우리나라에서도 몇 년 전에 ‘C.S.I’같은 미국 범죄드라마가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지금도 비슷한 드라마들을 계속 방송하고 있고요. 뉴스도 한국 사건은 없지만 이번처럼 미국에서 일어난 사건이 보도되니까, 미국보다 많지 않을 뿐이지 마찬가지로 자주 보게 됩니다.

아나운서: 이번 같은 폭력범죄가 발생하면 자주 미디어 탓으로 돌리지 않습니까? 미디어를 통해서 폭력에 노출되는 게 폭력범죄를 유발하는 효과가 있나요?

안호림: 미디어 폭력과 범죄 간의 관계를 연구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대개 범죄를 일으키거나, 사회적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성향인 공격성(aggression)간의 관계를 연구합니다. 미디어 폭력과 공격성 간의 관계에 대해서 수많은 연구들이 이루어졌지만 아직도 명확한 결론이 나지는 않았습니다. 미디어 폭력물이 공격적인 성향을 키우고, 공격적인 행동을 유발한다는 입장을 가진 사람들도 있지만, 반대로 아직 증거가 충분치 않다는 입장도 있습니다. 효과가 있다고 보는 사람들은 특히, 유아, 청소년들에게 큰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우려합니다.

아나운서: 어린 아이들은 어른들의 행동을 보고 쉽게 따라 하잖아요? TV를 보고 따라하다 보니 공격적인 성격이 되는 일은 없을까요?

안호림: 성격에 미치는 영향은 불확실하지만, 행동은 따라한다는 증거가 있습니다. 보보 인형 연구라는 유명한 실험 연구가 하나 있습니다. 오뚝이 인형 아시죠? 툭 쳐서 넘어뜨려도 금방 다시 일어나는, 공기로 가득 찬 인형이요. 보보 인형 실험은 그런 인형을 가지고 실험한 건데요. 실험은 아이들에게 성인 한명이 보보 인형을 때리고, 집어던지고, 올라타서 두들겨패고 하는 행위를 비디오로 보여준 다음에, 아이들이 인형에 어떤 행동을 하는가를 관찰한 것입니다. 예상할 수 있겠지만, 아이들은 비디오에서의 행동을 그대로 따라했습니다. 미디어가 공격성에 영향을 준다는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자주 인용하는 연구입니다.

아나운서: 모방하는 것 말고 다른 효과는 또 뭐가 있을까요?

안호림: 무감각해지는 효과가 있습니다. 폭력적인 내용에 반복해서 계속 노출되다 보면, 폭력에 덜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직접 느끼신 적도 있을 거에요. 요즘 액션 영화나 공포 영화는 예전에 비해 훨씬 더 생생하게 폭력을 묘사합니다. 처음에는 그런 장면이 충격적이지만, 여러 번 보고나면 반응이 훨씬 약해집니다. 하지만, 이런 효과에도 강한 반론이 있습니다. 인간의 뇌는 가상적인 것과 실제를 구분해서 처리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영화 안의 폭력에는 무감각해질 수 있지만, 실제 생활에서의 폭력에도 무감각해지는 건 아니라는 말이죠.

아나운서: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게 명확한 결론이 안 났네요.

안호림: 미디어만 연구하면 결론이 나오기 어렵습니다. 한 사람이 공격적인 성향을 갖게 되는 것, 폭력을 실제로 휘두르는 것, 나가서 살인과 같은 범죄를 저지르기까지 많은 요인들이 영향을 미칩니다. 이를테면 가정환경이 큰 영향을 미치는데요. 어려서부터 가정폭력에 노출될 아이들의 경우, 커서 폭력적인 성향을 갖게 될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입니다. 개인의 심리적 성향, 트라우마가 생길 정도의 경험, 친구, 주변 환경 등 다양한 요인들이 영향을 미칩니다. 미디어는 이중 하나일 뿐입니다.

아나운서: 오늘은 미국의 증오범죄로 얘기를 시작해서 미디어에 등장하는 폭력에 대해 얘기를 나눠보았습니다. 어느덧 시간이 다 되었는데, 마무리 말씀 부탁드립니다.

안호림: 미디어도 문화의 일부입니다. 물론 미디어가 현실을 과장하고 왜곡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미국 범죄드라마가 그리는 것처럼 미국이 매일같이 총기범죄가 일어나는 세상은 아닌 것처럼요. 하지만, 미디어는 현실의 반영이기도 합니다. 미디어에서 끔찍한 범죄가 자주 등장하는 것은 실제 우리 사회 일부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회에서 폭력범죄가 증가하는 것은 미디어만 바꾸는 것 가지고 막을 수 없습니다. 가정, 학교, 공동체까지 사회 전체가 힘써야 되는 일입니다. 이번에 벌어진 흉악범죄들은 비록 몇몇의 사람들이 벌인 일이지만, 편견과 증오를 용인하고, 심지어 부추기는 사회도 책임이 있지 않을까 하는 반성이 필요할거 같습니다.

아나운서: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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