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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우용 ”유치원 비리 1950년대 원조금 횡령부터 시작된 것”
작성자 : ytnradio
날짜 : 2018-10-18 09:27  | 조회 : 2883 
YTN라디오(FM 94.5) [김호성의 출발 새아침]

□ 방송일시 : 2018년 10월 18일 (목요일) 
□ 출연자 : 전우용 역사학자 


◇ 김호성 앵커(이하 김호성): 어제부터요. 뉴스의 중심에 있었던 내용이요. 사립 유치원 비리 문제가 온 국민들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출발 새아침 역사 선생님이시죠. 역사학자 전우용 박사님, 모시고 과거에는 이런 유치원 교육기능을 하는 곳에서 어떤 일이 있었을까. 한 번 여쭤보는 시간 마련하도록 하겠습니다. 박사님, 어서 오십시오.

◆ 전우용 역사학자 (이하 전우용): 안녕하세요.

◇ 김호성: 우리나라에도 처음 유치원이 생겨난 건 언제일까. 저는 이게 좀 궁금하더라고요.

◆ 전우용: 사실 유치원이 전 세계적으로도 그렇게 역사가 길진 않아요. 일단 우리가 아이가 갓 태어났을 때 젖먹이 기간을 영아라고 하고요. 젖 떼고 나서 말을 좀 그럭저럭 배울 때까지를 보통 유아라고 불렀어요. 그래서 우리가 반말이라고 그랬잖아요. 이른바 어른들이 쓰면서 낮춤말 이런 뜻으로 쓰이고는 있는데 원래 이건 유아기까지만 쓰는 말이었어요.

◇ 김호성: 온전한 말이 아니라 반쪼가리 말이다. 그런 뜻이군요.

◆ 전우용: 한국말은 좀 특이해서 신분에 따라서 어미를 나누는 게 굉장히 복잡했거든요. 임금한테는 ‘하시옵소서’, 그다음에 대감 쯤 되면 존대라고 해서, 그게 존대인데요. ‘하십시오’ 그리고 상대라고 해서 ‘하세요’, 평대는 ‘하오’, 그리고 하대는 ‘하게’, 비대는 ‘해라’ 이런 식으로 복잡하게 나눠서 써야 했기 때문에 이것을 아이들이 배울 수가 없으니까 그 기간까지를 유아기라고 해서 면제해줬죠. 어미 활용을 면제해줘서 그때를 유아기라고, 반말 쓰는 기간을 유아기라고 불렀어요. 그 기간 동안에는 특별한 교육이라는 것이 없었죠. 아이가 말도 제대로 못 배우는데 무슨 교육을 하겠습니까. 게다가 영유아 사망률이 워낙 높아서 1950년대까지도, 그땐 전쟁 중이라 상황이 더 안 좋기는 했습니다만 영유아 사망률이 40%에 달했어요. 태어나서 5살 넘기고 살기가 확률이 반 정도밖에 안 됐기 때문에 거기에 교육하기 위해서 식량을 낭비하고 자녀를 괴롭히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었죠. 전 세계가 비슷했기 때문에 일단 유아교육이라든가 또는, 교육이라고 부르기가 좀 애매하긴 한데 양육, 사회적 양육이라는 개념이 탄생한 건 19세기 중반 이후의 일이고요. 그래서 1840년에 독일 프뢰벨이라는 사람이 킨더가르텐(Kindergarten) 아이들 공원이라는 이름의 시설을 만들었어요. 학교에 입학하기 전 단계로. 이게 세계 최초의 유치원이고, 영어권에서도 그래서 지금도 아직도 킨더가르텐이라는 독일어를 쓰죠. 유치원에 한해서만은. 그게 일본에 넘어와서 일본인들이 왜 그렇게 번역했는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적당한 개념이 없었던 모양이에요. 유아원도 아니고, 유치원. 우리가 유치하다고 하면 좀 욕처럼 쓰잖아요. 그런데 유치원이란 말로 번역을 했고요. 1860년대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에서 하나둘 생겼다가 우리나라에도 일본인 거류민을 위해서 1897년에 처음 부산에 생겼던 것이 유치원이란 이름을 가진 시설이 우리나라에 착륙한 첫 번째고요. 물론 이건 부산 거주하는 일본인들을 위한, 일본인 자녀들을 위한 시설이었고. 한국인들을 위한 시설은 좀 다소 의외인데 함경도 나남에 처음 나남유치원이라는 것이 만들어집니다.

◇ 김호성: 그렇습니까, 함경도 나남에요.

◆ 전우용: 그게 아마 선교사들이 일종의 어려서부터 조기 선교교육을 위해서 만들었던 것으로 추정되고요. 선교와 관련 없는 공립, 공립이라기보단 준공립 유치원에 해당하는 것으로는 1913년 서울에 경성유치원이 생기고, 그다음에 1914년에 당시 이화학당이었죠. 이화학당 부설유치원 생긴 것이 우리나라 프뢰벨식 양육법을 채택한 최초의 유치원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지금 경성유치원의 맥은 끊겼고요. 현재 이화유치원은 남아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역사가 가장 긴 유치원이다. 이렇게 이야기하죠.

◇ 김호성: 킨더가르텐, 그것을 아이들 공원인데 일제강점기 때 유치원 이렇게 됐다. 그러니까 사실 이 역사가 그렇게 무척 길진 않아요. 비교적 근대에 와서 나타난 것인데.

◆ 전우용: 100년이 좀 넘었죠.

◇ 김호성: 어떤 교육들을 했나요? 대충 짐작이 됩니다만, 그래도요.

◆ 전우용: 교육이라고 할 수 없죠. 요즘에야 장난감도 흔하고 부모가 아이들과 놀아주는 시간도 길지만, 예전에 저희 세대만 해도 우리 다 같이 기억하시잖아요. 아이를 낳으면 첫 아이가 둘째 아이 돌보고, 둘째가 셋째 돌보고. 그래서 큰딸이면 동생들 돌보는 게 엄마의 일이 아니라 큰누나의 일이고 그랬지 않습니까.

◇ 김호성: 한 지붕 아래에서 다 이뤄졌어요.

◆ 전우용: 그리고 장난감이란 것도 없으니까 흙 가지고 놀고, 이러던 거였잖아요. 그런 게 부족하던 시절에 각종 블록 쌓기라든가 이런 놀이기구 갖춰놓고 놀이학습 하는 것 정도. 사회성을 기르고 놀이를 하면서 동작을 섬세하게 다져놓고. 이런 정도였지, 요즘처럼 영어유치원에서 조기 한글교육 이건 기본적으로 유치원 교육이라고 부르기도 어렵고, 유치원 양육원칙과 어긋나는 거죠. 그런데 초기에는 그렇게 놀이기구, 함께 어울려 놀면서 동작을 섬세화하고 사회성을 기르는 이런 정도에 머물렀던 거죠.

◇ 김호성: 선행학습 그것이 곧 사교육 현장에서 이뤄지고 그 사교육 현장의 선행학습이 공교육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하잖아요. 그런데 공부를 가르치고 이런 건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런데 과거에 보면 이런 교육기관에서 선한 교육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교육기관의 비리가 나오는 경우도 있었을 거 아니에요.

◆ 전우용: 저게 우리 한국 현대사의 참 어려운 점이죠. 본래 교육사업이라고 하는 것은 공익사업이라고 보통 지칭하고요. 또 그래서 교육사업이라든가 또는 어린아이들 같은 경우 사회사업이라고 보통 부르죠. 일제강점기에는 사회사업가라고도 불렀고요. 이런 사업하는 사람들을 자선가라고도 불렀어요. 그러니까 학교를 세운다든가 유치원을 세운다든가, 이런 사람이 있으면 심지어 동상을 세워줄 정도로 사회적 추앙을 받는 일이었죠. 자비를 털어서 돈이 되지도 않는 일에 투자하는 거였으니까. 그래서 일제강점기까지는 이런 식의 사립학교들 설립자들에 대해서 나쁜 이야기가 돌 이유가 별로 없었어요. 그런데 문제는 해방되고 6·25 전쟁 겪고 나서 한국 사회 이른바 워낙 사회 전체가 황폐해지고, 일단 물리적으로도 폐허가 되어버렸으니까, 전쟁 때문에. 아무것도 없어서 미국 원조자금이 없으면 무엇도 할 수 없을 만큼 어려운 시기를 우리가 보냈잖아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고. 그런데 미국 원조자금이 정부 베이스로 들어오는 것도 있지만, 민간 선교단체들을 통해서 들어오는 것도 있었어요. 민간 선교단체에서 가장 우선순위를 두고 지급한 선교활동비가 어릴 때부터 교육하는 것이 선교활동으로도 도움이 되고, 어려운 나라 돕는 데에도 의미가 있으니까. 주로 선교라인을 통해서 민간 자금이 들어오면 이 자금을 가지고 유치원을 만든다거나 모자원 또는 고아원 이런 걸 만든다거나. 또 애초에 고아원을 만들었다가 유치원으로 변형한다거나. 이런 게 50년대에 굉장히 흔했습니다. 흔했는데 이게 돈은 외국에서 들어오고 쓰기는 국내에서 쓰니까, 지금도 정부보조금이 예산규정에 회계규정에 맞지 않게 쓰여졌고 또 일부 유치원 원장들은 그걸 지금 나오는 보도를 보면 횡령해서 사적으로 유용한 정황들이 여러 가지 발견됐다고 하지 않습니까. 지금도 그런데 50년대는 오죽했겠어요. 이게 하나의 관행처럼 돼버리죠. 미국에서 원조자금 받아서는 그걸로 유치원 사업이나 고아원 사업을 한다고 하고 상당액을 횡령하고 원아들에게는 아주 적게 지급하는. 저 다닐 때만 해도 주변에 전쟁고아들이 꽤 많았어요. 제가 60년대 초반 출생이니까 6·25 전쟁 끝나고 휴전하고 불과 9년째에 태어났거든요. 그러니까 제 또래 중에서 전쟁고아들이, 전쟁고아라기보다는 고아들이 상당히 많아서 고아원에 있으면그렇게 굶주리는 거예요. 굶주릴뿐만 아니라 심지어 강제노동에도 동원되고. 이게 고아원 원장들이 대외적으로는 사회사업가요, 독지가라고 행세하면서 실제로는 횡령범죄를 저지르고 있었던 것들이 사회적으로 묵인되다시피 하는 분위기였거든요. 그런데 저는 그 문화가 아직도 청산되지 않아서 일부 교육시설이나 보육시설 같은 경우 그랬던 역사, 전통 경험 이런 것들을 끌고 여기까지 온 것 아닌가. 이런 안타까운 마음이 들더라고요.

◇ 김호성: 오늘 갑자기 벌어진 사안은 아니네요. 어제와 오늘의 끊임없는 대화가 역사다. 이런 이야기도 있습니다만, 반면교사로 삼아야 하지 않겠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 전우용: 감사합니다.

◇ 김호성: 지금까지 역사학자 전우용 박사님과 함께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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