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라디오 Y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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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팩트체크]"북한에서 국민연금 200조 요구? 팩트체크! 外"-이고은 기자 9/16(일)
작성자 : ytnradio
날짜 : 2018-09-18 17:35  | 조회 : 6404 
[YTN 라디오 ‘열린라디오YTN’]
■ 방송 : FM 94.5 MHz (20:20~20:56)
■ 방송일 : 2018년 9월 16일 (일요일)
■ 출연 : 이고은 기자


사회자 : 지난 2주간 있었던 뉴스들 가운데 사실 확인이 필요한 뉴스를 팩트체크 해봅니다. 팩트체크 전문미디어 뉴스톱의 이고은 팩트체커 나오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이고은 : 안녕하세요?

사회자 : 최근 ‘북한에서 국민연금 200조원을 요구했다’는 글이 카카오톡 단체대화방과 유튜브,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널리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런 내용이 어디에서 비롯됐고, 누가 이런 내용을 확산시키고 있는 건지 궁금한데요. 일단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입니까?

이고은 : 온라인에서 떠돌고 있는 이 글은 바로 ‘국민연금 200조 북한에서 요구’라는 제목의 글입니다. 주로 노년층들의 단톡방, 보수개신교계 커뮤니티나 블로그 등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데요. 본문을 보면, ‘북한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 남한의 국민연금 200조원을 북한에 넘기라고 한다’, ‘국민연금은 국민 개인의 돈인데 정부에서 관여한다’, ‘2차 남북 정상회담 때 어떻게 대답할까’ 등의 내용이 담겨져 있습니다. 이 글은 유튜브에 ‘남북한 국민연금 통합?’이라는 제목의 영상이 게시되어 있는데 이것을 근거로 하고 있고요. 이 영상은 텍스트에 음성을 입힌 아주 단순한 형태의 동영상인데 8만회를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회자 : 그렇다면 그 동영상의 내용은 사실을 뒷받침할 만큼 팩트가 충분한 겁니까?

이고은 : 동영상에 등장하는 내용에 따르면, 8월 19일 김영철 부위원장이 남한의 국민연금 800조 중 200조를 북측에 넘겨야 한다고 비공식적으로 요구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북한이 남한이 부담할 통일 비용을 좀 앞당겨 달라는 설명도 있습니다. 이 때문에 우리가 국민연금의 조기인상과 연금지급시기 연기 등을 검토하고 있다는 내용도 있고, 그래서 국민연금 납부를 거부하는 투쟁을 해야 한다는 선동적인 내용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관계는 대부분 틀린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사회자 :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들이 사실과 다른 내용일까요?

이고은 : 우선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남북 고위급회담이 열린 것은 8월 13일이었고, 당시 우리측 조명균 통일부장관을 만난 북측 대표는 김영철 부위원장이 아니라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이었습니다. 남북대화에서 공식적으로 김영철 부위원장의 대화 상대는 서훈 국가정보원장이거든요. 또 국민연금 200조원을 요구했다는 발언도 사실이 아닌 것이, 국민연금은 정부 마음대로 사용처를 결정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국민연금관리공단의 국민연금기금운용본부에서 투자처를 결정하는데, 대부분 투자금은 국내외 주식과 채권에 투자되어 있는 상황이라서 수백조원씩을 현금화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더군다나 이렇게 중대한 일을 북한 측이 요구했다면 언론에서 다루지 않을 이유가 없는데, 관련한 주요 언론사의 기사는 단 한건도 없습니다. 전혀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 유포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겠죠.

사회자 : 그런데 예전에 한나라당 국회의원을 지냈던 강용석 변호사도 유사한 주장을 폈다고요?

이고은 : 강 변호사는 지난달 2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국민연금공단 내에서 국민연금 800조를 북한과 통합해 북한에 퍼줄 계획서를 만들어 놓았다는 글을 올렸습니다. 이 글의 내용이 앞서 말씀드린 동영상에 거의 그대로 쓰였고요. 강 변호사가 말한 계획서는 2017년 국민연금공단이 펴낸 ‘한반도 통일에 대비한 남북연금 통합 기본계획 연구’라는 보고서를 토대로 한 것으로 보이는데요. 보고서는 통일 이후 북한 지역의 체제 전환과 대량 실업 문제 등 경제적 후폭풍을 고려해서 연금 통합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분석했습니다. 그러나 통일 이후 국민연금 재정 회계는 남한과 북한을 분리하고, 북한 지역은 적립 방식이 아닌 완전 부과식을 적용할 것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강 변호사는 ‘굿뱅크와 배드뱅크의 합병을 통해 굿뱅크의 자산을 빼먹는 수법’이라는 표현으로 북한에 국민연금 퍼주기라는 주장을 폈습니다.

사회자 : 더 큰 문제는 이런 근거 없는 주장들이 사실처럼, 또는 근거가 있는 주장처럼 확대 재생산된다는 점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극우 언론 중에 이 루머를 사실 확인 없이 기사화한 곳이 있다고요.

이고은 : 보수 성향의 인터넷 언론사 뉴스타운은 지난 8월 21일 <유체이탈화법으로 책임회피하는 문재인!>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는데요. 이 기사 중에 “지금 일부 SNS에서는 남북 고위급 접촉시 북 참석자가 통일부장관(?) 조명균에게 국민연금에서 200조 원을 내놓으라고 했다는 의혹이 퍼지고 있다. 이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밝히고 만에 하나 사실이라면 왜 북이 남한에다 대고 천문학적인 국민연금적립금을 내놓으라고 했는지 문재인이 직접 밝혀야 한다”는 부분이 있습니다. 언론사라면, 인터넷에 떠도는 루머를 그대로 옮겨 쓰기보다 사실관계를 확인해서 보도해야 함에도 루머를 의혹으로 표현하면서 마치 그럴법한 이야기처럼 확전하고 있는 것이죠. 또 태극기집회와 같은 자리에서는 이 내용이 마치 사실인양 기정사실화한 발언도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사회자 : 그렇다면 존재하지 않는 사실이 루머가 되고 의혹으로 커지면서, 점차 보수 진영에서 상당한 공세 거리로 커지는 모양새인데요. 전형적인 가짜뉴스 생산 방식이라고 볼 수 있지 않습니까?

이고은 : 통상 가짜뉴스가 생산되는 전형적인 상황입니다. 일단 근거 없는 일방적인 주장이나 루머가 떠돌기 시작하고, 그 주장과 루머가 의혹이 제기된다는 식으로 이슈화되면서 덩치가 커집니다. 그러면 그 의혹을 사실로 단정한 비판이 나타나고, 또 그것을 토대로 가짜뉴스가 공유되는 양상입니다. 그 누구도 진짜 사실을 확인하지는 않은 채, 루머가 덩치가 불어나면서 마치 기정 사실인양 둔갑하게 되는 것인데 아주 위험한 여론 형성의 전형이라고 볼 수 있어서 우려가 됩니다.

사회자 : 다음 뉴스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지난달 24일이죠 한국경제에서 최저임금 때문에 자살한 50대 여성의 이야기를 기사화했다가 논란과 화제가 되자 기사를 삭제한 일이 있었습니다. 미디어오늘과 오마이뉴스에서 확인한 결과 그런 사건이 벌어진 적이 없었던 것인데, 가짜뉴스 논란도 자연히 벌어졌지요.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됐을까요?

이고은 : 가짜뉴스 논쟁이 벌어지자 한국경제는 취재과정을 밝힌 두 개의 기사를 발행했는데요. 하나는 <구직시장 전전했던 ‘월평동 다둥이 엄마’는 왜 극단적 선택을 했나>, 또 다른 하나는 <한경은 ‘가짜뉴스’를 만들지 않았습니다>입니다. 한국경제는 이 기사들을 통해, 삭제된 기사가 가짜뉴스가 아니고 정상적인 취재과정에서 나온 것이며 일부 사실관계만 틀렸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자유한국당의 김용태 사무총장, 김성태 원내대표 등은 해당 기사를 인용해서 정부의 최저임금 정책을 비판했고, 또 여러 언론과 유튜버들이 이 기사를 인용한 뒤였습니다.

사회자 : 일부 사실관계만 틀렸기 때문에 가짜뉴스라 볼 수 없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가짜뉴스의 정의를 새삼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이고은 : 가짜뉴스는 2010년대 중반에 본격 등장한 저널리즘의 새로운 개념이죠. 물론 사회적으로나 학문적으로 완전히 합의된 정의는 없습니다. 여러 언론학자들의 정의들을 종합해보면, 가짜뉴스를 정의하자면 3가지 조건을 충족할 필요가 있습니다. 바로 내용이 거짓이어야 하고, 정치적 경제적 이익을 위해 독자를 속이려는 목적성이 있어야 하며, 마지막으로 기사 형식을 갖추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이중에 두 번째, 속이려는 의도와 목적성은 생산자 외에는 아무도 알 수가 없죠. 때문에 한국경제의 뉴스를 가짜뉴스로 봐야 할지, 오보로 봐야 할지 애매한 지점이 발생합니다. 사실, 언론이 보도하는 사실이 완벽을 확언할 수 없는 문제가 있고, 때문에 오보도 성실한 보도활동의 결과물이라는 평가도 있거든요.

사회자 : 그렇다면 한국경제의 보도가 가짜뉴스인가, 단순한 오보인가 이 문제는 기사를 쓴 기자와 데스크만이 알 수 있는 문제겠군요.

이고은 : 정황에 대해 추론해볼 수는 있겠죠. 한국경제는 한 달 동안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에 경기 침체 여파로 벼랑 끝에 몰린 자영업자들의 고충을 담은 시리즈 ‘2018 자영업 리포트’를 게재해왔습니다. 자영업자들의 고충이 바로 최저임금에 원인이 있다는 주제 의식이 있었던 것이죠. 한국경제 뿐만 아니라 한국의 대다수 보수 언론과 경제전문지들은 최저임금 때문에 노동자와 자영업자들이 모두 힘들어지고 있다는, 최저임금 인상의 부작용을 강력하게 강조하는 보도를 잇달아 내고 있습니다. 때문에 이런 시각에 맞는 적합한 케이스를 찾다보니까 ‘최저임금 때문에 해고된 50대 자살’과 같은 기사가 탄생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회자 : 해당 기사에서 최저임금 때문에 자살했다는 근거는 무엇이었습니까?

이고은 : 사실 이런 정황에 대한 유일한 증거는 제보자의 증언이었습니다. ‘최저임금 때문에 해고된 뒤 자살했다더라’는 증언이 이 기사의 제목을 결정한 셈인데요. 그러나 이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보기에는 부족하죠. 만약 자살한 여성을 해고한 식당으로부터 최저임금 때문에 해고를 했는지에 대한 최소한의 사실 확인을 했었다면, 이 기사가 가짜뉴스라는 비난에 휩싸이지는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취재를 하면서 이 사실을 확인하고자 했겠지만, 결과적으로 확인이 안 됐으니까 못 쓴 것일텐데요. 만약 그랬다면 확인이 안 된 사실은 쓰면 안 된다는 것이 저널리즘의 원칙 아니겠습니까? 이번 일은 저널리즘의 원칙이 흔들리게 된, 고질적인 언론의 취재 관행과 인터넷 뉴스 소비 시대의 암울한 면을 보여주는 사건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회자 : 가짜뉴스냐 오보냐, 이 문제보다는 저널리즘의 원칙을 지키는 문제가 더욱 중요하다는 말씀이 와닿습니다. 오늘 말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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