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라디오 Y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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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바로보기]"오랜 기다림, 짧은 만남 이산가족 상봉"-안호림 교수 8/25(토)
작성자 : ytnradio
날짜 : 2018-08-28 10:01  | 조회 : 2147 
[YTN 라디오 ‘열린라디오YTN’]
■ 방송 : FM 94.5 MHz (20:20~20:56)
■ 방송일 : 2018년 8월 25일 (토요일)
■ 출연 : 안호림 인천대 교수


아나운서: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셨습니까? 언론에 비친 세상사에 대해 얘기를 나눠보는 <안호림의 미디어 똑바로 보기>시간입니다. 오늘도 안호림 교수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안호림: 안녕하세요.

아나운서: 오늘 주제는 무엇인가요?

안호림: 이번 주에는 남북의 이산가족들이 70여년의 긴 세월 동안 꿈에도 그리워하던 가족들을 금강산에서 만났습니다. 올해로 21번째를 맞는 이산가족 상봉은 지난 4월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공동으로 선언한 판문점 선언에서 약속되었던 것입니다. 올해 들어 북한이 비핵화에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남북화해무드가 본격적으로 무르익어 가고 있기 때문에 이산가족 상봉이 앞으로 더 확대되고, 더 자주 개최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어보게 됩니다. 오늘은 이산가족 상봉에 대해 얘기해 볼까 합니다.

아나운서: 이번 이산가족 상봉은 두 번에 걸쳐 각각 2박 3일의 일정으로 진행되죠?

안호림: 남측 신청자들이 북한의 가족들과 만나는 1차 상봉이 20일부터 22일까지 있었고, 현재는 북측 신청자들이 남한의 가족들과 만나는 2차 상봉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각각 2박 3일씩의 일정으로 이루어집니다. 첫날은 2시간 단체상봉이, 둘째 날 오전에는 각자 숙소에서 개별상봉을 하고 오후에는 다시 단체상봉을 합니다. 마지막 날 두 시간 작별상봉을 마지막으로 다시 기약 없는 이별을 하게 됩니다. 이번에는 마지막 날 상봉 시간을 우리 쪽의 요구로 3시간으로 늘렸습니다. 2박 3일의 일정이지만, 실제 가족이 상봉하는 시간은 12시간에 불과했습니다. 70여년을 기다려 만나는 것치고는 너무 짧기만 한 시간이죠.

아나운서: 마음이 아픈 건 선정되고도 건강 때문에 끝내 포기하신 분들도 있다는 것인데요.
 
안호림: 매번 건강이 너무 악화되어서 그토록 그리던 가족들과의 만남을 포기한 선정자들이 몇몇 있었습니다. 이번에도 최종 참가가 확정되었던 93명의 신청자 중 90대 2명, 80대 2명이 고령과 건강 악화 등의 이유로 끝내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상봉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가족이 세상을 떠나 만남이 성사되지 못한 안타까운 사연도 있습니다. 평안 순천군 출신인 조성연 할머니(86세)의 경우 80년대부터 계속 이산가족 상봉 신청을 해오다 이번에 처음으로 당첨되었습니다. 그런데, 북의 여동생이 올해 3월에 세상을 떠난 것으로 확인되어 여동생을 만나는 바람은 끝내 좌절되었다고 합니다.

아나운서: 이제 이산가족 신청자들이 연세가 너무 많으시더라고요. 저러다 차례가 오기 전에 돌아가시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었습니다.

안호림: 모두가 걱정하는 점이 바로 그것입니다. 한국전쟁이 1950년이었으니까 무려 68년이 흘렀습니다. 당시 열 살이었던 꼬마가 지금은 78세입니다. 부모님들은 100세 가까운 연령이시죠. 이산가족의 고령화는 이산가족 상봉이 처음 시작된 2000년에도 지적된 바 있습니다. 1988년부터 현재까지 이산가족 신청자는 약 13만 3천여명입니다. 이 중 7만 6천여명이 이미 사망했고, 5만 7천여명이 생존해 있습니다. 이중 80세 이상 고령자가 62.5%, 90세 이상이 21.4%나 됩니다.

아나운서: 벌써 절반 이상이 돌아가셨네요.

안호림: 그렇습니다. 문제는 워낙 고령층이 많다보니 매년 3,800명 정도가 세상을 떠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올해 6월 한 달 동안에도 316명이 사망했습니다. 한국은 평균 수명이 82세이라 상대적으로 낫지만, 북한은 불과 70세라서 시간 여유가 별로 없습니다. 이산가족 상봉 때마다 남북 각각 100명이 조금 안 되는 신청자들이 참가하고, 이들과 만나는 가족의 수도 수백 명 수준입니다. 그동안 상봉의 꿈을 이룬 이들은 4,186가족(1만 9,930명)에 불과합니다. 그나마 2015년 이산가족 상봉을 마지막으로 한동안 중단되어 있었기 때문에 지난 3년 가까운 시간 동안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산가족 상봉을 정례화하고 규모를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아나운서: 가슴 아픈 사연들도 많고, 보는 이들로 하여금 감동의 눈물을 흘리게 하는 장면도 자주 나옵니다. 무엇보다 다시 이별할 때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 걱정이 되곤 하던데요.

안호림: 마지막 날 단체상봉은 시작부터 눈물로 보낸 시간이었다고 합니다. 70여년을 기다려 겨우 만났는데, 사흘이라는 짧은 시간을 같이 하고 다시 헤어져야 한다는 생각에 다들 마음이 찢겨졌던 것이겠죠. 사흘이라고 하지만 실제 만나는 시간은 12시간에 불과하고, 개별상봉은 한 차례 두 시간밖에 안되어서 속에 쌓인 얘기는 시작도 못했을 것 같습니다. 이번에 헤어지면 살아서 다시 만났을 수 없다는 걸 모두 말은 안하지만 알고 있을테니 더욱 마음이 아플 것만 같습니다. 솔직히 저였다면 사흘 내내 다시 만난 기쁜 마음에, 또 헤어져야 한다는 슬픔에, 울기만 하고 말도 제대로 못했을 것 같아요.

아나운서: 수십년간 헤어진 가족을 만나는 일은 기쁘기만 한 일이겠지만, 다시 헤어지고 돌아오면 후유증도 상당할 것 같습니다.

안호림: 그래서 적십자사에서는 상봉이 끝난 후 상봉 가족들에 대해 심리치료를 실시합니다. 지난 2015년 이산가족 상봉 때는 적십자사가 통일부와 공동으로 이산가족 사후 심리치료를 벌였습니다. 상봉가족들에게 전화를 걸어 심리상태를 파악하고 응급치료가 필요한 경우 전국 적십자사 지사를 통해 치료를 실시하는 방식입니다. 2014년에도 30회 가량 심리적 응급처치를 했다고 합니다.

아나운서: 수많은 이산가족이 있다는 것은 전쟁 직후에도 이미 알고 있었을텐데, 전쟁이 끝난 후에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은 없었나요?

안호림: 정전협정을 맺을 때, 협정 안에 ‘실향민간귀향협조위원회’를 설치해서 남북이 이산가족문제를 인도적 차원에서 해결하도록 한 조항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북한의 비협조적인 태도, 전쟁 직후 극에 달한 남북 간의 적대감, 동서 냉전이 절절에 달한 국제정서 등으로 인해서 별다른 소득을 거두지는 못했습니다. 본격적으로 남북 간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위한 대화가 시작된 것은 70년대초 잠시 남북 화해무드가 조성되었을 때입니다. 71년부터 77년까지 총 29차례에 걸친 남북적십자회담을 열어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을 협의했지만 성과 없이 끝났습니다.

아나운서: 남북 간 이산가족 상봉이 처음 이루어진 것은 언제죠?

안호림: 1985년 고향방문단 교환이 처음입니다. 1985년 수년간 단절되어 있던 남북대화가 재개되었습니다. 1984년 우리가 큰 수해를 겪었을 때 북한이 수재물자를 지원해주겠다고 한 것을 우리가 수락한 것을 계기가 된 것입니다. 북한이 우리한테 수재물자를 지원하다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상상이 잘 안가죠. 재개된 남북적십자회담에서는 1985년 9월 남북의 고향방문단이 서울과 평양을 방문해서 가족들을 만나는 성과를 이루어냈습니다. 하지만, 고작 남측 35명, 북측 30명이라는 작은 규모였습니다. 하지만 1985년 한 번으로 그쳤고, 이산가족 상봉이 재개될 때까지는 15년이라는 세월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아나운서: 다시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진 것은 2000년이죠?

안호림: 90년대 들어 북한은 극심한 경제난을 겪었고, 94년에는 김일성 주석이 사망하는 등 위기를 겼었습니다. 또한 북한이 핵개발 등으로 인해서 남북대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죠. 이런 국면이 극적으로 전환된 것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역사적인 평양방문으로 성사된 사상 첫 남북 정상회담으로부터입니다. 두 정상간 합의를 통해 6.15남북공동성명을 발표되었고, 그 해 바로 첫 공식적인 이산가족상봉이 이루어졌습니다. 그 이후 이산가족 상봉은 2000년에 합의한 틀에 따라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아나운서: 2000년부터 2018년인 올해까지 총 21번이면 해마다 한 번이 조금 넘게 이루어진 셈이네요.

안호림: 단순히 나눗셈을 해보면 그렇지만 정권마다 양상이 상당히 달랐습니다. 이산가족 문제는 남북관계 분위기와 뗄 수 없는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남북이 화해무드일 때는 자주 이루어졌지만, 남북관계가 경색되었을 때는 이산가족 상봉도 중단되었었습니다. 가장 많은 이산가족상봉이 이루어진 것은 참여정부 때입니다. 2003년부터 2007년까지는 총 11차례의 상봉이 이루어졌습니다. 반면 MB정부, 박근혜정부 총 9년 동안은 북한의 미사일, 핵개발, 연평도 포격 등으로 인해 남북관계가 경색되어 4차례 밖에 열리지 못했습니다. 이번 정권에서도 정권 출범 첫 해인 2017년에는 남북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아 이산가족 상봉은 거론조차 되지 못했었습니다,

아나운서: 수십년간 헤어진 가족을 다시 만나고 싶어 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가지는 당연한 감정일텐데, 남북관계라는 정치상황에 좌우된다는 사실이 안타깝습니다. 

안호림: 안타깝지만, 빠른 시일 내 큰 변화가 있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동안 이산가족 문제 해결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 온 것은 언제나 우리 쪽이었습니다. 이에 비해 북한은 때로는 정치적 이유로, 때로는 우리가 알 수 없는 이유, 말도 되지 않는 이유로 대화를 중단하곤 했습니다. 한국 언론들은 이산가족 상봉이 있을 때마다 이산가족 상봉문제는 인도주의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입을 모아 주장해오고 있습니다. 상봉 회수도 늘리고, 규모도 확대하고, 서신교환, 고향방문까지 확대해야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 언론의 주장이 북한에게 영향을 전혀 주지 못한다는 것이죠.

아나운서: 아직도 이제나 저제나 헤어진 가족을 만날 수 있을까 기다리고 있는 신청자들이 수만명이 남아 있습니다. 이런 기다림이 조금이라도 짧아지려면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요?

안호림: 우리도 많은 노력을 해야되겠지만 무엇보다 북한의 태도 변화가 핵심적인 문제입니다. 말씀드린대로 남한은 줄곧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왔습니다. 북한의 변화는 우리와 국제사회, 그리고 무엇보다 북한 스스로가 노력해야 가능할 것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올해부터 북한이 사뭇 예전과 달라진 태도를 보이고 있고, 남북간, 북미간 대화가 실질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는 희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남북간 적대적 관계를 청산하고 신뢰를 쌓아올려 북한이 보다 열린 마음과 태도로 우리를 대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남아있는 이산가족들을 생각하면 서둘러야겠지만, 조그마한 성과라도 차곡차곡 쌓아가야 할 것입니다. 70년간의 적대관계가 하루아침에 청산될 수는 없을 테니까요. 이산가족 문제는 정치적 계산과 이념적 판단을 뛰어넘는 인도주의적 문제임에는 누구나 동의할 것입니다. 같은 하늘 아래에서 서로의 생사도 모른 체 속절없는 기다림의 세월을 보내는 이들이 한 명이라도 줄어들 수 있도록 우리 모두 힘을 합쳐야 할 것입니다.

아나운서: 지금도 언제나 만날 수 있을까 하염없는 기다림을 계속하고 계시는 이산가족 여러분들이 한시라도 빨리 가족 상봉의 꿈을 이룰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래봅니다. 안 교수님 수고하셨습니다. 다음 주에 다시 뵙겠습니다.

안호림: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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