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전성기, 오늘
  • 진행자: 김명숙 / PD: 신아람 / 작가: 조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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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을 깨워라!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과 함께했던 잊지 못할 그림 수업 - 이경신 화가
작성자 : ytnradio
날짜 : 2018-08-16 12:20  | 조회 : 2276 
YTN라디오(FM 94.5) [당신의 전성기 오늘] 
□ 방송일시 : 2018년 8월 16일 (목요일) 
□ 출연자 : 이경신 화가

꽃중년의 룰루랄라, 청춘을 깨워라!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과 함께했던 잊지 못할 그림 수업 - 이경신 화가


◇ 김명숙 DJ(이하 김명숙): 오늘은 앞서 말씀드린 대로 이경신 화가와 함께 이야기 나눌 텐데요. 우리가 시간이 아무리 흐른다고 해도 절대 잊어서는 안 될 것들이 있고, 잊혀선 안 될 분들이 있습니다. 그중에 우리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있잖아요. 바로 어제가 광복절이었죠. 그리고 그저께 8월 14일이 올해 처음으로 시행된 세계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입니다. 그래서 그런 뜻깊은 날을 보내고 오늘 이경신 화가님을 모시고 관련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 이경신 화가(이하 이경신): 안녕하세요.

◇ 김명숙: 반갑습니다. 제가 오늘 화가님 들어오시면서 악수하면서 손을 잡았는데 정말 따뜻했어요. 그래서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분이구나, 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아마 그런 것들이 우리 위안부 할머니들께 다 전해졌던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드네요. 그런데 사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과 어떻게 해서 미술 수업을 시작하게 된 건지 궁금해요.

◆ 이경신: 제가 20 몇 년 전 미대를 갓 졸업하고요. 전시회가 있어서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밤낮으로 시간이 바뀌어요. 그런데 그걸 준비하는 과정에 밤을 새우고서 조금 피곤한 상태에서 졸고 있었는데 그때 라디오를 항상 켜놓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게 지하실이었기 때문에 시간을, 해가 뜨는지 안 뜨는지 잘 몰랐는데 유열 씨가 아침 방송을 하고 있었어요. 그때 나눔의 집에서 할머니들 한글을 모르신다고 자원봉사자를 찾는 소개 광고를 하셨어요. 그래서 그때 잠이 딱 깨서, 2년 전에 김학순 할머니가 처음 증언했던 게 생각나서 무조건 연락해야겠다. 이렇게 생각해서 연락을 드리게 됐어요.

◇ 김명숙: 김학순 할머니께서 그 당시에 1991년이죠.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그 이후에 2년 후에 한글을, 그래서 나눔의 집을 찾게 되신 건가요, 1993년에?

◆ 이경신: 라디오가 연결해줬다고도 볼 수 있어요.

◇ 김명숙: 지성에 감성을 더하는 라디오입니다. 그래서 한글 수업을 하러 가셨는데, 거기서 미술 수업으로 어떻게 전환하셨어요? 물론 전공이기도 하지만.

◆ 이경신: 처음에 제가 할머니들을 어떻게 도와드려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일단 만나봐야겠다 생각해서 만났는데 한마디도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인사만 하고 할머니들이 고통스러운 과거를 갖고 있다는 걸 제 머릿속에서 생각하니까 그 앞에서 웃는 것도 죄송하고 그래서 뭘 잘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좀 후회했어요. 제가 이 할머니들을 어떻게 도와드려야 하나. 괜히 마음만 앞서서 왔는데. 그래서 일단 한글을 가르쳐 드리려 왔는데, 청소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왔는데 청소보다는 제가 그림에 더 소질이 있어서 그때 생각하게 됐어요. 그림을 가르쳐 드리면 제 마음의 무거움을 내려놓고 관계를 지속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미술 수업을 하게 됐죠.

◇ 김명숙: 그렇게 좋은 생각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그런 걸 말씀드렸을 때 반응이 어떻게 오는지도 두려웠을 것 같기도 해요. 그 당시만 해도, 물론 김학순 할머니께서 최초로 위안부 피해자 증언을 하신 분이잖아요. 그때가 바로 1991년 8월 14일. 그래서 그저께 최초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 기림의 날로 국가기념일로 지정됐잖아요. 그런데 그때도 김학순 할머니께서 자신의 마음에 있는 이야기를 끄집어내 놓았기 때문에, 그런 용기가 있었기 때문에 다른 분들께서 연달아 용기를 내시고 표현했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1993년까지만 해도 마음에만 담아놓고 계신 분들이 많고, 더군다나 자기 잘못도 아니었지만 겉으로 드러내기가 정말 어려운 일이잖아요. 가족들도 있고, 그런 분들을 생각하면. 그래서 선뜻 그림을 그려서 표현한다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 이경신: 처음에는 저도 할머니들이 당신의 상처를 그림으로 표현할지 아무도 몰랐어요. 할머니도 몰랐고 저도 몰랐어요.

◇ 김명숙: 더군다나 그림이라는 게 아무나 그린다고 생각 안 하잖아요. 일반인들도 소질이 있어야 할 것 같고, 취미가 있어야 할 것 같고.

◆ 이경신: 그냥 20대 중반의 나이에 할머니들이 너무 안 돼 보여서 즐거운 일을 찾아 드리자, 그것부터 시작했거든요. 그런데 제 의도랑 전혀 상관없이 할머니들은 갑자기 한글 수업에 미술 수업에, 이렇게 하니까 부담이 된 거예요. 저는 완벽한 결론을 냈다고 생각하고 미술 재료를 다 싸서 갔어요. 그런데 할머니들이 무슨 이 나이에 그림이냐, 이렇게 하시면서 자꾸 수업을 잊어버리시는 거예요. 그런데 제가 지금은 중년에 들어섰지만 그때 정말 어린, 모습도 순진하고 그렇게 생겼는데 할머니들 앞에서 그림 수업하자는 이야기도 못 하고 괜히 기다리기만 하는 거예요. 그게 불쌍해서, 처음에는 할머니들이 제가 불쌍해서 수업에 참여하셨어요. 저는 제가 도와드리러 갔는데 할머니들은 꼬맹이가 와서 말도 못하고 기다리고 있으니까 그게 안 돼 보여서 참여했던 것 같아요.

◇ 김명숙: 할머니들의 사랑이 오히려 역으로 전해졌고, 어쨌든 마음이 교류된 거잖아요. 그래서 처음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을 때 첫 그림을 그리면서 할머니들의 반응이 어떻게 변해가던가요?

◆ 이경신: 처음에는 미술 수업을 하기에 할머니들이 학교도 안 다니셨고 그림도 안 그려보신 분들이 많아서 제가 당황했어요. 어떻게 지도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미술 수업 기초를 가르쳐 드렸어요. 그런 다음에 6~7개월 지난 다음에는 할머니들의 생활에서 굉장히 감춰놓은 상처들이 보이더라고요. 서로 다투신다든가, 그동안 어렵게 사셨을 거 아니에요. 그 과정에서 생긴 또 다른 상처들이 표현되는 거예요. 그걸 처음에는 몰랐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눈에 보이더라고요. 그때부터 고민을 시작했어요. 할머니들이 그림으로 당신들의 상처를 표현하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이런 고민을 하면서 미술치료라는 걸 찾게 됐어요.

◇ 김명숙: 그러면 일단 그림으로 마음을 표현하기까지도 굉장한 용기가 필요했을 거고, 그런 과정을 쭉 지켜보셨을 거 아니에요. 그러면 초반부의 그림과 점점 달라지는 그림의 분위기도 있을 것 같은데. 색조라든가 등등, 어땠어요?

◆ 이경신: 처음에는 굉장히 물꼬를 트기 어려워요. 그런데 그것 때문에 저도 고심을 많이 했고. 그리고 제가 미술치료를 그때는 몰랐기 때문에 마음이 다칠까 봐 조심스럽게 접근했는데 이용수 할머니가 심상 표현을 처음으로 해보는 날이었는데 이용수 할머니의 성격하고 그 수업하고 딱 맞아떨어지는 거예요. 할머니의 성격은 자기 자신을 잘 표현하시는 분이에요. 다른 할머니들에 비해서. 요새도 굉장히 활동을 많이 하시잖아요. 그런데 그 미술 수업에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수업이었는데 할머니들이 기쁨이나 슬픔이나 화남이나 어떤 한 가지만 생각해서 그게 무엇이었는지 생각하고 표현해보자, 했는데 사실 그게 어려운 일이거든요. 그런데 이용수 할머니가 붓을 들더니 회오리치는 올 컬러의 격정적인 선을 쓰시는 거예요. 그러더니 복잡한 세상살이라는 거예요.

◇ 김명숙: 여러 가지 색을 막 섞어서 회오리를 그리시면서.

◆ 이경신: 그 표현을 하시면서 살면 살수록 문제가 풀리지 않고 세상살이가 복잡하게 꼬인다. 그러면서 당신들의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는 걸 표현하신 거예요.

◇ 김명숙: 저는 지금 이렇게 얘기만 들어도 소름이 돋으면서 정말 얼마나 가슴에 담은 게 힘들면 저러셨을까. 표현해내기까지 굉장한 용기가 필요했겠다 싶거든요. 그분의 첫 그림에 용기를 받아서 다른 할머니들께도 자극돼서 또 다른 용기가 이어져 나왔을 것 같아요.

◆ 이경신: 네. 다른 할머니들도 충격을 받았어요. 다른 할머니들뿐만 아니라 저도 충격받았어요. 제가 그 수업을 하기 위해서 고민했던 순간들이 한 그림으로 다 해결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이제 물꼬를 틔웠으니까. 그렇게 해서 그다음부터는 조금씩 마음을 표현하기 시작했어요.

◇ 김명숙: 그렇게 표현하다 보면 스스로, 서로 위로가 되기도 했을 것 같아요.

◆ 이경신: 네. 이용수 할머니의 마음이 그대로 전달돼서 다른 할머니들도 나도 그런 이야기가 있는데, 하면서 끄집어내기 시작하셨어요.

◇ 김명숙: 그게 바로 어떤 면에서 그림을 그리면서 표현해냄으로써 얻어지는 치유의 힘, 이렇게 말씀할 수 있는 건가요? 대단한 것 같아요, 그림 그린다는 것 자체가. 그런데 5년 정도 함께 꾸준히 해 오신 거잖아요. 힘든 점도 물론 지금 중간중간 말씀하셨겠지만, 이런 일이 참 보람됐다든가,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는다는 것도 있을 것 같아요.

◆ 이경신: 너무나 많은데요. 할머니들이 일단 저는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어요. 처음에는 할머니들이 안 되셔서 돕기 시작했는데 그다음에는 저는 미술 선생님으로 갔잖아요. 그런데 할머니들 세대의 선생님은 하늘이신 거예요. 제가 나이가 너무 어리고 손녀뻘이잖아요. 나이가 어리고 할머니들은 연세가 평균 70이셨는데 그래도 깍듯이 저한테 미술 선생님, 미술 선생님 그러시면서 그림 수업을 하셨기 때문에 한마디로 정의하면 사제의 정, 이런 걸로 5년이 이어졌던 것 같아요. 제가 그림을 뭘 해보세요, 하면 그걸 해내시고, 또 그다음 걸 해내시고. 저는 얼마나 할머니들이 다음 단계를 해내실 수 있는지 궁금해서 또 제시하고, 할머니들은 또 하시고. 그게 쭉 이어져서 5년이나 됐더군요.

◇ 김명숙: 그 과정에서 가장 마음에 남았던 할머니들의 말씀이라든가 그림이 있다면 어떤 걸 꼽으실 수 있을지?

◆ 이경신: 너무 많은데요. 아까 이용수 할머니의 그림들, 처음 이끌어주셨기 때문에. 그다음에는 강덕경 할머니의 첫 성폭행 당한 아픈 상처를 그린 그림, ‘빼앗긴 순정’이란 그림이 있어요. 그런데 그 그림을 계기로 다른 할머니들이 정말 상처들을 많이 끄집어내셨거든요. 그 그림이 굉장히 중요한 그림이었고요. 그다음에는 김순덕 할머니의 ‘못다 핀 꽃’, 제가 낸 책 제목하고 똑같아요.

◇ 김명숙: 이번에 <못다 핀 꽃>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출간하셨잖아요. 그게 할머니의 작품 제목이었군요.

◆ 이경신: 그것도 굉장히 재미있는 일화가 있는데요. 어른들이 수집을 많이 해놓잖아요. 모으는 거 좋아하시는데 동네 한 바퀴라고 일명 할머니들이 눈 떠서 동네 한 바퀴를 돌면서 쓸 만한 거 있나 없나 수집을 해 오시는데, 어떤 집에서 수명을 다한 병풍을 버렸나 봐요. 그런데 꽃 자수 병풍이었거든요. 그걸 다 떼어내서 가져오셔서, 아까워서 그걸 빨아서 다려서 표구하고 싶은데 너무 비싼 거예요. 표구사 가서 여쭤봤는데. 그래서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미술 시간에 저한테 내보이시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때 문득 여기에 그림을 할머니가 그리면 좋겠다 싶어서 어떤 자수가 제일 마음에 드세요, 그랬더니 지금 그림 그린 ‘못다 핀 꽃’을 집으시더라고요. 그러더니 거기에 그림을 그리시게 되고, 제목도 ‘못다 핀 꽃’이라고, 그렇게 만들어진 계기가 된 그림. 그다음에 ‘끌려감’, 너무나 많아요.

◇ 김명숙: 제목만 들어도 그림이 어떨까 가히 짐작이 가고요. 실제로 그림을 직접 보면 더 다르게 전해질 것 같거든요. 해외에서 전시도 많이 하셨다고 들었어요. 반응도 너무 좋았다면서요. 세계에 알릴 기회도 있는 거고.

◆ 이경신: 할머니들과 제가 여러 곳에 전시했는데 그중에서도 제일 의미가 있고 마음에 남는 전시는 당연히 일본 전시예요. 일본에도 시민사회분들 좋은 분들 굉장히 많으세요. 저희를 초대하셨던 분들은 구 일본군에 의한 성적 피해 여성들을 돕는 모임이라는 곳이었는데요. 거기서 전시하면서 일본 관객들한테 굉장히 큰 울림을 주었어요. 그래서 언론에도 굉장히 많이 나고, 할머니들 보러 많이 와서 그림 앞에서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고 인사하고 그냥 지나가기도 하고, 그림 어떻게 그리셨나 여쭤보기도 하고. 그런 일들이 있었죠. 그런데 할머니들이 그림을 그려 전시하는 것과 증언하는 것의 차이가 있어요. 증언할 때에는 너무 괴로운 거예요. 옛날 상처를 다 끄집어내야 하니까 계속 눈물 흘리면서 이야기하시는데, 그림 그릴 때는 조금 달랐어요. 사람들이 와서 할머니들의 상처가 된 그림이지만 그걸 보면서 칭찬하고, 그러면서 굉장히 뿌듯한 게 있고 자랑할 게 생긴 거예요. 그래서 저도 그런 할머니들을 보면서 굉장히 보람이 있었고요. 그런데 한 가지 에피소드가 있었는데 일본 전시회 때 그림을 언론에서 많이 광고됐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그림을 보기도 전에 전화가 한 통 왔어요. 

◇ 김명숙: 어떤 전화였어요?

◆ 이경신: 그림을 찢어버리겠다고. 옛날에 일본군이, 어떤 분이었는지는 모르지만 할머니들의 존재가 안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 김명숙: 그래서 어떻게 반응하셨어요?

◆ 이경신: 김순덕 할머니가 되게 마음이 약하신데 그 소식을 듣고 너무 놀라신 거예요. 저희도 놀랐죠, 관계자들도. 그런데 그 일본 분들이 달래주시면서 TV에서도 나오고 언론에서도 나오고 그러니까 별일 없을 거다. 이렇게 이야기해서 넘어갔는데 그 사건을 계기로 할머니들의 일은 현재진행형이구나. 전쟁이 끝나지 않았구나. 그런 걸 제가 느낄 수 있었어요.

◇ 김명숙: 그렇죠. 아직도 진행 중이지만 어쨌든 우리가 기억하지 않으면 사라질 수 있는 것들이잖아요. 그래서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거고. 지금 그렇게 할머니들을 비롯한 많은 분들의 한 분 두 분 용기가 모여서 새로운 용기를 낳고, 이런 현상들이 어쩌면 우리가 더 희망적으로 꿈을 꿀 수 있고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물론 아직까지 확실한 답은 없지만, 그 답을 향해서 우리가 지금 이렇게 이야기도 나누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그림으로 이렇게 마음을 표현하고, 표현함으로써 치유가 된다는 게 굉장히 큰 에너지를 낳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말씀을 들으면서 저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역사를 비롯해서 지금 현재의 일까지, 또 우리 청취자분들 가운데는 지금 겪는 아픔이 큰 분들도 많을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그림으로 어떻게 마음의 치유가 되는가에 관한 이야기는 노래 한 곡 듣고 나눠가면 좋겠습니다. 이효리와 이적이 함께 불러요. ‘다이아몬드’

(음악: 이효리 - ‘다이아몬드(With 이적)’)

◇ 김명숙: <당신의 전성기, 오늘> <청춘을 깨워라!> 이경신 작가와 함께 이야기 나누고 있습니다. 이번에 출간하신 책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그림 작품 제목 ‘못다 핀 꽃’이라는 데서 따온 책이라고 그러셨잖아요. 물론 책 읽다 보면 내용에 나오겠지만, 그 누구에게도 풀어놓을 수 없었던 내놓지 못했던 이야기를 용기 있게 할머니들께서 그림으로 표현해내면서, 그림을 그리면서 마음이 치유되는 과정과 의미를 담은 책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래서 아마 그 책을 읽은 많은 독자들 가운데서도 정말 위안을 받았다, 위로가 됐다, 나도 용기를 내 볼 힘이 생겼다 하는 분들도 많이 계실 것 같아요. 반응이 어떤가요?

◆ 이경신: 한 친구가 생각나는데요. 17살 고등학교 1학년 친구인데 정치외교에 관심이 많은 친구라서 사회 문제나 이런 데에 관심이 많아요. 그래서 위안부 문제도 잘 알고 있고 책도 많이 읽은 친구더라고요. 그런데 독자의 편지로 저한테 전달했는데, 그 친구가 이 책을 보고 그동안 읽었던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는 거리감이 있었대요. 그런데 이 책을 읽고 할머니 개인의 삶 속으로 자기 자신이 들어간 것 같다. 그러면서 할머니들의 상처가 바로 옆에서 느껴지고, 이 상처를 표현하기까지 얼마나 떨리고 두렵고 그랬을까. 그런 걸 자기 자신이 느끼겠다고 그러면서 280 페이지에서 눈물을 흘렸다고.

◇ 김명숙: 280 페이지가 뭘까 궁금해하실 것 같네요.

◆ 이경신: 그랬어요. 그래서 그게 더 청소년이라서, 자라나는 청소년이라서 제가 더 감동을 받은 것 같아요. 

◇ 김명숙: 그렇군요. 자라나는 청소년도 그렇고 2030대 젊은 분들도 그렇고 세월이 흐르면서 지내온 4050대, 60대 많은 분들이 사실 마음에 응어리가 없는 분들이 어디 있겠어요. 어린 친구들은 어린 친구들대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크고. 그걸 함께 역사를 읽어 가면서, 굳이 역사라기보다는 우리가 현실에서 느끼는 것들을 비슷하게 풀어낼 방법을 늘 찾고 있잖아요. 그런데 그게 우리가 그냥 듣는 걸로만 들으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게 되고. 그런데 글로 읽으면서 그걸 그림과 더불어 볼 수 있기 때문에 독자들도 그런 것들을 많이 느낄 것 같아요. 그게 바로 우리 이경신 작가님께서 할머니들과 함께한 생활 속에서 보낸 그림이 주는 치유의 힘이 아닐까 싶거든요. 지금 많은 분들이 문자로도 질문을 보내주셨어요. 내가 가진 아픔을 그림으로 다독일 수 있다면 꼭 한번 해보고 싶다는 분들이 많이 계시는데, 6220님, 보내주신 사연이 이렇습니다. ‘마실 겸 서점에 갔다가 컬러링 북이라는 게 있어서 사왔습니다. 밑그림이 다 그려져 있고 자기가 좋아하는 색연필로 색깔만 칠하는 책인데 정말 종류가 많아요. 이런 거라도 정서에 도움이 될까요?’ 하셨네요.

◆ 이경신: 물론이에요. 꼭 그림만이 아니라 뜨개질이나 운동이나 악기나, 무엇이든 자기 자신이 즐거운 일을 찾으면 그게 스트레스, 아까 말씀하신 대로 그것을 자기가 스스로 관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할머니들이 처음 그림을 배우실 때 상처를 드러내기 전에 데셍 수업을 굉장히 열심히 하셨는데 그때 뭐라고 하셨냐면 강덕경 할머니가 김순덕 할머니한테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다른 생각이 안 나. 집중하고 있으면 복잡한 상처나 그런 생각이 안 나고 기분이 좋아진다, 이렇게 이야기하셨거든요.

◇ 김명숙: 그래서 아마 그림을 조금씩 그리다 보면 아무래도 마음이 정리되는 면이 있을 것 같아요. 저도 당장 연필로라도 그림을 그려보는 연습을 해보고 싶어집니다. 오늘 이렇게 나와주셔서 정말 따뜻한 이야기 잘 들었는데요. 시간 관계상 너무 아쉬워요. 지금 질문이 너무 많은데 저희가 여기서 마무리 인사드려야겠습니다. 말씀 잘 들었습니다.

◆ 이경신: 감사합니다.

◇ 김명숙: 이경신 화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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