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여행, 쉼표
  • 진행: 김재용 / PD: 손영주

오늘의 방송내용

5월15일(화)- 클래식 음악계의 스승
작성자 : ytnradio 날짜 : 2018-05-16 09:52  | 조회 : 1227 

M1)Theme From "Schindler's List"- Itzhak Perlman, John Williams
M2)Libertango- Yo-yo Ma
M3)Ave Maria- Celine Dion


5월 15일 오늘은 스승의 날이죠.
스승의 날은 교사의 노고에 감사한다는 취지로 지정된 날입니다.
많은 나라에서는 매년 10월 5일을 세계 교사의 날로 정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스승의 날은,
한국인 모두의 스승이라고 할 수 있는 세종대왕의 양력 생일에 맞춰
정해진 것입니다.
어떤 분야에서건 첫 발을 내딛고 성공하기 위해서는
그 길을 먼저 걸은 선배의 조언이 반드시 필요하겠죠.
이렇게 갈 길을 알려주는 분이 바로 스승입니다.
음악 분야도 예외는 아니겠죠.
특히 클래식 음악에 있어서 스승의 역할은 무척이나 큰 것입니다.
전 세계에서 바이올린을 공부하는 학생들은 모두,
미국의 줄리어드 음악원으로 몰리던 시기가 있었죠.
바로 그것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이반 갈라미안 교수 때문입니다.
이작 펄만, 핑커스 주커만, 마이클 레빈, 제이미 라레도 등,
세계 정상급 바이올리니스트들이 그에게 배웠죠.
1970년대 이후 클래식 음악계에서 거의 대부분의 바이올리니스트가,
갈라미안 교수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연주자들도 그를 사사한 경우가 무척이나 많은 편입니다.
정경화, 김영욱, 강동석을 비롯해,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원장을 역임한 김남윤 교수 등이 모두,
갈라미안의 제자죠.
1903년생인 갈라미안은, 1946년부터 줄리어드에서 교편을 잡기 시작해,
1981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여러 제자들을 키워냈죠.
현재 줄리아드 음악원에서는
갈라미안의 제자인 도로시 딜레이 교수가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바이올리니스트 장영주는 도로시 딜레이 교수에게 바이올린을 배웠습니다.
20세기 클래식 음악의 여러 작곡가들의 스승 중, 가장 위대한 인물로는,
나디아 블랑제를 꼽을 수 있습니다.
나디아 블랑제는 1887년에 태어나 1979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파리 음악원에서 교사, 작곡가, 지휘자로 활동한
여류 음악가입니다.
세계의 여러 음악가들은 블랑제를 만나면서,
한 차원 높은 도약을 할 수 있었다고 하죠.
미국의 작곡가 아론 코플란드, 지휘자이자 작곡가인 레너드 번스타인,
지휘자 이고르 마르케비치, 피아니스트 디누 리파티,
바이올리니스트 헨릭 셰링 등
20세기의 많은 음악가들이 그녀의 손을 거쳐 갔습니다.
제자들의 다양한 활동영역에서 알 수 있듯이, 나디아 블랑제는
학생의 재능을 최대한 끌어내며 각자의 개성을 발휘하게 만들어주는
스승이었습니다.
20세기 최고의 음악 교사였던 나디아 블랑제의 제자 중에는,
탱고 음악가 피아졸라도 있습니다.
뛰어난 음악적 재능으로 장학금을 얻어 파리로 유학을 가게 된 피아졸라는
나디아 블랑제를 만나게 되었죠.
그런데 나디아 블랑제는 수십 곡에 달하는 피아졸라의 악보를 보고
‘스트라빈스키도 있고 쇤베르크도 있지만 피아졸라가 없다'며
탐탁치 않아 했습니다.
결국 계속되는 블랑제의 추궁에 피아졸라는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카바레에서 탱고를 연주했다는 사실을 말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블랑제는 피아졸라에게 탱고를 연주해보게 했습니다.
피아졸라의 탱고 연주를 듣고 나디아 블랑제는 다음과 같이 말했죠.
“이 바보, 처음에 진작 이걸 연주하지.”
그 후 18개월 동안 나디아 블랑제는 피아졸라를 혹독하게 가르쳤습니다.
자신이 탱고를 연주했다는 사실을 부끄럽게 생각하던 피아졸라에게,
블랑제는 탱고야말로 아르헨티나 음악의 근원임을 알려주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작품을 만들도록 격려한 것입니다.
서양음악사의 위대한 작곡가들은 모두, 스승의 지도 아래,
그 자리까지 올라설 수 있었죠.
서양 클래식 음악사에서 중요한 스승으로 손꼽히는 인물,
바로 안토니오 살리에리입니다.
살리에리는 영화 아마데우스 때문에
모차르트에 대한 열등감에 시달리고,
그를 죽음으로 몰았다는 오명을 받고 있는 음악가죠.
하지만 그는 사실, 활동 당시 모차르트보다 더 큰 인기를 누렸던
당대 최고의 음악가입니다.
1750년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그는,
이탈리아를 떠나 빈에 진출해,
1774년에는 빈의 궁정작곡가가, 그리고 1788년에는 궁정악장이 되었습니다.
훌륭한 음악적 능력과 원만한 성품 덕분에
재직기간 동안 왕이 여러 번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죽기 1년 전인 1824년까지 궁정악장의 지위를 유지했으며,
이런 성공을 바탕으로 빈 음악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많은 음악가가 되었죠.
오페라 작곡가로 활동하던 그는,
1800년대 초반 이후에는 새로운 오페라를 작곡하지 않고,
종종 종교음악이나 기악곡을 작곡하는 일 외에는
후배 작곡가들의 음악 교육에 더 힘썼습니다.
베토벤을 비롯해, 훔멜, 마이어베어 등 쟁쟁한 음악가들을 가르쳤고,
오늘날 피아노 교본으로 유명한 카를 체르니도 그에게 작곡을 배웠습니다.
당시 신동으로 유명했던 프란츠 리스트도 그의 제자로 속하죠.
살리에리는 모차르트의 어린 아들인 프란츠 자비에르 볼프강 모차르트가 음악가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움을 아끼지 않았으며,
가난한 천재 프란츠 슈베르트의 스승을 자처하기도 했죠.
젊은 음악가들의 주머니 사정을 빤히 알고 있었던 살리에리는
대부분 무료로 교습을 해주었다고 하죠.
당시 음악계를 좌지우지하는 인물이
후배 작곡가들의 교육에도 큰 열의를 보인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는
생활이 힘든 제자들을 지원하는 자선 활동에도 적극적이었다고 하는데요,
실직한 음악가나 사망한 음악가의 유족을 위해 상조회를 조직했고,
자선 콘서트를 매년 개최했다고 하죠.
살리에리는 보수적인 작품을 주로 남겼기 때문에,
오늘날 그의 음악은 거의 잊혀졌지만,
그가 키운 제자들의 음악만큼은, 현재까지 그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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