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율의 뉴스 정면승부
  • 방송시간 : [월~금] 17:00~19:00
  • 진행: 신율 / PD: 서지훈 / 작가: 강정연, 임은규 / 유튜브AD: 김민영

인터뷰전문보기

삼성 노조 "'노조 승리날 나를 뿌려달라'던 호석이, 유골 찾아 솔밭산 안장시켜주고싶다" 
작성자 : ytnradio
날짜 : 2018-05-01 20:24  | 조회 : 1883 
삼성 노조 "'노조 승리날 나를 뿌려달라'던 호석이, 유골 찾아 솔밭산 안장시켜주고싶다" 

- 여름엔 7-8주 동안 쉬지 못해, 하루 쉰다고 하면 내일부터 출근하지 말라고
- 겨울에는 일이 없어 최저임금도 안되는 50~60만원
- 노조 단톡방, 원청 관리자들 휴대폰 뺏어 최초 유포자 발각
- 노조, 압박에도 버티니 지역 쪼개기, 일감 줄이기에 표적감사, 폐업까지... 
- 경찰들, 한겨울 투쟁에 침낭마저 다 뺏어가 비닐 하나 덮고 버텨 
- 세월호 때는 늑장대응하던 경찰, 염호석 시신 탈취 땐 희한하게 엄청 빨라
- "노조가 승리하는 날 나를 뿌려달라"던 호석이, 지금이라도 유골 찾아 솔밭산에 안장시켜주고 싶다  
- 우리는 노동부를 삼성노동부, 경찰을 삼성의 경비라 부른다 
- 삼성, 초일류 기업답게 당당하게 책임지는 좋은 회사 되기를 바란다 
- 애청자 여러분 휴대폰이나 냉장고 수리받으실 때 엔지니어들에게 '노조와 함께하세요' 한말씀만..


[YTN 라디오 ‘이동형의 뉴스 정면승부’]
■ 방송 : FM 94.5 (18:10~20:00)
■ 방송일 : 2018년 5월 1일 (화요일)
■ 대담 : 곽형수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조합 통합수석부지회장

◇ 앵커 이동형(이하 이동형)> 최근 삼성전자서비스가 합법적인 노조활동을 선언하면서, 80년을 이어온 삼성의 무노조 경영 기조가 깨졌는데요. 지난 2013년 노조 출범 이후 삼성으로부터 끊임없는 노조 탄압에 시달려왔던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조합, 오늘 노동절을 맞이해서 그분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겠습니다.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조합 곽형수 통합수석부지회장 스튜디오에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 곽형수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조합 통합수석부지회장(이하 곽형수)> 네, 안녕하세요.

◇ 이동형> 기나긴 싸움이었죠?

◆ 곽형수> 그렇습니다. 

◇ 이동형> 몇 년 걸렸습니까?

◆ 곽형수> 지금 5년 됐습니다. 

◇ 이동형> 5년 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뒤에 자세히 하도록 하고요. 오늘 노동절인데 오늘 노동절은 작년, 재작년과 많이 다를 것 같아요. 어떠세요?

◆ 곽형수> 그렇죠. 오늘 노동절은 노동자의 생일이자 노동자의 연대를 다시금 확인하게끔 하는 날인데요. 저희가 그랬던 것 같습니다. 삼성에서 노동조합 한다고 싸울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연대 때문인데, 수많은 시민사회 단체 그리고 상급 단체인 금속노조가 저희와 같이 연대해주고 같이 싸워주셨기 때문에 오늘의 결과가 있는 것 같습니다. 

◇ 이동형> 5년 6년 싸워왔다고 했는데요. 처음 노조를 만든 건 언제였습니까?

◆ 곽형수> 2013년 7월 14일입니다. 

◇ 이동형> 그런데 처음 어떻게 노조를 해야겠다고 마음 먹은 겁니까?

◆ 곽형수> 불합리함을 참지 못했습니다. 여러 가지 불합리함들이 많이 있었는데, 일단 급여가 건당 수수료제로 되어 있어요. 지금처럼 일이 많은 여름에는 7~8주 동안 쉬지도 못하고 일을 지속적으로 해야 하고요. 

◇ 이동형> 특히 에어컨 수리 같은 것. 

◆ 곽형수> 그렇죠. 하루라도 쉬겠다고 하면 내일부터 출근하지 마라, 혹은 여름 휴가는 꿈도 못 꾸고 조합원 중에 어떤 분은 할머님 장례식장에 가야 하는데 장례식장에 간다고 회사에 보고하니까 들어와 있는 접수 물량은 다 처리하고 와라, 이런 말을 하기도 하고요. 아주 심각한 노동환경이었죠. 

◇ 이동형> 부당함 때문에 시작했다. 그럼 비정규직 노동자였기 때문에 삼성에서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건가요?

◆ 곽형수> 그렇죠. 저희가 기본 급여조차 없는 구조였거든요. 건당 수수료 되어 있다 보니까 한 건은 휴대폰을 하나 수리하면 5~6천 원, 냉장고 하나 수리하면 1만5천 원 이렇게 받는 구조였거든요. 겨울에는 일이 없어서 최저임금도 안 되는 50~60만 원을 받아가면서도 저희는 모르고 있었던 거죠. 그러다가 노동3권이라는 것을 알게 됐고, 이것도 다 불법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서 현 지회장인 나도식 지회장과 10여일 정도 밤샘 토론을 했습니다. 노동조합을 해야하나, 말아야 하나에 대해 정말 많은 고민을 했고, 하자. 이건 너무 불합리하다는 생각에 노동조합을 하게 됐습니다. 

◇ 이동형> 노동조합 하려고 마음먹은 그때부터 삼성에서 방해가 있었나요? 

◆ 곽형수> 전국의 여러 엔지니어들 소통하는 톡방이 있었어요. 거기에 7월 14일 노동조합을 하기 위해서는 소식을 알리고 여러 가지 일들을 해야 하잖아요. 그 톡방에 소식들을 알리니까 각 센터 SV, 원청 관리자이죠. 각 센터의 SV들이 휴대폰을 뺏어 이것 최초 유포자가 누구인지 발각하고. 그래서 제가 최초 유포자이기도 했었고 그런 어려운 일들을 많이 당했고, 13년 7월 14일이 토요일이었어요. 그날은 출근만 해도 20만 원 내지 30만 원 수당을 준다. 이렇게 해서 돈으로 막으려고 했죠. 그런데도 400여 명의 조합원들이 모여 설립총회를 진행했습니다. 

◇ 이동형> 설립총회 이후에도 방해가 있었나요? 

◆ 곽형수> 그렇습니다. 제가 해운대 센터 출신이에요. 해운대 센터는 지금 언론에 나오다시피 여러 많은 일들이 있었거든요. 그때 대표가 어제 구속영장이 발부됐어요. 어떤 일들이 있었느냐면, 처음에 노동조합 조합원들이 해운대 센터는 100%였습니다. 그래서 지역 쪼개기라는 것이 있어요. 해운대구를 보면 거리 별로 네 군데, A, B, C, D 이렇게 나눕니다. 한 군데마다 일할 수 있는 업무량이 있고 그에 따라 직원이 배치되어 있잖아요. 그것을 원청에 자꾸 D를 반납하고, A를 반납하고, C를 반납하고. B 한군데에 네 군데에서 일할 사람이 거의 다 몰려가 있으니까, 건당 수당, 급여가 줄어들 수밖에 없는 거죠. 그런 구조를 만들어 놓고도 어쨌든 조합원들이 계속 버티니까. 

◇ 이동형> 그런 구조를 만든 것은 노동조합을 하지 않겠다고 얘기하면 원상복구 시켜주겠다, 

◆ 곽형수> 그렇죠. 실질적으로 어쨌든 그래도 고참들은 200만 원 정도는 받아갔는데 실제로 지역을 줄이다 보면 각자 급여가 80, 90만 원으로 줄어들거든요. 실질적으로 생계 압박을 받으니까 못 살게 되죠. 그것을 버텼어요. 그것을 버티니까 갑자기 폐업을 해버린 거죠. 

◇ 이동형> 아예 없애버렸어요?

◆ 곽형수> 네. 보통은 폐업을 해도 예고를 하고 하잖아요? 폐업 예고를 3일 전에 하고 그냥 바로 폐업해버렸죠. 

◇ 이동형> 생활고에 시달리고 또 삼성의 압박, 이런저러한 것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조합원들도 있었다고 하는데요? 최종범 씨와 염호석 씨. 

◆ 곽형수> 그렇습니다. 최종범 열사는 저희가 노동조합 처음 만들어지던 해에 방금 말씀드렸던 생계 압박, 지역 쪼개기나 일감 줄이기와 동시에 표적 감사라는 부분이 같이 진행됐습니다. 표적 감사는, 고객 집을 일일이 수리하다 보면 수리상 돈 계산 착오가 나거나 이런 것들이 있을 수 있잖아요. 그것을 5~6년 전의 것을 감사하는 거예요. 아무리 뛰어난 천재여도 5~6년 전에 것은 기억할 수 없는 거죠. 5~6년 전의 것을 감사하고 그것으로 해고하겠다고 압박하고. 그래서 실제 그 당시 한 달도 안 되는 기간 동안 400명이 실제로 탈퇴합니다. 

◇ 이동형> 노조를요?

◆ 곽형수> 네. 그래서 노조 탈퇴하는 과정을 최종범 열사는 너무 힘들어서 못 보겠다, 이렇게 해서 부디 도움이 됐으면 바란다는 말을 남기고.

◇ 이동형> 자신의 자살이 노동조합 만드는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 곽형수> 노동조합이 살아가는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기고 스스로 떠났고 한겨울에 서초동에서 투쟁을 하죠. 투쟁하는 과정에서도 한겨울 서초동 빌딩숲에서 투쟁하면 침낭을 꽁꽁 매도 추운데 경찰들이 침낭마저도 다 뺏어갔어요. 그래서 실제 방한용 비닐 하나 덮고 추위를 버티고 눈 맞아가며 싸웠던 기억이 나고요. 

◇ 이동형> 경찰이 침낭을 왜 뺏어갔어요? 그 앞에서 집회하지 말라는 건가요?

◆ 곽형수> 집회 신고 물품이 아니라고 뺏어갔습니다. 그때 당시에는 그런 일들이,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 이동형> 염호석 씨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문제가 된 게 그 이후 삼성 측에서 시신 탈취했다는 얘기가 있었어요. 시신 탈취 사건은 어떻게 된 겁니까?

◆ 곽형수> 그러니까 5월 17일 호석이가 강릉 정동진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어 저희가 강릉에서 서울로 시신을 옮깁니다. 아버님의 동의하에. 그래서 아버님과 어머님이 이혼을 하셨지만 생모와 생부가 저희에게 각각 노동조합장으로 치르겠다는 위임을 합니다. 그리고 어머님은 노동조합에 위임하셨으니까 급하게 올라오셔서, 다시 내려가시고. 아버님이 그날 오후 마음을 바꾸세요. 그전에 계속 저희 녹취도 있는데, 삼성에서 계속 접촉해서, 삼성에서 장례도 다 치러주고 보상도 다 해주겠다는 말에 마음을 바꾸시고 부산으로 내려가겠다는 말씀을 하시거든요. 경찰에 112 신고를 했다고 하더라고요. 딱 10분 만에 약 300명이 되는 병력이 장례식장을 침탈해서 호석이의 시신을 뒤로 빼돌린 거죠. 말도 안 되는 일이. 경찰이 아무리 빨라도. 

◇ 이동형> 미리 준비 안 하면 할 수 없는 거죠.  

◆ 곽형수> 그해 세월호가 있었던 해이거든요. 경찰이 늑장 대응해서 해경이 늑장 대응해서 그렇게 문제가 됐는데 그날은 희한하게 엄청 빠르더라고요. 

◇ 이동형> 그러면 삼성 측에서 노동조합장으로 치르면 안 된다고 판단한 이유는 뭘까요?

◆ 곽형수> 그때 저희가 교섭 지원 문제와 여러 노동조합이 가장 힘들었던 시기인데 노동조합에서 열사 투쟁은 열사로 인해 단결하는 계기가 됩니다. 그런데 열사의 시신 자체가 사라지면 단결하는 구심점이 없어져버리는 거죠. 물론 저희는 열사의 시신이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구심점을 가지고 거기에서 43일 간 700여 명이 노숙 투쟁을 하면서 삼성과 싸웠지만 어쨌든 삼성에서는 저희의 힘을 빼려고 그런 짓을 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 이동형> 합법적으로 노조 활동은 보호되어야 하는 건데 삼성이 불법을 드러나게 보이면서 방해는 못 하니까 합법적 방해를 했다고 보이는 것 아닙니까. 합법을 가장한 폭력 아닌 폭력이라 볼 수 있겠는데요. 고 염호석 씨도 유서에, ‘노조가 승리하는 날 나를 뿌려달라’는 말을 남겼다고 하는데요. 결국 지켜지지 않았다고요.  

◆ 곽형수> 그렇습니다. 방금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시신이 탈취되고 저희가 아직까지 호석이 유골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앞서 검찰 조사를 아버님이 받으셨고 아직 저희와 연락이 안 되는데, 저희는 늦더라도 어쨌든 지금 호석이의 시신이라도 되찾고 유골이라도 되찾아서 지금 솔밭산에 있는 호석이 묘에 안장시켜주는 게 저희가 진심으로 바라는 일이고요. 꼭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이동형> 그러한 탄압을 받을 때 정치권의 도움은 요청해본 적 있습니까?

◆ 곽형수> 그때 민주당 을지로위원회도 시신 탈취 사건에 관한 진상조사를 했고요. 여러 단체들이 했었는데 삼성과 관련되면 결론을 딱 매듭짓지 못하고 흐지부지하게 끝나는 일들이 많거든요. 의혹만 남은 채. 

◇ 이동형> 그런저런 일을 겪고 삼성이 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이 막강하구나, 이런 것을 느끼셨겠네요?

◆ 곽형수> 그렇죠. 저희가 노동조합 활동하는 내내 그렇게 느껴왔습니다. 저희는 노동부를 삼성노동부라고 부르고요. 경찰을 삼성의 경비라고 불러요. 왜 그렇게 느끼냐면, 저희가 3~400명만 서초동에 집회를 하러가도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을 중심으로 차벽을 쭉 치고, 차 말고 버스 말고 벽 치는 차가 있잖아요. 그것까지 동원해서 아예 경로를 다 막아버리거든요. 그러니까 처음에 노동조합 할 때는 당연히 그런 것인줄 알았는데 다른 집회현장 가보니까 전혀 그렇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희한하게 삼성만 가면 저희보다 병력이 4~5배는 더 많게 배치된 상태가 지속적으로 벌어지니까 저희로는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이죠. 

◇ 이동형> 어쨌든 삼성이 노조 방해하는 문서가 공개되고 이재용 부회장 재판 앞두고 있고요. 이런저런 이유로 무노조 경영을 철회한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 삼성서비스 노조에 다시 많이 가입하고 있는 겁니까? 

◆ 곽형수> 네, 직고용 발표가 된 이후로 500명 정도 더 가입을 했고요. 

◇ 이동형> 비정규직에서 정규직 다 전환되는 건가요?

◆ 곽형수> 그렇습니다. 

◇ 이동형> 아까 얘기한 건당 얼마, 이건 없어지는 거잖아요?

◆ 곽형수> 정확히 얘기하면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간접고용에서 직접고용으로. 

◇ 이동형> 그것도 원했던 거잖아요?

◆ 곽형수> 그렇죠. 직접고용 직접교섭을 노동조합을 만들면서 지속적으로 요구해왔죠. 

◇ 이동형> 이렇게 쉽게 할 수 있는 것을 80년 동안 하지 않았을까, 그런 의문점이 드는데요. 삼성에 대해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한 말씀 하십시오. 

◆ 곽형수> 이제 무노조 경영은 끝장났습니다. 더 이상 무노조 경영을 위해서 노동조합을 탄압할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초일류 기업이니 만큼 시대 흐름에 발맞춰 친노동적 기업으로 거듭나길 바랍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풀어야할 숙제가 삼성에 많을 것입니다. 노동조합 문제가 그렇고 반도체 공장의 산재 문제, 반올림 문제 또한 그럴 겁니다. 이제는 초일류 기업답게 책임을 피해가지 말고 당당하게 책임지는 좋은 회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애청자분들에게 한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혹시 휴대폰을 고치러 가시거나 냉장고 등을 수리 받으실 때 오시는 엔지니어분들에게 노동조합과 함께 하세요, 이 한 말씀 해주신다면 저희에겐 큰 힘이 될 것 같습니다. 

◇ 이동형> 오늘 말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 곽형수> 네, 감사합니다. 

◇ 이동형> 지금까지 곽형수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조합 통합수석부지회장이었습니다.






 

[저작권자(c) YTN radio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
  목록
  • 이시간 편성정보
  • 편성표보기
말벗서비스

YTN

앱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