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라디오 Y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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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바로보기]"美 플로리다 고교 총기난사 사건, 유해한 남성성이 원인"-안호림 교수 3/3(토)
작성자 : ytnradio
날짜 : 2018-03-05 18:55  | 조회 : 2711 
[YTN 라디오 ‘열린라디오YTN’]
■ 방송 : FM 94.5 MHz (20:20~20:56)
■ 방송일 : 2018년 3월 3일 (토요일)
■ 출연 : 안호림 인천대 교수

아나운서: 지금은 미디어가 보는 세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보는 <안호림의 미디어 똑바로보기> 순서입니다. 안호림 교수님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어떤 이야깃거리를 가지고 나오셨나요?

안호림: 안녕하셨어요. 지난 21일 뉴욕타임즈는 코미디언인 마이클 이언 블랙의 투고문을 실었습니다. 블랙의 글은 지난 14일 미국 플로리다 주 고등학교에서 발생했던 총기난사사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힌 것이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플로리다 주 총기사건으로 미국 전체가 들끓고 있는 상황입니다. 총기규제에 대한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나오고 있지만, 아직도 실질적인 조치가 취해질지는 의문인 상황입니다. 여론 또한 여전히 찬성과 반대가 팽팽하게 맞서고 있습니다. 오늘은 플로리다주 총기난사 사건과 블랙의 투고문에 담긴 내용에 대해 얘기를 나누어 볼까 합니다.

아나운서: 하필 사건이 발생한 날이 발렌타이데이였죠? 한국에서는 평창동계올림픽이 한창이기도 했고요. 작년에도 대형 총기사고가 두 건이나 있었는데, 유독 최근 자주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안호림: 범인이 사건을 사전에 치밀히 계획했었다는 기사가 나온 것으로 보아 일부러 14일을 선택한 것 같습니다. 이번 사고처럼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거나, 유난히 끔직한 사고들만 보도되지만 사실 미국에서 크고 작은 총기사고는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비영리 뉴스조직인 마더 존스(mother jones)의 통계에 따르면 1982년 이후 총기 난사 사건(mass shooting)은 97건에 달합니다. 매년 평균 여섯 건입니다. 그런데 지난해는 무려 11건이나 발생해서 평소의 두 배에 달합니다.

아나운서: 더군다나 작년에는 미국 최악의 총기사고였던 라스베이거스 총기 난사 사건이 있었죠? 사망자도 50명을 넘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아무래도 미국 내 총기사건이 자주 벌어지는 것은 총을 소지하는 것이 쉽기 때문이겠죠?

안호림: 맞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총기 소유가 자유롭고 총기 소유자가 많은 것만으로 다 설명이 되지는 않습니다. 미국 내 개인보유 총기의 숫자는 약 2억 7천만에서 3억 1천만 정 내외로 추정됩니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인구 100명당 101정으로 미국인 전체가 총 한 자루씩 가진 셈입니다. 2등인 세르비아의 58.2, 3등 예멘의 54.8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높습니다. 퓨 리서치 센터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미국 가정의 37%가 총기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갤럽조사에서는 42%로 조금 더 높게 나타났고요. 하지만, 미국은 총기보유자가 많다는 것을 감안해도 총기사고가 월등히 많이 일어나는 편입니다. 인구 10만 명당 총기 살인사건 수로 보면 미국은 3.61건인데, 2등인 캐나다는 0.5건 수준입니다. 캐나다는 총기 보유수로 세계 10위거든요. 총기보유수로 9위인 프랑스는 0.2건 밖에 안 됩니다.

아나운서: 이 사건에 대해서는 특히 피해자인 10대 학생들이 크게 분노하고 있다는 보도가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안호림: 어른들에게만 맡겨놨더니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 생각에서 10대들이 행동을 시작한 것 같습니다. 총기사고 때마다 총기규제를 촉구하는 집회, 시위는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10대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온라인, 소셜 미디어를 통한 총기규제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미투 캠페인을 보기로 삼아 ‘네버 어게인’, ‘미 넥스트(다음은 나?)’라는 해시태그를 다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코네티컷 주에 사는 한 학생은 ‘전국 고교생 도보행진’ 온라인 청원을 벌이고 있습니다. 현재 수만 명이 서명했고, 행진은 1999년 또다른 고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인 콜럼바인 고교 총격 사건이 발생한 4월 20일로 계획되어 있습니다.

아나운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벌써 여러 건의 총기난사 사건이 터졌었지만, 그동안 총기규제를 강화하겠다는 입장은 밝히지 않았었습니다. 이번에도 트럼프 대통령의 반응이 여론의 분노를 불러왔다고 지적되던데요.

안호림: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사건에 대해 진심으로 슬퍼하는 모습을 보이기보다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듯한 모습을 보여 반발을 불러왔습니다. 이번에도 평소 즐겨 이용하는 트위터를 통해 자신의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런데 마치 이번 사건이 사전 예방조치를 철저히 못한 FBI책임이고, FBI가 지난 미국대선에서 트럼프 캠프와 러시아의 내통 수사에 시간을 너무 많이 쓰고 있다는 식의 반응을 보여서 민심을 더욱 악화시켰습니다.

아나운서: 10대들의 분노가 대단하긴 한가 봅니다. 트럼프 대통령조차 여론에 밀려 총기규제를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보였습니다.

안호림: 아직 확실하게 어떤 법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것은 없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8일 백악관에 공화, 민주 양당 의원들을 초청한 자리에서 강력한 총기규제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혀 공화당 의원들을 당황시켰다고 합니다. 하지만 공화당이 하원을 장악하고 있고, 총기규제에 부정적인 입장이 변하지 않고 있어서 입법여부는 불투명합니다.

아나운서: 한국 사람들은 저렇게 많은 총기 사고가 나는데 총기를 더 강하게 단속하지 않을까하고 궁금해 하는 게 당연할 텐데요. 대체 무엇 때문이죠?

안호림: 첫 번째 이유로 꼽히는 것은 전미 총기협회의 강력한 로비 때문입니다. 약칭 엔알에이라고 불리는 총기협회는 미국 의회에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단체 중 하나입니다. 회원 수만 해도 500여만 명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들은 공화당의원들을 많게는 수백만 달러까지(1등인 존 맥케인은 775만불) 집중적으로 후원하고 있습니다. 지난 대선만 하더라도 총기 규제 완화 입장을 보인 트럼프 진영에 공식적으로 1140만 달러를 후원했고(3천만 달러에 달한다는 추측도 있음), 총기규제 강화를 주장했던 힐러리 클린턴 후보를 반대하는 운동에 1980만 달러를 사용했습니다.

아나운서: 아무리 로비가 강해도 국민들이 강하게 원하면 바뀌는 게 당연할 텐데, 로비 말고도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겠죠?

안호림: 사실 미디어만 보면 총기규제 강화 입장이 대세 같지만, 각종 여론조사 결과들을 보면 미국 국민들의 의견 자체가 반반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워싱턴포스트와  ABC 방송이 사건 직후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공격용 무기 판매 금지에 찬성하느냐'는 질문에 50%가 '찬성한다'고, 46%가 '반대한다'고 답했다. 게다가 미국 수정헌법 제 2조에는 총기소유의 자유가 명시되어 있습니다. 개인의 자유와 헌법을 신성시하는 미국 사람들의 심정적인 반대가 상당한 것으로 보입니다.

아나운서: 총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다 총기를 이용한 범죄를 저지르지는 않습니다. 이번 사건과 같은 사태의 가장 큰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고들 있나요?

안호림: 그 점에서 총기규제론자들과 규제반대론자들의 입장이 크게 나뉩니다.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한 반대론자들의 입장은 사건을 저지른 범인의 정신 이상 등에 초점을 맞춥니다. 문제소지가 있는 사람들을 찾아내어 철저히 감시, 관리하고, 불법적인 총기 구매를 엄격히 단속하는 것으로 플로리다 고교 총기 난사 사건과 같은 사고를 충분히 막을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이에 반해서 총기규제론자들은 지나치게 총을 쉽게 구할 수 있는 환경 자체를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철저한 관리와 단속이 이루어진다고 해도 완벽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번 사건의 범인인 크루즈의 경우에도 병력이나 과거 범죄기록이 없기 때문에 합법적으로 총기를 구매하는 데에는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아나운서: 라스베이거스 총격 사건의 범인은 평소에는 어떠한 이상 징후도 보이지 않았던 부유한 백인 남성이었습니다. 총기 난사 사건이 실제 정신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에 의해 주로 저질러지나요?

안호림: 많은 수의 총격사건이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에 의해 벌어지긴 했습니다. 1982년 이후 발생한 난사사건 97건 중 46건의 범인은 사건 전에 정신 이상 징후를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반 이상의 사건에서 그런 징후가 없었다는 것을 볼 때, 이들을 관리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걸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아나운서: 시작 부분에서 마이클 이언 블랙의 글에 대해서 말씀하셨는데요. 블랙은 이번 사건에 대해 어떤 의견을 밝혔나요?

안호림: 블랙의 글이 흥미로운 것은 이번 사건의 원인을 보다 근본적인 곳에서 찾고 있다는 것입니다. 블랙의 글의 제목은 ‘소년들은 괜찮지 않다’입니다. 이언 블랙은 최근 대량 학살 사건의 주범이 소년이었음을 지적합니다. 마조리 스톤맨 더글러스 고등학교, 샌디훅, 버지니아 테크, 콜럼바인 사건의 공통점은 모두 방아쇠를 당긴 것이 어린 남성이라는 것입니다. 블랙은 현대 남성, 특히 소년들이 겪는 남성으로서의 정체성 혼란과 좌절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고 봅니다. 지난 50년간 여권이 크게 신장되었고, 여성의 사회진출이 대폭 늘었습니다. 이런 변화의 기간 동안 여성들은 미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법에 대해 용기를 붇돋와주고 자신감을 주는 수많은 말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그에 반해 어린 남성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바뀌었는데, ‘변화한 시대에 맞는 남성의 모습은 어떠해야 한다’라는 것을 알려주는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블랙은 ‘강함을 기준으로 하는 전통적이고 시대착오적인 남성성 모델에 너무 많은 소년들이 갇혀있다’고 지적합니다. 이런 시대착오적인 남성 모델에 갇혀있는 이들이 현실에서 좌절을 느낄 때 자주 도피처로 찾는 것이 강한 남자로서의 자신감을 보완해줄 총과 폭력이라는 것입니다.

아나운서: 그러고 보면 콜럼바인 고교 총격이나, 샌디 훅, 이번 사건 모두 10대 남성들의 범행이었네요. 실제로도 남성들의 범행이 주를 이루나요?

안호림: 마더 존스의 통계에 따르면 1982년 이후 벌어진 97건의 총격 사건 중 95건이 남성이 범인입니다. 특히 학교 내에서 벌어진 총격 사건들은 10대와 20대 남성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블랙이 정확하게 지적한 것입니다.

아나운서: 상당히 흥미로운 주장이네요. 사실 한국에서도 가부장적 문화는 크게 바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미투 운동을 통해 드러난 것만 봐도 남성들의 사고는 시대를 쫓아가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안호림: 블랙의 주장에 대해 새로운 주장은 아니지만, 흥미로운 의견이고 일리가 있다는 반응입니다. 유에스에이투데이는 블랙의 글이 이른바 ‘유해한 남성성’에 근거한 의견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유해한 남성성이란 시대착오적인 남성성, 마초적인 남성성을 앞세우는 것입니다. 폭력적이고, 감정을 잘 노출하지 않고, 성적으로 공격적인 남성을 이상적인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남성상은 시대와 잘 맞지 않기 때문에 사실은 남성에게 유해하다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흔히 하는 ‘사내란 고로....’, ‘남자가 돼서....’ 하는 식의 말이 전형적인 것입니다. 이런 식의 남성상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아직도 흔하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 드라마에서 자주 나오는 이른바 ‘벽치기’ 장면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는 거죠.

아나운서: 한국에서 남자로서 커온 저로서는 크게 공감이 가는 말입니다. 사실, 요즘 여자들이 좋아하는 남성상은 부드럽고 자상한 남성이잖아요. 사회가 원하는 것도 배려 깊고 대화가 되는 사람이고요.

안호림: 그런 점에서 미국 사회에서 벌어진 총기 사건은 비록 우리와는 거리가 먼 얘기지만 블랙의 글에서 한국 사회에 대한 시사점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과거에 집착하지 말고 시대에 맞는 남성상을 공개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해야 할 때가 이미 넘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는 한국의 미디어들도 반성해야할 필요도 있다고 봅니다. 가부장적이고 구시대적인 남성상의 반복은 지양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나운서: 물론 블랙의 글이 미국 총기 사고의 모든 것을 설명해 주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도 귀기울일 만한 일리 있는 말이네요. 사회는 남성, 여성 구분 없이 같이 바꿔야 하는 것이겠죠. 오늘도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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