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전성기, 오늘
  • 진행자: 김명숙 / PD: 신아람 / 작가: 조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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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토크쇼 청춘을 깨워라 “재일교포 실업인 간첩단 사건으로 잃은 아버지를 위한 진실규명” - <발부리 아래의 돌> 김호정 작가
작성자 : ytnradio
날짜 : 2018-01-18 12:42  | 조회 : 2915 
YTN라디오(FM 94.5) [당신의 전성기 오늘] 
□ 방송일시 : 2018년 1월 18일 (목요일) 
□ 출연자 : <발부리 아래의 돌> 김호정 작가 

감성토크쇼 청춘을 깨워라 “재일교포 실업인 간첩단 사건으로 잃은 아버지를 위한 진실규명” - <발부리 아래의 돌> 김호정 작가 


◇ 김명숙 DJ(이하 김명숙): 요즘 영화, 우리나라 좋은 영화 참 많죠. 특히 그 가운데 <1987> 굉장한 인기몰이 하고 있습니다. 보셨나요? 많이 보셨을 거예요. 우리 방송을 함께 듣고 계신 50+들은 아마 이 영화를 보면서 ‘그래, 남의 이야기 같지 않아’ 이런 느낌 많이 받으셨을 겁니다. 우리 대한민국의 역사는 그야말로 격동의 시기가 계속 이어져 오고 있죠. 많은 사람의 목숨과, 특히 청춘과 눈물과 피와 바꾼 대한민국을 우리는 지금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항상 꿈과 희망을 갖고 살고 있잖아요. 그래서 오늘 <감성토크쇼, 청춘을 깨워라> 조금은 무거울 수도 있지만 그래도 우리 모두가 알아야 하는, 기억해야만 하는, 그래서 미래의 희망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를 좀 나눠보려고 합니다. 어떤 이야기인지, 초대손님 먼저 인사 나누고 시작하겠습니다. <발부리 아래의 돌>의 저자 김호정 씨 나오셨습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 <발부리 아래의 돌> 김호정 작가(이하 김호정):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고맙습니다.

◇ 김명숙: 고맙긴요. 저희가 감사하죠. 이렇게 좋은 책을 읽을 기회를 주셔서 너무 감사하고요. 또 이렇게 방송에서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저도 너무 기분 좋아요. 요즘 우리가 관심들이, 원래도 생각은 많이 하고 사시는 분들 많지만, 끄집어내기가 쉽지 않았던 이야기들도 있더라고요, 책에서 보니까. 그런데 오늘 이 시간이 우리가 많은 것을 알게 되는 시간이 될 것 같아서 기대되거든요. 제가 <발부리 아래의 돌>이라는 책의 저자라고만 소개해 드려서 우리 청취자들이 궁금해하실 것 같아요. 어떤 책인지, 이 책이 왜 특별한지 잠깐 소개해주실까요?

◆ 김호정: 이 책은 1977년에 중앙정보부에 의해서 발표되었던 간첩단 사건으로 인해서 억울하게 희생되었던 아버지 열한 분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저는 아버지하고 초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 헤어졌습니다. 1977년 겨울에 누군가에게 끌려갔던 아버지가 떠난 뒤 다시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셨습니다. 아버지는 1979년 5월에 교도소에서 쓰러지셔서 형집행정지로 출소된 지 열흘 만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때만 해도 저는 그냥 고혈압이 있으셨던 아버지가 쓰러지셔서 병원에 계시다가 돌아가신 줄로만 어머니한테 들어서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요. 스무 살이 훌쩍 넘어서 제 아버지를 비롯한 11명의 무고한 분들이 간첩단으로 몰렸고, 그중에는 사형선고를 받으셨던 분도 계시고, 또 오랜 기간 동안 징역살이를 하셨던 분도 계시고. 모든 분들이 아주 큰 희생을 겪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 김명숙: 제가 책도 봤지만 이렇게 직접 말씀을 들으니까, 말씀하시는 중간에 목소리도 제가 지금 정말 가까이서 느낄 수 있거든요. 정말 힘든 시절이었죠, 우리 모두에게 다. 그런데 이걸 저희가 아무리 헤아린다고 해도 헤아릴 수는 없을 것 같아요, 경험하지 못하고서는. 짧게 설명만 들어도 마음이 아픈데. 사실 대한민국이 격동의 시기를 거치면서 이렇게 억울한 일로 청춘을, 온 인생을, 목숨을 잃은 분들이 한두 분이 아니잖아요. 그래도 아버님께서는 김호정 작가님처럼 정의롭고 똑똑한 따님을 두셔서, 1977년에 발생한 사건이고 2016년에 무죄선고를 받으셨잖아요. 그러니까 거의 40년 만의 일이에요. 엄청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 무죄 선고를 받으셨는데, 그간에 참 힘든 시절이 많으셨죠?

◆ 김호정: 저희 어머니가 굉장히 많이 힘드셨고. 제 가족들 말고 11분 가족들이 정말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제가 다 헤아리지 못하는 많은 고통을 겪으셨던 것 같습니다.

◇ 김명숙: 그리고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라는 게 생긴 게 얼마 안 되죠, 사실?

◆ 김호정: 지금 생각해보면 10년 전 일이 벌써 되기는 했는데요. 2005년에 과거사정리 기본법이라는 법이 통과됩니다. 우리 근현대사 속에서 정말 너무나 많은 분의 희생이 있었고, 인권침해 사건이라든지, 또 독립운동에 참여하셨는데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거나 발굴되지 못했던 사례 같은 것들을 이 과거사 정리위원회 활동을 통해서 찾아내고, 억울함을 풀어주고 그러자는 공감대가 마련됐던 것 같아요. 그래서 과거사 정리위원회가 2005년 12월에 공식적인 활동을 시작하게 됩니다. 저희는 2006년 3월에 진실규명 신청서를 냈는데요. 2010년 5월에 진실규명 결정이 내려지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진실규명 결정이 곧바로 무죄라는 결과가 아니고, 또 사법적인 절차로 재심을 거쳐야 하는데 2010년 10월에 재심을 선고했고 그게 2014년 12월에 고등법원에서 무죄판결이 났지만, 다시 그 당시에는 검찰이 상고해서 2016년 6월에 무죄 확정판결을 받게 됐습니다.

◇ 김명숙: 사건이 일어난 이후로는 거의 40년 만에, 진상규명정리위원회에서 활동하고 나서 10년 만에 이루어진 결과인데요. 도대체 왜 어떤 이유로 진실이 아닌 간첩이 되었던 걸까요? 저는 책을 읽으면서도 정말 계속 궁금했어요.

◆ 김호정: 여기 11분의 시민들이 희생되었는데, 그중에 강우규 씨라고 그 당시 사형선고를 받으셨던 분이 계세요. 그분은 제주도민이셨고, 11분 중에 10분이 제주도민이셨습니다. 강우규 씨는 재일교포셨고, 15살에 일제강점기 때 일본으로 건너가서 온갖 고생을 하시면서 사시다가, 60쯤 되셔서 고국에 돌아와서 여생을 보내고 싶어 하셨던 것 같습니다. 저희 아버지가 다니던 회사, 그리고 강우규 씨가 감사로 잠깐 일하셨던 그 회사가 재일교포가 설립한 회사였어요. 그런데 강우규 씨가 만났던 분들한테 굉장히 친절한 분이었고 다감한 분이었고 이야기도 많이 들려주셨는데, 아무래도 재일교포다 보니까 남한이나 북한이나 분단된 현실에 대해서 가슴 아파하는 이야기도 많이 했던 것 같고. 그런 이야기 중에 일부 그 당시 사회에서 통상적이지 않은 이야기가 있다고 느꼈던 어떤 분이 그런 것들을 당국에 얘기하고. 그런 것들이 굉장히 크게 부풀려지면서 엄청난 간첩단으로 만들어지게 된 거였습니다.

◇ 김명숙: 그러셨구나. 정말 쉽지 않은 과정이 계속 이어졌는데. 초등학교 1학년 때 아버지가 어디론가 가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셨던 거잖아요. 그리고 병으로 잠깐 며칠 보셨는데. 아버지가 다름이 아닌 재일교포 간첩단 조작사건으로 돌아가셨다, 라는 사실은 20세 이후에 아셨다고요. 어떻게 해서 그렇게 알게 되신 거예요?

◆ 김호정: 엄마가, 저희가 다 클 때까지는 말하면 안 되겠다, 이렇게 생각하셨다는데. 1994년에 동생이 그때 대학생이었는데 짧게 구류되었던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형사가 신원조회를 하다 보니 너희 아버지가 이런 일을 겪었더라. 그런데 이런 일은 사실 너무 억울한 면이 있는 것 같다. 네가 언젠가는 이런 억울함을 풀어야 하지 않겠는가, 라는 말을.

◇ 김명숙: 경찰관분께서?

◆ 김호정: 네. 잠깐 지나가듯 하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이야기를 듣고 집에 와서 동생이 말도 했었고. 그 일을 계기로 가족들이 우리는 간첩의 가족으로 현재까지도 남아 있구나, 그때 알게 됐죠.

◇ 김명숙: 그러셨구나. 그 당시 그렇게 알게 됐을 때 심경은 어떻게 표현을 못 하셨을 것 같아요.

◆ 김호정: 그전에도 집에 예전에 아버지가 교도소에서 보냈던 봉함엽서라고, 편지 같은 걸 본 기억이 있었어요. 어머니에게 묻기는 어려웠고, 막연히 뭔가 억울한 일이 있었다고만 짐작하고 있었는데, 설마 아버지가 간첩으로 몰려서 그렇게 희생당했을 거란 상상은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 김명숙: 그 당시에는 우리가 간첩 하면 되게 무섭고, 그런 이미지로 우리가 교육받아왔잖아요. 그래서 굉장히 힘드셨을 것 같아요. 책 앞머리에 이렇게 쓰인 글을 읽고 제가, 이런 아버지의 모습이었는데 그 심정이 얼마나 괴로웠을까. 책 앞에 이렇게 쓰여 있잖아요. “길모퉁이 세 번째 푸른 대문 집에서, 어린 딸의 머리를 땋아주고 꽃씨를 함께 거두던 아버지가 당신 곁의 한 이웃의 이야기로 기억되기를” 이렇게 적으셨는데, 이 모습의 그림이 그려지더라고요. 책을 통해서 보면 김호정님의 아버님, 김추백 씨뿐만 아니라 다른 11명의 아버님들도 참 선하고 그냥 우리의 이웃 아버지, 아저씨 같은 좋은 분들이라는 인상을 받았거든요. 9살 때 아버님이 그렇게 잡혀가셨고, 이후에 뵙지 못하고. 그래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어쩌면 그래서 더 선명하게 남아있을 거란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 김호정: 아버지가 끌려가시기 전에 이미 고혈압으로 두 번 쓰러지셔서 입원하신 적이 있었어요. 그래서 그 즈음에는 잠깐 직장을 쉬고 계시던 무렵이어서 저희랑 같이한 시간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사실 생각해보면 아빠 얼굴도 사진 속의 얼굴이고, 아버지 목소리도 기억이 나지 않아요. 그런데 그 당시에는 아빠가 꼭 돌아오실 거라고 생각하면서 아빠와의 추억을 곱씹었고, 아빠가 돌아오지 못한 다음에는 그런 추억이 더 깊이 새겨졌던 것 같아요. 아까 말씀처럼 선명하게.

◇ 김명숙: 지금 북받치셔서 말씀을 잘 이어가지 못하시는데요. 그 당시 상황도 그렇지만, 아버지의 누명을 벗기기 위한 과정에서 역사 속에 함께한, 비슷한 피해를 입으셨던 분들에 대해서도 만나면서 더 많이 알게 되셨을 것 같아요. 책에 또 그렇게 쓰여 있더라고요. 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애썼던 분들, 아버지와 그 당시의 분들을 찾아다니면서 나중에 얘기 같이할 때 ‘긴 세월의 고통과 공백이 있었음에도 그분들은 여전히 우리나라에 대해서, 인생과 역사에 대해서 지극히 낙관적인 분들이시다’라고 책에 그렇게 썼더라고요. 다른 아버지들에 대해서도 더 많이 알게 되셨을 것 같아요.

◆ 김호정: 예. 제가 재심 과정, 진실규명 과정을 겪어보면서 저희 아버지가 무죄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 앞에 정말 많은 분의 노력과 헌신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것이 가능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역사에서는 희생된 분들도 많았지만, 그리고 피해를 입은 분들도 많았지만 그런 피해 속에서도 싸우신 분들, 그리고 그 피해를 밝히고 증언하기 위해서 애쓰셨던 분들이 굉장히 많다는 걸 보면서 감동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런 진실규명이나 재심의 과정은 가해자였던 국가가 피해자에게 용서를 청하는 과정이 아니라, 피해자가 어떤 스스로 피해를 입었는지를 국가에게 입증해야 하는 과정이었습니다. 그것도 수십 년이 지난 다음에 얼마 자료도 없는데 그런 걸 하나하나 입증해야 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는데요. 그런데 앞서 저희보다 먼저 많은 노력을 기울이셨던 분들의 노고를 보면서 정말 많이 용기를 얻었고. 그다음에 그 당시 70년대 상황에서도 용기 있게 변호해주신 변호사님들도 있었고, 또 일본에서 강우규 씨를 규명하기 위해서 수십 년간 애써주었던 양심적인 일본의 시민들도 있었고. 그리고 저희가 진실규명이나 재심을 하는 과정에서 도와주었던 많은 연구자들, 변호사님들, 인권단체 사람들, 그리고 좋은 판사님. 이런 분들 덕택에 굉장히 희망을 얻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 김명숙: 그래서 오늘 저희가 이런 이야기도 나눌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우리 김호정 씨 역시 1987년에 대학에 입학하셨고, 또 교사로서 학생들의 인권을 위해서 고민하고 활동하셨던 걸로 제가 알고 있는데. 우리 방송을 듣는 청취자분들 중에서도 50+ 이상 되시는 분들, 학생운동 경험 있는 분들 참 많이 계실 겁니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사회를 위해서 자신의 자리에서 헌신하면서 살아오셨던 분들도 참 많고. 이런 것들을 쭉 보면, 그동안에 정말 우리가 암울했던 시대라고 말하는 그 시절에 공포와 위압 속에서도 자존심을 지키고, 또 굴복 대신 용기를 선택했던 아버님 세대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것이 헛되게 끝내지 않고 지금 이 시간에 우리가 진실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라는 것을 이야기할 수 있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거든요. 그래서 앞으로도 말하지 않고, 말 못하고 했던 그런 말들을 스스로도 끌어내고, 끌어올리고. 그런 과정을 통해서 정말 우리가 더 살아갈 가치가 있는 나라, 살아갈 가치가 있는 존재로 희망적인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책을 읽으면서 잠깐 해봤어요.

◆ 김호정: 감사합니다.

◇ 김명숙: 너무 좋은 책을 쓰셨는데, 그런 과정을 책으로 내야겠다, 라는 생각은 어떻게 하시게 된 건가요?

◆ 김호정: 아버지 사건에 대해서 많이 말을 할 수는 없었지만, 간혹 말씀 나누다 보면 참 안타깝다, 얼마나 고생했느냐, 이런 말씀도 많이 해주셨고. 또 저도 관련한 신문 자료 같은 것들을 많이 봤는데, 신문 같은 데서도 이제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기사가 꾸준히 실리고 있었어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뭔가 공허함이 계속 있었는데. 저한테는 너무 생생한데 아무래도 다른 분들한테는 그것이 그냥 과거의 이야기, 그리고 어떤 먼 이야기, 나에게는 일어날 것 같지 않은 그런 다른 이야기로 남겨지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그것이 정말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이야기고, 바로 내 옆에 있는 이웃의 이야기다. 이런 공감을 같이 나누고 싶었고, 그런 공감을 바탕으로 아버지들이 겪었던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데 작은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썼습니다.

◇ 김명숙: 그런데 제목이요. <발부리 아래의 돌>이라는 제목이 어떤 의미인지. 책을 읽으니까 ‘한 번 돌부리에 걸려서 넘어지고 잠시 멈춰서 생각을 해본다’ 이렇게 적혀 있더라고요. 그런데 원래 외국에서도 ‘발부리 아래의 돌’이라는 프로젝트가 있다고요.

◆ 김호정: 저도 신문기사를 스크랩하다 보면서 알게 되었는데요. 독일에서는 과거 자신들의 과오를 반성하자는 흐름이 시민사회에서 활발하게 일어났고, 그 노력의 일환으로 그 당시에 고통을 받았던 희생자들을 기리는 프로젝트. 그래서 가로세로 10cm 정도의 작은 동판에 ‘그가 여기 살았다’라는 기록을 남기는 작은 금속판을 박는 일이 있다고 합니다. 그걸 발부리 아래의 돌, 걸림돌이라고 한다고 해요. 그래서 우리가 그런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것. 단지 중앙정보부라든가 검찰이라든가 그런 자리에 있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기억하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을 때, 관심을 갖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을 때 더 많은 희생자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환기시키면서, 관심을 우리 모두가 같이 나눴으면 하는 바람으로 제목을 정했습니다.

◇ 김명숙: 한 번쯤 멈춰서 기억을 해보고, 또 나와 한 번 연결지어보고, 앞으로를 생각해보고. 그런 의미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 문자 많이 오고 있어요. 6521님, ‘요즘 난 아무것도 몰랐구나, 그 시절에 무엇을 했나 하는 부끄러움에 휩싸일 때가 많아요. 책 읽어보고 싶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느껴집니다’라고 보내주셨고요. 또 1222번 쓰시는 청취자분, ‘역사의 고비고비 용기를 내주신 분들 덕분에 저희가 지금 여기에 살고 있는 것이네요’ 8843님, ‘미안합니다. 저도 그 시절에 아무것도 못 했습니다. 싸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문자들이 지금 많이 오고 있습니다. 많은 분이 우리가 생각으로만 했던 것들, 아니면 그동안 잊혀지고 있던 것을 다시 한 번 기억해내고, 또 현재에 이어지는 것. 과거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계속 함께 이어가고 있는 거고, 앞으로 더 나은 가치 있는 삶을 위해서 끌어내고 이야기 나누고, 그래야 한다는 것을 많이들 요즘에는 느끼고 계신 것 같습니다. 계속 문자 오는데요. 2238 쓰시는 애청자분, ‘억울하게 돌아가신 아버지의 진실을 하나하나 찾아가는 그 과정은 또 얼마나 힘들고 고단했을까요. 짐작할 수는 없지만 꼭 안아 드리고 싶습니다’ 이런 마음 가지신 분들 지금 많으실 것 같아요.

◆ 김호정: 감사합니다.

◇ 김명숙: 우리 김호정님 계속 눈시울 적시면서 말씀하시면서 지금 그러시는데, 아주 가까이서 있으니까 저 또한 마음이 정말 그런데요. 그래도 이렇게 귀한 시간 내주셔서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게 참 기쁩니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우리 김호정님의 문장력에 굉장히 놀랐는데, 이 책이 시작이고 또 다른 책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어요, 잠깐. 어떠세요?

◆ 김호정: 그런데 이것은 사실 40년이 세월을 담았고, 또 10년 동안 하고 싶은 말들을 모아서, 나름 나누고 싶은 사연이기 때문에 책으로 묶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앞으로 살아가면서 더 많은 것들을 보고 듣고 열심히 살아보겠습니다.

◇ 김명숙: 또 다른 책도 저는 기대하게 되거든요. 우리 김호정님도 1987년도에 학생이셨으니까, 지금 50 쯤 되신 건가요?

◆ 김호정: 저는 1989년에 대학에 입학했고요. 이제 우리 나이로는 50이 되는 거네요.

◇ 김명숙: 그러세요? 저희 <당신의 전성기, 오늘> 이 프로그램은 사실 50+ 애청자분들이 참 많이 계세요. 그래서 어쩌면 우리 중년층을 위한 본격적인 프로그램이다, 이렇게 우리가 얘기하면서 프로그램을 꾸며가고 있는데. 이쯤 나이가 되면 많은 분이 또 다른 삶을 위한 생각들을 많이 하시잖아요. 앞으로 어떤 삶을 살고 싶으신지, 어떤 가치를 위한 삶을 그리고 계시는지 궁금하네요.

◆ 김호정: 친구들과 선배들을 최근에 만났는데, 어떤 친구, 그리고 어떤 선배가 저한테 그동안 너무 애썼다면서 ‘이제 과거사는 잊고 네 삶을 열심히 살아라, 아빠도 그런 걸 원하신다, 네가 행복한 걸’ 이렇게 얘기해줬습니다. 과거는 우리에게 짐이기도 하고, 그렇지만 또 한편으로는 힘이 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힘이 되려면 그런 과거가 현재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기억해야 할 것 같은데요. 살아가면서 어렸을 때 아빠가 해주셨던 얘기들이 불현듯 생각나거든요. 손톱을 깎으면 반드시 손을 닦아라, 그런 얘기들. 그래서 아빠와 어렸을 때 나누었던 이야기들, 그리고 이 책을 통해서 아버지하고 나눴을 수 있던 이야기들, 그런 게 지금 내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 이런 것을 기억하면서 살고 싶습니다.

◇ 김명숙: 본인은 그런 삶을 살고 싶으시고.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우리 애청자분들께는 한 말씀 하신다면 어떤 말씀을 하시고 싶을까. 예를 들면 역사에 대해 잊지 말아 주세요, 라든가. 그런 당부의 말씀 혹시 있으시면 하시죠.

◆ 김호정: 일단 고법 판결 때 무죄판결 났을 때 저희 어머니가 다 같이 모여서 소회를 나누는 자리에서 중앙정보부나 검찰이나 사법부도 원망스러웠지만, 사실 그 사건을 크게 보도했던 많은 언론이 가장 원망스럽고 언론들이 사과해야 한다, 그런 이야기를 하셨던 게 기억나요. 그런데 오늘 이렇게 자리를 만들어주셔서 감사드리고요. 

◇ 김명숙: 저희 YTN이잖아요. YTN NEWS FM 94.5 <당신의 전성기, 오늘>입니다.

◆ 김호정: 그리고 사실 이런 사건들이 여전히 굉장히 많이 묻혀있다는 것, 이런 사건들의 억울함이 풀리려면 더 많은 분의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기억해주셨으면 좋겠고. 그 당시에 간첩이라고 말하는 것은 가장 큰 차별과 배제의 대상에 속한다는 것이었는데, 사실 지금 우리 사회에서도 이렇게 차별과 배제를 당하는 분들이 굉장히 많은 것 같아요.

◇ 김명숙: 앞으로는 그런 일이 없겠죠. 오늘 이렇게 좋은 말씀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성토크쇼, 청춘을 깨워라> <발부리 아래의 돌> 저자 김호정 씨와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 김호정: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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