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투데이

인터뷰전문보기

“언어는 인권... ‘블라인드’ 채용 아닌 ‘기회균등’ 채용”
작성자 : ytnradio
날짜 : 2017-10-09 10:59  | 조회 : 4026 
YTN라디오(FM 94.5) [수도권 투데이]

□ 방송일시 : 2017년 10월 9일 월요일
□ 출연자 :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


◇ 장원석 아나운서(이하 장원석): 오늘은 1446년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반포한 지 571년이 되는 571돌 한글날입니다. 잠시 뒤 10시부터는 한글날 경축식이 열리는데요. 특히 올해는 한글날 경축식 최초로 경축식 식순을 우리말로 바꿔서 진행한다고 합니다. 개식을 ‘여는 말’, 그리고 애국가 제창은 ‘애국가 다함께 부르기’, 경축사는 ‘축하 말씀’, 폐식은 ‘닫는 말’ 이런 식으로 말이죠. 다소 생소하게 느끼실 분들도 계시겠지만, 우리말로 표현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긴 하죠. 오늘은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와 함께 오늘날 한글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대표님, 안녕하세요?

◆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이하 이건범): 안녕하세요.

◇ 장원석: 국민들이 쉽고 즐겁게 한글을 쓰도록 많은 일을 하고 계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또 한글문화연대 대표로 몸담고 계시기 때문에 특별히 한글날을 맞는 기분이 남다르실 것 같아요. 이맘때 바쁘시기도 하고요. 어떤가요? 생각하시는 것만큼 한글에 대한 사회 인식이라는 게 좋은 쪽으로 바뀌고 있습니까?

◆ 이건범: 한글날이 2013년부터 공휴일로 다시 지정되어서 맞고 있는데요. 해가 갈수록 우리말과 한글에 대한 국민들의 소중하다, 다시 내 주변의 생활을 돌아보는 그런 경험들은 상당히 많아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점에서 한글날이 공휴일이 되어서 국민들이 다 이걸 인식하게 된 게 참 다행이라고 생각하고요. 작년에 특히 헌법재판소에서 한글 전용이 우리 헌법 정신에 맞는, 국가 정체성을 규정한다는 그런 요소이다, 라는 것을 판결을 내렸는데, 그런 점들은 더욱더 법적으로도 한글의 지위를 정확하게 정리해준 것 같습니다.

◇ 장원석: 정부 차원에서도 그렇고, 우리 일상생활에서도 인식이 달라지고 있습니까? 아무래도 공휴일로 지정되다 보니까 ‘오늘이 한글날이었구나’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계기는 됐던 것 같아요.

◆ 이건범: 그렇죠. 맞습니다.

◇ 장원석: 그리고 저희가 여러 가지 언론 인터뷰 같은 것을 찾아보니까 “쉬운 말을 쓰면 삶의 질이 나아진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더라고요.

◆ 이건범: 그렇죠. 여러 가지 권리들의 문제도 있지만, 가장 우선적으로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 관련된 말들, 삶의 보장이죠, 보장. 정말 생명의 보장인데, 그런 말들을 쉬운 말로 써야만 국민의 기본적인 생존권 이런 것을 보장해줄 수 있단 말이죠. 그래서 예를 들면 저희도 꾸준히 주장했었고 얼마 전에 행정안전부에서도 그렇게 바꾸자고 했던 말이 ‘AED, 자동제세동기’ 이렇게 되어 있었던 심장 충격기를 바꿨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런 말들이 일단 심장 충격기를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거죠. 그런 것에서부터 여러 가지 경제적인 권리문제까지도 쉬운 말을 써야 학력 차이나 이런 것에 구애받지 않고 사람들이 자기 권리를 누릴 수 있는 그런 상황이 될 겁니다.

◇ 장원석: 그렇죠. 확실히 한 번 들었을 때 한자어나 외래어로 된 것보다 이해하기가 쉬워요. ‘AED, 자동제세동기’ 처음에는 ‘이게 뭔가’ 해서,

◆ 이건범: 정체를 알 수 없죠.

◇ 장원석: 네. 찾아보곤 했는데 ‘심장 충격기’ 이러면 알아듣기가 쉽고. 이거 말고도 다양한 게 많잖아요. 주변에 ‘스크린도어’, ‘핸드레일’, 이런 것도 있고요.

◆ 이건범: 예. 지하철에서도 그런 말들이 많이 사용돼요. 지금도 지하철에 보면 비상호출 응급 전화하는 것을 ‘Emergency’라고 영어로만 표기해놓고 있거든요. 그런 건 정말 저는 큰 문제라고 생각을 해요. 그리고 예를 들면 ‘싱크홀’ 이런 걸 자꾸 얘기한단 말이죠. ‘땅 꺼짐 현상 이렇게 얘기하면 되는데 언론에서도 아직까지도 ‘싱크홀, 싱크홀’, 자꾸 이런 이야기를, 말을 쓰고 있기 때문에, 그런 영어를 잘 모르는 사람들일 경우에는 위험에 그대로 노출되는 문제가 있는 겁니다.

◇ 장원석: 확실히 우리말로 바꾸게 되면 의사소통할 때 세대라든지 계층 사이의 거리감도 많이 줄어들 것 같긴 합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말이지만, 별생각 없이 쓰는 외래어·한자어가 이렇게 많다는 생각이 또 이렇게 오늘에 들어서 더 많이 드는데요. 대표님이 보시기에 이 단어만큼은 이런 식으로 바꾸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게 있습니까?

◆ 이건범: 저는 요즘 좀 많이 나오고 있는 얘긴데, ‘블라인드 채용’ 같은 말은 저는 정말 큰 문제라고 생각을 해요. 일단 ‘블라인드’는 보통 영어 좀 쓰는 사람들은 시각장애인을 지칭하는 말인데, 보통 그 사람들이 기분 나빠하는 면도 있죠. 정확하게 ‘균등 채용’ ‘가림 채용’, 이런 식으로 그 목적을 분명하게 밝혀주는 게 오히려 좋거든요. 그런데 이걸 ‘블라인드 채용’이라고 관심 끌기 식의 이름을 붙여서 자꾸 부르다 보니까 오히려 그런 기회를 제대로 알아야 할 사람들에게 방해가 될 수도 있고, 또 영어능력이 떨어지는 분들에게는 뭔가 상실감을 느끼게 하죠. 그런 문제들이 있다고 봅니다.

◇ 장원석: 그러면 이 단어를 우리말로 바꾼다면 뭐가 있을까요?

◆ 이건범: 정보를 가리고 채용하는 거니까 ‘정보 가림 채용’, 또는 목적으로 본다면 채용기회를 균등하게 하겠다, 이런 맥락에서는 ‘기회균등 채용’ 이렇게 하는 게 저는 좋다고 생각합니다.

◇ 장원석: 그렇군요. ‘블라인드 채용’ 말고도 한두 가지가 아니잖아요. 거슬리는 게 많으시죠?

◆ 이건범: 네. 너무 많죠, 그런 것들이요.

◇ 장원석: 또 하나 생각나는 거 지금 있으십니까?

◆ 이건범: 한자어로 되어있는 말 가운데도 ‘포괄수가제’ 이런 말이 있거든요. 그런 말 자주 나오는데, 사실 이것은 질환별 의료비 정찰제 같은 개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어떤 병에 걸렸을 때 그것에 대해서 똑같은 의료비를 받는 그런 정책인데, 그냥 ‘의료비 정찰제’ 이렇게 얘기하면 너무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데 그걸 그냥 ‘포괄수가제’라고 부르는 거죠, 보험 쪽의 어떤 용어 때문에. 그러다 보니까 그 뜻이 뭔지를 모르고 국민들이 그냥 그런 말 앞에서 주눅 드는 거죠. 그래서 그런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 장원석: ‘포괄수가제’ 우리가 그냥 언론에서도 쉽게 쓰는 말이고 일상생활에서도 흔히 쓰는 말이기 때문에 신경을 안 썼는데, 대표님 말씀 듣고 보니까 그러네요. 이렇게 쉽게 바꿔 쓸 수 있는데 굳이 이렇게 써야 하나,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말은 습관이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입에 한 번 배면 잘 고쳐지지가 않아요, 또. 그래서 요즘 초등학생들, 중고등학생들이 쓰는 한글을 보면 인터넷·SNS·스마트폰 영향을 많이 받아서 도무지 저조차도 알 수 없는 단어들이 많아서, 저보다 더 나이가 많은 세대들, 그리고 어르신들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나, 이런 걱정도 들거든요. 대표님은 어떻게 보세요?

◆ 이건범: 세대 사이의 의사소통에 단절이 생기고 하는 문제는 분명히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게 또 한때 유행처럼, 아이들에게 유행처럼 그때의 어떤 또래 언어로 그렇게 흘러 지나가는 말들이 많고, 또 그다음에 그런 말들 중에는 어찌 보면 우리말의 새로운 낱말 역할을 해주는, 그런 풍부한 역할을 해주는 말들도 있거든요. 예를 들면 ‘밀당’ 이런 말들 생겼지 않습니까? 그리고 또 뭐 있을까요? ‘가성비’ 이런 말을 어린 세대들이 만들어내는데,

◇ 장원석: ‘밀고 당긴다’, ‘가격 대비 성능이 좋다’

◆ 이건범: 네, 그런 식으로. 그런데 그런 말들은 또 어찌 보면 우리 국어의 새로운 낱말을 만들어주는 역할도 하거든요. 다만 그런 새말을 만드는 방법을 아이들에게 어릴 때부터 좀 가르쳐줘야 하는데, 그런 걸 저는 우리 국어에서 제대로 못 하고 있는 게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 장원석: 예. 그러니까 그 당시에 쓰는 말들이 있기 때문에 한글을 학생들이 속된 말로 파괴한다는 얘기가 지금 처음 나온 건 아니거든요. 1990년대 후반에도 그랬고.

◆ 이건범: 그렇죠. 원래 그랬죠. 옛날에는 그게 한 교실 안에서 갇혀있었다면 지금은 전화기, 인터넷을 통해서 쉽게 빨리 퍼지니까 더 좀 부추겨지는 그런 면이 있는 건 분명합니다.

◇ 장원석: 나이를 먹어가면서 그런 용어를 잘 쓰지 않으니까 그때만의 유행이다, 이렇게 볼 수도 있지만, 다르게 한글을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을 가르쳐주는 것도 어른들의 몫이겠군요.

◆ 이건범: 그렇죠. 그런 교육을 좀 더 저는 폭넓게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장원석: 오히려 그런 것들을 이용해서 창의적인 한글을 쓸 수 있도록.

◆ 이건범: 네. 말 만들기 능력, 이런 걸 키워주는 거죠.

◇ 장원석: 그렇군요. 그런데 이제 어른들 얘길 해보면요. 신문·뉴스 만드는 사람들 다 어른들 아닙니까? 그리고 정부를 비롯한 공공기관이 사용하는 단어도 그렇고요. 아까 앞서 몇 가지 설명해 주셨지만, 지금 생각나는 단어 제가 몇 개 읊어보면요. ‘뉴딜정책’ ‘리모델링 사업’ ‘잡매칭’ ‘인프라’ 이런 게 수도 없이 많아요.

◆ 이건범: 그렇죠. 사실 그렇게 쓰지 않아도 되는 외국어를 그냥 남용하고 있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예를 들면 ‘위험’이라는 말도 ‘리스크’라고 그냥 하고 있거든요. 그것 참 문제죠, 말씀하신 대로. 

◇ 장원석: 이런 것들 고쳐달라고 지적을 계속하고 계시잖아요. 잘 안 되나요?

◆ 이건범: 좋아졌다가 다시 나빠졌다가 이런 식입니다. 저는 특히 공공부문, 특히 정부에서 쓰는 말 같은 경우에는 우리 국어기본법에서도 ‘국민이 알아들을 수 있는 용어와 문장을 사용하라’고 규정하고 있거든요. 그리고 ‘반드시 한글로 써라’ 이렇게 규정하고 있는데, 이게 처벌조항이 없다 보니까, 그리고 공무원분들께서 아직 잘 모르는 분들도 많고. 그러다 보니까 아직 제대로 좀 실현되지 않고 있는 면이 큰 것 같습니다.

◇ 장원석: 보도자료를 보더라도 가끔은 아예 영어단어만 써져 있을 때도 있고, 한글을 옆에다 표기하지 않은 것도 있더라고요.

◆ 이건범: 예. 심지어는 한글 옆에다가 괄호 속에 영어로 집어넣어서 마치 무슨 영어를 가르치는 것처럼 그런 보도자료들도 있어요.

◇ 장원석: 들쭉날쭉한데 이런 것도 통일되고 한글 중심의 보도자료를 내줬으면 좋겠네요, 정부에서도.

◆ 이건범: 우리나라 보도자료들 저희가 매년 분석하는데, 석 달 치 3천 건 정도 분석하는데, 올해도 보니까 그런 영문을 갖다가, 로마자를 그대로 공문에 드러낸 게 보도자료 한 건에 세 번꼴로 나타나요. 그래서 문제가 큰 거죠. 그리고 쓸데없는 외국어 남용도 7번 정도 나타나는 편입니다.

◇ 장원석: 정부에서 오늘 잠시 뒤에 한글날 경축행사도 하는데, 정부에서부터 이런 것들 좀 하나씩 고쳐 가면 좋을 것 같기도 해요.

◆ 이건범: 우선 정부가 먼저 모범을 보이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장원석: 그렇죠. 그리고 <언어는 인권이다> 라는 책을 내신 걸로 알고 있어요. 한글날을 맞아서 언어와 인권은 어떤 관계가 있다고 말씀해주신 건지, 우리 라디오 듣는 분들을 위해서 간단하게 설명 부탁드리겠습니다.

◆ 이건범: 세종대왕께서도 한글을 창제하신 목적을 어리석은 백성이 제 뜻을 펼칠 수 없는 상황을 안타까워하셔서 한글을 만드신 건데, 말과 글이라는 게 자기 뜻을 펼 수 있는 기본적인 연장이란 말이죠. 그렇기 때문에 내가 뜻을 펴려면 뭔가 먼저 알아야겠죠. 그래서 말과 글이라는 것은 국민의 알권리와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국민의 권리·생명·안전·재산·의무, 이런 쪽에 전부 다 관계된 게 말과 글이기 때문에 어떤 말과 글을 쓰느냐가 그 국민의 권리를 보장해주는, 그런 영향을 미치게 되겠죠. 그리고 또 국가와 국민의 관계뿐만 아니라 국민들 사이에서도 서로를 동등한 시민으로 인정하는, 서로 배려하고 상대방의 견해를 존중하는, 그런 국어사용, 이것이 국민의 전반적인 정치참여를 보장하고 민주주의의 질을 높여가는 그런 역할을 하게 되죠. 그런 점에서 본다면 어떤 기본권들과 참정권, 이런 모든 면에서 언어는 바로 국민의 인권과 직결되어 있다. 이런 점을 이제는 우리가 다시 한 번 생각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 장원석: 알겠습니다. 오늘 한글날을 맞아서 한글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 이건범: 고맙습니다. 

◇ 장원석: 지금까지 한글문화연대의 이건범 대표였습니다.

[저작권자(c) YTN radio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
  목록
  • 이시간 편성정보
  • 편성표보기
말벗서비스

YTN

앱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