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전성기, 오늘
  • 진행자: 김명숙 / PD: 신아람 / 작가: 조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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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토크쇼, 청춘을 깨워라 “인생을 담은 시” - 정재찬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작성자 : ytnradio
날짜 : 2017-06-29 12:55  | 조회 : 7472 
YTN라디오(FM 94.5) [당신의 전성기 오늘] 
□ 방송일시 : 2017년 6월 29일 (목요일) 
□ 출연자 : 정재찬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감성토크쇼, 청춘을 깨워라  “인생을 담은 시” - 정재찬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 김명숙 DJ(이하 김명숙): 
 
그러므로, 썩지 않으려면 다르게 기도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
다르게 사랑하는 법 
감추는 법 건너뛰는 법 부정하는 법 
그러면서 모든 사물의 배후를 
손가락으로 후벼팔 것 
절대로 달관하지 말 것 
절대로 도통하지 말 것 
언제나 아이처럼 울 것 
아이처럼 배고파 울 것 
그리고 가능한 한 아이처럼 웃을 것 
한 아이와 재미있게 노는 다른 아이처럼 웃을 것

- 최승자, ‘올 여름의 인생공부’ 

나이가 들면 사는 게 쉬워질 줄 알았는데, 사람 대하는 게 더 쉬워질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네요. 인생사는 게 더 깊어지는 걸 수도 있겠지만, 참 쉽지 않습니다. 제가 읽어드린 시처럼 시는 깊은 인생을 가장 잘 담아내는 도구인 것도 같습니다. 오늘 4부 오프닝으로 죽은 시인의 사회 OST가 흘렀는데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카르페 디엠’, 유명한 대사를 남긴 선생님, 키팅 선생님 기억하시죠? 로빈 윌리엄스가 주연으로 한 키팅 선생님 같은 분 오늘 모셨습니다. 오늘 <감성토크쇼, 청춘을 깨워라>, 인생을 담은 시를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의 선물로 안겨주고 계시죠, <시를 잊은 그대에게>, <그대를 듣는다>의 저자인 정재찬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함께하셨습니다. 안녕하세요.

◆ 정재찬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이하 정재찬): 안녕하세요.

◇ 김명숙: 교수님 모시기 왜 이렇게 어려워요. 저희 제작진이 거의 1년 넘게 기다렸다고요.

◆ 정재찬: 제가 전에는, 내 인생은 책을 쓰기 전과 후로 나뉘는 것 같아, 책 쓰고 나서 방송도 하고, 강연도 하게 되고 그랬는데 요즘 와서 생각이 바뀌었어요. 인생은 입학처장을 하면서 전과 후로 나뉘어요. 입학처장까지 하게 되니까 요즘 정말 시간 낼 틈이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 

◇ 김명숙: 업무가 정말 많으시죠. 입학처장 역할 하시려면, 방송 ‘톡투유’도 하시고, ‘어쩌다어른’ 프로그램도 나오시고. 책도 쓰시고, 신간도 내시고, 강의도 하시고. 어떤 일이 정말 전문분야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모든 분야에서 엄청나게 활약하고 계십니다. 그야말로 제2의 전성기라도 말씀드려도 될 것 같아요. 

◆ 정재찬: 그동안 전성기가 없었다는 뜻도 되고요. 역시 전성기는, 어릴 적이 제 인생의 전성기였던 것 같고요. 중학교 때까지는 정말 행복했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청소년부터 참 힘든 시절을 보내고. 

◇ 김명숙: 독특하세요. 어린 시절, 중학교 그 시절을 전성기라고 말씀하시는 분은 제가 잘 못 들었거든요. (웃음)

◆ 정재찬: 요즘은 좀 조심해요. 어디까지가 내가 해야 할 소명이라고 생각하고, 어디부터가 내가 하고 싶은 욕망이라고 생각하지는 지를, 그것을 헷갈리지 말자. 많은 경우가 소명이라고 하는데 자기 욕망인 경우도 많은 것 같고요. 조심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 김명숙: 제가 앞서 4부 문을 열면서 낭독해드린 최승자 시인의 시, ‘올 여름의 인생공부’. 이 시도 교수님의 새 책 <그대를 듣는다>에 나오잖아요. 정말 그 책을 보니까 좋은 시들을 사람들에게 소개해주는 다리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계신다는 느낌을 들었어요. 그 시작이 사실 작년에 출간해 엄청난 사랑을 받은 <시를 잊은 그대에게>가 아닌가 싶어요. 

◆ 정재찬: 사실 시라고 하는 게 저에게는 독자들과 만나는 통로이자 벽일 수도 있어요. 시를 아예 가까이하고 싶지 않으신 분은 제목만 보고 오지도 않으세요. 그런데 그 벽이 조금씩 허물어지는 듯한 느낌을 그 책을 내면서 느낀 거예요. 

◇ 김명숙: 엄청 사랑을 받았죠. 

◆ 정재찬: 길이 넓혀지는 느낌, 전에는 글로 물 하나 흐르지 않았는데, 그런 게 가장 기분이 좋았고 보람 있었습니다. 

◇ 김명숙: 시가 주는 느낌이 저는 세월이 흐르며 같은 시라도 예전에 읽었던 시와 최근에 다시 읽으면 느낌이 참 다르게 다가오더라고요. 

◆ 정재찬: 최승자 시인의 시 경우도 그냥 인생에 대해 원숙하라고 하는 것 같은데, 원숙하면 할 일이, 과일이 원숙해지면 그다음 일은 썩는 것밖에 없습니다. 과일이 썩으면 안 되는 것처럼 인생이 원숙하다고 그냥 달관하는 척하지 말고, 오히려 어린이처럼 지내야 한다는 뜻이었던 거죠. 그래서 지금 50대에 들으면 또 다르게 들리는 거죠. 

◇ 김명숙: ‘나이 들어도 철딱서니 없어, 철 언제 들래.’라는 얘기도 하는데, 가끔씩 ‘나 철 안 들었으면 좋겠어, 아이 같았으면 좋겠어.’ 이런 생각도 들거든요. 

◆ 정재찬: 아이의 눈이 시인의 눈이라고 하죠. 

◇ 김명숙: <시를 잊은 그대에게>, 책을 내시면서 이 책이 많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사랑을 받을까, 그렇게 큰 사랑을 받을 줄 아셨나요?

◆ 정재찬: 조금 기대는 했어요. 시에 대해 이렇게 쓴 책은 없을 거다. 그런데 말씀드린 것처럼 그 안에서 새로운들, 아예 시 자체에 대한 관심이 없는데 이게 될까, 과연 시에 관한 책이 읽힐까. 그런데 그게 넓혀졌다는 건 그만한 사람들의 바람이 있었다는 거죠. 그동안 만나주질 못했다는 것, 그런 의미로 생각하고요. 이 시대 많은 분들이 그만큼 아프다는 뜻 같기도 하고요. 그만큼 시를 통해 위로를 받았다는 뜻도 되는 것 같고요. 

◇ 김명숙: 당신의 전성기, 오늘. 이 방송 중에서도 지난겨울 매주 수요일, 아이돌 시인이죠, 박준 시인과 함께 ‘시를 품은 수요일’이라는 코너를 했었어요. 청취자분들이 너무 좋아하셨어요. 위로와 힐링이 되고, 정말 좋다는 말씀들 많이 하셨는데요. 교수님께서도, 이 책을 보면 시가 위로와 소통의 역할을 톡톡히 한다는 얘기를 하셨어요. 어떤 이유에서 그런 역할을 한다고 보시나요?

◆ 정재찬: 많은 분들의 오해가 시는 어렵다, 오히려 소통이 안 되는 언어라고 생각하시는데, 그건 우리가 굉장히 인생을 뭉툭하게 살 때입니다. 그런데 내 사랑에 관심 가질 때는 사랑이라고 하는 단어는 아무 힘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누군가와 소통한다는 것, 얘기를 듣는다는 건 단지 그 내용만 듣는 게 아니거든요. 부부간 힘든 게 무엇이냐면, 집사람이 막 이야기해요. 그러면 남편은 쭉 듣다가 ‘그래서 뭐.’ 그건 듣는 게 아니에요. 요지만 얘기하라는 건 듣는 게 아니고, 얘기하는 그 자체, 그 어조, 그 의도까지 다 들어주는 게 듣는 건데요. 시가 그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는 만약 어떤 친구가 ‘남편 때문에 죽겠어’, ‘그럼 헤어져’라는 건 잘 들어주는 게 아니죠. 어조에 담긴 내용은 ‘난 너무 행복해’인데, 시는 그런 것 하나하나를 음성까지 담아내는 도구에요. 가령 ‘보드레한 에메랄드 얇게 흐르는 실비단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고 말 하는데, 그래서 ‘내용이 뭐야? 푸른 하늘이 보고 싶다고? 진작 그렇게 쓰지.’ 그 내용의 요지가 아니라 왜 보드레한, 에메랄드, 얇게 흐르는, 이렇게 경청하게 만들까. 내 말을 시처럼 들어준다면, 꼼꼼히 들어준다면 내가 얼마나 소통이 되겠어요. 그런 의미에서 사실 시어는 가장 정확한 내 감정의 결을 옮겨주는 언어라고 생각합니다. 

◇ 김명숙: 시는 교수님이 쓴 책에서도 이런 얘기가 나오긴 하지만, 시는 쓰는 사람의 시가 아니고 그것을 읽는 사람, 느끼는 사람이 주인이라는 느낌인 글이 있더라고요. 저도 어떨 때 보면 이 시가 마치 어떻게 이렇게 내 마음을 잘 알까, 이런 느낌 받을 때가 있거든요. 그럴 때 위안이 되고 힐링이 되는데요. 가끔씩 보면 말씀하신 것처럼 단어로 압축되는 의미가 있어요. 아주 간단한 단어 하나인데 전체 시를 다 아우를 때도 있고요. 우리 교수님께서는 시를 대중들에게 소개할 때, 어떤 기준으로 소개하시나요? 

◆ 정재찬: 아무래도 대중 혹은 방송을 통하다 보니까 난해한 시는 뒷전으로 갈 수밖에 없고요. 저는 무엇보다 시가 어떤 울림과 떨림을 주나. 그리고 제가 주제나 상황별로 시를 고르기 때문에 ‘꼭 반드시 알아야 할 100선’, 이런 식으로 공부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무언가를 필요로 할 때 그때 무엇이냐, 가령 방송 나갔을 때 주제가 제게 주어져요. 처음에는 ‘그런 시가 있겠어.’, 어떨 때는 테러를 가지고 시를 꼽아 달라고. 그런데 찾아보면 있어요. 그만큼 우리 시인들은 성실하다는 거죠. 그러면 거기에 맞는 맞춤형 시를 제공해주면 내 삶의 이럴 때 시가 필요하다는 점을 느꼈을 텐데, 그동안 우리는 시의 목록을, 여기에서부터 저기까지 배워야하는 시라고 했기 때문에 자기 삶과 연관을 못 맺은 것, 그래서 시와 삶을 연결해줄 수 있는 그런 시들을 많이 선정하는 편입니다. 

◇ 김명숙: 사실 생각해보면, 누구나 시인일 수 있는 것 같아요. 어린 시절에는 정말 편지도 잘 쓰고 글도 잘 썼던 것 같고요. 시도 동시라고 하나요, 그런 것도 썼는데. 커가면서, 나이가 들면서 잊혔고, 안 하다보고, 점점 멀리 느껴지고. 나이가 먹으면서 자연적으로 그런 건지, 아니면 시를 쓰는 사람들은 DNA가 타고 나서 계속 시를 쓰고 접하게 되는 걸까요?

◆ 정재찬: 시인이라든가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우리 감정의 섬세한 결이 중요한 사람들이에요. ‘슬퍼’가 아니라 ‘오늘은 이렇게 슬퍼’ 그까지의 관심인데요. 우리가 늙어간다는 건 효율과 합리가 지배하는 거거든요. 그에 대한 배려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나이가 든다는 것은 자꾸 낭비를 견디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니까, 감정의 처리를 낭비로 보는 거죠. 사실 우리 10대 때 가장 소중했던 것은 감정이었어요. 그런 것들에 대한 회복인데, 나이가 드니까 마음은 정말 여전히 로맨틱한 것 같은데, 안 되는 것 같죠. 저도 제자들이 가끔 이렇게 질문해요. “교수님, 젊어지고 싶으세요?”, “그럼”, “다시 대학 시절로 가고 싶으세요?”, “아니, 그렇게 다시 춥고 배고프긴 싫어. 이 모든 것을 가지고 지금 젊어지고 싶어.” 그런데 그게 허용이 안 되잖아요. 거꾸로 말씀드리면 지금 우리 나이가 너무 많은 걸 가지고 있어요. 그것을 놓치기 싫은 거고 잃을 게 너무 많은 거죠. 그런데 젊은이들은 Nothing to Lose에요, 잃을 게 없어요. 그런 친구들은 도전한단 말이죠. 나이 들면서 왜 자꾸 두근거림이 없어지느냐면, 잃을 게 많아서 그에 매달려 못 내려놓고 있는 것 같아요. 새로운 두근거림을 찾으려면 버리고 새로운 것을 채워야 할 텐데, 너무 많은 걸 갖고 있게 된 거죠. 

◇ 김명숙: 두근거림. 설렘. 떨림. 이런 것을 잃지 말아야 할 것 같아요. 

◆ 정재찬: 그렇죠. 그러기엔 우리가 너무 많은 것을 갖고 있어요. 그것이 축복이지만 동시에.

◇ 김명숙: 지금 계속 그러한 두근거림, 떨림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 정재찬: 저는 요즘 인생이 무슨 마음을 비우고, 이런 것 같지 않고요. 비워보려고 했는데 잘 안 비워지더라고요. 사실 마음은 비우는 게 아니라 가치 있는 것으로 채우는 게 옳은 게 아닐까. 어차피 비우기가 힘들다면 채우는데, 어떤 것으로 채울까. 그 고민을 해야 할 나이에 온 것 같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채우고자 했던 것이 무슨 부와 명예와 권력이었다면, 이제는 어떤 선한 것으로 내 가슴을 채울까. 그래야만 두근거릴 것 같거든요. 그러려면 익숙한 것과의 결별을 준비해야 할 거로 생각합니다. 

◇ 김명숙: 익숙한 것과의 결별이라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 정재찬: 그동안 자기가 추구해왔던 것들, 한 번 음악 장르도 바꿔봤으면 좋겠어요. 저는 여전히 트로트 좋아해요. 

◇ 김명숙: 트로트 좋죠.  

◆ 정재찬: 여전히 좋아하는데 한번 그냥 집사람 따라 기타 연주회를 같아요. 아주 심한. 

◇ 김명숙: 클래식 기타?

◆ 정재찬: 아니죠, 아주 심한. (웃음) 그 콘서트장에 갔는데 저도 모르게 두근거리더라고요. 그러니까 이제 조금 여유 있게, 그동안 익숙했던 것만 고집하지 말고 또 새로운 것을 추구해도 우리 괜찮다, 그런 나이 아닐까. 

◇ 김명숙: 새로운 변화를 찾아보는 것도 두근거림, 설렘을 맞이할 기회가 될 것 같아요. 

◆ 정재찬: 네, 힙합, 랩 정도에만 도전 안 하면. (웃음)

◇ 김명숙: 힙합, 랩도 하실 수 있을 것 같아요. 도전해보세요. 왜 그렇게 말씀하세요. (웃음) 아니 근데 제가 교수님의 신간도 읽으면서 느낀 것이, 우리 교수님께서는 정말 감성이. 많이 이런 얘기를 들으셨겠지만, 감성이 풍부하다는 것을 넘어서, 약간 감히 말씀드리자면, 교수님 마음 안에 여성성이 많이 있는 분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굉장히 부드러우면서도 여린 듯한 감성의 소유자 같다, 이런 느낌을 제가 받았는데, 잘못 파악한 건가요?

◆ 정재찬: 같이 사는 집사람도 몰라주는 것을 이렇게 독자가 알아주시니까 정말 놀라운 감성의 소유자세요. 

◇ 김명숙: 제가요? 정말 그런 느낌을 받았거든요. 

◆ 정재찬: 어렸을 때는 제가 그러한 놈인 줄 몰랐어요. 도전해야 하고, 성공해야 하고, 이런 거에만 매달렸다가 사실 살짝 인생이 꺾인 게 저에겐 너무너무 감사해요. 그러면서 내 안에 있었던 감성이라든가 내게 이런 재능이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됐는데요. 아마 누나들의 영향일 것 같기도 하고, 어머니의 영향일 것 같기도 하고요. 다른 친구들에 비해서는 배려라든가 신경 쓰는 게 많다고 해야 하나. 그런 건 있어요. 

◇ 김명숙: 오히려 저는 나이가 들면서 남성분이 이렇게 부드러운 감성을 가지고 여성을 이해해주고, 그런 감성의 소유자라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요. 여성의 입장에서도.

◆ 정재찬: 지금이 사랑을 하기 최적의 나이인데요. 몸이 안 그런 것이 저주죠. 인생이 대개 그렇습니다. 시간이 많을 땐 돈이 없고요. 돈이 많을 땐 시간이 없어요. 그게 인생 같아요. 

◇ 김명숙: 말씀 중에 삶이 꺾이셨다고 했는데요. 삶의 고난을 말씀하시는 건지, 어떤 의미에서 꺾인 걸 말씀하시는 건가요?

◆ 정재찬: 제가 얼마 전 어느 동료 교수와 이야기하면서 너무 그 양반의 인생이 재밌었어요. 책 좀 내자, 내가 책 제목을 지어줄게. ‘인생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게 낫다.’  

◇ 김명숙: 좀 심오하네요. 

◆ 정재찬: 내 뜻대로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꿈을 가져라, 비전을 세워라, 이런 자기계발서도 좋아요. 그것도 정말 우리 삶에 가장 필요한 거죠. 하지만 대개 뜻대로 사는 사람 별로 없고요. 꿈이 있는 곳에 길 없어요. 그러면 오히려 거꾸로, 길이 있는 곳에 뜻이 있을지 몰라요. 바꿔서 생각해보는 거죠. 내가 어쩌다 이 길에 왔지, 한탄하는 것이 아니라 이 길에 올 때 무슨 뜻이 있을 거야, 나는 이 안에서 뜻을 이룰 거야. 그 뜻을 이루면 나중에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저것 봐,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는 거야.’라고 말한 게 아닐까. 어느 누가 어릴 적부터 내 뜻이 어디에 있고, 그러려면 어떤 길이 있고. 그렇게 살았겠어요. 그렇게 노력해서 이룬 사람들도 많겠지만, 뜻대로 인생이 되지 않는데 때로는 그게 나을 수 있다. 중요한 건 자기가 얼마나 자기 길에 감사하고, 그 안에서 분투노력하는가. 그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김명숙: 말씀 중에 제가 잠깐 <그대를 듣는다> 책에서 그러한 구절이 생각나는데요. 가파르고 강퍅하기만 했던 30대, 그에 비하면 40대는 드넓고 평탄한 평야 같다. 그런데 그 평야에서도 유리 벽 같은 게 있어서 언제 부딪힐지 모르고 그러다 보면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구절이 생각나는데요.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얘기와 방금 전에 하신 내용이 통하는 내용인가요?

◆ 정재찬: 맞습니다. 그게 인생의 목표라고 생각하고 왔는데 그놈에게 찍히죠. 

◇ 김명숙: 그러면 40대는 드넓고 평탄한 평야 같다고 하셨는데, 지금 50대는 어떻게 표현하실 수 있을까요?

◆ 정재찬: 이 책을 쓰면서 네가 얼마나 살아서, 이런 게 마음에 걸렸는데요. 사람은 결국 자기 나이밖에 살 수가 없는 거니까. 저는 제가 바라본 50대가 어떤 느낌이냐면, 예전에 내가 바라본 어른들의 50대, 그것을 흉내 내면 꼰대라고 할 거고요. 그런 반면 너무 애매한 나이가 되었어요. 지금 50대들은 예전처럼 늙어가는 대목이 아니라 100세 인생 시대라고 하니까. 이제 막 반환점을 도는 마라토너 정도로 생각하는 게 옳지 않을까. 그래서 이제 정말 마라톤의 한 코스를 경험해봤으니, 그 경험으로 되돌아가는 연습을 해야 하는 나이라고 생각합니다. 

◇ 김명숙: 지금 내 나잇대가 가장 아름답다는 말씀도 많이 하시더라고요. 그렇게 생각하는 게 가장 행복하다. 

◆ 정재찬: 그럴 수도 있어요. 젊었을 때 사진보고 이때가 예뻤어. 아니 지금이 제일 예뻐. 

◇ 김명숙: 교수님께서도 지금이 제일 멋있으신 건가요?

◆ 정재찬: 네, 인정합니다. (웃음)

◇ 김명숙: 멋있으세요. (웃음) 4741님, “회사에서는 간부, 중고등학생들의 학부모, 내 이름의 한 채의 집, 정말 가진 게 많은데요. 허무한 건 왜일까요. 정말 젊었을 때는 가진 게 없어도 충만했는데, 교수님의 30대, 40대는 어땠어요? 젊을 때 시의 의미를 알았나요?”라고 하셨어요. 

◆ 정재찬: 앞만 보고 달렸죠, 저도.  

◇ 김명숙: 대부분 그렇죠. 

◆ 정재찬: 여유도 없었고요. 돌아볼 틈도 없었고. 그때 저에게 시는 그냥 제 학문의 파트너였어요. 이것을 나눠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부터 우리 삶의 헛헛한 빈틈들에 시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우리 인생의 대나무 숲을 또 하나 만들어주고 싶었고요. 사실 우리가 아무리 바쁘게 살더라도 그 대나무 숲에 잠시 쉬었다가 다시 소생되어 현실로 돌아왔으면. 우리가 계속 시에 머물 수는 없어요. 그러나 가끔은 그 숲에 가서 쉬었다 나올 수 있는, 그러한 곳은 있어야겠다. 

◇ 김명숙: 지금 잠깐 쉬는 것에 대해 말씀하셨는데요. 교수님께서 그런 말씀도 하셨잖아요. 사람이 이야기를 할 때도 목소리를 들을 때 이야기하는 목소리만 듣지 말고 잠깐, 잠깐 쉼. 침묵까지 들으라고 말씀하셨어요. 침묵까지 들으라는 게 저는 좀 와 닿았거든요. 

◆ 정재찬: 시가 왜 행과 연을 나눌까요. 그 연에서 쉼까지 이해해야만 시를 온전히 이해하는 것. 시를 잘 듣는 게 왜 위로와 소통이냐면, 숨결까지 읽어주려고 하는 거니까. 

◇ 김명숙: 마찬가지로 인생에 있어서도 조금 쉬면서, 쉼의 여유를 잠깐 느끼는 것도 중요하다는 느낌으로도 받아들여지거든요. 

◆ 정재찬: 제가 시를 잊은 그대에게, 라고 할 때는 시로 계속 사는 건 아니에요. 가끔은 돌아와야 한다는 의미죠. 

◇ 김명숙: 4510번 님, “저는 교수님 골수팬이에요. 교수님 책, 방송, 다 찾아보는데요. 교수님이 쓰신 시집이 읽고 싶은데 교수님은 시집 안 내세요?”라고 하셨어요. 그런데 왜 한숨을 쉬세요, 우리 교수님.

◆ 정재찬: 저는 시인이 아니고요. 시인들에게 늘 감사하면서 한편으론 나도 시인들에게 뭔가 해주고 있는 걸까, 그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제가 굳이. 시는 제가 딱 대학교 때 써클을 하면서 한 번 쓰고, 이건 아니라는 걸 바로 알았던 장르에요. 저는 못쓴다는 생각을. 시를 쓰기엔 말이 너무 많다고, (웃음) 그래서 접었습니다. 

◇ 김명숙: 그러세요. 그러면 왜 교수님은 지금 늙을 시간도 없으실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워낙 바쁘셔서요. 

◆ 정재찬: 그렇지는 않습니다. 

◇ 김명숙: 아니 그럴 것 같아요. 그런데 바쁜 시간 속에서 <그대를 듣는다> 책을 내셨는데요. 작년에 내신 <시를 잊은 그대에게> 그 책과 다른 점은 어떤 건가요? 

◆ 정재찬: 두 번째 책을 내면서 쓸데없는 부담이 들었어요. 가수가 2집 내는 것도 아닌데, 1집이랑 똑같으면 똑같다고 할 것 같고 다르면 다르다고 할 것 같고. 비슷하면서도 다르게 어떻게 가야 할까. 그런데 계획하고 그러고 싶진 않았어요. 에세이답게 체계를 갖추고 싶지도 않았고 정말 편안하고 자유롭게 쓰자. 딴 꿈꾸지도 말고. 다만 달라진 점이 있다면 수록 작품들이 <시를 잊은 그대에게>에서는 교과서에 있는 명시들 기반으로 많이 익숙하시겠지만, 어떤 면에서는 낯익은 시도 될 텐데요. 이번 책에서는 조금 그와는 다른 것도 있고요. 약간 센티멘탈리즘이 1권에 있었어요. 응팔 분위기가 있었죠. 그것을 담담하게 줄이면서 현실에 대한 발언도 조금은 조심스럽게 담아보고자 했기 때문에 평가는 엇갈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전반적으로 같다는 점, ‘그대’라는 키워드는 이어가면서 저는 제가 주로 발언을 많이 했다고 싶으면, 이번엔 좀 듣는다는 표현을 쓴 이유는, 우리 삶의 이야기를 같이 나누겠다는 뜻이 담겼습니다. 

◇ 김명숙: 듣는다는 책 제목처럼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이 듣는 느낌이었고 많이 들었습니다. 음악을 많이 들었어요, 새롭게. 이 안에 이야기도 있으면서 시도 있고 음악도 있고. 예전에 즐겨 들었던 노래이지만 다시 이 책을 읽으면서 새롭게 노래를 찾아가며 읽느라 책 읽는 시간이 더뎠어요. 같은 노래라도 참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더라고요. 시도 그런 것 같아요. 

◆ 정재찬: 사실 제가 바라는 건 저 책에서 꾹 누르면 노래가 나오고, 꾹 누르면 영어가 튀어나오고. 그랬으면 좋겠어요. 

◇ 김명숙: 저도 어제 그런 느낌이었는데, 바로바로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음악 찾지 않으면서. 그런데 시를 노래로 만든 것도 많잖아요. 참 좋았어요, 감성적으로. 

◆ 정재찬: 시와 노래의 본질적인 차별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좋은 노래는 웬만한 시보다 나을 수 있고요. 그래서 차별하지 않았고요. 중간에 송창식이라든가 김광석, 이런 분들의 노래를 그냥 똑같이 시처럼 대우하고 싶었어요. 시는 왜 분석하고 해설하면서 노래는 그냥 거저 들으려고 하느냐. 노래에 대해 많은 신경을 썼던 건 맞습니다. 

◇ 김명숙: 오늘 이렇게 바쁜 와중에, 1년 가까이 기다린 끝에 오늘 함께할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하고요. 2588번 님, “나름 문학소녀라고 자부하며 살았습니다. 결국 방송대 국어국문학과 졸업했어요. 시를 모를 때는 시가 안 어려웠는데, 시를 공부하고 나니 시가 더 어려워졌네요. 시를 다시 깨우쳐주신 교수님, 너무 고맙습니다.”라고 하셨어요. 

◆ 정재찬: 감사합니다. 

◇ 김명숙: 문자도 많이 들어왔는데, 시간 관계상 다 소개 못 드리고요. 오늘 함께하신 교수님과 이야기 마무리하는 시간이 벌써 다가왔어요. 정재찬 교수님의 낭독으로 마무리할까 하는데요. 오늘도 힘겹게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권해주고 싶은 시가 있으시다면, 어떤 시를 끝으로 소개해주실까요? 낭독해주시면 좋을 것 같고요. 

◆ 정재찬: 제가 서문에 담은 황규관 시인의 ‘마침표 하나’ 인데요. 인생 전체가 하나의 마침표를 찍는 과정일 수도 있고요. 아니면 우리 사는 과정 중간 중간에 마침표가 있을 거예요. 그것을 힘들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마침표를 찍어야 다음 문장을 쓸 수가 있어요. 그래서 모든 문장이 다 그 나름대로 존재 이유가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오늘 하루도 마침표를 찍어가며 버텨 보시라고 그 시를 낭송하겠습니다. 

◇ 김명숙: 정재찬 교수님의 시 낭송으로 함께한 시간 마무리하겠습니다. 좋은 말씀 정말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정재찬: 네, 고맙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마침표 하나 찍기 위해 사는지 모른다
삶이 온갖 잔가지를 뻗어 
돌아갈 곳마저 배신했을 때 
가슴 깊은 곳에서 꿈틀대는 건 
작은 마침표 하나다
그렇지, 마침표 하나면 되는데
지금껏 무얼 바라고 주저앉고 
또 울었을까
소멸이 아니라 
소멸마저 태우는 마침표 하나 
비문도 미문도 
결국 한 번은 찍어야 할 마지막이 있는 것, 
다음 문장은 그 뜨거운 심연부터다
아무리 비루한 삶에게도 마침표 하나, 
이것만은 빛나는 희망이다

- 황규관, ‘마침표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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