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전성기, 오늘
  • 진행자: 김명숙 / PD: 신아람 / 작가: 조아름

코너전문보기

시를 품은 수요일 마음의 문을 닫은 딸에게 “안도현의 ‘겨울 강가에서’” - 박준 시인
작성자 : ytnradio
날짜 : 2016-11-09 11:18  | 조회 : 9967 
YTN라디오(FM 94.5) [당신의 전성기 오늘]

□ 방송일시 : 2016년 11월 9일(수요일)
□ 출연자 : 박준 시인


시를 품은 수요일 “안도현의 ‘겨울 강가에서’”


◇ 김명숙 DJ(이하 김명숙): 세월이 흘러도 마음은 늘 젊게 살아야지, 이렇게 늘 다짐을 합니다. 그런데도 가끔은 ‘아, 늙었구나’ 싶은 때가 있어요. 여러분은 언제 ‘내가 늙었구나’ 하고 생각하세요? 저는 슬픈 영화를 봐도 눈물이 나지 않고, 오히려 햇볕에 눈이 시려서 눈이 시린 경우가 많아요. 그리고 재밌는 영화를 봐도 웃기지도 않고, 이럴 때가 있어요. 그럴 때 생각이 들죠. ‘아, 내 몸이 아니라 내 마음이 늙었구나.’ 이런 생각이요. 그럴 때 내 마음을 톡 건드리는 음악, 그리고 글귀가 있다면 참 좋을 것 같아요. 그래서 준비한 코너입니다. 매주 수요일 마다 여러분에게 친구가 되어줄 시 한편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시를 품은 수요일’ 코너인데요. 오늘 이 시간을 함께 해줄 박준 시인 스튜디오에 오셨습니다. 안녕하세요?

◆ 박준 시인(이하 박준): 네, 안녕하세요.

◇ 김명숙: 사실 제가 오늘 이 시간을 기다렸어요. 요즘 아주 핫한, 젊은이들에게 인기 절정의 시인이잖아요. 박준 시인, 너무 인기가 많더라고요. 제가 인터넷에 검색해서 사진도 보고, 굉장히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보니까 너무 젊은 청년이세요. 홍대 앞에 가면 볼 수 있는..

◆ 박준: 네, 제가 홍대 자주 다닙니다.

◇ 김명숙: 아, 그러세요? (웃음) 오늘 ‘시를 품은 수요일’ 첫 시간이거든요. 오늘부터 매주 수요일에 만날 텐데, 오늘 오실 때 기분이 어떠셨어요?

◆ 박준: 청취자 여러분에게 좋은 시, 그리고 아름다운 시인들을 잘 전해드려야 되겠다, 열심히 잘 해야 되겠다, 이런 각오를 하면서 떨리는 기분으로 왔습니다.

◇ 김명숙: 떨리셨어요? 표정은 전혀 안 떨려 보여요. 박준 시인은 앞에서도 제가 요즘 떠오르는 시인이라고 말씀 드렸는데요.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시인계의 아이돌이라고 불리더라고요. 출간하신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이게 판매량이 어마어마하다고요?

◆ 박준: 어마어마했고요. 지금은 정상적으로..

◇ 김명숙: 거의 많은 분들이 사서 보셔서.. 그래도 아주 이슈가 되었던 시집이잖아요?

◆ 박준: 제 칭찬 같아서 제가 말을 오래하면 제 자랑이 될까봐...

◇ 김명숙: 괜찮아요. (웃음) 얼마나 판매되었나요?

◆ 박준: 한 7만 부 정도인데요. 시집으로는 이게 좀 많은, 이례적인 숫자였어요. 그런데 시집은 상품이라서 많이 팔리면 좋은데, 시집 안에 있는 시 텍스트들은 어떻게 보면 문학이고 예술이라서 어떻게 보면 그건 또 판매가 어떤 척도가 되지는 않아서요. 반은 좋아하고 반은 경계하면서, 그렇게 지내고 있었습니다.

◇ 김명숙: 그래도 이왕이면 많은 분들이 좋은 시를 읽고 마음에 치유가 되고, 그리고 돈도 많이 벌면 좋죠. (웃음) 사실 예전에는 시집 많이 읽었어요. 제 학창시절에는요. 그러다가 시대가 변하면서 어느 순간부터 시가 좀 소외되는 느낌이 있었어요. 그런데 최근에 다시 사람들이 시집에 관심을 많아 갖게 되더라고요. 살면서 왜 시를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 박준: 방금 말씀하셨던 것처럼 대중들이 시를 많이 읽던 시대, 시의 시대라고 불리던 80년대, 이즈음에는 시가 대단한 일, 세상을 바꿀 거라는 믿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 김명숙: 연애편지 쓰면서도 항상 시 써서 넣고 그랬어요.

◆ 박준: 그렇죠. 그런데 시는 사실 지금의 사회 현실 속에서 대단한 일을 하지는 못하고요. 좋은 쓸모가 있는 것도 사실 아닙니다. 다만 시는 사람의 마음, 특히 어둡고 쓸쓸한 상태에 있는 사람의 마음을 잘 달래주고 도와주는 데에는 시만한 것이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여전히 사람들이 시를 찾고, 다시 시가 조금 널리 읽히는 이유도 다 거기에 있다,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 김명숙: 네, 요즘에 삶이 좀 팍팍한 즈음에 많은 분들이 치유를 받고 싶어서 시에 관심을 갖는 분들이 많이 있는 것 같아요. 저도 좀 그런 경우거든요. 시를 품은 수요일, 이 시간은 청취자 여러분의 사연을 읽고 적합한 시를 처방해드릴 거예요. 여러분의 고민 상담, 문자로 받고요. 평소 좋아하는 시, 나만 알고 있는 보석 같은 시가 있으면 소개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오늘 첫 번째 사연부터 만나볼게요.

“안녕하세요. 저는 50대 여성입니다. 요즘 저는 딸아이 때문에 큰 고민입니다. 우리 딸은, 그 무섭다는 중2병도 걸리지 않고 엄마 말 한번 거역안하고 잘 자라왔습니다. 그런데 25살이 된 지금 우리 딸이 무섭게 사춘기를 앓고 있습니다. 대학교 졸업을 했지만 직장을 구하려고도 하지 않고 친구들을 만나려고도 하지 않고. 혼자 방안에서 책만 보고 있습니다. 그런지 벌써 6개월이 다 되어 가네요. 무슨 일인지 물어봐도 답도 없고 그냥 이 시간을 참아달라고만 말하는데, 엄마 입장에서는 그게 잘 안되네요. 우리 딸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꽁꽁 얼어붙은 마음을 어떻게 녹일 수 있을지 고민입니다.”

이런 사연 보내주셨어요.

◆ 박준: 큰일이네요. 이 사연을 조금 생각해보면, 큰일을 겪고 계신 분은 따님이 아니라 어머님이신 것 같아요. 따님의 행동에 전전긍긍하고 마음을 애닳아 하시는 어머님이 더 큰일을 겪고 계셔서 안타깝습니다.

◇ 김명숙: 그런데 저는 또 엄마라서 그런지 엄마의 입장도 이해가 돼요. 서로 각자의 입장이 있잖아요. 그런데 또 젊은 시인이시니까 따님의 입장에서, 이 따님은 엄마가 어떻게 해주기를 바랄까요?

◆ 박준: 사실 따님은 6개월째 밖에 잘 나가지 않고 책만 본다, 이것은 어머님이 생각하시는 것처럼 아무 것도 안 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돼요. 책을 보거나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 과정일 텐데, 그런데 정작 따님의 행동에 대해서 마음이 아파서, 혹은 안타까워서 마음의 병을 앓고 계신 것은 따님이 아니라 어머님 같아요. 물론 취직하거나 사회생활을 하면 좋겠죠. 어머님의 바람대로, 다른 젊은이들처럼, 그런데 그것이 현실에서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그것이 아니면 어머님이 조금 기다려주시면 어떨까? 따님이 뭘 준비하는 시간을 기다려주시면 어떨까? 그게 아마 따님의 마음에 더 가까울 것 같아요.

◇ 김명숙: 아무 것도 안 하는 건 아니니까 엄마가 기다려줘야 한다. 맞는 말씀이세요. 그런데 저는 엄마 입장을 이해한다고 했잖아요. 기다려주는 건 당연하죠. 그런데 저는 사실 반대의 경우예요. 우리 아이가 너무 밖으로만 다녀서 속상하고 아쉽거든요. 그것도 제가 좀 기다리고 이해해야 하는 건가요?

◆ 박준: 그것도 그러셔야 할 것 같습니다. 어렵지만. (웃음) 왜 글 쓰는 사람들이 책상에 앉아서 글을 써야 하는데, 책상에 앉기 싫어서 별 일을 다 하거든요. 예를 들면 책상 정리를 한다든가, 집안 청소를 한다거나, 차를 마신다거나, 그게 사실 글 쓰는 것처럼 보이지 않지만 글을 쓰기 위한 사전 과정이거든요. 그래서 이 사연의 따님도 어떤 것을 하기 위한 사전 과정으로 보시면 어머님 마음이 조금 편해지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이 듭니다.

◇ 김명숙: 네, 시간을 가지고 기다려야 한다. 네, 그런 것 같습니다. 이 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시는 어떤 게 있을까요?

◆ 박준: 저는 안도현 시인의 ‘겨울 강가에서’라는 시를 떠올렸어요. 시인이, 눈송이들이 땅으로 와서 잠깐 쌓여 있어야 좋을 텐데 강으로 떨어지면 바로 녹아버리잖아요. 그것이 안타까워서 전전긍긍하면서 쓴 시예요. 그래서 뭔가 비슷한 상황에서 어떤 해법이 살짝 담겨 있지 않을까 싶어서 골라봤습니다.

◇ 김명숙: 네, 그러면 사연주신 어머님을 위해서 박준 시인께서 한 번 낭독해주실까요?

◆ 박준: 네, 읽어보겠습니다.

“어린 눈발들이, 다른 데도 아니고
강물 속으로 뛰어내리는 것이
그리하여 형체도 없이 녹아내리는 것이
강은,
안타까웠던 것이다
그래서 눈발이 물위에 닿기 전에
몸을 바꿔 흐르려고
이러 저리 자꾸 뒤척였는데
그때마다 세찬 강물소리가 났던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계속 철없이 눈은 내려,
강은,
어젯밤부터
눈을 제 몸으로 받으려고
강의 가장자리부터 살얼음을 깔기 시작한 것이었다.“
- 안도현, 겨울 강가에서

◇ 김명숙: 네, 잘 들었습니다. 저도 우리 박준 시인께서 이 시를 낭송하는 동안 생각을 해봤어요. 그랬더니 “눈을 제 몸으로 받으려고 강의 가장자리부터 살얼음을 깔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런 글처럼 우리 아이를 좀 이해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박준: 또 그전에, 처음에는 몸을 뒤척여서 눈이 떨어지는 곳으로 흐르지 않으려고 강물이 노력했는데, 그때마다 세찬 강물소리가 나면서 실패를 하니까, 결국 다른 방법을 취한 거죠. 그렇게 읽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 김명숙: 네, 정말 좋은 시 잘 들었습니다. 너무 감동적이었습니다. 시가 이런 매력이 있는 거예요. 저도 엄마의 마음은 잘 이해가 되는데요. 혹시 부모가 자녀에게 쓴 시도 하나 소개해주실 거 있나요?

◆ 박준: 여러분도 잘 알고 계시겠지만 김용택이라는 시인이 새로운 시집을 내셨어요. ‘울고 들어온 너에게’라는 시집인데요. 거기에 표지작이 되기도 했던 ‘울고 들어온 너에게’라는 시를 소개해드리고 싶습니다.

◇ 김명숙: 정말 좋은 시죠.

“따뜻한 아랫목에 앉아
엉덩이 밑으로 두 손 넣고
엉덩이를 들었다 놨다 되작거리다 보면
손도 마음도 따뜻해진다.
그러면 나는
꽝꽝 언 들을 헤매다 들어온
네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싼다.”
- 김용택, 울고 들어온 너에게

(노래 – 양희은 ‘엄마가 딸에게’)

김용택 시인의 ‘울고 들어온 너에게’, 그리고 양희은의 ‘엄마가 딸에게’, 이어서 들어봤습니다. ‘시를 품은 수요일’, 이 코너 참 좋아요. 제가 참 칭찬하고 싶습니다. 말로 이야기하는 것도 좋지만 말보다 시와 음악으로 부모와 자녀 간에 소통을 할 수 있다는 것, 참 좋은 것 같습니다. 제가 앞서 오늘 청취자 여러분에게 보석 같은 사연이나 좋은 시 있으면 소개해 달라고 말씀 드렸는데요. 청취자분이 보내주신 시가 있습니다. 그거 우리 박준 시인님께서 한 번 읽어주셨으면 좋겠고요. 오늘 첫 시간 어떠셨어요?

◆ 박준: 저도 제 입으로 이런 이야기 하기는 그렇지만 참 좋았고요. 다음 주에는 더 좋고 따뜻한 시들 잘 챙겨와야 되겠다는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 김명숙: 네, 저도 다음 시간이 참 기대가 됩니다. 오늘 박준 시인께서 청취자가 보내주신 시 읽어드리면서 오늘 코너 마무리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박준: 네. 고맙습니다.

“오색 빛깔 색동옷에 스치면 어디에...
가을이 이제 떠나려나 봅니다.
아-, 막 떠날 채비를 합니다
마지막 한 방울의 물기마저 털어버리고.

허공을 너울대던 억새의 은빛 춤은 끝내
삼도천의 물비린내를 훅 들이키고 맙니다.
갈잎이 엎드려 바스락, 바스락 흐느끼기 시작합니다.
짝을 떠나보낸 갈바람이 이윽고 윙-, 윙-, 곡소리를 합니다.

서산의 노을이 꽃상여를 붉게 물들이며
마지막 길을 함께 합니다.
만물은 기도합니다, 다시 만날 그날까지.”

가을을 위한 진혼식 – 김영재


[저작권자(c) YTN radio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
목록
  • 이시간 편성정보
  • 편성표보기
말벗서비스

YTN

앱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