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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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탄꽃, 의자꽃이 피었습니다"
작성자 : ytnradio
날짜 : 2016-05-27 09:25  | 조회 : 4829 
YTN라디오(FM 94.5) [수도권 투데이]

□ 방송일시 : 2016년 5월 26일(목요일)
□ 출연자 : 이효열 설치미술가





◇ 정병진 아나운서(이하 정병진): SNS 자주 하시는 분들은 아실 것 같은데요. 연탄에 꽂힌 장미꽃 사진, 서울 곳곳에서 발견되면서 화제가 됐습니다. 설치미술가인 이효열 작가의 작품인데요. 왜 이런 작품을 만들게 된 건지 궁금한 점이 많습니다. 전화연결해서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 이효열 설치미술가(이하 이수정): 네, 안녕하세요.

◇ 정병진: 거리예술가라고 불러야 할지, 설치미술가라고 불러야 할지 고민을 했어요. 설치미술가라고 부르는 게 좋을까요?

◆ 이효열: 아무래도 설치미술을 거리로 가지고 나와서 전시를 하니까 조금 헷갈리시는 부분이 있는 것 같은데요. 설치미술가로 많이 알아주시는 것 같아요. 그렇게 불러주시면 좋죠.

◇ 정병진: 연탄재에 장미꽃을 꽂아서 전시하는, 이 작품의 작가 맞으시죠?

◆ 이효열: 네, 맞습니다.

◇ 정병진: 그리고 그 작품 옆에 보면 문구가 있습니다. “뜨거울 때 꽃이 핀다.” 이런 골판지가 놓여 있습니다. 이 작품을 만들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 이효열: 일단 제가 연탄이랑 가깝게 살았어요. 어릴 때부터 연탄을 보고 자라왔고, 그런 흔히 말하는 달동네에서 살면서 연탄을 쉽게 접했는데, 어느 날 집 앞에 새하얀 연탄을 보고, 저 연탄도 저렇게 자기를 희생해서 남을 데워주고 생을 마감하는데, 사람인 나는 나조차도 날 위해서 뭘 하는가? 이런 고민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나를 위해서 어떻게 하면 꽃이 필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연탄처럼 뜨겁게 타야지 피지 않을까? 그래서 뜨거울 때 꽃이 핀다는 문구가 머리에 떠올랐어요.

◇ 정병진: 아, 그때 떠오른 문구군요?

◆ 이효열: 네, 맞습니다. 저도 우연히, 아무래도 청년이었고, 일자리나 꿈에 대해서 고민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거기서 고민을 하다가 그 문구가 떠올랐습니다.

◇ 정병진: 그렇군요. 그러면 안도현 시인의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이 시도 이미 접하고 나서 영감을 받은 게 있습니까?

◆ 이효열: 그 부분은 저도 나중에 생각해보니까 그런 것 같아요. 왜냐면 제가 안도현 선생님을 굉장히 좋아하기도 하고요. 그 시도 이미 알고 있었고, 그래서 그런 영향을 좀 받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 정병진: 그럼 본격적으로 설치를 시작한 건 언제쯤입니까?

◆ 이효열: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2013년 겨울이었던 것 같아요.

◇ 정병진: 그렇군요. 지금도 하고 계시죠?

◆ 이효열: 네, 지금도 계속 하고 있습니다.

◇ 정병진: 꽃과 연탄은 사비로 충당하시는 건가요?

◆ 이효열: 네, 아무래도 제 작품을 하는 거니까요. 연탄은 제가 때운 연탄재로 설치하고 있고요.

◇ 정병진: 아, 직접 사용한 연탄재를 사용하시는군요?

◆ 이효열: 그렇죠. 많이 요청할 때는 다른 곳에서 가져오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게 더 의미가 있는 것 같아서, 직접 때운 연탄으로 하고 있습니다.

◇ 정병진: SNS를 보면 인증 사진을 찍어서 올리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희 YTN에서도 지난해 5월쯤에 보도를 했었어요. 저도 그 뉴스를 통해 처음 봤는데요. 사람들의 반응 중에서 기억에 남는 반응이 있을 것 같아요.

◆ 이효열: 그런 반응들이 재밌기도 했어요. 제 작품에 문구가 있으니까, 옆에다가 쪽지나 어떤 메시지를 만들어놓고 가시는 분이 계세요. 예를 들면 ‘시들어도 예쁘잖아?’라는 문구도 있었고요. ‘꽃들은 침묵으로 대화했다.’ 이런 본인들의 어떤 메시지, 바라는 염원들을 적고 가세요. 그리고 꽃 한 송이씩 꽂아서, 연탄구멍에 더 꽃을 꽂을 수 없을 정도로 수북이 쌓였던 적도 있고요. 가장 최근에 기억에 남았던 점은 성남시청에 평화의 소녀상이 있는데, 거기에 꽃을 피워야 하는 게 있기 때문에 두고 왔어요. 그런데 이제 겨울이었는데, 나중에 가보니까 사람들이 손난로를 연탄재 위에 계속 쌓아놓으셨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소녀상에 대한 마음이 나랑 비슷하구나, 거의 같구나, 그래서 사람들도 따뜻한 마음을 전해서 꽃을 피우게 하고 싶은 마음이 있구나, 이런 생각이 들어서 뭉클했습니다.

◇ 정병진: 그 말을 들어보니까, 따뜻함도 전염되는 것 같네요.

◆ 이효열: 네, 그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게 최근에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 정병진: 서울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동상 옆에도 설치를 하셨나요?

◆ 이효열: 거기는 일자리 꽃자리라고, 의자 꽃인데요. 의자에다가 꽃을 심어서 화분처럼, ‘당신의 일자리 꽃을 피우는 그날까지 함께 하겠다’는 희망을 다룬, 다른 메시지의 작품입니다.

◇ 정병진: 아, 이건 연탄과 꽃의 조합이 아니라 의자와 꽃의 조합이군요?

◆ 이효열: 네, 맞습니다. 제가 이 작품을 만들게 된 계기가, 이것도 어떻게 보면 제 이야기이기도 한데요. 제가 일자리를 구하려고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서울 일자리 대장정이라는 캠페인을 서울시에서 하더라고요. 그걸 보고 저 같은 청년들한테 도움이 되는 정보도 많고, 소통할 수 있는 창구가 된 것 같아서, 저도 이 캠페인에 도움이 될 수 있을만한 작품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제가 직접 서울시에 제안을 했던 작품이에요. 그래서 흔쾌히 수락을 또 해주셔서 그 작품을 함께 만들게 되었고, 기분 좋게 모 은행 쪽에서도 저희 취지에 공감해주고 제작지원까지 해주셔서, 이번에는 마음 편하게 좋은 캠페인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 정병진: 그렇군요. 이효열 작가님이 올해 서른이 되었죠?

◆ 이효열: 네, 그렇습니다.

◇ 정병진: 서른 즈음에 또 고민이 여러 가지 있을 겁니다. 우리가 통상하는 고민도 할 것이고, 예술가로서의 고민도 할 텐데, 가장 많이 하는 고민이 뭔가요?

◆ 이효열: 가장 많이 고민하는 것은 그런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저는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고 싶은, 에둘러서 표현하고 싶은 예술가인데, 그런 일들이 점점 많아지잖아요? 그래서 조금 슬프지만 할 일은 더 많아지는, 그래서 뭔가 아이러니하다고 해야 하나? 제가 할 일이 더 많아진다는 것은 조금 더 좋지 않은 일이 더 많아진다는 게 있어서요.

◇ 정병진: 일을 덜 할 수 있게끔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네요?

◆ 이효열: 네, 일을 덜 할 수 있게끔 하는 세상이 되면 좋겠는데, 그게 되지 않으니까, 그런 부분에서 고민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 정병진: 뭔가 가슴 아픈 사건이나 사고가 났을 때, 이에 대해 사람들이 마음 아플 것이고, 거기에 대한 고민과 위로가 담긴 작품들을 설치하다보니까 그렇다는 말씀이신데요. 낮에는 이렇게 설치미술 작품도 하시지만, 밤에는 또 생계를 위한 일도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맞습니까?

◆ 이효열: 예전에는 편의점에서 야간에 일을 하다가, 조금 힘에 부치는 것도 있고 해서 지금은 카페에서 오전에 일을 하고, 오후에 업무를 보는 식으로, 여전히 생계유지를 위해서 일은 하고 있습니다.

◇ 정병진: 혹시 연애나 결혼에 대한 고민도 하시나요?

◆ 이효열: 결혼에 대한 고민은 하지 않는데요. 아무래도 저도 어떻게 보면 이런 활동들을 사랑받기 위해서 한다고 저는 생각하는데, 그건 저도 조금 아쉽네요. 연애를 해야 하는데요. (웃음)

◇ 정병진: 네, 그러한 고민이 또 작품으로 어떻게 나올지 기대가 되는데요. 원래 광고회사에 다니셨다면서요?

◆ 이효열: 네, 맞습니다.

◇ 정병진: 그만두고 나서 후회는 안 하셨어요?

◆ 이효열: 사실 후회 많이 했죠. 쉽게 취직할 수 있는 부분도 아니고, 저 같은 사람을 받아준 것도 고마운 건데, 그런데 그런 고민은 했어요. 회사 이름도 중요하지만 뭔가 내 이름을 걸고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누구나 하잖아요? 그래서 위험을 감수하고 했던 거죠. 초반에는 힘들었고, 지금도 여전히 쉽지는 않지만, 그래도 뭔가 나름의 자부심, 뿌듯함 같은 것은 있습니다.

◇ 정병진: 사실 후회라는 게, 하고 나서 후회하면 앞을 보게 되지만, 안 하고 나서 후회하면 뒤를 보게 되잖아요.

◆ 이효열: 명언이네요. 맞습니다.

◇ 정병진: 그래서 예술에 대한 인식들, 아직까지는 젊은 예술가들이 예술가로서 사는 삶이 순탄치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젊은 예술가로서의 삶은 어떻습니까?

◆ 이효열: 상당히 책임 질 게 많은 것 같아요. 왜냐면 청년이라는 것은 부모님을 어느 정도 용돈도 드려야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연애도 해야 하고, 결혼도 하고, 취직도 해야 하고, 하고 싶은 것도 해야 하고, 많은 것을 조화롭게 이루어야 하는 나이라고 저는 생각하는데, 그중에서 내가 하는 것, 어떤 것을 포기하겠다는 것인데, 그 책임은 나중에 질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 시기가 앞당겨지게 우리가 빨리 노력을 해야죠. 그래서 저는 하고 싶은 게 있다면 너무 힘들어도 잠깐 다른 것들을 미룬다고 생각하고 일단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 정병진: 책임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으시군요?

◆ 이효열: 네, 책임감을 가지고 있고, 그 책임을 빨리 돌려드리고 싶으면 빨리 더 열심히 하셔야 하는 부분이라서, 저는 어쩔 수 없이 덜 자고, 덜 먹고, 더 뛰어야 하는 것 같아요.

◇ 정병진: 알겠습니다. 언제 한 번 저희 YTN라디오에도 작품 하나 설치해주세요.

◆ 이효열: 너무 좋죠.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 정병진: 네, 저와 비슷한 나이지만 범상치 않은, 이 시대의 범부들의 고민을 같이 짊어지고, 그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설치 작품을 만드는 분이었습니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 이효열: 네, 꼭 한 번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정병진: 네, 지금까지 설치미술가 이효열 작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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