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율의 뉴스 정면승부
  • 방송시간 : [월~금] 17:00~19:00
  • 진행: 신율 / PD: 서지훈 / 작가: 강정연, 임은규 / 유튜브AD: 김민영

인터뷰전문보기

[정면인터뷰]일제의 잔재, 애국주의로 탈바꿈해 교육현장에 여전히 존재-민족문제연구소 박한용 연구실장
작성자 : ytnradio
날짜 : 2015-08-15 08:40  | 조회 : 5320 
[정면인터뷰]일제의 잔재, 애국주의로 탈바꿈해 교육현장에 여전히 존재-민족문제연구소 박한용 연구실장

<광복 70주년 특집 - 우리는 진정한 광복을 찾았는가>

[YTN 라디오 ‘최영일의 뉴스! 정면승부’]
■ 방 송 : FM 94.5 (18:10~20:00)
■ 방송일 : 2015/08/14 (금)
■ 진 행 : 최영일 시사평론가

◇앵커 최영일 시사평론가(이하 최영일): 일제 식민지 교육은 해방 정국을 맞이해서 청산의 대상이 됐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일본 제국주의 식민 지배를 위한 모습이 교육 제도 안에 오랫동안 남아있는 실정이라고 하는데요. 일제 식민지 교육의 잔재는 무엇이 있을까요?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 연결해서 알아보는 시간 갖겠습니다. 실장님. 안녕하십니까.

◆민족문제연구소 박한용 연구실장(이하 박한용): 예. 안녕하세요.

◇최영일: 1945년 해방이 되고요. 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한국 교육은 민족 자체의 힘에 의해서 새로운 민족 교육을 발전시켜 왔는데요. 그동안 식민 교육 청산. 어떻게 이뤄져 왔습니까?

◆박한용: 참 민망한 이야기인데요. 저도 교육에 있어서는 식민 교육의 청산이 없었다고 봅니다. 해방된 이후에 새로운 나라에서 교육에 대한 갈증이 매우 높았지 않습니까? 그 때는 파시즘적인 일제 교육을 청산하고 민주 시민 교육을 하자는 게 있었습니다. 그 때는 미국식 자유민주주의 교육과 사회주의식 교육이 두 가지 크게 나오고 있었어요. 어느 것이든 간에 표방했던 것은 민주주의였어요. 그런데 정작 뭐였냐면. 이승만 정부가 들어서면서 초대 교육부 장관이 안호상이란 분이에요. 이 분이 민족적 민주 교육을 내세웠는데. 이게 사실 1930년대 독일의 파시즘 교육을 부활시켜버린 겁니다. 그래서 이승만 정권이 처음부터 시작한 게 학도호국단을 만들고, 학생들 군사조직을 만드는 것이죠. 그 다음에 민족적 민주 교육이라고 얘기하면서 서구식 자유 민주주의 교육은 방종이 흐른다. 사회주의 교육은 현재 우리 방공 때문에 안 된다. 이렇게 하면서 국가주의 교육, 히틀러나 독일의 프로이센 같은 국가주의 교육 있지 않습니까? 결국 일제 잔재 교육과 사실은 동전의 양면인 것인데, 이런 교육이 돼왔었어요. 그래서 어떤 말은 식민 교육의 연장이었다는 말도 있었고. 결국 이렇게 되면서 이승만 때는 학원이 정치 도구가 되고 여러 가지 선거 때 동원 기구가 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학생들 정치 동원하지 말라고 데모도 일어났었고.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박정희 때는 아예 유신 교육이라고 하는 것은 정확하게 얘기하면 1937년부터 1945년 일제 시기였던 전시 총동원 체제 때의 군국주의 교육을 오히려 박정희 정권 때는 유신 교육으로 부활시켜 버렸어요.

◇최영일: 실장님. 그런데요. 조금 앞부분의 이야기가 역사적으로 길어져서. 이 일제 잔재 청산이 교육 현장에서 없었다. 저희가 이해하기로는 많이 부족했다. 이렇게 이해를 하겠는데요. 구체적인 예를 한 번 여쭤볼게요. 우리 교육에 식민 교육의 잔재가 남아있는 부분. 예를 들어 구령에 따라서 학생들이 교사에게 인사하는 것. 차렷, 선생님께 대하여 경례. 이렇게 하는 것 우리가 하면서 자라지 않았습니까? 또는 수우미양가. 이런 성적표 매기기. 이런 것들도 다 일제의 잔재들의 한 종류인가요?

◆박한용: 예. 제가 몇 가지 예시를 들어보겠습니다. 이 중에 사라진 것도 있고 남아있는 것도 있으니까요. 학교마다 약간씩 차이가 있더라고요. 지금은 사라졌지만 교복이 있죠. 지금의 학생들은 학교마다 다른 교복을. 우리 때는 획일적인 교복 입지 않았습니까. 교모와 스포츠 머리. 지금은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애국조회는 아직 남아있죠. 이 애국조회는 바로 일본이 만든 거예요. 그 다음에 반장이라든지 주번이란 개념 같은 것도 사실 내무반장이나 주번하사관과 같은 개념에서 되어온 것이 학교에 적용이 된 것이에요. 복장 검사도 심심치 않게 있는 학교도 있는 모양이에요. 그 다음에 교문 앞에서 지도하는 것 있죠. 규율부나 예의부가. 또 국민교육헌장, 국기에 대한 맹세 같은 것도 사실은 교육칙어나 황국식민서사를 본 뜬 것이고. 그 다음에 우리 표창장 같은 것에 ‘학업 성적이 우수하고 품행이 방정하여’ 이런 말이 나오지 않습니까. 이것도 사실 일제 때 용어예요.

◇최영일: 용어 자체가.

◆박한용: 네. 그렇죠. 표창 수여할 때 일제 땐 품행 대신 조행이라는 말을 썼을 뿐이에요. 그 다음에 지금은 거의 사라진 일기 검사 같은 것들. 그 다음에 학교마다 급훈이나 표어 붙이기, 지도자 사진 붙이는 것. 지금은 우리 많이 사라졌습니다. 이런 것들이 다 일제 잔재입니다. 그래서 이런 것들을 학교마다 비교해 보시면 재밌을 거예요. 무엇이 남아있고 사라졌는가.

◇최영일: 그래서요. 지금 실장님 예로 들어주신 식민지 교육의 잔재들. 아직도 남아있는데. 그 당시 일본의 군국주의와 전체주의 같은 이념의 틀에서 나온 것으로 보이는 것 아닙니까? 우리 교육의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는 것도 중앙집권적 획일주의. 이것도 결국은 식민 잔재의 영향인 건가요?

◆박한용: 우리가 다른 쪽에서 배운 것은 없잖아요? 국가주의 개혁은. 우리의 최초의 근대적 개혁의 오리엔테이션은 일본의 파시즘 군국주의 교육으로부터 시작했어요. 그 쪽에서 교육을 받았던 교육 관료들이나 교육 지도자들이 해방 이후부터 지금까지 한국 교육 현장을 좌지우지 해왔단 말이죠. 그러다 보니까 항상 많은 상명하복의 분위기라든지. 획일화 분위기. 그 다음에 관료주의. 그 다음에 중앙집권주의. 그 다음에 지방자치제에 입각한 교육의 자율화에 대한 반대. 지금도 심하지 않습니까? 이런 것들은 사실 일제 때 나왔던 통제 교육의 영향이라고밖에는 볼 수 없어요.

◇최영일: 그런데 실장님. 약간 궁금한 것도 있는데요. 저희가 조기교육으로 서양식 교육을 배운 사람들은 많지는 않습니다만. <죽은 시인의 사회>라든가, 감명 깊게 본 서구식 교육에 대한 영화라든가 드라마, 다큐멘터리를 보면요. 영국의 이튼스쿨 같은 곳도 회초리로 때리는 체벌도 있고요. 획일적인 교복을 입고요. 그리고 교장 선생님과 교사들 간의 상명하복과 같은 체계를 유지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이게 말씀하시는 것과 전체적인 구조가 어떤 점에서 일제의 잔재가 더 특징 있는 건가요?

◆박한용: 네. 여기서 큰 차이가 있습니다. 이튼스쿨 같은 곳은 특수한 엘리트 교육으로써의, 쉽게 말씀 드리자면 ‘노블레스 오블리주’. 특수학교예요. 이튼 학교는. 영국 사회에서 귀족 학교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고, 일반적인 교육에서 그렇게 대단히 체벌 제한 규정이 무척 많습니다. 그러니까 자의적인 행사는 불가능하게 돼있어요. 특수학교 외에는. 그러니까 상류 엘리트 사회에서 이뤄지는 부분적인 교육은 일반적인 시민 교육과는 별도로 우리가 봐야 될 것이고요.

◇최영일: 그래서 일반화 하기는 어렵다.

◆박한용: 예.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국에서의 교육 자체는 뭐냐 하면, 아주 강력한 반공주의와 국가주의예요. 그러니까 이러한 부분들은 사실은 일제강점기에 나왔던, 특히 군사주의적 성향이 무척 강합니다. 분단 상황이다 보니까. 교련 같은 것이 있지않았습니까. 그래서 이런 강력한 국가주의라든지, 민주 시민보다는 국민으로서 국가에 대해 충성하고 보답해야 될 의무적 존재. 그 다음에 이런 것들이 있고. 민주주의가 결여돼 있고. 그 다음에 개성을 무시하죠. 이런 점에서 나옵니다. 물론 이튼스쿨이나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보면 알지만 미국 내에서도 소수 엘리트들은 전부 비판적이거든요. 시민 교육의 일반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이 일반화 돼있다는 게 문제죠.

◇최영일: 실장님 말씀이 일견 일리가 있다고 이해가 되면서도 또 고민 지점이 있는 것이. 꼭 일제의 군국주의를 답습해서가 아니라, 우리나라가 해방과 건국 때부터 분단국가 상황으로 지금까지 온 것 아닙니까? 그렇다보면 양쪽의 군사력이 지금 대치하고 있고, DMZ에서 최근에 또 지뢰 폭발도 있지 않았습니까? 이런 상황에서 저도 대학교 1, 2학년 때까지, 중학교, 고등학교 애국조회, 교련 다 겪은 세대인데요. 어쩔 수 없는 분단 상황의 선택이 아닌가. 이게 일본을 따라했다기 보다는 뭔가 젊은이들을 군사력으로 동원해야 되는 체제의 대치 상황이 이렇게 만들어낸 비극이 아닌가 하는 생각은 어떻게 보세요?

◆박한용: 저는 일제 잔재가 한국 사회에 하나의 필요악처럼 자리 잡게 된 이유가 분단 구조라고 봅니다. 사실 일제 잔재라고 해서 우리가 그대로 다 적용하지는 않겠죠. 상식적으로. 메르스 같은 바이러스도 변형이 되지 않습니까? 환경에 따라서. 따라서 일본의 국가주의 잔재는 사실은 청산됐는데 분단이라는 조건하고 분단에서 나온 반공. 이것이 또 독재와 결합돼 있지 않습니까? 안보 국가라는 게 지도자를 중심으로 한 총력 안보 시스템 아닙니까. 문제는 여기서 안보라고 하는 부분들은 그러한 독재자를 정당화 하는 명분과 반공이 결합되고, 그것이 분단에 의해서 정당화 되는 이 상황이 문제였던 거예요. 애국심이라고 하는 것이나 안보라고 하는 것은 그렇게 해서는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죠.

◇최영일: 마지막으로요. 그러면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일제 잔재를 청산하기 위해서 앞으로 어떤 방향의 교육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박한용: 예. 저는 무엇보다도 지금 획일화가 제일 큰 문제라고 봅니다. 통제당한 인간. 21세기 사회는 개인의 창의와 자율성이 무척 중요화 된 시기 아니겠습니까? 새로운 변화의 시기이고. 그래서 저는 교육의 국가 개입을 줄여야 하고, 그 다음에 자율적인 민주 시민의 양성을 위한 창의, 개성. 이런 것들이 기초가 되는 교육이 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부분들에 대해서 저희들은 미래 세대나 개인적인 능력을 믿어주고, 교육이 그러한 개인적인 능력들을 개발하고 이끌어주고 지원하는 시스템으로 가야 되는데. 과거 세대가 과거의 낡은 관념으로 미래 세대들을 결론을 내리고 끌고가려는 것이 현 교육의 제일 큰 문제라는 얘기죠. 그러니까 19세기나 20세기나 21세기나 같아서는 안 된다. 21세기를 위한, 우리가 기성의 교육이 밑거름이 돼야 하는데 거꾸로 돼있단 얘기예요.

◇최영일: 예. 알겠습니다. 가장 나쁜 것. 일제 잔재는 획일화이고 여기서 개성화, 다양화, 또는 창의적으로 나가야 한다고 말씀 주셨습니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박한용: 네. 고맙습니다.

◇최영일: 지금까지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 이야기 들어봤습니다.

[저작권자(c) YTN radio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
  목록
  • 이시간 편성정보
  • 편성표보기
말벗서비스

YTN

앱소개